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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Author: 무안안
강지한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눕히며 최대한 심미연과 거리를 두었다. 자칫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힘들게 찾아온 평온이 깨어질까 봐 두려웠다.

눈을 감았지만 그녀의 익숙한 향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감정이 요동쳤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강지한도 결국 잠에 들고 말았다.

심미연은 긴 잠 끝에 눈을 떴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병실 안은 텅 비고 조용했다.

“엄마, 가지 마요.”

귀 옆에서 들려온 작고 앙증맞은 목소리에 심미연은 고개를 숙였다.

강상미가 그녀 옆에 누워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 새하얀 얼굴에 크고 예쁜 눈망울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 속에는 기대와 불안,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엄마.”

강상미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그만 손으로 심미연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머리 아파?”

심미연은 그녀를 살포시 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 조심스레 물었다.

“안 아파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인형 같아서 더없이 안쓰러웠다.

심미연은 가슴이 꾹 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

“아프면 말해도 돼. 아줌마가 놀릴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애가 어떻게 이런 고통을 참고 있는지.

보통 애들이었으면 진작 울고불고 난리였을 텐데, 이 아이는 너무도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다.

“엄마예요.”

강상미가 그녀의 목을 감싸안더니 조그만 얼굴을 그녀의 뺨에 살며시 비볐다. 말투는 아이 같지만 눈빛은 또렷하고 단단했다.

심미연의 매혹적인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왜 나를 엄마라고 불러?”

속으론 생각이 많아졌다. 이쯤 되면 강상미와 DNA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정말 이 아이가 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혹시 아이가 그때 완전히 죽지 않았고 어떤 이유로 살아남아 강지한에게 입양되었다면?

심미연의 머릿속을 수없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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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심미연은 강지한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심미연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몸을 숙여 강상미의 볼에 얼굴을 살짝 대며 부드럽게 말했다.“아빠 금방 올 거야. 난 먼저 갈게. 얼른 나아서 건강해지자, 알았지?”강상미는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엄마, 혹시 나 안 좋아해요?”아니면 왜 남아서 같이 있어 주지 않는 걸까.“아니야.”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내일 오후에 오빠 데리고 올게. 너랑 같이 놀게 해줄게.”그 말을 들은 강상미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네, 좋아요!”심미연은 그렇게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괜히 쓰라렸다.원래부터 심장이 좋지 않은 아이인데, 오늘은 머리까지 다쳤으니 이 작은 몸으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엄마 일하러 가야 하는 거잖아요. 얼른 가요! 난 얌전히 아빠 기다릴게요!”강상미는 심미연을 살짝 밀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엄마, 잘 가요!”마음은 아프지만 심미연에게 일이 있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 붙잡을 수 없었다.‘말 잘 들어야 해. 그래야 엄마가 나를 사랑해 줄 테니까. 안 그러면 엄마가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심미연은 잠시 아이를 응시하다가 이내 돌아섰다. 손바닥을 펴자 그 안에 아이의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붙어 있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지금 당장 DNA 검사를 하러 가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최대한 빠르게.그녀가 병실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한이 음식이 담긴 가방을 들고 병실 문을 열었다.병실 안을 둘러본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심미연, 진짜 그냥 가버린 거야?’“아빠! 왜 이제 왔어요? 엄마는 벌써 갔단 말이에요!”강상미는 못마땅하다는 듯 강지한을 노려봤다.‘아빠가 잘 붙잡아 뒀어도 나는 매일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배고프지? 일단 밥 먹자.”강지한은 억눌린 감정을 숨기고 간이 테이블을 펼쳐 음식들을 하나씩 올려놓았다.“와, 냄새 진짜 좋다!”강상미는 손뼉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9화

