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누가 전화 왔어요?”심미연이 물었다.“지한이 어머니야.”강준형의 말투가 나빠졌다.“저와 지한 씨가 이혼하는 거 어머님은 알아요?”심미연은 문소영이 전에 사람을 시켜 배 속의 아이를 없애려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호감이 있을 수 없었다.이런 여자는 그녀의 어머님이 될 자격이 없다.“알려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려줄 생각이 없어.”강준형의 말을 들은 심미연은 뭔가 이상해서 물었다.“왜요?”‘강지한의 어머니인데 왜 알려주지 않는 거지?’“지한이가 문소영과 지한이 관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어?”강준형이 되물어보자 심미연은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저었다.강지한이 그녀를 이토록 싫어하는데 어찌 이런 것을 알려 수 있겠는가.“실은 문소영은 지한이 친엄마가 아니야.”강준형은 한숨을 쉬며 심미연의 표정을 살핀 후 머뭇거리며 계속해서 말했다.“지한이 친엄마는 어릴 적에 돌아갔어. 그런 후 지한은 강씨 가문에 돌아왔는데 신분이 특별해서 줄곧 내가 키웠어. 하지만...”강준형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런 과거에 대해 회억하고 싶지 않았다.“말씀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세요. 저도 꼭 알아야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아는 것이 많을수록 점점 더 내려놓을 수없어질 것이다. 그녀는 그저 편해지고 싶었다.“말하기 싫은 게 아니라 얘기가 길어져서 두세 마디로 다 할 수가 없어! 미연아, 지한이가 이렇게 변한 건 다 내 잘못이야!”강준형은 과거를 회억하기 싫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마음이 괴로웠다.“그럼 말하지 마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얘기해요.”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숟가락을 들고 죽을 먹었다. 그녀와 강지한은 곧 이혼하니 그에 관한 일은 알 필요가 없었다.“너에게 지한이 과거에 관해 말해야겠어. 만약 걔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넌 지한이 성격이 왜 그렇게 차가운지 알게 될 거고 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지도 알게 될 거야.”‘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는데 만약 미연이에게 지한에 관한 일을 알려준
강준형은 기분이 좋아졌다.심지어 문소영이 전화에서 강지한과 이씨 가문 아가씨가 맞선을 본 일을 말했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심미연은 고개를 숙이고 죽을 먹었다. 보아하니 강준형은 그녀와 강지한이 이혼하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 두 사람 사이에 정이 있는 줄 오해라도 한다면... 그녀는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었다.밥을 먹은 후 강준형은 심미연을 차에 태운 한 후 기사더러 구청으로 운전하라고 했다.거절하지 못하고 차에 오르는 심미연을 보고 강준형은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구청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오자 강준형은 이내 받으며 물었다.“넌 언제 도착해!”“심미연더러 전화를 받으라고 하세요!”강지한이 진지하게 말했다.“무슨 말투야!”강준형이 화를 냈다.“중요한 말이 있어요.”강준형은 그제야 전화를 심미연에에 넘겨줬다.“지한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대.”심미연은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받아들고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할아버지가 이노하이브 1% 주식을 너에게 넘겼어. 지금 절차 밟으러 갈래 아니면 나중에 할래?”지분에 관한 일을 강준형이 전에 말했었지만 강지한은 바쁘다 보니 이 일을 까먹었다. 오늘 이혼하러 가는 길에 심미연과 지난 3년 동안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다가 이 일을 떠올렸다.“할아버지, 저와 강지한 씨가 오늘 이혼하는 거 알면서 왜 이노하이브 주식을 저에게 넘겼어요? 할아버지, 저는 주식이 필요 없어요!”“너에게 주는 건 그냥 가지면 돼. 거절하지 마!”강준형은 화난 척 돌려 말했다.심미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이노하이브 주식은 너무 많아요! 전 가질 수 없어요!”강준형은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지한이와 이혼하는데 이노하이브 주식은 위자료라고 생각해. 이 주식을 가지면 앞으로 강지한은 너의 일꾼일 뿐이야. 생각만 해도 기쁘지 않아?”심미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심미연이 이 주식을 가졌으면 했다.“하지만...”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강준
심미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남자를 바라봤다. 심지어 이것이 환각일 뿐 이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심미연, 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나는 출장 중이어서 휴대폰이...”여기까지 말한 강지한은 말을 멈추었다. 지금의 온지유는 그때 그의 어머니를 궁지에 몰아넣고 심지어 어머니를 죽인 그 사람과 정말 비슷했다.‘만약 심지연이 이 일을 알고 온지유를 찾아간다면 어쩌지? 그때가 되면 온지유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그냥 온지유를 보낸 후 다시 얘기하는 게 나을 거야.’그의 말을 반쯤 듣고 나니 심미연은 문득 깨달았다.‘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며칠 동안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었네. 그때 내가 전화하지 않아 다행이야. 아니면 얼마나 어색했겠어.’‘아, 맞다. 그때는 온지유가 낙태되어 슬퍼할 때네. 그렇게 사랑했으니 당연히 그녀 곁에서 돌봐야겠지? 휴대폰을 끄고 모든 외부의 방해가 없어야겠지.’심미연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신경 쓰지 않는다고 알려주기 위해 심미연은 웃으며 말했다.“설명할 필요 없어. 다 이해하니까.”강지한은 눈썹을 찡그렸다.‘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이해한다고 하는 거지?’“변호사는 언제 와?”심미연은 그의 언짢아진 표정을 보고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돌려 물었다.변호사가 와야 사인하고 떠나지 않겠는가.이혼하면 이젠 낯선 사람인데 그에게 관련된 일을 알고 싶지 않았다.“심미연...”심미연의 쌀쌀한 태도에 강지한은 당황해서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마침 밖에서 노크가 울려 그는 하려던 말을 되로 삼켰다.“들어와!”문이 열리고 변호사가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오더니 심미연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강 대표님, 심 변호사님.”심미연이 경성 변호사 중에서 명성이 자자했고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다.인사를 하자마자 강지한의 쌀쌀한 목소리가 들렸다.“사모님이라 불러!”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사모님!”심미연은 어이가 없었다.‘이 남자는 돌아버렸어? 지금이 언
