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아는 말을 마치고 최군성을 향해 엄지를 들러 보였다. 최군형은 강소아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이 어제 하루 종일 주방에서 준비했어. 이 재료를 양념하는 데만 서너 시간이나 걸려서 우리 집 요리사들이 깜짝 놀랐다니까.”“왜요?”“요리사들이 자신들이 필요 없어질 줄 알고, 해고될까 봐 걱정했다더군. “강소아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육연우는 종업원처럼 모두에게 음료를 따라주고 양념을 나눠주었다. 바쁠수록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언니, 이 양념은 군성 오빠의 독자적인 레시피에요! 꼭 찍어 먹어봐야 해요.”“맞아, 꼭 한 번 맛봐!” 최군형도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어제 주방에서 문을 닫고 뭘 하고 있는지 나한테 보여주지도 않더군.”“형이 이걸 배워 가면 어떡해? 이건 내가 힘들게 개발한 비밀 레시피야.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야지.”최군형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 “얼마나 줄까?”최군성은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친형제니까, 딱 10만 원.”“그거 아버지가 받는 용돈이잖아?”“하하하...”“너 이 녀석, 다행히 아버지가 여기에 안 계셔서 다행이야. 아니면 틀림없이 그 60만 원짜리 골동품 벨트를 풀어서 널 혼내셨을 거야.”최군성은 웃느라 거의 서 있지 못했다. 문성원은 최군성을 부축하며 손에서 꼬치를 받아 구이를 계속했다.“됐어, 됐어, 좀 쉬어. 내가 할게!”햇빛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새들조차 부러워하며 나뭇가지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았다.문성원은 갑자기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눈치챘다. 그 두 사람은 한쪽에서 너무나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둘 다 검은 옷에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담담한 표정까지 똑같았다.두 사람의 눈빛은 평온했고 마치 이 세상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었다.문성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가볍게 두 번 기침했다.“저기... 여러분,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최군성은 먼저 웃음을 멈췄다.모두 문성원의 시선을 따라가며 오
“이건 제가 꼭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최지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 본명은 최군서였어요. 그런데 부대에 들어가고 나니 이름이 너무 여성스럽게 느껴져서 지용으로 바꿨어요.”“맞아, 우리 집안에서 이름을 바꿀 용기를 낸 건 이 사람이 유일해.” 최군형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안 이름은 다 증조부님이 지어주셨는데, 이 사람은 이름은 바꿔버렸죠!”최지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름이란 건 단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니까요, 기억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그렇죠, 배 씨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최지용은 줄곧 말이 없던 배인서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배인서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참 후에야 최지용을 멍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저를 부르신 건가요?”최지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여기 배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또 있나요?”“아, 그렇군요.” 배인서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배 씨 아가씨’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그러면...”“아까 이름이 그냥 상징이라고 하셨잖아요?” 배인서는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제 상징은 ‘배인서’예요.”배인서는 고개를 들어 최지용을 바라보았다. 야구 모자 아래로 청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이목구비는 정교하고 피부는 하얗고 고요한 분위기가 배인서를 감쌌다.하지만 그날 호정길을 제압할 때, 배인서의 눈매에서는 남다른 기개가 엿보였다.최지용은 가슴 속 어딘가가 살짝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그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배인서?” 그는 낮게 물었다. “인은 어떤 글자죠?”“너그러움의 ‘인’이에요.”“인서야.”“무슨 말씀하셨죠?” 배인서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아, 미안해요.” 최지용은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했다.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게 참 예쁘다고 생각해서요... 그러면 앞으로 제가...”“안 돼요.” 배인서는 차갑게 거절하며 최지용을 한 번도 쳐다보
최지용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최지용의 앞에는 바비큐 그릴이 있었고 두 개의 닭 날개 꼬치가 그릴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배인서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최지용은 어릴 때부터 호화로운 가문의 자제로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자랐다. 나중에 군대에 들어가서는 뛰어난 체력과 빠른 두뇌로 여러 차례 군공을 세우며 특수부대 내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하지만 지금은 한 어린 소녀에게 반박조차 못 하고 말문이 막혀버렸다.최지용은 마음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답답함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말해, 배인서가 한 번 더 자신을 몰아붙여 주길 바라는 마음마저 들었다.최지용은 갑자기 자신을 깨우며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혹시 조금 이상한가...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최군성이 등을 힘껏 두드리며 소리쳤다. “지용이 형! 불이야! 불이야!”최지용은 거의 깜짝 놀라 뛰어오를 뻔했다.최지용이 올려놓은 두 개의 닭 날개는 이미 까맣게 타버려 불꽃을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맙소사, 지용이 형!” 최군성은 불을 끄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특수부대에서 혹독한 야외 훈련을 받으셨죠? 그래서 이런 시커먼 걸 더 친근하게 느끼시나요?”“너...” 최지용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최지용은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배인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배인서는 차갑게 돌아서며 점점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최지용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최군성에게 물었다. “저 여자...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전에 배인서 씨가 소유를 보호한 적이 있어요.”“늘 저렇게 냉정해?”“그렇죠.” 최군성은 입안 가득 꼬치를 물고 말했다. “자기가 그랬거든요. 원래 타고난 얼굴이래요, 웃음도 별로 없다고.”최지용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살짝 지었다.배인서가 웃으면 강가의 합환나무 꽃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군형과 강소아의 결혼식 날짜가 확정되었다. 동시
