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 임원도 소하의 뒤를 따라 거처로 돌아갔다.소한은 온몸에 한기가 가득한 채로 앞에서 걸어가고, 임원은 뒤에 따라갔다. 그녀는 소한이 지금 아주 화난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것이 그녀 때문인지 김단 때문인지 몰라서 마음속으로 당황했다.소한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옆에 있는 시녀에게 말했다.“따라오지 말거라.”시녀는 인사를 올리고 물러섰다.임원이 방으로 발을 들이민 순간, 소한이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그녀는 약간 겁먹은 듯 말했다.“소한 오라버니, 오늘 제가 잘못했어요. 억지로 언니를 끌고 진산군댁에 가자고 하지 말걸, 오히려 소한 오라버니가 억울하게 당하게 하고, 저..., 소한 오라버니, 뭐 하시는 겁니까?”임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한은 옷 한 벌을 들고 침실에서 나왔다.임원의 책문을 듣고, 소한은 대답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봤다.“긴단에게 무슨 약점이 잡힌 거야?”임원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숨이 탁 막혔고, 소한의 질문에 당황하여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소한 역시 임원에게 어떤 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침울해지고 목소리도 더 차가워졌다.“결혼 날짜가 촉박하여 당신의 마당이 아직 수리 중이오. 한 십일 정도면 옮길 수 있소. 이 기간에, 난 서재에서 묵을 것이오.”소한은 이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임원이 갑자기 그를 잡았다.“소한 오라버니, 왜 저한테 이러세요?”임원은 소한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빛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빛이었다.“제가 도대체 뭘 잘 못했다고 이렇게 대하는 겁니까?”결혼하고 나서 그가 하루도 방에서 묵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고 지금은 아예 대놓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그는 이 마당의 하인이 모두 눈뜬 봉사여서 안 보이는지 아는가?그는 그녀를 어떤 처지에 두는 것인가?소한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봤다.그녀의 볼은 빨갛게 부었고, 눈물도 계속 흘리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임원은 아파서 소리 질렀지만, 소한은 못 들은 것처럼 한 발짝도 멈추지 않았다.소한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임원의 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떨어졌다.왜 이렇게 된 거지?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튿날, 김단은 일찍이 일어났다.그녀는 기다릴 수 없듯이 소하의 방문을 두드렸다.이각이 문을 열었다.그는 김단을 보고 나서 놀랐다.“큰 아씨.”김단은 방안으로 오고 나서 물었다.“어젯밤에 약 효과가 있었느냐?”이각은 그제야 깨달았다.“어젯밤 약이 큰 아씨가 드린 거였습니까?”이각은 말하고는 웃음꽃이 활짝 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효과가 있었습니다! 큰 도련님은 원래 한 시간씩 아팠는데 어젯밤에는 대략 반 시간 정도 아프고는 끝났어요!”그는 안 그래도 큰 도련님이 어디서 이렇게 신기한 약을 찾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김단이 준 것이었다.김단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려 했는데, 당신이 먼저 왔소.” 말이 끝나자, 소하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끌고 나왔다. 그의 안색은 전에 봤던 창백함과 허약함이 없었다.이각은 김단을 청해 방으로 들어갔고, 그녀를 큰 은인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태도는 전보다 더 공경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김단에게 차 한 잔을 올렸다.김단은 찻잔을 받고 안색이 조금 자연스럽지 못했다.그녀의 이런 표정을 보고, 소하는 조금 의아했다.“김 낭자는 기쁘지 않소?”그는 약이 효과 있다고 하면 그녀가 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다.이 말을 듣자, 김단은 바삐 찻잔을 놓고 손을 흔들었다.“아닙니다. 약이 효과가 있다고 하니 당연히 기쁩니다. 이것은 소하 오라버니의 다리를 아직 고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이 말을 듣자, 이각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정말요? 큰 도련님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겁니까?”소하의 눈동자도 조금 반짝거렸다.그는 원래 아무런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았다.그러나 온어의원의 어의들이
