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소리를 들은 손영은 바로 소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지만 소녀는 이미 홀로 바닥에 누운 채 아웃되어 있었다.그리고 손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소녀가 손영을 보자마자 그의 다리를 안고 큰소리로 통곡했다.“나 놀라 죽을 뻔했어, 자기야!”“괜찮아, 진짜 총도 아닌데 뭐가 무서워?”“아니, 아니. 방금 그 순간, 나 정말 그 여인 손에 죽는 줄 알았어!”두려움에 가득 찬 소녀는 놀란 나머지 얼굴색마저 변해있었다.그녀는 총 게임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죽음에 직면한 공포감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아까 그 순간의 소희는 정말 마치 아수라장에서 걸어 나온 사신과 같았다.놀란 여자친구를 위로하고 있는 손영은 순간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그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격 선수로서 아마추어 몇 명을 아웃시키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내 여자친구도 보호할 수 없다면, 난 남자도 아니지.’그래서 그는 손에 든 총을 꽉 잡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복수해 줄게.”장명 그들은 이미 흩어져 보이지 않았고, 손영은 바로 새로운 대오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소희를 포위하지 않고 블루 팀의 깃발이 놓여진 보루로 향해 달려갔다.하지만 블루 팀에 도착한 후 그들의 얼굴색은 순간 변했다.보루에는 깃발이 없었다.‘어쩐지 오는 길이 순탄하더라니.’‘문제는 블루 팀의 세 사람이 어떻게 레드 팀의 포위를 피해 가면서 이렇게 빨리 깃발을 빼앗아간 거지?’‘너무 놀라워.’그러다 손영이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안색이 변해서는 소리쳤다.“블루 팀이 깃발을 가지고 있어! 어서 우리 쪽 보루로 돌아가야 해!”……같은 시각, 임유민이 파란색 깃발을 메고 임구택과 함께 느릿느릿 레드 팀의 영지로 향하고 있었다.그러다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실망하며 입을 열었다.“레드 팀에 사람이 엄청 많은 거 아니었어요? 왜 가는 길에 두 명밖에 만나지 못한 거예요?”‘게다가 아무런 전투력도 없었고.’이에 임구택이 웃으며
소희의 그림자가 시선 속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임유민이 고개를 돌려 임구택에게 물었다.“둘째 삼촌, 방금 소희 쌤이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이곳은 수풀이 우거져 아무리 시력이 좋은 임유민이라고 해도 소희를 알아보지 못했는데.임구택이 듣더니 미간을 올리며 대답했다.“마음이 통해서?”“쳇!”소희 그들은 마치 유원지를 돌아다니는 여행객마냥 여유만만하게 레드 팀의 보루를 향해 직진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레드 팀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들 레드 팀의 팀원들이 하나둘씩 아웃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은 블루 팀 팀원들의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했으니까.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분명 길을 막으며 블루 팀의 보루를 향해 직진했는데도 블루 팀이 깃발을 떼어 갔다는 것이다.처음까지만 해도 상대를 경시했던 프로 선수들은 그제야 전부 고도로 정신을 차렸다.적들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으니까.그렇게 레드 팀의 팀원들은 그들의 깃발을 수호하러 신속히 보루로 철수하며 또 블루 팀의 팀원들을 열심히 찾았다.임구택과 임유민이 한창 레드 팀의 보루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먼 곳의 수풀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 여인을 잡아!”덩달아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임구택과 임유민이 듣더니 순간 눈길을 마주쳤다.“소희 쌤일가요?”임구택은 소희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레드 팀의 모든 팀원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절대 소희의 적수는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레드 팀이 짠 연기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감이 들었다. 설령 10의 1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는 소희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한 번 가볼게. 곧 돌아올 테니까 잘 숨어있고.”임구택이 한마디 당부하고는 임유민의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임유민은 제자리에서 경계하며 사방을 주시했다.그러던 중 수풀 쪽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렸고, 임유민이 즉시 나무 뒤로
