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는 룸 안에서 찾은 분홍색 알약과 흰색 가루를 심명에게 보여주었다."대표님, 경찰에 신고할까요?""경찰에 신고하지 마요, 신고하지 마요!"그는 누구보다도 경찰을 무서워했다!"경찰에 신고해!" 심명은 차갑게 입을 열었고 발로 이혁을 걷어찼다."냄새나는 쓰레기 주제에 감히 내 구역에서 약을 먹어? 죽으려고 작정했나!"매니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럼 이 cctv 기록은 경찰에게…...""지워!"심명은 그의 말을 끊고 담담한 목소리로 화면 속 여자애를 가리키며 명령했다."그녀가 나타난 화면만 모두 삭제해버려. 경찰이 물으면 인터넷이 끊겼다고 해."로비 매니저는 심명이 왜 이러는지 몰랐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심명은 또 웨이터 한 명을 불렀다."잠시 후에 네가 경찰서에 가서 증인하고 와. 이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서 자기들끼리 문제가 생겨서 싸운 거라고, 알았어?"웨이터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표시했다.이 사람들은 평소에 좋은 일 외에는 다른 더러운 짓거리를 너무 많이 했기에 경찰서에 들어가면 그들이 이전에 한 짓들만 조사해도 한참 걸릴 것이다.심명이 떠나기 전에 또 룸 안에서 울부짖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힐끗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독하긴 독해. 지난번에 자신이 그녀한테 맞은 것을 생각하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기뻐했다. 보아하니 그녀는 그래도 나름 그를 봐줬던 것이었다!룸 안으로 돌아와서 심명은 매니저더러 소희가 떠난 동영상을 그에게 보내라고 했다.그는 영상을 두 번 보며 표정은 매우 흥분했다. 그녀가 사람을 때리고 떠날 때 평온한 표정으로 외투를 벗은 뒤 닥치는 대로 쓰레기통에 던진 것을 보면 유난히 멋있었던 것이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원한이 있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자신이 그녀를 크게 도왔으니 그는 어떻게 그녀더러 갚아야 할지 잘 생각해 봐야 했다!......10분 뒤, 구택은 소희를 차에서 안아 내렸다. 그녀는 온몸에 뼈가
구택은 온몸에 힘을 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쥐며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까불지 마요, 나도 남자니까요!"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밀폐되고 더운 공간에서, 그는 남자였고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는 여자였다.소희는 고개를 들었다. 희미한 눈빛 속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가와요!"구택은 숨이 멎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자신이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요?""응." 소희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대답인지 아니면 저절로 나오는 신음 소리인지 그는 잘 몰랐다.구택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나는 소희 씨의……"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 소녀는 갑자기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을 막으며 즉시 힘껏 그의 입술 안으로 혀를 내밀었다.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몸속의 벌레들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그녀가 어릴 때부터 받은 훈련은 그녀에게 생명은 언제나 최우선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신의 생명을 잘 보호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하물며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그러니 그는 마땅히 그녀를 도와야 했다.구택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두운 밤, 그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눈을 감고 소녀의 손을 천천히 잡아당기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안 돼요!"이 두 글자를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이것은 소희를 경고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경고하는 건지 그는 잘 몰랐다."왜 안 돼요?" 소희는 욕실 벽에 기대어 작은 목소리로 냉정하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응하지 않는 것을 보며 그녀는 억지로 일어섰다."당신이 안 된다면 다른 사람 찾아가서 해결할 수밖에 없네요!"그녀는 그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몇 걸음 만에 갑자기 누군가에게 팔을 잡히며 그의 품 안에 안겼다.그녀는 남자의 목을 꼭 잡으며 그의 팔에서 전해오는 힘을 느꼈다.구택은 그녀를 안으며