소하의 눈동자가 많이 흔들리자, 김단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누가 독을 탔든 간에, 이 일은 이미 5년이나 지나가서 다시 조사하기 힘들다.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소하의 다리를 치료하는 것이다.김단은 소하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삼 년간 그의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소하의 옆에는 이미 이각이 자리 잡고 있어 그녀의 도움은 필요치 않았다..그저 그때, 그녀는 소하를 보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있다.“소하 오라버니.”그녀는 정중하게 불렀다.“소하 오라버니의 다리가 어떻게 중독되었든 간에, 지금 희망이 생겼으니,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소하 오라버니께서도 저를 믿어주세요.”김단의 목소리는 소하가 옛 기억에 대한 놀라움과 당황 속으로 부터 끌어냈다.그는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더니 마치 온천이 그의 가슴에 흘러 들어가 그의 조금 전의 당황스러움을 조금씩 녹여버리는 듯했다.그는 그녀의 보답하는 마음이 그의 깜깜한 세계에 한 줄기의 빛을 안겨 올 줄 몰랐다.그는 갑자기 정암의 부탁이 도대체 김단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를 위한 것인지 헷갈렸다.소하는 마음속으로 느낀 것이 많지만 얼굴에는 별로 표정 없이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고맙소.”김단도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섰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편히 쉬세요.”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가 바삐 편지를 써서 숙희에게 주며 진산군댁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다른 한편, 임원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그녀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으로 인사 가는 날이다.소한이 어제 아무리 그녀를 싫어했어도, 오늘 같은 날은 그녀와 함께해야만 했다. 소한은 마차 안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임원은 옆에 앉아 미간에 걱정이 가득한 채 계속 소한을 쳐다봤다.그러나 소한은 그녀를 보기 싫어하는 듯, 말은 더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계속 눈을 감고 있었
소씨 집안의 마차를 보자, 임씨 부인은 아주 기대했다.임원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임씨 부인을 보자, 달콤하게 불렀다.“어머님.”소한도 마차에서 내려 임씨 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장모님.”임씨 부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임원은 임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덜컥했다.다행히도 임씨 부인은 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앞으로 다가와 그들을 맞이했다.“소 장군.”임씨 부인은 친절하게 임원의 볼을 만졌다.“어디 한번 보자.”그녀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마차로 향했다.임원은 당연히 임씨 부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언니는 오늘 안 왔어요.”“응?”임씨 부인은 멍하더니 바로 알아듣고 실망했지만, 억지로 웃었다.“괜찮아, 너만 오면 됐어. 어서 들어가자!”임씨 부인은 소한과 임원을 데리고 진산군댁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임원이 시집가고 처음으로 친정오는 날이어서 진산군과 임학 모두 집에 있었다. 밥 먹을 때, 두 사람은 계속 소한을 잡고 쉴 새 없이 말했다.소한도 그가 마차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런 싫은 티도 내지 않았다.그러나, 점심을 먹고 나서 임씨 부인은 핑계를 대고 임원을 데리고 방으로 갔다.임씨 부인은 시녀를 내보내고 나서 물었다.“뭐 안 좋은 일이 있어?”임원은 임씨 부인이 어떻게 알아봤는지 모르지만, 고개를 흔들며 부인하려 했는데,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이 상황을 보니,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파 임원을 품에 안았다.“네 눈만 봐도 어제 무조건 오래 운 거 알아. 무슨 일인데? 말해봐! 소한이 괴롭혔어?”임원은 마음속으로 아무리 억울해도 감히 임씨 부인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소한에 대해 나쁜 말을 한 마디라도 한다면, 진산군댁에서 소한을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특히, 그녀의 오라버니는 너무 충동적인 사람이어서 소한 오라버니와 싸우면 어찌하는가?그때 가면, 소한이 그녀를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소한 오라버니는 저한테 잘해주
임원은 멍하니 임씨 부인을 바라봤다.그녀는 지금 소한과의 관계로 어떻게 소씨 집안의 장손을 낳아야 할지 모른다.임씨 부인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저 그녀가 너무 단순해서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살짝 웃었다.“원이야, 그대도 이제 혼인을 했으니, 말하건대, 어떤 일들은 직설적으로 하마. 환심을 사는 일이 가장 쉬운 자는 남자다. 둘이 술 몇 잔 나누고, 네가 살짝 애교를 부리며 의복을 조금 성적으로 꾸미면, 남자들은 모두 넘어가게 마련이다!”앞에 말은 괜찮은데 의복을 성적으로 입는다고 말할 때는 임씨 부인이 아무리 낮은 소리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임원의 얼굴은 인차 빨개졌다.임씨 부인은 임원의 이런 반응을 보고 더 활짝 웃었다.“아이고, 벌써 결혼까지 다 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수줍으면 어떻게?”임씨 부인은 임원이 아직 첫날 밤을 치르지 못한 줄도 모르고 그녀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전수했다.임원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묵묵히 기억했다.어쨌든, 임씨 부인의 말이 맞다. 그녀는 무조건 소씨 집안의 장손을 낳아야 한다.