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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안심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15 14:30:55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따져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태훈 씨는 어디에 있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태훈이 고양이를 안고 현관 쪽으로 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표정을 굳혔다.

“임서영, 대체 뭐 하자는 거냐?”

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마루가 아파서 밥 먹이고 있다고. 밥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 정도도 참을 수 없냐?”

나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얼른 팔을 잡고 말했다.

“나랑 가요. 어머님이 심장 발작을 일으켰어요.”

그러나 오태훈은 나의 손을 뿌리쳤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어머니 건강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어머니가 얼마나 건강하신데! 낮에도 내가 직접 건강검진까지 해드렸어. 멀쩡하시니까 자꾸 어머니를 이용해서 날 협박하지 마.”

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확실히 그가 줄곧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내과 전문의인 그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분노를 꾹 참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태훈 씨,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이 지금 병원에서 태훈 씨만 기다리고 계셔요. 계속 안 가겠다고 하면 태훈 씨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요!”

나는 아주 진지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태훈은 다소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이때 신유나가 나를 보며 풀 죽은 얼굴로 말했다.

“서영 언니, 태훈이가 우리 집에 있어서 질투가 나는 건 이해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아주머니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랑 태훈이 사이에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우리 마루가 아파서 태훈이가 상태 봐주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신유나의 말을 들은 오태훈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유나 말이 맞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꾸 헛소리하지 마. 나한테 남은 가족은 어머니뿐이니까. 죽고 싶은 거라면 혼자 죽어. 우리 어머니를 저주하지 말고!”

나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지금 응급실에 누워 있는 사람이 네 어머니라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나는 그에게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어머님은 그가 돌아와 수술하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원혁 씨한테 연락해서 물어봐요. 원혁 씨가 사실대로 말해줄 테니까요.”

오태훈은 핸드폰을 꺼내 허원혁에게 연락하려고 했으나 신유나가 그에게 찰싹 붙으며 말했다.

“태훈아,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서영 언니랑 가. 마루는 나한테 주고.”

송유나는 말하면서 오태훈이 안고 있는 고양이를 품에 안으려고 했으나 오태훈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난 안 가. 여기 남아서 마루 상태를 볼 거야. 마루를 위한 특식도 완성 못 했다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어머님은 뒷전이고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터져 결국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말았다.

“오태훈, 그 고양이가 그렇게 중요해? 나랑 함께 어머님을 살리러 가기 싫을 만큼?”

오태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유나가 먼저 말했다.

“서영 언니, 언니가 나랑 태훈이 사이 오해하고 있어서 이렇게 화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 건강 상태는 항상 좋으셨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저주는 그만 하세요. 그러다가 말이 씨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 말을 듣자 오태훈은 불쾌한 듯 미간을 확 구겼다.

“임서영,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냐? 우리 어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넌 그런 우리 어머니를 이용해서 나 집 돌아오라고 저주하는 거냐? 넌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하냐? 그래, 없으니까 너희 부모님도 널 버린 거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나의 부모님은 딸인 나보다 아들을 더 아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버렸고 결국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이 일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꽉 틀어 물었다.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절망의 맛이었다.

나는 다소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태훈 씨,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나랑 가자. 어머님이 정말로 위독하시다고. 얼른 가서 치료해줘.”

신유나는 내 손을 잡으며 아주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였다.

“서영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태훈이는 우리 마루한테 밥만 먹이고 바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그만 저주해요.”

신유나만 아니었어도 오태훈은 나와 함께 병원으로 돌아가 어머님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분노가 치밀어 있는 힘껏 신유나의 손을 뿌리쳤다.

“이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신유나 씨는 신경 꺼요!”

분명 손만 뿌리쳤을 뿐인데 신유나는 바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오태훈은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

“유나야, 어때.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신유나는 연약한 모습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괜찮아.”

오태훈은 잔뜩 화가 난 눈길로 나를 보았다.

“그만해! 임서영,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 준 줄 알아? 이런 억지는 그만 부리라고!”

말을 마친 그는 나를 밀치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뒤늦게 반응이 온 나는 울면서 문을 두드렸다.

