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린에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심미연은 그녀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뭘 찍어?”“너를 찍고 있어. SNS에 올려야지.”신하린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 안의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정말 너무 아름답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심미연은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 SNS 올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신하린이 사진을 올리자마자 이진영이 마침 보였다.강지한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신하린이 올린 그 사진을 강지한에게 보냈다.잠시 기다리다가 강지한의 답장을 기다리지 못한 그는 아예 강지한의 전화번호로 직접 걸었다.“일 있어?”강지한의 목소리는 얼음 저장고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차가워 온몸을 오싹하게 했다.“내가 방금 보낸 사진 봤어?”이진영은 강지한의 냉담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입을 열어 웃음기를 띠며 물었다.강지한이 아닌 척해도 그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이진영, 한가하구나?”분명히 불쾌했던 그는 심지어 말투에 조금의 분노를 품고 있었다.“난 매우 바빠. 그만 끊어.”이진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는 강지한이 화가 난 모습을 보고 싶었다.그러나 강지한이 정말 화가 났을 때 그는 또 무서웠다.이때 강지한은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휴대폰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확대된 여자의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 속 얼굴에는 화창한 웃음이 가득했다. 커다란 두 눈은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코끝의 하얀 밀가루는 그녀를 다소 익살스럽게 보이게 했다.왠지 기분이 언짢았다.‘이 여자는 나를 떠나 조금도 슬프지 않은가 봐. 나는 여전히 늘 이 여자 생각뿐인데.’같은 시각, 미르 파크.온지유는 깨어나자마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숨겨진 번호인 것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황급히 거실을 떠났다.임혜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누구 전화길래 얼굴이 다 하얗게 질리는 거야.”“뭘 중얼거리고 있어요?”집사가 와서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말이 끝나자 휴대폰 너머로 한참 뒤에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군지 아세요?”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견결함이 묻어 있었다.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는데 두 눈에는 후회스러운 눈빛이 스쳤다.“아직은 누가 한 짓인지 모르지만 저는 많은 사람을 보았어요. 우리 쪽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되어...”여기까지 말한 집사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안색이 더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낮아졌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사모님께서 이미 둘째 도련님과...”휴대폰에서 잠자코 침묵이 흘렀다.전화가 끊긴 줄 의심할 때 휴대폰 너머로 여자의 깔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장 비상 계획을 가동해 별장 내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세요. 그리고 포위한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진행하세요.”심미연은 다급하지 않은, 분명하고 힘 있는 말투로 말했는데 위엄이 서려 있었다.이 말을 들은 집사는 그제야 미간을 조금씩 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집행하겠습니다.”지난 3년 동안 미르 파크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집사는 모두 심미연에게 보고하며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솔직히 집사는 처음에 심미연이 골탕먹는 꼴을 보고 싶었다.둘째 도련님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에 대해 그들도 좋은 태도를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심미연을 점점 더 잘 대해줬다.집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심미연은 효율적으로 해결했고 그들에게 난제를 남겨주지도 않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집사는 사사건건 심미연의 결정을 따르는 습관이 생겼다.전화를 끊기 전에 심미연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이번 일을 절대 알리지 마세요. 반드시 속전속결 해야지 밖에서 생긴 일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영향 줘서는 안 돼요.”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는 마음이 복잡해졌다.‘둘째 도련님이 사모님을 이렇게 심하게 대했는데도 사모님은 어