소한은 벌써 그녀를 싫어하는데, 그녀가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찌 그 집안에서 발을 붙일 것인가?아이가 있으면 적어도 소씨 부모님 앞에서는 영원히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임씨 부인은 임원을 데리고 한참 동안 얘기하고 나서야 대청으로 갔는데, 소한은 이미 떠났다.임씨 부인은 살짝 놀랐다.“소한은요?”진산군도 술을 많이 마셔서 얼굴이 빨개져서 시녀가 올린 따뜻한 차를 받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군에서 급한 일이 있다고 찾아와서, 급하게 갔소.”임학은 옆에 앉아서 임원을 보며 웃었다.“군에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아. 괜찮아! 원이야, 내가 데려다줄게!”임씨 부인의 기분은 조금 좋지 않았다. 어쨌든 사위가 처가댁으로 처음 인사하러 온 날에 자기 혼자 먼저 가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그러나 또 소한이 장군이어서 군무가 바쁜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몸을 돌려 임원을 위로했다.“소한은 주
임원의 마음은 한순간에 바닥에 가라앉았고 소한이 자기를 대한 태도를 생각하자, 더 억울했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차 발을 들어 올려 임씨 부인을 다시 한번 보려고 했지만, 진산군댁 밖에는 이미 임씨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마음속에서 격한 슬픔이 밀려오더니, 임원의 눈에는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갑자기, 익숙한 모습이 그녀의 시선에 나타났다.숙희?숙희가 진산군댁과 멀지 않은 의관에서 약 몇 봉지를 들고나오고 있었다.그런데, 소씨네 부근에도 여러 의관이 있는데, 숙희는 왜 진산군댁 부근의 의관에 와서 약을 사는 걸까?그녀가 떠나간 방향을 보니 김단의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럼, 김단이 오늘 그녀의 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럼, 숙희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임원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숙희를 직접 데려와서 물을 수도 없었다.숙희의 성격이 김단을 닮아서 아주 사나워서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고, 임원도 더 이상 김단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맞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느 날, 김단이 갑자기 그녀가 한 일을 다 까발릴까 봐 걱정된다.뭐 3년 전에 유리잔을 깨뜨린 것이 그녀라든가, 그녀가 거지를 매수했는데 오히려 몇 사람 목숨을 잃게 했다든가, 임학과 같이 김단에게 미약을 먹였든가...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번쩍였다.맞다. 약을 먹이면 된다!소한이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셔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미약을 먹였을 때 어떻게 될까? 임원의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이 떠오르자, 그것은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소한은 어제 며칠 후에는 그녀에게 그의 마당을 떠나게 될거라 말했었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소한을 볼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그럼, 지금 둘이 아직 한 마당에 있는 동안...그녀의 생각이 너무 대담했는지, 임원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떨리더니 두 손을 꼭 잡으면서 긴장했다.그러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차 밖을 향해
소한이 군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전에 며칠처럼, 그는 임원이 있는 곳에는 눈길을 한번도 돌리지 않고 곧바로 서재로 갔다.그가 겉옷을 벗기도 전에 임원이 먼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그녀는 밖에 있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는 약간 허약해 보였다.소한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임원도 제 발 저렸는지, 계속 고개를 숙이며 소한이 그녀의 눈에서 당황함을 읽을까 봐 감히 소한을 볼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약간 기울여 뒤에 있는 시녀를 한 번 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어머님께서 소한 오라버니가 늦게 돌아오면 아주 힘들 거로 생각하셔서 특별히 주방에 삼계탕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그녀는 삼계탕을 소씨 부인께 덮은 것은 저녁에 소씨 부인이 확실히 말했었고, 또 그녀가 삼계탕을 준비했다고 하면 소한이 먹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소씨 부인이 준비하라고 한 것을 듣자, 소한은 몸을 약간 비켰다.“놔두거라!”시녀는 공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에 들어가서 삼계탕을 탁상에 올렸다.소한이 알아차릴까 봐, 임원은 일부러 영희를 데려오지 않고 다른 시녀랑 왔다.시녀가 삼계탕을 놓은 것을 보자, 임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께서 저보고 소한 오라버니가 다 마시는 것을 지켜보라고 했습니다.”이 말을 듣자, 소한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소한 오라버니가 아무리 저를 싫어한다고 해도 저를 궁지로 몰면 안 됩니다.”이 말은 소씨 부인이 시킨 일을 잘 못해서 소씨 부인의 미움까지 받으면 그녀는 정말로 이 집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임원이 계속 고개를 숙여 소한이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 탓인지, 예전에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눈물을 보여주는 모습보다 지금이 더 가련해 보였다.더군다나, 오늘 처음으로 처가댁에 인사하러 갔는데 그가 먼저 떠나서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소한은 드디어 한 발짝 물러났다.그는
