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며칠 동안 편하게 잤더라니, 어쩐지 모기는 그녀가 아닌 송임월만 물더라니...서지현은 그동안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게 인터넷 게시글에서 본 것처럼 자신이 모기에게 잘 물리지 않는 혈액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송임월이 그녀를 위해 모기를 모두 쫓아냈기 때문이었다니...“깼어?”어둠 속의 송임월은 동작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내, 내가 너무 시끄럽게 해서 깬 거야? 모기, 모기가 있는데 물리면 가려울까 봐...”서지현은 입술을 깨물어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송임월의 품에 와락 안겼다.어렸을 때 지하실에서 살았던 서지현은 벼룩에게 물려 엉엉 울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귀찮아하면서 오히려 발로 벽에 걷어찼었다.송임월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 내가 있잖아.”“네...”서지현은 흐느끼다가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한참 망설이며 조용히 물었다.“혹시 전하를 엄마라고 한 번만 불러보면 안 될까요?”송임월은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들은 듯 그저 하염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기만 했다. 그녀를 품에 꼭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모기를 내쫓았다.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서지현은 진심으로 송임월을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다.어렸을 때 엄마가 있었는데도 사랑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송임월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있으니 서지현은 기쁘면서도 조금 의아했다.“전하, 무례하게 굴어서 정말 죄송합니다.”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제 작은 소원을 들어주실래요? ‘엄마’라고 이 번 한 번만 부르고 깨끗하게 잊어버릴게요.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네?”송임월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바보처럼 실없이 웃기만 했다.서지현은 입술을 달싹 움직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그녀의 품에 기대 나지막이 그 두 글자를 내뱉었다.“엄마.”드디어 말하고 나니 주체할 수 없는
서지현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송혁준 뒤에 선 그 사람은 벌써 정체를 드러냈다.상대를 본 서지현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그렇게 놀랄 것까지야...”송혁준은 겨우 웃음을 참았다.하지만 서지현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줄곧 송혁준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시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나석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봤다.나석진은 짧은 상의에 통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제 보니 사이즈가 XL인 통치마인 듯했다. 꽃이 수놓인 플랫슈즈를 신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에 스카프까지 두르고 있었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남자인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석진이 안으로 걸어 들어올 때 일부러 몸을 비틀거리며 교태를 부렸기에 영락없는 여인처럼 보였다.서지현은 안색이 어두워진 나석진을 보더니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웃음을 참다가 끝내 터뜨리고 말았다.“쉿!”송혁준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나석진더러 스카프를 다시 잘 쓰라고 했다.대문 앞을 지키는 시위와 시녀가 있으니 절대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되었다.송혁준은 유유히 밖으로 걸어 나가고는 손을 휘저으며 그들더러 물러가라고 했다.“고모님을 뵈러 온 거니까 지현 씨 혼자면 충분해. 그러니까 다들 물러나.”“전하, 그게...”시위는 주춤거리며 말했다.“왜? 고모님을 뵈러 온 나를 감시하려고?”시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재빨리 물러났다.서궁은 비로소 안전해졌으니 나석진은 스카프를 벗은 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서지현도 그제야 마음 놓고 소리 내어 웃었다.“웃기는!”나석진이 뾰로통해하며 말했다.“아저씨...”서지현은 웃느라 숨까지 헐떡였다.“왜 이런 차림으로 왔어요? 하하하, 왜 시녀인 척했는데요?”“석진 씨는 함부로 궁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요.”송혁준이 설명했다.“그리고 만약 제가 석진 씨와 같이 서궁에 나타났으면 분명 숙모님의 의심을 샀을 거예요. 그래서 석진 씨를 제 시녀로 변장시킨 거예요.”“그런데 왜 시
나석진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송임월을 발견했다.나석진은 아무 이유도 없이 뒤통수를 맞았기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위엄 있는 분위기를 뽐내던 송임월을 보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그 손 놓으라고 했지?”송임월은 포기를 모르는 여자였다.“놔!”평소 같으면 나석진은 벌써 짜증이 몰려와 맞대응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여위고 안색이 창백한 송임월에게서 말로 이룰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송임월을 그저 지켜볼 뿐 나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한참 쭈뼛거리다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뭐, 뭐 하시려는 거예요?”송임월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를 확 밀어내고는 서지현의 앞에 섰다.건장한 체격의 나석진과 비교하면 송임월은 한없이 왜소해 보였다.하지만 그런 나석진을 상대하면서도 송임월은 전혀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나석진은 문득 사냥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냥꾼이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사냥개는 둥지에서 땅으로 떨어진 새끼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냥개가 다가가려 하자 어미 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오고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데 사냥개는 어미 새의 수십 배에 달하는 몸집인데도 그 기세에 눌려 꼼짝하지 못한다고 한다.두 팔을 벌리고 서지현 앞에 서 있는 송임월은 꼭 이야기 속의 그 어미 새와 같았다.나석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저도 모르게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서지현은 웃으면서 두 손을 송임월의 어깨에 올려놓고는 그녀의 팔을 내렸다.“전하, 왜 그러세요?”서지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참, 이 사람을 본 적 없으시죠? 제가 평소에 자주 얘기했었던 아저씨는 기억이 나요?”송임월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정식으로 소개할게요.”서지현은 송임월의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갔다.“아저씨, 전하께 인사를 올려야죠.”나석진은 마음이 내키지
