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혁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아마 소성이 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거나, 어머니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화풀이해 준 게 아닐 거야.’아무래도 이건 때린다고 화가 풀릴 만한 일이 아닌, 목숨이 걸린 원한이었다.그걸 윤슬이 모를 리가 없었다.그렇기에 윤슬이 화풀이해 준 일은 너무 심각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윤슬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장 비서를 한번 쳐다보았다.“어제 아침에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한 거, 기억나요?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했잖아요.”부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나.”윤슬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지
“장용이 너한테 알려줬어? 전부?”부시혁이 물었다.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확신으로 가득했다.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 비서한테 시혁 씨의 반응을 말했더니,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알려준 거예요. 장 비서도 자기 입장에서 시혁 씨를 위로해도 당신이 듣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저한테 알려준 거예요. 아무래도 제 말은 들을 거 아니에요.”운전석에 앉아있는 장 비서가 너무나도 감동했다.‘윤슬 씨, 정말 좋은 분이야.’이건 장 비서가 입이 가벼워서 자기한테 알려준 게 아니니, 부시혁이 장 비서를 탓하지 않았음에 윤슬
윤슬은 일부러 유치란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그리고 은근슬쩍 운전석 쪽을 쳐다보았다.운전석에 앉아있는 장 비서는,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쓴 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윤슬 씨,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했어요. 그땐 윤슬 씨가 꾸민 일인 줄 모르고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 알았으면 당연히 그런 말 안 했죠.”‘세상에, 윤슬 씨의 뒤끝도 이렇게 길 줄이야. 확실히 소성을 때린 행동이 유치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잘했다고 칭찬했잖아. 아무래도 소성이 입원한 건 사실이니까.그런데 윤슬 씨가 칭찬을 완전 무시하고 유치하다
“윤슬 씨 말이 맞아요. 만약 하늘이 소성을 좋아한다면 정말 눈이 먼 게 아닌지 의심했을 거예요.”장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물론 아부하는 느낌도 꽤 들었다.그러자 윤슬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장 비서는 얼른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사실을 말한 건데요. 그렇죠, 대표님?”부시혁은 부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윤슬이 표정이 또 살짝 진지해졌다.“시혁 씨, 소성이 어머님의 어떤 유물로 협박한 건지, 알아냈어요?”부시혁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소성한테 물어봤는데, 알려주지 않았어.
연세 높으신 노부인이 전 며느리의 스캔들 때문에 우울해하는 모습을 부시혁은 참을 수가 없었다.더구나 노부인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만약 소성이 말한 유물이 정말 그런 거라면 부씨 가문이 웃음거리가 되는 건 둘째 치고, 화가 나신 할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부시혁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부시혁은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윤슬의 말을 들은 부시혁은 침묵했고 심지어 약간 타협했다.부시혁은 그런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소유를 풀어주면 네가 억울하잖아.”한참이 지나자, 부시혁이 드디어
얼마 지나지 않아, 윤슬과 부시혁은 천강에 도착했다.장 비서는 차를 세우고 아주 자연스럽게 앞좌석과 뒷좌석을 가리는 칸막이를 내렸다.부시혁과 윤슬이 곧 오늘 마지막 작별을 할 것이다.그리고 두 사람의 꽁냥거리는 정도를 봐서, 몇 시간의 이별이긴 하지만 부시혁에게 있어서 아주 긴 시간이 될 것이다.그래서 부시혁은 트림 없이 윤슬과 서로 껴안거나, 키스하기에, 장 비서는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알아서 칸막이를 내려 둘만의 공간을 내주었다.‘내가 눈치 빠르다고 칭찬하시겠지? 어쩌면 기분이 좋아서 보너스를 더 줄 수도 있어.’
여기까지 생각한 부시혁은 그 작품을 배운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게 되었다.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여자를 미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한참이 지나서야 부시혁이 드디어 입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내가 했던 행동 중에 느끼하다거나, 멍청해 보인 적 없었어?”가끔 드라마나 소설 속에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로맨틱한 말을 하면 여자 주인공은 감동하면서 아주 기뻐했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멋있고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비록 부시혁은 그런 장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자 주인공이 감동했으니, 남자 주인공의 행동이 매력
부시혁이 얼마나 기회를 넘보고 스킨십을 잘하는지 윤슬이 잘 알기에 만약 빨리 가지 않으면 이따가 주객이 전도되어 윤슬이 키스를 당할지 모른다.그것도 뽀뽀가 아닌 딥키스. 그리고 시혁은 배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윤슬을 쉽게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틈을 노려 얼른 도망쳐야 했다.윤슬은 물 흐르는 듯 아주 빠른 동작으로 차에서 내렸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윤슬이 차에서 내리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그리고 원래 급한 성격이 아닌 윤슬이 이렇게 빨리 움직였다는 건 정신을 차린 부시혁이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