“오태훈, 태훈 씨! 이 문 좀 열어봐요!”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요!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울면서 문을 두드려도 오태훈은 코빼기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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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짐을 정리한 후 회사의 기숙사로 들어와 살았다. 그날부터 오로지 일에 몰두했다. 언젠가 내 힘으로 내집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이혼은 설령 오태훈이 원치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혼 소송을 걸면 되니까.이날, 퇴근한 나는 직장 동료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나는 남의 일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서 우연히 신유나를 발견했다. 신유나는 어떤 중년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욕을 먹고 있었다.“이 여우 같은 x이, 감히 내 남편한테 꼬리를 쳐? 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신유나의 얼굴은 이미 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옷도 너덜너덜해져 퍽 처참해 보였다.“여러분, 이 뻔뻔한 여우 x이 글쎄 제 남편 옆에 몇 년 동안이나 붙어 있었지 뭐예요? 내 남편한테 꼬리 쳐서 2억 쓴 것도 모자라 이젠 남편한테 나랑 이혼하라고 바람까지 불어넣고 있더라니까요!”신유나는 옆에 있던 중년 남자를 보았다.“이혼하고 저랑 결혼할 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중년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중년 여자는 손을 올리더니 신유나의 뺨을 내리쳤다.“하, 뻔뻔한 것! 아직도 그런 말을 해?!”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수군댔다. 중년 여자가 자신의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단서로 내연녀를 찾아내 혼내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그 내연녀는 바로 신유나였다.나는 신유나를 빤히 보았다. 정말이지 쌤통이었다.일주일 뒤, 오태훈이 내게 연락했다. 그는 이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딱히 신나거나 놀랍지는 않았고 평온했다.오태훈과 나눌 재산은 없었기에 이혼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집은 그가 결혼 전에 마련한 것이니 나와 상관없는 그의 재산이었고 부부 공동 재산이라고 할 것도 딱히 없었다.가정 법원에서 나오는 데 오태훈이 나를 불러세웠다.“서영아, 그 집에 계속 살아도 돼. 내가 이사하면 되니까.”나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7화

    오태훈의 손에 있던 핸드폰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주 괴로운 듯했다. 최근 며칠 동안 자기가 했던 일이 떠올라 후회하면서도 자책하는 듯한 그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날 밤, 나는 신유나의 집까지 찾아가 그에게 병원으로 가서 어머님을 치료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거부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멋대로 어머님의 유골함을 빼앗아 가 깨버리면서 밀가루라고 말했다.그는 드디어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그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어머니, 어떻게 이럴 수 있으신 거예요? 왜 저를 두고 떠나신 거예요?”“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오태훈은 울면서 자기 뺨을 철썩철썩 쳤다.나는 그런 그를 무표정한 얼굴로 보았다. 설령 그가 뺨이 헐도록 친다고 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었으니까.신유나는 몸을 굽히며 그를 달랬다.“태훈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어차피 인간은 부활할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린 애도하자.”그러자 오태훈은 그녀를 확 밀쳐냈다.“입 닥쳐.”그는 죽일 듯이 신유나를 노려보다가 소리를 질렀다.“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라고!”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신유나의 목을 졸랐다. 아주 포악한 얼굴로.“네가 날 홀리지만 않았어도, 서영이가 우리 어머니를 이용하고 있다고 바람을 불어넣지만 않았어도 난 그때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서 우리 어머니를 살렸을 거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야!”“우리 어머니를 돌려줘. 다시 돌려놓으라고!”“신유나, 내가 오늘 너 죽여버릴 거야!”그 모습을 보고도 나는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방관하고 있었다.신유나는 목 졸려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그녀의 고양이가 오태훈에게 달려들며 깨물었다.오태훈은 뒤로 넘어졌다.신유나는 바로 벌떡 일어나더니 씩씩대며 말했다.“오태훈, 이 버러지 같은 자식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6화

    오태훈은 바닥에 떨어진 이혼 서류를 줍더니 펼쳐보았다. 확실히 이혼할 생각임을 알게 된 그의 안색은 파리해졌다.“그래, 이혼해. 임서영, 애초에 너랑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그는 빠르게 사인을 했다.나는 이혼 서류를 빼앗았다.“내일 아침 9시 반. 가정 법원에서 봐.”오태훈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고개를 돌리며 신유나에게 말했다.“유나야, 우리 얼른 마루 데리고 병원으로 가자. 마루는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신유나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곤 몰래 나를 향해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꼭 이 싸움에서의 승자는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나는 그런 그녀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문을 닫아버렸다.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어머님이 떠올랐다. 고작 발가락 다친 고양이를 보며 안절부절 못 해하는 오태훈은 정작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정말이지 그런 어머님이 너무도 불쌍했다.오후가 되자 나는 서류를 들고 어머님의 사망 신고 마무리하러 갔다.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오태훈과 신유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나를 발견한 오태훈은 바로 잡고 있던 신유나의 손을 놓아주며 습관처럼 나에게 따져 물으며 화를 냈다.“임서영, 너 설마 이젠 나 미행까지 하냐?”나는 그를 힐끗 본 후 무시해 버렸다. 그 길로 내 갈 길을 갔다.신유나가 보는 앞에서 무시를 당해 체면을 구기게 되었는지 오태훈은 몇 발자국 따라오며 내 팔을 확 잡았다.“내가 말을 하잖아. 안 들려?”나는 짜증이 치솟아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들고 있던 사망 서류가 바닥에 후두두 떨어졌다. 오태훈은 사망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곤 얼른 주웠다.사망 신고서라는 글자를 본 그는 두 눈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건 가짜야. 가짜라고.”“임서영, 얼른 말해줘. 이 사망 신고서 가짜라고. 우리 어머니가 사망했을 리가 없잖아.”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오태훈이 충격에 빠진 모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5화