이때 갑자기 깃발을 지키고 있던 네 명 중의 한 사람이 헤드셋에 대고 입을 열었다.“아니, 깃발은 우리가 잘 지키고 있어.”“진짜?”“잘됐네!”소희가 한참 듣더니 눈썹을 올렸다. 비록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임구택과 임유민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로 봐서는 레드 팀에게 잡힌 게 분명했다. 그래서 소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총을 들어 보루에 있는 사람을 향해 조준했다.그리고 ‘뻥! 뻥!’ 두 번의 총소리와 함께 금방 통화를 끝낸 사람과 그 옆에 있던 동료가 순간 아웃되었다.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뜬 채 상대방의 몸에서 반짝이고 있는 빨간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땅에 주저앉았다.그 모습에 나머지 두 동료도 곧바로 달려와 소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총을 쐈다.이에 소희가 날렵하게 모든 탄알을 피하면서 나무줄기를 밟고 공중으로 훌쩍 날아올라 보루에 숨어 있는 사람을 향해 총을 쐈다.뻥-뻥-또 두 번의 총소리와 함께 레드 팀은 순간 전멸되었고, 팀원들은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총을 내려놓고 숲에서 걸어 나오는 소녀를 쳐다보았다.표정 한 번 변한적 없는 소희는 레드 팀의 팀원들을 덤덤하게 힐끗 쳐다보고는 보루의 벽을 짚고 가볍게 훌쩍 뛰어올라 레드 팀의 깃발을 떼어냈다.그런데 이때, 방금 헤드셋으로 대화를 주고받던 팀원의 헤드셋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에 소희가 바로 그 팀원의 헤드셋을 떼어내 귓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헤드셋 맞은편에서 누군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블루 팀의 그 여인이 보루에 접근하기만 하면 단풍나무 숲으로 유인해! 우리 지금 블루 팀의 꼬맹이를 잡았으니까, 나중에 다 같이 죽여버리자고!]장명의 목소리였다.소희가 순간 눈빛이 차가워져서는 대답했다.“알았어, 금방 갈게.”그러고는 상대방이 소리를 내기도 전에 헤드셋을 던지고 레드 팀의 깃발을 말아 잘 챙긴 후 단풍나무 숲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소리 따라 쫓아온 임구택은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서 또 4~5명이 몰려왔고, 임구택과 소희는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려 서로 등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달려드는 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순간 상대방 팀에 네 사람이 쓰러지고 한 사람이 도망쳤다.손영 등은 확실히 뛰어난 사격 선수이다. 그러나 삼림 대전에서는 사격술만 뛰어났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 동작이 민첩해야 하고, 환경에 대한 감지력이 뛰어나야 하는 동시에 경각성도 높아야 한다.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소희와 임구택을 오늘날까지 살아오게 했던 실력이다.그런데 장명 그들이 평소에 일탈할 겸 총 게임을 몇 번 놀았다고 소희와 임구택의 생존 본능에 도전하려 했으니 실패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아무런 소통도 필요 없이 호흡이 척척 잘 맞았던 소희와 임구택은 불과 몇 초만에 또 상태팀의 세 사람을 아웃시켰다.그러다 나머지 팀원들은 무슨 명을 받았는지 갑자기 신속히 후퇴하면서 숲의 중심위치로 돌진했고, 소희와 임구택이 뒤따라 도착했을 땐 장명의 총이 임유민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손영 등 나머지 7~8명은 일렬로 늘어서서 소희와 임구택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고.심지어 레드 팀 이미 아웃된 팀원들도 그곳에 모였다. 다만 그들은 더 이상 대결에 참여할 수 없어 보루 위에 앉아 두 팀 간의 대결을 구경하고 있었다.그중 제일 중간 자리에 앉은 손영의 여자친구가 차가우면서도 약간의 두려움이 묻어있는 눈빛으로 소희를 주시하며 손영을 향해 소리쳤다.“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고 바로 죽여! 특히 저 여인!”이때 손영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당신들 대체 뭘 하는 사람이지?”두 사람은 동작이 민첩할 뿐만 아니라 사격술도 국가선수급은 되는 것 같아 보이는 게, 게임은 물론이고 진짜 정글전에도 충분히 참가할 자격이 있었다.‘설마 코치가 게임의 난이도를 높여 더 많은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대한 특전사를 초대한 건가?’‘이번 실전이 평소보다 더 짜릿하긴 했지.’“일반인.”소희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게임은 그렇게 끝났고, 블루 팀은 아무런 사상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하에서 양 팀의 깃발까지 전부 떼어냈다.반대로 레드 팀은 깃발을 잃은 것도 모자라 발버둥 칠 여지조차 없이 전멸되었다.“세 분 설마 이 게임 속의 NPC인 건가?”손영은 비록 게임에서 진 것 때문에 체면이 많이 구겨졌지만 그래도 소희와 임구택의 실력에 탄복되어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이에 임구택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냥 놀러 온 게이머야.”그러자 옆에 있던 장명도 다가와서는 칭찬을 아까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두 사람을 초대했다.“그런 거 치고는 너무 대단한 거 아니야? 정식 경기에 참가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임구택이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거절했다."