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희는 난처한 얼굴로 자기 딸을 바라보았다. 하순희는 소희를 함정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강성이나 경성 모두에서 그들의 집안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소희는 업계에서 매우 유명하고 몇몇 재벌가와 연이 닿아 있지만, 결국 권력 없는 디자이너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보니, 소희가 디자인 업계에서 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은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시연아, 나가!” 소정수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싫어요!” 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소희를 돕지 않더라도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말아 주세요, 제발요!”소찬호도 문을 밀고 들어왔다.“아버지, 어머니, 소희 누나를 괴롭히면 저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찬호는 이제 고등학생이었고, 키는 거의 180cm에 다다랐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에 하순희는 이를 악물고 소정수와 눈을 맞춘 후 결심한 듯 이씨 집안을 바라보았다.“죄송합니다만, 당신들의 말대로 할 수는 없어요. 이 돈도 가져가세요!”하순희는 그 카드를 다시 밀어 넘기자 맞은편의 남자는 냉소하며 말했다.“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른이라면 사리 분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정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우리는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소희를 비방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당신들이 이씨 집안과 어떻게 대처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맞아요!” 하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돈을 좋아하지만 양심을 팔 수는 없어요.”남자는 냉소적으로 말했다.“두 분 정말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가세요!” 하순희는 결심한 듯 성격대로 시원하게 말했다. “어차피 소희도 이미 당신들에 의해
소시연의 아버지도 궁금해하며 다가오자, 시연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제 추측이에요!”“소희와 연락이 된다면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강성으로 돌아오지 말고 외부에서 몸을 피하라고 하렴.” 하순희는 한숨을 쉬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집안은 당분간 이씨 집안과 고택의 압박을 받겠지만, 우리 스스로 운에 맡겨야겠구나.”“아버님이 소희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야지.”그러자 소찬호가 말했고 시연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두려워하지 마세요. 저와 누나가 있으니까요!”“엄마, 아빠, 소희 편에 확고히 서야 해요. 오늘의 결정은 분명 옳은 선택이에요.”하순희는 시연이 소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연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조백림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야겠어.”소정수가 일어났다.“내가 직접 갈게!”이씨 집안 사람들은 소씨 집안을 떠나자마자 이진혁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이에 이진혁은 냉소하며 말했다.“눈치 없는 것들!”“그들은 아마 임구택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이진혁은 말했다.“임구택? 나는 개입하길 바라네. 소희를 지킬 수 있을지 보자고!”소희가 삼각주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다. 소희가 의지하던 그 진언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구택이 어떻게 국면을 뒤집을지 보고 싶었다. 구택이 소희가 자기 아내라고 말하기만 하면, 임씨 집안 전체가 상부의 의심을 받을 것이다. ‘어디 그럴 배짱이 있는지 한번 보자고!’이진혁은 지시했다.“네티즌들을 선동해서 소희가 외국물에 오래 있더니 자기 나라를 버리려고 했다는 죄명을 확실히 하도록 해. 여론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알겠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백림은 소정수의 전화를 받자 담담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알고 있어요.”이에 소정수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소희가 외부에서 몸을 피하고 이 일이 지나갈 때
“조백림!” 임구택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큰일났어요.”백림은 국내에서 소희를 음해하는 찌라시들에 대해서 말했다.“지금 난리가 났어요. 소씨 집안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소희를 비방하고 있고, 소희는 인터넷에서 전부 까이고 있어요.”“북극 디자인 작업실과 지엠도 영향을 받고 있고요.”구택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가웠는데 마치 차가운 안개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형 언제 돌아와요? 지금 제가 소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백림이 물었다. “장시원 형도 없고, 성연희 씨와 노명성도 신혼여행 중이라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마 이씨 집안은 이 타이밍을 노렸던 것 같아요.”이씨 집안은 소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 소희는 이미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모든 찌라시들이 기정사실이 되었다.소희가 시간이 지나 돌아와 해명한다고 해도, 아마도 네티즌들은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이씨 집안은 바로 이 점을 생각해서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어 구택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갑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돌아가면 그때 얘기해.”“알겠어요. 먼저 이씨 집안의 동향을 관찰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그래!”...소희가 양녀인지 친딸인지에 대한 소씨 집안사람들의 논쟁은 소희를 향한 온라인 폭력을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 이후 소정수 쪽에서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기에, 모든 사람은 소정인 부부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정인 부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심지어 소동의 인스타그램도 파헤쳐졌다. 이전에 표절 사건이 이미 확정된 상태였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King이 뒤에서 자본을 이용해 조작하여 진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냐고.그 사건은 King의 등장을 위한 준비였을 것이었고 소동은 단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동정심 때문인지, 소동은 다시 약간의 인기를 얻었다. 표절이라