    만약 예전의 나였다면 그가 한 말을 듣자마자 아주 속상하고 슬퍼하면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웃음만 나왔다. 정말이지 그는 끝까지 멍청한 사람이었다. 더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이혼 서류에 이미 작성해 뒀으니까 태훈 씨가 와서 사인만 하면 돼요.”그에게 말할 기회를 더는 주고 싶지 않아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반 시간 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태훈인 줄 알고 바로 문을 열었다.그러나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오태훈이 아닌 고양이를 안고 있는 신유나였다.그녀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어때, 남편을 빼앗긴 기분이. 꽤 괴롭지?”지금 이곳엔 그녀와 나, 단둘만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더니 이내 내게 사진 한 장 보여주었다.“임서영, 태훈이가 왜 너랑 결혼한 줄 알아? 네 얼굴이 예전의 나랑 닮아서야. 지금은 내가 돌아왔으니 눈치껏 얼른 태훈이랑 이혼해!”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가 보여준 사진을 보았다.사진 속의 여자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여자는 신유나였다. 아마도 학생 시절에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외모든 옷 스타일이든 아주 청순해 보였다.순간 오태훈이 나를 처음 봤을 때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멍하니, 꼭 나를 통해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나는 예전에 그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그때 왜 그런 표정을 지었냐고. 하지만 그는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말했기에 그의 말이 심지어 나는 감동 받기도 했다.알고 보니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태훈은 나를 신유나의 대체품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정말이지 너무도 가소로웠다. 나는 정말로 그가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줄 알았다.“신유나 씨, 내가 이혼하든 말든 신경 끄시죠.”신유나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임서영, 뻔뻔하게 굴지 마. 태훈이는 널 사랑하지 않아. 그런데 구질구질하게 태훈이 발목 잡고 있겠다는 거야? 제발 눈치껏 좀 행동해.”나는 그녀를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4화

    그 순간 도자기로 만든 유골함이 깨지면서 안에 있던 가루가 전부 바닥에 쏟아져 나왔다. 분노에 치민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손을 들어 그의 뺨을 쳐버렸다.“오태훈! 이 나쁜 자식아! 네가 어떻게 어머님 유골함을 깨버릴 수 있어! 그러다가 천벌 받을 수도 있다는 거 몰라?”오태훈은 나의 손맛에 멍한 표정을 짓더니 몇 초 후에야 반응을 보이며 내게 소리를 쳤다.“임서영, 감히 날 때렸어? 이 미친 x이!”나는 그를 무시한 채 바닥에 쏟아진 유골을 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주워 담아보려고 했다.“어머님, 죄송해요. 다 제가 못나서 지켜드리지 못한 거예요.”오태훈은 그런 나를 괴물 보듯 보고 있다가 픽 웃었다.“그거 밀가루잖아. 누가 모를 줄 알아? 뭐 그래도 연기는 잘하네.”나는 고개를 들어 충혈된 눈으로 그를 보았다.“오태훈, 네가 던진 건 네 어머니의 유골이라고. 너 그러고도 사람이냐?!”오태훈이 말을 하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바로 받았다.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유나야, 괜찮아. 내가 지금 바로 갈게.”나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소리를 질렀다.“오태훈, 너 한 발자국이라고 움직이기만 해봐!”예전에 싸울 때도 나는 이런 목소리를 낸 적 없었다. 오태훈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한참 후에야 설명했다.“누군가 지금 유나를 미행하고 있는 것 같대. 내가 얼른 가서 안전한지 확인해야 해.”말을 마친 그는 바로 떠나버렸다.나는 다급하게 집 밖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머님이 눈을 감기 전처럼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따라가서 오태훈을 잡은 후 병원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두 눈으로 직접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다.그런데 그가 신유나의 고양이를 위해 어머님을 뒷전으로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뿐 아니라 어머님의 유골함까지 깨버렸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나는 침착하게 더는 오태훈에게 급하게 어머님의 사망 사실을 알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진정했다. 어차피 병원으로 출근하게 되면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3화