이튿날 아침, 소희가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밝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낯선 방을 보며 한참 지나서야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났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침대에 그녀 혼자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구택도 창문에서 뛰어내린건 아니겠지?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면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소희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남자가 그녀를 등진 채 베란다에 서서 전화를 하는 것을 보았다.구택은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다. 넓은 어깨에 가는 허리, 그리고 늘씬하고 긴 두 다리. 뒷모습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그는 명우에게 물었다."소 씨네와의 계약은 아직 며칠 남았지?"소희는 마음속으로 계산해 보니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다.전화기 너머로 명우는 그에게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었다.구택은 목소리가 담담했다."소 씨네 집에 연락하여 앞당겨서 파혼해. 요 며칠 수속 밟아."그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다. 소 씨네 집안에 줘야 할 것도 이미 준 상태였다. 비록 그와 소 씨네 아가씨는 만난 적이 없고 그녀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외국에서의 이 3년 동안 그는 이 결혼을 이미 충분히 존중했고 그녀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다.귀국 후,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해서 그런 일을 했지만 이번에는 무슨 이유든 간에 그는 혼인에서 서로 충성하는 신조를 어겼고 더 이상 소 씨네 아가씨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소희는 남자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찌질이네, 자자마자 이혼이라니!"그녀가 속으로 욕을 할 때 남자는 이미 전화를 끊고 들어왔다.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태연했다. 소희도 일부러 침착하게 물었다."내가 입을 수 있는 잠옷 있어요?"그들은 호텔에 있지 않았다. 회백색에 인테리어가 간단한 것을 보면 이곳은 아마도 구택이 임시로 휴식하는 오피스텔 같았다.구택은 나갔다 바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흰색 셔츠 하나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내는 집을 원하는 건가요?" 구택이 다시 물었다.소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가까워서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지금 그녀는 구택의 악마스러운 모습을 본 것 같다.구택은 고개를 숙이자마자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하며 바로 일어났다.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거든요. 하룻밤 보냈다고 집 한 채를 주면 나 좀 손해 보거든요."남자는 부드러운 것 같기도 냉정한 것 같기도 했다.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뒤섞여 있어서 그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눈빛은 냉담했고 싸늘했다.소희는 어젯밤 밥을 먹지 않은 데다 또 꽤 오래 운동했으니 지금 아미노산이 결핍하여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아 혼돈 상태에 빠졌다.그녀는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구택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어젯밤 즐거웠어요?"티를 내지 않고 숨을 들이마신 소희는 이불 밑에 있던 손바닥에 땀이 나며 축축해졌다."이 집은 강성대와 아주 가까워요. 평소 8시 30분에 수업 있는 소희 씨가 여기에서 지내면 8시 15분까지 늦잠을 자도 되죠. 앞으로 이 집이 완전히 소희 씨의 것이 되면 그때 소희 씨의 할아버지를 데려올 수도 있고요."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똑똑한 사람이라 굳이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소희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경악하여 입을 열었다."지금 나더러 구택 씨의 애인을 하라는 말인가요?"구택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이게 바로 소희 씨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어요?"소희는 그를 계속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피식 웃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웃긴 그녀는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이불에 머리를 묻히며 어깨를 떨며 웃었다."왜 웃어요?" 구택이 물었다.하도 웃어서 눈물까지 난 소희는 이불 위에 엎드려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눈으로 구택을 바라보며 입가의 미소를 거두고 담담하게
