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원은 어이없어 그냥 웃었다. "내가 당신을 아끼는 걸 안다면 고집부리지 말아요? 어쨌든 그 사람이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이런 질투의 말을 들으면 그 어느 여자든 좋아한다. 강시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품으로 깊이 안겼다. "지금 질투하는 거네요. 정말 오랫동안 당신이 나를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정말 기뻐요!""그럼 이번에 더더욱 로젠 씨와 같이 가야겠네요." 그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감히!" 노형원 팔을 벌려 그녀의 목을 감싸고 사납게 말했다. "감히 그 남자랑 같이 도망친다면 내가 당신 다리를 부러뜨릴 거예요. 믿든 안 믿든!""아이고 무서워라!" 그녀는 메롱 하면서 뭔가 생각이 난 듯 쑥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걱정 마요. 설사 그 사람이 정말 나한테 마음이 있더라도 어떻게 되지 않아요. 특히…지금.”"무슨 뜻이에요?" 노형원은 이해하지 못했다."임…."처음에 노형원은 무슨 뜻인지 반응하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리자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더 주면서 감격의 목소리와 함께 말했다. "임신했어요? 당신 임신했어요?! 애가 생긴 거예요? 내 거예요?!"기뻐서 날뛰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 같았다. 강시유는 약간 성내면서 그를 살짝 쳤다. "그거 말이라고 해요! 당신 애 아니면 누구 애겠어요!""그럼. 그렇지. 내가 아빠가 되네, 내가 아들 생겼네!" 그는 마치 아이를 만지고 있는 것처럼 기뻐했다."움직이지 말아요. 가능하다는 거예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확실하지 않다고요?"강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리 기간이 보름이나 지났는데 안 오고 또 요즘 자꾸 메스꺼워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확인해 봤는데 임신 맞는 거 같아요.”"임신이면 임신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뭐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병원에 가서 검사받지 않았어요?" 이런 얘기는 남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아직 이른데 병원에 가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들었어요.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왔는데 선명하지 않지만
강시유는 허리를 비틀며 말했다. "암튼 날 못 믿는 거잖아요!""그게 아니라, 가고 싶으면 가요. 이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해요."더 이상 그녀에게 어리광 부릴 틈을 주지 않는 것이 노형원의 마지막 한계이다.사실 마음속으로 그도 가고 싶었다. 이번에 전문가 수준인 조향사 몇 분이 계신다고 들었는데, 행사 참석 외에도 인재를 발굴하고 싶었다.그는 한소은의 일로 크게 곤두박질치고 나서 특히 인재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반드시 인재를 좀 더 많이 유치해야 한 사람이라도 빠질 경우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끔찍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이번에 오일 문제가 생겨서 지금까지 애쓰고 있는데 더 이상 실수하면 안 되므로 그가 직접 지켜봐야 해서 떠날 수 없다.강시유가 가도 나쁘지 않으며 이 참에 견문도 넓히고 나중에 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한소은보다 경력과 스펙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충성하고, 이제 그의 아이까지 가졌으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아이를 생각하면 그녀의 아랫배를 바라보게 되는데 여전히 평평하지만 이미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니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다.그의 뿌듯한 기분과 달리 강시유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그녀는 놀러 가는 건데 뒤에 꼬리가 따라다니면 어찌 된 일인가! 게다가 로젠 씨는 어떻게 생각할까!그만하자. 지금은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니, 그때그때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한소은이 출장 가는 날, 누가 볼까 봐 김서진은 그녀를 배웅하지 않았고, 그녀는 심지어 집에 있는 기사가 배웅하는 것도 거절하고 혼자서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타고 갔다.떠나기 전 그녀는 은근히 투덜대는 누군가를 달래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진한 포옹을 하며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잘 다녀올게요. 보고 싶을 거예요. 사고 치지 말아요!""당신도요." 김서진은 그녀를 껴안고 복수한다 치고 그녀의 허리를 살짝 쥐었다."어이…" 이 남자, 진짜!그녀가 차에 올라 공항으로 달려가자, 김서진은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차가
비행기, 탑 클래스 좌석에 앉은 강시유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강시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코너미석과는 다른 럭셔리함, 이 모든 건 옆에 앉은 로젠 덕분이다.노형원과 함께 출장을 떠날 때도 비행기를 타는 일은 많았지만 탑 클래스 좌석에 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노형원은 아직 회사가 자리를 잡지 않아 아낄 수 있는 건 전부 아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강시유도 그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형원의 회사도 성공할 것이라고, 그러면 부잣집 사모님들처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탑 클라서 좌석에 앉는 순간, 강시유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왜 굳이 기다려야 하지? 이미 모든 걸 가진 남자도 있잖아?”“시혁 씨, 이번 품감회에 함께 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으니 혹시라도 실수한 게 있다면 바로 지적해 주세요.”강시유가 싱긋 미소 지었다.“시유 씨는 아주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아요.”강시유를 훑어보던 로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배우는 속도가 꽤 빠르더구나.”“그래요?”강시유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더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시혁 씨한테서 더 많이 배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머리카락을 넘기는 강시유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로젠이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대답했다.