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모르게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내뱉은 임현은 당장이라도 제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온지유는 그 호칭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대답했다.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들은 심미연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찢어버리고는 임현을 향해 말했다.“임현 씨는 나가서 의뢰인 상황 좀 알아봐요, 나는 온 팀장님과 얘기 좀 해야겠어.”심미연 손에 들린 찢겨진 자료를 보던 임현은 화가 나 보이는 심미연에 뭐라 묻지도 못하고 방을 나섰다.온지유가 심미연의 팀장 자리를 뺏어서 화가 난 줄로만 알지 화를 내는 이유가 강지한과 온지유 사이 때문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하는 임현이었다.“심미연, 뭐 하자는 거야? 전화는 왜 안 받아?”임현이 나가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온지유에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일 처리에 어려운 게 있으면 회사 단톡방에 물어보세요, 직원들이 착해서 다들 대답은 해줄 거에요. 저는 팀장님 부하직원일 뿐인데 너무 가깝게 지내면 다들 오해하잖아요. 그럼 저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제가 지한 씨 아내고 팀장님이 불륜녀라는 사실을 직원들이 다 알게 돼도 괜찮으세요?”심미연은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며 불륜녀라는 단어에는 더 힘을 주었다.온지유가 이곳에 온 건 그저 자신의 기를 꺾어놓기 위함임을 알기에 심미연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해야만 했다.강지한이 없으니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던 온지유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너랑 지한 씨 사이가 밝혀지면 지한 씨가 널 가만둘 것 같아?”그에 심미연은 눈꼬리를 접어 올리며 대꾸했다.“우리 사이가 밝혀지면 곤란한 건 너겠지, 그러게 누가 내연녀로 살래?”“아직 제대로 핀트가 나가진 않았으니까 그 전에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꺼져.”“네가 감히 그럴 수나 있겠어?”자신을 죽어라고 노려보는 온지유를 보며 심미연은 머리칼을 쓸어넘겼다.“나는 못 해도 할 사람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한번 해볼까 진짜?”“심미연, 이 미친년이!”할아버지를 언급하는 심미연에 그가 심
“내가 방금 들었는데, 심미연이 전에 대표였던 사람하고 묘하게 엮여 있었대. 둘이 자주 같이 다녔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반나절씩 있다가 나오고 그랬다던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리우에서 실적이 좋은 것도 다 그런 더러운 방법으로 얻어낸 거래. 경성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남자랑 잤다는 말들 엄청 많아!”온지유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입에 담기도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온지유, 너 이제 변호사야. 헛소리로 사람 욕할 거면 확실한 증거부터 들고 와. 로펌에 떠도는 소문을 나한테 와서 떠들 시간이 있으면 네 일부터 똑바로 해. 나 바쁜 거 너도 알잖아.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얘긴 확실해지고 나서 말해.”강지한은 짜증 난다는 듯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결혼한 지 3년 동안 심미연은 늘 바빴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고 퇴근 후에도 저녁을 직접 만들어왔으며 강지한의 옷은 항상 손으로 빨아놨었다.그래서 강지한은 그녀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몸을 이용해 거래까지 할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남자의 직감은 때로는 놀랍도록 정확해서 머리로는 심미연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엮였었다는 말을 듣는 건 언제나 기분 나쁜 일이었다.강지한이 심미연을 질색하게 만들어 그녀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일부러 과장해서 떠들던 온지유는 예상치 못한 강지한의 반응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냥 거절도 아니고 자신을 타박하기까지 하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전에는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어줬던 강지한이 지금은 조금 변한 것 같았다.“리우는 이제 네 소관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 퍼뜨리는 사람은 바로 잘라.”싸늘한 강지한의 목소리에 온지유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나 팀장 단지도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사람부터 자르면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우선 경고부터 주고 또 그러면 그때 자를게. 그래도 돼?”강지한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불안해진 온지유는 좀처럼 알 수
