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메스꺼움을 참으며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사진 속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얼굴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윤곽에 따라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 윤곽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졌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어디서 봤지?’윤슬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갑자기 음산하고 예쁜 얼굴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윤슬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최성문!"이라고 이름을 외쳤다."빙고." 전화기 너머 최태준은 그 이름을 듣고 더욱 악랄하게 웃었다. "역시 누나 대단해, 벌써 알아보셨네."윤
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조금 피곤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대표님.”"서아야, 오랜만이야." 윤슬은 볼을 만지며 얼굴 근육을 풀어준 뒤 웃으며 말했다.진서아도 "네. 오랜만에 연락주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라며 웃었다."난 잘 지내,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 윤슬은 부시혁을 떠올리며 웃으며 말했다.진서아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고, 한 달 전만 해도 부시혁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부시혁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그러나 한 달 뒤인 지금 완전히 달라졌다.그래서 아주 큰 변화였다."서아 너는
"가자, 가자, 여기 있지 말고 빨리 돌아가서 기사를 써서 가장 빨리 터뜨리면 이번 달 핫이슈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부씨 그룹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부씨 그룹의 회장으로서 부시혁 자체가 각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그래서 일단 그의 뉴스가 나오면, 당연히 검색어에 올라간다.두 파파라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숨기고 목을 움츠린 채 허름한 승합차로 빠르게 달려가 차를 몰고 떠났다.윤슬과 부시혁은 자신이 찍힌 줄도 모르고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향했다.윤슬은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씰룩거렸다. "부시혁 씨, 우리 강북에 있는 영
’그래, 날 생각해서 수고스레 간식을 사주는 거니 기다려보자.’윤슬은 좌우를 둘러보다가 휴게소 한 곳을 지나 앉더니 다리를 흔들며 매장 쪽을 지켜보았다.부시혁은 지금 이미 매점에 와 있는데, 아마도 그의 카리스마가 강해서인지 원래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들의 행동에 부시혁은 조금 의외였다.지금까지 이런 공공장소에 와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오자마자 자리를 양보받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 몰랐다.평소 같으면 양보를 받지 않고 계속 줄을 섰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윤슬이 기다리고 있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관 자리였다. 바로 상영관 가장 구석에서 가장 어둡고 외진 두 자리.이런 자리가 커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여기서 몰래 나쁜 짓을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니까.윤슬은 부시혁이 장 비서에게 이런 자리를 사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설마 그 커플들을 본받아서 영화가 상영할 때, 몰래 다른 짓을 하려는 건가?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상영실에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부시혁은 윤슬의 눈빛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내가 아니라 장용이 멋대로 산 거야.”그가 이번
윤슬은 얼른 안경을 벗고 고개를 돌려보니 어깨가 부시혁의 머리에 눌려 있었다.그녀는 어깨를 움직이며 작은 소리로 "시혁 씨?"라고 불렀다.남자는 반응이 없다.윤슬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고 스크린 너머로 비치는 빛에 남자의 감긴 두 눈과 평온한 얼굴이 보였다.‘설마 잠든 거야?’윤슬은 놀랍고 어이가 없었다.영화가 얼마나 무료했으면 잠이 들었을까?하긴 이 영화는 민국 첩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주요한 스토리는 로맨스였다.보통 남자들에게도 이런 영화는 무료한데 하물며 부시혁은 더 할 것이다."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이고 됐어, 잠들었든 아니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함부로 행동하지만 않으면 돼.’부시혁이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말이다.윤슬은 한숨을 쉬며 부시혁을 외면하고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았다.한 시간여 만에 영화가 끝나자 상영관의 불빛이 켜졌다.안경을 벗은 윤슬은 새빨갛고, 속눈썹과 눈시울이 마르지 않은 눈을 드러냈다.이 영화는 막장 로맨스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확실히 감동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그녀뿐만 아니라 상영관의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다들 상영관
"돌아왔어요?" 부시혁이 돌아오자 윤슬은 핸드폰을 놓고 일어섰다.Comment by 善花: "다녀왔어."그는 '돌아왔어요'라는 윤슬의 말을 좋아했다. 마치 윤슬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Comment by 善花: "뭐 샀어요?" 윤슬이 그의 오른손을 쳐다보니 오른손에 파란 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수건 안에는 뭔가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윤슬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수건은 왜 샀어요?""산 건 아니고, 저기서 주더라고." 부시혁이 다가가 앉았다.그는 매점을 바라보았다."오~" 윤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