“분명 있을 겁니다.”“그럼...”강시유가 뭔가 더 말하려는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강시유의 눈이 커다래졌다.한소은?! 쟤가 여긴 왜 온 거야!한편 한소은과 조현아는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탑 클래스 좌석 구역으로 이동한 것이었다.비행기에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워낙 중요한 출장이라 회사 복지 차원에서 특별히 좌석을 탑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말이다.그냥 단순히 기뻐하는 조현아와 달리 한소은은 의아한 마음이 더 컸다.정말 단순히 차 대표가 내린 결정인 걸까? 아니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좌석에 앉은 조현아가 싱긋 웃었다.“이번 비행은 지루하지 않겠는데요?”“그럴 리가요.”한소은이 담담하게 말하더니 담요를 덮었다.“저쪽에서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말을 마친 한소은은 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지금 그녀는 출장 중이다. 강시유와 나쁜 감정으로 얽히긴 했지만 절대 사적인 일로 회사 일정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재밌네요.”조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강시유 씨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건가요?”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그런데 말이에요. 강시유 씨 옆에 앉은 외국인 왠지 낯이 익은데요?”조현아가 다시 한번 그쪽을 힐끗 바라보았다.딱 봐도 노형원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강시유와 노형원은 어딜 가든 꼭 붙어 다니는 닭살 커플 아니었나?물론 한소은도 이를 발견했지만 외국인의 정체가 누군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소란 없이 이번 비행을 마치길 바랄 뿐이었다.“팀장님, 전 일단 좀 자야겠어요. 품감회는 저녁이잖아요?”말을 마친 한소은은 두 눈을 감아버렸다.하, 결국 무시하는 쪽을 택하겠다?싱긋 웃던 조현아도 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다. 간만에 누리는 회사 복지인만큼 뽕을 뽑아야겠지.한편, 강시유는 안절부절 못하며 한소은 쪽 좌석을 계속 돌아보았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잠든듯한 모습에 강시유의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처음 타보는 톱 클래스 좌석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있었는데 한소은 저 계집애 때문에...게다가 그녀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잠까지 청하는 걸 보니 더 천불이 일었다. 며칠 동안 그녀와 노형원은 오일 제조법을 알아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오늘 노형원이 품감회에 동행하지 않은 것도 오일 원료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이렇게 큰 사고를 쳐놓고 속 편하게 잠이나 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주먹에 힘을 주려던
비행기가 착륙하고 승객들이 하나 둘 공항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노형원은 강시유를 위해 5성급 호텔은 물론 고급 차량까지 불러주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에 타려던 강시유는 한소은이 어떤 차를 타는지 궁금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비록 신생은 환아라는 대기업을 등에 업고 있지만 결국 소규모 지사일 뿐, 단순히 호사 규모만 놓고 본다면 시원 웨이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톱 클래스 티켓? 그거야 뭐 우연이겠지.“고객님?”문을 연 강시유가 차에 타지 않자 기사가 고개를 갸웃했다.“아, 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시유가 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한소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여유롭게 트렁크를 끌고 나온 한소은과 조현아의 앞에 선 차는...롤스로이스였다!강시유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강시유도 롤스로이스 로고는 알고 있었다. 무슨 시리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롤스로이스인 이상 분명 억대 이상일 것이다.아니야. 그냥 우연히 앞에 선 거겠지. 저 차에 탈 리가 없어!손잡이를 쥔 강시유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에서 내린 기사가 트렁크를 받아 차에 싣고 차 문까지 열어주는 걸 본 순간, 일말의 희망마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그렇게 한소은과 조현아가 탄 차는 여유롭게 그녀의 앞을 지났다.왜! 한소은 저딴 계집애가 뭐라고 롤스로이스까지 불러준 거야! 왜!강시유는 고개를 돌려 벤츠 로고를 힐끗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이 정도도 으쓱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꿀리는 기분이었다.“저쪽은 벌써 갔어요. 얼른 타요.”이미 차에 앉은 로젠이 덤덤하게 말했다.그제야 강시유는 차에 몸을 실었다. 꼭 깨문 입술이 금방이라도 피를 뿜어낼 듯 빨갛게 부어올랐다.강시유에게 한소은은 마치 불운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 어디서든 한소은만 나타나면 나쁜 일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강시유는 로젠을 힐끗 바라보았다. 말투를 보아하니 그녀와 한소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는 듯하고 비행기 안에서 그리
돈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 부자들은 어딜 가나 이런 대접을 받을 거란 생각에 질투심이 밀려왔다.로젠은 젠틀하게 그녀를 먼저 호텔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강시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쾌적한 공간, 킹사이즈 침대, 냉장고, 전자레인지까지 일반 호텔과 비교하면 훨씬 좋은 조건이었지만 실망감은 감출 수 없었다.“시유 씨, 짐은 여기 둘게요. 그럼 푹 쉬어요.”로젠이 강시유의 어깨를 두드렸다.“잠깐만요!”로젠이 방문을 닫으려던 순간, 강시유가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잠깐만요!”그녀의 목소리에 로젠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그게...”한참을 망설이던 강시유가 결국 입을 열었다.“아, 그게... 아직 별로 안 졸려서요. 그러니까... 로젠 씨 방 좀 구경해 봐도 될까요?”로젠은 아무런 말 없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왠지 불편한 기분에 강시유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물론이죠!”