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정인이 전화를 끊자마자 진원이 문을 밀고 들어와 냉담하게 말했다."앞으로 소희한테 다시는 전화하지 마요. 우리는 이런 딸이 없는 걸로 해요!"정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적어도 소희의 설명을 들어야지.""뭘 들어요?" 진원은 노발대발했다."소희는 틀림없이 아버님이 소연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준 것에 대해 질투하여 고의로 가서 소란을 피운 거라고요! 게다가 사람까지 때리다니, 이게 여자애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요 몇 년 동안 밖에서 대체 무엇을 배웠길래, 지금 완전 양아치와 다름이 없잖아요!"정인은 나지막이 말했다."그 서휘경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무슨 남자 친구야? 일이 이렇게 됐으니 우리한테 나쁠 것도 없지. 만약 소희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당신 설마 정말 연이를 서가네로 시집보내고 싶은 거야?"진원은 코웃음쳤다."이건 완전히 다르죠. 난 연이를 그 집안으로 보내는 것을 원하진 않지만 소희가 연이를 질투해서 일부러 우리 연이 괴롭힌 것도 사실이잖아요.""연이가 소희를 불렀다면?" 정인이 물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진원은 단언했다.정인은 진원이 소희에 대해 편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말하든 진원은 소희를 믿지 않을 것이다.진원은 화가 가시지 않았다."이제 망했어요. 서 씨네 집안의 미움을 산 데다 지금 본가와 서가네는 모두 우리 연이를 미워하고 있잖아요. 소희가 한 일 좀 보라고요!""내가 어떻게 이렇게 음흉하고 포악한 딸을 낳을 수 있죠? 아무튼 지금부터 당신은 더 이상 소희와 연락하거나 더 이상 돈 주지 마요. 소희한테 우리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는 모든 정력을 연이에게 쏟아야죠."진원은 자신 있게 말했다."우리는 남은 반평생 연이한테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요."정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에 구택이 오자 소희는 그를 안고 문득 입을 뗐다."둘째 삼촌."구택은 멈추고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에 키스하며 낮은 소
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잠들었다. 달빛은 소리 없이 흐르며 하룻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하늘이 금방 밝았을 때 구택은 갑자기 놀라며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뜨자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작은방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그가 여기서 하룻밤을 지냈다!방안의 햇빛은 희미했고 소희는 여전히 잠을 깊이 자고 있었다. 구택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보고는 천천히 일어나 소리 없이 떠났다.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잔 소희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누워 있던 곳은 텅 비어 있었다.그는 역시 떠났다.소희는 담담하게 눈을 돌려 밖의 태양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눈 깜짝할 사이에 또 일주일이 지나갔다. 지금 시간은 이미 6월에 들어섰다. 수업 시간에 하나는 그녀에게 미술관의 그림 전시회가 곧 열린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표는 어찌나 구하기 어려운지 하나는 암표 장수까지 찾았지만 표를 사지 못했다.소희는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하나는 그저 소희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토요일에 임 씨네 별장에서 떠날 때 소희는 도 씨 어르신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잔뜩 화가 났다."못된 계집애, 내가 너를 찾지 않으면 너도 나란 사부님이 있다는 것을 잊었겠지?"소희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보고 싶었어요."이 말을 들은 어르신은 즉시 분노가 가라앉았지만 그는 일부러 코웃음을 쳤다."흥, 보고 싶다는 사람이 왜 나한테 전화도 안 하고 날 보러 오지도 않는 게야? 진석은 나를 보러 매주 오는데, 넌 그보다 더 바쁜 거야?"소희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제가 잘못했어요. 오늘 오후에 사부님 보러 갈게요. 사부님이 제일 좋아하는 계화떡 사서요.""오후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지금 바로 와. 와서 같이 밥 먹자." 어르신은 다짜고짜 말했다.소희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알았어요, 하지만 저는 강성대에서 출발해야 하니까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거 같아요. 배고프시면 먼저 식사해요.""잔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한 달 전에 나왔어요."진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쁘진 않네요. 계속 외딴 산속에서 지내면 성격도 괴팍해지는 법이죠."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부인을 않았다.