    더는 방법이 없었던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너무 다급했던 나머지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넘어지고 말았다.허원혁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형수님, 태훈이 형은요?”“제가 아무리 말을 해도 오려고 하지 않아요. 어머님은 어떻게 됐어요?”허원혁은 고개를 돌렸다. 내 두 눈을 마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형수님,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그 순간 나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얼른 응급실로 달려갔다.혈색이라곤 하나도 없는 어머님의 얼굴을 보니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어머님, 죄송해요. 태훈 씨를 찾지 못했어요.”나는 차마 어머님에게 오태훈이 병원으로 오는 걸 거부했다는 걸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서영아, 나한테 숨길 필요 없단다. 태훈이는 내가 낳은 아이야.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분명 그 여자랑 시간을 보내느라 오지 않은 게야. 그 여자한테 홀랑 빠져서 제 어미도 나 몰라라 하는 불효자식 놈! 나는 서영이 널 처음 보자마자 착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그동안 태훈이가 그 여자 집 들락날락하면서 많이 맘고생 많이 했지? 나한테 말할 수도 없어서 혼자 속으로 많이 끙끙 앓고 있었겠구나. 내가 미안하구나. 다 내가 자식 잘못 키운 탓이야.”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어머님, 그건 어머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어머님은 기침을 두어 번 했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어머님, 말씀 그만 하세요. 푹 쉬면 괜찮으실 거예요.”어머님의 두 눈에 반짝이는 눈물이 맺혔다.“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구나.”나는 가슴이 너무도 아파 말도 나오지 않았다.어머님은 나를 보며 말했다.“서영아, 앞으로 내가 곁에 없어도 네 한 몸 잘 챙겨야 한단다. 절대 너 자신을 고생시키지 마. 이혼해. 나는 네가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구나...”말을 마친 후 어머님의 두 눈은 굳게 감겼다.“어머님!”나는 침대에 엎드려 통곡했다.어머님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허원혁이 옆에 있었다. 그는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2화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따져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태훈 씨는 어디에 있어요?”말을 마치자마자 오태훈이 고양이를 안고 현관 쪽으로 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표정을 굳혔다.“임서영, 대체 뭐 하자는 거냐?”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내가 말했잖아. 마루가 아파서 밥 먹이고 있다고. 밥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 정도도 참을 수 없냐?”나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얼른 팔을 잡고 말했다.“나랑 가요. 어머님이 심장 발작을 일으켰어요.”그러나 오태훈은 나의 손을 뿌리쳤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어머니 건강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어머니가 얼마나 건강하신데! 낮에도 내가 직접 건강검진까지 해드렸어. 멀쩡하시니까 자꾸 어머니를 이용해서 날 협박하지 마.”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확실히 그가 줄곧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내과 전문의인 그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나는 분노를 꾹 참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태훈 씨,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이 지금 병원에서 태훈 씨만 기다리고 계셔요. 계속 안 가겠다고 하면 태훈 씨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요!”나는 아주 진지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태훈은 다소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이때 신유나가 나를 보며 풀 죽은 얼굴로 말했다.“서영 언니, 태훈이가 우리 집에 있어서 질투가 나는 건 이해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아주머니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랑 태훈이 사이에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우리 마루가 아파서 태훈이가 상태 봐주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신유나의 말을 들은 오태훈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했다.“유나 말이 맞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꾸 헛소리하지 마. 나한테 남은 가족은 어머니뿐이니까. 죽고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제1화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와중에 시어머니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나는 급하게 수저를 내려놓고 다가가 물었다.“어머님, 괜찮으세요? 심장이 아프신 거예요?”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 남편인 오태훈에게 연락했다. 나의 남편은 내과 전문의사였다.그는 야근이 있다면서 저녁을 먼저 먹으라고 미리 연락했었다.그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어진 시도 끝에 드디어 연락이 닿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건 남편의 목소리가 아닌 애교가 섞인 여자의 목소리였다.“서영 언니, 제 냥이가 조금 아파서요. 태훈이가 지금 먹을 것을 만드는 중이니까 그만 연락하실래요? 그러다 겨우 잠든 제 냥이가 깨면 어떻게 하시려고요.”나는 순간 표정이 경직되고 말았다.이 목소리는 신유나의 목소리였다. 오태훈의 첫사랑 신유나.두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신유나의 부모님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오태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신유나를 해외 유학을 보냈다.그러다가 나중에 오태훈은 나를 만나게 되었고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면서 거의 반년 동안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의 끈질김에 나는 결국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그와 결혼한 후에도 결혼 생활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오태훈은 누구나 봐도 아주 모범적인 남편이었다.3개월 전 신유나가 해외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때부터 오태훈은 180도 달라져 버렸다.매일 아침 일찍 나간 후 아주 늦게 귀가했을 뿐 아니라 주말에는 외박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항상 일이 많아 야근 중이라고 말했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야근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 신유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따져 물어보기도 했으나 그는 나에게 의심병이 있냐며, 마음이 그렇게나 옹졸해서 되겠냐며 말했다.보아하니 그는 또 나를 속이고 있었고 애초에 야근하지 않았다.다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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