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원은 로젠을 호텔로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리러 오기까지 약속하고 그제야 호텔을 떠났다.둘만 있을 때, 강시유는 궁금했던 모든 질문을 노형원에게 던졌다. "형원씨, 이 로젠씨는 도대체 누구인데요!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나요?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우리를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거 같던데 굳이 이렇게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어요? 업계 최고라니, 왜 들어본 적이 없죠?"저 사람 마중 나가려고 나를 하루 동안 끌고 다녔는데 저 사람은 여기 와서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그가 정말 실력이 있는지 아닌지를 보고 판단해야죠. 만약 사기꾼이라 하면요?”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로젠의 태도 때문에 많이 불쾌하게 느껴졌다."사기꾼은 아닐 테니 안심해요! 저 사람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도 여러 인맥을 동원해서 성사된 거예요."핸들에 두 손을 얹고, 이제서야 노형원은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아직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사람은 왔으니 착오가 없을 것이다.어쨌든 한소은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계집애에 불과하다. 그녀가 무엇을 알겠는가, 어떻게 이 전문가와 같을 수 있는가, 이 정도 수작은 남의 눈에는 전혀 아무 일도 아닐 거다!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강시유는 문득 그전에 하다 못 한 문제를 떠올렸다. "참, 당신이 말한 그 요 여사님, 혹시… 당신 어머님이세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떠보았다.노형원은 잠깐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노형원의 어머니 요영 여사는 수년 전에 재혼했고, 의붓아버지 집안이 명성이 자자해서 그의 어머니도 시집가는 데 많이 애를 썼다.재벌집 부인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고 수단도 있어야 하며 다른 부분에서도 물론 요구가 까다롭다.애초에 요영은 최고 여배우였지만, 남자 집안에서 싫어해서 은퇴했고, 의붓아들이 된 노형원을 더더욱 곁에 둘 수 없었다.그 후에 오랫동안 노형원은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생부의 성을 따랐으며 공공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노형원은 의외였지만 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로젠이 온 힘을 다해 회사가 위기에서 벗어나도록…전화위복이 되었으면 좋겠다!저녁이 되어서 로젠을 데리러 갔을 때 강시유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전에는 이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니면 진짜 능력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노형원으로부터 그의 어머니의 소개를 받아 도와준다는 얘기 듣고 이제 확신이 드는 것 같았다.요 여사님은 누구이실까, 서울의 진짜 상류사회에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과 활동하는 분야에서 아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아닐 테니 강시유는 로젠이라는 사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었다."로젠 씨, 저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강시유는 먼저 그에게 술을 따라주러 갔고, 그녀는 버건디 스타일의 작은 톱 드레스를 입고 와인병 속의 레드와인과 비슷한 컬러인 분위기를 보였다.두 사람의 극진한 서비스에도 로젠은 눈꺼풀만 치켜들었다. "요 여사에게 신세 진 적이 있는데 약속했거든요. 이번에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네, 네!” 노형원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로젠 씨에게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강시유를 힐끗 쳐다보았다.눈길이 그녀의 이마에서 천천히 내려와 코끝, 입술, 턱으로…노형원: "…."그는 갑자기 기분이 별로였지만 체면 때문에 그리고 부탁한 일도 있고 해서 젓가락만 쥐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도 조향사에요?" 로젠이 물었다.강시유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우리가 같은 업종이네요! 하지만 저는 로젠씨와 비교할 수 없어요. 당신은 대가이고 저는 단지 초년생뿐이에요.!"그녀는 함께 웃어주며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아주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수상도 많이 하고 유명한 향수 몇 개 만들어냈잖아요?” 그는 술잔을 들고 전혀 대수롭지 않는 모습이었다.강시유는 그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노형원을 바
