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사흘 뒤, 마침내 무예대회의 공개 선발과 함께 본격적인 첫날이 밝았다.높이 세운 연단 아래로 인파가 빽빽하게 몰려들었다.온갖 강호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소리만으로도 하늘을 뒤흔들 듯했다.공기 속에는 병장기의 쇠비린내와 땀 냄새, 그리고 ‘욕망과 야심’이라 불러야 할 들뜬 기운이 뒤섞여 맴돌고 있었다.그때, 달빛을 머금은 듯한 옅은 비색 비단 옷자락이 높은 연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최지습이었다.곧게 뻗은 기개는 소나무처럼 단단했고, 그의 주위로는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 번져 나갔다.복잡하던 소음은 그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했다.최지습은 온화한 눈길로 아래 검게 출렁이는 인파를 한 번 훑어본 뒤, 내공을 실은 맑은 음성으로 광장 구석구석까지 말을 전했다.“강호의 여러 동도 여러분.오늘 무예대회를 연 것은 다 함께 큰일을 도모하고, 바른 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무공 수련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나,”그는 잠시 말을 끊고,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무덕과 인품 또한, 결코 빠질 수 없는 기준입니다.그래서 이번 무예대회에는 세 가지 관문을 두었습니다.첫째는 근기와 심성을 살피고, 둘째는 임기응변과 지모를 살피며, 마지막 셋째에서 비로소 무공의 정수를 겨루게 될 것입니다.힘을 믿고 약자를 업신여기거나, 마음가짐이 삐뚤어졌거나, 강호에서 악행을 저지른 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그 즉시 자격을 박탈하고, 다시는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연단 아래가 곧장 술렁이기 시작했다.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이도 있었고, 못마땅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이도 있었다.아예 대놓고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얼굴들도 적지 않았다.곧바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그 무덕이니 인품이니 하는 걸 대체 누가, 어떻게 정하겠다는 말씀이오?당신이 좋다 하면 좋은 사람이고, 당신이 아니다 하면 아닌 사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사람들 사이에서 곧장 호응하는 소리가 이어졌다.“그래, 우리도 납득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창틈 사이로 밤바람이 스며들었다.흔들리는 촛불이 김단의 그림자를 벽 위에 비추며, 길게 늘였다가 또 짧게 거두었다.물증이든 인증이든, 천조각과 혼미약 찌꺼기, 목격자의 진술, 숨겨진 화물 기록까지,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되어 한결같이 청우루를 가리키고 있었다.그러나 이렇게까지 향하는 곳이 분명한 증거들, 너무도 순조롭게 맞물리는 흐름이 오히려 김단의 코끝에 낯선 기운을 스치게 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검푸른 밤을 내려다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영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영칠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느리게 대답했다.“겉으로 보기에는 증거들이 잘 맞물려 있습니다. 논리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입니다.하지만… 청우루가 정말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했다면, 그들의 솜씨로는 우리가 이렇게 쉽게 자취를 쫓아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그 천조각은 오히려 일부러 남겨 둔 흔적에 가깝습니다.처음부터 누군가가 우리 시선을 청우루 쪽으로 돌리도록, 뒤에서 손을 대고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군요.”김단이 몸을 돌았다.촛불 아래에서 그녀의 또렷한 얼굴 위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미세한 음영을 만들었다.“이렇게까지 드러나게 표식을 남기고, 게다가 목격자의 귀에 꼭 들어가야 할 말까지 흘려놓는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오히려 정교하게 짜 놓은 판에 가깝습니다.누군가 죄를 떠넘기려 하거나, 적어도 물을 흐려 놓으려는 움직임에 가깝습니다.”그녀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더니, 손가락 끝으로 짙은 남색 천조각을 천천히 두드렸다.“그러니 지금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입니다.윤귀와 다른 강호인들이 사라진 일, 겉으로 드러난 모든 증거는 청우루를 가리키고 있지만, 정말로 그들을 단죄할 만한 결정적인 한 장의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청우루 안의 일부가 멋대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또 한편에서는 누군가가 청우루의 수법을 흉내 내거나 청우루라는 이름