못된 짓만 하던 온지유도 강지한에게 붙어 잘살고 있다.사람은 너무 착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기 마련이니 독해질 필요도 있다.심미연은 물이 끓자 칼국수를 집어넣고 한쪽으로 수도꼭지를 틀어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채소를 다 씻고 수도꼭지를 닫으며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지한 씨 편을 드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나에게 잘해줬던 과거를 지울 수 없어. 특히 내가 지한 씨와 이혼하려는 걸 알고도 이노하이브의 주식을 나에게 넘겨줬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난 할아버지를 위해 배려해야 해.”다른 사람들은 심미연이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저 은혜를 갚을 뿐이다.신하린은 잠자코 말이 없었다.심미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건 짐승보다 못한 짓이다.“지한 씨가 나에게 미안한 짓을 했지만 이건 할아버지와 상관없어!”심미연은 능숙하게 토마토를 썰기 시작했다.“날 걱정한다는 걸 알아. 괜찮아. 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신하린은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이미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알았다. 변호사인 심미연은 머리가 잘 돌았다.이렇게 되니 신하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국수도 금방 삶아졌다. 야채, 토마토, 달걀로 만든 이 칼국수는 녹색, 빨강 노랑 등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식욕을 돋웠다.심미연은 그릇을 쟁반에 담고 젓가락을 든 후 테이블로 향했다.국수를 다 먹은 후 신하린이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러 갔고 심미연은 그녀와 다투지 않고 오히려 서재로 가서 노트북을 열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주방을 정리하고 서재로 간 신하린은 컴퓨터 앞에서 한창 작업하는 심미연을 보고 차마 방해하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다.어제 입은 옷을 심미연이 이미 드라이 해줘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작업실 전화인 걸 보고 그녀는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서둘러 받았다“대표님, 한 사모님이 찾아오셨는
“신 대표님,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소민은 그녀를 보더니 손으로 회의실을 가리켰다.신하린은 입술을 감빨며 말했다.“알았어. 일 보러 가봐.”“대표님, 소문이 있어요.”소민이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이노하이브에서 새 건물이 완공되어 정원 설계에 관해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래요. 우리도 도전해 볼 까요?”“이노하이브 회사의 입찰 요구는 아주 높아서 우리 같은 작은 작업실은 기회가 없어. 됐어. 헛생각하지 말고 일하러 가.”그들이 디자인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작은 작업실은 입찰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다.“그냥 아쉬워서 그래요.”소민이 낮은 소리로 감탄했다.만약 작업실이 이번 정원 디자인을 따낸다면 이 분야에서 널리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신하린은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갔다.회의실 내, 정교한 창살을 통해 부드럽고 화사한 빛이 여러 가지 그림자를 드리웠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화한 얼굴을 한 이씨 가문 사모님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그 눈빛은 칼을 머금은 것처럼 날카로웠다.깐깐히 훑어보는 그녀의 시선에 신하린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평온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이씨 가문 사모님은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는데 내뱉은 말은 정성껏 다듬은 것처럼 친근해 보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마치 보이지 않는 그물을 엮은 것 같았다.신하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몸을 곧게 펴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말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제가 신하린이에요.”“하린 씨, 앉아봐. 우리 잠깐 얘기할까?”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신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난 성이 하씨가 아닌데 왜 친근한 척 성씨를 빼고 하린이라고만 부르지?’“아휴, 우리 진영이는 속을 썩이잖아.”그녀는 무심코 이진영의 신분을 언급했다. 신하린은 그 존귀한 신분에 압박감을 받은 것처럼 저도 모르게 등을 곧게 폈다.곧이어 화제는 미묘하게 이진영의 결혼 문제로 향했는데 그녀의 말은 정성껏 파놓은 함정처럼 은밀하면서도 암시로 가득했다. 신하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미연, 나 임신했어. 지한 씨랑 빨리 이혼해. 우리 아이가 아빠도 없이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거야? 아이는 죄가 없잖아... 얼마나 불쌍하겠어!”심미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감정이 묻어나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어차피 녹음 중이니까 지금 다 말해. 나중에 이혼 소송할 때 도움 될 테니까.”“심미연, 너 진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나쁜 년, 녹음까지 하다니...”욕설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들려오는 삐 소리를 들으며, 심미연은 천천히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내려다보았다.[임신 4주 차]또렷한 글자가 눈에 박혔다. 원래는 오늘 밤 강지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이 아이는 나에게 찾아온 구원이야...’...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도우미 임혜자가 반갑게 다가왔다.“사모님, 아침에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요리 준비 다 해놨어요. 옷 갈아입고 내려오시면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심미연은 신발을 벗으며 무심히 답했다.“아주머니가 해주세요. 저는 목욕 좀 할게요.”임혜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아, 네. 알겠습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사모님이 평소에는 몸이 안 좋아도 도련님 밥은 꼭 직접 준비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심미연은 피곤한 몸을 욕조에 담그며 눈을 감았다. 차가운 물소리가 하루의 무게를 씻어내는 듯했지만, 깊은 피로는 그녀를 그대로 잠들게 했다.깨어난 것은 갑작스러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몸이 들어 올려지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강지한의 깊고 날카로운 눈동자와 마주쳤다.“아주머니한테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고 했다던데, 어디 안 좋은 거야?”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심미연은 온지유의 전화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형님... 임신하셨다면서? 아이를 낳으실 생각인가 봐?”강지한은
