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스킨케어 제품이야. 그리고 메이크업 브랜드도 있고. 내가 괜찮은 브랜드 몇 개 골라서 상의해 볼게. 모델료에 관해서는 무조건 장미보다 더 많이 받을 거야. 아무래도 지금 네 인기가 장미보다 더 높으니까.]이현이 웃으며 말했다."네, 언니가 알아서 해줘요. 난 언니를 믿어요."이현의 대답에 미연은 더욱 기뻤다.[그래. 너도 하루 종일 피곤했으니 일찍 쉬어라. 내일 아침 일찍 또 촬영장으로 가야잖아.]"괜찮아요. 내일은 점심에야 제 씬이 있으니까 좀 늦게 가도 돼요."[그래도 일찍 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지.]"네, 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휴대폰을 내려놓은 이현은 자신을 위해 술 한 잔을 따랐다.만족감과 허영심이 순간 최고조로 달했다.그리고 오늘의 기쁨을 참을 수가 없어 이현은 모든 사진 중에서 가장 예쁘게 나온 걸 한 장 골라 임구택에게 보냈다.그 후 그녀는 술잔에 든 술을 한 번에 다 마시고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가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다.‘소희가 얻었던 것들과 얻지 못했던 것들, 내가 전부 다 가질 거야.’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든 이현은 꿈속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었고, 임구택이 갑자기 시상무대로 올라와 손에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그들을 위해 손뼉 치며 환호했고, 이현은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띤 채 임구택의 청혼에 승낙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다급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몸을 돌리니 임구택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주위의 사람들도 사라졌다.그러다 놀라 눈을 뜨니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날은 이미 밝았다. 그리고 옆에 놓인 휴대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이현이 짜증을 내며 휴대폰을 들었다."여보세요?"[현이야, 너 어디야? 지금 큰일이 났어!]미연의 초조함이 섞인 목소리가 휴대폰 맞은편에서
가장 심하게 이현을 욕하고 있는 무리 중에는 기타 스타들의 팬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이현이 많은 스타들의 기세를 짓누른 것도 모라자 기자들이 있는 말 없는 말까지 보태가면서 이현을 칭찬하고 심지어 이현을 돋보이기 위해 죄 없는 스타들까지 비하했는데도 이현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으니 많은 스타들의 미움을 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 지금은 이현의 팬들만 제자리를 지키면서 이현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반드시 팬들에게 해명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미지가 진짜 제대로 무너질 거야.]스타는 이미지가 목숨이었다. 일단 이미지가 무너지게 되면 팬들마저 등을 돌리게 될 거고, 다시 일어서기도 힘들게 될 것이다."어떻게요?"미연이 평정심을 되찾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한참 후에 대답했다.[드레스가 GK 측에서 제공해 준 거고, 확실히 킹이 디자인한 것이 맞으니 우린 팬과 기자들을 속인 적이 없다고 해명하는 거야.]이현이 듣더니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렇게 공식입장을 밝혀줘요."대략 한 시간 후, 미연은 이현의 말투로 인터넷에 퍼진 댓글과 여론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드레스는 전속 모델 계약을 맺은 GK브랜드 측에서 제공해준 거고, GK 측에서도 분명 자신에게 그 드레스가 킹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면서 공식계정에 입장을 밝혔다.이현을 욕하는 댓글이 그제야 많이 줄어들었다. 드레스는 확실히 킹이 디자인한 거라 이현이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으니까.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드레스가 분명 킹이 특별히 이현을 위해 디자인한 것이 아닌데 왜 그런 대답을 했냐면서 이현의 허영심이 너무 과했다고 질책했다.비록 질책하는 네티즌들이 줄어들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이현의 팬들은 여전히 그녀를 지지하고 있었고 게다가 회사에서 홍보팀을 긴급 동원한 덕분에 국면은 잠시 통제되었다.하지만 이현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GK 측에서 다시 한번 이 일을 실검으로 밀어버렸다.GK도 드레스는 확실히 킹이 디자인한 게 맞지만
결국 마땅한 해결책을 얻지 못한 미연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마음이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엄두가 나지 않은 이현은 조용히 미연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후 미연은 회사의 홍보팀과 긴급회를 열어 더는 아무런 공식입장도 밝히지 말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비록 GK의 공식입장이 이현에게 불리하긴 했지만 드레스는 확실히 킹이 디자인한 것이었으니 기껏해야 이현이 킹의 인기를 이용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을 뿐 거짓말을 했다고 모함할 수는 없을 것이다.여론을 공제하고 있는 일부 네티즌들에 대해서는 홍보팀이 적당히 간섭할 거고, 이현의 팬들도 이현을 지켜주고 있으니 금방이면 잔잔해질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이현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무너질 건 분명했다.밖에 기자들이 모여 있어 감히 외출도 못하게 된 이현은 결국 미연에게 한바탕 화를 냈다. 미연이 그녀와 킹을 함께 엮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GK 측에 그 드레스를 요구하지 않았을 거고,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면서.이에 미연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나도 너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 게다가 북극 작업실이 갑자기 튀어나와 공공연히 우리를 디스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마치 우리가 그들의 원수인 것마냥!]무심하게 내뱉은 미연의 말에 이현은 갑자기 소희가 생각났다.