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재빨리 심미연을 사무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변호사님은 우선 사무실로 들어가요. 제가 상황을 알아볼게요.”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임현은 혹시라도 누군가 심미연을 해치려는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그러지 말고 차라리 경찰을 부르는 게 어떻겠어요?”심미연이 말을 꺼내는 순간 한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이 못된 년! 내가 이혼 소송을 맡겼더니 감히 내 남편을 유혹해?!”이 말에 로펌 내부는 금세 소란에 휩싸였다.의뢰인의 남편을 빼앗다니? 변호사가 상대편과 짜고 의뢰인을 배신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삽시간에 퍼졌다. 도덕적으로 파탄 난 변호사는 자격이 없지 않냐는 비난도 터져 나왔다.임현은 급히 심미연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막아섰다. 거칠게 달려든 여자는 문틀을 붙잡고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이 상황을 참지 못한 임현은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증거도 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면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저희도 법적 대응이 가능합니다.”“증거 있어! 둘이 식사하는 사진이 내 손에 있다고!”여자는 증오로 불타는 시선으로 임현 뒤에 선 심미연을 노려보았다.“못된 년, 남의 남편을 꼬셨으면 당당히 나와서 나랑 맞서 보란 말이야!”여자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내가 돈 주고 고용한 변호사가 내 남편 편을 들어 내 등을 치다니!’그렇게 생각할수록 한이 치밀었다.심미연은 임현의 어깨를 살짝 젖히고 앞으로 나섰다.“그 사진에 나온 사람이 정말 저입니까?”며칠 전만 해도 의뢰인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심야에 상담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무슨 오해나 음모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누가 뒤에서 나를 음해하려는 건가? 정말 악랄하네.’여자는 심미연의 담담한 태도에 더 화가 났다.‘이 여자가 합의를 자꾸 권유했던 게 내 재산을 빼앗기 위한 속셈이었나?’분노가 가슴속에서 다시 치밀어 올랐다.“사진을
심미연은 여자가 누군가에게 끌려 나가는 광경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로펌 안에서 함부로 그 여자를 어떻게 할 리도 없었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사라진 이상 이제 본격적으로 이 일을 누가 꾸민 건지 밝혀내면 될 뿐이었다.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긴 심미연은 인파 속에 숨어 있던 주아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은근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뻗어 주아연의 가발을 확 잡아당겼다.“전에 도 대표님 차에서 정사하다가 사모님한테 딱 걸려서 머리를 밀리셨다던데... 가발을 쓰고 계셨군요.”이 업계에선 누군가 비밀을 만들면 또 누군가 그 비밀을 알아내기 마련이다. 한번 소문이 나면 금세 퍼져나가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주아연은 항상 그녀보다 못했다. 그래서 돈 많은 유부남이라도 꼬셔보려고 했던 것인데, 하필이면 상대가 아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나타나자마자 그는 꼬리를 내렸다.주아연이 그런 일을 당한 날로 누군가 그녀에게 영상을 보냈다. 주아연이 가만히 있었다면 그녀도 이 영상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현지 때처럼 말이다.주아연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고 로펌 내에서 아무 소문도 듣지 못했기에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심미연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이야. 증거까지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그리고 아까 나간 제 의뢰인께 제가 그분 남편을 꼬셨다고 부추긴 사람도 주아연 변호사님 맞죠.”심미연은 여자가 보내준 사진을 휴대폰으로 열어 보였다. 사진 속 여성의 등에 있는 붉은 점을 짚으며 말했다.“주아연 변호사님 등에도 똑같은 붉은 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사진 속 얼굴은 분명 주아연이었지만 몸은 다른 여자였는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단숨에 달라졌다.“아까 의뢰인이랑 주아연 씨가 비상계단 쪽에서 속닥이던데 한패였나 봐.”“또 심 변호사랑 동시에 들어왔잖아. 심 변호사는 벌써 유명 변호사가 됐고 주아연 씨는 아직 재판도 못 나가봤다던데... 질투였나?”