우리는 딱히 그런 경기에 참가할 생각이 없어서.”하지만 숭배의 마음에 더욱 흥분해진 장명은 두 사람을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앞으로 자주 같이 팀을 짜서 놀자! 두 사람만 있으면 우리 무조건 백전백승할 거야.”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와 소희와 임구택을 설득했다.이에 제일 밖에 밀려나 있던 임유민이 인파를 비집고 들어와서는 냉소했다.“왜 나를 초대하지 않는 건데? 내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었어?”“나를 몇 초만에 제압했는데 실력이 형편없을 리가 있나!”장명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리고 내내 얼어붙어있던 분위기는 그제야 화기애애해졌다.이때 CCTV를 한 번 훑어보고 온 코치가 두 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정말 대단하네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진정한 정글전을 본 느낌이 들 정도로 저마저도 짜릿했어요.”소희가 듣더니 미소를 지었다.‘진정한 정글전이라?’‘이들이 진정한 정글전을 겪어봤다면 절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정글전 세 글자를 입밖에 내지 않았겠지?’그렇게 날은 어느새 어두워져 다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내내 소희를 물고 놓지 않았던 소녀가 갑자기 다가와서는 어색하게 소희를 불렀다.“그… 이, 이
월요일이른 아침, 청아는 시간에 맞춰 장씨 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뚝 솟은 건물을 쳐다보노라니 청아는 순간 감개무량했다.분명 2년 전에도 근무했었던 곳이지만, 심경은 그때와 너무나도 달랐다.‘괜찮아! 할 수 있어!’청아는 숨을 몇 번 깊게 들이마시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그녀의 이력서를 한 번 훑어본 프런트 직원이 다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서 이미 분부하셨습니다. 바로 인사팀으로 올라가 입사 절차를 밟으시면 됩니다.”청아가 듣더니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 인사팀으로 올라갔다.그러다 25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소식을 전달받은 인사팀 직원이 마중을 나왔고, 바로 청아를 인사팀 팀장의 사무실로 안내했다.인사팀 팀장이 이력서를 훑어보다가 청아의 경력사항을 확인한 순간 살짝 놀라서 물었다.“전에 이곳에서 일한 적이 있나요?”“네, 예전에 이곳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습니다.”“장 대표님과는 아는 사이인 거고?”인사팀 팀장이 궁금해서 물었다.이에 청아가 덤덤하게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장시원이 면접도 생략하고 바로 나를 대표 비서 자리에 꽂아주지 않았겠지.’계약서 작성이 다 끝난 후 청아는 정식으로 장씨 그룹의 정규직으로 되었고, 인사팀 팀장이 청아에게 엘리베이터 카드를 건넸다.“이건 대표님 사무구역의 전용 엘리베이터 카드. 지금 바로 39층으로 올라가 최결 최 조수님을 찾으세요. 그분이 알아서 임무를 배치해 줄 겁니다.”“네, 감사합니다!”청아가 다시 감사를 표하고는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숫자를 보며 청아는 순간 호랑이 굴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호랑이 굴에 들어선 찰나부터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땡-경미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자 우아하고 고풍적인 느낌이 물씬한 대표 사무구역이 눈앞에 펼쳐졌
남색 정장을 차려입고 길쭉한 두 다리를 내디디며 청아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장시원은 덤덤하고 온아했던 평소와는 달리 늠름하면서도 사람에게 이유 모를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뒤에는 회사 임원 몇 명이 따르고 있었고, 작은 소리로 인수 합병건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청아는 바로 몸을 돌려 한쪽에 서서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장시원을 향해 인사했다.“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장시원이 청아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이때 최결이 다가와 장시원을 향해 소개했다.“대표님, 이분은 새로 온 조수 우청아 씨입니다.”“알아.”장시원이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장시원의 태도에 최결이 눈썹을 올렸다.젊고 예쁜 아가씨가 면접도 거치고 않고 바로 39층으로 올라와 최결은 두 사람이 당연히 말 못 할 사이인 줄 알았다.하지만 방금 장시원의 미지근한 태도로 봐서는 또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내가 잘못짚었나? 설마 다른 사람이 대표님에게 사정을 해 청아 씨를 꽂아 넣은 거고, 그것 때문에 대표님이 언짢아하시는 건가?’그렇게 최결이 두 사람의 사이를 추측하고 있는 동안, 청아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바로 서류 복사하러 갔다.한참 후, 최결은 오늘의 일정표를 들고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다 장시원이 어제 커피를 마시면서 맛이 괜찮다고 했던 게 생각나 커피까지 한 잔 타주었다.고위층 임원들은 이미 회의실로 들어갔고, 사무실에는 장시원뿐이었다.최결이 커피를 장시원 앞에 내려놓고 오늘의 일정을 그에게 보고했다.장시원이 들으면서 처리해야 할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난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커피나 차를 타는 잡일은 우청아 씨에게 맡기세요.”최결이 듣더니 순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네!”“그리고 우청아 씨 오늘이 출근 첫날이라 아직 39층의 업무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거니까, 최 조수님께서 많이