"네?" 로젠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로젠 씨도 아시다시피 조향에 있어서 원자재 사용에 생기는 약간의 차이, 또 분량에 따라 최종 결과가 다르거든요. 한소은은 레시피에 손을 댔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조수에게 시켜 레시피를 몰래 바꾸게 했고, 거기에 제가 요즘 몸이 좋지 않아 감기가 걸렸는데 그 틈을 타게 된 거예요. 부득이하게 로젠 씨에게 폐를 끼치게 됐어요." 그녀는 말할 때 눈을 깔며 흐느껴 울었다.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정말 마음이 아프게 할 정도였다.로젠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말을 얼마나 믿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노형원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맞아요! 로젠 씨는 모르시겠지만 요즘 강시유 씨가 회사 일 때문에 너무 고생이에요. 그래서 바쁘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병이 났어요. 한소은은 바로 이 기회를 노리고 손을 댄 거죠. 요즘 공장 주문이 많은데 이것 때문에 납품하지 못하면 우리 회사는 정말 위태로워져요!""그래요. 우리 실험실로 가봅시다!" 그는 입을 닦고 나서야 끝내 말을 꺼냈다.이 말에 두 사람은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기왕 약속한 일이니 희망이 있다는 뜻인데, 방금 그의 태도는 정말 갑자기 손을 떼겠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일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노형원은 바로 일어나서 계산을 하고 운전까지 해서 실험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며칠 동안, 실험실 직원들은 거의 다 그곳에서 먹고살다시피 했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정말 너무 까다로워서 어쩔 수 없었다. 재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했더라도 사용량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나오는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이 향에 대한 미세한 차이는 보통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향수를 오래 사용해온 고객들은 매우 예민하다.일단 착오가 생기면, 스스로 자신의 브랜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시원 웨이브라는 브랜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망가
로젠은 겉으로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자 가까이서 에센셜 오일의 냄새를 맡으며 눈썹을 찡그렸다가 다시 레시피 재료를 비비며 몇 번 훑어보고, 그제야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꼼수!""그럼 로젠 씨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아시는 거예요?"비록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노형원은 들렸고 흥분하여 추궁했다.“조정이요? 아니, 조정할 필요 없어요. 왜냐면...이 레시피가 아니니까요." 그가 손을 흔들며 손가락의 힘을 빼자 그 레시피가 바닥으로 날려 떨어졌다."이 레시피가 아니라고요?!"노형원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놀랐다.“말도 안 돼요! 우리가 여러 번 해봤는데 향은 아주 비슷했고 미세한 차이밖에 안 났는데 만약 이 레시피가 아니라면 어떻게 향이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어요.”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의혹을 제기했다.이 사람은 노형원 대표님이 데려온 사람이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결론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로젠은 경멸하듯 웃었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그는 설명조차 무시하고, 또한 자신만만했다!"노대표님, 그럴 리가요. 우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테스트해 봤습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 레시피는 확실히 한 가지 재료만 바꿨습니다. 저희가 한 번 더 해볼 테니까 금방 결과가 나올 겁니다.""……" 양쪽이 각자 자기주장을 고집해 노형원도 순간 어리둥절했다.설마 로젠이 틀린 걸까?"이렇게 긴 시간을 줬는데 결과가 나오려면 다시 한번 더 테스트해 봐야 된다고? 역시 쓸모없는 놈들이야. 아무리 긴 시간을 줘도 쓸모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로젠의 말은 전혀 체면 세워주지 않았으며 오만한 기세로 그들을 까보았다.그의 말은 모두를 화나게 하는 데 성공했고, 다들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뭐라고요?!""아이……." 노형원은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다들 화내지 말아요. 지금 관건은 문제의 소재를 찾아내는 거예요. 로젠씨든 여러분이든 오일 레시피를 그전과 똑같이 만드