두 사람은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진석이 물었다."사부님이 왜 불렀는지 알아요?""무슨 일 생겼어요?" 소희가 물었다.진석이 대답했다."내일 미술관 국풍 전시회가 정식으로 열리잖아요. 이번에 전시회 책임자가 사부님을 초청하여 마지막으로 전시회장을 좀 체크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사부님이 아가씨를 데리고 가려는 거예요."이유를 알자 소희는 눈썹을 찌푸렸다."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 오늘 틀림없이 사부님께 혼날걸요."진석은 웃었다. 그의 얼굴은 준수했다."그래서, 내가 같이 가주는 거예요."소희는 한숨을 돌리고 활짝 웃었다."고마워요."한 시간 후, 차는 작은 서양식 건물 밖에 세워졌다. 진석과 소희 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에 들어서자 안에서 어르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자갱에 설탕 좀 많이 넣고. 그 계집애는 단것을 좋아해서 설탕 적게 넣으면 절대 안 먹어."진석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사부님은 그래도 아가씨를 가장 아낀다고요."소희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녀는 청석판을 밟으며 계수나무 사이의 오솔길을 가로질러 외쳤다."사부님, 저 왔어요!"눈 깜짝할 사이에 한 노인이 입구에 나타났다. 짙은 남색의 비단 상의를 입고 백발이지만 젊고 정정한 노인은 소희를 보며 처음에는 웃었지만 즉시 표정을 굳힌 채 차갑게 말했다."난 또 네가 우리 집 대문이 어디 있는지 잊어버린 줄 알았다!"소희는 정색하며 말했다."그래서 일부러 선배더러 데려다주라고 했어요."도 씨 어르신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다시 한번 말해봐."소희는 피식 웃었다.진석의 냉엄한 얼굴에도 웃음이 나타났다.소희는 어르신의 팔을 잡고 방에 들어갔다. 하인은 이미 음식을 다 만들었기에 소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즉시
강 씨 어르신은 별로 흥미가 없어서 꽃을 얼핏 보고는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우리 소희잖아?"담 씨 어르신은 일부러 모르는 척 대답했다."꽃을 보라니까 왜 사람을 보고 그래?"강 씨 어르신은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저거 우리 소희 맞지?"도 씨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오늘 나 보러 왔는데 글쎄 또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한가득 사 왔지 뭐야. 내가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떡을 사줘서 뭐 하려는 건지 원."강 씨 어르신은 화가 난 나머지 수염마저 꼿꼿하게 섰다."이 나쁜 영감탱이.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우리 소희 불러와 봐. 내가 한 번 물어봐야겠어, 할아버지가 좋은지 아니면 사부님이 좋은지."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면서 그 못된 영감을 보러 가다니!도 씨 어르신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강 씨, 이 말 하면 너무 속상하지. 너와 내 사이에 굳이 이런 걸로 따져야겠나? 우리 소희는 당연히 사부님이 더 좋지!"말이 끝나자 도 씨 어르신은 카메라오 자신을 찍으며 헤헤 웃고는 영상통화를 끊었다.핸드폰을 내려놓자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서 큰 소리로 외쳤다."소희야, 바깥은 너무 더우니까 우리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크림 아이스크림 만들라고 했어."소희는 꽃밭에 서서 인차 고개를 돌렸다."곧 가요!"방안으로 들어오자 소희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강 씨 어르신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며 소희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핸드폰은 갑자기 도 씨 어르신한테 빼앗겼다."너 이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속이 좁아서 원. 우리 소희가 나 보러 왔다고 굳이 전화까지 해서 그녀를 훈계해야 하겠나? 능력 있으면 너도 강성으로 이사 와. 그럼 나도 우리 소희보고 매일 너 보러 가라고 할 테니까."소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이 늙은 영감탱이가 아주 못됐어!" 강 씨 어르신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우리 소희가 날 보러
소희는 가볍게 웃었다."작가의 이름은 정말 재밌군요."옆의 한 사람은 여정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직 학생입니다. 아주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죠. 나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놀랐거든요. 내가 20대에 이런 실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소희는 웃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독특한 풍격을 가지고 있군요. 참신한 각도에서 출발하여 우수한 기교로 그린 구도가 아주 포만한 좋은 그림이네요."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여정은 더욱 자랑스럽게 웃었다."