잠시 후, 청아가 최결을 따라 회의실에 들어섰고, 회의는 그제야 비로소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회의에서 몇몇 고위층 임원은 열띤 토론을 통해 인수합병건의 이해득실을 분석하면서 각자의 해결방안을 제기했다.청아는 최결의 옆자리에 앉아 임원들이 제기하는 내용을 열심히 귀담아들으며 그 속에서 중점을 골라 기록했다.그리고 그러는 청아의 옆모습을 장시원은 이미 5초 넘게 쳐다보았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긴 바지 차림을 한 청아는 오늘따라 확실히 커리어 우먼 같았다. 다만 약간의 젖살이 붙어있는 하얀 얼굴은 옷차림이랑 다르게 많이 깜찍해 보였다. 특히 지금처럼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 모습은 이상하게 더욱 위화감이 들었다.‘몸매는 수척한데, 하필이면 둥글고 윤택한 얼굴을 가졌으니.’“대표님, 명실 쪽에서 제시한 조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때 한 임원이 갑자기 장시원을 향해 물음을 제기했고, 그 소리에 청아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장시원을 쳐다보았다.그러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장시원이 천천히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명씨 가문에 지금 분열이 나타났고, 명실이 이렇게 쉽게 우리 손에 수매되기를 원하지 않은 몇 명이 고의로 중간에서 방해하고 있습니다.”장시원의 대답에 다들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그제야 문득 문제의 중심을 알게 된 듯했다.그렇게 회의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회의가 끝난 후 장시원은 또 부대표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다 청아가 마실 차를 가지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부대표가 웃으며 물었다.“신입?”청아가 듣더니 바로 공손하게 인사했다.“처음 뵙겠습니다, 배 부대표님.”아까 회의실에서 청아는 이미 장시원 주변 몇몇 고위층 임원들의 자료를 다 살펴보았다. 그중 당원이라는 임원과 지금 사무실에 앉아있는 배강 배 부대표가 바로 장시원의 아주 유능한 오른팔이다.“장 대표님의 관심을 받을 만큼 예쁘게 생기긴 했네요. 오자마자 39층에 배치된 걸 보니.”배강이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
도도희는 필사적으로 참아왔던 눈물을 더는 막지 못하고 흘러내렸다.“시언아, 재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그 순간, 마치 재희가 사라진 직후로 되돌아간 듯했다.10대였던 강시언이 강성으로 달려왔을 때, 도도희는 목이 터지라 울며 절망 속에서 물었다.“시언아, 재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시언은 그때처럼 오늘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찾을 수 있어요.”그의 눈빛은 단호했다.“한 번 더 확인해 보면 안 될까요?”도도희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놀라며 되물었다.“뭐라고?”옆에 있던 도경수도 그 말에 희망을 얻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검사 결과가 실수일 수도 있다는 건가? 한 번 더 하면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거야?”“아니요.”시언은 고개를 돌려 아심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어둠 속에서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도도희 앞에 세우며 말했다.“이모, 이번엔 아심이랑 친자 확인을 해보죠.”시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사람이 놀라며 굳어버렸다. 도도희와 아심은 물론이고, 재아조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재아는 얼굴이 새하얘지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저, 저와 이모가 어떻게.”아심은 당황하며 손목을 뿌리치려 했지만, 시언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강아심, 네가 겪었던 일들과 재희가 겪었던 일이 비슷해. 그리고 네 등에 있는 태어나면서 생긴 점도 그렇고.”“많은 사람이 너와 도도희 이모가 닮았다고 한 적 있잖아?”도도희는 놀란 눈빛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등에도 그런 점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있긴 하지만 문신 때문에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아심은 시언을 돌아보며 덧붙였다.“비슷한 일을 겪은 아이들은 많아요. 그 점도 단순히 우연일 뿐일 수 있어요. 괜히 이모를 또다시 상처받게 하지 마세요.”시언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단호하게 말했다.“검사를 하지 않는 게 진짜 평생 후회로 남을 수도 있어. 검사를 해보고 아니라면
