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지한이가 아니라 미연이가 무조건 이혼하겠다고 했어.”강준형은 너무 속상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미연이 외할머니께서 얼마 전에 돌아갔는데 지한이는 전화를 아예 꺼둔 채 오지도 않았어. 그동안 미연이는 힘들게 혼자 버텨왔는데 내가 무슨 낯으로 그 애를 붙잡아.”방금 심미연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강준형이 예전에는 속상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 못 할 일은 심미연에게 자주 털어놓았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그, 그러면 말하기가 좀 그렇겠네요.”운전기사인 장현수도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어쨌든 경성에서 유명인이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여자들이 아마 경성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것이다.심미연은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강씨 가문에 시집왔는데 이제 와서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그 사모님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했으니 과연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싶었다.“됐어. 너는 그냥 천천히 앞에 차만 따라가면 돼. 난 눈 좀 붙여야겠다.”강준형은 머리가 너무 아파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머리를 살살 문지르다가 눈을 꼭 감았다.이때 다른 차 안.심미연은 가방에서 두 장의 이혼 서류를 꺼내 강지한에게 건네줬다.“이건 우리 두 사람의 이혼 합의서야. 보고 수정할 곳이 있으면 알려줘.”그녀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강준형이 이노하이브 주식을 넘겨주겠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어차피 지금 그쪽 주식을 갖고 있었고 또 매년 몇백억씩 수익이 나오니까 강지한과 굳이 힘들게 재산분할을 할 필요가 없었다.강지한은 서류를 건네받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심미연, 무슨 뜻이야?”혹시나 나중에 두 사람이 이혼할 때 강지한 쪽에서 여자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뒤에서 얼마나 욕할지 상상만 해봐도 짜증 났다.심미연은 그가 지금 불같이 화내는 이유가 혹시 결혼 후에 산 그 미니카를 요구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
운전기사는 문득 백미러로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참 잘 어울린다고 속으로 감탄했다.그렇게 모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차는 법원에 도착했다.문 앞에 도착해 보니 예전에 그 변호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심미연은 왠지 씁쓸해졌다.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하는지.“강 대표님, 사모님, 이건 이혼 합의서인데 두 분께서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두 사람의 이혼 사건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이렇게 이혼 합의서를 직접 가져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심미연은 서류를 건네받고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합의서에는 그녀에게 재산 200억을 나눠주고, 추가로 시가 100억 정도 되는 별장과 벤틀리 한 대까지 주겠다고 적혀있었다.강지한이 이만큼 넘겨주는 것과 또 강준형이 주는 주식까지 합치면 이혼하자마자 졸부가 되는 셈이다.하지만 심미연은 바로 사인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강지한에게 물었다.“서류가 잘못된 건 아니지?”“내가 너한테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단 건 알고 있는데 이혼해도 물질적인 보장은 내가 해주고 싶어. 미연아, 그냥 사인해.”사실 다른 목적이 있긴 했다.만약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완전히 끝날 것 같았고 혹시나 순순히 이혼해 주면 그래도 나중에 심미연이 얼굴은 보여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는 건 싫었다.그러자 심미연이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확실해?”3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활비라고는 고작 몇천만 원만 내놓던 사람이라 여태껏 깍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혼하려니까 갑자기 통이 큰 모습을 보여주니 의심이 드는 게 당연했다.“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나 정신이 말짱하니까 걱정하지 마.”강지한이 다시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이 여자가 애초에 자기 재력만 보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내숭을 떠나 싶었다.“그래. 일단 사인할 테니까 혹시나 후회되면 바로 말해. 받았던 물건들은 다 돌려줄 테니까.”심미연은 혹시나 나중에 강지한이 정신 차리고 오늘의 일이
심미연은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제가 상상 임신이라도 했을까 봐요?”변호사는 심미연의 대답을 듣고 난처해졌다.‘잠자리도 안 가지는 부부였네.’보아하니 부부가 금실이 좋아지려면 속궁합도 잘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강지한이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차갑게 말했다.“역시 변호사라 그런지 예리하시네.”“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나랑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볼까?”이 순간 심미연은 혹시나 그가 진짜로 가자고 할까 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뱃속에는 아이가 하나가 아닌 둘이 있기 때문이다.하여 지금 검사하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데 강지한의 의심을 거두려면 어쩔 수 없이 세게 나가야 했다.그리고 강지한이 결국에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내가 네 말을 안 믿는다고 했어?”강지한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그제야 예상대로 자기 말을 믿어주는 것 같아 심미연은 살짝 안심할 수 있었고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임신이 아닌 게 확실하면 두 분께서는 여기에 사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인하시기 전에 혹시나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 필요 없는지 확인 부탁드릴게요. 일단 서류에 사인하는 즉시 이혼으로 확정되는 거라서요.”변호사는 끝까지 자기 임무에 충실했다.하지만 심미연은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서류에 사인만 하면 되는 일을 왜 이리도 시간을 끄나 싶었기 때문이다.강지한은 원래부터 이혼을 반대했던 사람인데 혹시나 변호사의 설득에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네. 바로 사인할게요.”심미연은 재빨리 펜을 들고 서류에 사인했다.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서류를 강지한에게 넘기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9년이라는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렸고 이제 다시는 강지한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이 순간 그녀의 기분은 유달리 평온했다.하지만 강지한은 그저 심미연의 사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글씨가 참 정갈하고 깔끔한 게