이현은 북극 작업실과 왕래가 없었으니 원한을 품을 일도 없었다. 유일하게 그녀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희뿐이고, 소희는 북극 작업실의 직원이었다.‘설마 소희가 이간질을 해서 북극 작업실이 나를 노린 건가?’그런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니 더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이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그녀는 소희가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 그녀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니.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상대방을 물고 뜯을 생각만 하고.‘두고 봐, 이 일이 지나가기만 하면 넌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4~5일이 지나니 이현의 드레스 사건은 서서히 식기 시작했고, 마침 한
일주일 후의 어느 날, 오후에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제작진은 일찍 촬영을 끝냈고, 소희가 집에 도착했을 땐 겨우 3시밖에 되지 않았다.그래서 아래층에서 요요랑 놀다가 청아가 돌아온 후 함께 밥을 먹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위층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마침 이정남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소희야, 블루드로 와.][무슨 일인데요?]소희가 답장을 보내니 잠시 후에야 이정남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제작진에 새 배우가 들어왔어, 와서 인사해. 감독님들도 다 계셔.]그리고 곧 또 소희에게 방 번호를 보냈다.소희가 시간을 한 번 보고는 답장했다.[30분 후에 만나요.][그래, 기다릴게.]소희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낮에 입는 심플한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그리고 9시에 소희는 블루드에 도착하여 이정남이 보낸 방 번호에 따라 8층으로 갔다.문을 밀고 들어서니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밀려왔다. 방에는 등불이 색을 바꿔가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에 한참 적응한 후에야 소희가 안으로 들어갔다.방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겨우 네다섯 명정도.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누구는 여직원을 껴안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전부 소희가 아는 그 몇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정남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류 조감독이 보였다.그는 품속에 제복을 입은 여직원을 안은 채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여직원은 소희 쪽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고 소희를 발견한 류 조감독이 갑자기 안색이 변해서는 무의식 중에 품속의 여인을 밀어냈다.류 조감독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여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현이 가장 먼저 일어나 소희를 맞이했다."소희 씨!"소희가 덤덤하게 물었다."정남 씨는?""정남 씨는 술에 취해 저쪽 방에서 쉬고 있어요."이현이 손을 들어 한 방을 가리켰고, 소희는 그제야 방 안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무엇에 쓰이는 방인지 알 수가 없었다.소희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
소희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들어 걷어찼다. 하지만 이정남이 갑자기 그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소희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같이 뒤로 물러났다. 따라서 문을 걷어차기 위해 다 한 힘은 순간 분산되었고, 문이 한 번 흔들리고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이정남은 고의로 소희를 잡아당긴 것이 아니었다, 단지 버틸 수가 없었을 뿐.소희는 뒤로 끌려가면서 숨이 흩어지는 바람에 결국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갑자기 ‘윙-’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더 이상 호흡을 억제할 수 없었다.불길한 예감이 든 소희는 즉시 문을 걷어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빨아들인 연기는 신속히 그녀의 신경을 마비시켰고, 그녀는 마치 마취제를 맞은 사람마냥 의식이 흐리멍덩해지면서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여전히 문을 걷어찼지만 문은 움직이지도 않았다.그리고 소희가 걷어찬 첫 발에 문 밖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져 놀란 얼굴로 문쪽을 쳐다보았다.류 조감독이 눈살을 찌푸린 채 이현을 바라보았다."이현 씨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이현이 여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러자 방안에는 그녀와 류조감독, 여민 세 사람만 남았다.이현이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평소의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악함이 더 해져 있었다."류 조감독님께서 줄곧 소희를 품고 싶어 하셨잖아요? 오늘 밤, 소희는 조감독님의 것입니다."류 조감독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한 거예요?"그러자 이현이 여민을 보며 웃었다."여민이 덕분이에요."그 작은 방은 게임에서 진 사람을 징벌하기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벽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데 고추물을 뿌릴 수도 있고 겨자 연기를 뿜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민이 블루드의 매니저를 알고 있는 덕분에 쉽게 겨자 연기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던 것이고.여민이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내가 류 조감독님을 위해 큰 선물까지 해줬는데, 이걸로 전에 잃은 600만 원을 미봉하는 건 어때요?"류 조감독은 여
