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석진은 화장실 문이 채 닫히지 않은 걸 보고 서지현에게 닫으라고 말하려는데 고개를 들자마자 화장실 문 앞에서 넋을 잃고 들여다보는 윤찬을 발견했다.윤찬의 눈에 들어온 광경이라면 이랬다.나석진이 다리를 벌리고 변기 앞에 서 있고 서지현은 허리를 숙이고 그의 앞에 선 채 가위를 휘두르고 있었다.그 가위가 향한 곳은 바로 남자의 자존심이었다.윤찬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안 돼요. 멈춰요!”서지현은 손을 부르르 떨었고 가위는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그녀는 윤찬과 나석진을 번갈아 보더니 순간 얼굴이 빨개졌고 그 얼굴을 가린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윤찬은 서지현을 쫓아갈 새 없이 얼른 나석진의 상황을 살폈다.“형,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에요?”윤찬은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다 잘못 자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잘못 잘랐다간 장군부의 씨가 마르게 될지도 모른다.나석진은 살기 싫다는 표정이었고 어두운 눈빛으로 윤찬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형, 진짜 괜찮아?”“형, 나 일부러 온 거예요. 피부과 교수님이 우리 아빠 오래된 친구거든요. 절대 형 손에 흉터 남지 않게 해줄 거예요.”“형?”“형!”윤찬은 나석진이 멍한 표정을 하고 있자 손을 흔들어 보였다.하지만 돌아온 건 나석진의 호통뿐이었다.“나가!”윤찬이 깜짝 놀랐다.“형, 혹시 어디 아파요?”나석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그냥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서 그래. 일단 나가 있어.”윤찬은 그런 나석진을 이상해했다. 그러다 나석진의 손을 생각해 전문 간병인을 불러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나석진은 속으로 한참을 울부짖었다. 소리도 지르고 싶고 누군가 쥐어박고 싶고 벽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새벽의 햇빛이 하얀 커튼을 뚫고 방으로 들어왔다.최연준이 천천히 눈을 떠 품에 안긴 강서연을 쳐다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꿀 떨어지는
최연준은 입을 삐죽거렸다. 복어처럼 생긴 장인어른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에요?”“그냥 얘기할 사람이 필요해요.”최연준의 미간이 구겨졌다.“저 빼고 다른 사람은 없어요?”나석진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아니 얘기 좀 하자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와이프랑 아이가 있으니까 이제 아쉬울 게 없나 보죠?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 좀 동정하면 안 되나?”최연준은 그제야 눈치챘다.무조건 서지현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최연준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아직 곤히 자는 강서연을 힐끔 보더니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었다.“주소 보내요.”“병원 옆에 있는 카페로 와요. 같이 아침이나 먹어요.”나석진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연준은 카페에 도착했다. 테이블에 꽉 차게 올라온 메뉴를 보며 최연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 촬영 들어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식단 조절은 해야죠.”최연준은 그 앞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명색이 어진 엔터테인먼트 연예인이고 저는 나석진 씨 대표되는 사람이죠.”나석진은 그런 최연준을 힐끔 쳐다보더니 손에 든 소고기 버거를 계속 먹었다.손에 감은 붕대를 푸니 물건을 자유자재로 가질 수는 있었지만 평소에 약을 계속 발라야 했다.“말해봐요. 무슨 일인데요?”최연준은 나석진의 맞은편에 앉더니 커피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나석진은 입에 넣은 소고기 버거를 삼키더니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여자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인정하게 할 수 있을까요?”최연준은 그런 나석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어 보였다.“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하는 거지, 왜 협박해요?”“나도 몰라요. 지현이 저 못된 년이요..”최연준은 일단 잠깐 듣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맞네, 전에 내 동생이랑 같이 있을 때 어떻게 마음을 확정한 거예요.”이렇게 말한 최씨 가문 셋째 도련님은 경멸의 눈빛을 받게 되었다.“큭,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요. 근데 우리
나석진은 비록 연예계를 전전하고 있었지만 집안이 잘 보호해 준 덕분에 늘 순조로웠고 고생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돈의 의미를 잘 몰랐다.나석진은 돈을 그저 숫자로만 생각했다.최연준이 주장하는 바는 처음 들었지만 뭔가 그럴싸했다.“그렇다는 건 지현이가 내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나를 좋아한다고 봐도 된다는 거죠?”“음...”최연준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이론적으로 보면 그렇죠?”나석진은 보배라도 얻은 듯 흥분하며 바로 핸드폰을 꺼내 서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나 지금 갖고 싶은 벨트가 하나 있는데 15만 원이래.”“풉...”최연준은 하마터면 마신 커피를 전부 뿜을 뻔했다.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앞에 앉은 기인을 쳐다봤다.대배우로서 그렇게 많은 작품을 찍은 사람이 대본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베껴 쓰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서지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석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테스트했다.“여보세요? 지현아, 듣고 있어?”“설마 고작 15만 원에 놀란 거 아니지?”“지현아, 사줄 거야 말 거야?”“여보세요?”최연준은 어이가 없어 얼굴을 가린 채 차마 그쪽을 쳐다보지 못했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나석진은 화면을 확인했다. 전화는 분명히 걸린 상태였다.“서지현!”나석진이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말해다.“귀머거리라도 된 거야?”“어허, 고작 15만 원짜리 벨트가 어떻게 도련님의 성에 차겠어요? 왜요? 장군부에는 어울리는 벨트가 없나 보죠?”나석진이 흠칫 놀랬다. 수화기 너머로 이 목소리가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최연준은 나석진의 표정이 돌변하자 바로 무슨 일이 터졌음을 직감하고 바로 스피커폰을 켜라고 그에게 눈짓했다.나석진은 침착하게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스피커폰을 켜고 문안을 올렸다.“왕후 마마께 문안 올립니다.”“도련님, 별말씀을요.”가연 왕후가 웃으며 말했다.“장군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아버지는 잘 계십니다.”“요새 폐하께서 계
