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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화

작가: 토토만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5-01-13 18:01:07
한성준은 강수지가 농담하는 줄로 알았는데 목덜미의 붉은 자국이 보이자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버럭 화를 냈다.

“너한테 남자가 있었어? 강수지, 너 날 배신했어?”

“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야? 한성준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되고 강수지가 먼저 시집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야?”

강수지는 피식 웃으며 한성준에게 백아린과 결혼하면 외숙모가 된다고 말할 생각 없이 그저 그때 한성준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쯧쯧!’

“말도 안 돼! 누구랑 결혼했어? 누가 너랑 결혼하겠어? 난 왜 아무것도 몰랐지?”

한성준은 발끈하며 날뛰었다.

강수지는 자신이 왜 그토록 그를 사랑하고 한성준이 하는 말마다 철석같이 믿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석 달 전 갑자기 한성준의 결혼 소식을 접한 후 그녀는 열흘 만에 살이 5kg이나 빠졌고, 매우 초췌해져 마치 큰 병이 난 것 같았는데 대외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위장염에 걸렸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절친 도현아가 열심히 끼니를 챙겨줘서 최근에야 다시 살이 찌며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하시원을 유혹하려는 이유는 백아린이 하시원의 조카딸이라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강수지는 사실 자신이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고 하시원이 그녀와 결혼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녀가 그저께 밤에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그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와 결혼할 가능성도 더더욱 없었다.

“네가 알 바 아니야.”

강수지는 겨우 이 한마디만 대답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나 가려고 했는데 한성준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축의금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야. 내 결혼식 날 꼭 와줘.”

“그럼 축의금 하나만 더 주면 갈게.”

강수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한성준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돈도 사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행히 현금이 충분해 돈 한 뭉치를 강수지의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돈을 줬으니 안 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협박에 가까운 한 마디에 강수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걱정하지 마. 꼭 참석할 테니.”

그녀는 돈을 거두고 돌아섰는데 멀리 간 뒤에야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금은 한성준에게 자신의 주눅 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애써 참았다.

지난날의 맹세가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

강수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하진 그룹으로 돌아가 일했다.

다들 그녀가 반나절 병가를 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녀의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았기에 다들 몇 마디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고 각자 하던 일을 계속했고 강수지도 서류 정리를 시작했다.

오후 내내 강수지는 자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혼 사실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봤지만 아파서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이것이 진짜 현실임을 확인했다.

“강수지 씨!”

이때, 문 앞에서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일어난 강수지는 전영미의 화난 얼굴을 보았다.

“내 사무실로 와요.”

전영미는 비서실의 부장이자 강수지의 직속상사이며 하시원의 유능한 부하이자 그의 수석비서관이다.

게다가 하시원의 후배이기도 한 그녀는 외국의 매우 우월한 대우를 포기하고 하시원을 따라 귀국하여 비서 일에 나섰다. 심지어 전영미 역시 평범한 비서 출신으로 업무 능력이 뛰어나 수석으로 승진했다는 소문이 있다.

전영미가 하시원에게 그렇게 목매는 건 그녀가 하시원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서 기꺼이 그의 곁을 지켰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강수지는 갑자기 긴장했다.

‘부장님은 평소에 이렇게 화를 내지 않는데 내가 하시원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난 게 아닐까?’

전영미의 사무실에 도착한 강수지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세련된 하이힐을 신은 채 카리스마를 뽐내는 그녀를 보았다.

“리조트 가서 며칠 놀더니 미쳤어요? 오후 자료 정리 문서에 데이터 등록 오류가 있잖아요. 하진 그룹에서 3년 동안 있었는데도 이런 실수를 하는 거예요?”

강수지는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오늘 정신 상태가 안 좋아서 문서를 정리하다가 실수를 한 건가?’

하지만 그녀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그래도 강수지는 여전히 단정한 태도로 사과했다.

“전 부장님, 죄송해요.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없어요.”

전영미는 진작부터 강수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네?”

강수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또 한 번 사과했다.

“전 부장님, 죄송해요. 다시 한번 기회를 줘요.”

“내 부하들이 이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르는 걸 용납 못 해요. 실수 한 번 하면 당장 나가야 해요.”

전영미는 강수지가 더는 하진 그룹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강수지는 넋이 나간 채 전영미의 사무실을 떠났다. 그녀는 오늘 왜 이렇게 많은 일이 꼬이는지 알 수 없었다.

문득 그녀는 하시원이 떠올랐다.

이건 분명히 하시원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럼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하시원밖에 없다.

강수지는 하시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할 수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대표님 사무실이 있는 층으로 간 그녀는 하시원의 사무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응답이 없었다.

강수지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려 할 때 누군가 이곳으로 걸어오고 그 뒤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강수지는 당황하여 숨을 곳을 찾으려 했다. 어쨌든 하시원과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한 상태였으니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되었다.

그러나 주변은 텅 비어 숨을 곳이 없었고 하시원은 그녀의 앞에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텅 빈 복도에 메아리 쳐 듣기 좋게 들려왔다.

“하 대표님, 먼저 일 보세요. 제 일은 급하지 않아요.”

강수지는 고개를 숙였다.

하시원은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들 먼저 돌아가요.”

그러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강수지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하시원의 뒤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빨리?’

“들어와서 말해.”

하시원은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강수지는 처음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비서부원이기도 하고 일손이 부족할 때 가끔 이곳에 와서 서류를 전달하기도 했다.

하시원의 사무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대표님 사무실과 비슷했는데 흑백과 회색 톤으로 되어있었다. 바닥까지 드리운 창문은 전망이 매우 좋고 바깥의 고층 건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번화한 도시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 와.”

그는 느릿느릿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리고 있었는데 자태가 산만하여 시큰둥해 보였다.

강수지는 왠지 긴장되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도 모르게 어젯밤의 화면이 떠올랐다. 그는 침대에 있을 때는 평소 출근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높은 곳에 핀 꽃과 사람의 옷을 입은 짐승의 차이 정도랄까...

강수지는 그의 그윽한 시선을 마주치다가 얼른 생각을 고쳐먹고 분부에 따라 서둘러 그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는 재빨리 긴 팔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품으로 끌어당겼다.

강수지는 갑작스러운 힘에 자기도 모르게 그의 다리에 주저앉았다.

남자의 손바닥이 그녀의 옷자락을 따라 미끄러져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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