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혁 씨가 전화를 건 걸 보면 인터넷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고 전화했을 거야.’‘아닐 수도 있어. 이 일을 누가 했는지 알고 있을까?’‘만약 알게 되면 어떻게 처리할까?’윤슬은 휴대폰 화면에 뜬 부시혁의 이름을 본 후로 혼란스러워 전화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윤슬 씨.]그러나 그녀의 예상을 빗나가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시혁이 아닌 그의 비서 장용이었다.윤슬이 어리둥절해 왜 장용이 받았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윤슬 씨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윤슬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을 내리깔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장 비서님께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모르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약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면 시혁 씨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을까?’장용은 윤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무슨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사모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윤슬은 눈을 질끈 감았다.“아니에요. 나중에 알게 되실 거예요.”[아……?]장용은 어리둥절했다.윤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코를 긁으며 말했다.“조금
장용을 등지고 있던 부시혁은 류덕화의 말에 뒤돌아 문 앞에서 배회하고 있던 장용의 불안한 표정을 마주했다.시혁은 장용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단번에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작은 일이 아닌 것 같은데.’“잠시 실례하겠습니다.”시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류덕화에게 미안한 듯이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류덕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찻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뭘 이런 거 가지고. 여기 있을 테니 편하게 다녀오거라.”“네,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시혁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런데 아무 관련도 없는 외부인이 이런 말을 하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죄송합니다만 전 선생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 윤슬 씨가 저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해요.”시혁은 고개를 돌렸고, 표정이 많이 싸늘해졌다.이제 류덕화는 그의 말투에 담긴 불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시혁은 일부러 직설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했다.류덕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시혁아, 넌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니?”시혁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류덕화는 찻잔을 꽉 쥐었고 윤슬이 더욱 마음에 들
장용은 고개를 들어 류덕화를 주시했다.마치 돌을 맞은 듯한 류덕화를 표정을 보니, 장용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그렇다. 그는 부시혁에게 한 방 먹은 류덕화가 고소했다.류덕화는 시혁의 스승이었고, 스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매번 선을 넘었다.여러 번 시혁이 모르는 곳에서 류덕화는 시혁의 비서와 직원들을 마치 자신의 사람인 양 대하곤 했다.그의 손녀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류덕화가 시혁의 스승이었기에 시혁에게 이를 말하기 어려워 숨기고만 있었다.‘아마 대표님은 아직 모르실 거야. 어르신이 대표님 앞에서는 자상하고 상냥하지만
류덕화는 마치 부시혁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참을 바라보다가 맥이 빠진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내가 실수를 했다고 하니 나한테 말해보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니?”“선생님께서 하신 말의 모든 부분이 그렇습니다.”시혁은 다리를 꼬고 차분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슬이의 협박으로 제가 결혼을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협박당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류덕화는 잠시 멍해졌다.분명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하지만 이내 류덕화는 얼버무렸다.“그 아가씨가 네 약점을 잡
류덕화는 얼굴을 굳혔다.“이게 왜 널 무시하는 행동이니?”“윤슬 씨는 제 아내예요. 제가 선택한 제 아내라고요. 슬이를 안 좋게만 보시는 건 단지 제자인 제 의견을 부정하는 겁니다. 이게 무시 아닌가요?”시혁은 눈을 부릅떠 류덕화를 바라봤다.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차가움이 띄었다.계속해서 윤슬을 비하하는 류덕화의 행동은 그를 정말 화나게 만들었다.“그리고 선생님, 한 가지 틀리셨습니다.”시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 단추를 잠그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혼한 후 슬이에게 많은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슬이가
부시혁은 바보가 아니다. 어떻게 선생님의 말을 듣고 눈치채지 못할 수 있었을까, 류덕화는 윤슬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시혁과 헤어지게 하려 했다.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선생님이 집안을 차별한다는 사람이란 것이었다.그렇다, 집안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다른 명문가 집안에나 해당되는 것이다.부씨 집안은 다른 집안의 도움은 필요 없을뿐더러, 더욱이 정략결혼은 할 필요가 없었다.부씨 집안은 이미 정상에 이르렀기에 국가 차원에서 부씨 집안이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그가 평범한 집안 출신의 여자와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