해질녘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온갖 소리가 사라진 밤, 짙은 먹물 같은 어둠 속을 떠받치듯, 서재에는 오직 한 자루 등불만이 누런 빛무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김단은 아직도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홀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정신향이 타고 남긴 재는 이미 식어 있었으며, 공기 속에는 밤이슬의 서늘함만 은은히 배어 있었다.문득 창가 쪽 빛이 미세하게 가려지는가 싶더니, 어둠과 거의 한 몸이 된 그림자 하나가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영칠이었다.그는 먼 길을 달려온 듯 온몸에 먼지를 묻힌 채, 밤행옷 자락에는 성 밖 산기슭의 축축한 흙냄새와 풀잎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가면 아래의 눈빛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웠고, 그 속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무거움이 서려 있었다.“약왕곡의 주인.”쉰 기운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흘러나왔다.김단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들려 올라갔다.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던 피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가운 물결 같은 탐색이 대신 눈에 떠올랐다.“말씀해 보십시오.”“아래 사람은 윤귀의 자취를 쫓으라는 명을 받들어,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암선을 동원해 살폈습니다만…… 일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뒤엉켜 있었습니다.”영칠은 짧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지난 석 달 동안 강호에서 이름난 고수만 적어도 일곱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홀로 떠도는 협객도 있었고, 한 문파의 중추가 되는 인물도 있었으나, 서로의 신분이나 내력에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습니다.”김단의 시선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계속 말씀해 주십시오.”“아래 사람은 윤귀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있는 자취를 따라가던 중, 한 곳에서 싸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도성 밖, 오래전에 버려진 성황당 주변이었습니다.흔적은 아주 새로웠고, 누군가 일부러 지워 놓은 자국도 보였습니다만, 아래 사람은 성황당 담벼락의 틈새에서 이것을 찾아냈습니다.”영칠이 그렇게 말하며 품
주상은 최지습을 곁눈질로 한 번 훑어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상소 뭉치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짐이 너에게 다른 속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 같으냐.다만 세상일은, 짐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문제지.”말을 잇던 주상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그대가 이번 무예대회를 강력히 주장한 뜻, 강호를 아우르고자 함이요, 모두 짐을 위해 쓰고자 함이니 그 마음은 가상하다.다만 짐이 한 가지 묻고자 하노니.”그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시선은 날카롭게 빛났다.“무공만 높으면 그만이더냐.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흉악한 강도든, 속셈을 알 수 없는 사악한 무리든, 누구든지 이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무림 제일인의 자리를 다툴 자격이 있다는 말이냐.”만일 인품이 바르지 못하고, 나아가 조정을 노려보는 적의까지 품은 자가 맨 위에 오른다면, 이번 무예대회는 힘을 보태는 자리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더 통제하기 어려운 화근 하나를 키워 내는 셈이 될 터였다.최지습은 이미 주상이 이 질문을 던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았다.그는 태연히 몸을 굽혀 예를 올리고, 맑으면서도 묵직한 목소리로 아뢰었다.“전하의 근심이 지극히 마땅하옵니다.무력만으로 영웅을 가른다면, 불량한 자들이 그 틈을 타기 쉬울 것이니, 이는 조정이 이번 무예대회를 여는 본뜻과 어긋나는 일일 것이옵니다.”그는 잠시 말을 가다듬고, 이어 또렷이 상소를 이었다.“하여 신이 강호에서 덕망 높은 명사 몇 분과 예조 관리들과 더불어 의논한 끝에, 우선 몇 가지 규정을 세워 두었사옵니다.주먹과 검술만으로 승부를 가르지 않도록 하는 방도들이옵니다.”“오.”주상은 몸을 뒤로 기대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던 동작을 멈추었다.이윽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어디, 짐에게도 들려 보라.”