최연준은 놀라서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그 서예 작품의 필체는 강력하면서도 우아했고 독특한 글씨체는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림은 세밀한 공필화로, 색채의 조화가 우아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또 몇 개의 도자기 병이 있었는데 모두 최문혁이 직접 디자인하고 구워낸 것이었다. 전각 작품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최연준은 문득 깨달았다. “이제 보니 군성이는 할아버지를 닮았던 거였구나!”권모술수 빼고는 다 잘하네.강서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연회에서 최문혁이 두 아내 사이에 끼어 아무 말도 못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음... 그래도 할아버지보다는 낫네요.” 강서연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군성이는 두 명의 강한 아내를 맞이하지는 않을 거예요.”“하하하!”“정말 세월이 야속하네요.” 강서연이 조용히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이 다 자랐고, 우리도 늙었네.”최연준의 큰 손이 강서연의 어깨에 살짝 얹혔고, 강서연은 그 익숙하고 따뜻한 품에 기대어 이 모든 것이 마치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여보, 기억나? 우리가 예전에 했던 약속.”“네?” 너무 많은 말을 주고받았기에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최연준은 고개를 숙여 강서연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가득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최연준은 손가락으로 강서연의 머리카락을 살짝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말했었잖아. 다음 생, 그다음 생까지도 언제나 함께 하자고.”“그래서 이번 생이 끝나도 우리는 사실 늙은 게 아니야. 영원과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셈이지.”강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최연준의 품에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리고” 강서연이 덧붙였다. “다음 생에 당신이 고기 완자라면, 나는 채소 완자가 될 거예요. 우리가 다 익어도, 우리는 한 접시에서 함께할 수 있겠죠.”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강서연의 이마에 깊은 애정을 담아 입맞춤을 남겼다.세상에서 이 긴 사랑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서로뿐이다.
“인서야, 오늘 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강소아가 배인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일 내가 널 강주에 있는 우리 부모님께 소개해 줄게. 그분들도 아주 좋으신 분들이고, 내 남동생은 오성 대학에서 공부하는데 정말 잘생긴 학생이야...”“인서야, 먼저 위층으로 올라가서 마음에 드는 방이 있는지 한번 볼래?”기쁜 일이 많으면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강소아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동안, 배인서의 귀에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배인서는 강소아에게 손을 이끌려 2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배인서는 다시 한번 육경섭을 힐끔 쳐다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배인서는 언니의 가족이 부러웠다.언니는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친부모님과 20년 동안 소중히 키워준 양부모님도 계셨으며, 또한 언니를 보물처럼 여기는 약혼자도 있었다.이런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배인서는 전혀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인서는 언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너무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겪어왔기에 뭐든 아름다운 것을 소중히 여겼고 그것을 망가뜨리는 일을 참을 수 없었다.그리고 자신이야말로 그 행복을 결코 망가뜨려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밤이 깊어지자, 배인서는 여전히 잠에 들지 못했다. 육씨 집안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은 처음이었고 아빠와 몇 개의 방만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조금의 졸음도 오지 않았다.배인서는 어머니의 일기장을 꺼내어 뒤쪽에 다시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엄마, 오늘 저는 아빠를 봤어요. 정말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사실 이렇게라도 아빠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해요.”“언니가 결혼하게 돼요. 매형이 언니를 많이 아껴줘서 저는 정말 기뻐요! 그런데 만약 매형이 언니에게 잘못하면 어쩌죠? 전에 엄마의 일기에서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음, 나중에 매형이 언니를 괴롭히면 제가 매형에게 총을 쏴서 해악을 남기지 않을 거예