그는 양손으로 임원의 어깨를 잡았다.곧이어 임원을 밀쳐냈다.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낭자, 이게 뭐 하는 짓이오!”임원은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밀쳐지는 것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수치스러웠다.하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곧이어 여러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터졌다.그리고 소한의 품에 달려들었다.“소한 오라버니, 소녀를 가엾이 여겨 주시옵소서.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이를 갖고 싶을 뿐이옵니다...”소한은 벽에 걸린 검을 들었다.검 칼집이 임원의 어깨를 막았다.악마에 씐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어찌 아이를 입에 올리는 것일까.이때, 아랫배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처음 느끼는 기분에 소한은 몸이 얼어붙었다.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그 삼계탕이다!소한은 임원을 바라보았다.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감히 나에게 약을 탄 것이냐?”임원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약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표정이었다.소한은 모든 진실을 알아낸다고 했다.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지금보다 더 자신을 미워할지도 모른다.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아이가 생기면 이후의 명예와 부는 지킬 수 있다.“소한 오라버니,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시옵소서. 제게 아이만 주실 수 없겠사옵니까?”그리고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다.수치스러워도 임원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바빴다.자신은 소한의 아내로서, 소한과 어떤 짓을 하든 이상하지 않다.그저 한 번 시도를 해보는 것뿐이지 않은가.곧이어 임원은 헐벗은 몸으로 그의 앞에 섰다.소한의 약 반응은 더욱 거세졌다.뜨거운 열기에 쥐고 있던 검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임원은 깜짝 놀랐다.곧이어 약이 효과가 나타났다고 알아챘다.그러고는 다시 소한의 품에 달려들었다.부드러운 몸은 마치 뱀을 연상케 했다.“소한 오라버니,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여인의 체취에 소한은 반응이 더욱 커졌다.두 손이 천천
이윽고 김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스승님은 지금 귀식환을 연구 중이고 이후에는 통증 완화제까지 만들어야 했기에 시간이 촉박할 것이다.김단은 그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그녀는 깍지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맹영지, 서아름, 소 도련님...거기에 서원공주까지 경계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그런 와중에 임학까지 다쳤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모든 일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그녀로써는 혼자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단아...”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에 김단은 깜짝 놀라 임학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의 착각이었던 것일까?김단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임학이 다시 입을 열었다.“단아, 오라버니가 잘못했어...”미약한 소리였지만 조용한 방 안에서는 또렷이 들렸다.“내가 잘못했어. 널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단아...”김단은 임학이 무슨 꿈을 꾸는지 알 수 없었다.아마도 슬픈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임학의 눈가에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뚝 떨어졌다.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오라버니가 널 믿지 못했어. 널 괴롭혀서 미안해... 다 내 잘못이다.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거라.”김단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그저 꿈속에서조차 용서를 구하는 임학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오라버니가 목숨으로 갚을게… 그러니 날 외면하지 말거라. 단아, 제발…”그의 목소리는 다급해졌고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술마저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김단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즉시 다가가 확인했다. 그러자 그의 복부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재