“사인했으니 이젠 구청으로 가.”심미연은 사인한 문서를 변호사에게 넘겨주며 강지한을 향해 말했다.“심미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강지한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변호사는 서둘러 물건을 챙기고 급히 떠났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가 어찌 감히 들을 수 있겠는가?“난 이미 마음을 굳혔어. 가자.”심미연은 눈앞의 익숙한 이 얼굴을 보면서 마음은 평온했다. 그녀의 마음은 그의 거듭되는 상처와 거짓말 속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어젯밤에 그녀는 많은 생각을 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생각했다.“심미연...”강지한은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때 강준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변호사가 그러는데 사인을 마쳤다며? 왜 아직도 안 가? 꾸물거리다간 구청이 퇴근하겠어!”강준형의 기운찬 목소리가 문간에 울려 퍼졌다.강지한은 말문이 막혔다.‘도대체 누구의 할아버지야? 왜 내가 심미연과 이혼하지 않을까 봐 안달이지?’심미연은 몸을 돌려 대문으로 걸어가며 강준형의 팔짱을 끼고 부드럽게 말했다.“지금 가요.”심미연은 그들이 이혼하면 강준형이 충격을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이 상태를 보니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오히려 강지한이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차일피일 미루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강준형은 돌아설 때 강지한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도 이혼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예전 같으면 그도 심미연을 타이르겠지만 강지한이 그렇게 심한 짓을 하고 나서 이런 말들을 할 수 없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에야 강지한이 급히 달려오자 심미연은 손으로 문을 막았다.강지한이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들어왔다.강준형이 그를 노려보며 구석으로 밀어붙였는데 분명히 꼴도 보기 싫다는 태도였다.강지한의 눈길은 심미연을 향했다.심미연도 그를 바라볼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강준형을 향해 방긋 웃으며 부드럽
“이번에는 지한이가 아니라 미연이가 무조건 이혼하겠다고 했어.”강준형은 너무 속상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미연이 외할머니께서 얼마 전에 돌아갔는데 지한이는 전화를 아예 꺼둔 채 오지도 않았어. 그동안 미연이는 힘들게 혼자 버텨왔는데 내가 무슨 낯으로 그 애를 붙잡아.”방금 심미연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강준형이 예전에는 속상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 못 할 일은 심미연에게 자주 털어놓았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그, 그러면 말하기가 좀 그렇겠네요.”운전기사인 장현수도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어쨌든 경성에서 유명인이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여자들이 아마 경성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것이다.심미연은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강씨 가문에 시집왔는데 이제 와서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그 사모님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했으니 과연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싶었다.“됐어. 너는 그냥 천천히 앞에 차만 따라가면 돼. 난 눈 좀 붙여야겠다.”강준형은 머리가 너무 아파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머리를 살살 문지르다가 눈을 꼭 감았다.이때 다른 차 안.심미연은 가방에서 두 장의 이혼 서류를 꺼내 강지한에게 건네줬다.“이건 우리 두 사람의 이혼 합의서야. 보고 수정할 곳이 있으면 알려줘.”그녀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강준형이 이노하이브 주식을 넘겨주겠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어차피 지금 그쪽 주식을 갖고 있었고 또 매년 몇백억씩 수익이 나오니까 강지한과 굳이 힘들게 재산분할을 할 필요가 없었다.강지한은 서류를 건네받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심미연, 무슨 뜻이야?”혹시나 나중에 두 사람이 이혼할 때 강지한 쪽에서 여자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뒤에서 얼마나 욕할지 상상만 해봐도 짜증 났다.심미연은 그가 지금 불같이 화내는 이유가 혹시 결혼 후에 산 그 미니카를 요구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