곧 새벽이 다가왔고 구택은 휴대폰 화면의 시간이 초 단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구택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라 소희의 목걸이와 연결된 시스템을 켰다. 체온과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인 상태였다.구택은 약간의 찡그리며 생각했다. ‘소희가 또 목걸이를 벗었나?’구택은 이전에 소희가 잠잘 때 목걸이를 벗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물어봤더니 잠잘 때 무엇인가를 착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을 자는 중에도 구택은 소희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싶었다. 왜냐하면 소희가 지금 구택의 품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구택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시간이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야, 생일 축하해!]...다음 날, 평소와 같이 오전 9시 가까이 되어 남궁민이 소희를 깨웠다. 소희는 이번에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깨어났고, 깨어난 후에도 눈빛은 계속해서 멍한 상태였다.“라일락?” 남궁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동자가 약간 움직였다. “남궁민?”이에 남궁민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예요.”소희는 약간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 왜 계세요? 무슨 일이죠?”남궁민은 마음속으로 놀라며, 표정을 더욱 부드럽게 하고, 목소리도 더 낮게 말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방금 당신을 깨웠어요!”“그래요?” 소희는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예전에는 악몽을 꾸고 나면 기억이 생생했는데, 오늘은 꿈에서 무엇을 봤는지 잊어버렸다. 그냥 피곤할 뿐, 계속 자고 싶고 깨어나기 싫었다. 이에 남궁민은 소희에게 따뜻한 수건을 건넸다. “얼굴을 닦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해독약은 먹었나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었어요.”“근데 왜 효과가 없지?” 남궁민은 깊게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왜인지 모르게 소희의 상태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곧 남궁민은 임예현을 찾아갔고, 예현은 이 약제가 빌이라는 박사가 연구한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완전히 참여하지 않아 해
소희는 원래 약의 부작용이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됐어요, 애초에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니까!” 남궁민의 눈에는 아픔과 죄책감이 스쳤다. 남궁민은 깊이 한 번 소희를 바라보고 문을 열고 나갔다. 남궁민이 나간 후, 소희는 어젯밤의 꿈을 자세히 떠올려 보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소희는 분명 꿈을 꾸었다. 그 방황과 슬픔의 느낌이 아직도 소희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왜 레이든은 나를 쉽게 놓아주었을까? 정말 남궁민과 이디야 때문일까? 레이든은 아직도 나를 통제하고 있는 걸까?’소희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해결할 수 없는 이유 모를 슬픔 때문에 소희는 몸을 웅크렸고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지 몰라 정말로 슬펐다. 이 슬픔은 소희가 깨어나려는 의지조차 파괴하고 있어 꿈속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마치 꿈의 세계가 소희가 있어야 할 곳인 것처럼 느껴졌다.소희는 옆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로 고정된 메시지는 임구택이 새벽에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자기야, 생일 축하해!]짧은 몇 글자였지만, 한 줄기 빛처럼 소희의 마음 속 어둠을 몰아내고 불안과 슬픔의 감정을 물리쳤다. 순간, 소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오랜만에 눈물이 쏟아져 나와 처음으로 울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소희는 반드시 잘 지내야 했다. 구택이 있는 한, 소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윽고 소희는 구택이 준 목걸이를 꺼내어 목에 걸었다.그러자 구택은 곧 소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방금 일어났어? 어젯밤 너 피곤하게 하지 않았는데, 왜 이제 일어났어?]소희는 웃으며 답장했다.[오늘 생일이라서, 맘대로 하고 싶어. 안 돼?][돼.][생일이 아니어도, 나는 언제든지 맘대로 해도 돼.]소희의 화사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소희는 구택이 보낸 메시지를 오랫동안
소희는 영상 통화를 받으며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할아버지!”운성의 하늘도 맑았고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소희야, 생일 축하해!”소희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생일 선물은 너랑 너희 오빠 둘 다 준비했고 네 생일선물은 네 방에 놓아두었어.”“오석이 오늘 점심에 생일상 준비해 생일을 축하해 줄 거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황선국 셰프와 올해의 생일상은 어떻게 차릴지 고민하고 있어.”“너도 보고 나면 바로 먹고 싶을 거다. 혹시 아냐? 먹고 싶어서 곧바로 돌아올지?”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분명 셰프가 널 불러오기 위한 아이디어일 거야.”소희는 가슴이 따뜻해지며 울컥했다. “셰프님과 오석 할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너 아직 밀라노에 있구나, 언제 돌아오니?” “며칠 후면 돌아갈 거예요. 