진아리에게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심미연은 요즘 계속해서 증거를 모으고 진아리 남편 주변 인물들을 몰래 조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아리를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돌아온 건 뒤통수에 칼을 꽂는 배신이었다.그런 사람이라면 평생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을 힘든 상황에서 구해줄 필요도 없었다.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변호사님, 이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심미연은 옷차림을 가다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차를 기다리며 심미연은 신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신하린의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묻어났다.“미연아, 미안해!”“나 배 아파. 의사한테서 약 받아서 법정으로 좀 가져와 줘. 지금 당장. 재판 시작 전에 꼭 먹어야 해!”아까 그 여자가 달려들었을 때 손으로 막은 덕에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났다. 아니었으면 더 심하게 아팠을 것이다.요즘 들어 왜인지 자꾸 배를 다치는 일이 많았다.‘이러다 뱃속 아이가 언젠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면 어쩌지...’그녀는 속으로 불안감이 스쳤다.“배 아픈데도 법정에 가겠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해?”신하린은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심미연이 안쓰러워서 한마디 했다.임신한 사실을 강지한에게 들키지 않으려니 입원조차도 미리 가짜 진단서를 준비해야 했다. 배가 아파도 일을 미룰 수 없었고, 혹시라도 임신 사실이 드러날까 매일 전전긍긍이었다.“지금은 참을 만해. 걱정 말고 빨리 병원 가.”심미연은 미간을 짚으며 살짝 쉰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몸 상태 계속 신경 쓰고 이상하면 당장 병원 가는 거다, 알지?”신하린은 조바심 가득한 목소리로 당부했다.“응, 알겠어.”마침 차가 도착하자 심미연은 전화를 끊었다.차에 오르자 임현이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물었다.“변호사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제가 대신 신청이라도...”“아니에요, 괜찮습니다.”오늘 이 재판은 반드시 치러야 하고 미룰 수 없었다.임현은 더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심미연은 무심결에 휴대폰을 꽉 쥐었다.시어머니가 그녀에게 리우를 떠나라고 하는 건, 온지유를 위해 걸림돌을 치워주는 걸까? 마치 이전에 그녀가 누군가를 시켜 수액에 유산약을 주입했던 것처럼 말이다. 온지유가 임신했으니 그녀의 아이는 죽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내가 통보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머님한테 직접 전화하게 할게!”수화기 너머로 거칠어진 숨소리를 들은 온지유는 속으로 크게 흡족해하며 말했다.“내가 임신했으니, 넌 무조건 나한테 양보해야 해. 알겠어?”심미연은 힘껏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답했다.“지한 씨가 리우의 대표예요. 해고 건은 지한 씨가 직접 말하라고 하세요!”강지한이 가라고 하면 그녀는 주저 없이 떠날 것이다.온지유는 콧방귀를 뀌었다.“심미연, 너 지금 어머님한테 대놓고 대드는 거야? 아니면 강씨 가문의 늙은이가 널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그녀는 속으로 심미연이 문소영과 갈라서길 바랐다. 그래야 강준형이 보호하고 싶어도 못 보호할 테니까. 심미연이 집안에서 쫓겨나는 것도 시간문제다.그렇게 되면 그녀가 강지한의 합법적인 아내가 될 수 있고, 뱃속에는 강지한의 아이까지 있으니 강씨 가문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지위는 강지한 바로 다음이다.온지유는 강지한과 함께하는 수많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그려봤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장면들이었고, 강지한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갈수록 강렬해졌다.심미연은 온지유가 강준형을 그렇게 험담하는 걸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지한 씨와 결혼한 3년 동안, 제가 여기까지 온 건 할아버지 도움 아니라 제 힘입니다! 팀장님,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본인 위치를 똑바로 하세요! 지한 씨와 저는 부부고, 리우는 저희 거예요! 제가 떠나는 건 아무나 결정할 수 없고 오직 지한 씨만 할 수 있어요!”온지유가 리우에 온 첫날부터 심미연은 자신이 언젠가 해고당하리란 걸 예감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을 뿐이다. 그렇지만 온지유 앞에서만큼은 절대 기죽지 않을 것이다.임현은 그 말