운전기사는 문득 백미러로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참 잘 어울린다고 속으로 감탄했다.그렇게 모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차는 법원에 도착했다.문 앞에 도착해 보니 예전에 그 변호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심미연은 왠지 씁쓸해졌다.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하는지.“강 대표님, 사모님, 이건 이혼 합의서인데 두 분께서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두 사람의 이혼 사건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이렇게 이혼 합의서를 직접 가져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심미연은 서류를 건네받고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합의서에는 그녀에게 재산 200억을 나눠주고, 추가로 시가 100억 정도 되는 별장과 벤틀리 한 대까지 주겠다고 적혀있었다.강지한이 이만큼 넘겨주는 것과 또 강준형이 주는 주식까지 합치면 이혼하자마자 졸부가 되는 셈이다.하지만 심미연은 바로 사인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강지한에게 물었다.“서류가 잘못된 건 아니지?”“내가 너한테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단 건 알고 있는데 이혼해도 물질적인 보장은 내가 해주고 싶어. 미연아, 그냥 사인해.”사실 다른 목적이 있긴 했다.만약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완전히 끝날 것 같았고 혹시나 순순히 이혼해 주면 그래도 나중에 심미연이 얼굴은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는 건 싫었다.그러자 심미연이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확실해?”3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활비라고는 고작 몇천만 원만 내놓던 사람이라 여태껏 깍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혼하려니까 갑자기 통이 큰 모습을 보여주니 의심이 드는 게 당연했다.“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나 정신이 말짱하니까 걱정하지 마.”강지한이 다시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이 여자가 애초에 자기 재력만 보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내숭을 떠나 싶었다.“그래. 일단 사인할 테니까 혹시나 후회되면 바로 말해. 받았던 물건들은 다 돌려줄 테니까.”심미연은 혹시나 나중에 강지한이 정신 차리고 오늘의 일이
심미연은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제가 상상 임신이라도 했을까 봐요?”변호사는 심미연의 대답을 듣고 난처해졌다.‘잠자리도 안 가지는 부부였네.’보아하니 부부가 금실이 좋아지려면 속궁합도 잘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강지한이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차갑게 말했다.“역시 변호사라 그런지 예리하시네.”“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나랑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볼까?”이 순간 심미연은 혹시나 그가 진짜로 가자고 할까 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뱃속에는 아이가 하나가 아닌 둘이 있기 때문이다.하여 지금 검사하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데 강지한의 의심을 거두려면 어쩔 수 없이 세게 나가야 했다.그리고 강지한이 결국에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내가 네 말을 안 믿는다고 했어?”강지한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그제야 예상대로 자기 말을 믿어주는 것 같아 심미연은 살짝 안심할 수 있었고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임신이 아닌 게 확실하면 두 분께서는 여기에 사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인하시기 전에 혹시나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 필요 없는지 확인 부탁드릴게요. 일단 서류에 사인하는 즉시 이혼으로 확정되는 거라서요.”변호사는 끝까지 자기 임무에 충실했다.하지만 심미연은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서류에 사인만 하면 되는 일을 왜 이리도 시간을 끄나 싶었기 때문이다.강지한은 원래부터 이혼을 반대했던 사람인데 혹시나 변호사의 설득에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네. 바로 사인할게요.”심미연은 재빨리 펜을 들고 서류에 사인했다.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서류를 강지한에게 넘기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9년이라는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렸고 이제 다시는 강지한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이 순간 그녀의 기분은 유달리 평온했다.하지만 강지한은 그저 심미연의 사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글씨가 참 정갈하고 깔끔한 게
이혼 철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강지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에는 더 이상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괴로웠다.심미연이 법원에서 나오니 신하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미연아, 어디야?”“나 방금 법원에서 나왔어.”“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해주려고 내가 특별히 흥원각을 예약해 뒀는데 지금 데리러 갈까?”신하린은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혼자 갈 수 있어.”심미연은 사실 아직도 방금 강지한이 변호사에게 묻던 말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마음이 심란했다.“그래. 그럼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넌 천천히 와.”신하린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심미연은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미연아, 왜 그래? 강지한 그놈이 혹시 또 널 괴롭혔어?”강준형의 목소리에 심미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는데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할아버지...”목이 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지한이 이대로 순순히 이혼해 주지 않을 것 같았고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너무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왜 울어? 무슨 일인지 빨리 할아버지한테 말해.”강준형은 그녀가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재빨리 다가왔다.“한 달간의 숙려기간에 지한 씨가 만약 생각이 바뀌어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하죠?”심미연은 여태껏 너무 힘들게 버텨왔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터지니 결국 멘탈이 무너졌다.강준형은 너무 서글프게 우는 심미연을 보고 가슴이 아파 다급히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지한이가 이혼에 대해 번복하지 못하도록 이 할아버지가 막아줄게.”심미연이 강지한과 함께 있어봤자 불행하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강제적으로 두 사람을 붙여줄 수는 없었다.심미연은 어쩌면 강지한과 헤어지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녀가 행복하