"지금 갈 거야?""가긴 뭘 가? 재밌는 연극이 막 시작되었는데, 보고 싶지 않아?"여민의 물음에 이현이 소파에 앉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당연히 봐야지!"여민이 감격에 겨워 이현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전에 저 방안에 카메라를 달았어야 했는데, 생방송을 볼 수 있게."이에 이현이 웃으며 대답했다."현장에서 들어도 똑같잖아."그런데 이때, 이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누군가가 방 문을 세게 걷어찼다. 그리고 웅장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고, 뒤에는 명우와 명빈 등이 따르고 있었다.이현의 웃음이 순간 굳어지더니 바로 놀라서 일어섰다."임 대표님!"임구택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방안을 훑어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소희는?"이현이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소희 씨는 여기에 없어요!"임구택이 작은 방의 문을 한눈에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이현이 막으려 했지만 명우가 먼저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만히 계시죠."임구택이 힘껏 문을 당겼다. 그리고 방안의 장면을 본 그의 안색은 순간 얼음판마냥 차가워졌다.어두컴컴한 방 안에 이정남은 머리가 깨진 채 한쪽에 쓰러져 있었고 류 조감독은 소희의 옷깃을 잡은 채 침대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소희는 아직 조금 남아있는 이성과 힘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상의 단추는 뜯겨져 하얀 어깨와 속옷 어깨끈이 드러났다.그리고 소희의 손에 들린 작은 총은 류 조감독의 명치를 조준하고 있었다.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희와 류 조감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눈에 핏줄이 퍼진 소희는 순간 손에 힘을 풀었다. 손에 들린 총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1초만 더 늦었더라면 그녀는 이미 류 조감독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마음속에 억압된 두려움은 철저히 분노로 변했다. 임구택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가가 류 조감독의 목을 잡고 그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는 살육의 포악함이 묻어났다.방안에 남아 있는 연기를 조금 빨아들인 류 조감독의 얼굴은
이현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뭐 하는 거야! 임구택!""임구택, 돌아와!"하지만 임구택은 소희를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명우가 부하를 향해 손짓을 하자 부하가 바로 여민과 이현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인차 여민의 몸에서 투명한 작은 주머니를 찾아냈다. 주머니 속에는 흰색의 가루가 들어있었다.명빈이 술 세 잔을 따른 후 주머니 속의 가루를 술에 부었다. 그리고 술잔을 앞으로 밀었다.그는 임씨 가문의 모든 부두 장사를 관장하고 있었다. 왕래하는 손님들 중에는 점잖고 예의 바른 신사와 부유한 상인이 있는가 하면 교활한 건달 해비들도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이상한 일들을 다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명빈은 이현과 여민의 모욕과 구걸에 얼굴색 한 번 번하지 않았다. 술잔을 앞으로 밀어주는 모습마저 음료수를 밀어주는 것 마냥 덤덤하고 차가웠다.그의 부하들이 술 한 잔씩 들고 이현, 여민 그리고 작은 방안의 류 조감독을 향해 걸어갔다.동시에 안에 있는 이정남을 데리고 나왔다.명빈이 술을 따른 순간부터 이현은 무언가를 깨닫고 필사적으로 후퇴했다. 공포심은 순간 극에 달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안 돼, 난 싫어!""임구택은 너희들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을 거야!""안 돼!"이현과 여민 두 사람은 두려움에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반항의 여지도 없이 술 한 잔을 강박적으로 들이켰다."콜록콜록!"이현은 소파에 쓰러진 채 격렬히 기침을 했다. 몸은 끊임없이 떨고 있었고 마음속의 공포는 갈수록 커졌다. 그녀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류 조감독에게 술을 먹이러 간 부하가 돌아와 명빈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땅에서 주운 겁니다. 소희 씨의 것인 것 같습니다."명빈이 총을 보고 잠깐 멍해 있더니 의미심장하게 명우에게 건네주었다.일반 것보다는 짧지만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진 총을 알아본 명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대표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명빈
순간 임구택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2년 동안 밤낮으로 그렸던 여인이 옷 반쯤 벗겨지고 눈동자에 야릇한 빛을 띤 채 그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임구택은 소희를 품에 꼭 안은 채 용솟음치는 정서를 애써 누르고 고개를 들어 분부했다."다음 길목에서 돌아 어정으로 가.""네!"임구택은 어쩔 수 없이 소희를 힘껏 품 속에 짓누르고 옷을 다시 잘 입혀 주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조급해하지 마, 자기야. 조금만 더 기다려."소희는 임구택의 가슴팍에 엎드린 채 그의 옷깃을 힘껏 잡고 목이 쉰 소리를 냈다."임구택, 나 너무 괴로워.""알아."임구택의 눈동자는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그는 넓은 손바닥으로 소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음 같았으면 소희를 대신해 그 고통을 감당하고 싶었다."아니, 당신은 몰라!"소희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당신 분명 나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자고 했잖아.""나 시력을 잃은 적이 있었어. 하지만 난 전혀 어둠이 두렵지 않았어. 반대로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 거 같아서 너무 슬펐지.""