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은 강수지가 농담하는 줄로 알았는데 목덜미의 붉은 자국이 보이자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버럭 화를 냈다.“너한테 남자가 있었어? 강수지, 너 날 배신했어?”“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야? 한성준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되고 강수지가 먼저 시집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야?”강수지는 피식 웃으며 한성준에게 백아린과 결혼하면 외숙모가 된다고 말할 생각 없이 그저 그때 한성준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쯧쯧!’“말도 안 돼! 누구랑 결혼했어? 누가 너랑 결혼하겠어? 난 왜 아무것도 몰랐지?”한성준은
강수지의 얼굴이 붉어졌다.그녀는 몇 번 발버둥을 치더니 당황해서 사무실 문을 바라보며 사람이 들어올까 봐 걱정했다.“무슨 일이야?”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충동이 생겼던 하시원은 감정을 추스르고 단정하게 앉았다. 방금은 평소의 자신과도 완전히 달리 마치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강수지는 일어서서 자신의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저... 저 해고될 것 같아요. 대표님의 지시가 아니죠?”강수지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덧붙었다.두 사람은 오늘 아침에 갓 혼인 신고를 마쳤는데 결혼 이유가 바로 회사의 직원으로서
전영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강수지는 멍해졌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책상 뒤에 앉아 있는 하시원을 바라보며 그가 대답해주길 바랐다.강수지의 맑고 어리숙한 꽃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며 하시원은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다. 어젯밤 그녀가 이런 수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그는 어색함을 달래느라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오해였다니 인사부에 해고 신청을 기각하라고 할게. 전영미 부장, 당신은 이미 회사의 임원이니 앞으로 업무에서 이런 작은 실수를 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하시원은 ‘작은 실수’라고 말할 때 힘
강수지는 말문이 막혔다.이런 사소한 일을 하시원이가 직접 조사하다니, 정말 공정한 사람이다.만약 하시원이 리조트에서의 그날 밤이 사고가 아니라 그녀가 원래 그를 꾀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강수지는 몸서리를 치며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이거 가져가.”갑자기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를 생각에서 끄집어냈다. 그가 은행 카드 한 장을 그녀의 앞에 내민 것을 본 강수지는 눈을 깜빡이며 멍해졌다.“카드 안에 20억이 있으니 자유롭게 써도 좋아.”하시원의 말에 강수지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었다.하시원은 생활비와
전영미는 원래 문서를 보낸다는 핑계로 하시원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했다.어쨌든 그런 작은 실수를 저지른 거로 그녀의 이미지에 너무 큰 영향을 미쳤으니 말이다. 그녀는 하시원이 그녀를 이렇게 꼼꼼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일부러 이렇게 강수지에게 누명을 씌웠지만 하시원 앞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실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는데 강수지가 이제야 대표님 사무실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안에서 하 대표님과 무슨 얘기를 하는데 말을 이렇게 오래 했어요?”전영미는 강수지를 빤히 쳐다보며 안색이
강수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과일과 선물을 들고 곧장 병실로 향했다.문을 밀고 들어가 병상에서 허약하고 초췌한 노인을 본 강수지는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외할머니!”그녀는 급히 걸어가 마음을 가다듬고 빙그레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보고 싶어요.”“수지야! 아가야, 나도 보고 싶었어.”오영자는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출장하느라 힘들었나 봐? 이것 봐. 살이 많이 빠졌어.”강수지는 웃으며 고개가 저였다.“전혀 힘들지 않았어요.”“할머니, 전 하진 그룹에서 일해요. 월급도 많고 복리
하시원은 그제야 미간을 펴며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소정원더러 마중 가라고 할까?”강수지는 흠칫 놀라며 한성준의 일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그녀는 또 시간을 힐끗 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차가 조금 막히네요. 아마 한 시간 정도 걸릴 수 있어요.”하시원에게 협조해야 할 특별할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된 강수지는 빨리 운전하라고 기사를 다그쳤다.마침내 그녀는 예상한 시간에 은하 빌라에 도착했다.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고 공기 중에는 특유하고 고소한
강수지는 심장 박동이 반 박자 늦어진 것 같았다.그녀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거리더니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대표님, 좋은 아침이에요.”“음.”하시원은 대꾸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갔다.열려 있는 침실 커튼 사이로 마침 통유리창을 통해 제인시의 보람 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경치가 좋았다.바닥에는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공기 중에서는 살을 섞은 후의 특유한 냄새가 감돌았다.강수지는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하시원이 나오자 강수지는 쏜살같이 욕실로 들어갔다.
