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현은 흰색 봉고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는데 가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거리며 보았다.그곳에 지서현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왕우현은 운전을 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훑었다.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하지만 만약을 위해, 우선 이곳을 떠나는 것이 급선무였다.어느 누구도 모를 곳으로 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지서현은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왕우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서현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뜨거워졌다.그
쫙!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서현의 피부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그 순간 끔찍했던 기억이 그녀를 무자비하게 과거로 끌고 갔다.그때도 바로 이곳과 같은 음습한 동굴 속에서 지서현은 왕우현에게 짓눌려 있었다.그의 불결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다가왔고 온몸이 공포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그때의 어린 지서현은 죽어가고 있었다.기댈 곳이 하나도 없던 지서현은 속으로 애타게 하승민을 외쳤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그런데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왕우현의 몸이 지서현의 위로 내려앉았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절
하승민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차, 롤스로이스의 조수석에 내려놓았다.그는 곧 핸들을 잡고 부드럽지만 힘 있는 움직임으로 엑셀을 밟았다.차는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조용한 차 안,지서현은 온몸을 그의 넓은 코트 속에 묻고 있었다.따뜻한 온기, 그리고 하승민에게서 은은하게 퍼지는 깨끗하고 시원한 향.지서현은 작은 코끝을 붉히며 조용히 그 향을 들이마셨다.마음 한구석이 이상한 감정으로 출렁였다.사실 하승민은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빠르게 현장으로 도착했다.지서현은 고개를 돌려
하승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서현과 함께 방으로 향했다.지서현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아까 사장님이 말한 유료 물품이 뭐였을까요?”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 말에 하승민은 잠시 지서현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하승민이 너무 이상했지만 지서현은 별생각 없이 그냥 궁금함을 접었다.503호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은 예상보다 깔끔했지만 문제는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지서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이 침대에서 오늘 같이 자야 하나? 어떻게 그래?’당
하승민 이미 씻고 나온 상태였으니 소아린의 음성 메시지를 다 들은 상태였다.지서현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아니, 하 대표님. 그게 아니라...”너무 당황한 탓에 지서현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침대 위에 떨어졌다.그 바람에 소아린의 음성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 대표님 몸도 정말 좋아 보이고 선명한 복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하 대표님 손가락도 길잖아. 소문에 의하면 손가락 긴 남자는 침대 위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들었어. 서현아, 이번엔 하 대표님이랑 자봐!]변명이라도 하려던 지서현은 다시 말문이 막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점점 더 거리낌 없이 커져 갔다. 이래서야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하승민은 손을 들어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렸다.똑똑!그러자 옆방의 소리가 바로 작아졌고 하승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하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젊고 혈기 왕성한 몸이 이런 환경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바로 옆에는 지서현이 누워 있었고 부드러운 향기가 옅게 풍겨왔다. 머릿속에는 저절로 그날 밤 서원 별장의 안방에서 그녀를 벽에 밀어붙이고 손을 강제로 움켜쥐었던 장면이 떠올랐다.그
지서현은 계속해서 하승민을 불렀다.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옆방 남자는 무심코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절로 시선이 가는 목소리였다.하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방으로 들어오자 지서현은 이미 침대에 올라가 있었다.그리고 하승민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대는 거야? 귀신이라도 부르는 거냐?”“...”지서현은 행여나 하승민이 싸울까 봐 그냥 좋은 마음으로 부른 거였다.“찬물샤워 좀 하고 올게.”그렇게 말한 뒤, 하승민은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지서현이 하승민의 입술을 덮치자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더니 즉시 그녀를 밀어냈다.“서현아!”지서현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승민을 조그마한 얼굴을 살짝 들어 바라보았다. 그녀의 맑고 깨끗한 눈매에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스며 있었다.“지유나한테 전화 왔는데 안 받으실 거예요?”그때, 하승민이 고개를 숙이고는 거칠게 그녀의 붉은 입술을 다시 막아버렸다.핸드폰에서는 진동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지유나가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기에 지서현은 또다시 이 남자와 몰래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분명 지서현과 하승민은 합
말하면서 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내 남자 친구는 하 대표님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아요.”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 대단한 남자 친구라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하승민의 미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하하하.지씨 가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박경애가 말했다.“서현아, 허풍 떨지 마. 너한테 그런 남자 친구가 있을 리가 있겠냐.”이윤희도 맞장구쳤다.“서현아, 웃기지 마.”지서현은 가느다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휴대폰에 저장된 셋째 오빠 소문익이 보낸 문자를 떠올렸던 것이다.[서현아