하지만……"소희는 갑자기 말을 돌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풍운이 좀 부족하네요. 특히 이 그림 옆에 바로 여정 선생님의 그림이 있었으니 두 그림은 풍운, 경지 면에서의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치대로 말하면 이런 그림은 전혀 그림 전시회에 나타나서는 안 될 그림이에요."모든 사람들은 그만 멍해졌다. 어떤 사람은 은근히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은 소희의 말이 너무 예리하고 직설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사람은 여정의 안색을 몰래 살펴보았다.많은 사람들 중 누가 한마디 외쳤다."이건 여정 선생님 학생의 그림이죠?"어르신은 놀란 표정으로 여정을 쳐다보았다."사실인가?"여정은 잠시 표정이 복잡해지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예, 전에 말씀드린 소연이라는 학생입니다. 그림 그리는 데 꽤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그림입니다."소희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여정은 다급하게 대답했다."아닙니다, 소연도 확실히 많이 부족합니다."어르신은 진석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니?"진석은 소희를 한 번 보고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제 생각도 그래요."책임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여정을 바라보았다. 여정도 전혀 싫다 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소연의 이 그림을 그냥 빼죠."그가 이렇게 말했으니 책임자도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직원을 불러 소연의 그림을 뺐다.
진석은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남자친구 생긴 거예요?"소희는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디서 뭐 하는 사람이죠?" 진석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소희는 표정이 굳은 채 멋쩍게 말했다."강성 사람이에요. 우리도 최근에 사귄 사이라 관계가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진석은 안색이 가라앉았다."관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를 집으로 들여보내시는 거예요? 설마 청원에서 나온 것도 이 사람 때문인가요?"소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맞아요."진석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엄숙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원래 성 씨 가족이 아가씨 곁에 있어서 나도 아가씨의 생활에 대해 줄곧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아가씨는 어떻게 남자친구가 생겼는데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는 거예요!"그는 소희와 임가의 혼약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희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몇 년 전에야 강성에 와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니 인정사정에 대해 도통 몰랐기에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한테 속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소희는 스스로 꿀려서 인차 목소리를 낮췄다."선배, 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진석은 안색이 어두웠다."내가 좀 만나봐도 될까요?"소희는 인차 말했다."우리 관계가 좀 확정되면 그때 내가 그를 데리고 선배 만나러 갈게요."진석은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그럼 자신을 잘 보호해야 돼요.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거나 성연희 씨에게 물어보고요."소희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안심해요!""그럼 나도 이만 가볼게요. 얼른 들어가요!" 진석이 말했다."선배 잘 가요!" 소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돌아갈 때 운전 조심하고요.""알았어요!"소희는 건물 안 1층 로비에 들어가서야 긴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진석을 속이고 싶지 않았지만 진석
소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박스에 얼마나 들어있는 거죠?"남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50 박스 정도요."소희의 표정은 경악으로부터 어색함으로 변했다."그럼 구택 씨 어떻게 카운터까지 가서 계산했어요?"캐셔는 마치 변태를 보는 것처럼 그를 보지 않았을까?구택은 이마를 찌푸렸다."카운터요?"소희는 숨을 들이마셨다."바로 마트에서 물건을 산 다음 돈을 내는 곳이요."구택은 눈살을 더 심하게 찌푸렸다."마트 매니저가 박스를 내 차로 옮겨주고는 내가 직접 그한테 돈을 줬는데요.""……""왜요?" 남자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소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트 매니저는 기껏해야 구택이 도매를 하는 사람인 줄 알겠지?