임현은 잠시 벙쪄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오늘 새로 부임한 대표가 직접 온지유를 데리고 왔다는 건 대놓고 ‘공식 발표’를 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온지유가 대표 부인일 거라고 다들 추측하고 있었지만 심미연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임현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그때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에 심미연은 대화를 멈추고 핸드폰을 들어보았다.“안녕하세요, 리우 로펌 심미연입니다.” 처음 보는 번호라 잠시 고민하던 심미연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야.”그 익숙한 목소리에 심미연은 금세 그녀가 강지한의 어머니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입술을 말아 문 채 낯선 사람 대하듯 대꾸했다. “무슨 일이시죠, 여사님?”결혼 이후, 어미님이라는 호칭 대신 여사님이라고 부르도록 요구한 문소영에 심미연은 외부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기식으로 부를 때 말고는 늘 깎듯이 여사님이라고 불렀었다.“운정카페로 와. 할 말 있어.”문소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말했다.“지금 근무 시간이라 퇴근하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심미연은 상대방이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공손한 말투로 예의 바르게 물었다. 한 번도 자신을 좋아한 적이 없는 문소영의 부름인지라 이번 만남도 좋은 일이 아닐 게 뻔해서 심미연은 마음의 준비라고 하고 싶었지만 문소영은 제 할 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지금 리우 앞 카페로 갈 거야. 30분 뒤에 봐.”자신의 의견을 묵살해버리는 문소영에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가 찾아올 만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혹시 할아버님이 준 지분 때문인가.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던 심미연은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서둘러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한 뒤 가방을 챙겨 일어서며 임현에게 말했다.“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급한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네, 변호사님. 조심히 다녀오세요.”심미연이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들어온 온지유에 임현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심미연, 너 뭐 하는 거야? 어머니를 네가 왜 몰래 만나!” 마음이 급해진 온지유는 임현을 한 번 노려보고는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새로 온 기 센 팀장 때문에 이미 혼이 반쯤 나가 있던 임현은 그녀가 나가자마자 긴 한숨을 내뱉었다.한편 사무실을 나와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온지유는 다급하게 협박조로 말했다.“심미연, 당장 로펌으로 돌아와. 내 말 안 듣고 계속 어머니 만나면 너 지금 바로 해고할 거야!”대답하기도 귀찮았던 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길 건너에 있는 리우로펌을 한 번 바라보았다. 예쁜 눈으로 그곳을 한참동안이나 주시하던 심미연은 익숙한 인영이 급히 정문을 나오는 게 보이자 그제야 몸을 돌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문소영은 한참 만에 온 그녀를 보며 얼굴을 찡그린 채 짜증부터 냈다.“그냥 길만 건너면 되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너 때문에 30분이나 기다렸잖아. 할아버님이 너 감싸주신다고 내가 너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문소영 맞은편의 의자를 꺼내며 앉던 심미연은 웃으면서 말했다.“들어오려고 했는데 우연히 의뢰인을 만나서 잠깐 얘기했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여사님.”공손하면서도 친절한 태도였지만 문소영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차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가 직접 일해서 번 돈? 고작 그거 가지고 가방 하나는 사겠니?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렇게 유세야, 안 부끄러워?”심미연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와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어머니와 싸우는 건 옳지 않았기에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강지한 씨랑 저 사이엔 아무 감정도 없는 거 여사님도 아시잖아요. 그 사람한테 못 기대니까 제가 직접 벌어야죠.”강지한 매달 주는 2천만 원은 전부 집에 들어가는 돈이었기에 심미연 본인의 차 할부, 생활비, 기름값 등 나머지 지출은 심미연이 직접 벌어야만 했다. 강지한에게 손을 벌리는 건 심미연도 원치 않았고 손을 벌린다 해도 줄 강지한이 아니었다.심미연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문소
자신과 강지한의 결혼으로 인해 친조카 일은 포기한 줄로 알았는데 오늘 문소영의 태도를 보니 아직도 계획 중인 것 같았다.3년 동안 잠잠하다가 이번에 찾아온 것도 할아버님이 주식을 주시니 계획을 서둘러야겠다 싶어서 온 것 같았다.문소영이 이토록 이혼을 재촉하는 건 이혼을 해야 다른 여자를 강지한의 침대에 올려보낼 수 있어서 일 것이다.심미연이 강지한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니까.“누가 불륜이고 누가 사실혼이야.”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심미연은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강지한인데 그가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하지만 심미연은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머리를 넘기며 고개를 돌려 예쁜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여기 공공장소인데 그런 얘기는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너 어떻게 지한 씨를 두고 그런 얘기를 해? 지한 씨가 너한테 얼마나 진심인데, 미안하지도 않니?”그때 또 슬픈 척 연기를 하며 끼어드는 온지유에 심미연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네가 무슨 염치로 감히 그런 말을 해?”