이튿날 아침 김단은 일찍이 진산군 댁으로 향했다.단순히 임학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지금 진산군 댁에는 의원 한 사람만이 남아 임학을 돌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누군가 의원의 의술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신중해서 나쁠 것 없으니 김단은 한동안 진산군 댁에 머물며 임학을 돌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임학이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명의의 제자인 김단이 그를 치료했다고 믿을 것이다.김단이 방에 들어섰을 때 진산군은 아직 깨어 있지 않았다.그는 밤새 임학의 곁을 지키며 불안 속에서 밤을 지새우다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잠시 눈을 붙인 모양이었다.김단은 조용히 침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창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그의 희끗한 머리카락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그 모습을 본 김단의 마음은 저릿하게 무거워졌다.하룻밤 사이에 그의 흰 머리카락은 어젯밤보다 더욱 늘어난 것 같았다.최근 진산군 댁에 닥친 연이은 사건들이 그를 이렇게 지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한때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던 그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웠다.김단은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그녀는 할머니 침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산군과 손바닥을 세 번 맞대며 가족의 연을 끊어버렸다.그때까지만 해도 진산군의 머리는 검은빛이 감돌았다.김단은 가슴속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지난 기억들을 떨쳐내려 애썼다.그러고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대감님.”진산군은 잠결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셨는지 그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러다 눈앞에 김단의 모습이 보이자 그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묻어났다.“대감님, 여기는 제가 지킬 테니 이제 좀 쉬세요.”김단은 부드럽게 얘기했다.지금 이 집에서 몸이 성한 사람은 오직 진산군 한 사람뿐이었다. 만약 그마저도 병이 난다면 진산군 댁은 진짜 무너지고 말
그렇게 말한 뒤 김단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런데 등 뒤에서 진산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지난번 네가 보내준 약과 아주 맛있더구나. 고맙다.”뜻밖의 말에 김단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약과? 그녀가 지난번에 보냈던 건 분명 스승에게 드릴 요량으로 만든 것이었다.그녀는 무심코 시선을 의원에게로 옮겼다.하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결국 진산군의 손에 들어간 것이 맞았군.이런 자리에서 굳이 진상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김단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진산군 댁 바깥에서는 경씨가 마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단이 마차에 오르자 두 도령들도 함께 따라 나왔다. 경씨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눈을 반짝였다.그렇게 김단을 태운 마차는 평양관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그녀는 말없이 마차 안에 앉아 밖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원군님은 요즘 어떻소?”“아주 잘 계시오. 그 돌궐놈들 말이오. 원군님께서 살아 돌아온 걸 보고는 그 자리에서 벌벌 떨더라고.”그 말에 경씨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그럴 만도 하겠지. 아예 다 죽여버리지 그러셨소?”“그건 좀 어렵소. 이미 몇 번 전투를 치러봐서 알지만 돌궐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오. 내 생각에는 곧 항복할 것 같소.”“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셋째 왕자라는 놈, 뭔가 수상하오.”말을 마친 다섯 번째 도령이 갑자기 마차 쪽을 향해 소리쳤다.“단이! 낭자의 오라버니 말이오. 그 셋째 왕자한테 당한 것이오!” 일곱 번째 도령도 옆에서 맞장구쳤다.“맞소. 공을 세우겠다고 앞장서서 돌진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오. 아예 왕부터 잡겠다고 무모하게 달려들었으니... 다행히 원군님께서 제때에 도와주셨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임학은 이미 전장에 묻혔을 것이오.”“그 애를 살리겠다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를 것이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죽을 맛이었지.