하지만 그는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었다.송임월은 그의 앞길을 막더니 절반 바느질한 옷을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바느질 다 하고 가!”“네?”어리둥절한 나석진의 표정을 보며 서지현은 겨우 웃음을 참았다.송임월은 서지현의 작은 손을 꼭 잡더니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그녀를 데리고 편전으로 향했다.“나쁜 놈이니까 바느질을 마저 다 해게 해야지! 그래야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 아니야. 흥!”나석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다가 서지현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메롱’ 표정을 지었다....요 며칠 동안 최연준은 변덕수를 도와 자료를 번역하고 있었다.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전의 도움이 있었기에 번역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었다.어느덧 시간은 거의 자정이 되어 갔다.강서연은 서재에 들어가 우유 한 잔을 최연준의 옆에 살포시 내려놓은 후 그의 어깨를 주물러줬다.“군형이는 자?”최연준은 고개를 들어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강서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자기 전까지도 아빠가 이야기를 해주길 기다렸어요. 그런데도 여보는 오지 않았죠!”“날 기다렸다고?”최연준은 약간 놀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놀라운 마음을 넘어서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녀석은 그를 기다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요.”강서윤은 허리를 숙여 뒤에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그의 볼과 볼을 맞대며 말했다.“남자애니까 용감하고 듬직한 아빠가 옆에 함께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생각해 보니 군형이를 품에 안아 애지중지 키울 수 있는 시간도 2, 3년밖에 안 되더라고요. 이제 막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겠죠? 그러면 집에서 기린처럼 목 빼고 자기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겠죠?”최연준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김자옥은 전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보다 자
강서연은 표정이 나른해진 최연준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손을 뻗어 최연준의 목을 감싸고는 그의 입가에 키스하기 시작했다.최연준은 바로 강서연의 교활한 눈빛을 포착했다.‘뭐야? 방금은 나 놀리려고 한 말이야? 아들 일곱 명이라니, 대단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군. 그렇게 많이 낳고 싶다고 해도 내가 원하지 않아. 아들 일곱 명이면 골칫덩이들만 등에 업는 셈이잖아, 그래도 딸이 좋지.’그렇게 생각한 최연준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굶주린 늑대처럼 강서연에게 덮쳤다.“여보!”강서연은 거짓말이 이렇게 빨리 간파당할 줄 몰랐다.“정말 아들 일곱 명을 낳을 셈이에요?”“여보, 우리 내기할까?”“무슨 내기요?”“이번에는 무조건 딸일 거야!”“우웁!”강서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최연준은 그녀에게 딥 키스를 퍼부었다....이튿날 아침.강서연은 몸이 부서진 듯이 아파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했다.어젯밤에 장난삼아 아들 일곱 명을 낳을 거라는 말을 했었는데 최연준은 그 거짓말을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세를 몰아 새벽까지도 그녀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강서연은 온몸에 힘이 탁 풀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최연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그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본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아이가 생긴 후로 그녀는 정성을 다해 아들을 돌보느라 남편에게 소홀했었다.최연준은 이 일로 강서연에게 몇 번이나 불평했지만 강서연은 그를 아들에게 질투심이나 느끼는 철없는 인간으로 간주했다.미안한 마음이 든 강서연은 부드러운 손길로 각진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졌다.최연준은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 입꼬리를 씩 올렸다.“아빠! 엄마!”이때 문밖에서 군형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서연은 깜짝 놀라 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때 가정부가 문을 두드렸다.“도련님, 사모님, 아기 도련님께서 두 분을 찾으시는데 들어가도 될까요?”“문을 잠그지 않았으니까 들여보내세요.
강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소리 내 웃으며 얼른 아들을 안아 들었다. 산발이 된 최연준이 몸을 일으켰다. 놀라움이 가득 담긴 그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사라진 상태였다.최군형만이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최연준은 깊이 심호흡하며 되뇌었다. 친아들이야! 친아들이라고!“여보, 괜찮아요?”강서연이 물었다. 최연준이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며 대답했다.“괜찮아.”“그럼...”오늘도 변덕수에게 자료를 번역해 줘야 하나 물어보려는데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남양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서연아, 일어났어?”윤정재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최군형이 외쳤다.“하부지, 하부지!”“우리 강아지, 할아버지 생각 많이 했어? 어서 돌아와, 할아버지랑 반딧불이 잡으러 가자!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조금만 기다려줄래?”최군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강서연에게 넘겨주고 최연준의 품에 안겼다.아마 남양 쪽에서 때가 된 모양이었다.“무슨 일이에요?”“경찰서에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아마도 요즈음이 될 거야.”“왜요?”“최근 임월 전하가 발작을 일으킬 거야, 모든 단서는 날 가리키고 있고.”강서연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윤정재는 자신을 미끼로 숨은 주동자를 잡아낼 모양이었다.“그럼, 임월 전하는 안전해요?”“지현이에게 얘기해 뒀어. 혁준 친왕이 이미 서궁의 경비 절반을 나 장군의 수하들로 바꿔놓았어. 그러니 안전할 거야.”“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어서들 돌아와, 이번엔 꼬리 남기지 말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해!”강서연이 뭔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전화가 끊기자 최연준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덕수 아저씨가 민간 자료를 얻어냈대. 그 빈민가 길에서 한 외국 여자가 갓난아이를 남녀 한 쌍에게 넘겨줬대. 그걸 직접 본 사람이 있고.”“우리가 잡은 사람들일까요?”“그럴 가능성이 크지.”강서연이 생각에 빠졌다. 그들은 남녀 한 쌍뿐만 아니라 숙이와 옥이까지 잡았다.