“기사에 얼굴 비추고 싶은 거면 말만 해. 너희가 방을 몇 번이나 잡았고 선물은 또 몇 번이나 오갔는지 내가 하나하나 다 읊어줄 테니까.”“미연아,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왜 자꾸 모함하는 거야, 나 이제 더는 내 명예 실추시키고 싶지 않아.”그에 온지유가 눈시울 붉힌 채 몸을 떨어대자 심미연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누가 널 모함해,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유언비어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저렇게 마음껏 떠들어대는 온지유가 심미연은 추해 보이기만 했다.하지만 온지유는 자신의 연기를 계속 이어나갔다.“네가 며칠 전에 기사 올려서 나 상도 취소될 뻔했어. 다행히 상은 지켰지만 이제 무용단에도 못 돌아가게 생겼어. 우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흥분했는지 말을 하면서 딸꾹질까지 해대는 모습이 남이 보기에는 아주 가여워 보였
가시지 않는 고통에 심미연은 희미해진 시야에 강지한을 담으며 말했다.“쟤가 연기하는 건 눈에 안 보여?”강지한처럼 똑똑한 사람이 온지유의 얕은수를 못 보아낼 리 없었지만 강지한은 늘 그녀에게 속아줬었다.그러면서 상처를 입은 자신한테만 이토록 가혹했다.아무리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사람이면 걱정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지유는 쓰러지려고 했고 너는 멀쩡히 서 있잖아, 지금 나 안 따라 나오면 내일부터 출근 못 하게 될 거야.”내연녀가 아내에게 누명을 씌우는 걸 보고만 있으면서 내연녀를 감싸기 위해 일로 협박까지 해오는 강지한과 자신이 처한 우스운 상황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던 심미연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공사는 명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내 착각이었나 보네.”“지유 쓰러지잖아, 얼른 병원부터 보내. 미연이는 내가 잘 돌려보낼게.”그때 방관만 하던 문소영이 갑자기 입을 열자 강지한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엄마가 어른인데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와요.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요, 내가 심미연 데리고 가면 돼요.”강지한은 이내 심미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계속 버티고 있으면 지유 잘못되라고 일부러 시간 끄는 걸로 생각할 거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잖아. 너 감당 할 수 있겠어?”차갑기만 한 게 아니라 시리기까지 한 말에 심미연은 한기가 피부를 뚫고 뼈를 타고 온몸에 전해지는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가슴에서 느껴지던 통증도 이젠 무뎌지고 그저 치가 떨리게 시린 느낌만이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온지유가 기절한 척 연기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잔인한 강지한의 말에 진작에 웃음을 터뜨리고도 남았을 것이다.한편 문소영은 심미연과 대화하는 강지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의 속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워낙 속마음을 감추는데 능숙한 강지한이라 그녀는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하지만 이상하게 어딘가 찝찝했다.“심미연.”그때 강지한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심미연을 부르자 심미연
어쩐지 3년 동안 그 흔한 파티하나 참석하라는 말이 없다 했는데 그게 다 자신이 예의를 몰라서 강씨 집안 얼굴에 먹칠이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였다는 걸 심미연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물론 집안에서는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았던 건 맞지만 그래도 외할머니랑 살면서 할머니가 사람까지 붙여줘서 웬만한 건 다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웃는 모습부터 인사, 식사예절까지 빠지지 않고 다 배워서 어느 재벌 집 딸들과 비겨도 뒤지지 않을 자신은 충분했다.강지한과 결혼한 뒤에도 늘 행동거지에 심혈을 기울이며 나름대로 재벌 집 사모님 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건 다 저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강지한에게 저는 그저 잠자리 상대에 불과한 것 같았다.침대 위에서는 그 어떤 예의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한편 심미연에게 예절을 가르치라는 강지한의 말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 문소영이 웃으며 대꾸했다.“그래, 내가 시간 내서 잘 가르쳐놓을게.”“그럼 좀 서둘러주세요, 얼마 뒤에 한원 그룹 어르신 생신이신데 그날 심미연도 데려갈 거에요. 엄마가 잘 가르쳤는지 그날 확인할게요.”심미연을 한원 그룹 회장의 생일파티에 데리고 가는 걸 지금 결정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강지한이었지만 그의 품에 안긴 온지유는 무언가 이상했다.하지만 굳이 또 어디가 이상하다고 짚어낼 수는 없어서 그저 눈을 감고만 있었다.문소영은 온지유를 안고 있는 강지한을 보며 문득 심미연이 불쌍하게 느껴졌다.남편 사랑을 못 받으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여자인데 그런 상황에 닥친 게 심미연이라 같은 여자로서 생긴 측은지심인 것 같았다.할 말을 마친 강지한은 온지유를 안고 카페를 나섰다.카페 앞에는 심미연이 서 있었는데 가만히 서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얌전해 보여 그녀의 외모만 봐서는 그녀가 법정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싸우는 변호사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강지한은 그런 심미연을 보며 그녀에게로 다가가 말했다.“가서 차 가져와.”그 목소리에 생각을 멈
