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말했다. 만약 이심, 삼심까지 가도 결과는 첫 재판 결과는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치겠네!”육재원이 주먹으로 의자를 가격했다.유신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윤슬은 고유나가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재판장을 나선 것을 확인했다. 고도식 부부도 함께 재판장을 나섰다. 그들은 윤슬의 시선을 느끼고 윤슬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채연희는 지금 당장 윤슬 앞에서 배를 끌어안고 미친 듯이 웃고 싶었다.고유나가 교도소 생활을 할까 봐 이리저리 부탁을 하고 다니며 얼마
윤슬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은 부시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윤슬아, 왜 그래?”“괜찮아.”두 눈을 감은 윤슬의 목소리에는 아무 기운도 없었다.부시혁은 윤슬이 걱정되었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다고?“너 지금 어디야?”부시혁이 다급하게 물었다.윤슬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에 있던 휴대폰이 미끄러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옆으로 떨군 윤슬은 자는 것처럼 보였다.부시혁은 휴대폰이 떨어진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다급하게 윤슬의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윤슬에
부시혁의 생각을 꿰뚫어본 임이한은 안경을 닦으며 농담 형식으로 말했다.“윤슬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없애야 돼. 윤슬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한 짓인 것 같아. 그는 윤슬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거지. 누가 제일 유력한 용의자가 아닌 사람부터 제외하면 빠르잖아.”말을 마친 임이한은 안경을 고쳐 끼고 윤슬의 병실을 알아보겠다고 자리를 떠났다.부시혁은 윤슬만 괜찮다면 되었다. 다른 건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화는 부시혁이 혼자 내면 된다고 생각한 임이한은 부시혁을 남겨두었다. 윤슬이
“이게 다 윤강호 때문이야. 그 남자가 널 납치만 안 했으면 네가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랄 필요도 없었겠지. 유나도 마찬가지야.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너한테 그렇게까지... 걔는 왜 아직도 철이 안 드나 몰라!”고유정을 품에 안은 채연희가 불만을 터트렸다.애초에 고유정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고유나를 입양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채연희는 지금까지 고유나를 자기 친딸처럼 생각하고 키웠고 친딸인 고유정이 돌아온 뒤에도 그전과 똑같이 그녀를 아꼈었다.그런데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고유정을 괴롭혔다는 사실에 속상하면서도
임이한이 눈썹을 치켜세웠다.하지만 고유나가 잘못 말한 게 하나 있었다. 윤슬 쪽에 해커가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침묵으로 일관하는 임이한의 모습에 자신의 예상이 맞다고 생각한 고유나가 소리쳤다.“임이한! 이 악마 같은 자식! 너도 윤슬 그 계집애한테 넘어간 거지? 그래서 나한테 이러는 거야?”왜! 도대체 왜! 내 편이었던 사람들이 왜 전부 윤슬에게로 넘어간 건데!부시혁도, 부민혁도... 이제 임이한까지...윤슬 그 여자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나보다 나은 게 뭔데!!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해가 안 되고 질투가
순간 고유나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우연에 온몸의 털이 쭈볏쭈볏 서고 운명의 농락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센 분노가 몰아쳤다.윤슬! 또 윤슬이야!설마 평생 이렇게 윤슬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부시혁의 펜팔 친구가 윤슬이었던 것도 화나는데 임이한을 구해 줬던 사람까지 윤슬이었다니!왜 하필 전부 윤슬인 거야!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거냐고!“으아아악!”고유나가 미친 여자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하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임이한의 얼굴에서는
말을 마친 임이한은 공포에 질린 고유나를 향해 여유롭게 웃어준 뒤 병실을 나섰다.병실 밖,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듯 웃음꽃을 피우던 채연희와 고유정이 임이한을 발견하고 바로 의자에서 일어섰다.“선생님, 저희 유나 좀 어때요?”“아, 별일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울 증세를 보이긴 합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아마 괜찮아 질 거예요.”여유롭게 안경을 올리는 임이한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광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임이한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채연희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부시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끄고 다시 침대로 던져버렸다.상황도 모르면서 속 좋게 전화나 치고 문자나 날리는 육재원이 꼴 사나우면서도 왠지 부럽기도 했다. 육재원은 윤슬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만나러 올 수 있으니까...왜 이렇게 된 걸까? 분명 한때는 내 사람이었는데... 내 손으로 밀어내 버렸어...가슴이 욱신거리고 부시혁은 다시 가슴을 움켜쥐었다. 윤슬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눈물로 살짝 반짝였다.그러니까...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윤슬, 너도 도망칠 생각하지 마!부시혁의 다짐을 안고 밤은 점점 깊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