심미연은 방금 무례하게 끼어든 남자를 힐끗 보았다. 그는 바로 강지한의 소꿉친구이자, 경성에서 유서 깊은 육씨 가문의 자제인 육현성이었다.육현성은 언제나 심미연을 업신여겼다.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깔보는 태도는 노골적이었다.그러나 육현성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 뒤에서 온지유의 도구처럼 움직이는 존재였다. 온지유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공격하곤 했으니, 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다. 그 생각에 심미연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큰형수님이란 호칭은 저희 아주버님의 아내를 말하는 거 맞죠? 방금 하신 말씀, 누가 들었다면 지한 씨가 큰형수님과 부적절한 관계라도 되는 줄 오해했을 겁니다.”육현성이 심미연을 불쾌하게 하려고 던진 말이었으니, 그녀도 굳이 체면을 살려줄 이유는 없었다. 심미연은 강지한을 사랑했지만, 그의 친구들 앞에서까지 참으며 굽힐 생각은 없었다.그녀의 대답에 온지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원래 흐뭇하게 웃고 있던 그녀는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나랑 지한 씨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어. 내가 돌본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아. 오히려 너야말로 지한 씨 좀 잘 챙겼으면 좋겠네. 지난달 건강검진에서 위 안 좋다고 나왔더라.”온지유의 말은 억울함과 은근한 비난을 담고 있었다. 심미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주버님 돌아가신 건 형님 얼굴이 과부상을 띠어서 그런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심미연의 말이 끝나자, 온지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강지한의 위 건강을 위해 3년 동안 애쓴 자신을 무시한 채 꾸며내는 비난에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가 심리전을 걸어온다면, 자신도 한 방 먹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과부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온지유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을 들어 심미연의 뺨을 때리려 했다. 과거에 시어머니에게 들었던 똑같
“혹시 진짜 죽었나 싶어서 확인하는 거야.”강지한의 목소리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꽉 쥐며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난 목숨이 질겨서 죽지 못했나 봐!”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번호를 차단하는 일까지 한순간이었다....이노하이브 그룹 산하 병원의 VIP 병실.온지유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적으로 푸석한 안색과 마른 몸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연약해 보였다.강지한은 병실 한쪽에서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온지유는 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한 씨, 미연 씨는... 괜찮은 거야?”강지한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짧게 답했다.“괜찮아.”온지유는 속으로 심미연을 몇 번이나 저주하면서도, 겉으론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미연 씨랑 함께 있어줘. 여기 의사랑 간호사가 있어서 괜찮아.”강지한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자. 오늘 밤은 내가 여기 있을 테니 잠이나 자.”온지유는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는 난처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오늘 밤 안 돌아가시면, 내일 미연 씨가 분명 할아버지께 고자질할 거야.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으시잖아. 자주 화내시면 안 되는데...”강지한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고 얼른 자.”온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강지한을 올려다봤다.“정말 여기서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야?”“그래. 자라.”...다음 날 아침.심미연이 눈을 뜨자마자 신하린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하린은 잔뜩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아침부터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심미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신하린은 휴대폰을 내밀며 씩씩댔다.“온지유 그 뻔뻔한 게 자작극을 벌이고 실시간 검색에 올랐어! 이번엔 완전 자극적이야.”심미연은 하린이 내민 휴대폰 화면을 흘긋 보았다.[충격 폭로! 유명 무용가, 임신설?! 약혼남과 함께 병원 방문 포착]기사 내용을 확인하자 초음파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깊은 눈빛으로 신하린을 바라보았다.“심미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어젯밤 심미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떠올랐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심미연이 들어왔다.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문을 닫고 들어온 그녀를 본 온지유의 눈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스쳤다. 