박경애와 둘째, 셋째네 식구들은 일찌감치 최고 학술 포럼 초대장을 손에 넣었다. 모두 천재 소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그들은 천재 소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렇게 뛰어난 걸까?지유나는 하승민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천재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질투심에 속이 타들어 갔다.지금 해성의 모든 관심은 천재 소녀에게 쏠려 있었다. 모두가 하승민과 천재 소녀의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고 지유나 역시 모레 직접 그 모습을 확인하려고 했다.지서현은 한쪽에 서서 맑고 투명한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묘
지서현은 드디어 박경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늘 밤 그녀에게 맞선 자리를 마련해 시골로 시집보내려는 것이었다.이우진은 지서현을 쳐다보았다. 지서현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는지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지서현 씨, 안녕하세요.”바로 그때, 지유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 무슨 얘기 하세요?”지서현이 눈을 들어보니 지유나였다. 지유나는 혼자 온 게 아니라 하승민의 팔짱을 끼고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하승민도 왔다.박경애가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 대표, 유나야. 마침 잘 왔네. 서현이가 지금 맞선을
이혼 후, 지서현은 하승민 앞에서 새끼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작은 발톱을 내밀어 그의 심장을 살짝살짝 긁어댔다.아프진 않지만 은근히 거슬렸다.지서현은 그의 품에 부딪히자 곧바로 그에게서 풍기는 깨끗하고 청량한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그녀는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리쳤다.“놔요!”하승민은 손을 뻗어 지서현을 침대로 밀쳤다. 지서현의 가녀린 등은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닿았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그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하승민은 한쪽 무릎을 침대에 꿇고 양손을 그녀의 옆에 짚은 채, 장난스럽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하지만 그녀는 지서현이 아니었다.지유나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오늘 지서현은 자신의 계략을 역이용해서 하승민을 불러 자신에게 치명타를 날렸다.예전에는 지서현을 우습게 봤는데 이젠 지서현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게 됐다.지서현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지유나는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 박경애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서현이 기숙사로 돌아오니 엄수아도 돌아와 있었다.지서현이 물었다.“수아야, 진세윤 따라잡았어?”엄수아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못 잡았어. 진세윤은 나한테 눈길도 안 주더라.”지서현은 웃었다.“진세윤,
지유나는 고개를 들었다. 잘생기고 고귀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승민이었다.그녀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하승민이 왜 여기에?’“승... 승민 오빠, 어떻게 왔어?”하승민은 차가운 표정으로 지유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서현이 미소 지었다.“유나야. 내가 하 대표님께 전화했어.”뭐라고?지유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서현이 미리 하승민에게 전화해서 불러올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지서현은 지유나 앞으로 다가갔다. 맑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그녀는 비아냥거리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오늘 네가 하은
진세윤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조군익은 어이가 없었다. 진세윤이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엄수아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군익아, 네가 뭔데 농구 시합을 하자 마라 해? 진세윤,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잠깐만!”엄수아는 다시 진세윤에게 달려갔다.조군익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농구공을 집어 들어 진세윤의 등을 향해 던졌다.“진세윤, 조심해!”엄수아가 소리쳤다. 농구공은 빠르게 진세윤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라면 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때 진세윤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날아오는 공을 잡았다. 진세윤
손목을 잡힌 엄수아는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냐니, 무슨 말이야?”조군익은 진세윤을 보고 다시 엄수아를 쳐다보았다.“너, 얘랑 무슨 사이야?”엄수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조군익의 손을 탁 쳐냈다.“군익아, 우리 이미 파혼했잖아.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네 여자친구는 하은지야!”하은지가 달려왔다. 엄수아가 진세윤을 쫓아가자 놀랍게도 조군익이 따라간 것이다. 그것도 그가 먼저 엄수아를 쫓아서. 조군익이 엄수아를 쫓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은지는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엄수아는 사실 아주 예뻤다. 명문가에서 애지중지 키워 온 덕분에 고상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점을 지우자 오른쪽 눈 밑에는 작고 예쁜 눈물점까지 있어서 완전 미인이었다.대박.사람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못생긴 여자애가 순식간에 절세미인으로 변신한 것이다.가장 놀란 사람은 지유나와 하은지였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엄수아를 쳐다보았다.‘점이 정말 사라졌다고? 말도 안 돼!’지서현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됐다.”그녀는 작은 거울을 꺼내 엄수아에게 건넸다.“수아야, 다시 한번 네 얼굴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