“다행이네. 오늘은 혼자 왔네.”강시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강아심은 어리둥절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시언은 아심과 대화를 나눌 의도는 전혀 없는 듯, 그녀의 손목을 잡고 차로 향했다. 아심은 걸음을 맞추느라 바쁘면서도 물었다.“어디로 가는 건데요?”갑작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간 상황에 아심이 머릿속이 복잡했다.‘혹시 지난번에 잘못된 신호를 준 걸까? 아니면 이 일이 수익성이 높다고 생각해 다시 돈벌이하러 온 걸까?’만약 돈 문제라면, 아심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여지는 있겠지만 말이다.시언은 그녀의 끝없는 상상을 알 리 없었다. 그는 차 문을 열어 조수석에 앉으라고 권하며 짧게 말했다.“도도희 이모를 만나러 가는 길.”그 순간 아심의 온갖 생각이 끊겼다. 그녀는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강성에 오셨어요?”“응.”시언은 단 한 마디의 추가 설명도 하지 않고 바로 차 문을 닫았다. 차에 올라탄 뒤, 아심은 다시 물었다.“이모는 어디에 계세요? 왜 미리 연락을 안 주셨지?”시언은 길을 응시하며 간단히 대답했다.“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이미 어두워진 저녁 하늘 아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시언의 옆모습을 선명히 비췄다.날카롭게 각진 얼굴과 차가운 분위기가 묻어나 강아심은 그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시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심도 더는 묻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도시 야경에 시선을 두었다.차 안은 한동안 침묵으로 가득했고, 이윽고 차는 도씨 저택 앞에 도착했다. 시언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내려.”아심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여기가 어디예요?”“내려 보면 알아.”아심은 살짝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비밀스러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심은 차에서 내려 그를 따라 오래된 한옥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에 가까워지자, 정원 안에서 여러 사람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도도희가 가장 앞에 있었고, 도경수와 강재석, 그리고 소희
소희와 강솔은 도도희를 부축해 방으로 옮겼고, 그녀를 잠시 눕게 한 뒤 임구택이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아래층에서는 도경수가 도도희가 갑자기 쓰러진 일로 크게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강재석이 곁에서 그를 진정시키며 마음을 다잡게 도왔다....위층에서는 이반스가 침대 옆에 서서 깊은 주름이 잡힌 이마로 걱정을 드러냈다.“도도희, 이러지 마. 내가 당신 딸을 꼭 찾아줄게. 반드시 찾을게.”도도희는 눈을 감은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먼저 나가 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소희는 이반스와 다른 사람들을 방 밖으로 내보낸 뒤, 물 한 잔을 따라 침대 옆에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죄송해요.”도도희는 겉으로는 재아에 대해 무관심한 듯 행동했지만, 딸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에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그 감정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아마도 과거에도 재아 같은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친자 확인 전에는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감정을 키웠지만, 이번처럼 결과가 확인되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도도희는 천천히 눈을 뜨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그걸 왜 탓하겠어?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책임을 추궁받는다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차가워질 거야.”도도희는 몇 마디를 하고 나니 조금 기운이 난 듯 물었다.“그 물 나를 위해 떠온거야?”소희는 잠시 멈칫하다가 얼른 물컵을 건네주었다.“네, 여기요.”도도희는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려 하자 소희가 급히 말했다.“아직 누워 계세요. 제가 물을 드릴게요!”“아니야, 방금은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 이제는 괜찮아졌어.”도도희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았다. 이윽고 시선이 천천히 방 안을 돌아다니더니, 이내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예전에 재희와 내가 이 방에서 함께 지냈었어. 