그래서 당신한테 연락을 했는데, 당신은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가라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그러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지.""당신 정말 미워!"목이 멘 채 중얼거리고 있는 소희의 소리에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임구택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나 소희의 얼굴을 들어 자신에게 붙였다."미안해.""소희야, 미안해!"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키스했다. 미간에서부터 눈가로, 열정적이면서도 다정스럽게."한번 만 기회를 줘, 내가 다 보상할게."*차가 어정에서 멈추자 임구택이 양복으로 소녀를 감싸고 위층으로 걸어갔다.2년 동안 비어 있던 방이었지만 전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펫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소파에는 소희가 좋아하는 쿠션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탁자에는
우정숙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의 대답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서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제가 임유진에게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에요. 그러니 유진이를 탓하지 마세요. 아직 어리고 철이 없을 뿐, 전부 제 문제예요.”우정숙은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래서 우리 유진이가 혼자만 짝사랑하고 있었던 거군요?”서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고, 우정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꽤 부담됐겠어요. 대신 사과할게요.”서인의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아니에요.” 우정숙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앞으로 유진이가 여기에 오지 않도록 했으면 해요. 시간이 지나면 유진이도 점점 식어갈 테고,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죠.”서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방법을 생각해 보죠.”“좋아요. 믿을게요.”우정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서인은 2층 베란다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구은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에도 말했던 맞선 이야기요. 언제 진행할 건가요?”구은태는 뜻밖이라는 듯 놀라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드디어 마음을 정한 거야?]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집에는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만나볼 수 있어요.”구은태는 한순간 고민하더니 물었다.[그러면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 거야?]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구은태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서인이 결혼을 전제로 여자를 만날 마음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기 때문이다.전화를 끊자마자, 구은태는 곧바로 서선영을 찾아가 맞선 일정을 조율했다.다음 날, 서선영이 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지난번 만났던 진수아 어때? 사실 걔가 너를 마음에 무척 들어서 했어.]그리고 덧붙였다.[수아
서인은 새로 도착한 테이블을 보며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얼굴이 어두워졌다.“이거 내가 산 거 아닌데. 다시 가져가세요.”배송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손님, 임유진 씨가 이미 결제하셔서 반품이 어려워요.”서인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말했다.“그러면 테이블은 놔두고, 돈은 돌려주세요. 대신 내가 결제할게요.”그러나 직원은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죄송해요, 이미 결제된 금액은 환불이 불가능해요.”서인의 얼굴에 짙은 불만이 떠올랐다. 하지만 배송 직원들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후원에 놔두세요.”직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오현빈이 직원들을 데리고 후원으로 갔다. 서인이 따라갔을 때, 테이블은 이미 제자리를 잡고 있었다.최고급 황화리 원목으로 제작된 수제 테이블. 정교한 수공예로 깎아낸 꽃무늬 장식은 유명 장인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 테이블 하나만으로도 뒷마당의 분위기가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변했다.서인은 문득 떠올랐다. 며칠 전, 유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던 말.“이 뒷마당엔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밖에 없어요. 뭔가 값비싼 거라도 하나 놔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유진은 일부러 이 테이블을 주문한 걸까?한편, 한쪽에는 부서진 낡은 탁자가 여전히 버려진 채 남아 있었다. 현빈이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이건 이제 버려야겠네요!”그러나 서인은 한 번 흘깃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놔둬.”그 말에 현빈은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현빈이 다른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서인은 부서진 탁자를 완전히 분해하고 있었다.그는 그 나무판자를 가져다가 애옹이와 야옹이의 집 사이에 덧대고 있었다. 애옹이는 아직 어려서 나무 지붕에서 야옹이 쪽으로 뛰어내릴 때마다 자주 미끄러졌다.하지만 이제는 그사이에 작은 다리가 생겼으니, 더 이상 떨어질 일은 없을 터였다.현빈은 벽에 나무판자를 못질하는 서인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우리 형님