강수영은 2초간 웃는 모습을 멈추더니 계속해서 아첨했다.“대표님은 저녁에 계속 일해야 해요?”그녀는 하시원이 진심으로 거절한 게 아니라 단지 일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다.책상 밑에 숨은 강수지는 심장이 목구멍을 타고 곧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그녀가 이곳에 숨었다는 것이 강수영에게 발견된다면 이 일은 아주 시끄러워질 것이다.“여긴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하시원은 강수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쌀쌀하게 이렇게 말했다.강수영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자신이 너무 주동적임을 알았다.‘혹시 내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질... 질투라니?강수지는 의아해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리가!강수지는 당연히 자신이 질투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하시원은 그녀가 질투한 줄 알았다!‘헐, 역시 남자들은 쉽게 나르시시즘에 빠지네.’“하 대표님, 만약 정말 저의 동생이 마음에 들었다면 저는 두 분을 중매할 수도 있고 제가 먼저 계약을 폐지할 수도 있어요. 그저 저의 외할머니가 치료를 계속...”강수지가 부탁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시원이 가로챘다.“난 강수영에 관심 없어.”강수지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남자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목덜미에 뿌려졌다.강수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이 남자를 밀쳐버리며 그의 불만스러운 눈빛을 마주 봤다.“왜 그래?”강수지가 이유 없이 반항하자 하시원의 마음은 더욱 불쾌해졌고 강수지는 어리둥절해졌다.‘대표님은 계약을 해지하려는 게 아닌가? 강수영을 마음에 들어 한 게 아닌가?’“대표님, 저는...”입가에 말이 맴돌았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강수지는 하던 말을 잇지 못했다.하시원은 화내지 않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의 시선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도 오늘 밤 강수지가 마음이 다른 곳에
만약 전영미 부장이 나중에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강수지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그저 그녀가 이곳에 2시간이나 있었는데 하시원은 일만 할 뿐 계약 해지에 관해 언급하지 않아 의아했다.혹시 출근 시간에는 일만 하고 퇴근한 다음 다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강수지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고 데이터를 정리하면서도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업무 효율도 그렇게 높지 못했다.해가 점점 지면서 이 큰 사무실도 어두컴컴해졌다.하시원이 노트북을 덮는 ‘퍽’ 소리에 강수지는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은 즉시 시선을 마주쳤다.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요?”허유리는 놀란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그렇지만 소 비서님이 일이 바쁘고 야근이 잦아서 아마 수지 씨를 만날 시간이 없을 거예요.”강수지는 어이가 없었다. 하유리가 글쎄 소정원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오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소정원이 점심을 먹을 때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평소에 소정원은 회사에서 슈퍼 로봇이라고 불릴 정도로 워커홀릭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유리 씨
강수지의 머릿속에는 또 어젯밤의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하시원은 이미 고난도 동작을 시도하고 있어 그녀는 너무 피곤했고 그를 상대할 정력도 없었다.강수지는 말없이 묵묵히 밥만 먹었고 허유리도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이때 소정원이 느닷없이 불쑥 물었다.“강 비서,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혹시 불편한 데라도 있어요?”소정원은 하시원의 암시를 받고 특별히 강수지를 관심했다.강수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흔들었지만 하시원을 힐끗 보며 얼굴이 더 빨개졌다.그녀는 방금 정신을 팔 때 19금 화면을 떠올렸기 때문
강수지가 멍해 있을 때 갑자기 여자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가 하시원의 앞에 섰다.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수지 앞에 서 있던 강수영이다.“하 대표님.”강수영은 익숙한 척 애교스럽게 불렀다.“하 대표님, 감사합니다. 하진 그룹에서 저를 합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꼭 열심히 일해 대표님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강수영은 가슴을 곧게 쭉 펴며 인사했다. 그녀는 몸매가 좋았고 타이트한 니트를 입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추를 세 개나 벌려놓고 있어 가슴을 쭉 펴자 바디라인이 예쁘게 드러났다.이 장면은 보고만 있어도 여
강수지는 도박하고 있었다. 한성준이 혼사를 위해 감히 모험할 수 없다는 도박이다.“너!”한성준은 화나 나서 이빨마저 떨렸지만 그렇다고 하시원에게 고자질할 수 없었다.천신만고를 거쳐 겨우 백아린을 손에 넣었지만 백씨 가문에서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강수지와 사귀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는 백아린과의 결혼에 무조건 영향을 줄 것이다.이렇게 하면 얻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게 더 많았다.“강수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야!”한성준은 독설을 내뱉은 다음 노기등등해서 전화를 끊었다.강수지가 하시원과 결혼했다
강수지는 잠들기 전에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낮에 회사에서 전영미의 괴롭힘을 받고 저녁엔 ‘야근’해서 하시원의 잠자리 시중을 하다 보니 이 가냘픈 몸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특히 하 대표님의 에너지가 보통 왕성한 게 아니다.이런 상황이 오래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생리 기간이 되면 조금이나마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수지는 난생처음 생리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전영미의 괴롭힘을 받는 부분에 관해서 그녀는 아직 하시원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지난번 경험이 있고 난 뒤 전영미는 만단의 준비를 하고 괴롭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