발코니에는 재희가 가장 좋아하던 목마가 있었지. 그 목마에 올라타면 얼마나 웃었던지.”도도희는 책장 옆의 빈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경수가 말했다.“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어. 너를 위해 한 모든 일의 출발점이 결국 네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지. 하지만 뒤돌아보면, 너는 과연 정말 행복했을까?”“그날 네가 나에게 했던 말이 맞았어. 나는 항상 독단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어.그러니 앞으로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을게.”도도희는 아버지의 말을 듣자 갑작스레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돌렸다....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네 시간은 결국 금방 지나갔다. 강시언은 미리 차를 몰고 친자 확인 기관으로 향했다.결과를 받아 든 그는 가장 먼저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도도희에게 전송했다. 결과는 도도희와 재아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나왔다. 둘은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결과를 정리한 뒤, 시언은 차를 몰고 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도씨 저택에서 모두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재아는 긴장한 나머지 손을 멈출 수 없이 떨었다.재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도씨 집안의 사람이냐 아니냐는 앞으로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였다.도도희는 시언이 보낸 결과 사진을 확인하고, 눈길을 잠시 멈춘 뒤 무표정하게 고개를 들었다.“양재아는 내 딸이 아니야.”“뭐라고요?”재아는 그 순간 얼굴에서 피가 모두 사라진 듯 창백해졌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놀란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제 모든 조건에 다 들어맞는데요! 이 결과가 정말 정확한 건가요? 혹시 오류가 있지는 않나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도경수 역시 크게 실망한 듯 갑자기 십 년은 늙어 보였고, 눈에는 믿기지 않는 감정만 가득했다.“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재희가 아닐 수 있어?”강재석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어두워졌고, 소희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재아는 소희가 데려온 아이였다.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은, 희망을 준 뒤에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결국 소희는 스승에게 가장 큰 상처를
그러자 양재아가 웃으며 다가갔다.“아직 그렇게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네 시간이 걸린대요. 할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네 시간이나?”도경수는 자리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며, 분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이반스는 도도희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피 뽑는 거, 아프진 않았어?”도도희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조금 아프긴 했지만, 괜찮았어.”강재석이 천천히 말했다.“이 시간에 내가 한마디 하겠네.”모두가 조용해지며 강재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결과는 두 가지 중 하나겠지. 확률은 반반이야.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고. 재아가 도씨 집안 사람이라면, 모두가 기뻐할 일이야. 더 할 말이 없겠지.”“하지만 아니라면, 도도희 너도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마라. 도경수는 이 모든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아이를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어.”“네가 이재희를 잃어버렸을 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거의 죽을 뻔하지 않았니? 네 눈으로도 똑똑히 봤던 일이잖아.”도도희는 눈가가 약간 뜨거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말씀 잘 알겠어요.”강재석은 이번엔 도경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자네도 마찬가지야. 자네 몸은 큰 기쁨이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 재아가 아니라고 해도, 준비는 해둬야 해.”도경수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정원으로 향했다. 재아가 따라가려 일어서려 하자, 강재석이 말했다.“도도희, 가서 아버지랑 이야기 좀 해봐.”도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뒷마당의 긴 벤치에 도경수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활짝 핀 자스민 꽃을 조용히 바라보며, 시선은 허공을 떠다니는 듯했다. “아버지!”도도희는 그의 옆에 앉자, 도경수는 갑자기 말했다.“차라리 결과를 보지 말자. 그냥 재아를 재희라고 생각하자, 안 되겠니?”도도희는 눈을 내리깔며 차분히 말했다.“결국 아버지께서는 단지 위로받고 싶으신 거군요. 재아가 재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인가