자신처럼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리우에 온 첫날부터 심미연이 봐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임현은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심미연의 사과를 받겠는가.“전에 제가 리우에서 어떤 신분이었든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이건 임현 씨 혼자만 알고 계시면 돼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요!”심미연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사모님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계속 변호사님이라고 부르면 돼요.”사모님이라는 호칭도 그저 하나의 호칭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임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로펌의 다른 사람들은 줄곧 온지유를 미래의 사모님으로 떠받들어왔는데, 진짜 사모님은 이미 모두 곁에 있었다고 말이다.심미연이 너무 꽁꽁 잘 숨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즉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었을 소식을 말이다.하지만 임현은 걱정되었다. 이제 심미연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었으니 예전처럼 함부로 대할 수는 없고, 당연히 어느 정도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로펌 사람들은 눈치가 빠른 편이라 언젠가 이 변화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그러면 심미연의 비밀을 지키기 어려울지도 몰랐다.“임현 씨, 오늘 사건 꼼꼼히 검토해 봤나요?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면 승률을 더 높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심미연이 임현에게 물었다.법정에서는 순간적인 대처 능력이 관건이다. 상대방이 언제든 새로운 증거나 증인을 내세울 수 있다. 강한 멘탈과 빠른 대응력이 없으면 승소하기란 정말 어렵다.“아니요...”임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심미연을 따라 법정에 나갔을 때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갑자기 의견을 묻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생각해 보지 않았어도 괜찮아요. 다음에 사건 자료를 정리할 때는 좀 더 고민해 보세요.”만약 심미연이 리우를 떠나게 된다면 임현은 혼자 성장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가능한 한 많은 걸 익혀두는 게 그녀에게 유리했다.임현은 심미연이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변호사
심미연은 한참 지나서야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유가 뭐야?”‘온지유가 한마디 했다고 바로 휴가를 주는 거야?’“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좀 더 있어.”강지한의 답변은 배려심 많은 이유처럼 들렸지만 심미연은 발밑에서부터 한기가 스며들 뿐이었다.예전이라면 감동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몸속까지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지한 씨, 편애는 당연히 할 수 있어. 근데 아무것도 모르고 남 말만 믿고 날 죄인 취급하는 건 아니지 않아? 이번 일은 리우 직원 중 누군가가 일부러 날 곤란하게 했고, 난 그냥 조금 반격했을 뿐이야. 근데 온지유 전화 한 통에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이게 말이 돼?”심미연은 억울함에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휴가를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지한 씨가 날 사랑하든 말든 난 아직 지한 씨 아내야. 내 체면은 지한 씨와도 이어져 있어. 온지유가 정신을 못 차린다 쳐도, 지한 씨 머리까지 안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리우 직원들은 온지유를 미래 사모님으로 여기며 알랑대고 있다. 평소 심미연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들은 얼른 그녀가 나가떨어지길 바라며 온지유에게 험담을 부풀려 전했을 것이다.온지유는 지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써서 심미연을 겨냥하고, 강지한은 심미연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인물이다.강지한의 한 마디로 온지유는 목적을 달성하고, 심미연은 온지유가 권력을 과시하는 희생양이 된 꼴이었다. 생각만 해도 우스웠다.“심미연, 넌 왜 자꾸 지유 탓만 해? 너 자신부터 돌아봐. 지유는 줄곧 네 칭찬을 하면서 나한테 너랑 싸우지 말라고 했어. 근데 넌 지금 하는 말이나 행동이나 그게 뭐야?”심미연은 헛웃음을 지었다.“그럼 이렇게 하자. 내 손에 있는 사건들 다 처리한 뒤에 휴가 들어갈게. 