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야? 지서현을 학교에 보낸다고? 세경대학교라고? 정신 나간 거 아냐? 세경대는 국내 최고 명문이야. 지서현이 뭔 자격으로 들어가?’지유나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빠, 지서현은 열여섯 살 때 학교 그만뒀어. 시골에서 올라온 애라고. 남자 유혹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그런 애가 세경대에 들어갈 자격이 있냐고?”하승민은 아무 말 없이 지유나를 바라봤다.그의 눈빛은 단호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지서현을 세경대학교에 보내겠다는 결심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지
지서현은 고개를 들어 하승민을 바라봤다.“괜찮아요. 오늘 밤에 나갈게요.”그의 손바닥에서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하승민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강하게 감아쥔 탓에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다.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일 세경대에 가서 등록해.”지서현은 멍해졌다.“왜요?”“널 세경대에 보내기로 했어. 거긴 다 얘기해뒀고 너는 거기서 의학을 공부하면 돼.”“...”‘날 세경대 의대에 다니게 한다고? 나중에 이 사람 자기 말 되새기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볼까?’“안 가요.”지서현은 단칼에 잘라 말했다.그러자
사실 이 오랜 세월 동안 떠돌고 또 떠돌면서 그녀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그렇게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하지만 고난보다 더 눈물이 나는 건 따뜻함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김옥정은 조용히 지서현을 품에 안았다.그러고는 아이를 달래듯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바보 같은 애야,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고맙다고 해?”“할머니,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그래, 말해봐. 무슨 일이야?”문밖에 서 있던 하승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지서현은 김옥정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긴 속눈썹이
그녀는 그저 대타로 시집온 여자였다.그건 작은 사고였고 한승민은 한때 지서현에게 육체적인 욕망에 휘말린 적은 있었지만 좋아한 적은 없었다.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지유나, 그가 원한 사람도 지유나였다.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그러니 지서현과의 관계는 이제 끝내야 했다....깊은 밤,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소아린은 옷을 걸치고 나가며 물었다.“누구세요?”문 앞에는 지서현이 서 있었다.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고 손에는 그저 김옥정이 선물해준 노란색 니트 조끼 하나뿐이었다.지서현은 힘없이
지금 임성민은 서 있고 지서현은 앉아 있다. 상황상 임성민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어야 했지만 곧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지서현은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조용히 임성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유롭고 당당한 기세에 도리어 임성민이 눌리는 분위기였다.“그... 그렇지.”임성민이 얼떨결에 대답했다.‘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C신 선생님 말고는 감히 내 이름을 똑바로 부른 사람은 없었는데. 얘 참 눈치도 없고 예의도 없네.’“너...”한마디 하려던 임성민이 입을 열었지만 지서현이 먼저 말을 이었다.“그래,
이 여학생 기숙사 방에는 현재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한 명은 지서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엄수아였다.“너 지서현 맞지?”엄수아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엄수아야. 우리 이제 룸메이트다, 잘 부탁해!”엄수아는 밝고 쾌활한 성격의 소녀였지만 오른쪽 뺨에 큰 점 모양의 선천적인 점이 있었다.하얀 얼굴 위에 도드라진 검은 점은 처음 보면 꽤 눈에 띄었다.지서현의 시선이 그 점에 머물자 엄수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쿨하게 말했다.“이 점,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거야. 병원에서도 없앨 수 없다고 했거든. 그래서 애들이
오늘 밤 하승민은 계속해서 지고 있었다. 운이 좋지 않아선지 날렵한 이목구비가 더욱 차갑게 보였다.지유나는 카드 패를 살펴보며 옆에 놓인 과일 접시에서 제철 과일 하나를 집었다.탱글탱글한 보라색 포도를 껍질을 벗긴 뒤, 안의 투명한 과육을 조심스럽게 하승민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하승민은 시선을 카드에 고정한 채 입을 벌려 지유나가 건네준 포도를 받아먹었다.지유나는 새처럼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하승민이 뱉은 포도씨를 손바닥에 받았다.꼭 정성스레 남편을 모시는 어린 아내 같았다.그 모습을 본 두 명의 재벌 2세가 웃음을
지서현은 소파에 앉아 있던 하은지를 발견했다.하은지는 무척 신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들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승민 오빠, 유나 언니!”하은지가 씩 웃으며 말했다.“다들 이렇게 신나 있으니까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게요.”지유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얘기?”“지서현에 대한 이야기예요!”문밖의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이 분위기에 날 엮는 건 좀 아니잖아.’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승민과 지유나의 세계에 자신은 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강제로 끌려 들어가는 분위기였다.“지서
말하면서 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내 남자 친구는 하 대표님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아요.”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 대단한 남자 친구라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하승민의 미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하하하.지씨 가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박경애가 말했다.“서현아, 허풍 떨지 마. 너한테 그런 남자 친구가 있을 리가 있겠냐.”이윤희도 맞장구쳤다.“서현아, 웃기지 마.”지서현은 가느다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휴대폰에 저장된 셋째 오빠 소문익이 보낸 문자를 떠올렸던 것이다.[서현아