최연준은 눈을 부릅뜨고 최군형의 다리를 잡아 한쪽으로 밀어버리려 했다. 다행히 강서연이 잽싸게 움직여 다시 아들을 안아왔다.최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사이에 제삼자가 생기고 말았다.강서연이 아들을 끌어안고 웃으며 말했다.“됐어요, 아들에게도 질투해요? 덕수 아저씨께 드릴 자료는 다 됐어요?”“응. 다 끝났어.”“그럼 우리...”“이제 남양으로 돌아가 모든 진실을 밝힐 차례야!”......서지현이 황급히 서궁에서 뛰쳐나왔다.“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그녀의 비명이 황궁 안을 뒤덮었다. 하지만 서궁에는 시위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그녀는 문가에서 그만 막히고 말았다.“제발 나가게 해 주세요! 의사 선생님을 찾아 임월 전하를 구해줘요! 꾸물대다간 정말 큰일 나요!”시위들은 서로를 힐끔거렸다. 의문이 들었지만 이는 황족의 일이었기에 그들은 바로 가연 왕후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연이 송지아를 데리고 서궁 바깥에 나타났다.문 앞에서 기다리던 서지현은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가연의 앞으로 다가갔다.“왕후 마마, 임월 전하를 구해주세요!”“무슨 일이에요? 어서 말해요!”이때 송혁준이 궁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 이를 본 송지아도 썩 놀란 눈치였다.“네... 네가 어떻게?”“고모께서 아프신데 당연히 와 봐야지.”송혁준이 일정한 속도로 위엄 있게 말했다. 송지아는 가연을 슬쩍 보고는 송혁준에게 물었다.“지금 상태가 어떠셔?”“이미 안정되셨어.”송혁준이 왕후에게 다가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을 이었다.“숙모님, 걱정 마세요. 소식을 듣자마자 의사를 데리고 왔어요, 이미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에요. 지금 내전에 계시는데, 아직 많이 허약하셔서 사람을 만날 수는 없대요.”가연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마침 잘된 일이다. 그녀는 애초에 송임월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가연이 날카로운 눈길로 서지현을 쳐다보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중해졌죠? 간호를 제대로 안 한 거 아니에
윤제 그룹의 재산을 빼앗아 올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었다.송지아가 부추겼다.“숙모님, 어떻게든 윤정재를 잡아야 해요. 황족을 암살하려 했으니 사형에 처해야 해요!”가연은 인상을 쓰고 송지아를 째려보았다. 사형 여부는 사법 기관이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벌써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조심을 하지 않는데, 군주가 되었다간 남양의 국격이 떨어질 게 뻔한 일이었다.가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차가운 목소리로 서지현에게 물었다.“지현 씨는 요새 계속 서궁에 있었는데, 별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서지현은 옷깃을 꼭 잡고 눈을 도르르 굴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이건 엉클이 가르쳐준 연기였다. 두렵고 초조한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고 했다.나석진의 도움하에 열몇 번을 시도해서야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서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왕후마마, 전하... 저, 제가 임월 전하를 보살피긴 했지만, 윤 회장님이 오시면 저를 내전에서 쫓아냈어요! 저와 다른 시녀들을 모두 내쫓고 홀로 임월 전하를 치료했어요요.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이야... 오늘 전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잘못되는 줄 알고... ”송혁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썼다.‘나석진 이 자식, 대체 뭘 가르쳐준 거야? 저 표정이며 동작이며 너무 과장됐잖아, 연극 하는 거야?’하지만 서럽게 우는 서지현의 모습에 가연은 속아넘어간 듯했다. 가연이 명령했다.“윤정재가 확실해! 어서 궁전을 수색해서 증거를 찾아! 찾으면 바로 경찰에 넘기고.”증거란 주방 꼭대기 찬장에 있는 주사 한 병이었다.가연이 서늘하게 웃었다. 윤정재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번엔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었다....강서연과 최연준은 최군형을 데리고 남양에 돌아왔다.전용기가 착륙하자마자 강서연은 윤정재가 잡혔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남양시의 유명인이었기에 이 소식은 금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각 포털사이트의 서버가 마비되었다.“윤제 그룹 회장 윤정재가 황실 사람을 해치려 했다는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