마트에 가서 그렇게 많이 샀으니 매니저가 직접 차에 옮겨줬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진지하게 말했다."앞으로 그 마트에 가지 마요!""왜요?" 남자가 물었다.소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 매니저가 구택 씨 찾아서 도매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할까 봐 걱정돼서요!"구택은 그녀를 보며 갑자기 웃었다.소희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물결처럼 반짝이며 아리땁고 부드러웠다.구택은 가슴이 설레며 그녀의 턱을 쥐고 키스했다. 그는 급하게 키스하며 마음속의 그 설렘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다음 날은 일요일, 바로 미술관의 그림 전시회가 정식으로 개최하는 날이었다.소 씨네 집. 진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소연에게 옷을 골라주었다. 오늘 그림 전시회에 가서 소연의 그림을 보는 날이니까 그들은 당연히 예쁘게 입어야 했다.갑자기 테이블 위의 전화가 울리자 진원은 전화를 받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9시에 열어요. 우리 이제 곧 떠나요. 이따 봐요."소연은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 진원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엄마, 다른 사람도 같이 가는 거예요?""그래, 오 부인, 류 부인, 정 부인, 그리고 평소에 나와 마작 하던 그 사람들 내가 전부 오늘 보
그녀는 멈칫하다 문득 침울하게 말했다."하지만, 할아버지가 또 일찍 나를 시집보내실까 봐 걱정돼요. 난 엄마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은데."진원은 전의 일을 떠올리며 화가 났다."네 할아버지는 노망이 나셨어. 안심해. 나는 절대 너를 서휘경 같은 사람한테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 만약 시집보낸다 하더라도 소희를 보낼 거야."소연은 활짝 웃으며 진원을 껴안았다."엄마, 지금까지 나한테 너무 잘해 주셨어요. 내가 평생 효도할게요.""우리 딸 착해라!"모녀 두 사람은 감동하며 또 많은 감동적인 말을 했다. 한참 지나서야 진원은 일어섰다."시간도 다 돼가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우리 얼른 출발하자."소연은 귀엽게 웃었다. "네."소연의 그림이 전시회에 전시된다는 것은 소 씨네 집안에 있어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정인은 모든 일을 미루고 차를 몰고 모녀 두 사람을 데리고 미술관에 도착했다.오후에 그들은 소가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시 오려고 했다.그림 전시회밖에 도착하자 진원과 약속한 인들과 소연이 초청한 친구들은 모두 도착했다. 그들은 소연을 보자마자 인차 그녀를 에워싸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이번 그림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국화계의 명가라고 들었어. 우리 연이는 나이도 가장 어리니까 앞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감탄했다.진원은 더욱 자랑스러워하며 소연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우리 연이는 그림을 그리는 데 확실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죠."정 부인이 말했다."더는 기다릴 수 없을 거 같네요. 우리 빨리 들어가서 한 번 봐요."많은 사람들은 소연을 둘러싸고 문앞의 안전검사를 거쳐 함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정 부인은 진원의 곁을 걸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보기에 진 부인도 연이한테 연회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 부인도 불러서 말이야. 전에 방가네 생신 잔치 때 생긴 일 때문에 뒤에서 진 부인하고 연이를 얼마나 비웃었다고요. 이번에 반드시 사람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은정이 갑자기 물었다.“직장을 바꿔볼 생각은 없어?”유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아니요, 지금 하는 일이 좋은데요?”이에 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여진구가 너한테 힘들게 하면 꼭 나한테 말해.”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누가 나를 힘들게 할지언정, 진구 선배는 절대 그럴 리 없으니까!”은정은 말이 막혀서 답답한 기분이 가슴에 차올랐다. 하지만 어젯밤 일을 떠올리니, 시샘하던 마음도 부드러움으로 변해버렸다.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출근을 준비했다. 비록 몇 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은정은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유진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진구와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자 당장이라도 그녀를 끌어당기고 싶었다.어젯밤 은정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진구는 이미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진을 진구의 회사에서 나오게 할 정당한 이유를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구씨 그룹의 오전 회의에서 모든 직원은 오늘 사장의 기분이 꽤 좋다는 것을 느꼈다.