나석진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이때 핸드폰에서 작은 소리가 전해졌다.전화를 끊은 나석진의 기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했고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지현이가 위험해요... 그녀가 위험하다고요!”나석진은 인내심을 잃고 갔다 왔다 안절부절못했다.“지금 바로 가서 구해낼 거예요.”“일단 진정해요!”최연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막았다.“전화 한 통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어요.”“매제가 모르는 게 있어요. 송지아는 왕후 손에서 컸어요.”나석진은 매우 조급해하며 이렇게 말했다.“무조건 송지아가 왕후 마마 앞에서 뭐라고 한 게 틀림없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왕후 마마께서 왜 뜬금없이 지현이를 대황궁으로 불러들였겠어요. 왕후 마마께서는 지현이가 주군지도 모르는데.”“그렇다 해도 가면 안 돼요!”최연준이 진지하게 분석했다.“저도 비록 남양에 온 시간은 별로 안 되지만 황궁이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지금 무슨 명분으로 들어갈 거예요? 들어가서는 뭐라고 할 건데요? 설마 가연 왕후에게 지현이를 납치했다는 죄명이라도 씌우려고요?”“그게...”나석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갈라진 입술을 살짝 젖혔다.“그리고.”최연준이 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가연 왕후가 아까 그랬잖아요. 그저 지현 씨를 데려다 옷 수선을 맡긴 것뿐이라고. 진짜 왕후의 말씀이 맞다면 지현 씨는 일이 끝나면 오겠죠. 지금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갔다가 장군부도 영향받을 수 있어요.”나석진은 심호흡을 연거푸 하며 진정하려 애썼다.그도 최연준이 하는 말이 다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대황궁에 갇힌 사람이 강서연이라면 최연준이 여전히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아마 나석진보다 더 인내심이 없을 것이다.“그럼 어떡하자는 거예요?”나석진이 힘껏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내기할까요? 가연 왕후가 절대 좋은 뜻으로 왔을 리가 없어요.”최연준은 침착하게 잠깐 고민하더니 눈빛이 반짝
서지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최대한 침착하게 보이려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다.가연 황후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송임월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둘은 나이가 비슷했기에 어른들을 따라 연회에 자주 나가곤 했었다. 가연 왕후는 전형적인 숙녀였지만 송임월은 황실에서 놓고 보면 반항아 스타일이라 자주 사람을 놀랍게 할만한 행동을 했었다.매번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일을 저지르면 황실의 선생님들은 권력을 행사하여 채찍으로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혼내곤 했다.하여 송임월도 어릴 적 많이 맞았고 맞기 전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바르르 떨었던 것이다.가연 왕후는 머리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지현의 밤색 긴 생머리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부르르 떨렸다.이럴 수가?가연 왕후는 애써 침착해지려 했다.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가연 왕후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른기침을 짓고는 웃으며 서지현에게 말했다.“서지현 씨,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보자고 한 건 바느질을 매우 잘한다고 들어서입니다. 윤씨 집안 아가씨에게 맞춤 제작해 준 드레스를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 무늬와 설계는 궁에 있는 수냥도 비기지 못할 만큼 정교하던데요.”“왕... 왕후 마마, 과찬입니다.”서지현은 떠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를 대굴대굴 굴렸고 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오늘 여기로 ‘모셔져’ 왕후를 만나려면 복잡한 예절을 따라야 할뿐더러 황실 내규에 따라 핸드폰도 몰수당해야 했다.외부와 연락이 닿을 방법이 아예 없었다.“나도 옷이 몇 벌 있는데 자수가 좀 별로인 것 같아서 지현 씨가 좀 고쳐줬으면 하는데.”가연 왕후가 웃으며 덧붙였다.“돈은 10배로 줄게요.”서지현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올려다봤다.왕후는 자태가 고귀했고 관리를 잘 받아서 그런지 전혀 마흔 살이 넘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말할 때는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대범
서지현은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거기 서 있었다.가연 왕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탁자를 돌아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그러더니 그중 한 벌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건 판금 공예 중 하나죠. 주변에 사용한 이 금실의 원자재는 우리 남양의 이웃 나라에서 오고요. 매년 생산되는 양이 적어 매우 귀하지만 부드럽고 연해서 탄탄하지 않으니 자수를 놓을 때도 배로 조심해야 끊어지지 않게 완전하게 수를 놓을 수 있죠.”이 금실은 서지현도 들은 적 있지만 이렇게 본 건 처음이었다.“이런 공예는 바느질에 대한 요구도 매우 높아요.”가연 왕후는 그런 서지현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말했다.“이 옷 한 벌 만드는 데만 해도 5에서 6개월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경험 있는 장인들이 같이 협력해야만 이 한 벌을 만들어낼 수 있죠.”서지현은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이 없었다.“서지현 씨, 나는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가연 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사람이 가끔 뭔가를 해내지 못할 땐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견식이 문제거든요.”