김현정은 즉시 임슬기의 앞을 가로막았다.“무슨 근거로 사람을 체포하려는 거예요?”“당연히 증거에 근거해서죠. 체포 영장 보셨나요? 아가씨, 비키세요. 그렇지 않으면 공무 집행 방해로 고발할 겁니다.”김현정이 더 말하려는 찰나, 임슬기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알겠어요. 같이 가시죠.”“슬기 언니! 지금, 이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예요?”“현정 씨, 진 변호사님한테 연락해 줘요.”임슬기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비틀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그녀의 모습에 경찰도 마음이 약해졌다.“
경찰은 즉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이건 그날 오정태가 누군가와 만난 사진이에요.”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임슬기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사진을 보더니 숨을 헐떡였다.사진은 가짜였다. 증인도 분명 매수된 것이 분명했다.앞뒤로 임슬기를 공격해 그녀를 죽일 작전이었나 보다.연다인은 각종 증인까지 준비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살인 동기도 이미 만들어 놓았다.임슬기가 절망적인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준비해놓은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을 것 같네요.”지금 이 순간
황당한 얼굴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 임슬기는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얼굴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진승윤의 손을 밀어내고 사람들 속으로 달려가던 임슬기는 두어 걸음 가기도 전에 다리가 풀려 넘어졌다.하지만 몸의 통증도 잊은 채 허겁지겁 일어나 계속 그쪽으로 달려갔다.이때 누군가 임슬기의 팔을 잡았다.“슬기 씨, 진정해요.”임슬기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현정 씨에요! 현정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가 봐야 해요!”그러고는 진승윤의 손을 뿌리치고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비켜요! 비켜요!”
“뭐라고요?”이 말을 들은 임슬기는 정신이 번쩍 들어 침대에서 일어났다.“경찰관님, 뭐라고요? 오정태의 시체가 사라졌다고요?”“네, 어제 오후 진 변호사님이 시체를 운송해 와서 법의학자가 확인 후 퇴근했는데 밤중에 시체가 도둑맞았습니다.”사실 이런 일은 임슬기에게 특별히 알릴 필요가 없었지만 시체는 임슬기가 찾아와 보관한 것이었기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임슬기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오정태의 시체조차 지켜내지 못하다니... 그녀는 이런 자신이 정말로 쓸모없는 사람 같았다.임슬기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깬
장승태의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임슬기를 훑어보자 임슬기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장승태! 거짓말 좀 그만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임슬기는 앞으로 나가 장승태의 뺨을 때렸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던 장승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을 만지며 화를 내었다.“왜? 임슬기, 지금 증인을 괴롭히는 거야? 경찰이 밖에 있어, 불러올까?”힘껏 한 대를 때린 탓에 온몸의 기운이 빠진 임슬기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장승태는 두려워하는 임슬기의 모습을 비웃으며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임슬기, 난 지금 네 살
“현정 씨, 말하지 마요!”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임슬기는 김현정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배정우는 임슬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이때 배정우가 임슬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폐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깜짝 놀란 임슬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배정우를 바라봤다.‘정우 씨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비웃고 있는 걸까?’“정우 씨...”“임슬기, 두 사람 연기 다 끝났어? 내가 또다시 속을 것 같아?”“배정우 씨, 내 말 모두 사실이에요. 슬기 언니는 지금 폐암 말기예요, 시간
“쓰레기 같은 자식! 넌 슬기 언니를 욕할 자격이 없어!”한마디 욕을 내뱉은 김현정은 배정우가 반응하기 전에 급히 임슬기를 데리고 도망쳤다.차에 탈 때까지 임슬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금 전 김현정이 사람들 앞에서 배정우를 때렸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쾌활하고 대담한 성격인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대담할 줄은 몰랐다.배정우가 체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데... 김현정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김현정이 걱정된 임슬기는 김현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현정 씨, 당장 명인시를 떠나요. 최대
차에 돌아오자마자 김현정이 임슬기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급히 물었다.“연다인이에요?”임슬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장난 전화예요.”김현정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물었다.“언니 얼굴이 이렇게 안 좋은데 분명...”임슬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현정 씨, 다쳤으니까 먼저 금빛 아파트로 데려다줄게요. 냉장고에 있는 사골을 끓여서 먹어요. 난 일이 좀 있어서 일 마치고 밥 먹으러 갈게요.”“슬기 언니, 또 나를 혼자 두고 가려는 거예요?”조금 전 연다인의 말이 떠오른 임슬기는 눈이