최이석은 어젯밤 일로 은정이 오늘 아침 자신을 괴롭힐 거라 예상했지만, 그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는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다. 은정의 속마음을 알 수 없을수록 더욱 조심스러웠다.유진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진구에게 불려 갔다. 방에 들어서자, 진구가 유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표정이 어두웠다.이에 유진은 놀라 물었다.“얼굴이 왜 그래요?”진구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는 잠시 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문에 부딪혔어.”유진은 크게 웃었다.“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문에 부딪혀요?”그 말에 진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그게 그렇게 웃기냐?”유진은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진구의 얼굴을 살폈다.“혹시 누구랑 싸운 거 아니에요?”그러나 진구는 그녀의 입술에 남은 자국을 발견했다. 원래 입술
정신이 돌아왔을 때, 유진은 자신의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유진은 관자놀이를 살살 문지르며 어제의 상황을 기억하려 애썼다. 자신은 술에 취했다. 도수는 낮았지만, 방연하와 함께 마치 물을 마시 듯 병채로 마셔댔기 때문이다.나중에 구은정이 왔고, 유진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어떻게 내가 거기에 있는 줄 알았지? 내가 직접 방 번호를 말했나?’유진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구은정이 집에 데려다준다고 말한 뒤의 상황조차 기억나지 않았다.유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나자, 머리의 통증이 조금 나아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씻었다.이를 닦다가 문득 입술에 유난히 붉게 부은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 같았고 혀끝도 얼얼했다. 이상해서 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정말 아팠다.‘입 안이 헐었나?’유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를 닦았고, 세수를 하려던 참에 갑자기 생각났다. ‘누가 잠옷을 갈아입힌 거지?’멍하니 서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은정이 아침 식사를 가져온 걸 것이다.유진은 서둘러 얼굴을 씻고 침실로 돌아와 속옷을 입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은정은 아직 덜 마른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특히 유진의 붉어진 입술을 보고는 평소보다 더 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일어난 거야?”유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어젯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은정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섭섭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은정은 사 온 아침 식사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말했다.“어젯밤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데, 머리 안 아파?”유진은 의자에 앉으며, 그는 말 안 하면 괜찮았을 것을, 언급하는 바람에 더 불편하
넘버 나인.프라이빗 룸 안엔 이제 여진구와 방연하만 남아 있었다.연하는 직원에게 상처 연고와 면봉을 요청한 뒤, 소파에 앉아 있는 진구에게 다가가 그의 멍든 눈가에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진구는 고개를 숙인 채 연하의 손길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 내일이면 가라앉을 거야.”“움직이지 마요. 약 바르면 훨씬 빨리 나아요. 이래서야 회사에 어떻게 출근해요?”연하는 면봉에 약을 덜어 조심스레 붓기 위에 발랐다. 차가운 연고가 달아오른 피부에 닿자, 진구도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늘은 다들 술에 취해서 좀 과했던 거지.”방금 전 진구가 쏟아낸 말들이 지금 와서는 다소 충동적이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임유진. 유진이 혹시 들었으면, 쓸데없는 오해만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연하는 조심스레 손놀림을 이어가며 물었다.“예전에, 유진이가 구은정 씨를 좋아했어요?”진구는 잠시 멈칫하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주 오래, 깊이.”진구는 연하가 과거에 은정을 쫓아다녔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덧붙였다.“유진이가 너한텐 일부러 숨긴 게 아니야. 그때 교통사고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었거든.”연하는 깜짝 놀랐다.“진짜로 다 잊은 거예요?”“정말이야.” 진구는 단호히 말했다.“그 사고는 구은정과도 관련이 있어.”연하는 놀람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끝까지 구은정을 계속 좋아했더라면, 나중에 유진이 기억을 되찾았을 때 얼마나 민망하겠는가?연하는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구은정 사장님이 유진이한테 다시 다가가는 거예요?”진구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웃기지 않아? 예전엔 그렇게 냉정하게 뿌리치더니, 유진이가 자신을 잊고 나서야 다가오다니.”연하는 그제야 얼마 전 캠핑 때 진구와 은정이 나눈 대화를 떠올렸고,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죄책감 때문 아닐까요?”여진구는 음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