그러면 됐지?”‘온지유가 나를 칭찬을 했다고?’웃기는 소리다. 그건 그냥 겉치레 말일 뿐이다. 눈치 있는 사람이면 바로 알 텐데, 강지한은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건지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 이제 들어갈게. 너 먼저 가.”신하린은 등 돌리고 두어 걸음 갔다가 다시 달려와 심미연을 꼭 안으며 숨 가쁘게 말했다.“미연아, 나 그 사람한테 부탁해서 네 병원 바꿨어. 이제 병실에 몰래 들어와서 널 해치려는 사람 걱정 안 해도 돼!”그렇게 말한 뒤 신하린은 재빨리 달려가 버렸다.심미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겨우 그 사람에게서 벗어난 신하린이 그녀를 위해 다시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성인이 된 그녀가 둘 사이에 무슨 거래가 오갔는지 모를 리 없었다.‘신하린, 정말 바보 같아...’...인하병원, VIP 병실.온지유는 아직 얼굴이 부어 있어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뱀독은 제거했지만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상태였다.요 며칠 뱃속이 불편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스러웠다.그녀는 이 모든 불편과 고통을 심미연 탓으로 돌리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지한 씨, 미연 씨가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오늘 리우에서 기분 상했다잖아. 지한 씨가 남편이니까 화풀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 이따 가서 좀 달래줘.”온지유는 살기가 서린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도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넌 계속 걔 편만 들고, 걔는 널 마음에 안 들어 하잖아! 앞으로 내 앞에서 걔 칭찬하지 마. 듣기 싫어!”강지한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빛도 점점 험악해졌다.요즘 심미연은 왜 이렇게 성질이 거센지 의아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배짱이란 말인가?“둘이 부부잖아. 서로 이해하고 품어줘야지.”온지유는 강지한의 말을 듣지 않고 듯 계속 부드럽게 말했다.“이번에 미연 씨가 리우에서 의뢰인이랑 싸우고 소란 피운 건 사실 영향이 커. 며칠 쉬게 한 뒤,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출근하게 하는 게 오히려 보호하는 거야.”강지한은 미간을 주무르며 답했다.“심미연은 네가 말한 대로 처리할게. 의뢰인 쪽은 네가 사람 시켜서 얘기할 거야. 리우가 무료로 소송 맡아준다고
온지유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무심결에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둘이 사이 안 좋았잖아. 지한 씨가 왜 심미연 편을 들어주지? 심미연 그 천한 년이 분명히 나 몰래 지한 씨를 유혹한 거야. 뻔뻔하네!’“몸조리 잘하고 회복되면 퇴원해. 어머니한테 말해뒀으니 네가 가서 같이 지내. 성 비서한테 영양사랑 도우미 구하라고 했어. 돌아가면 널 보살펴줄 사람 있으니 신경 쓸 거 없어.”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나갈 준비를 했다.요즘 회사가 정말 바빴다. 지자체 입찰 건도 마쳐야 하고 해외 지사도 상장 준비를 해야 한다.“지한 씨, 나 어머님이랑 같이 살기 싫어. 혼자 살면 안 돼?”온지유는 정말 문소영과 한집에서 지내기 싫었다.문소영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면 뱃속 아이에 대한 비밀을 알아챌까 걱정이었다. 이 아이는 애초부터 강지성의 아이가 아니니까.강지한은 그녀 말을 듣고 돌아보며 물었다.“왜?”그는 전에 온지유가 일 안 하면 굶는다길래 먹고살 걱정 없게 해주려고 한 말이었다. 이제 와서 왜 또 싫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의사가 임신 기간 내내 기분 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아이한테 좋대. 근데 어머님이랑 같이 있으면 사이가 안 좋을 것 같고, 그러면 아이 키우는데도 안 좋아!”온지유는 다급하게 설명했다.그녀는 강지한이 진짜로 문소영과 살게 할까 봐 두려웠다.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성 비서한테 매달 생활비 넣으라고 할게.”온지유는 잠시 안도했지만 곧 다시 불안해졌다.“네가 내게 생활비 보내는 건 명분이 없잖아. 나중에 미연 씨가 알면 법적 수단으로 돈 돌려달라 할 거야!”온지유는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사실 빨리 강씨 가문의 정식 안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이런 말은 못 했다.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일단 갈게. 이건 다시 생각해 보자.”병실을 나서며 강지한은 이번 달 심미연에게 생활비 2000만 원 더 주라고 성무진에게 말하는 걸 깜박했다고 생각했다.‘회사 돌아가면 바로 송금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