방문이 닫힌 순간, 소희는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방금 구택과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좀 불가사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맞은편 캐비닛에 충전하고 있었다. 전원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전원을 켜자마자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카카오톡 문자가 튀어나왔다.청아가 보낸 것도 있었고 오 씨 아주머니가 보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온 문자는 바로 소정인이 보낸 것이었다.그녀는 소정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고 있었기에 먼저 청아와 오 씨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청아는 너무 급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려 했다. 그녀는 어젯밤 소희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을 보고 줄곧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또 블루드에 달려가서 그녀를 찾으려 했다. 하마터면 청아는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다며 그녀에게 안부를 전했다.청아는 전화 너머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괜찮다니 다행이야. 아 맞다, 내가 어젯밤에 다시 블루드에 갔을 때 문밖에 경찰차가 있는 거 봤어. 이혁 그 사람들이 모두 잡혀갔더라고."그녀는 당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소희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이건 어찌 된 일이었을까?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아마도 블루드의 사람이 신고한 거야."그녀의 계획에 따르면, 이혁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블루드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한다면 그녀는 푸른 독수리더러 cctv 기록을 지우게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만약 경찰이 그녀를 찾는다면 그녀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하지만 약을 탄 술을 마시는 바람에 그녀의 계획이 흐트러졌고, CCTV는 삭제되지 않았다. 이혁이 만약 그녀를 고발했다면 지금 아마도 경찰이 그녀를 찾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부재중 전화를 뒤졌지만 경찰서의 전화는 없었다.청아를 위로한 뒤 그녀는 또 오 시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 후에야 소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정인은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소희를 봤을 때 항상 무뚝뚝한 그는 보기 드물게 놀라움을 표시했다.소희는 일어나서 예의 있게 말했다."앉아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켰어요."명우는 그녀 맞은편에 앉아서 소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그렇구나!일이 이렇게 되다니!소희는 담담하게 웃었다."놀랄 거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명우 씨를 더 놀라게 만들걸요."......30분 뒤 명우는 소희와 함께 카페를 떠났다. 한 사람은 왼쪽으로,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두 사람은 마치 낯선 사람처럼 갈라졌다.두 사람은 방금 새로운 협의에 달성했다.명우는 차에 탔을 때까지 아직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소희가 바로 구택의 아내라니. 더욱 믿기 힘든 것은 자신이 방금 그녀를 도와 이 사실을 함께 숨기겠다고 대답한 것이다.그는 뒤늦게 자신이 소희를 얕잡아 봤다고 느꼈다. 그녀는 앳되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로 모든 사람을 속였다.그녀는 구택 앞에서 아무런 흔적도 드러내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설득해 이 사실을 숨기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가 만약 어두운 곳에 매복했더라면 기필코 치명적인 한방을 날릴 것이다.이혼 수속을 밟을 필요가 없으니 명우는 요 며칠 무슨 핑계로 구택을 속일지 생각했다.다행하게도 구택은 줄곧 그를 믿었다.......소희는 청원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희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매우 흥분했다."소희야, 너 집에 갔어? 내가 이따가 너 데리러 갈게. 우리 같이 놀러 가자."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오늘은 안 돼. 나 지금 돌아가서 짐 정리하고 이사 준비해야 돼.""이사?" 연희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어디 이사 가려고?"소희는 싸늘하게 웃었다."다 네 덕분이지. 어젯밤에 왜 안 왔는데?""무슨 말이야? 어디 가?" 연희는 멍했다.소희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 전화 못 받았어?"그녀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즉시 통화 기록을 뒤져 어제저녁 1
