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한테 뭘 부탁해? 런웨이 보러 오라고?"그녀는 반농담으로 말했지만, 확실히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리사는 그녀를 탓하면서 쳐다보고 말했다. "너 시간이 된다면 당연히 런웨이를 보러 왔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 일 말고 다른 일이야.""뭔데?""나를 위해 향수 좀 만들어줘."그녀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너의 본업이잖아!”"……" 한소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난해! 네 아버지가 이 분야의 권위자이신데 나보고 향수를 만들어 달라고?”"어이,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근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권위자이고 이 업계에서 꽤나 유명하지만 나에 대해 잘 모르셔!"괴로운 얼굴로 말하면서 매우 고민하는 것 같았다.한소은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녀를 모른다고?!"이봐. 내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너 계속 웃을 거야?"리사는 몸매가 화끈해 보이지만 성격은 순수하고 귀여우며 때로는 어린아이 같다."아니, 아니!"한소은은 손사래를 치며 웃음을 참았다. "웃고 싶지 않아. 계속 말해봐. 그분이 왜 너를 모른다는 거야?""아빠가 나에게 만들어준 향수는 모두 달콤하고 어린애 스타일이야. 나는 이미 다 컸는데 아빠는몰라! 원래 내가 직접 국제 유명 브랜드 두 개를 사도 되지만, 우리가 이 업계에서 거의 다 뿌리는 거 알잖아. 서로 같은 걸 써서 어색해질까 봐 걱정돼. 나는 좀 특별한 걸 가지고 싶어!"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고 손등에 턱을 얹은 채 고개를 들고 한소은을 바라보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까 잘 부탁해!""음, 듣고보니 요구가 만만치 않은데."그녀는 당연히 리사를 놀리는 것이다. 사실 이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세계 유명 모델, 세계 톱스타 등은 유명한 조향사를 찾아 자신만의 전속 향수를 만든다.그들뿐만 아니라 일부 재벌 부인, 딸들도 모두 그렇게 한다. 그들에
그녀의 행동은 한소은의 웃음을 자아냈고 사실 이해가 된다. 자식이 아무리 커도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에 윌 선생님은 결코 자신의 딸을 위해 핫하고, 분방하고, 열정적인 향수를 만들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예쁜 딸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하지만 이미 다 자란 리사는 작은 반항심으로 자신이 다 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 달콤함을 원하지 않았고 어린아이의 미숙함이 가득한 향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충돌이 생긴 것이다."알았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다만…" 한소은은 멈추었다가 말했다. "최근에는 안 돼.""어?!"리사는 매우 실망했다. "최근에 안 된다고? 런웨이 올라갈 때 쓰고 싶었는데!"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요즘 정말 시간이 없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두 개나 있어. 모두 급한 거야. 그래서 조만간 도울 수 없어. 만약 기다려줄 수 있다면 이 바쁜 시기를 지나서 해볼 게. 늦을 것 같으면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는 자신이 요즘 정말 너무 바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아니. 난 다른 사람 싫어. 널 찾을 거야. 내가 널 믿는다니까. 네가 날 알아주는 거야!”리사는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늦으면 늦는 걸로.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네가 나를 위해 특별한 향을 만들어 주기를 바래. 나만의 향 말이야. 가격은 걱정 마. 분명 매우 공정할 거야! 그럼 일 끝나는 대로 도와줘!""그럼......알았어!”그녀가 이미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한소은은 오케이할 수밖에 없었다.말하는 동안 벌써 음식이 나왔다. 한소은은 요즘 입맛이 없어서 많이 시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리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야채 샐러드만 먹을 뿐, 음식에 유혹되지 않았다.프랑스에 있을 때 생각하면 그녀는 안 먹는게 없었는데 지금 와서 자신에게 이렇게 엄격하게 요구를 할 수 있을까?"예전에 네가 케이크도 먹고 스테이크도 먹으면서 거절하는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지금은…… 자신에게 이렇게 엄격해?