“내가 뭐 도와줄 일 있어?”임슬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미 충분히 도와줬어. 너까지 휘말리면 내가 더 걱정돼.”문득 진성한 쪽 일을 떠올린 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걱정 어린 눈빛으로 진승윤을 바라보았다.“근데 너야말로 괜찮아? 혹시 김씨 가문 쪽에서...”그 순간 그의 얼굴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너 얼굴 왜 이래?”불현듯 배정우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임슬기는 날카롭게 물었다.“배정우가 그랬지?”진승윤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아냐, 그냥 부딪힌 거야.”“거짓말하지 마.”임슬기는 그의 얼굴을 억
육문주가 아직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다가왔다.“다행히 제때 도착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심각한 출혈이 있어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임슬기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선생님, 현정이 몸에 난 상처들은요?”비록 다리 한쪽밖에 보지 못했지만 온몸이 피투성이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조금 전 이미 전신에 약은 다 발라두었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치료가 필요합니다.”임슬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임슬기는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점점 초조해졌다.급히 거실로 달려가 서랍과 상자를 뒤져 욕실 열쇠를 꺼냈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손이 떨려 열쇠를 제대로 꽂을 수조차 없었다.“현정아, 현정아, 제발 버티고 있어. 안 돼... 제발...”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결국 임슬기는 어깨로 문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두세 번 들이받자 문이 휘청이며 열렸다.문틈 사이로 보인 광경에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김현정은 욕조 안에 쓰러져 있었고 팔에는 붉은 상처가 길게 나 있었으며 욕조 안
미디어의 자극적인 보도 탓에 상황은 점점 더 왜곡되었고 김현정은 마치 스스로 몸가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 방탕하게 구는 사람으로 몰려버렸다.임슬기는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분노에 휩싸였고 당장이라도 연다인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곧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다잡았다.이 일은 김현정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상처다.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반드시 가장 합리적이고 피해가 적은 방법을 택해야 했다. 무엇보다 김현정이 이런 기사나 사진을 보는 건 막아야 했다. 절대로 보면 안 된다.그 순간 그
주방에서 임슬기는 면을 삶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딴 데로 가 있었다.한편으로는 김현정의 상태가 걱정됐고 또 한편으로는 연다인이 다음에 무슨 짓을 벌일지 불안했다.생각이 많아지는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임슬기는 불을 약하게 줄이고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문주 씨, 도대체 어디 갔었어요? 아침에 전화했는데 왜 계속 안 받았어요?”육문주는 아직도 어제 입었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안색은 좋지 않았으며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어젯밤에 좀 일이 있었어요. 현정 씨는 안에 있어요?”“있어요.”육문주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말해 봐, 연다인!”“난 말이지 네가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게 제일 즐거워. 임슬기, 네가 미쳐버릴 정도로 무너지고 나면 정우도 너랑 이혼하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자연스럽게 정우의 아내가 되겠네?”임슬기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연다인,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경고하는데, 더는 함부로 굴지 마!”하지만 연다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도 참 한심해, 임슬기. 그렇게 소리만 질러대고 그 외엔 뭘 할 수 있는데?”“이 비겁한 년!”임슬기가 더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욕실 안에서
임슬기는 순간 멈춰 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김현정을 바라보며 물었다.“현정아, 무슨 일이야?”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몇 걸음 더 다가갔다.“슬기 언니... 제발 오지 마요!”김현정은 몸을 더 안으로 움츠리며 눈물범벅인 얼굴로 간절히 애원했다.“부탁이에요, 오지 마요... 제발...”김현정의 반응이 너무 격해지자 임슬기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알겠어. 안 갈게. 여기 이렇게 있을게. 괜찮지?”김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
‘허, 승윤아? 참 다정하게도 부르네.’임슬기는 취기에 휘청이며 배정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중얼거렸다.“너랑 있으면 마음이 좀 놓여. 고마워, 승윤아.”배정우는 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상대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라 불러도 소용없고 화를 낸다고 바뀔 것도 없었다.결국 그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 제대로 한 대 갈겨. 힘 좀 써서.”...다음 날.임슬기는 흐릿한 정신으로 깨어났다. 입안이 텁텁하고 목이 바짝 말랐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 말을 입에 올리자마자 진승윤은 바로 후회했다.너무 충동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만약...“좋아.”진승윤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임슬기가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좋아요. 진 변호사님께서 내가 몸 약한 것만 안 싫어한다면 말이죠.”진승윤은 어리둥절한 채 말을 잇지 못했고 임슬기는 그의 얼굴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지금 혹시 후회하는 거 아냐?”“아, 아니...”“나도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 근데 내가 죽고 나면 내 동생이 정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