    심미연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부재중 전화에 문자, 카톡까지 들어와 있었다.자세히 보니 박유진에게서만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배터리가 60%나 남아 있는 걸 보고 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강지한이 일부러 꺼둔 게 분명했다.‘정말 꼴도 보기 싫어!’“엄마, 화내지 마요.”귀 옆에서 들려온 보들보들한 목소리에 심미연은 고개를 숙였다.아이는 동그랗고 예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심미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 화내지 않을게.”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화가 한순간에 스르르 가라앉았다.“웃으니까 진짜 예뻐요!”강상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심미연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혹시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 진짜 많은 거 아니에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당연히 없지.”“안 믿어요.”강상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자 심미연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왜 안 믿어?”‘진짜 귀여워 미치겠네.’“TV 보면 예쁜 여자 주인공들은 다 인기 많아요. 남자들이 다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던데요?”강상미는 말투도 표정도 진지했다. 동그란 눈에서는 확신이 느껴졌다.“그래?”심미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근데 지금은 전화 좀 해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응?”“알겠어요!”강상미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심미연은 아이의 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고는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일어났다.병실 문을 나서는 심미연의 뒷모습을 보며 강상미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엄마는 이제 곧 가겠지... 그럼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아빠도 진짜! 도대체 왜 엄마를 데려오지 못하는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심미연이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몸을 숙여 이불을 살며시 덮어주며 말했다.“병원에선 얌전히 누워 있어야 해. 아줌마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엄마... 나도 데려가면 안 돼요? 혼자 있으면 무섭단 말이에요.”강상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8화

    강지한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눕히며 최대한 심미연과 거리를 두었다. 자칫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힘들게 찾아온 평온이 깨어질까 봐 두려웠다.눈을 감았지만 그녀의 익숙한 향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감정이 요동쳤다.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강지한도 결국 잠에 들고 말았다.심미연은 긴 잠 끝에 눈을 떴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병실 안은 텅 비고 조용했다.“엄마, 가지 마요.”귀 옆에서 들려온 작고 앙증맞은 목소리에 심미연은 고개를 숙였다.강상미가 그녀 옆에 누워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 새하얀 얼굴에 크고 예쁜 눈망울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 속에는 기대와 불안,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엄마.”강상미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그만 손으로 심미연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머리 아파?”심미연은 그녀를 살포시 안아 무릎 위에 앉히고 조심스레 물었다.“안 아파요.”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인형 같아서 더없이 안쓰러웠다.심미연은 가슴이 꾹 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아프면 말해도 돼. 아줌마가 놀릴 사람도 아니고.”이렇게 작은 애가 어떻게 이런 고통을 참고 있는지.보통 애들이었으면 진작 울고불고 난리였을 텐데, 이 아이는 너무도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다.“엄마예요.”강상미가 그녀의 목을 감싸안더니 조그만 얼굴을 그녀의 뺨에 살며시 비볐다. 말투는 아이 같지만 눈빛은 또렷하고 단단했다.심미연의 매혹적인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왜 나를 엄마라고 불러?”속으론 생각이 많아졌다. 이쯤 되면 강상미와 DNA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혹시 정말 이 아이가 딸일 수도 있지 않을까?비록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혹시 아이가 그때 완전히 죽지 않았고 어떤 이유로 살아남아 강지한에게 입양되었다면?심미연의 머릿속을 수없이 많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7화

    “혹시... 두 사람이 모녀처럼 보이나요?”강지한이 갑자기 물었다.보통 당사자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잘 보는 법이라 눈앞의 의사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볼 터였다.의사는 강지한이 무슨 뜻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파악이 안 돼 순간 멍해졌다.‘설마 이 여자가 사모님이 아닌가? 그럴 리가...’“강 대표님, 아마... 제 눈이 침침해서 그랬나 봅니다. 다시 보니 두 사람이 전혀 안 닮은 것 같네요.”의사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조금 전까지 강지한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희망이 그 한마디에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그럼 그렇지... 안 닮았구나.’괜히 들떴던 자신이 우습기만 했다.“병실로 옮겨 주세요.”그 말을 남기고 강지한은 뒤돌아 걸어갔다.의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혹시 내가 실수했나? 아닌가? 왜 저 사람은 이렇게 냉담하지...’병실로 들어선 강지한은 소파에 털썩 앉았고 곧이어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와 심미연과 강상미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옮기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심미연은 원래 몸이 좋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피를 뽑고 난 뒤 강상미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런데 바로 이때 휴대폰이 울렸고 강지한은 눈썹을 찌푸리며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심미연의 가방은 침대 머리맡 협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 가방을 열었다.그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화면을 확인하자 ‘유진 오빠’라는 이름이 화면에 깜빡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즉시 차가워졌다.강지한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미연아, 너희 쪽 상황은 어때? 다 괜찮지?”박유진의 목소리엔 기쁨이 묻어 있었다.강지한은 병상 위에서 조용히 잠든 심미연을 바라보며 박유진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미연이가 너무 피곤해서 방금 막 잠들었어요. 할 말 있으시면 미연이가 깬 뒤에 다시 하시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잠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6화