이혼 철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강지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에는 더 이상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괴로웠다.심미연이 법원에서 나오니 신하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미연아, 어디야?”“나 방금 법원에서 나왔어.”“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해주려고 내가 특별히 흥원각을 예약해 뒀는데 지금 데리러 갈까?”신하린은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혼자 갈 수 있어.”심미연은 사실 아직도 방금 강지한이 변호사에게 묻던 말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마음이 심란했다.“그래. 그럼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넌 천천히 와.”신하린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심미연은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미연아, 왜 그래? 강지한 그놈이 혹시 또 널 괴롭혔어?”강준형의 목소리에 심미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는데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할아버지...”목이 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지한이 이대로 순순히 이혼해 주지 않을 것 같았고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너무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왜 울어? 무슨 일인지 빨리 할아버지한테 말해.”강준형은 그녀가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재빨리 다가왔다.“한 달간의 숙려기간에 지한 씨가 만약 생각이 바뀌어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하죠?”심미연은 여태껏 너무 힘들게 버텨왔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터지니 결국 멘탈이 무너졌다.강준형은 너무 서글프게 우는 심미연을 보고 가슴이 아파 다급히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지한이가 이혼에 대해 번복하지 못하도록 이 할아버지가 막아줄게.”심미연이 강지한과 함께 있어봤자 불행하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강제적으로 두 사람을 붙여줄 수는 없었다.심미연은 어쩌면 강지한과 헤어지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녀가 행복하
강준형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답했다.“지한아, 너랑 미연이 관계도 오늘부로 끝났는데 난 여전히 그 애가 너무 아쉬워.”그는 강지한이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살피다가 다시 어떻게 결정할지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강지한은 백미러로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문득 되물었다.“할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뭐예요?”강준형은 당연히 심미연 편을 들겠다고 예상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지금은 알고 싶었다.“이혼을 안 하려는 거지?”강지한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네.”강지한도 굳이 숨길 마음이 없어 솔직하게 답했다.“그렇다면 난 지금 당장 법원에 전화해서 숙려기간 없이 바로 이혼 신청에 넣어달라고 말할 거야.”강준형은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보여줬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강지한은 놀라기도 하고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친손주는 바로 저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손을 잡고 저를 모함할 수 있어요?”그러자 강준형이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난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놨어. 미연이가 너랑 이혼이 확정되면 난 내 생일에 바로 큰 잔치를 열 거야. 그리고 전 경성에서 괜찮다고 하는 젊은 남자들은 모두 참석하게 해서 미연이더러 혹시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골라보라고 할 예정이야.”그때 가서 미연이를 자기 손녀도 들일 생각이다.그렇게 되면 강지한과는 부부였다가 남매사이로 되기에 한방에 단념시킬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옆에 있을 때 소중하게 여겼어야지.’“할아버지, 저랑 미연이는 이혼하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어요. 만약 이 기간에 미연이가 마음이 바뀌면요?”강지한은 심미연이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강준형은 백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고 답했다.“다른 여자였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연이는 아니야. 그 애가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말 너에 대한 모든 정이 떨어진 것이고 이혼하자고 했으면 이미 마음이 돌아섰다는
성무진은 케이스를 힐끔 바라보더니 공손하게 답했다.“이건 강 대표님께서 사모님 생일에 드리려 했던 선물입니다. 그동안 진성 쪽 일들을 처리하느라 깜빡 잊고 못 드렸다고 하셔서 오늘 마침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미안하다는 말도 꼭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심미연은 재빨리 그 케이스만 성무진에게 돌려줬다.“합의서만 받고 이건 지한 씨한테 돌려줘요. 이제 이혼하면 남남이 되는 건데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사모님, 이건...”성무진은 한껏 난감한 얼굴로 손에 든 케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이걸 다시 강지한에게 가져가면 분명 비서라는 사람이 이런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했다고 월급 깎이는 건 고사하고 해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심미연은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신하린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성무진은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급히 심미연을 쫓아갔다.주차장까지 달려와 보니 심미연은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하여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가 차 창문을 두드렸고 심미연은 그의 모습에 차창을 내렸다.“할 말이 더 남았을까요?”심미연은 최대한 다정하게 물었다.“죄송한데 혹시 이 물건을 직접 강 대표님께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가져다드리면 분명 뭐라 할 것 같아서요.”