심미연의 눈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걸어내겠다는 결의가 엿보이는 듯했다.그때부터 심미연은 데이터 하나, 리포터 하나 놓치지 않고 아이의 병을 치료할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방안에는 키보드 소리와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뿐이었고 적절한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들리는 그 소리는 생명과 희망을 담은 교향곡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심미연은 본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용기로 작은 생명을 살릴 방도를 모색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고 있었다.그 시각, 심태하를 데리고 집으로 온 박유진은 역시나 조용한 집안에 심미연이 또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태하야, 엄마한테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해.”박유진의 말에 2층으로 올라간 심태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왜 혼자 내려와? 엄마는?”“엄마는 안 먹는대요. 난 할 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아빠가 해요.”심태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박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알겠어, 내가 가볼게.”성큼성큼 걸어 올라간 박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았다.방이 하도 조용해서 문 여는 소리마저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 소음이 심미연을 방해하지는 못한 듯했다.박유진은 부드러운 불빛이 비춰진 그녀의 뒷모습만 보아도 심미연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넓은 책상 앞에 마주 앉은 심미연의 얼굴에는 노트북 화면에서 나온 불빛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평소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던 두 눈도 이 시각만큼은 노트북에 고정한 채로 움직이질 않았다.심미연만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박유진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그러다가 자연스레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수치들과 그래프를 보게 된 박유진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작게 쓰여있는 숫자와 그래프들이 박유진에게는 그저 낯선 부호였지만 거기에 쏟은 심미연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박유진은 감히 함부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심미연의 건강이 걱정됐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쥔 주먹 때문에 심미연의 손톱은 이미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차분히 눈을 감고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의 입장이 되어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부서진 가구들과 온몸을 뒤덮은 상처, 그리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도망가지 못해서 절망만 가득한 그 눈동자.가정폭력만 한 게 아니라 바람까지 피우면서 남자는 여자의 정신을 처참히 짓밟고 있었다.그 배신이 피해자의 마지막 남은 선까지 무너뜨려서 결국 그들을 이혼에 이르게 한 것이다.여자는 해방되고 싶어서 제안한 이혼이 자신의 명을 단축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폭행을 일삼고 바람까지 피우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던 남자는 오히려 의심병이 도져 갑자기 이혼을 제안하는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배 속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여기까지 본 심미연은 숨이 가빠와서 호흡이 거칠어졌다.인간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른 남자에 대한 분노로 쌓인 한기가 서서히 심미연의 영혼을 뒤덮고 있었다.어쩜 사람이 이처럼 잔인하고 매정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의 배우자에게 이딴 짓을 할 수 있는지 심미연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게 어떻게 인간이야!”차오르는 분노와 비통함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자 심미연은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그게 경찰 출동을 알리는 경보음인가 싶어 심미연은 순간 숨을 죽였다.물론 이내 자신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심미연은 그 짧은 순간에 전화벨 소리가 마치 생명을 구원해줄 동아줄처럼 느껴졌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심미연이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스, 아이 사건은 보셨어요?”여자의 말에 그제야 잊고 있던 심장병 걸린 세 살 아이의 사건을 떠올린 심미연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대답했다.“바로 볼게요.”