“그래, 온지유는 남이 아니라 당신 여자지, 내가 남이야!”강지한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을 마친 심미연은 바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여기서 더 말하면 그에게 손을 댈 것만 같아 간신히 참은 건데 양심이라고는 없는 강지한은 또 한숨을 쉬며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심미연, 너 진짜 속 좁은 거 알아?”온지유는 강씨 집안 족보에 이름을 올린 한 집안사람인데 그녀에게만 매정한 심미연이 강지한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의 말에 발걸음을 멈춘 심미연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그렇게 내가 형님보다 못난 사람인 것 같으면 빨리 서류에 사인이나 해, 이혼하고 각자 갈 길 가자.”강지한은 이혼서류에는 사인도 안 하면서 또 이래저래 꼬투리만 잡고 있었기에 심미연은 그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런다고만 생각했다.“이혼 얘기 한 번만 더해.”하지만 강지한은 강지한대로 이혼을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올리며 결혼을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는 심미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낮은 목소리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강지한이 막무가내로 나오자 심미연도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이혼 얘기 듣기 싫으면 너부터 온지유랑 거리 유지해, 둘이 같이 기사에 오르는 거 나 더는 못 봐줘. 약속하면 나도 이혼 얘기는 안 꺼낼게.”일말의 보장도 없는 결혼생활은 심미연에게도 고통에 불과했기에 결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심미연...”강지한이 그 말에 대답하려고 할 때 그 품에 안겨있던 온지유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지한 씨, 여기 어디야? 나 쓰러졌었어?”지금 눈을 뜨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의 말에 응할 것만 같아 온지유는 연기도 집어치워 버렸다.정말 강지한이 심미연 말대로 자신과 거리를 두면 둘 사이는 여기서 끝이 날 것만 같아서 일단은 그걸 막는 게 먼저였다.강지한도 그제야 온지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너 아까 쓰러졌었어. 괜찮아? 병원 갈까?”“저혈당으로 쓰러진 걸 거야. 괜찮으니까 병원은 안 가도 돼.”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고개를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미연은 분명 병실에 와서 강상미를 만났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시간도 늦었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먼저 간다.” 이진영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술을 따라 마시며 심미연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심미연은 언제 의술을 배운 거지?’ ‘이 3년 동안 이 여자는 도대체 뭘 했던 걸까?’이진영이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도련님,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진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순간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 “병원으로 가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엔진을 돌렸다.신하린의 병실 앞에 도착한 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신 대표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심미연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론은 한 마디였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기에 규칙을 어길 수 없었다.이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여기는 내 병원인데 병실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돌아가 주세요.” 경호원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그때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말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들어가게 해줘요.” 경호원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 또 한 번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놀라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이진영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하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보였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다가가 신하린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경호원에게는 급히 소치쳤다. “의사
