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 씨, 말하지 마요!”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임슬기는 김현정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배정우는 임슬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이때 배정우가 임슬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폐암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깜짝 놀란 임슬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배정우를 바라봤다.‘정우 씨가 진짜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비웃고 있는 걸까?’“정우 씨...”“임슬기, 두 사람 연기 다 끝났어? 내가 또다시 속을 것 같아?”“배정우 씨, 내 말 모두 사실이에요. 슬기 언니는 지금 폐암 말기예요, 시간
“쓰레기 같은 자식! 넌 슬기 언니를 욕할 자격이 없어!”한마디 욕을 내뱉은 김현정은 배정우가 반응하기 전에 급히 임슬기를 데리고 도망쳤다.차에 탈 때까지 임슬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금 전 김현정이 사람들 앞에서 배정우를 때렸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쾌활하고 대담한 성격인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대담할 줄은 몰랐다.배정우가 체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데... 김현정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김현정이 걱정된 임슬기는 김현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현정 씨, 당장 명인시를 떠나요. 최대
차에 돌아오자마자 김현정이 임슬기의 어두운 얼굴을 보며 급히 물었다.“연다인이에요?”임슬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장난 전화예요.”김현정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물었다.“언니 얼굴이 이렇게 안 좋은데 분명...”임슬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현정 씨, 다쳤으니까 먼저 금빛 아파트로 데려다줄게요. 냉장고에 있는 사골을 끓여서 먹어요. 난 일이 좀 있어서 일 마치고 밥 먹으러 갈게요.”“슬기 언니, 또 나를 혼자 두고 가려는 거예요?”조금 전 연다인의 말이 떠오른 임슬기는 눈이
임슬기가 서류 봉투를 받으며 물었다.“이게 뭐예요?”“오정태의 부검 보고서예요.”‘부검 보고서?’눈이 휘둥그레진 임슬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승윤을 바라보았다.“시체를 도둑맞지 않았어요?”“경찰서에 보내기 전에 전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법의학자를 찾아가 부검을 했어요. 이 보고서는 그 법의학자 분이 작성한 거예요. 임슬기 씨가 무죄라는 증거이기도 하죠.”‘무죄’라는 두 글자에 임슬기는 마음속에 있던 큰 돌멩이가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오정태의 시체는 임슬기가 무죄임을 증명했지만 그녀는 오정태의 시체를 손에
‘왜 속였을까?’권민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권민도 자기 대표님이 아직 사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대표님, 마지막으로 사모님과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세요?”“왜, 내가 시간 같이 못 보내 줬을까 봐?”배정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담배를 끄고 말했다.“2년 전에 임슬기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데? 계속 나를 속이고 배신했어, 그리고 지금까지도 뉘우치지 않아!”“대표님, 지난 2년 사이 대표님과 연다인 씨의 스캔들이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어요. 이 세상에 어느 여자가 자
호텔.금방 씻은 황동혁은 온몸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아가씨, 살려주세요!”보아하니 황동혁도 임슬기를 알아본 모양이었다.옆에서 담요를 가져와 황동혁에게 던진 임슬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고개 들어.”황동혁은 순순히 고개를 들더니 온몸을 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아가씨, 진 변호사님, 살려주세요.”“사람을 알아는 보네? 누가 진 변호사를 들이받으라고 시켰어?”황동혁은 두려운 듯 입술을 깨물며 말하기를 망설였다.“말 안 해?”임슬기가 팔짱을 끼며 침착
차가 충돌하는 순간, 진승윤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몸을 돌려 임슬기를 끌어안았다.“조심해요!”굉음과 함께 차가 나무에 부딪혀 멈췄다.머리를 부딪친 임슬기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그녀의 눈을 가렸다.임슬기가 황동혁의 팔을 잡아당기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황동혁?! 황동혁?!”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황동혁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황동혁이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임슬기는 진승윤이 다쳤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천천히 기어가 황동혁을 흔들며 쉰 목소리로 울부
‘황동혁이 죽었다고?’미처 반응하지 못한 임슬기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을 들고 김현정을 꽉 잡았다.“다시 한번 말해 봐요. 뭐라고요?”“황동혁은... 죽었어요.”“그럴 리 없어요! 절대 그럴 리 없다고요!”임슬기는 울며 고개를 저었다.“나에게 거짓말하는 거죠?”김현정은 임슬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황동혁이 증인이라는 것, 그리고 황동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이제 황동혁 죽었으니 임슬기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김현정은 임슬기를 꼭 끌어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슬기 언니 미안해