임유민은 더욱 흥미로워하며 물었다.“구은정 아저씨는 어떻게 반응했어?”“그, 그게...”임유진은 문득 마지막 순간, 유진이 반사적으로 서인의 옷깃을 붙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어두운 밤, 희미한 빛 속에서 본 그의 표정 다시금 얼굴이 새빨개졌다. 유진은 황급히 그 순간의 기억을 밀어내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서인의 반응을 떠올려 보려 했다.하지만 그때 상황이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서로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에 유진은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도망쳐 나왔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서인의 얼굴이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확실한 건 서인이 자신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아주 잠깐 저항했던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유진이 술김에 더욱 과감하게 나서자, 결국 서인도 서서히 받아들이며 주도권을 잡았던 듯했다.둘은 꽤 오랫동안 서로를 탐하며 키스했다. 그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자, 유진은 또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다행히 어두운 테라스에서는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유민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는 신이 난 듯 말했다.“오! 잘했네! 이렇게 빨리 진전이 있을 줄이야!”유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확실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성급하게 말하지 마.”유민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응원했다.“힘내! 몇 번 더 키스하면 확실해질 거야.”“야!”유진은 유민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감정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하지만 과연 그런 기회가 다시 올까?’그날 밤, 서인은 뒷마당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문과 오현빈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했다. 누군가 서인을 불렀지만, 그는 대충 응답만 하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마자, 서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옹이가 언제 들어왔는지, 자신의 침대 한가운데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서인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언제나 무심하고 냉정하게 대했지만, 이상하게도 애옹이는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심지어 매번 서인의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한 순간이었다....임유진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지만, 얼굴이 여전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이리저리 뒤척이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자, 결국 유진은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기로 했다.테라스로 나가 보니, 밤하늘은 흐린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달빛조차 비치지 않았다. 별 하나 없이 검게 가라앉은 하늘.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녀의 마음도 복잡하게 뒤엉켰다.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녀는 무심코 휴대폰을 꺼내, 익명으로 SNS 고민 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남자가 여자에게 반응하는 건, 그 여자를 좋아해서일까요?]잠시 후,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그렇죠.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만 반응한다고 하더라고요.][제가 남자인데,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여자가 충분히 매력적이면 다 반응해요.][윗댓 의견 반대요. 그럼 동물과 다를 게 뭐예요?][애초에 인간도 동물이잖아요.]...유진은 계속해서 새로 고치며 댓글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읽었다. 어떤 댓글을 보면 마음이 설레다가도, 또 어떤 댓글을 보면 불안해졌다. 혼란스러움과 기대감이 엇갈려 마음이 쉴 새 없이 출렁였다.그때,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잠도 안 자고 여기서 뭐 해?”임유민이었다. 유진은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급히 껐다. 그러고는 서둘러 휴대폰을 뒤로 감추며 더듬거렸다.“아, 아냐! 아무것도 안 했어!”유민은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뭐야,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유진은 얼굴이 뜨거워지며 발끈했다.“꼬맹이는 신경 꺼!”그러자 유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부모님 출장 가시면서 누나 나한테 맡기고 가셨거든? 그러니까 누나 문제는 내 문제지. 뭔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조언해 줄 수도 있으니까.”유진은 반박하려다가, 자기보다 한 뼘은 더 큰 동생을 바라보며 체념