성무진은 고개를 수그린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히 강지한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심미연은 그의 손에서 다시 케이스를 뺏은 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자, 이제 돌아가서 보고하셔도 됩니다.”“...”이혼하더니 심미연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 모습이 오히려 더 편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적어도 강지한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닌 자기 주관이 있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오빠, 빨리 가자.”심미연은 차창을 다시 올리고 앞에 앉은 박유진에게 말했다.그러자 박유진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거절당한 박유진은 속상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그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대명으로 와.”박유진은 심미연과 같이 대명을 발전시키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말에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아이를 낳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예약해 두는 거야? 내가 그때 가서 아이를 낳고 더 이상 변호사 일이 하기 싫어질 수도 있잖아.”“기다릴게.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박유진의 말에는 사실 두 가지의 뜻이 담겨 있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하린은 순간 심미연이 부러워졌다.그녀도 주변에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으면 바로 결혼했을 것이다.“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심미연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래. 나중에 다시 얘기해.”박유진은 재빨리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사실 넌 어렸을 때부터 춤에 소질이 있어서 나중에 댄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글쎄 뜬금없이 변호사가 될 줄은 나도 몰랐거든.”“어렸을 때는 돈이 너무 없다 보니 그저 빨리 돈만 벌고 싶었어. 그리고 나중에 커서 불공평한 일을 많이 마주치다 보니까 변호사가 되어서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내가 만약 변호사가 아닌 춤의 외길을 걸었다면 아마 온지유 씨 같은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겠지?”말을 마친 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순간 너무 자기중심적인 발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자본이 없는데 어떻게 세계 최고의 댄서가 될 수 있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있겠어?”신하린은 한껏 그녀를 비웃었다.“자기 실력이 아닌 남자 꼬시는 방법으로 최고의 무대에 오를 수는 있겠다.”아마 온지유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그녀의 실력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사실 강지한이 뒤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말이다.박유진은 심미연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진 걸 발견하고 아직 그녀가 강지한을 잊지 못했다는 걸 알아챌
강지한은 듣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대체 무얼 믿고 이리도 당당한지 알 수 없었다.“누구랑 같이 있었어?”“박유진 씨가 데리러 오셨습니다.”성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순간 주변 공기가 몇도 차가워졌다는 걸 느끼고는 괜히 온몸이 떨렸다.“지유는 지금 어디 있어?”강지한은 계속 말했다가는 열받아 죽을 것 같아 아예 화제를 돌렸다.“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성무진도 강지한의 뜻을 잘 알지 못하니 뭐라고 더는 말을 못 했다.“그래. 일단 나가 봐.”성무진은 재빨리 사무실에서 나왔다.강지한은 그가 나가자마자 액세서리 케이스를 열어보았다.안에는 이노하이브에서 올해 런칭한 신상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는데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너무 예뻐서 금세 인기 상품으로 되었다.고를 때도 심미연의 하얗고 기다란 목에 걸어주면 분명 이쁘겠다고 상상했는데 이걸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니.바로 이때, 카톡 메시지 알람 소리가 들렸다.강지한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온지유가 그에게 박유진 사진과 함께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내 기억으로는 미연 씨가 똑같은 넥타이를 샀던 것 같은데?]그녀의 한마디가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순간 거친 파도를 만들었다.강지한은 문득 예전에 심미연이 자신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는데 여태껏 잊어버리고 있었다.결국에는 그 넥타이가 박유진의 목에 걸려있는 걸 본 순간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러다가 곧 전화벨이 울렸는데 강지한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리고 빠르게 수화기 너머에서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한 씨, 나도 금방 봤는데 미연 씨가 그 넥타이를... 박유진 씨한테 선물해 줬어. 두 사람이 너무 자연스러운 게 누가 봐도... 연인 같잖아.”강지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두 눈을 부릅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 위에 내팽개치자 빠르게 서류들이 바닥
박유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급히 고개를 돌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은 여전히 변함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유진 오빠, 왔어?” 그녀는 몸을 돌려 그에게 달려가며 목소리는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그녀의 그림자가 불빛에 길게 늘어지며 부드럽고 아련하게 흔들렸다. 강지한은 얼굴에 분노를 가득 담아 박유진을 노려보았다. 박유진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여 품에 안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속에 숨길 수 없는 사랑이 가득했다. 강지한은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그의 가슴을 조여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켰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괴로움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미안, 방금 전화받느라 늦었어. 이제 가자. 우리 먼저 들어가자.” 박유진은 심미연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목소리는 따스했다. “응. 가자.”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자연스럽게 그에게 맡겼다. 그녀와 강지한은 이미 이혼했고 이제 박유진과 당당히 함께할 수 있었다. “안 돼. 가지 마!” 강지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박유진은 그를 흘낏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이미 약속이 있습니다. 강 대표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시면 저희가 식사 후에 얘기하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얼굴에는 변함없이 온화한 미소가 있었다. 심미연은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배려와 사랑이 떠오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은한 따뜻함이 밀려왔다. 그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강지한의 시선 끝에서 심미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강지한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심미연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아파!” 심미연이