그러나 그 살기는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온지유는 침대에서 급히 몸을 일으키며 걱정스러운 척 다가와 말했다.“교통사고가 났다고 들었어. 어디 다친 데 없어? 괜찮은 거 맞아?”그녀의 태도는 마치 심미연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보였다.강지한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올랐다.‘심미연이 친구와 짜고 나를 속이려 한 건가?’심미연은 침착하게 신하린을 뒤로 밀었다.“하린아, 너 먼저 가.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신하린은 급히 말했다.“내가 한 거 아니야. 저 여자가 스스로...”심미연은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알겠어. 그러니까 먼저 가.”지금 강지한의 태도가 어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하린이 계속 머물러 있는 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신하린은 입술을 깨물며 눈가가 붉어진 채 병실을 나섰다.성무진도 강지한을 한 번 바라본 뒤 병실을 빠져나갔다.병실에는 강지한, 온지유, 그리고 심미연, 세 사람만 남았다.심미연은 침대 옆으로 걸어가 온지유를 내려다보았다.“때렸다면서? 많이 다쳤어? 진단은 받았어?”온지유의 얼굴에는 희미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진단이 필요할 만큼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온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심미연을 쳐다보았다.“보이는 데는 안 때렸어. 그래서 진단도 못 받아.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심미연이 무언가 대답하기 전에 강지한이 목소리를 높였다.“바보야? 맞았으면 그 자리에서 다 말해야지. 만약 큰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거야?”온지유의 눈가가 금세 붉어지더니 억울함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참았어
“신 대표님,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소민은 그녀를 보더니 손으로 회의실을 가리켰다.신하린은 입술을 감빨며 말했다.“알았어. 일 보러 가봐.”“대표님, 소문이 있어요.”소민이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이노하이브에서 새 건물이 완공되어 정원 설계에 관해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래요. 우리도 도전해 볼 까요?”“이노하이브 회사의 입찰 요구는 아주 높아서 우리 같은 작은 작업실은 기회가 없어. 됐어. 헛생각하지 말고 일하러 가.”그들이 디자인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작은 작업실은 입찰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다.“그냥 아쉬워서 그래요.”소민이 낮은 소리로 감탄했다.만약 작업실이 이번 정원 디자인을 따낸다면 이 분야에서 널리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신하린은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갔다.회의실 내, 정교한 창살을 통해 부드럽고 화사한 빛이 여러 가지 그림자를 드리웠다.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화한 얼굴을 한 이씨 가문 사모님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그 눈빛은 칼을 머금은 것처럼 날카로웠다.깐깐히 훑어보는 그녀의 시선에 신하린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평온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이씨 가문 사모님은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는데 내뱉은 말은 정성껏 다듬은 것처럼 친근해 보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마치 보이지 않는 그물을 엮은 것 같았다.신하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몸을 곧게 펴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말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제가 신하린이에요.”“하린 씨, 앉아봐. 우리 잠깐 얘기할까?”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신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난 성이 하씨가 아닌데 왜 친근한 척 성씨를 빼고 하린이라고만 부르지?’“아휴, 우리 진영이는 속을 썩이잖아.”그녀는 무심코 이진영의 신분을 언급했다. 신하린은 그 존귀한 신분에 압박감을 받은 것처럼 저도 모르게 등을 곧게 폈다.곧이어 화제는 미묘하게 이진영의 결혼 문제로 향했는데 그녀의 말은 정성껏 파놓은 함정처럼 은밀하면서도 암시로 가득했다. 신하
못된 짓만 하던 온지유도 강지한에게 붙어 잘살고 있다.사람은 너무 착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기 마련이니 독해질 필요도 있다.심미연은 물이 끓자 칼국수를 집어넣고 한쪽으로 수도꼭지를 틀어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채소를 다 씻고 수도꼭지를 닫으며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지한 씨 편을 드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이것 때문에 나에게 잘해줬던 과거를 지울 수 없어. 특히 내가 지한 씨와 이혼하려는 걸 알고도 이노하이브의 주식을 나에게 넘겨줬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난 할아버지를 위해 배려해야 해.”다른 사람들은 심미연이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저 은혜를 갚을 뿐이다.신하린은 잠자코 말이 없었다.심미연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건 짐승보다 못한 짓이다.“지한 씨가 나에게 미안한 짓을 했지만 이건 할아버지와 상관없어!”심미연은 능숙하게 토마토를 썰기 시작했다.“날 걱정한다는 걸 알아. 괜찮아. 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신하린은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이미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알았다. 변호사인 심미연은 머리가 잘 돌았다.