후원에는 벽에 걸린 벽등 하나만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온 마당은 은은한 황금빛에 감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장미꽃은 조용히 피어 있었고, 애옹이는 작은 집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야옹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앞발로 날아다니는 벌레를 잡고 있었다.서인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기대고 있었고,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였다.서인은 오늘 많은 술을 마셨다. 기분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중 절반은 유진 대신 술을 받아 마셨기 때문이었다.유진은 조용히 다가가, 서인의 앞에서 몸을 숙였다. 그가 정말 잠든 건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넋을 잃고 말았다.서인의 짙고 선명한 눈썹은 마치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롭고 선명했다. 책에서 묘사하는 ‘긴 눈썹이 관자놀이까지 이어진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그 눈썹만 봐도, 서인의 차갑고 오만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눈은 길고 날렵했으며,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콧날은 오뚝하고 반듯해, 본래부터 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턱선에는 거칠게 자란 수염이 덮여 있어, 평소보다 다섯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상관없었다.서인이 어떤 모습이든, 유진은 다 좋아했으니까. 그러다 문득, 그의 수염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행동은 생각보다 빨랐다.유진은 거의 고민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었다. 서인의 턱에 닿기 직전 갑자기 서인이 눈을 번쩍 떴다.서인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경계와 서늘한 기운이 번뜩였다. 산길에서 적들의 포위에 둘러싸였을 때처럼, 그의 몸에는 순식간에 살기가 감돌았다.유진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으나 뒤에 있던 탁자에 걸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낡은 탁자는 이미 몇 번이나 수리를 거쳤던 터라, 유진의 몸무게를 버틸 수 없었다.쾅! 순식간에 탁자가 부서졌다. 몸을 지탱할 곳이 사라지자,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그 순간 굵은 손이 유진의 팔을 붙잡
이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고, 갑자기 가게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오현빈을 비롯한 직원들이 술과 안주를 들고 뛰어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생일 축하해요!”이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웃었다.“내 생일이었어?”“자기 생일도 모르다니!”임유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케이크를 그 앞에 내밀었다.“자, 촛불 끄고 소원 빌어요!”이문은 굳은 얼굴로 기계적으로 촛불을 불어 끄자 유진이 곧장 말했다.“소원도 안 빌고 그냥 끄면 어떡해요!”이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긴장해서 깜빡했어!”유진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긴장할 게 뭐 있어요?”그때, 오현빈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에 묻힌 생크림을 이문의 얼굴에 문질렀다. 이문은 한순간 얼어붙더니, 이내 손을 뻗어 현빈을 쫓기 시작했다.조용하고 따뜻했던 생일 파티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유진은 한가운데에서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웃음소리는 맑고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서인은 카운터에 기대어 서서 사람들의 장난을 바라보았다.평소의 냉랭한 표정과는 달리, 이날만큼은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걸려 있었다. 한 직원이 장난을 치려다 유진에게 다가갔다.그러나 유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긴 팔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 상대의 손을 막아섰다.서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 너한테 묻히면, 그대로 돌려줘. 괜히 억울해하지 말고.”유진은 본능적으로 서인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 서인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사람들의 난장판을 피해 도망쳤다.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거의 서인의 어깨에 기댄 채 숨을 헐떡였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유진은 새로운 케이크를 꺼내며 작게 으쓱했다.“다행히도, 저는 항상 대비책을 준비하죠!”유진은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자르고 원래는 서인에게 주려 했지만,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손가락으로 크림을 살짝 묻혀 서인의 얼굴에 바르려 했다. 그러나 서인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피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검은 눈동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서인이 보였다. 임유진은 기분이 한껏 좋아져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사장님!”“응.”그러나 서인은 무심한 듯 가볍게 대답했을 뿐,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유진은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가게 안 손님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우선 앞치마를 두르고 일손을 거들기로 했다.주방에서 음식을 나르던 중, 이문이 유진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내밀었다.“이거, 너랑 사장님이 산에서 가져온 산나물로 끓인 버섯 갈비탕이야. 갓 끓였으니까 맛 좀 봐.”유진은 국물에 떠 있는 버섯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 퍼지는 깊고 진한 풍미에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와, 너무 맛있어요!”“나도 좀 먹어볼까?”오현빈이 다가와서는 직접 손으로 갈비 하나를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현빈은 음미하듯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향이 진하네. 이게 진짜 자연산 버섯이지!”그는 유진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오늘은 왜 저녁까지 여기 있어?”유진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오빠들이 보고 싶어서요. 마침 오늘 일찍 끝나기도 했고요.”현빈은 히죽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우리 보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어떤 사람 보고 싶었던 거야?”