밥을 먹고 소희는 물건을 정리하러 올라갔다. 오 씨 아주머니는 자신이 만든 케이크, 아이스크림과 초코 젤리를 들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작은 아씨 만약 이것들 먹고 싶으면 돌아오세요. 내가 또 해드릴게요. 밖에서 파는 건 맛없어요."소희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고 잠시 목이 메어 앞으로 다가가서 살포시 안아주었다."아마도, 다시 돌아올 거예요."아주머니는 목이 멘 채로 천천히 말했다."우리 두 사람은 여기서 작은 아씨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먼저 옷을 정리하고 내일 가지러 올게요. 앞으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설희를 돌봐줘야겠네요!""그래야죠!" 아주머니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아씨도 몸 잘 챙겨요.""네!"……다음날 오후, 수업이 없던 소희는 별장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어정으로 가려 했다.옷과 책은 이미 다 정리된 상태였다. 그녀는 서랍 가장 안쪽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어 사진이 끼어 있는 그 페이지를 뒤졌다.사진의 배경은 원시림이었다. 9명의 사람들은 용병 제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얼굴에 위장을 그린 채 오직 늑대 같은 눈만 밖으로 들어냈다.중간의 남자는 포악하고 거칠어 보였고 매서운 눈빛으로 손을 옆에 있는 작은 꼬마의 어깨에 얹고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꼬마는 작고 말랐지만 눈빛은 매우 냉랭하고 매서웠기에 전혀 여자애 같지 않았다. 무언가가 문득 그녀의 바지를 잡아당기자 소희는 고개를 숙여 설희를 보았다. 그녀는 책을 덮은 뒤 다시 서랍의 가장 안쪽에 넣었다.설희는 그녀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계속 그녀 뒤를 졸졸 따랐다.소희는 설희를 안고 평소처럼 베란다의 소파에서 잠시 놀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눌렀다.통화가 연결되자 고풍스러운 정원에서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그는 소희를 보고 방긋 웃으며 물었다."집에 오는 거야?"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사 가는 거예요
소희는 그녀가 묻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침착한 척하며 대답했다."괜찮았어."연희는 계속 걱정했다."무슨 이상한 버릇없어?"소희는 귓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희미한 기억 속에서 찾아보았다."없을걸."연희는 안심하고 손으로 사물함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 소희에게 던졌다."지금 임신하고 싶지 않으면 이거 먹어. 매번 한 알씩. 이 약은 안전해서 몸에 부작용이 거의 없지만 100% 안전을 위해 다음에는 콘돔을 쓰라고 해."소희는 약 박스를 한 번 보더니 약 한 알을 꺼내어 바로 입에 넣었다.4살 때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그녀는 바로 복지원에 들어갔다. 여자의 생리, 감정, 그리고 성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연희가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그들은 서로의 절친이자 서로의 선생님 그리고 가족이었다.……어정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은 소희가 떠날 때 그대로였다.요 며칠 구택은 오지 않았다.날이 어두워지자 두 사람은 짐을 내려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맞은편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창가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연희가 물었다."만약 구택이 자주 오지 않는다면 너 혼자 거기서 지낸다는 거잖아. 그럼 너 밥은 먹을 수 있겠어? 도우미 아줌마라도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소희는 스테이크를 천천히 썰며 눈도 들지 않았다."돈 없는 학생이 가정 교사 알바를 해서 월세 냈다 쳐도 도우미를 청하면 의심 사잖아."연희는 웃으며 물었다."그럼 언제까지 속이려고?"소희는 처음부터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가 한 말은 그녀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신분을 밝힐 수 없게 했다. 후에 발생한 일들은 확실히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언제 들키면." 소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녀는 계속 말했다."임구택은 이곳에 별로 오지 않지만 방은 그래도 깨끗한 거 보면 가사도우미가 따로 있을 거야. 밥은 내가 하면 되는 거고."연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밥을 한다고? 하긴, 어차피
이런 자리에서 유진은 은정과 말싸움을 하거나 몸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그저 얌전히 그의 손에 이끌려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은정은 유진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다. 계단은 넓었지만 유난히 조용했고, 뒤를 돌아보면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 파티장의 사람들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처럼 느껴졌다.유진은 한 계단 아래에서 은정의 뒤를 따라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 여자 파트너는요? 이렇게 두고 와도 돼요?”은정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유진의 표정을 살폈다.질투라든가, 그런 감정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두 사람 사이엔 계속 냉랭한 기류가 흘렀고, 유진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은정은 설명했다.