구은정은 소파 앞에 무릎을 꿇듯 반쯤 앉아, 애옹이를 조심스레 밀어내고는 손을 들어 임유진의 뺨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불렀다.“임유진.”“응.”유진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떴지만, 눈빛은 여전히 맑지 않았다. 그녀는 이마를 살짝 찡그리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소파 가장자리에 엎드렸다.은정은 바로 이마를 찌푸리며 유진의 등을 토닥였다.“속이 안 좋아? 토할 거 같아?”유진은 몇 번 마른 헛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이내 힘없이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붉게 달아오른 얼굴, 살짝 깨문 입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유진을 더 애처롭고 순해 보이게 만들었다.“구...은정...”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눕고 싶어?”은정이 낮고 부드럽게 물었지만, 유진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 동작에 더 어지러워진 듯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싫어요.”“그래, 안 누워도 돼.”은정은 얼른 달래듯 맞장구쳤다.“물 마실래요.”유진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댄 채 웅얼거렸다. 은정은 부엌으로 가 꿀물을 들고 와 유진의 입술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레 말했다.“천천히 마셔. 조금 뜨거워.”유진은 은정의 손에 기대어 몇 모금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툭 기울이며 그의 어깨에 기대고는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말했다.“이거 말고 술 마시고 싶어. 방연하, 술 한 병만 더 줘.”은정은 순간 날카롭게 말했다.“또 술 마셔봐, 진짜 혼난다.”유진은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은정을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왜 혼내는데요?”희고 말랑한 얼굴, 복숭앗빛 입술에 남은 술기운, 유진의 모든 향기와 숨결이 은정의 감각기관을 마비시켰다.은정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긴 손가락으로 유진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임유진.”“응?”유진이 순순히 대답했다. 은정의 눈동자는 잉크를 쏟은 듯 깊고 어두웠고
방연하도 술에 많이 취해 말이 꼬였다.“구, 구은정 씨!”놀란 듯한 표정은 짓고 있었지만, 혀는 이미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진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구은정 씨가 왜 여기에 계시죠?”은정은 누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직 임유진만 바라보며 말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유진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눈빛은 풀려 있었고, 입술에는 술 자국이 가득했다.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삼촌.”은정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집에 가자.”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멍한 얼굴로 웃었다. 유진의 그 웃음에 은정은 심장이 녹아내릴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은정은 유진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고, 부드럽게 유진을 반쯤 안아 일으켰다.유진은 반쯤 그의 몸에 기대었지만,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진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이 뒤집혔다. 급히 일어나 은정의 앞을 막아섰고,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소리쳤다.“지금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죠?”은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비키시죠?”진구는 비웃듯 말했다.“당신 예전에 유진에게 얼마나 상처 줬는데, 이제 와서 다른 얼굴로 접근하면, 있었던 일들이 다 없게 되는 건가요?”“지금 유진이 본인을 잊었으니 괜찮다는 건가요? 만약 기억이 돌아오면, 당신을 얼마나 미워할지 몰라요?”술기운에 진구는 지금껏 참고 있었던 울분을 모두 쏟아냈다.“유진이 너를 잊었을 때를 틈타 들어오는 당신이 나는 진심으로 혐오스러워요!”유진은 진구의 격한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점점 머리가 아파져 얼굴을 찡그렸다.그동안 은정은 아무 말 없이 유진의 어깨를 부드럽고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유진아, 가지 마!”진구는 유진의 팔을 붙잡았다.“다시 저 사람이랑 엮이지 마!”은정은 결국 더는 참지 않았다. 유진의 팔을 붙잡는 진구를 본 순간, 은정의 주먹이 그대로 진구의 얼굴을 강타했다.진구는 몇 걸음이나 물러나며 휘청거렸고, 곧