“너희 아버지가 최근에 한석훈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 한석훈과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더라.” 강지한은 박시훈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이진영에게 전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는 한석훈의 배후 세력을 조사해왔고 조사할수록 그 배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너와 한유나 씨 사이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진영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혼약을 해제할 생각이야.” 그는 이미 한유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한유나는 최근 들어 그를 피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구아정은 어떻게 할 거야?” 강지한이 다시 물었다. “네 첫사랑이라고 했지?”“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고 그 뒤로 그냥 끝났어.” 이진영은 무의식적으로 신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이제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느꼈다. 그녀의 다리가 이렇게 된 지금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를 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구아정,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본 적 있어?” 강지한이 상기시키듯 말했다.“조사 중이야.” 이진영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어.”구아정은 분명 그를 찾으러 온 거였다.‘왜일까?’“신하린 씨의 일은 잘 해결됐나?” 강지한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었다.“하린이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어.” 이진영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흡입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강지한은 잠시
문소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두 명의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거야. 그럼 당신도 명예를 잃고 끝장날 거라고.” 그녀는 지금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두 아들을 뒀다고? 증거 없이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다. “당시 내 임신 검진서도 여전히 남아 있고 병원에 가면 내 출산 기록도 확인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의 혈액형은 당신이랑 똑같아.” 문소영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보관해 왔다.“문소영, 나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는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래.” 문소영은 감정을 정리한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유리해.” “내가 원칙을 깨고 너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자는 술잔을 비운 후 탁자 위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소영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게 경고만 준 것뿐이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대로였다.잠시 후 문소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님, 지시하신 대로 사람을 공해에 던졌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해외로 잠시 숨어 있어. 여기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문소영의 얼굴엔 차가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 심서연의 죽음은 이미 잠잠해지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문소영은 전화를 끊고 술을 따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진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잠간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듯해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발걸음
문소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TV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미칠 듯했다. 문소영은 자신이 더 이상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문소영은 깊은 생각을 떨쳐내고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 아들에 관한 일이야.”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아들이 있다고? 그럴 리가...” “쌍둥이였어.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납치됐고 큰 아이는 강지성.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 문소영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이건 그녀가 삼십 년 넘게 숨겨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이 생에서 절대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문소영의 말은 마치 폭탄처럼 남자의 가슴 속에 떨어졌고 남자는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문소영과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사실 처음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당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에서 강제로 나를 강우석과 결혼시키려 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감금하고 내 핸드폰도 압수했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 문소영은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강씨 가문에 보내졌었다. 강우석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석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강우석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상대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였다. 7개월 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 아이를 훔쳐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 사람이 누구