노형원 쪽에서는 서둘러 에센셜 오일 문제를 찾고 있었다. 그는 바빠서 한소은과의 소송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이때 한소은은 이미 새로운 업무 일정을 시작했다.그전에 난리가 났던 것과 비교하면, 시원 웨이브는 조용하게 소송을 취하하여 구경꾼들은 숨을 죽이고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잠잠해져서 매우 실망해 했다.논란은 계속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시원 웨이브가 이치에 맞지 않아 고소를 취하한 것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시원 웨이브가 너그럽게 그녀를 봐준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의혹에 한소은은 SNS에 한마디만 남겼다. “깨끗한 자는 깨끗하고 더러운 자는 더러우니 저는 신경 안 씁니다.”이 짧고 명백한 한마디에 그녀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논란에 대해 한소은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스타도 아니고 팬클럽 운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맡은 일에만 집중하고,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한소은씨, 요즘 집에 무슨 일 있어요?"아침 일찍 조현아는 그녀를 사무실로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니요. 괜찮은데요!” 처음에 한소은은 멍해져서 그녀가 갑자기 왜 집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조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아요! 집에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요. 당신을 데리고 출장 갈 거예요."“출장요? 어디 가는데요?" 출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출장을 갈 수 있다고?“진해요.” 그녀는 초대장을 내밀었다. “거기서 향수 품평회가 열리는데 그쪽 지리적 환경도 특수하고 천연 향신료가 많아 소재를 수집할 수 있어요.”한소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물론 가고 싶지만, 결국 며칠을 떠나야 하니 김서진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한소은, 한소은씨?" 대답이 없으니까 조현아는 그를 여러 번 불렀다. "괜찮아요? 가기 싫어요?""아니에요." 한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좋은 기회를 당연히 놓치고 싶지 않죠.
그녀는 여태까지 김서진에게 말한 적이 없었지만 자신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김서진과 같은 사람들은 분명 주변에 많은 하인들이 둘러싸고 있을 것이고, 집에도 반드시 오가는 손님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남달랐다.가끔 청소하러 온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빼고는 일절 고용하지 않아 집안이 유난히 조용하며, 요리도 직접 하고,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드는 반면 방해받지 않는 느낌을 좋아한다.과일차는 알콜램프에 천천히 끓이고, 옆에 있는 아담한 디저트 접시에 몇 개의 과자가 있다. 김서진은 그녀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단호하게 허락하지 않아 그녀는 이 생각을 버리고 여기에 얌전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앞에 놓인 티 테이블에는 7~8병의 향수가 펼쳐져 있으며, 각양각색의 작은 병들이 모두 최근 출시된 신제품이다.맑은 생수 한 잔과 티슈, 민트를 준비해 놓고 잠시나마 가만히 앉아 있었다.최근에 노형원과 얽히고설킨 탓인지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고 너무 들떠 있어서 당연히 영감도 사라지고, 신제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사라졌다.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며 에너지를 소모할수록 허전해지고 회복이 안 되면 원래 있던 에너지도 금방 소진된다.조현아가 만들어 준 이번 출장 기회는 아주 좋았으며 마침 지방에 내려가서 구경도 하고, 어쩌면 새로운 창작 영감을 얻을 수도 있겠다.천천히 눈을 뜨면서 앞에 있는 작은 병들을 보니 모양이 매우 귀엽게 보였다. 그녀는 손이 가는 대로 핑크색병을 손에 들고 가까이 했는데 병뚜껑을 열기도 전에 이미 흘러나오는 향을 맡을 수 있었고 그 향은 매우 진하고 약간 코를 찌를 정도로 진했다.갑자기 뚜껑을 열 의욕을 잃고 다시 내려놓았다.이 병들은 모두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작은 가게의 무명 브랜드이지만 꼭 명품 브랜드로만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며 오히려 이름 없는 작은 브랜드들이 생각 밖의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 줄 수도 있다.향수 병을 내려놓았지만 손가락에 이미 향이 묻