“그 사람, 내 비서야.”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처음엔 회사에서 임시로 준비한 파트너인 줄 알았는데, 비서라면 매일 함께 있는 사이라는 뜻이었다.“그게 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무심하고 차가운 표정에, 은정은 가슴에 바늘이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위층은 휴게 공간과 탈의실로 구성돼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한 방 하나를 골라 마주 앉았다.은정은 유진에게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저녁은 먹었어?”“조금 전에 스시 먹었어요.” 유진이 대답했고, 은정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중에 집에 가서 야식 만들어줄게.”“괜찮아요. 이미 배불러요.”유진은 정중하게 거절했다.“스시 먹고 배불러?”은정은 가볍게 웃었다.“평소엔 밥 한 공기 뚝딱 비우고도 애옹이 간식까지 같이 먹었잖아.”그의 말에 유진은 예전에 은정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애옹이를 데리고 장난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그러자 가슴 한쪽이 시리게 허전해졌다. 은정은
“백림 씨!”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와 조백림의 팔짱을 끼며 유진을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거예요?”유진은 한눈에 알아봤다. 이 여자가 오늘 백림이 데려온 파트너라는 걸. 그게 유정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깐 놀랐지만, 유진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여자는 백림에게 더 바짝 붙으며 투정을 부렸다.“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이 팔려선, 아예 날 잊어버리는 거 아니에요?”백림은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며 그녀를 흘끗 봤고, 엷은 미소만 띤 채 말했다.“소개할게. 여긴 임유진.”“임유진?”여자는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듯, 느슨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전 유류나라고 해요.”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아까 스시 먹다 손에 간장이 묻었어요.”류나는 뻘쭘하게 손을 거뒀다. 체면이 깎였다고 느낀 듯, 말투에 가시가 섞였다.“이런 파티에서 나오는 스시가 맛있긴 한가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놓은 줄 알았는데, 진짜 먹는 사람도 있네요?”유진은 가볍게 웃었다.“다들 그렇게 생각해 주면 참 좋겠네요. 그럼 맛있는 건 다 제 몫이 될 테니까요.”그러고는 조백림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 시원 삼촌한테 이번 주말에 요요랑 청아 언니 데리고 집에 놀러 오라고 했어요. 삼촌도 유정 언니랑 같이 오세요.”백림은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유정이한테도 전해줄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호텔 주방에 따로 주문 넣을게.”“감사해요, 삼촌.”백림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류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유진과 멀어지자, 류나는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가끔 어린 여자애들이 순진한 척하면서 남자만 보면 삼촌 하고 부르던데, 참 저질스러운 소설 보는 것 같네요.”백림은 입가에 엷은 웃음을 머금고 그녀를 바라봤다.“방금 그 여자, 누군지 알아?”“누군데요?” 류나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임유진.
호텔 파티장에 도착하자,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격식을 갖춘 남녀가 황금빛으로 장식된 파티장을 배경 삼아 더욱 고귀하고 우아해 보였고, 모두 신사적이거나 단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야기꽃이 활짝 피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진구는 유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이번 파티는 미국에서 돌아온 화교가 주최한 자리야.”“국내 경제 상황이 괜찮다 보니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사업을 하려고 명사들과 인맥을 쌓으려는 자리지.”유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물었다.“우리 삼촌도 오셨을까?”“당연히 초청은 했을 거야. 근데 오실진 모르겠네.” 진구가 말하자, 유진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난 확신하는데, 절대 안 오셔요. 요즘은 24시간 내내 소희한테 붙어 있거든요. 근데 이런 지루한 파티에 오실 틈이 있을까요?”유진은 임구택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낯익은 인물을 발견했다. 한 남자가 몇몇 정장 차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깊게 파인 V넥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는 우아하고 요염한 미소를 띠며, 말을 꺼내기 전마다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갈고리 같아, 한 번 걸리면 뼈까지 녹을 것 같았다.그때, 구은정이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고 오만한 눈동자는 거리낌 없이 유진을 응시했다.“삼촌 저기 계시네. 가서 인사드리고 올게.” 진구는 유진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유진은 갑작스럽게 돌아보려다, 억지로 시선을 누르며 따라갔다.진구가 말한 외삼촌은 시원이었다. 시원은 유진을 보자, 부드럽고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아.”“삼촌, 안녕하세요.”유진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시원은 흰 셔츠에 진회색 베스트를 입고 있었고, 미소 띤 입꼬리는 늘 잔잔한 여운을 남겨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진구도 반가운 얼굴로 말하자, 시원은 부드럽게 웃었다.“오랜 친구가 온다길래 잠깐 들른 거야. 금방