“문소영 씨...” 심서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문소영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디 가는 거예요?”심서연은 문소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끼며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를 저승에 보내줄 거야. 안 돼?” 문소영은 비웃듯이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심서연,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길을 다 만들어줬는데 결과는 이게 뭐야!”그 당시 심미연의 딸을 훔친 건 심서연을 강지한의 곁에 두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심서연을 이용해 강지한에게서 유용한 정보를 끌어내려고 했으나 3년이 넘도록 이 멍청한 여자는 강지한의 침대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쓸모없는 것.’“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심서연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그 3년 동안 그녀는 심미연을 따라 하며 살아왔다.그리고 강상미도 열심히 키웠다.하지만 강지한은 냉정하게도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문소영은 더 이상 말을 아끼지 않고 그녀를 거칠게 끌고 내려갔다. 곧 사람들이 다가왔다. “대표님.” 심서연은 그 남자를 보며 점점 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이 여자 데려가서 교훈을 좀 줘.” 문소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소영 씨, 당신은 나한테 이러면 안 돼요.” 심서연은 비명을 지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엔 문소영의 약점을 쥐고 있으면 그녀가 자신에게 손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깨달았다. 문소영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시끄러워. 입 다물어.” 문소영은 냉정하게 그녀를 호통쳤다. 심서연은 원래 입을 다물 생각이 없었지만 순간 누군가 그녀의 입에 더러운 양말을 밀어넣었다. 심서연은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후 그녀는 사람들에게 힘껏 끌려가 차에 강제로 밀어넣어졌다.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창 밖으로 보이는 문소영을 응시했다. 문소영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시무시한 살기가 가슴 속 깊이까지 전해져 왔다.
모두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한 발 물러서며 심서연과 거리를 뒀다.심서연은 눈알을 굴려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속으로 비웃었다. 바로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경호원 한 명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못 들어갑니다.”이런 인품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이 곁에 둘 수 없었다.“사람 살려. 성추행이에요.” 심서연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지만 경호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었다. 이어서 거침없이 그녀의 몸을 어깨에 둘러메고는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가 12층이 아니었다면 창문 밖으로 내던져버렸을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심서연을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내가 여자한테 손대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었으면 당신 손발부터 분질렀어요. 그러니까 지금 좋게 말할 때 당장 돌아가세요.” 남자의 기세에 압도당한 심서연은 겁에 질려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병원 안으로 사라졌다.그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심서연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남자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속으로 강지한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저 냉혈한 자식.’ ‘진짜로 딸을 보지도 못하게 막다니.’ ‘아무리 그래도 당시 내가 직접 아이를 안겨준 사람이었는데.’땅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심서연은 이내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어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나 병실에 못 들어갔어. 애를 데리고 나올 방법이 없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냉정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멍청한 것.] 심서연은 속이 상해 울먹거렸다. [내가 어떻게 알아? 강지한이 이렇게 매몰찰 줄...] [너 박유진 약혼녀 아니었어? 박유진 찾아가.] [뭐? 왜 박유진이야?] 그녀는 이미 박유진에게 마음이 떠났고 이제 와서 다시 함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찾으라고 하면 그냥 찾으러 가.]