돌아가면 바로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게요!” 소희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오늘 생일을 같이 보낼 사람이 있어? 케이크는 먹었나?” 강재석은 소희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일에 케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있어요, 많은 팬들이 함께 했어요. 주최 측에서도 많은 케이크를 보내주었어요!” 소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방에 케이크가 가득해요!”“우리 소희 정말 대단하구나!” 강재석도 자랑스러워했고 소희를 자애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임구택도 걱정할 거야.”“네!”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돌아갈게요!”“좋아, 그럼 바쁠 테니 그만 끊자. 케이크 많이 먹어야 해.” 강재석이 당부했다.“할아버지도 많이 드세요, 저도 먹었다고 생각할게요.”“좋아!”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운성에서 강재석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지고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강재석은 소희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희가 걱정하지 않도록 모른 척해야 했다.곧 오석은 강재석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아가씨의 상태가 좋아 보이
화영과 마민영, 그리고 많은 사람이 소희에게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곧 돌아갈 거야!”핸드폰을 내려놓고, 소희는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지하 12층에 도착했을 때, 라펠트는 자신의 여자와 소파에서 키스하며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소희가 들어갔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소희는 주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하층은 완전한 무진 환경이라 딱히 청소할 것이 없었다. 소희는 침실로 가서 여자가 벗어놓은 옷을 정리했다.그때, 거실의 두 사람은 술을 들고 강변으로 낚시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희는 서재로 가서 청소를 시작했다. 컴퓨터가 켜져 있었고, 배경 화면은 북두칠성 그림이었다. 광활한 밤하늘에 북두칠성만이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희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라펠트 같은 사람이 아무 그림이나 화면 보호기로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혹시 라펠트는 지하에 있어서 실제 별을 볼 수 없어서 밤하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직감적으로 소희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북두칠성 그림을 머릿속에 새기고, 청소하는 척하며 서재를 다시 한번 뒤졌다. 이때 간미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료가 마우스에 있지 않을까?”소희가 처음 서재에 들어갔을 때, 렌즈로 스캔하여 마우스 안에 경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라펠트가 외부인이 자신의 컴퓨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경보기를 설치했다고 생각했다.이것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었지만 레이든은 반대로 생각하고, 자료를 마우스에 숨겼을 수도 있다. “어떻게 경보기를 끌 수 있을까?”미연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침입하여 침착하게 말했다. “끌 수 없어. 라펠트의 지문이 아니면, 마우스를 만지는 순간 자동으로 경보가 울릴 거야.”이에 미연은 거의 확신하듯 말했다. “자료는 경보기 안에 있어.”그러자 소희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라펠트를 먼저 죽이면 어떨까?”미연은 말했다.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지!
똑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누구세요?”“예비 남자친구!” 남궁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희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자신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그려놓은 그림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어나서 문을 열러 갔다.‘잠깐만? 남궁민이 방금 뭐라고 했지? 나의 예비 남자친구? 헉!’소희는 화를 참으려 했지만, 자신이 곧 온두리를 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남궁민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문이 열리자, 남궁민은 흰색 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셔츠 목 부분이 열려 있어 매력적인 쇄골이 드러났고, 남궁민의 귀족적인 기품에 약간의 매혹적인 분위기가 더해졌다. 남궁민은 고개를 기울여 갈색 눈을 가늘게 뜨고 소희에게 말했다. “방금 또 어디 갔다 왔어요?”그러자 소희는 차분하게 말했다. “말했잖아요.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이에 궁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약간의 무력감을 보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소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가요, 재미있게 놀아줄게요!”소희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손대지 마세요. 나는 당신이 그날 바에서 본 남자와 같은 병실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으니까.”남궁민은 손을 거둬들이며 웃었다. “정말 재미없네. 내가 당신을 왜 좋아하겠어요?”“아마도 당신 여자친구들 중에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았으니까!” 소희는 발걸음을 아래로 옮기자 남궁민은 소희를 따라오며 말했다.“당신은 내가 당신이 나랑 밀당을 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를 너무 우습게 보셨네요. 전 어떤 유형의 여자든지 다 만나봤어요.”소희는 남궁민을 흘겨보았다.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나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남궁민은 할 말을 잃었다. 원래 남궁민은 자랑스러웠지만, 지금 소희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흠, 우리 바에 갈까요?”“안 가요, 점심 먹으러 가야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