“아, 맞다!”사장이 말을 이었다.“장연구 사장은 본사에서 분사로 인사 이동됐어요. 앞으로 이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연하 씨가 맡게 될 거예요.”방연하는 놀란 눈을 들었다. 직감적으로, 장연구의 인사이동이 어젯밤 일과 관련 있다는 걸 느꼈다. 뜻밖에도, 큰 사건을 겪고 나서 두 가지 골칫거리가 한 번에 해결된 셈이었다.물론 연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건 다 여진구 덕분이라는 것. 연하는 진심을 담아 사장의 신뢰와 배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진구는 일정이 있어 몇 마디만 나누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피스로 돌아온 연하는 바로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렇게까지 도와줘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그러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뭘 고마워해. 오늘 아침에 내가 그렇게 큰 오해를 남긴 걸 생각하면, 그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연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작 어젯밤 그녀를 도운 건 여진구였고, 아침의 오해도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건 굳이 말로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마음만 통하면 충분했다.“이 은혜는 꼭 기억할게요. 단, 임유진 문제 빼고 말이예요. 그거 말고는 선배가 부탁하는 거라면 뭐든 다 해줄게요!”[너, 그때는 돈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냐? 이젠 돈으로도 널 못 사는 거야?]연하는 피식 웃었다.“아마 이게 내가 가진 마지막 양심인 듯!”진구는 연하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이제 일하러 가봐.]“잘 가요, 선배!”전화를 끊고 난 연하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침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녹아내리는 듯했다. 어떤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오후.티타임 시간, 진구는 임유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오늘 저녁에 행사 있어. 근데 여자 파트너가 없어. 같이 가줄래?”유진은 손에 들린 일정을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진구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금방 드레스 보낼게. 우리 호텔에서 바로 만나자.”유진은 커피잔을
연하는 재빨리 따라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효성의 팔을 붙잡았다.“효성아, 너 오해한 거야!”하지만 효성은 연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 보여. 너 전에 나한테 선배 가까이하지 말라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난 그게 임유진을 위한 줄 알았는데, 결국 너 자신이 가로채려고 그런 거였네!”“연하야, 난 예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들었어. 자존심도 없고, 자기 몸도 함부로 굴리고, 남자만 보면 달려드는 꼴, 진짜 더러워!”“근데 설마 유진이 좋아하던 남자까지 너랑 자게 만들 줄은 몰랐네. 정말 역겹다!”효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차가운 눈빛으로 연하를 마지막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앞으로 난 너 같은 친구 없어.”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마지막 틈새에서, 효성의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연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손끝까지 시린 듯,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여진구가 다가와 인상을 깊이 찌푸렸다.“내가 효성이한테 전화해서 설명할게.”연하는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필요 없으니까 이제 가요. 나도 출근해야 해요.”“이 상태로 무슨 출근이야?”진구는 걱정스럽게 말하자, 연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나를 너무 얕보지 마요. 하늘이 무너져도 난 일하러 가야 해요. 누가 뭐래도, 돈 버는 건 멈출 수 없으니까요.”진구는 연하 집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재킷을 집었다.“혹시라도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 그리고 정말 미안해.”“말했잖아요, 선배 잘못 아니에요. 아마 우리 사이엔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을 거예요.”연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효성이 성격 알잖아요. 입은 독하지만 마음은 여려요. 며칠만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올 거예요. 우리 예전에도 자주 싸웠거든요.”진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난 간다.”“잘 가요.”연하는 문 앞까지 배웅한 뒤, 힘없이 거실로