그렇게 강시유는 로젠과 함께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점점 올라가는 걸 바라보는 강시유는 마음은 왠지 콩닥거리기 시작했다.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진짜 부자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젠이 그녀를 돌아보았다.“시유 씨?”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시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도착... 했네요.”로젠은 싱긋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나섰고 그녀도 그의 뒤를 따랐다. 역시 스위트룸은 복도부터 엘리베이터가 달랐다. 그리고 로젠이 방문을 연 순간, 강시유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도시 전체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창문,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푸른 숲...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그리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온 강시유는 그제야 이곳이 스위트룸의 거실일 뿐임을 눈치챘다.하지만 거실만 봐도 강시유의 방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고급스러운 재질 소파, 최고급 브랜드의 정수기와 커피 머신 온갖 비싼
순간, 강시유의 몸이 어색하게 굳었다. 반사적으로 로젠의 품을 벗어나려 했지만 귓가에 로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마음에 들어요?”어색한 한국어, 이국적인 얼굴, 화려한 호텔방, 로젠은 그녀와 다른 세계에 다른 사람이었다. 잔뜩 굳은 채 로젠의 품에 안긴 강시유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네.”“이것들... 가지고 싶지 않아요?”로젠이 다시 물었다.잠깐 고민하던 강시유는 방금 전보다 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물, 물론 가지고 싶죠!”이것은 그녀가 꿈에 그리던 상류층의 삶이 바로 눈앞에 있다. 잘 사는 남자를 만나 평생 먹고 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삶이 보장된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그녀가 재벌 2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0에 가까웠다. 우정을 배신하면서까지 유혹한 노형원마저도 일개 스타트업 회사 대표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노형원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언젠가 노형원과 시원 웨이브가 성공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과연 그녀의 바람대로 시원 웨이브는 몇 년간 승승장구했고 업계에서 나름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비록 대외적으로 노형원은 여전히 한소은의 남자친구였지만 진작 그녀에게 넘어온 터라 노형원과의 결혼은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다. 모든 게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표절 사건부터 오일 제조법 위기까지 그녀가 쌓아온 모래성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녀가 금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던 시원 웨이브는 제품 원료 하나 때문에 근본이 흔들릴 정도로 연약했다. 중소기업은 어디까지나 중소기업 대기업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그리고 그녀의 인생을 바꿔줄 거라 믿었던 남자 노형원은 이러한 사태들을 해결함에 있어 비굴하게 한소은에게 부탁하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무능한 남자의 미래라...상상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암울했다.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강시유가 배운 게 하나 있었다.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 생각했지만 진짜 상류층,
너무나 쉽게 돌아서는 로젠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건 강시유 쪽이었다.로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냉장고 쪽으로 다가가더니 캔맥주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시유 씨,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네요.”고개를 젓던 로젠이 말을 이어갔다.“난 시유 씨가...”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 눈동자를 굴리던 로젠이 어깨를 으쓱했다.“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네요.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대로 즐겁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강시유 씨가 원하는 걸 마침 내가 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걸 마침 강시유 씨가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요?”엄밀히 말하면 강시유에게 차인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로젠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여유로움에 강시유는 더 비참한 기분이 밀려들었다.“아,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 거절의 뜻을 밝힌 여성을 힘으로 굴복시킬 생각은 없으니까요.”고개를 끄덕이던 로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이만 나가줄래요? 쉬고 싶어서요.”대놓고 나가라고 눈치를 주는 로젠의 모습에 강시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로젠은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았고 젠틀한 태도로 일관했으니 화를 내려 해도 명분이 없었다.게다가 방금 전 이미 거절의 뜻을 밝혔으니 이제 와서 말을 돌리는 것도 꽤 쪽팔린 일이었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푹 쉬세요.”결국 뾰족한 수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방문을 나서려던 그때, 로젠이 다시 입을 열었다.“시유 씨!”강시유가 발걸음을 멈추었다.“앞으로 여기서 일주일 동안 있어야 하잖아요? 그 동안 천천히 고민해 봐요.”맥주캔을 든 로젠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네...”강시유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방을 나섰다.방에 혼자 남겨진 로젠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젠가 강시유가 넘어오게 될 거란 걸 알고 있 듯이 말이다.한편, 강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