박경애와 둘째, 셋째네 식구들은 일찌감치 최고 학술 포럼 초대장을 손에 넣었다. 모두 천재 소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그들은 천재 소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렇게 뛰어난 걸까?지유나는 하승민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천재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질투심에 속이 타들어 갔다.지금 해성의 모든 관심은 천재 소녀에게 쏠려 있었다. 모두가 하승민과 천재 소녀의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고 지유나 역시 모레 직접 그 모습을 확인하려고 했다.지서현은 한쪽에 서서 맑고 투명한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묘
지서현은 드디어 박경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늘 밤 그녀에게 맞선 자리를 마련해 시골로 시집보내려는 것이었다.이우진은 지서현을 쳐다보았다. 지서현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는지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지서현 씨, 안녕하세요.”바로 그때, 지유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 무슨 얘기 하세요?”지서현이 눈을 들어보니 지유나였다. 지유나는 혼자 온 게 아니라 하승민의 팔짱을 끼고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하승민도 왔다.박경애가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 대표, 유나야. 마침 잘 왔네. 서현이가 지금 맞선을
이혼 후, 지서현은 하승민 앞에서 새끼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작은 발톱을 내밀어 그의 심장을 살짝살짝 긁어댔다.아프진 않지만 은근히 거슬렸다.지서현은 그의 품에 부딪히자 곧바로 그에게서 풍기는 깨끗하고 청량한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그녀는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리쳤다.“놔요!”하승민은 손을 뻗어 지서현을 침대로 밀쳤다. 지서현의 가녀린 등은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닿았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그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하승민은 한쪽 무릎을 침대에 꿇고 양손을 그녀의 옆에 짚은 채, 장난스럽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하지만 그녀는 지서현이 아니었다.지유나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오늘 지서현은 자신의 계략을 역이용해서 하승민을 불러 자신에게 치명타를 날렸다.예전에는 지서현을 우습게 봤는데 이젠 지서현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게 됐다.지서현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지유나는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 박경애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서현이 기숙사로 돌아오니 엄수아도 돌아와 있었다.지서현이 물었다.“수아야, 진세윤 따라잡았어?”엄수아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못 잡았어. 진세윤은 나한테 눈길도 안 주더라.”지서현은 웃었다.“진세윤,
지유나는 고개를 들었다. 잘생기고 고귀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승민이었다.그녀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하승민이 왜 여기에?’“승... 승민 오빠, 어떻게 왔어?”하승민은 차가운 표정으로 지유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서현이 미소 지었다.“유나야. 내가 하 대표님께 전화했어.”뭐라고?지유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서현이 미리 하승민에게 전화해서 불러올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지서현은 지유나 앞으로 다가갔다. 맑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그녀는 비아냥거리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오늘 네가 하은
진세윤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조군익은 어이가 없었다. 진세윤이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엄수아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군익아, 네가 뭔데 농구 시합을 하자 마라 해? 진세윤,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잠깐만!”엄수아는 다시 진세윤에게 달려갔다.조군익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농구공을 집어 들어 진세윤의 등을 향해 던졌다.“진세윤, 조심해!”엄수아가 소리쳤다. 농구공은 빠르게 진세윤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라면 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때 진세윤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날아오는 공을 잡았다. 진세윤
손목을 잡힌 엄수아는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냐니, 무슨 말이야?”조군익은 진세윤을 보고 다시 엄수아를 쳐다보았다.“너, 얘랑 무슨 사이야?”엄수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조군익의 손을 탁 쳐냈다.“군익아, 우리 이미 파혼했잖아.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네 여자친구는 하은지야!”하은지가 달려왔다. 엄수아가 진세윤을 쫓아가자 놀랍게도 조군익이 따라간 것이다. 그것도 그가 먼저 엄수아를 쫓아서. 조군익이 엄수아를 쫓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은지는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엄수아는 사실 아주 예뻤다. 명문가에서 애지중지 키워 온 덕분에 고상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점을 지우자 오른쪽 눈 밑에는 작고 예쁜 눈물점까지 있어서 완전 미인이었다.대박.사람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못생긴 여자애가 순식간에 절세미인으로 변신한 것이다.가장 놀란 사람은 지유나와 하은지였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엄수아를 쳐다보았다.‘점이 정말 사라졌다고? 말도 안 돼!’지서현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됐다.”그녀는 작은 거울을 꺼내 엄수아에게 건넸다.“수아야, 다시 한번 네 얼굴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