말이 신제품이지 여전히 원래 레시피 그대로, 기껏해야 성분 비율에 약간의 조정을 한 것인데, 창의가 없고 매우 실망스러웠다.원래는 의외로 뭔가를 얻을 줄 알았는데, 역시 이런 일은 운에 맡겨야 한다."이렇게 쉽게 얻고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면 고급 조향사들이 천지일 것이다." 김서진은 그녀를 붙잡고 자신의 품에 안았다. "밥은 먹었어요?""먹었어요." 그녀는 대답하고 그의 눈빛을 보더니 황급히 덧붙여서 설명했다. “주방에 안 들어갔어요. 오늘 좀 일찍 퇴근해서 밖에서 대충 먹었어요.""나를 기다리지 않았나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투가 조금 슬프고 원망스러웠다."나…그때 배가 고팠어요." 분명히 사소한 일인데 왜 무슨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까?한소은은 그를 쳐다보았다.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배달시켜 줄까요?”그녀는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배달을 시키려고 했다."배달말고 나랑 같이 나가서 먹어요!""그런데 나는 이미 먹었는데요!""그럼 옆에서 같이 먹어줘요!" 김서진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이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끝내 그에게 끌려 나와 외식하게 되었다.한소은이 나오기 전에 생각으로는 어차피 나는 먹었으니까, 그냥 그가 먹는 것을 보면 되는데 막상 나오니까…아, 정말 맛있다!벌써 세 그릇째 와규인데 젓가락이 멈춰지지 않는다. 너무 맛있었다.김서진은 그녀가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술을 몇 모금 마실 뿐, 점잖고 우아하게 식사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그가 이미 밥을 먹고 같이 먹어주러 나온 사람 같았다."더 시킬까요?" 그는 자상하게 물었다."아니요… 됐어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고 숨을 내쉬며 "더 이상 못 먹겠어요. 더 먹으면 배불러 죽겠어요!""그럼 설탕에 절인 산사나무로 소화시키실래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그는 "친절하게" 물었다!!!!"제가 당신에게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정확하게 말해주십시오. 왜 이렇게 배 터지게 죽는 잔인한 수법을 쓰시는지요."그녀는 한 손으로 자기 배를
말을 꺼내자 그녀는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걸 의식했다. 그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휴, 남편과 같은 회사 소속이라는 게 정말 안 좋은 데다가 특히 남편이 회사 사장님이면 더욱 안 좋아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금방 알게 될 테니까요.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니 이것 또한 회사의 일정이라는 걸 알고 있겠네요. 저 같은 말단 직원은 회사의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듣고 보니 좀 불만이 있는 거 같은데요? 만약 당신이 가고 싶지 않다면…."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황급히 말을 끊었다. "누가 가고 싶지 않대요. 아직 시간이 없어서 미처 말을 못 한 거지 안 하려고 한거 아니에요."진해는 일교차가 크니까 외투를 챙겨 가요. 그는 이 한마디만 당부하고 출장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한소은은 사실 좀 의외였다. 그가 다른 의견을 말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순조롭게 넘어갈 줄은 몰랐다.하긴, 회사의 일정이라면 그는 분명 더 일찍 알았을 거고 애초 그가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다!그녀의 출장에 대해 김서진은 특별한 반응이 없어서 한소은은 한숨 돌리고 안심이 되었으며 이렇게 좋은 시작으로 앞으로 일하는 데 있어서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어차피 그녀가 하는 일은 안정적이면서도 때때로 외근 나가서 소재 수집도 하고 영감도 찾고, 외부 교류회에 참가하여 선배들의 경험도 참고해야 한다.김서진이 일반 출장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어려웠을 텐데 이렇게 그녀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아서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호감도를 많이 높였다.——"안돼요!"노형원은 앞을 지켜보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그에게 기대고 있는 강시유는 눈썹을 찡그리며 애교를 부렸다. "형원 씨, 이러지 말아요! 당신이 나랑 떨어지기 싫은 걸 알겠는데 이번엔 좋은 기회에요. 생각해 봐요. 나 이런 품평회에 참가한 지 오래됐고 더군다나 이번에 로젠 씨가 동행한다면 더욱….""그 사람이 있으니까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