3년 동안 심태하를 자신의 친아들로 여기며 온 정성을 다 쏟은 박유진은 심태하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아빠, 얼른 와요!”그때 들리는 아이의 앳된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박유진은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심태하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환한 아이의 미소 덕분인지 박유진은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아이에게로 다가간 박유진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자 심태하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내가 엄마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엄마는 일만 하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니까요. 아들인 나도 설득 못 한 엄마라고요.”말을 하며 옆자리를 손으로 콕콕 찌르는 아이의 의도가 너무나 명확해서 박유진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엄마는 항상 그래요. 일만 하면 밥 먹는 것도 까먹어요.”심태하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엄마가 가슴 아픈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내가 말려봐도 일은 엄마의 사명이라면서 말을 안 듣는다니까요. 그래도 엄마가 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그러는 걸 아니까 나도 떼는 안 썼어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많은 걸 배우려고요. 그러면 엄마가 조금은 편해질 거잖아요.”심태하는 마치 박유진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맹세하는 사람처럼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엄마를 생각하는 그 갸륵한 마음에 임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임현은 저 말들이 세 살 난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과 영민함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 자꾸 아까 태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 말들은 여름날 오후에 갑자기 찾아온 우레처럼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임현의 마음을 울렸다.임현은 그제야 왜 심미연이 아들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이런 아들이라면 백번이라도 자랑하고 싶을 것 같았다.하지만 다정한 눈으로 심태하를 바라보던 박유진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3년 전, 눈을 뜨자마자 심미연부터 찾은 박유진은 3
“죄송합니다!”“당신...”심미연의 사과에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죽은 심미연 씨랑 똑같게 생겼어요.”그 말에 가슴이 내려앉은 심미연은 바로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그는 바로 전설적인 존재인 박시훈이었다.그가 유명해진 건 그의 정보망 때문이었다.그래서 박시훈이 찾기 싫은 건 있어도 못 찾는 건 없다는 말도 떠돌게 된 것이다.심미연과 일면식도 없는 그가 그녀를 알아봤다는 건 박시훈이 심미연에 대해 뒷조사를 했다는 뜻이었다.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뒷조사를 한 사람과 지금은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빠르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잠깐만요!”“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때 나타난 박유진이 심미연에게로 뻗어진 박시훈의 팔을 가로막았다.박유진의 목소리를 들은 심미연은 그제야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그가 있는 한 적어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는 없기 때문이었다.“박유진?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한편 이미 멀어진 심미연에 박시훈의 표정은 한껏 어두워져 있었다.그는 매번 나타나서 자신의 일을 망치는 박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저 사람은 내 아내 될 사람이야. 네 형수고. 앞으로 보면 예의부터 갖춰.”그 순간, 박유진은 진심으로 심미연을 숨겨두고 혼자만 보고 싶었다.박시훈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혼자만 보며 심미연의 마음속에도 본인뿐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나를 가족으로 인정해준 적도 없는 박씨 집안 사람들이야. 자꾸 친한 척하지마. 너랑 나는 남이니까.”박씨 집안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 집안사람과 엮이기도 싫었던 박시훈은 손을 쳐내며 코웃음을 치고는 돌아섰다.하지만 심미연이 아직 멀리 못 갔을 걸 생각해 박유진은 또다시 박시훈의 팔을 붙잡았다.“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박유진, 너 진짜 미친 거야? 왜 자꾸 날 잡아!”또다시 잡힌 팔에 박시훈은 표정을 구기며 박유진을 노려보았다.이 순간만큼은 정
흉부외과 전문의들을 다 찾아봐도 소용이 없어서 자신에게 연락을 한 걸 알기에 심미연은 마음이 착잡해졌다.“진작에 이메일로 보내놨죠. 시간 날 때 보세요. 그럼 전 먼저 끊을게요.”태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심장병으로 앓고 있다는 게 너무 불쌍해서 심미연은 전화를 끊었음에도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엄마, 괜찮아요?”그때 심태하가 심미연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레 묻자 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응, 엄마 괜찮아.”세 살 난 아이가 이렇게 빨리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 건 안타까웠지만 심미연은 태하 앞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 했다.“알겠어요 그럼!”엄마가 괜찮다고 하자 심태하는 역시나 아이는 아이인지 곧바로 다시 디저트에 열중하기 시작했다.