"임상언이 걔에게 돈을 줬는데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잘 몰라. 또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해준은 포기했어."여기까지 말하고 리사는 조금 이상해하면서 말했다."그런데 나중에 나에게 한마디 해줬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뭐라고 했는데?""다른 사람의 새엄마가 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으니까 잘 생각해 봐. 걔가 이렇게 말했어. 임상언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대충 이런 뜻이야!"자세히 기억해봤지만 리사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대략적인 뜻을 다시 말했다.한소은도 이해하지 못했다. "너…. 잘 생각해야 한다고?""나 아니고 너!"리사는 그녀의 말을 바로잡아주며 말했다."나?!"한소은은 정말 놀랐다."맞아. 걔가 말한 게 바로 너야. 그래서 내가 이상했거든. 너는 걔랑 딱 한 번 만났잖아. 왜 걔가그렇게 너를 겨냥했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 말의 뜻은 네가 남윤의 새엄마가 된다는 거고 네가 임상언과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리사가 이상하게 물었다.한소은:"…내가 어떻게 알아!"만약 리사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 사람을 잊을 뻔했을 것이고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게다가 프랑스를 떠난 후, 리사와 윌 선생님 같은 깊이 접촉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지도 모르는 사람이며 모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그래서 이상한 거야."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상하네! 그런데 그 여자는 생각이 좀 이상하긴 해.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이용해서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협박하는 일도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거든.""어, 그건 그렇네!"한숨을 내쉬자 리사는 그저 이상해서 한소은에게 이 말을 전한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한소은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녀와 임상언은 어떻게 가능해?"참, 너 남자친구랑 어떻게 됐어? 지금도 잘 지내?"얘기하는 김에 물었다.김서진을 생각하면 요즘 그는 자신에게 정말 세심하고 따뜻했다. 그녀의 감정을 배려해서인지 그녀와 함
리사와 작별한 후 한소은은 소성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가게에 가서 구운 과자와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사서 보온백에 담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 따뜻했다.김서진은 거실에 앉아 자료를 보고 있었고 긴 다리는 마음대로 겹쳐져 있었고 한 손은 페이지를 넘기고 다른 한 손은 컵을 쥐고 있었지만 단지 컵이 이미 비었을 뿐이다.그는 머리를 약간 숙이고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늘어져 마침 무테 안경 위에 내려앉아 우아한 멋을 조금 더했다.사실 김서진은 라식이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난시가 있어서 평소에는 별 영향이 없지만 자료를 보고 문서를 볼 때 그의 무테 안경을 꺼내 쓴다.안경 쓴 횟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얼굴이 잘생겨서인지, 어떻게 해도 멋있어 보였다. 아무튼 한소은은 그의 안경 쓴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 연애를 하게 된 것 같다.아마 인기척을 들었는지 김서진은 머리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뜻한 빛 아래서 그의 눈빛이 옅어졌고 약간의 부드러움을 가지고 그녀를 향해 쏟아부었다. 그 순간 한소은은 자신의 마음이 다시 빠지게 된 것을 느꼈다.아이고, 요사스러운 놈!"왔어."그는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안경을 벗은 후 렌즈가 없어지자 그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고 또 다른 느낌으로 바뀌었다.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더니, 그의 손에 비운 컵을 바로 빼앗았다. "물도 없는데 자기가 조금 더 받아올 줄도 모르고 왜 이렇게 자신을 돌볼 줄도 몰라요?”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녀는 보온백을 열어 따끈따끈한 커피를 그의 손에 넣어주었다. "여기! 이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맛인 걸로 기억하는데."김서진은 가볍게 웃으며 자료를 한쪽에 놓고 커피 뚜껑을 열어 보더니 체면을 세워주며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 이거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그건 당연하지! 내가 당신 아내인데 당신이 좋아하는 맛이 뭔지 모를까봐?"그녀는 매우 대담해 보였지만, 사실 얼굴이 매우 뜨거웠다.물론 그와 오랜 시
곁눈질하며 커피잔을 내려놓은 김서진은 나른하게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오늘 이렇게 친절하시는 걸 보니까 나한테 부탁할 일이라도 있나요?""......" 한소은은 어이없어서 눈을 부릅떴다. "아니에요!""요즘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거 알아요. 당신도 고생 많았어요! 나 때문에 많은 일을 집으로 가져와서 하는데 내가 디저트를 사서 당신을 위로하는 게 당연한 일이죠."그녀는 속마음을 직접 말했다.김서진의 눈에는 웃음기가 넘쳐흘렀다. "그랬구나?"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그녀의 가느다란 목, 균형 잡힌 팔, 그리고 가느다란 손목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늘어졌다.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그녀의 손바닥을 살짝 들여다보며 긁었다.간지러워서 손을 움츠리며 한소은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뭐하는 거예요!”"사실…" 천천히 말했다. "정말 나를 위로하고 싶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무엇을 사러 갈 필요가 없어요."“......”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소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사실 아까 그의 동작이 빨라서 피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거부하지 않았고 또 그 사람이니까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그에게 이렇게 억압당해도 마음이 안정되며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기꺼이 들어주겠습니다!!!”김서진은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하고 손가락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끼여 그녀와 깍지를 끼었다.그의 가장 사랑스러운 아내이다!사실 그동안 기분에 업무까지 바빠서 정말 오랫동안 스킨십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1분 1초도 떨어지기 싫었다."김서진….""네?"“우리 결혼해요.”그녀가 말했다.......김서진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입술을 핥고 덧붙였다. "내 말은 우리 그냥 결혼식을 올리자구요."약혼 따위는 모두 생략하면 되고 그런 쓸데없는 절차를 밟을 필요 없이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함께 있는다!“......”그가 대답하지 않자 한소은은 망설