양재아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멍하니 끄덕였다.“알아, 그런데도 조금은 두려워.”소희는 재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가족을 잃는 게 무서운 거야, 아니면 도씨 집안의 풍족한 환경을 잃을까 봐 무서운 거야?”재아는 순간 멍해졌고, 바로 대답했다.“당연히 할아버지를 떠나기가 싫어서지. 그분께서 저를 너무 잘 챙겨주셨어. 몇 달간 지내면서 진짜 친할아버지처럼 여기게 됐고.”“스승님이 그러셨잖아. 네가 친손녀가 아니라 해도, 이전처럼 너를 돌봐주실 거라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재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했다.“그래도 뭔가 다를 수밖에 없잖아.”소희는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양재아, 온두리에서 네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떠올려 봐. 산전수전 위험한 환경 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버텼잖아.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더 나쁘기라도 해?”재아는 소희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초심을 잃지 마!”소희는 마지막으로 재아에게 단호하게 말했다....오후에는 강솔과 진석도 도씨 집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시쯤, 드디어 도도희가 집에 도착했고, 이반스도 도도희와 함께 왔다.오랜만에 마당을 본 도도희는 약간의 감상에 잠겼지만, 동시에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랐다. 집 안에 모여 있던 모두가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강시언이 일어서서 말했다.“오늘 당장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은 사람이 갈 필요 없어요. 제가 도도희 이모와 양재아를 데리고 갈게요. 나머지는 집에서 기다리세요.”모두 이의 없이 동의했고, 시언은 도도희와 재아를 데리고 유전자 확인 기관으로 향했다.시언은 차를 부드럽고 빠르게 몰았고, 도도희와 재아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침묵으로 가득했다.시언은 원래부터 남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아우라를 풍겼고, 도도희는 무표정했다. 재아는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 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침묵을 깨고 먼저 말한 사람은 도도희였다. 도도희는 강아심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지승현은 냉랭하게 말했다.“아부하고 싶으면 직접 하세요. 나를 끌어들이지 말고요! 그리고 당장 사람을 불러 강아심의 차를 고치게 하세요.”“안 그러면 아심에게 신고하라고 할 거예요. 남의 재산을 훼손하는 건 엄연한 범죄예요. 지수철 감옥에 가게 하고 싶으면 그냥 놔두세요.”전화를 끝낸 승현은 바로 끊었다.권수영은 화가 나서 휴대전화를 집어던질 뻔했다. 그러나 곧 냉정을 되찾고 생각한 끝에 결국 사람을 불러 아심의 차를 고치게 했다.승현도 직접 아심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 동안 조심하고 운전할 때 주변 상황을 잘 살피라고 당부했다. 이에 아심은 알겠다며 자신이 신경 쓰겠다고 답했다....소희와 강시언 일행이 도씨 집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그러나 도도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도경수는 초조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직접 전화를 걸지는 못하고 강재석을 재촉했다.“도도희에게 다시 전화해서 어디쯤인지 물어봐!”그러나 강재석은 느긋하게 대답했다.“아침에 학생 몇 명 일을 봐주고, 이제 막 비행기를 탔다고 했잖아. 방금도 전화기가 꺼져 있던데, 오늘 안으로는 반드시 도착할 거야. 뭘 그리 급해 해?”그 말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착만 하면 됐어.”그러고는 다시 도우미를 불러 물었다.“방은 다 정리됐나?”도우미를 급히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평소에도 사흘에 한 번씩 정리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대청소까지 끝냈어요.”도경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듯했다. 곧 양재아는 차를 들고 도경수에게 내밀며 웃었다.“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엄마가 돌아오시면 떠나고 싶지 않으실 거예요. 제가 방에 장미꽃도 조금 꺾어놨어요.”도경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너희 모녀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아질 거다. 감정도 서서히 쌓일 테니, 네 장점도 점점 알게 될 거야.”재아는 얌전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점심을 다 먹고 난 후, 재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 전화