그때 온지유에 대한 범죄 증거를 수집했을 때 그녀의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강지한 옆에서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보였던 온지유가 뒤에서는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심미연 씨, 온지유를 안에 집어넣고 평생 고통을 받게 만든다고 해서 강지한의 마음에서 지유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세요? 심미연 씨는 평생 강지한과 함께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강지한은 눈에 살기를 띄우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에 시선을 두며 조용히 말했다. “육현성 씨, 굳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월래부터 강지한과 다시 시작할 마음은 없었어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주제를 돌렸다. “오히려 육현성 씨는 이번 생엔 온지유와 함께하고 싶어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겠네요. 정말 안타깝네요.”육현성의 얼굴은 불편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은 흐릿했다. 오랜 방탕한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의 몸은 심각하게 지쳐 있었다. 그는 온지유 같은 여자를 위해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왔고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미연의 말은 육현성의 가슴을 깊이 찌른 듯했다. 그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찢어지듯 일그러졌고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년이 죽고 싶냐?” 그는 손을 뻗어 심미연의 목을 조르려 했다. 이번 생에서 온지유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몇 년간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심미연은 그 아픈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려 했다. 심미연이 몸을 피하려던 순간 갑자기 옆에서 한 다리가 튀어나와 육현성의 몸에 정확히 차올랐다. 육현성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고 몸을 간신히 가다듬은 뒤에야 강지한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 강지한은 심미연을 뒤로 숨기듯 서서 위압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육현성을 내려다보았다. “육현성, 내 여자를 때리는 장면 보라고 밥 먹자 했냐?”강지한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고 목소리는 차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말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있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두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한서윤은 남자를 보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현성 오빠, 심미연 씨가...”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한서윤은 마치 가련한 여인처럼 보였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약해지게 했다. “일어나서 말해.” 육현성이 살짝 몸을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한서윤은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육현성이 온지유에 대한 깊은 감정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온지유가 부러웠다. 강지한은 온지유의 말이라면 다 들어줬고 육현성 역시 그녀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남자들이 모두 그녀 주위를 맴돌며 정말 행복해 보였다. 육현성은 한서윤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켰다. “먼저 들어가.” 그 말은 한서윤에게 한 것이었다. 한서윤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입술을 깨물며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유성 오빠, 오빠랑 같이 들어가고 싶어요.” 심미연은 두 사람의 쿵짝에 관심이 없었고 회원 가입을 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때 육현성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심미연 씨, 잠깐만요.”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뭐죠?” “일이 있어요.” “미안해요. 지금 바빠요.” 심미연은 육현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온지유를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 온지유가 저지른 큰 죄를 알고도 그녀를 해외로 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모습. 그런 사람은 확실히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심미연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현성 오빠, 심미연이랑 무슨 얘기 하려고요?” 한서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육현성도 심미연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니야?’ 육현성은 얼