주방에서 임슬기는 면을 삶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딴 데로 가 있었다.한편으로는 김현정의 상태가 걱정됐고 또 한편으로는 연다인이 다음에 무슨 짓을 벌일지 불안했다.생각이 많아지는 그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임슬기는 불을 약하게 줄이고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문주 씨, 도대체 어디 갔었어요? 아침에 전화했는데 왜 계속 안 받았어요?”육문주는 아직도 어제 입었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안색은 좋지 않았으며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어젯밤에 좀 일이 있었어요. 현정 씨는 안에 있어요?”“있어요.”육문주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말해 봐, 연다인!”“난 말이지 네가 무너지는 꼴을 보는 게 제일 즐거워. 임슬기, 네가 미쳐버릴 정도로 무너지고 나면 정우도 너랑 이혼하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자연스럽게 정우의 아내가 되겠네?”임슬기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연다인,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경고하는데, 더는 함부로 굴지 마!”하지만 연다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도 참 한심해, 임슬기. 그렇게 소리만 질러대고 그 외엔 뭘 할 수 있는데?”“이 비겁한 년!”임슬기가 더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욕실 안에서
임슬기는 순간 멈춰 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김현정을 바라보며 물었다.“현정아, 무슨 일이야?”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몇 걸음 더 다가갔다.“슬기 언니... 제발 오지 마요!”김현정은 몸을 더 안으로 움츠리며 눈물범벅인 얼굴로 간절히 애원했다.“부탁이에요, 오지 마요... 제발...”김현정의 반응이 너무 격해지자 임슬기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알겠어. 안 갈게. 여기 이렇게 있을게. 괜찮지?”김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임슬기는 김현정이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
‘허, 승윤아? 참 다정하게도 부르네.’임슬기는 취기에 휘청이며 배정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중얼거렸다.“너랑 있으면 마음이 좀 놓여. 고마워, 승윤아.”배정우는 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상대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라 불러도 소용없고 화를 낸다고 바뀔 것도 없었다.결국 그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 제대로 한 대 갈겨. 힘 좀 써서.”...다음 날.임슬기는 흐릿한 정신으로 깨어났다. 입안이 텁텁하고 목이 바짝 말랐다.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 말을 입에 올리자마자 진승윤은 바로 후회했다.너무 충동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만약...“좋아.”진승윤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임슬기가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좋아요. 진 변호사님께서 내가 몸 약한 것만 안 싫어한다면 말이죠.”진승윤은 어리둥절한 채 말을 잇지 못했고 임슬기는 그의 얼굴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지금 혹시 후회하는 거 아냐?”“아, 아니...”“나도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 근데 내가 죽고 나면 내 동생이 정우보
말이 끝나자마자 임슬기는 그의 손에 들린 맥주를 낚아채더니 고개를 젖혀 단숨에 들이켰다.“또 있어?”진승윤은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술 말이야. 너 아까부터 마시고 있었잖아?”임슬기는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왜 혼자 마셔?”진승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등으로 임슬기의 이마를 짚었다.정상 체온보다는 약간 높은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그제야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살아 있는 임슬기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슬기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아직 열나고 있잖아.
주민규를 돌려보낸 후 진승윤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이마를 찌푸린 채 침대에 누운 임슬기를 바라보았다.창백한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방금까지 울었던 얼굴이었다.이렇게나 쉽게 부서질 듯 연약해 보이는데, 배정우는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었을까.진승윤은 손을 뻗어 임슬기의 이마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이내 뜨거워진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슬기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거야. 연다인이 거기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배정우가 어떤 선택을 할지 뻔히 알
연다인은 임슬기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배정우의 품에 고개를 기대었다.“정우야, 나 슬기 밀지 않았어. 정말이야...”분수대를 벗어나자 배정우는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밀었는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연다인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껴안고 울먹였다.“내가 밀 이유가 뭐가 있겠어? 네 눈엔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야?”그러더니 몇 차례 기침을 했다.“내가 이렇게 몸이 약해진 것도, 다 누구 때문인데...”그 말을 들은 배정우는 조금은 부
진성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정우야, 난 널 돕고 있는 거야.”“아저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배정우는 그 말을 남기고 임슬기의 손을 이끌어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내가 분명 진승윤한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임슬기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웃었다.“승윤이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거예요.”“진성한은 네가 건드릴 만한 사람이 아니야.”“맞아요,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겠죠.”임슬기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도 마찬가지예요. 힘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