결혼에 대해서 두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되자 김서진은 기쁜 마음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이전의 그 보도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어버렸다.소성 사람들도 모두 환아 대표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약혼녀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진이 선명하지 않았고,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게다가 김서진이 여자를 반쯤 가리고 서 있어서 옆모습만 희미하게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여자가 누구인지 추측할 뿐이었다.이 날 허우연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비서가 그녀에게 봉투를 건넸다. “누군가가 보냈습니다.”위에 쓰여있는 글자를 보자마자 그녀는 속으로 누가 보낸지 알아챘다. “알겠어요. 저는 오늘 따로 일이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먼저 퇴근하세요.”“네.” 비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의 물건을 정리한 후 먼저 떠났다.그 봉투 안에는 그녀가 원하는 자료가 들어 있었다. 사설탐정을 고용해 조사했는데, 신문과 잡지 안에 사진이 실려있었기에 흐릿하더라도 그녀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그날, 윤설아를 만난 뒤 그녀는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윤설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지금 포기한다면 지난 몇 년 동안 그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그녀의 젊은 시절, 모든 꿈과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절대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서둘러 가방을 열어보았고 그 안에 있는 사진과 간단한 소개, 그리고 다른 몇 장의 사진을 보았다.당연히 가장 먼저 본 것은 사진이었다. 측면, 정면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단지...실눈을 뜨니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하다. 기본적으로 평범한, 길거리에 흔하게 보이는 눈에 띄지 않는 타입, 웃는 모습이 이쁜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그녀는 잠시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사진 속의 얼굴을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뒤 다른 자료를 계속 보
창가에 앉아 아래층을 바라보는 오이연은 마음이 막막했다.잠시 서한이 부재중이었기에 그녀는 내려가서 생필품을 사러 갔다. 그녀는 이제야 여기 잠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분명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최근 며칠 동안 서한은 계속 그녀와 함께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녀가 무엇을 사러 가든지, 아니면 나가서 음식을 먹을 때도 그는 항상 그녀를 따라다녔고 그의 말은 많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그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익숙해졌다.그가 좋은 마음이라는 건 알지만 그녀는 헛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엄마가 돌아가신 것은 정말 슬프고 괴로웠고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한다.아직까지 그 화재는 사고로 결정되었고 정부의 보상과 보조금은 모두 지급되었다. 하지만 얼마를 줘도 엄마의 목숨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심지어 자신을 미워했다. 만약 애초에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옮겼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이 세상에 후회를 되돌릴 수 있는 약은 없었고 한소은도 그녀에게 미래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녀도 미래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마 시간이 걸릴 것이다.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가를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한동안 의기소침해있는 상태였다. 조현아가 말하기를 한소은은 요즘 너무 바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전화를 걸어 재촉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소은은 그녀에게 푹 쉬고 몸조리 잘하라고 해주었다.그녀 자신도 돌아가 한소은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초인종 소리가 나서 오이연이 고개를 돌려 문쪽을 쳐다봤다. 서한이 열쇠를 안가지고 나갔나?일어나 문쪽으로 향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누가 이렇게 급하게 성질을 부리는 거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 재촉해 문을 열었다.“당신은?” 잠시 멍하니 문밖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오이연은 약간의 의혹을 품었다. 그녀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예요?” 오이연이 물었다.허우연은 웃으며 소파에 가서 앉았다. 다리를 꼰 채 턱을 치켜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기와 자존심을 부리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알 필요도 없어요. 전 그냥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왔을 뿐이에요.”“지금 봤는데 이 정도라니!” 허우연은 그녀를 위아래로 훓으며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오이연: “...”뭐지?! 왜 들으면 들을수록 모르겠는 거지!“솔직히 말해서 당신 같은 여자 많이 봐왔어요. 재벌가 사람들 만나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일리는 있지만 잘못이라면 당신은 그릇이 너무 작다는 거예요. 그에게 시집간다고 해서 당신 운명이 바뀔 것 같아요? 김 씨 집안이 어떤 가문인지 알아요? 당신 같은 여자는 간다고 해도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무서운 곳이에요. 호강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세요!” 그녀가 조롱하듯 말했다.이런 작은 가문의 여자들은 겁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무서워할 것이다. 먼저 그녀를 재벌가 마님의 꿈에서 빠져나오게 한 다음에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 저런 여자를 내쫓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허우연은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그렇다. 그 사진은 김서진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찍은 사진이었고 당시 카메라 각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경호원까지 있어서 급하게 한 장 찍고 그만두었다.한소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뒷모습이었고 김서진과 오이연은 옆모습이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뒷모습인 한소은을 지나친 채 김서진과 함께 있는 오이연을 그 여자라고 착각한 것이다.이 소문은 당사자들 모두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이렇게 퍼진 것이다.원래는 모두 흐릿한 옆모습뿐이었고, 당사자들도 아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들 가벼운 소문으로 여겼지만 허우연만이 이 일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더 진지하게 조사하러 다녔다.처음부터 잘못 짚었기에 조사해도 계속 틀린 결과만 나올 것이다.그녀의 말은 오이연으로 하여금 그녀가 찾는 사람이 자신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