김단은 방 안에 하인만 남겨두고 의원을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진산군은 그들이 나오자마자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어떻소? 임학은... 임학은 괜찮은 것이오?”진산군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조심스럽게 묻는 말 한마디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일단 위기는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이틀은 더 지켜봐야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의원의 말에 곁에 있던 일곱 번째 도령과 다섯 번째 도령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까?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갈 뻔했는데요.”“김단 낭자의 의술이 그렇게 뛰어나단 말이오?”두 사람은 김단의 의술에 감탄하며 공을 그녀에게 돌렸다.사실 임학의 목숨을 살린 건 의원이었지만 그는 굳이 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를 들키지 않고 무사히 이 자리를 빠져나오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멀리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임학! 우리 학이,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임씨 부인이었다.그 모습을 보자 진산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임씨 부인의 뒤를 따르던 유모에게 소리쳤다.“분명 말하지 않았느냐? 부인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임씨 부인의 병은 자극을 받으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진산군은 모든 하인들에게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었다.유모는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변명했다.“노… 노여움 푸십시오, 대감님! 소인은 그저 마님과 매화당에서 지렁이를 캐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님께서 갑자기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다면서 이쪽으로 달려오셨습니다.”유모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임씨 부인은 그저 직감적으로 자신의 아들이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학아... 학아, 네가 정말 돌아왔구나.”임씨 부인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임학이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진산군은 다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임씨 부인에게 말했다.“학이는
김단을 보자 그의 두 눈이 밝아지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단아!”나지막한 부름에 김단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그녀는 한 쪽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섯째, 일곱째 도령님?”뜻밖에도 호랑이군의 두 도령이 있던 것이다!하지만 두 도령은 그녀와 옛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이 말했다. “어서 들어오시오!”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김단의 심장이 다시 쿵 내려앉았다. 상황이 정말 이토록 심각하단 말인가?김단은 애써 침착한 척 발걸음을 옮겨 임학의 침실 안으로 향했다.그녀가 진산군 옆을 지나칠 때 진산군은 그녀를 부르지 않았고, 그녀 역시 애써 진산군 쪽을 보지 않았다.하지만 스치듯 보았음에도 그의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분명히 지난번에 보았을 때는 이렇게 흰머리가 많지 않았는데...김단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의원이 침상 앞에 앉아 있었고, 침상에는 임학이 누워 있었다.임학의 머리, 뺨, 그리고 몸에는 수많은 은침이 꽂혀 있었다.김단의 발걸음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의원의 시침을 방해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의원은 이미 그녀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비장이 손상되어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겨우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천년 묵은 인삼 조각을 먹여 겨우 숨을 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말을 마친 의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충 어림잡아 말했다. “하루에 한 조각씩, 아마도 천년 묵은 인삼 반 뿌리 가량을 썼을 것입니다. 아깝지도 않았나 봅니다.”김단은 분명 호랑이군의 두 도령이 매일 같이 임학에게 인삼을 먹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반 뿌리의 천년 묵은 인삼은 아마 주상이 최지습에게 내린 하사품일 것이다.이에 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의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태는... 어떠하오?”의원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번에 제가 드렸던 귀한 환약이 아직 남