유명한 식당답게 맛이 출중해서 태하는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지만 마음이 불편했던 심미연은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임현도 전화를 받은 뒤로 저기압인 심미연이 걱정됐지만 함부로 물을 수도 없어서 그저 밥만 먹고 있었는데 그때 심미연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나 바람 좀 쐬고 올게요.”“네.”자신의 기분이 왜 갑자기 나빠졌는지는 심미연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다행히 아무것도 묻지 않는 임현에 빠르게 복도 끝으로 걸어간 심미연은 창밖으로 다니는 차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미연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심미연이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언제 왔어?”“좀 전에. 태하 데리러 가자.”자신에게로 내밀어진 박유진의 손을 잠시 보던 심미연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밥은 먹었어?”박유진은 별것도 아닌 그 말에 환히 웃으며 답했다.“좀 전까지 바빴어서 못 먹었지.”“그럼 뭐라도 좀 먹을래?”“그래.”고개를 끄덕이는 박유진과 함께 심미연은 아까의 룸으로 돌아갔다.갑자기 나타난 박유진에 심태하는 다급히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에게로 달려갔다.“아빠! 여긴 왜 온 거예요?”아빠가 이곳에 온 게 자신
심동현은 그때 고작 다섯 살이던 아이가 저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너무 미안해하지는 마. 당신의 마지막이 심미연보다는 더 처참할 테니까.”심서연의 말 몇 마디에 심동현은 그대로 기절해버렸고 심서연은 그런 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나, 나는 네 아빠가 불러서 온 것뿐이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덜덜 떨며 말하자 심서연은 여자의 발을 즈려밟으며 말했다.“넌 너무 더럽잖아.”물론 심서연도 남자와 노는 걸 즐기긴 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탐하는 여자들을 경멸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리자 다급히 발을 뗀 심서연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인터폰을 눌러보았다.역시나 성무진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는 칼을 들어 자신의 다리를 긋고는 절뚝이며 문을 열어주었다.“성 비서님... 저 좀 살려주세요...”눈을 감으며 죽는 척을 하는 심서연을 본 성무진은 바로 뒤따라온 사람을 향해 말했다.“이분은 차에 태워.”심서연이 그 사람에게 들려 나가자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동현과 여자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성무진은 강지한에 연락을 했다.*그때 심미연은 임현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함께 앉아있던 심태하는 자신의 앞에 가득 놓인 디저트들을 보며 숟가락을 든 채 놀라고 있었다.“엄마, 이거 다 내 거에요?”평소에는 달달한 걸 많이 못 먹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이러니 심태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응, 다 네 거야. 얼른 먹어. 대신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아프니까 적당히 먹어야 해.”“네! 조금만 먹을게요 그럼!”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심태하는 한입 한입 디저트들을 베어 물기 시작했다.심미연은 미소를 짓다가도 이렇게 일찍 철이 든 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왔다.엄마가 힘든 게 싫어서 세 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성숙한 행동들을 하는 걸 심미연이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임현은 그저 부럽다는 듯 말했다.“태하는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세
심서연이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심동현은 늘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 했다.그리고는 아들을 낳으라고 조은하를 달달 볶았는데 조은하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까지 내곤 했다.그때부터 심씨 집안의 딸은 하나여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 심서연은 일부러 유괴범을 찾아 심미연을 팔아버리려고 했었다.이미 말까지 다 맞추고 심미연을 데려간 건데 심서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심미연 때문에 심서연이 유괴범들에게 대신 끌려가게 된 것이다.그때부터 심서연의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고 심미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심서연은 심미연도 유괴범에게 자신을 넘기려고 계획을 짠 게 분명하다는 착각까지 해가며 그녀를 증오해왔었다.시골에 끌려간 뒤로 매일 맞고 욕을 먹으며 자라던 심서연은 양어머니가 아들을 낳게 된 뒤, 모든 신경이 그 아들에게 가 있는 틈을 타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그길로 기억에 남아있던 심씨 집안을 찾아갔다.그렇게 집에 돌아온 심서연은 예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심미연을 보며 질투심에 불타 그녀가 가진 걸 모조리 빼앗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심서연에게 회사를 맡긴다는 건 회사를 말아먹겠다는 거랑 다름이 없었기에 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심미연은 여전히 화려한 집에서 세계적인 부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그렇게 심서연이 점점 질투심에 눈이 멀어가고 있을 때 하늘이 고맙게도 심미연을 죽여준 것이다.굶어 죽어가던 심서연이 그 틈을 타 강지한에게 연락을 했고 그 덕에 아무 상관도 없는 강지한의 보살핌으로 강씨 집안 둘째 사모님 대우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녀가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된 건 다 문소영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사람 덕분이었다.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겪어봤기에 더욱더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심서연은 어떻게 해서든 강씨 집안에 들어가야만 했다.그리고 그동안 마음껏 누려온 심동현은 이제 그만 고생할 때도 된 것 같았다.“심서연! 걔