    박유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켜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할아버지, 방금 병원에서 나왔어요. 시훈이 상태는 안정적이고 의사 말로는 회복도 아주 좋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그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혹여 할아버지가 그의 불안함을 눈치채지 않도록.전화를 끊은 후 그는 다시 한번 책상 위에 놓인 목걸이를 바라보았는데 가슴 속에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앞날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숨겨진 사랑을 위해서든 지켜야 할 이들을 위해서든 말이다.“유진아, 너 시훈이한테 내 뜻은 전했니?”박정재의 목소리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시훈이가 뭐라고 하더냐? 돌아오겠다고 했어?”뭐가 됐든 박시훈은 박씨 집안의 피를 잇는 자손이고 아직 살아 있는 한 그를 인정하고 가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박유진은 무표정하게 목걸이를 금고에 넣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말은 전했어요. 설득도 했고요. 하지만 결정은 시훈이가 하는 거고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시간을 좀 가지자고 했어요. 조금 지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요.”박유진은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이 한원 그룹의 후계자가 될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척 열심히 공부했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았다.하지만 그의 진짜 꿈은 기업 경영자가 아니라 의사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었고 등에 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 컸기에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그래서 그는 박시훈이 박씨 가문을 받아들이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모든 걸 넘기고 심미연과 함께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유진아, 너도 이제 서른이 넘었잖니. 슬슬 혼사도 생각해야지. 며칠 안에 네 엄마가 맞선을 하나 주선할 거다.”“할아버지, 전 맞선 안 봐요. 결혼할 사람 있습니다.”박유진은 말하면서 미연의 예쁜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알고 있었다. 심미연에 대한 그의 사랑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5화

    박유진은 병원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그를 환히 비추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속은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웠다.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밝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런 색도 담기지 않았다.그는 숨을 들이켰다가 가슴 속 답답함을 털어내듯 다시 내쉬며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박시훈... 왜 하필 너야.”그 시계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가슴에 내려앉았다. 정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오늘은 분명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고 하늘은 푸르렀으며 햇살은 따뜻했다. 하지만 박유진의 세상은 마치 무너져 내린 듯 캄캄했다. 어둠이 그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그는 외투를 꼭 여몄고 텅 빈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묘한 감정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교차했다.병원으로 오기 전 그는 왜 그렇게 무심하게도 박시훈이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다쳤는지부터 알아보지 않았을까?갑작스레 들려온 이 소식은 날이 선 칼처럼 예고도 없이 맹렬하게 그의 심장을 찔렀다. 너무나도 아팠다.그는 당장이라도 병실로 돌아가 박시훈을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왜 심미연에게 다가갔냐고, 도대체 무슨 이유냐고.하지만 그의 발은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사슬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왜냐하면 그는 묻을 자격이 없었다. 심미연과는 약속만 한 사이지, 서류 한 장 없는 관계였다. 약속이라는 것은 시간 앞에서 가장 무력한 것이었다. 어쩌면 당장 내일 그 약속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그런 생각이 들자 수많은 개미가 가슴속을 물어뜯는 듯한 괴로움이 엄습했고 돌덩이가 가슴 위에 얹힌 것처럼 숨이 막혔다.어지러운 감정을 억누른 채 박유진은 서둘러 병원을 나와 차에 올랐다.회사 건물 앞에 도착하자 박유진은 바로 차에서 내려 분주한 인파 속을 가르며 큰 걸음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리고 사무실 문을 닫자마자 그는 책상 위 전화기를 들고 재빠르게 버튼을 눌렀다.“박시훈이 다친 일에 대해 전부 조사해. 단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4화

    강지한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잘생긴 얼굴은 평소와 달리 유난히 지쳐 보였다.“상미의 혈액형이 RH 마이너스래.”그의 낮고 힘없는 목소리엔 어쩔 수 없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그런 혈액형은 워낙 드물어서 혈액 보유량이 부족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심미연의 가슴이 갑자기 턱 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쥔 듯 숨이 막혔다.“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상미가 RH 마이너스 혈액형이라고?”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목소리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상미가 자신과 같은 혈액형이라니, 이 세상에 이런 우연이 정말 있을 수 있는 걸까?“왜 그래?”강지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그녀가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뭘까? 설마...심미연의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상미의 웃는 얼굴, ‘언니’라고 부르던 그 맑은 목소리, 그리고 해맑게 뛰놀던 모습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한꺼번에 그림자에 덮여버린 듯 어두워졌다.“나도 RH 마이너스야.”심미연은 말을 하면서도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녀와 강상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혈액형이 같았다.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감춰진 진실이 있는 걸까?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득 그녀는 강상미와 심태하의 얼굴을 동시에 떠올렸다. 두 아이는 생일도 비슷했다. 외모가 닮은 건 우연일 수 있어도 생일까지 겹치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강지한은 멍하니 서 있었다.“너랑 상미의 혈액형이 같다고?”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그는 지금 처음으로 심미연의 혈액형을 알게 된 것이다.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심미연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심미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왜, 믿기지 않아?”그들은 한때 부부였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혈액형조차 몰랐다.강지한의 마음은 온지유라는 첫사랑이 늘 차지하고 있었고 그는 늘 그녀만 바라보았지, 심미연에게 관심을 준 적이 없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3화