앞으로 어떤 더 큰 프로젝트가 나타나든, 더 큰 유혹이 있든, 과연 계약을 따내기 위해 몸까지 내줄 수 있겠는가?그래서, 애초부터 한 발짝도 물러서선 안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준선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진구는 연하의 맥주 캔과 자신의 것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야지, 그게 맞는 거야.”연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물었다.“담배 피워도 돼요?”이에 진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담배 피우는구나?”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피곤할 때 한 대 피우는 게 습관이에요.”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연하는, 연기를 내뿜으며 당당하고도 시원한 기운을 풍겼다.“하루 종일 일 마치고, 이렇게 늦은 밤에 바람 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이 시간이 제일 편안해요.”진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담배 너무 자주 피우지 마. 특히 여자한텐 더 안 좋아.”“그래요.”연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어온 터라, 더는 마음에 닿지도 않았고, 굳이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맥주를 다 마신 연하는 다시 일어나 술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이야기꽃이 피었고, 바닥엔 텅 빈 캔들이 하나둘 늘어갔다.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넘었고, 방연하는 머리를 짚으며 일어났다.“이제 정말 못 버티겠어요. 선배가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내 목숨까지 줄 수는 없어요. 난 이만 자러 갈 테니까. 나갈 땐 문 좀 잘 닫고 가요. 고마워요.”연하는 휘청이며 안방으로 향했고, 진구는 맥주 캔의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잘 자.”“잘 자요.”연하는 흐릿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안방 문을 닫아버렸다.다음 날 아침.연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숙취로 머리가 아파 지끈지끈했고, 눈도 제대로 안 뜨인 채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거실로 나왔다.“누구야?”‘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다니.’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연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거의 주저앉을 뻔한 그녀는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진구를 보고 소리쳤다.“선배
호텔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문혁의 상처를 확인하고 증거를 채집한 뒤 병원으로 이송시켰다.“누가 때린 거죠?”경찰이 묻자, 연하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제가 때렸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성추행하려고 해서, 저항하다가 술병으로 머리를 쳤어요.”연하는 말을 마치고, 목에 난 멍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여진구가 연하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등 뒤에 감싸 안으며, 또렷한 얼굴에 냉철한 기색을 띠고 말했다.“제가 때렸어요.”연하는 진구를 말리려 했지만, 진구는 그녀의 팔을 단단히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경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들것에 실려 나가는 김문혁도 흘끗 본 뒤,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는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일단 경찰서로 같이 가시죠. 진술이 필요해서요.”거의 자정 무렵, 진구와 연하는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김문혁이 연하를 성추행하려다 폭력을 가한 사실과, 진구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다는 점, 룸 안의 CCTV와 다른 사람들의 진술까지 확인된 덕분에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서늘한 밤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연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진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정말 고마워요.”진구는 재킷을 어깨에 걸친 채 가볍게 웃었다.“다음에 만나면 모르는 척 말고 오빠라고 한 번 불러. 그걸로 충분해.”연하는 코웃음 쳤다.“분명히 선배가 먼저 삐진 거잖아요.”진구는 비웃었다.“너, 정말 남자 앞에서 의리도 잊는 스타일 아니야?”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내가 만약 남자에 눈이 멀었으면, 선배랑 임유진을 맺어주고 나는 구은정을 쫓아다녔겠죠. 내가 이런 짓까지 한 건 다 유진이를 위한 거예요.”“선배도 유진이를 위한다면, 유진의 기억을 되찾게 도와주고, 구은정이랑 다시 이어주는 게 맞지 않아?”진구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넌 구은정이 예전에 유진이한테 뭘 했는지 몰라서 그래! 자기 손으로 밀어내 놓고, 지금 와서 되돌리라고? 말도 안 돼