“첫째로는 무덕을 살피는 절차를 두었사옵니다.”최지습이 조목조목 말을 이어 갔다.“이번 무예대회는 그저 난장처럼 뒤엉켜 싸우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춘도가 전한 이야기들 말고도, 김단이 알고 있는 일은 더 있었다.무예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한양은 마치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솥처럼 들끓기 시작했다.사방에서 강호의 무리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들어, 원래는 질서 바르고 고요하던 거리마다 칼과 검을 찬 무림인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온갖 인물들이 뒤섞이고 속셈도 제각각이라, 요사이 한양의 공기마저 괜스레 날카롭고 불안하게 떨리는 듯했다.며칠 전에는 취화루에서 문파가 다른 제자 둘이, 창가의 좋은 자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끝내 칼을 뽑아 서로를 겨누는 일까지 벌어졌다.양쪽이 술집 안에서 마구 뒤엉켜 싸우는 바람에 상 아래 위의 탁자와 의자, 그릇과 사발이 죄다 산산조각이 났다.놀란 손님들은 머리를 싸쥐고 우르르 달아났고, 가게 관리자는 한쪽에서 통곡하듯 손을 부르짖으며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마침내 성안을 돌던 경조부 군사들이 들이닥쳐서야 난투극이 가까스로 진정되었으나, 이미 양쪽 모두 머리가 터지고 피투성이가 된 뒤였다.취화루의 피해 역시 말 그대로 막심했다.또 북변에서 마적질을 하다 요즘은 어느 자그마한 문파 아래로 들어갔다는 호걸 몇은, 길을 가는 보통 백성들이 거추장스럽다 해서, 한낮의 장터 한복판을 말을 몰아 내달리기도 했다.말발굽에 좌판이 몇 번이나 뒤집히고, 아이들이 치일 뻔한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다.이를 말리려 순라군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지만, 그들은 제 무공을 믿고 오히려 비웃고 험한 말로 조롱했다.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예전부터 원한이 쌓여 있던 두 문파가 우연히 같은 여인숙에 머무른 적도 있었다.그날 밤, 사소한 한 마디에서 불씨가 튀어 올랐고, 마침내 수십 명이 객잔 안뜰에서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번쩍이는 칼날과 휘날리는 검광, 고함과 욕설이 한데 뒤섞여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사방 이웃들이 죄다 잠을 설칠 만큼 시끄러운 난투가 이어지다가, 새벽이 다 밝아 올 무렵에서야 겨우 잦아들었다.남은 것은 쑥대밭이 된 안마당과, 여기저기
김단이 가볍게 눈썹을 올리며 숙희를 바라보았다.“오? 무슨 방법이 있소?”숙희는 으쓱 어깨를 올리며 흐뭇하게 웃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회랑 기둥을 닦고 있던, 영리해 보이는 시녀 하나를 향해 손짓했다.“춘도, 이리 좀 와 보아라.”춘도라 불린 시녀는 열다섯, 열여섯쯤 되어 보였다.말끔한 푸른 빛 천옷을 입고 있었고, 부름이 떨어지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재빨리 내려놓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또렷하게 예를 올렸다.“숙희 누이, 김 낭자, 부인, 무슨 일 분부하실까요?”숙희가 김단과 아원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아씨, 부인, 이 춘도는 얼마 전 관저에 새로 들인 아이인데, 바깥 장보기를 맡고 있지요. 대수롭지 않게 볼 일이 아니에요. 날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 한양 안에서 돌아다니는 크고 작은 새 소식이며, 별별 기이한 소문까지 귀가 제일 먼저 듣는다니까요.”그러고는 살짝 춘도의 등을 떠밀었다.“자, 부인이랑 김 낭자께 한 번 들려 보렴. 요즘 한양에 무슨 재미난 일들이 떠돌고 있는지, 부인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해 드려라.”춘도는 원래 성격이 발랄해서, 아씨들이 흥미를 보이자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동그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번지며, 쨍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예! 부인, 김 낭자, 두 분은 아마 못 들으셨을 거예요. 요즘 이 한양이 얼마나 떠들썩한데요. 곧 무예대회가 열린다 해서, 거리에 칼과 검을 찬 강호인들이 바글바글하다니까요.”춘도는 손짓까지 보태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바로 엊그제예요. 이 계집종이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는데, 눈앞에서 문파가 다른 사람 둘이서, 잘 빠진 오겹살 한 덩이를 두고 서로 가지겠다고, 하마터면 가게 앞에서 싸움이 벌어질 뻔했지 뭐예요. 웃기지 않으세요? 결국엔 정육점 주인이 눈치껏 나서서, 고기를 반으로 갈라 두 집이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고 해서야 일이 싹 정리됐다니까요.”아원은 그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가를 가만히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