공주가 침소에서 나온 후, 김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민태훈이 공주에게 모욕을 당했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고, 그녀 또한 그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가능하다면 그녀는 그런 일들을 피하고 싶었다.그녀는 차라리 하만촌의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심 걱정 없이 지내는 것이 이 궁궐에 남아 수많은 간사한 자들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보다 나았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녀를 그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듯했다.이에 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좋다. 이미 이렇게 내몰린 이상, 그녀 역시 전력을 다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속으로 자신을 격려한 김단은 발걸음을 옮겨 어의원으로 향하려 했다.잠시 뒤에 서미인을 보러 가야 했기에, 우선 어의원으로 돌아가 준비를 해야 했다.하지만 어의원 문턱에 다다르기도 전에, 어린 내관 한 명이 다급히 달려왔다.“낭자! 낭자, 잠깐 기다리시오!”어린 내관은 숨을 헐떡이며 겨우 김단 앞에 섰다. 낯선 얼굴이었다. 중전이나 서원 공주의 사람은 아닌 듯했다.숨을 헐떡이는 어린 내관을 보며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시오?”“낭자, 강녕하셨소? 임씨 가문 장남 도련님께서 중상을 입고 돌아오셨소. 주상 전하께서 구두로 명하시길, 낭자께 즉시 진산군 댁으로 가 그를 구하라고 하셨소!”임씨 가문 장남?임학?그는 최지습을 따라 전쟁터로 가지 않았던가? 분명 며칠 전 주상이 최지습이 승전했다고 말하였다!그런데 어찌 중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말인가?김단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어린 내관이 그녀를 불렀다. “낭자, 인명이 달린 일이오. 임씨 도련님은 어쨌든 낭자의 친 오라버니이기도 하니, 부디, 부디 마지막 얼굴만이라도 보러 가시오!”김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초조한 어린 내관의 표정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도 주상 전하께서 자네에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오?”이 말을 들은 어린
뜨거운 차가 그녀의 다리에 튀었다.김단은 서원 공주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화가 났으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공주 마마, 노여움을 푸시지요!”“노여움을 풀라고? 낭자는 내가 화병이 나 민태훈은 물론 민씨 가문 전체를 혼내주기를 바라던 것이 아니오?”서원 공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김단은 다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어찌 소신이 감히, 소신은 그저 공주 마마께서...”“그만!”서원 공주가 코웃음을 쳤다. “공주가 바보인 줄 아는 것이오?! 낭자가 나를 손에 든 칼로 쓰려거든, 먼저 낭자가 그 칼을 쥘 만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헤아려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김단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서원 공주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김단은 이미 서원 공주의 성격을 꿰뚫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말했다. “공주 마마, 부디 용서해주시지요. 소신이 공주 마마의 힘을 빌려 민태훈을 혼내주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민태훈이 지나치게 소신을 안하무인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궁궐 안의 그 누가 소신이 공주 마마의 사람인 것을 모른단 말입니까?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들이 공손하게 대하는데, 유독 저 민태훈만이 시종일관 소신을 업신여기니, 소신도 자연스레 저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나이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김단은 고개를 들어 서원 공주를 슬쩍 쳐다보았다.공주의 얼굴에 있던 분노는 많이 가라앉은 듯했다.자신의 휘하 사람들이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고, 서원 공주가 어찌 그런 것을 모르겠는가?김단이 자신이 서원 공주 덕분에 외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김단이 진심으로 자신을 그녀의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원 공주의 화는 자연히 조금 누그러졌다.이에 김단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어젯밤 소신이 습격당한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소신은 정말이지 민태훈과 소신 사이에 무슨 깊은 원한이 있어 소신에게 그렇게 경