두 달 전, 김문혁의 아내가 그가 애인을 숨겨둔 사실을 들켜, 여자를 찾아가 얼굴을 긁어버린 일이 한동안 시끄럽게 퍼졌었다.방연하는 이 일을 이용해 김문혁을 견제하려 했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우리 마누라가 감히 연하 씨 얼굴을 긁기라도 하면, 바로 쫓아낼게. 오빠가 든든히 지켜줄 건데, 뭐가 무서워?”‘이게 사람이 할 말인가?’짐승보다도 못한 놈이었고, 짐승도 이 사람보단 염치가 있을 거다.연하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얼굴엔 여전히 웃음을 띠며 말했다.“사장님은 든든하시겠지만, 저는 감히 사모님을 도발할 용기가 없어요. 이렇게 하죠. 진심을 담아 석 잔 마실게요. 그 정도면 괜찮으시죠?”김문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가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내 소원은 러브샷 한잔하는 거예요. 연하 씨가 내 소원 들어주면, 나도 연하 씨 소원 들어줄게요.”장연구는 초조하게 상황을 정리하려다 연하에게 말했다.“연하 씨, 그렇게 까탈 부리지 마요. 김문혁 사장님이 연하 씨를 여동생처럼 아끼시는 거 몰라요?”“술 한잔한다고 뭐가 어때서요? 마시기만 하면, 바로 서명하신다잖아요.”연하는 속으로 장연구를 향해 이를 갈았다. 이익에 눈이 멀어 사람 인격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한 방연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고 말했다.“그러면 사장님, 말한 대로 해주셔야 해요.”김문혁은 흥분한 얼굴로 몸을 기울였고, 한 팔을 연하의 뒤통수 너머로 뻗으며 억지로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진구는 옆 사람과 대화 중이었다가, 그 장면을 보고 고개를 돌려 연하와 김문혁이 러브샷을 하려는 걸 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명확한 혐오가 스쳤다.‘다른 사람들을 훈계할 땐 그토록 당당하더니, 자기 일이 되니 결국 돈 때문에 뭐든 하는구나.’연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살짝 돌리며 김문혁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아무리 피해도 상대가 악의를 품으면 피해 갈 수 없었다.술을 마시는 순간, 김문혁은 고개를 기울이며 연하
연하는 더욱 부드럽고 정중한 미소를 지었다.“사장님,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욕이 나왔다.‘진짜 속 좁아! 그때 그냥 진실 좀 말했다고 아직도 이러는 거야? 유치하게.’하지만 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얌전히 얼굴 세워주기로 했다. 여진구가 아니라, 자리를 위해 참는 거였다.김문혁이 연하를 불렀다.“연하 씨, 여기 옆자리 비워놨어요. 이리 와요.”마침 김문혁 사장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마치 일부러 그녀를 위해 비워둔 것 같았다. 연하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가 느긋하게 앉았다.김문혁은 연하의 쇄골이 드러난 드레스를 힐끔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연하 씨 오늘 정말 예쁘게 입었네요. 평소엔 늘 정장만 입어서 그 아름다움이 다 가려졌던 것 같아요.”연하는 살짝 웃었다.“오늘 김문혁 사장님 뵌다고 해서 특별히 옷 갈아입었죠.”진구는 그연하 얼굴에 떠오른 영업용 미소를 힐끔 보고, 저 미소가 왜 그리 위선적으로 느껴지는지 불쾌했다.김문혁 사장은 계속해서 말했다.“주말에 불러내서 미안하긴 한데, 연하 씨는 괜찮죠?”연하는 웃으며 대답했다.“주말에 사장님을 뵐 수 있다니, 오히려 더 기뻐요.”김문혁은 더욱 흐뭇하게 웃었다.“연하 씨, 정말 기분 좋게 말씀하시네요. 이 한 잔, 연하 씨께 드릴게요.”연하는 깔끔하게 한 잔을 들이켰다. 그녀가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마시는 걸 본 김문혁은, 연하가 체면을 세워준 걸 느끼며 만족해했고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았다.술자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연하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김문혁은 진구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고, 장연구가 진구와 가까운 부사장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그를 통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장연구는 김문혁을 도와주는 명분으로, 이번 협업 건의 다음 기획 계약을 따내려 했고, 그래서 연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연하가 이 프로젝트를 계속 맡아왔고, 장연구도 그녀를 꽤 신뢰하고 아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즉, 이 자리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