이렇게 되니 신하린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국수도 금방 삶아졌다. 야채, 토마토, 달걀로 만든 이 칼국수는 녹색, 빨강 노랑 등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식욕을 돋웠다.심미연은 그릇을 쟁반에 담고 젓가락을 든 후 테이블로 향했다.국수를 다 먹은 후 신하린이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러 갔고 심미연은 그녀와 다투지 않고 오히려 서재로 가서 노트북을 열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주방을 정리하고 서재로 간 신하린은 컴퓨터 앞에서 한창 작업하는 심미연을 보고 차마 방해하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다.어제 입은 옷을 심미연이 이미 드라이 해줘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작업실 전화인 걸 보고 그녀는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서둘러 받았다“대표님, 한 사모님이 찾아오셨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휴대폰 너머로 한참 뒤에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군지 아세요?”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견결함이 묻어 있었다.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는데 두 눈에는 후회스러운 눈빛이 스쳤다.“아직은 누가 한 짓인지 모르지만 저는 많은 사람을 보았어요. 우리 쪽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되어...”여기까지 말한 집사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안색이 더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낮아졌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사모님께서 이미 둘째 도련님과...”휴대폰에서 잠자코 침묵이 흘렀다.전화가 끊긴 줄 의심할 때 휴대폰 너머로 여자의 깔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장 비상 계획을 가동해 별장 내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세요. 그리고 포위한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진행하세요.”심미연은 다급하지 않은, 분명하고 힘 있는 말투로 말했는데 위엄이 서려 있었다.이 말을 들은 집사는 그제야 미간을 조금씩 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집행하겠습니다.”지난 3년 동안 미르 파크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집사는 모두 심미연에게 보고하며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솔직히 집사는 처음에 심미연이 골탕먹는 꼴을 보고 싶었다.둘째 도련님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에 대해 그들도 좋은 태도를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심미연을 점점 더 잘 대해줬다.집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심미연은 효율적으로 해결했고 그들에게 난제를 남겨주지도 않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집사는 사사건건 심미연의 결정을 따르는 습관이 생겼다.전화를 끊기 전에 심미연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이번 일을 절대 알리지 마세요. 반드시 속전속결 해야지 밖에서 생긴 일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영향 줘서는 안 돼요.”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집사는 마음이 복잡해졌다.‘둘째 도련님이 사모님을 이렇게 심하게 대했는데도 사모님은 어
신하린에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심미연은 그녀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뭘 찍어?”“너를 찍고 있어. SNS에 올려야지.”신하린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 안의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정말 너무 아름답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심미연은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 SNS 올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신하린이 사진을 올리자마자 이진영이 마침 보였다.강지한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신하린이 올린 그 사진을 강지한에게 보냈다.잠시 기다리다가 강지한의 답장을 기다리지 못한 그는 아예 강지한의 전화번호로 직접 걸었다.“일 있어?”강지한의 목소리는 얼음 저장고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차가워 온몸을 오싹하게 했다.“내가 방금 보낸 사진 봤어?”이진영은 강지한의 냉담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입을 열어 웃음기를 띠며 물었다.강지한이 아닌 척해도 그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이진영, 한가하구나?”분명히 불쾌했던 그는 심지어 말투에 조금의 분노를 품고 있었다.“난 매우 바빠. 그만 끊어.”이진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는 강지한이 화가 난 모습을 보고 싶었다.그러나 강지한이 정말 화가 났을 때 그는 또 무서웠다.이때 강지한은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휴대폰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확대된 여자의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 속 얼굴에는 화창한 웃음이 가득했다. 커다란 두 눈은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코끝의 하얀 밀가루는 그녀를 다소 익살스럽게 보이게 했다.왠지 기분이 언짢았다.‘이 여자는 나를 떠나 조금도 슬프지 않은가 봐. 나는 여전히 늘 이 여자 생각뿐인데.’같은 시각, 미르 파크.온지유는 깨어나자마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숨겨진 번호인 것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황급히 거실을 떠났다.