그는 심미연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태하가 시끄럽게 굴면 아버님, 어머님이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심미연은 아들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그를 귀여워해 주면 태하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방방 뛰어다닌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박유진은 부드럽게 심미연을 안심시켰다. 박유진의 말을 듣고 심미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위치 보내줘. 내가 차로 갈게. 도착해서 만나자.” 박유진은 잠시 침묵한 뒤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박유진은 곧바로 위치를 보냈다. 심미연은 곧장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가벼운 메이크업을 마쳤다. 능숙하게 준비를 끝내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박유진이 보낸 위치를 따라 심미연은 차를 몰고 산장에 도착했다. 차가 입구에 다다르자 입구에서 차량을 멈춰 세웠다. “안녕하세요. 손님, 회원 카드 부탁드립니다.” 심미연은 이 산장이 회원 전용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지금 회원 가입을 할 수 있을까요?” 경성에 살고 있고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아서 회원 가입을 하면 편리할 것 같았다.그때 귀에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풍림산장의 회원 연회비가 1억 원이 넘는데 심미연 씨는 그 정도 돈이 있나?” 심미연은 고급 브랜드로 치장한 여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힐끗 쳐다봤다. 온지유의 가장 친한 친구 한서윤이었다. 예전에 온지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제일 먼저 등장하던 사람이었지만 심미연은 그녀를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마주쳐도 아예 모른 척하며 항상 그녀를 무시했다.“너 강지한 씨 찾으러 온 거지? 몇 년이나 죽었는데 아직도 미련 못 버리다니. 진짜 역겨워.” 한서윤은 심미연을 쓰레기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로 쏘아봤다. 심미연은 그 여자의 악의적인 기운을 똑똑히 느꼈고 아름다운 도화 같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차분히 응시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강지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왜 그 여자한테 물어봐야 해? 이런 건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지.”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미연이 낳은 아들은 결국 그의 아들이고 자신은 아이의 친아빠니까 심미연은 당연히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뭐?” 박시훈은 입을 크게 벌리며 충격을 받았다. 그 입이 너무 커서 닭알 하나 정도는 거뜬히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지한이 이런 말을 하다니...’ 외부인인 그가 듣기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는데 심미연이 들으면 얼마나 화가 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입 그렇게 크게 벌리고 뭐 하는 거야. 닫아!” 강지한은 박시훈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 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들며 무심히 덧붙였다. “상미의 친부모는 빨리 찾아야 해. 찾으면 그들에게 돈이라도 줄 생각이야.” 강상미는 그가 정성껏 키운 아이였다. 비록 강상미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더라도 그는 그 아이를 절대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친부모가 그때 상미를 버렸다면 이제 와서 그 아이를 찾을 리가 없을 거다.“알겠어. 내가 알아봐 줄게. 하지만 충고 하나 하자.” “네 전처, 이제 예전처럼 너한테 목매는 여자가 아니야. 지금 그 여자에겐 회사도 있고 로펌도 있어. 물론 자산 규모로만 보면 너와 비교가 안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 그녀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 됐어.”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박시훈은 오랫동안 강지한과 협력하며 지냈고 둘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그들 사이에 심미연이 없었다면 그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되찾으려 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심미연의 편에 설 것이다. “그 여자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나만 하겠어?” 강지한은
심미연이 방금 한 말이 갑자기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딸이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데 이건 아마도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혈연 관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네. 알겠습니다.” 성무진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그저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지한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강지한은 전화를 끊은 뒤 차를 몰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박시훈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강지한은 이미 두 잔의 술을 홀로 마신 상태였다. 박시훈을 보자 강지한은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 할 말이 있어.” 박시훈은 가슴에 손을 얹고 저항하며 말했다. “지한아, 우리 이렇게 친한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는 자신의 성향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 “앉아!” 강지한은 짜증이 난 듯 목소리에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박시훈은 몸을 살짝 떨며 조심스럽게 강지한 옆에 앉았다. 그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의자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강지한은 그런 박시훈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더욱 커졌다. “박시훈, 제발 좀 정상적으로 행동해.” “난 정상인데 너가 이상한 거지.” 박시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야말로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어 보여.’ “그만해. 이제 입 닫아!” 강지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박시훈은 손으로 입가에 지퍼를 닫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말해 봐.”그 목소리는 코로 나는 듯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당시 상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확인해봐. 정확한 출생일도 알려줘.” 그는 그때 문소영과 심서연이 말한 것만 믿고 너무 쉽게 넘어갔다. 사실 처음부터 조사를 했어야 했다. “상미의 출생에 의문이 드는 거야?” 박시훈은 강지한이 자신에게 손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자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제서야 깨달았냐?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 반응이 너무 느린