이에 유진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다 알면서 왜 물어요?”현빈은 유진에게 더욱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어제 형님 집에 갔더니, 밤늦도록 방에 불이 켜져 있더라. 아무래도 너 생각하느라 잠 못 잔 거 같은데?”유진의 볼이 붉어지며 눈을 굴렸다.“어떻게 그렇게 단정해요? 혹시 그냥 잠이 안 온 걸 수도 있잖아요.”“딱히 다른 이유가 있겠어?”현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유진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고마워요, 오빠!”“고맙긴, 우린 그저 축하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니까!”유진은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결혼식 날은 사흘 동안 파티 열어드릴게요!”현빈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바로 그때, 서인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차가운 목
“그 토끼도 내 거잖아요? 내 물건으로 내 토끼 먹인 건데, 돈을 받을 수 없죠!”박민란은 단호하게 임유진의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그리고...”박민란은 다른 바구니에서 화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화분 속에는 난초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었다.“이 난초는 꽤 좋은 품종이에요. 기념 삼아 드릴 테니, 나중에 시간이 되면 또 산에 놀러 오세요.”임유진은 난초를 받으며 말했다.“감사해요!”박민란은 손사래를 쳤다.“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야죠.”서인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유진과 함께 강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했다. 자동차가 산길을 따라 달렸다. 유진은 창문을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환하게 웃었다.“정말 잔뜩 챙겨서 돌아가네요!”서인은 어젯밤 자신이 한숨도 못 자고 뒤척였던 걸 떠올리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정작 그녀는 마냥 즐거운 얼굴이라니. 하지만, 어쨌든 이 여행도 끝났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차가 샤부샤부 가게 앞에 멈추자, 오현빈을 비롯한 직원들이 뛰어나왔다.서인이 차에서 내리고, 유진과 함께 가게로 들어가려던 순간, 서인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며, 어느새 서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린 듯했다.현빈은 서인과 유진의 맞잡은 손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서인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조금 어색한 듯 유진의 손을 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어서 일하러 가자.”유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며칠 놀았더니 다시 일하러 가기가 싫어지네요.”서인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며칠은 단지 예외일 뿐이야.”서인의 차분한 눈빛을 마주하자, 유진의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품에 안고 있던 난초를 바라보았다.“난 애옹이 보러 갈게요. 난초도 마당에 놓고 와야 하고요.”그렇게 말한 후, 유진은 뒷마당으로 향했다.한편, 현빈과 직원들은 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현빈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서인에게
임유진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서인은 그녀를 살짝 밀어내고, 이불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몸속을 타고 도는 술기운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듯했고, 유진에게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가 술기운을 더욱 자극했다.잠시 후,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찬물로 샤워를 한 뒤, 창가에 서서 한동안 밤바람을 맞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서인은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그 사이, 유진은 이불을 걷어차고 있었다. 그녀는 두 개의 베개 사이에 머리를 묻고,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꽤 얌전해 보였다. 그러나 서인이 자리에 눕자마자, 유진이 몸을 뒤척이며 다시 그의 품으로 굴러들어 왔다.‘오늘 밤, 잠은 포기해야겠군.’다음 날 아침, 유진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훤히 떠 있었는데, 침대에는 유진 혼자뿐이었고, 서인은 보이지 않았다.유진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열어 내다보니, 서인과 안토니가 산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서인은 검은색 운동복 차림이었다. 아침 햇살이 서인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평소의 거친 분위기를 감싸 안았다.서인에게서 풍기는 느슨한 여유가 사라지고, 더없이 당당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진은 창틀에 두 팔을 올려 기대며 그를 바라보았다.맑고 영롱한 유진의 눈동자에는 오직 서인만 담겨 있었고,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둘이 가까이 다가오자, 유진이 소리쳤다.“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서인은 고개를 들어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차갑고 깊은 눈빛이 그녀를 향할 때, 그 안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유진 또한 서인을 향해 눈길을 내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얇은 아침 안개 너머에서 조용히 마주쳤다.산속의 안개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채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