심서연은 자신의 말이 끝났음에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강지한이 혹시나 자신을 외면할까 봐 불안에 떨며 물었다.“지한 씨...”심서연은 사실 이번 기회에 강지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기회를 봐서 잠자리를 가지고 거기에서 애까지 생긴다면 그야말로 천운이겠지만 일단은 강지한을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었다.“성 비서 보낼게요.”“지한 씨가 직접 와주면 안 돼요?”자신이 대답을 했음에도 그칠 줄 모르는 심서연의 요구에 강지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상미 열나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귀국한 다음에 열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전에 왜 애 아프다는 말 안 했어요?”순식간에 차가워진 목소리에 심서연은 당황하며 물었다.“뭐라고요? 상미가 열이 나요? 전 진짜 몰랐어요!”해외에서는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빠서 상미는 시터에게 맡겨뒀었기에 심서연이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지한의 말투가 심상치 않아 그녀는 다급히 한마디 더 보탰다.“이틀 전에 열이 나서 병원 데려가긴 했는데 그때는 큰 문제 아니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좀 덜 썼는데, 많이 아픈 거예요?”심서연의 말이 변명임을 아는 강지한은 더 말하기도 입 아파 그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심서연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붙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혹시라도 강지한이 자신이 해외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걸 알고 자신을 내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지만 그렇다 한들 심서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강지한이 결정한 일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애초에 없었으니까.한편 조은하는 어두워져 가는 딸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 서연아?”조은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서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누워 계세요. 먹을 것 좀 챙겨올게요.”“얼른 구급차 불러서 아빠부터 병원에 데리고 가.”심동현이 아픈 것도 보기 싫었고 또 심동현이 죽으면 하나뿐인 딸도 죽을 것 같아 조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안 죽는다
조은하는 침대에 누워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심미연 생각을 하고 있었다.어린아이가 자신들이 가하는 모진 매를 견뎌냈을 걸 생각하면 조은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 왔다.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늘이 내린 벌 같았다.“엄마, 말할 수 있겠어요?”“응.”심서연이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묻자 조은하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아빠한테 또 맞은 거예요?”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서연은 한 번 더 물었다.“그냥 때리라지 뭐. 어차피 나 잘못한 거 많잖아.”조은하는 심동현에게 맞을 때마다 심미연에게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심미연은 이미 죽어서 자신이 이토록 참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나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심서연이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려 하는데 조은하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됐어! 나 괜찮아.”“엄마가 이 꼴로 누워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러고도 내가 사람이에요?”심서연은 마음 아파서 흐르는 눈물도 빠르게 닦아내며 방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에 다급해진 조은하가 심서연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건 공기뿐이었다.“서연아! 엄마한테 이제 딸이라곤 너 하나뿐인데 너까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얼른 돌아와.”자식을 앞세우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만약 심서연까지 잘못된다면 조은하는 정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기에 목이 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심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간 뒤였다.조은하는 조급한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는데 몸도 편치 않아서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조은하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릴 때 심서연은 이미 소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행동을 하고있는 심동현과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집에 있는 딸과 아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심동현에 이성이 끊겨버린 심서연은 주방에서 칼을 들고나와 심동현의 다리 위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여자를 향해 휘둘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