‘우리 딸이 아직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때 병실에서. 강지한이 딸을 재우자마자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번호가 성무진의 것임을 확인한 후 그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아가씨와의 친자 확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혈연 관계가 없습니다.] 성무진은 왜 강지한이 갑자기 친자 확인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도 주운 아이였기 때문에 이 결과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친자 확인 할 때 쭉 지켜봤어?] 강지한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상미와 심태하의 얼굴이 똑같은데 어떻게 혈연 관계가 없을 수 있지?’ [인하 병원에서 했습니다.] ‘이노하이브 산하 병원이라 그런 실수는 없을 거 같은데.’성무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알겠다.] 강지한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한 번 친자 확인을 하려는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다.[대표님.] 성무진은 강지한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져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말해.] [바렐 그룹과의 합작 계약이 전부 취소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이렇게 많은 합작이 한 번에 취소되었으니 각 부서 모두 불안하지 않을 리 없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처리할게.] 원래 성무진은 회사 직원들의 불안한 정서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강지한이 이렇게 말하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다음 기회에 말해야겠다.’성무진과의 전화를 끊고 강지한은 이진영의 번호를 눌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급한 일 있어?] 이진영의 목소리에서 피로가 묻어났다. [한 잔 하러 가자.] [좋아. 어디서 마셔?] 두 사람은 장소를 정하고 강지한은 전화를 끊었다.병실로 돌아온 그는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봐도 자기와 똑같이 닮은 얼굴이었다. ‘어떻게 상미가 내 딸이 아닐 수 있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태하야, 아빠 말 좀 들어봐.” 박유진은 심태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 목소리가 자연스레 떨렸다. “동생은 다른 세계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 알겠지?” 말을 하며 그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흘러나왔다.심미연은 그의 품에서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괜찮아. 이제 울지 마. 오늘 밤은 엄마랑 같이 자자.” 심태하는 두 살부터 혼자 자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겨우 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방금 그런 꿈을 꾸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네.” 심태하는 눈물을 닦으며 엄마 품에 얼굴을 비볐다. 엄마가 있으니까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심미연은 박유진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그럼 먼저 방에 가 있어. 난 태하 데리고 잘게.” 박유진은 그녀를 안고 한 번 더 꽉 안아주었다. “알았어. 잘 자.” 그렇게 말하며 심미연과 심태하의 얼굴에 각각 입맞춤을 했다. 비록 마음은 살짝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간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박유진이 방을 나간 후 심미연은 심태하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실의 불을 모두 끄자 순간적으로 어두운 세상이 펼쳐졌다. “엄마, 무서워요.” 심태하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엄마 있잖아. 걱정하지 말고 자자.” 심태하는 눈을 감았지만 그 순간 바로 전에 꿈이 눈에 나타났다. 여동생은 온몸에 피를 흘리며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눈은 하늘의 별처럼 빛났고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로 여동생은 사라져 버렸다. 심태하의 감정이 갑자기 격해졌다.“안 돼. 가지 마.” 어둠 속에서 심태하의 낮은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그를 더 꽉 안았다. “걱정하지 마. 엄마 여기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긴 후 그녀는 겨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아직 눈앞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몸이 툭 밀려 들어와 문 뒤로 기대어졌다. 남자는 막 샤워를 끝낸 듯 몸에서 은은한 바디워시 향이 퍼져 나왔다. 그 향은 정말로 기분 좋게 느껴졌다. 심미연의 심장은 저절로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미연아, 준비됐어?”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낮고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등을 곧게 펴며 말했다. “나... 심리 상담 예약했어. 내일 오후에 가보려고.” 그녀도 빨리 자신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박유진은 마치 머리에 차가운 물 한 통을 끼얹은 것처럼 느껴졌다. 몸 속의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심미연이 아직 괜찮지 않다면 그는 물론 그녀의 감정을 무시하고 강제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오빠, 미안해.” 심미연은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나 치료 잘 받을게. 믿어줘. 금방 나을 거야.” 박유진은 그녀를 꼭 안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기다릴게.” 그런데 두 사람의 입술이 막 맞닿을 순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엄마, 빨리 문 열어줘요. 저예요.” 심태하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박유진은 어쩔 수 없이 손을 풀며 살짝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문 열자. 애가 무슨 일인지 한번 보자.” 밖에 아이가 있으니 자신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오빠, 미안해.” 심미연은 그를 안아주고 나서 팔을 풀었다. 그녀는 정말 박유진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느꼈다. “아니야. 더 이상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또 미안하다고 하면 화낼 거야.” 박유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문 열어 봐.”심미연은 급히 문을 열었다. 작은 몸뚱이가 곧바로 달려들어왔다. “엄마, 너무 무서워요.”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있었고 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