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잡고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끔찍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벌레처럼 비틀어진 그 흉터 자국이 손목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강지한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머릿속에 억지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강지한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심미연은 재빨리 손을 빼고 소매를 잡아당겨 흉터를 가린 뒤 다시 한 번 차갑게 얼굴을 굳혔다. “너랑은 상관없어.” 그 흉터는 그녀가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 자해의 흔적이었다. 당시 너무 많은 피가 흘렀고 만약 제때 구출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 해 그녀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매번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박유진이었다. 그녀는 박유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박유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다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오직 박유진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심미연, 넌 내 여자라는 걸 잊지 마. 당연히 내가 너를 신경 써야지.” 강지한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논리 속에서 심미연은 그와 결혼하고 함께 잠자리를 가졌으니 평생 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남자가 꿈꿀 자리는 없었다. 방금 전의 감정이 격하게 흔들린 탓에 심미연은 점차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더 이상 강지한과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가서 꿈이라도 꾸던가.” 그 말을 남기고 심미연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성 비서가 레스토랑 예약했어. 같이 가자.” 강지한이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심미연, 넌 도망칠 수 없어. 돌아왔으면 내 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함께 살아야지.” ‘박유진과 함께 있겠다고?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거야.’ 심미연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강지한은 그녀를 정말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장난감이라도 된는 것처럼 생각하는는 것 같았다. 원하면 가지겠고 필요 없으면 버리고.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난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아들을 빼앗아 올 거니까. 심미연, 그때 와서 나한테 구걸하지 마.” 강지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미연은 이미 임현에게서 강지한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아들 심태하의 양육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강지한은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지?’ ‘정말 한 점의 인간미도 없네.’“강지한, 너랑 이혼하고 나서 낳은 아이야. 너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심미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분노 어린 시선을 꽂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강지한이 온지유때문에 자신을 얼마나 괴롭혀왔는지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남자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랑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친자 검사를 하면 바로 나오겠지. 심미연, 못 하겠어?” 강지한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미 그는 심태하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아들을 자기 품에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아들만 손에 넣으면 심미연도 결국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내 아들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친자 검사를 하겠다는 거야?” 심미연은 싸늘하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그렇게 친자 검사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네 딸 샘플이나 가져와서 해보는 게 어때?” 이제야 그의 역겨운 속내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강지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3년 동안 키운 딸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친부모를 찾으려 하거나 친자 검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애초부터 그가 주운 아이였고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심미연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대표님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다. 문이 크게 열리며 들린 소리에 강지한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마치 잘 가꿔진 꽃처럼 눈에 띄게 싱그럽고 매혹적이었다. 강지한은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 숨을 고쳤다. “강지한, 비겁한 놈. 너 진짜 역겨워.” 심미연은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나서 이렇게 감정을 폭발시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지한이 너무 지나쳤다. 강지한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심미연, 여긴 내 구역이야. 내 앞에서 이렇게 난리치면 내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생각 안 해?” 강지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 예전 이 여자는 그 앞에서 항상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만 보여줬다. 그를 향해 화를 내는 일도 없었고 목소리조차 높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자는 그에게 소리치며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에게 유난히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의 마음속에 뜨겁게 불타는 불씨가 하나 떨어진 듯 그의 심장은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신고 해 봐. 경찰이 그 더럽고 비열한 짓을 한 널 잡을지 아니면 나를 잡을지 한 번 보자고.” 심미연은 망설임 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위에 있던 펜통을 들고 강지한에게 던졌다. “정말 뻔뻔하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평소 그녀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변호사로서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지한과 마주한 그녀는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냥 미쳐버려도 상관없다. ‘강지한이 그토록 추악한 짓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어.’비록 그녀가 미리 뒷문을 통해 프로젝트를 가져왔지만 그것도 그녀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