“이 옷과도 같죠. 본적도 없고 이런 공예를 접한 적도 없으니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자수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서지현 씨와 나석진 씨, 둘 사이도 마찬가지예요.”“서지현 씨도 남양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죠? 통역사 찾을 필요 없이?”씁쓸함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서지현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고 손톱은 그렇게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하지만 서지현은 아픈 줄 몰랐다.가연 왕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서지현은 이렇게 좋은 옷을 접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고치고 관리하는지 모른다. 나석진처럼 좋은 남자를 만났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신분 차이가 점점 드러나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생각이 엇갈리게 될 것이다.신선함이 지나고 서로 사랑이 식어도 과연 서로를 배려해 줄 수 있을까?서지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에게 나석진을 포기하라는 건
서지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예쁜 호박색 눈동자가 신념으로 가득 찼다.“서지현 씨, 고민 끝났나요?”가연 왕후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봉투에 있는 달러면 꽤 오래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남양 여권은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물건이었다.이 두 가지를 모두 줬으니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서지현은 콧방귀를 끼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이를 경멸했다.“제가 당신들처럼 아저씨를 거래의 도구로 생각할 줄 아셨나요?”가연 왕후가 깜짝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요?”서지현은 봉투를 집어 들더니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제가 왕후 마마의 조건만 들어준다면 이 돈과 남양인의 신분을 얻을 수 있겠죠. 이 두 물건은 제가 원하던 거 맞아요. 하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직접 따내지 아저씨와 맞바꿀 생각은 없어요!”“이게 지금...”“왕후 마마,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서지현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가연 왕후의 눈을 똑바로 바라 봤다.“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절대 물러나지 않습니다.”“서연 언니가 그러더군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꼭 용기 내어 도전하라고 했어요. 셋째 도련님과 그렇게 이루어진 거라면서요.”서지현은 목소리가 떨렸지만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때 언니는 자기가 재희 제약 딸임을 모르고 있었고 비천한 신분으로 어찌 셋째 도련님을 넘볼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가했죠.”“언니가 그랬어요.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제일 아름답다고요. 그 사람이 좋은 건 맞지만 나도 꿀리는 데가 없어야 어울리는 거죠.”“저... 저도 아저씨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노력 중이에요. 내가 아저씨랑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꼭 알 수 있게 노력할 거라고요.”“그러니 마마, 저는 이 조건 받지 않을 겁니다.”서지현은 봉투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말을 이어갔다.“저는 그 어떤 걸 준다 해도 아저씨와 맞바꾸지 않을 거예요.”이렇게
이때 정전 시위가 송혁준을 발견하고 급히 그에게 인사했다.“전하!”가연이 흠칫하며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다. 송혁준이 이미 그녀의 앞에 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하고 있었다,“숙모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지금이 아침은 아닌 것 같은데. 듣자 하니 젊은이들은 아침 겸 점심을 즐겨 먹는다며? 뭐더라... 브런치? 하하, 마침 디저트가 있으니, 브런치를 대접해 줄게. 이리 와서 먹어.”“아닙니다, 괜찮습니다.”송혁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서지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혁준아, 뭐 해?”“아닙니다...”“찾는 사람이라도 있어?”“서지현 씨를 부르셨다고 들었는데, 저도 마침 지현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요. 지현 씨 용건은 해결됐나요?”송혁준은 조금 망설이다가 이실직고했다. 가연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천천히 대답했다.“응, 다 끝났어. 이미 돌아가라고 했는데.”“돌아갔다고요?”송혁준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머리를 굴렸다. 방금 정전 밖에서 영상을 찍을 때만 해도 서지현은 당당했다. 영상을 나석진에게 보내고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리 많이 쳐봤자 20분이 채 안 될 터였다. 그런데 그사이에 서지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연 왕후가 10여 분 사이에 한 사람을 증발시켰다고?송혁준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릴 적 엄마를 잃었기에 가연이 그와 누나를 키워주었다. 그에게 삼촌, 숙모는 친부모보다 더욱 큰 존재였다.그도 가연이 가끔은 자만에 빠지고 이기적으로 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나라의 왕후였기에 그 정도 성질은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마음씨는 착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서서 다른 사람을 해할 줄은 몰랐는데!송혁준의 주먹 쥔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숙모, 죄송합니다만, 방금 분명히 서지현 씨가 여기 있는 걸 보았는데요. 지현 씨가 나가는 모습도 못 봤고요!”“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지현 씨를 가두기라도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