임혜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누구 전화길래 얼굴이 다 하얗게 질리는 거야.”“뭘 중얼거리고 있어요?”집사가 와서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심미연이 넋을 잃고 생각할 때 신하린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미연아, 깨어났어?”“막 깨어났는데 네가 왔어. 어서 들어와.”심미연이 커튼을 열자마자 신하린에 문을 밀고 들어왔다.침대에 앉아 있는 심미연을 본 그녀는 재빨리 달려와 말했다.“미연아, 내가 어젯밤에 술에 취했는데 네 배를 건드린 거 아니야?”심미연은 손을 뻗어 그녀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너에게 샤워할 거냐고 물었는데 한사코 게스트룸 침대에 가서 자야 한다고 갔어. 배를 건드릴까 봐 걱정된다고 하던데 취중 진담인 가 봐.”어젯밤 신하린은 정말 조금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고 착하기만 했다. 만약 이진영이었다면 어떻게 미쳤는지 모를 것이다.설령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할 수 있다.신하린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며 심미연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미연아. 앞으로 다시는 취하지 않을 거야.”이진영과 5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는 한 번도 자신이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어젯밤 이진영이 그녀에게 한 말은 그녀를 슬프게 했다.이진영은 비즈니스 결혼할 것이며 그녀는 내연녀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그렇게 파렴치한 말을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마음이 힘들면 다 털어놔. 마음속에 오래 참으면 언젠가는 병이 날 거야.”심미연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앞에서는 진실한 자신이 되어도 돼. 네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그들은 비록 혈연적인 관계는 없지만 가족보다 낫다.그녀는 신하린이 그녀의 앞에서 분명히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도 즐거운 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전혀 그럴 필요 없었다!신하린은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더니 심미연을 꼭 안았다. 목구멍에 숨이 막혀 있는 것 같아 숨이 좀 막혔다.심미연은 조용히 그녀를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하린과 이진영 사이의
“아니요. 절친과 함께 작업실을 운영할 예정이에요.”할아버지가 그녀의 일에 관심이 있으니 그녀는 이것을 핑계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핑계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신하린과 함께 작업실을 동업하려고 한다.“작업실 이름이 뭐야?”할아버지는 그녀를 도와주겠다는 태도였다.“할아버지, 저는 제 노력으로 작업실을 잘하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연세도 있으시니 제일에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그녀는 정말 할아버지가 그녀의 일을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좀 듣기 거북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일하지 않아도 지금은 이노하이브의 주식이 있으니 매년 배당금도 적지 않았다.더군다나 이혼할 때 강지한이 준 돈은 일반인들이 몇 평생 일해도 다 벌지 못할 만큼 많았다.그녀는 지금 자신의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이 단지 건강한 쌍둥이를 낳아서 잘 키울 생각뿐이었다.“그건 안 돼.”할아버지는 분명히 기분이 나빠 보였다.“빨리 나에게 말해줘. 그렇지 않으면 나 정말 화낼 거야.”심미연은 어쩔 수 없이 신하린의 작업실 이름을 그에게 알려주며 주소도 함께 말했는데, 할아버지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잘 몰랐다.“자, 내가 다 적어놨어. 출근할 필요가 없으니까 좀 더 자. 방해하지 않을게.”강준형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들고 있는 심미연은 할아버지가 이 전화를 한 의도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휴대폰 벨 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서둘러 생각을 접고 통화버튼을 눌렀다.“변호사님, 아주 좋은 소식이에요!”전화를 받자마자 임현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심미연은 방금 할아버지가 걸었던 그 전화가 생각났다.기분이 좋은 모양인데 설마, 할아버지는 사실 그녀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려 했던 걸까?“변호사님, 제 말 듣고 있어요?”임현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졌다.“듣고 있어요. 말해봐요. 무슨 좋은 일인데요?”심미연은 조용히 웃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듣기 좋았
수화기 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서야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건 내가 너를 도울 수 없어.”설사 다시 그를 도와 심미연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한다고 하더라도 심미연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무엇보다 강지한이 한마음 한뜻으로 심미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심미연에게 자신의 삶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낫다.“미연이는 할아버지의 말을 가장 잘 듣잖아요? 할아버지가 얘기하면 틀림없이 들을 거예요. 3년 전에 할아버지가 나에게 미연이와 결혼하라고 강요했듯이 이번에 할아버지가 미연이에게 나와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 있잖아요.”강지한의 말투는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면 되는 일인 것 같았다.“미연이는 너와 3년이 지냈는데 만약 이미 단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혼을 제기할 수 있었겠어?”할아버지는 냉담하게 중얼거렸다.