이건 명백히 KN그룹과의 협력을 빌미로 구은정을 압박하여 서종호를 다시 회사에 복귀시키려는 수였다.양사는 거의 10년 가까이 협력해 왔고, 얽힌 이익도 상당했다. 만약 은정이 오윤열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구씨그룹은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요구를 받아들여 종호를 다시 들인다면, 은정은 회사 내에서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경영권에도 심각한 타격이 가해질 것이 분명했다.최이석은 서성의 측근으로, 종호의 복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이 일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조금만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었다.최이석이 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은정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SNS의 사진을 계속 보고 있었다 말이 끝난 후에도 은정은 눈을 들지 않았다. 마치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최이석은 잠시 눈을 돌리더니 다시 반복했다.“사장님, 오윤열 사장님께서 꼭 서종호 부사장님가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해요.”그제야 은정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본인 생각은 어떻나요?”그 말에 최이석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그는 잠시 망설이는 척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우선은 복직시키고, 계약을 먼저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요?”쾅! 와장창! 굉음이 연달아 터지며 말을 가로막았다. 최이석은 놀라 뒷걸음질 치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소파에 앉아 있던 은정은 발로 대리석 테이블을 걷어찼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술병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고, 술이 바닥에 엉켜 퍼지면서 강한 술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곧 방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 잠겼다.은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강한 존재감에 방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차가운 눈빛으로 최이석을 바라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냉철하게 말했다.“오윤열 사장님한테 전해요. 내가 KN그룹과 협력
방연하가 고개를 돌리며 다시 토할 듯한 제스처를 하자, 진소혜는 벌떡 일어나 황급히 도망쳤다.곽시양은 소혜가 초라하게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진 씨가 있는 한, 사장님은 우리랑 어울려 놀 일은 없어요. 그러니 그만 건드려요.”그러나 소혜는 이를 악물며 분했다.“난 절대 내가 임유진보다 못하다고 생각 안 해!”시양은 시선을 피하며 술잔을 건넸다.“화내지 마요.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 이제 같은 부서에서 계속 보게 될 텐데, 기회는 더 많지 않겠어요?”소혜는 술잔을 받아 들고, 고개를 젖혀 단숨에 들이켰다. 소혜가 멀찍이 사라진 뒤, 연하는 소파에 털썩 기대더니 실컷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진구와 유진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진구는 감탄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하네.”연하는 자랑스럽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내가 괜히 저딴 변태들한테 안 잡히는 줄 알아요? 다 이유가 있는 거죠!”소혜가 꾸민 수준 낮은 수작쯤은 연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구는 연하에 대한 호감이 더 커졌다.“진심으로 말하는데, 우리 회사 와. 지금 받는 연봉 두 배로 줄게.”“사장님의 제안은 감사하지만요.”연하는 유진 옆으로 돌아와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곧 승진이 코앞이에요. 이렇게 오래 일해온 걸 쉽게 포기하긴 아깝죠.”이에 진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 사람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분위기는 한층 더 화기애애해졌다.술도 계속 들어갔다. 연하는 유진의 어깨에 팔을 둘러친 채,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었다.그러자 갑자기 진구가 유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유진의 어깨에 기대 사진 속에 들어왔다. 결국 찍힌 사진은 세 사람의 단체 샷이 됐다.연하는 그 사진을 바로 SNS에 올렸다.위층 프라이빗 룸. 아래층 젊은이들의 활기찬 분위기와 달리, 이곳은 형식적인 웃음과 인사치레가 오가는 자리였다. 조명이 테이블 위에 늘어선 술병에 반사되어 오묘한 빛을 뿜고 있었다.문이 열리자, 각기 다른 스타일의 여성 접대부들이 들어왔다. 최이석은