    “박유진, 네가 여긴 왜 왔어? 누가 오라 했는데?”박시훈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평소의 건들건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겨울 찬바람처럼 차가웠다.“할아버지께서 네가 다쳤단 소식을 들으시고 나더러 대신 보러 가라고 하셨어.”박유진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박시훈, 너도 박씨 집안의 핏줄이야. 이젠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어?”언제나처럼 점잖고 느긋한 말투였다.“뭐야, 한원 그룹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이제 와서 나한테 돈 좀 달라는 거야? 감정 팔면서 접근하겠다는 거지?”박시훈은 조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딱 잘라 말할게. 설령 한원 그룹이 망한다 해도 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할 거야. 나는 재밌게 구경이나 할 거라고.”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를 수없이 때렸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늘 말했다.‘왜 넌 죽지도 않고 살아 있니?’그 말은 어린 박시훈의 가슴속에 깊게 파였고 그때부터 그는 박씨 가문 전체를 증오하게 되었다.그리고 스스로 맹세했었다. 평생 다시는 그 집안에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예전에 잠시 심미연과 결혼하려는 마음에 집안에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그 생각도 곱씹어본 끝에 접어버렸다.그런데 이제 와서 박유진이 이런 얘기를 꺼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하지만 박유진은 여전히 한결같은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표정과 따뜻한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한원 그룹이 망해도 너한테 손 벌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시잖아. 넌 할아버지에게 남은 유일한 손주고 평생 할아버지 마음속에 있는 존재야. 그러니 이번 한 번만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거야. 지금 당장 대답하라는 것도 아니고.”박시훈은 코웃음을 쳤다.“그럴듯하게 포장하려 들지 마. 내가 안 간다고 했으면 진짜 안 가.”그는 박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오히려 바깥세상에서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나는 그냥 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12화

    박시훈의 상처가 너무 깊어 봉합이 필요해서 심미연은 곧장 그를 수술실로 데려갔다.수납 창구로 가 요금을 지불하려던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한 사람이 휙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 도망쳤다.요금을 받던 직원조차 그런 장면은 처음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대낮에 병원에서 휴대폰을 털다니!’그런데 정작 휴대폰을 빼앗긴 심미연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침착하게 가방을 열어 그 안에서 또 다른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번호를 눌렀다.“내 휴대폰 위치 추적해. 그리고 혹시 상황이 심상치 않으면 바로 폭파해 버려!”그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폭파’라는 단어는 등골이 오싹해질 말이었다.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친구랑 날씨 이야기나 하는 듯 가볍게 내뱉었고 일말의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심미연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이 여자... 보통이 아니네.’‘멀리 있어야 괜히 엮이지 않겠지...’한편 병원 밖에서 한 남자가 외투를 벗어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후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도련님, 심미연 씨의 휴대폰을 확보했습니다.”“지정한 장소에 놔둬. 내가 사람 보낼게.”“예,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남자는 재빨리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주소를 불러주었다.그 시각 요금을 다 내고 수술실 쪽으로 돌아가던 심미연의 휴대폰이 울렸다.“방금 위치 전송해 드렸습니다. 그런데요... 무슨 묘지 근처 같습니다.”심미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바로 사람 몇 명 보내. 나도 직접 갈 거야.”전화를 끊고 나니 그녀는 어느새 수술실 문 앞에 도착해 있었고 막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수술실 안의 불이 꺼졌다.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박시훈이 스스로 걸어 나왔다.심미연을 발견한 그는 두 눈이 환히 빛나며 달려왔다.“아직 안 갔네요!”그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동안 심미연이 자신을 두고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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