배인서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 손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꼭 다물고 강소아를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배인서는 한 번도 그런 드레스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어깨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 평소에는 늘 검은 옷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 팔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복장에 이미 익숙해졌고 심지어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렇게 예쁜 옷은 언니처럼 여성스러운 여자아이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배인서는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눈은 놀란 어린 사슴처럼 커다랗게 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지용의 마음이 갑자기 두근거렸다.“음... 그 드레스는 입지 말죠.” 최지용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배인서는 깜짝 놀라며 최지용을 바라봤다.“당신의 분위기에는 이 드레스가 더 어울릴 것 같아요.”배인서는 최지용이 가리킨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최지용은 의상 걸이에서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긴 드레스를 선택했다. 그 드레스는 단정하고 보수적인 스타일로, 치마는 무릎을 넘어섰고 신부 옆에 서 있어도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옷이었다.강소아는 눈이 반짝이며 웃었다. “그러네! 인서야, 너한텐 이런 롱드레스가 훨씬 잘 어울려. 역시 지용 씨가 잘 골랐어!”최지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옷을 입어볼 수 있겠죠?”배인서는 고개를 숙이며 그 드레스를 들고 빠르게 탈의실로 들어갔다.입어 본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조용하고 청초한 들러리와 키 크고 잘생긴 들러리가 함께 서 있으니 정말 잘 어울렸다.강소아는 몰래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최군형에게 보내고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어때요?”최군형은 저편에서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주 좋아.”강소아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인서가 우리 집에 살기로 했어요. 만약 특전사님이 인서와 데이트하고 싶다면, 먼저 저를 통과해야 할 거예요!”“너희 집에 산다고?” 최군형은 약간 놀라며 말했다. “하
최군형은 결혼식장을 준비하며 강 씨 부모님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분들은 강소아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고 강소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들이었다.모든 준비가 거의 완료되자 최연준과 강서연은 육경섭과 임우정을 초대해 그들이 작은 부부를 위해 준비한 신혼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신혼집 구경 5분, 옛 추억 이야기 2시간’모드가 시작되었다.네 사람은 젊었을 때처럼 정원에 앉아 과일을 먹고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냈다. 강서연이 직접 만든 디저트와 과일차를 내놓자, 임우정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서연아, 손재주는 어떻게 하나도 안 줄었어?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드니 먹기가 아까울 지경이야.”“아이고...” 육경섭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 딸은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시어머니로서 싫어하지는 않겠죠?”“무슨 말씀을 하는 거예요?” 최연준이 육경섭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소유나 연우가 우리 집으로 오면 다 우리 딸이지, 아끼고 사랑하기에도 모자랄 거예요.”“하하, 맞아요, 맞아요!” 육경섭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젊었을 때부터 내가 딸이 있다는 걸 부러워했잖아요. 당신 집 두 아들만 보면 골치 아프다고 했잖아요.”최연준이 눈을 크게 떴다.육경섭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기억하죠? 그때 한 도사가 당신네한테 예언했잖아요. 아들 일곱을 낳아야 딸 하나 얻을 수 있다고.”“최연준 씨, 왜 아들을 더 낳지 않았어요? 적어도 그 예언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아들이 많아지면 재산 다툼 때문에 싸울까 봐 겁났나요?”“육경섭 씨!” 최연준이 크게 소리쳤다. “말 안 하면 입에 자물쇠라도 채워줄까요?”두 노인이 또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정원은 시끌벅적해졌고 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서로를 못마땅해하며 싸워왔다. 허리를 발로 차고 립스틱 300개를 테스트하게 하고... 담배 한 갑도 아까워하며 공유하지 않았다.강서연과 임우정은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고
“여보, 무, 무슨 소리야!”최연준은 쓴웃음을 지었다.“누군가가 내 고향에 남안지기가 있는 것 같다고요. 진정한 사랑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강서연은 웃어서 얼굴이 빨개졌다.그러나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육경섭의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그의 웃음소리는 임우정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손을 들고 그를 때렸다.최연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짓궂은 장난이 통해서 신나서 있는 강서연을 꼬집어 주려고 했다.근데 그녀의 허리춤에 손을 대자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여보, 앞으로 이 얘기는 안 하는 게 어떨까?”“내가 화를 낸 것도 아니고 그냥 농담한 거잖아요.” 강서연은 그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비록 좀 늙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여전히 그녀 마음속에서 최고로 잘생겼다.“그러네.”임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서랑 소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 일을 꺼내지 않았을 텐데...그런데 서연아, 너 정말 인서가 우리 소유한테 그런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저도 잘 모르겠어요.”강서연은 생각에 잠겼다. “아니기를 바라야죠.”“사실… 그 아이는 정말 좋은 아이야.”임우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난번에 그 아이가 예복을 입고 최지용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정말 잘 어울렸어!”“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강서연이 그녀를 손을 잡았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너무 많이 신경 쓸 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의 인연은 그들 마음대로 하게 하자고요.”…결혼식까지는 아직 한 달이 남았다.할 일을 거의 다 했으니 최군형이 강소아랑 같이 보내는 시간은 점점 더 많아졌다.정확히 말하면 그가 강소아에게 매달리고 있다.그는 연인이 결혼하기 전에 적게 만나거나 아예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믿지 않는다.그는 그녀를 보고 싶어 했다. 매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