민태훈의 표정을 본 김단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대감께서는 제가 이 일을 공주 마마께 말씀드릴 거라 생각 못 하신 겁니까?”일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정말 고작 몇 개의 무기로 그녀를 겁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그녀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민태훈은 고개를 숙이고 끝까지 부인했다. “낭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어쨌든 떳떳한 일은 아니었기에 어사대부인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벌할 빌미를 줄 수 없었다.그들에게는 어떠한 증거도 없지 않은가!서원 공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감이 부인한다고 해서 내가 자네를 어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오?”그녀가 주상에게 말하면 증거가 없더라도 민태훈에게 호된 벌을 내릴 수 있었다!민태훈도 이를 똑똑히 알고 있기에 끝내 고개를 숙였다. “공주 마마께서는 소신이 어찌해야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공주가 그를 불렀음에도 곧장 주상에게 고하지 않은 것을 보니, 공주는 아직 이 일을 주상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이 일에는 아직 반전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과연 공주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간단하오. 김씨 낭자에게 사과하시오.”이 말을 들은 민태훈은 깜짝 놀랐다.영의정의 손자인 그가, 일개 칠품 의녀에게 사과하라니?그는 죽기보다도 싫었다.하지만 서원 공주의 심술궂은 표정을 본 민태훈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김 낭자, 미안하오.”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원 공주가 굳이 민태훈을 불러낸 이상 단순한 사과만으로 끝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원 공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성의가 없어서야 되겠소? 사과는 머리를 조아려야 하지 않소?”민태훈은 깜짝 놀랐다. 김단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이는 명백히 그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닌가?!순간 그의 두 눈이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김단은 서원 공주의 뒤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서원 공주가 정말로 사람을 모욕하는 방법을
이 일 때문에 그녀는 주상과 몇 번이나 다투긴 했으나, 민씨 가문 사람들이 맹영지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가 맹영지와 가깝든 그렇지 않든, 맹영지는 그녀를 이모라고 불러야 했다.민태훈이 맹영지를 학대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를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중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도 더 이상 공주를 막지 않았다.이에 서원 공주가 입을 열었다. “민태훈을 불러오거라!”“예!”하인 하나가 대답을 한 뒤 물러갔고, 민태훈의 근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공주의 침소 앞으로 그를 데려갔다.하지만 서원 공주는 그를 바로 만나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민태훈은 꼬박 한 시진을 기다렸으나 끝내 인내심이 바닥나 옆에 있는 소복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공주 마마께서 오늘 신을 뵐 겨를이 없으신 듯합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국사를 그르칠까 염려되오니, 다음 기회에 다시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예를 표하고 떠나려 했다.하지만 소복이 갑자기 호통을 쳤다. “이런 무례한! 공주 마마께서 자네를 보려 하시는데 감히 핑계를 대고 거부하다니, 마마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오?”민태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공주 마마께서 한참을 기다려도 안 만나주시지 않습니까! 소인은 아직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았는데, 국사를 그르친다면 대감께서 어찌 감당하실 겁니까?”하지만 소복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이 어사대부지, 매일 다른 사람 잘못을 들추거나 약점을 잡아 주상 전하께 아뢰어 이간질이나 하는 자가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오?”“대감!”민태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감히 우리 본관을 모욕하는 것입니까?!”“굳이 내 앞에서까지 관직을 내세워 거들먹거릴 필요 없소. 대감은 영의정 대감의 그늘 아래에 있었기에 조정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을 뿐이오. 하지만 아무리 대감이 영의정 대감의 친손자라 할지라도, 우리 공주 마마께서는 주상 전하의 친따님이시자 우리 대정의 유일한 공주 마마시오!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