방연하의 방금 전 조롱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정현준의 말이 괜히 더 신경 쓰였고, 진소혜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식사가 끝난 뒤, 일행은 넘버 나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다들 술이 들어간 터라 정신이 맑진 않았고, 프라이빗 룸의 분위기 탓에 점점 더 흥에 겨워졌다.서로 잊은 듯, 또다시 임유진에게 건배를 청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모두가 유진의 승진을 축하한다며 술잔을 들었다.여진구와 방연하가 옆에서 지키고 있었지만, 유진도 어쩔 수 없이 몇 잔은 받아 마셨다. 다행히 맥주라 취기가 심하진 않았다.룸 안은 조명이 반짝였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환호하며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유진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같은 부서 남자 직원 둘이 서로 사랑 노래를 부르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주변의 웃음소리에 맞춰 실없이 웃었다.연하가 유진에게 병맥주를 건네며 잔을 부딪쳤다.“카! 이 맛에 마시는 거지!”연하는 병을 반쯤 비우자, 유진은 곧장 휴지를 꺼내 건네며 걱정했다.“천천히 마셔, 그렇게 마시면 금방 취해.”“나 이번 프로젝트 곧 끝나. 이제 더는 그 변태 꼰대한테 안 시달려도 돼!”연하는 숨을 내쉬며 말했다.“한 달이나 참았다고!”유진은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그 인간, 너한테 뭐 했는데?”“퇴근 시간에 일부러 따로 부르고, 회식 자리에서 손도 대고. 심지어 속옷 세트까지 선물했어. 토 나오는 줄!”“그때 반응은 제대로 했지?”“걱정하지 마. 그딴 놈 손에 안 잡히게 했지. 내가 누군데. 만만한 사람 아닌 거 몰라?”그 얘기를 옆에서 들은 진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에 또 그런 일 생기면 그냥 뺨 한 대 갈겨.”연하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랬다간 내 자리도 날아가죠.”이에 진구는 비웃듯 말했다.“그게 뭐가 무서워? 나한테 와. 지금보다 더 줄게.”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진짜 더 못 참겠으면 연락할게요.”“왜 그때를 기다려? 지금 오면 되잖아.”진구는 시원하게 말했다.“
진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변하자 방연하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요, 난 이 호텔 얘기한 거예요. 겉보기엔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카펫에 사람이 걸려 넘어질 정도면 좀 저렴하잖아요?”해명이라기보단, 딱 봐도 찔린 사람에게 던지는 한마디 같았고, 오해하지 말라는 말은 오히려 더 확신을 주는 뉘앙스였다.소혜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며 발밑의 카펫을 밟았다.“곧바로 여기 매니저한테 컴플레인 넣을게요!”그러고는 억지로 웃으며 임유진을 바라봤다.“유진 씨, 괜찮죠?”직원이 와서 바닥을 정리했고, 유진의 하얀 셔츠에는 눈에 띄게 붉은 와인 자국이 번져 있었다.하얀 옷은 한 방울만 튀어도 얼룩이 져 티가 나는데, 붉은 와인이라니... 유진은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식사 끝나고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이 상태로는 2차를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소혜는 속으로 의도가 통했다며 더욱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정말 미안해요. 오늘은 유진 씨 축하하자는 자리였는데, 우리끼리만 가면 너무 무례하잖아요?”이에 연하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역시 오늘 목적은 유진일 빼놓고 진구 선배에게 다가가려던 거였군.’이에 연하는 곧바로 받아쳤다.“그 말도 맞긴 한데, 참 다행이죠. 내가 오늘 낮에 쇼핑하다가 새 옷 하나 샀거든요. 유진이랑 사이즈 비슷하니까, 내가 빌려주면 돼요.”“유진아, 우리 화장실 가서 갈아입고 계속 같이 놀자!”이에 소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애초에 오늘 유진을 모임에서 떼어내려던 건 여진구와 가까워질 기회를 노리기 위함이었는데, 연하가 이를 가로막은 셈이었다.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갈아입고 와. 갈아입으면 바로 출발하자.”연하는 가방을 들고 유진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프라이빗 룸에 딸린 화장실은 넓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문을 닫자마자 연하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진짜 소름 돋는 여우네.”유진은 거울에 비친 얼룩진 셔츠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애, 선배 좋아해.”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