“어렵게 이혼했으니 미연이는 틀림없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강지한은 원래 할아버지에게서 위로를 구하려고 했는데 결국 할아버지의 의기소침한 말에 난처해졌다.“심미연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네가 정말 포기할 수 없다면 스스로 쫓아가서 자신의 실력으로 되돌려.”할아버지는 심미연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강지한 앞에서 항상 다소곳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강지한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녀가 강지한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으면 절대 남에게 좌지우지될 그런 사람이 아니다.강지한은 심미연을 몰라서 더는 말하기 귀찮았다.“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만 끊어요.”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이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이번 주 안에 온지유의 일은 반드시 나에게 처리 결과를 주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을 쓸 거야!”할아버지는 강지한이 온지유를 감싸주느라 사람을 보내 조사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나중에 묻는다면 아무렇게나 핑계를 대고 얼버무리기 때문에 그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알아요.”강지한의 머릿속에는 방
강지한은 입술을 감빨고 나서 말했다.“그럼 내가 찾아볼게.”요즘 메일이 너무 많아서 그는 다 열어볼 수가 없었다.“또 무슨 일 있어요?”“넌 먼저 나가 있어. 내가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를게.”강지한은 말하면서 메일을 찾았다.하지만 귀신이 들린 듯 그는 [중독]이라는 발신자의 메일을 눌렀다.아마 이 이름이 특별해서일 지도 모른다.그러나 강지한의 예상과는 달리 이 메일에는 온지유의 범행이 모두 적혀 있었다.메일을 지우고 난 강지한은 검색창을 껐다.‘[중독]이 누구지? 어떻게 온지유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만약... 이 사람이 보낸 것들이 모두 진짜라면...’그럼 그가 3년 동안 심미연에게 했던 말들, 한 일들...강지한은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삭이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그의 생각을 끊었다.그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인터넷 검색어 봤어?”그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억눌린 분노를 분명히 알아차렸다.“못 봤어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강지한은 모르는 척했다.“실시간 검색은 이미 취소되었지만 내가 동영상을 저장했으니 바로 너에게 보낼게!”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이번에는 걔를 감싸주지 마. 반드시 처벌을 받게 해야 해!”강지한은 손을 뻗어 미간을 비볐다.“할아버지, 일단 흥분하지 마세요. 이 일은 제가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할 거예요. 진실을 밝힌 후 법정에 세울 거예요.”사실이라면...“조사할 필요 없어. 이 동영상이 진짜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할아버지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온지유처럼 악독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억울하게 할 수는 없어요.”강지한은 감정을 억누르고 침울하게 말했다.“온지유를 향한 편견은 강지성과 결혼한 날부터 있었어요. 왜 그랬어요?”
“뭐?”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인터넷의 실시간 검색은 이미 처리되었고 동영상은 제가 대표님에게 메일로 보냈어요.”성무진이 낮은 소리로 말하자 강지한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성무진은 하늘이 곧 무너질 만큼 큰일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작은 일인 것처럼 말했다.“그럼 전 먼저 일하러 갈게요.”성무진은 강 대표님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도대체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분노인 걸까?’기왕 알아맞힐 수 없다면 추측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IP 찾았어?”강지한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어젯밤에 성미연이 그와 온지유가 동거한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이런 실시간 검색이 떴으니 데 우연인지 누가 일부러 그런 건지 의심이 됐다.“해외 IP 예요.”성무진은 잠시 멈칫하다가 갑자기 중요한 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강 대표님, 오늘 아침에 실시간 검색에 오른 건 [나쁜 대표님과 그의 여자들]이라는 만화가 하나 더 있어요. 어제 올리자마자 바로 인기를 끌었는데 작가는 하룻밤 사이에 50만 명의 팔로워를 올렸어요.”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만화가 흥행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성무진이 너무 심심하지 않은 이상 그와 이런 가십을 떨리 없다.성무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 만화의 첫 편은 나쁜 대표님이 만나고 있는 애인이 배우자의 외할머니를 죽이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배우자는 나쁜 남자와 그의 내연녀를 모두 고소했어요. 배우자는 나쁜 남자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쁜 남자가 내연녀에게 이체한 돈을 강제로 돌려주었고 선물도 모두 절반을 회수했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한은 말머리를 이어갔다.“이 만화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저는 그런 말 안 했어요.”설령 그가 마음속으로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말할 수는 없었다.“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밤 CCTV 영상을 확인해 봐.”이 일에 대해 그는 줄곧 온지유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