임구택은 소희를 한 번 흘겨보더니 강재석에게 말했다.“저런 모습인데, 저도 서두를 수가 없네요.”구택의 말투는 어쩔 수 없다는 듯했지만, 가득 담긴 애정이 느껴졌기에. 강재석은 기분 좋게 크게 웃었다.그날 밤소희와 구택이 있는 정원은 여전히 축제용 등불이 걸려 있었고, 하양이는 새하얀 깃털이 오색 빛으로 변해 있었다.소희는 호두를 들고 하양이를 먹이며 말하자, 하양이는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축하해, 소희! 소희, 아들 많이 낳아!”그 말에 소희는 깜짝 놀라 구택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가 이걸 가르쳤지?”이에 구택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그녀를 품에 안았다. 등불 아래 그의 또렷한 이목구비는 더욱 아름답고 선명해 보였다.“굳이 가르칠 필요 없지. 자꾸 듣다 보면 자연히 배우는 거야.”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하양이에게 계속 먹이를 주며 담담히 말했다.“덕담이니, 기꺼이 받지.”소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새가 한 말을 진짜로 믿는 거예요?”구택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길고 깊은 눈빛을 던졌다.“이미 생겼을지도 모르지.”소희는 몸을 돌리며 진지하고 살짝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괜찮아.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하더라.”구택은 긴 손가락으로 소희의 눈썹을 쓸어내리며 소희의 분홍빛 입술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이잇!”하양이는 두 날개로 눈을 가렸다. 구택은 소희의 이마에 이마를 대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 녀석이 못 보게 하자.”소희의 검은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고, 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구택은 그녀를 안아 방으로 향했다....다음 날 아침, 강성정아현은 아침에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마침 택시 잡기 힘든 시간대였다. 강아심은 아현에게 자신의 차를 사용하라고 했다. 이에 주차장에 도착한 아현은 멍해졌다.아심의 차 타이어 네 개가 모두 바람이 빠져 있었다. 아현은 확인한 뒤, 누군가 일부러 바람을
강씨 집안에 도착했을 때, 오석이 이미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집사님!”소희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갔다.“저 돌아왔어요!”“그래, 잘 왔구나!”오석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 소희를 바라보며, 반가움과 기쁨으로 눈이 빛났다. 곧이어 임구택이 다가와 오석에게 인사를 건네고, 소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강재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소희가 왔는지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마당에 나온 그는 소희의 모습을 보고 먼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식사 시간, 가족들은 다시 양재아와 도도희의 친자 확인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강시언이 말했다.“오늘 아침 도도희 이모에게 전화가 왔어요. 내일이면 강성으로 돌아온다고 하네요.”소희는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도도희가 재아를 만나고 나서, 친자 확인에 훨씬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마치 서둘러 재아와 관계를 끊으려는 듯했다. 이런 점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꽤 깊은 것 같았다.“그렇구나.” 강재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도 내일 함께 가보자꾸나. 도씨 집안의 큰일인데, 우리가 빠질 수는 없지.”시언도 결과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그럼 내일은 저와 소희, 구택이도 함께 강성으로 가죠.”“좋아.”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그렇게 일단 내일의 일정은 정해졌다.식사가 끝난 후, 예전처럼 구택과 시언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희는 강재석과 함께 연못가에 앉아 낚시하며 장기를 두었다.햇볕을 쬐자 소희는 졸음이 밀려왔고, 의자에 몸을 웅크린 채 반쯤 감은 눈으로 강재석과 장기를 두었다. 그랬기에 결과는 당연히 참혹한 패배였다.“할아버지!”소희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른하게 말했다.“오늘 밤에 저 여기서 자도 돼요?”“당연히 자고 가도 되지! 지켜야 할 전통은 남기고, 버려야 할 전통은 없어져야 하는 거야.”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엔 황선국 셰프가 내가 잡은 생선을 요리해 줄 거야!”“그럼 저도 같이 낚시할래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