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은 몇 초 동안 고민하다 말했다.“이렇게 하죠. 비서님은 이 은행에 가서 마음을 다시 바꿀 수 있는지 은행장과 상의해보고 고도식이 배후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지도 확실히 물어봐요.”“알겠습니다.”박희서는 대답하고 이내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이 일, 육재원 대표님께 말씀하실 건가요?”“아니요.”윤슬은 고개를 흔들었다.“재원이는 요즘 자기 회사 돌보느라 바빠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네.”박희서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무팀 진서아도 왔다.“대표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방금 은행 몇 군데서
“이미영이야.”그녀는 이씨 가문과는 갈등이 없었다.오직 이미영과 작은 모순이 있었을 뿐이다.“제 생각도 그래요.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설마 전에 그 마작 일 때문에요?”진서아는 추측했다.윤슬은 술을 한 모금 마셨고, 작은 얼굴에는 희노를 찾아볼 수 없었다.“어쩌면.”“만약 정말 그렇다면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니에요?”진서아가 차갑게 웃었다.“그리고 이미영 손을 너무 깊이 넣은 거 아니에요? 남연시의 권세가가 감히 하이시의 일에 끼어들다니, 무슨 배짱일까요? 대표님,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윤슬은 몸을 곧추세우며 웃었다.“진서야, 고마워. 이번에 정말 네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을 거야.”천강 그룹은 2,000억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데, 만약 그 은행들이 이 돈을 가지고 간다면 그녀는 어디서 이 2,000억을 구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은 진서아가 손을 써 그녀를 대신해 이 난제를 해결해줬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했다.진서아는 손을 흔들었다.“대표님, 저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요. 대표님의 근심을 덜어주는 건, 부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윤슬은 가볍게 웃었
윤슬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그는 뜻밖에도 그녀가 발을 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게 무슨 기분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윤슬은 더는 부시혁의 보호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그의 품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어쨌든 그녀는 두 발 다 삐끗하고 싶지 않았고 휠체어를 타고 출근하고 싶지도 않았다.엘리베이터가 2분쯤 흔들리다 마침내 평온을 되찾고 무사히 1층에 도착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고 바깥의 밝은 빛을 보자 윤슬은 불안했던 마음을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장용은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윤슬과 부시혁은 고개를 들어 바라봤고 성준영은 손가락으로 차 열쇠를 돌리며 걸어왔다.부시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준영을 바라봤다 다시 옆의 여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왜 성준영더러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을까.그들이 언제부터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부시혁을 본 성준영도 약간 놀라서 물었다.“시혁아, 너도 왜 여기 윤슬 대표님이랑 같이 앉아 있어? 설마 둘이 데이트 중이었던 건 아니지?”그는 곰곰이 생각하며 두 사람을 가리켰다.윤슬은 얼음주머니를 옆에 두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다른 한쪽에서는 고유나의 무리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윤슬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고유나가 아니라 그녀의 친구 맹소은이었다.맹소은은 고유나의 소매를 잡아당기더니, 접수창구를 가리켰다.“유나야, 저기 윤슬 아니야? 그리고 성준영 씨 같은데 둘이 왜 같이 있는 거지?”고유나는 천천히 웃음을 거두고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눈빛은 어두워졌지만, 어투는 부드러웠다.“정말 윤슬 아가씨랑 준영 씨네. 그런데 윤슬 아가씨 다친 것 같은데.”그녀의 눈길은 아래로 향하여 윤슬이 들어 올린 그 발에 고정되었고, 위의 붉은 부기가
고유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이었다.그가 인정했다.그가 정말 윤슬을 구애자인 걸까?고유나가 놀란 만큼 이미영과 맹소은도 똑같이 놀랐다.이미영은 멍청이를 보듯 성준영을 쳐다봤다.같은 권세가 출신으로 이혼한 여자를 좋아하다니, 이미영은 마음속으로 성준영을 경시했다.이것은 그야말로 그들 권세가의 자제들을 망신시키는 것이었다!“준영 씨,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윤슬 아가씨는......”고유나는 윤슬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고 무언가 말 못 할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윤슬은 화가 나 웃음이 났다.
윤슬은 세 사람의 표정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남이 모르게 하려면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죠.”이미영은 표정을 가다듬었다.“알았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요. 천강은 곧 끝장날 텐데.”“그래요?”윤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고유나 아가씨를 위해 이미영 아가씨가 직접 손을 쓰다니, 이 우정, 정말 감동스럽네요. 하지만 이미영 아가씨는 정말 천강이 끝장날 거라 생각하세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제 생각에 곧 끝장날 것 같은 건 오히려 당신네 이씨 가문 같은데요.”이미영은 동공을 움츠렸고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윤슬 아가씨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