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 이제 들어갈게. 너 먼저 가.”신하린은 등 돌리고 두어 걸음 갔다가 다시 달려와 심미연을 꼭 안으며 숨 가쁘게 말했다.“미연아, 나 그 사람한테 부탁해서 네 병원 바꿨어. 이제 병실에 몰래 들어와서 널 해치려는 사람 걱정 안 해도 돼!”그렇게 말한 뒤 신하린은 재빨리 달려가 버렸다.심미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겨우 그 사람에게서 벗어난 신하린이 그녀를 위해 다시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성인이 된 그녀가 둘 사이에 무슨 거래가 오갔는지 모를 리 없었다.‘신하린, 정말 바보 같아...’...인하병원, VIP 병실.온지유는 아직 얼굴이 부어 있어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뱀독은 제거했지만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상태였다.요 며칠 뱃속이 불편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스러웠다.그녀는 이 모든 불편과 고통을 심미연 탓으로 돌리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지한 씨, 미연 씨가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오늘 리우에서 기분 상했다잖아. 지한 씨가 남편이니까 화풀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 이따 가서 좀 달래줘.”온지유는 살기가 서린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도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넌 계속 걔 편만 들고, 걔는 널 마음에 안 들어 하잖아! 앞으로 내 앞에서 걔 칭찬하지 마. 듣기 싫어!”강지한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빛도 점점 험악해졌다.요즘 심미연은 왜 이렇게 성질이 거센지 의아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배짱이란 말인가?“둘이 부부잖아. 서로 이해하고 품어줘야지.”온지유는 강지한의 말을 듣지 않고 듯 계속 부드럽게 말했다.“이번에 미연 씨가 리우에서 의뢰인이랑 싸우고 소란 피운 건 사실 영향이 커. 며칠 쉬게 한 뒤, 일이 잠잠해지면 다시 출근하게 하는 게 오히려 보호하는 거야.”강지한은 미간을 주무르며 답했다.“심미연은 네가 말한 대로 처리할게. 의뢰인 쪽은 네가 사람 시켜서 얘기할 거야. 리우가 무료로 소송 맡아준다고
온지유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무심결에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둘이 사이 안 좋았잖아. 지한 씨가 왜 심미연 편을 들어주지? 심미연 그 천한 년이 분명히 나 몰래 지한 씨를 유혹한 거야. 뻔뻔하네!’“몸조리 잘하고 회복되면 퇴원해. 어머니한테 말해뒀으니 네가 가서 같이 지내. 성 비서한테 영양사랑 도우미 구하라고 했어. 돌아가면 널 보살펴줄 사람 있으니 신경 쓸 거 없어.”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나갈 준비를 했다.요즘 회사가 정말 바빴다. 지자체 입찰 건도 마쳐야 하고 해외 지사도 상장 준비를 해야 한다.“지한 씨, 나 어머님이랑 같이 살기 싫어. 혼자 살면 안 돼?”온지유는 정말 문소영과 한집에서 지내기 싫었다.문소영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면 뱃속 아이에 대한 비밀을 알아챌까 걱정이었다. 이 아이는 애초부터 강지성의 아이가 아니니까.강지한은 그녀 말을 듣고 돌아보며 물었다.“왜?”그는 전에 온지유가 일 안 하면 굶는다길래 먹고살 걱정 없게 해주려고 한 말이었다. 이제 와서 왜 또 싫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의사가 임신 기간 내내 기분 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아이한테 좋대. 근데 어머님이랑 같이 있으면 사이가 안 좋을 것 같고, 그러면 아이 키우는데도 안 좋아!”온지유는 다급하게 설명했다.그녀는 강지한이 진짜로 문소영과 살게 할까 봐 두려웠다.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성 비서한테 매달 생활비 넣으라고 할게.”온지유는 잠시 안도했지만 곧 다시 불안해졌다.“네가 내게 생활비 보내는 건 명분이 없잖아. 나중에 미연 씨가 알면 법적 수단으로 돈 돌려달라 할 거야!”온지유는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사실 빨리 강씨 가문의 정식 안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이런 말은 못 했다.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일단 갈게. 이건 다시 생각해 보자.”병실을 나서며 강지한은 이번 달 심미연에게 생활비 2000만 원 더 주라고 성무진에게 말하는 걸 깜박했다고 생각했다.‘회사 돌아가면 바로 송금
그렇게 되면 강 대표한테는 말할 수 없다. 사무실에 돌아온 뒤, 성무진은 문을 닫고 박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 가서 강지한에게 알린 다음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사실 그의 매달 월급은 꽤 높은 축이지만 업무 강도가 세고 또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요즘 바쁘고 힘든 데다가 강지한의 컨디션도 안 좋은 바람에 그는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해서 머리가 한 웅큼씩 빠지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 왠지 서른도 안 되어 대머리가 될 것 같았다.오전 근무가 끝난 뒤 그는 냉큼 컴퓨터를 끄고 강지한의 사무실로 향했다.“대표님, 가실까요?”박유진 쪽에서 이미 식당을 예약해서 12시까지 가면 된다.하여 지금 출발해도 12시가 넘을 것 같았다.“이 서류만 보고.”강지한은 성무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서류만 봤다.하여 그는 옆에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맞다, 이번 달부터 심미연에게 매달 5000만 원 씩 생활비로 보내. 그리고 사람을 시켜서 그 미용실을 매물로 내놨는지 확인하고 내놨으면 그걸 사서 지유에게 넘겨.”방금 고민해 봤는데 매달 온지유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미용실 하나를 넘겨서 직접 운영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미용실로 돈을 벌게 되면 앞으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성무진은 당연히 이유를 묻지 않았다. 강지한의 결정이라 당연히 물을 이유도 없었다.그러다 문득 심미연이 안쓰러웠다.포브스 랭킹 3위 안에 드는 최고 부자와 결혼했지만 그에게 주는 생활비 5000만 원으로는 다른 부잣집 사모님의 가방 하나도 사지 못한다. 문서를 보고 있는 강지한이 혹시나 그의 속내를 알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그는 서류에 사인한 뒤 다시 펜 뚜껑을 닫고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고 성무진은 그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식당 룸 안에서 박유진은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모든 행동에 우아함이 배어있어 한눈에 봐도 귀하게 자란 도련님 느낌이 들어 괜스레 보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그러다가
박유진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 자기도 모르게 술잔을 꼭 쥐었다.강지한은 불과 몇 년 만에 이노하이브를 세계 500강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포브스 랭킹에도 올린 사람인데 이대로 아무 계획도 없이 손 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이런 사람은 특히 차갑고 냉정해서 동정심이나 연민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었다.심미연은 그와 같이 사는 게 가뜩이나 고통스러울 텐데 만약 이 화를 전부 그녀에게 돌린다면 그의 말대로 심미연만 고생하게 된다.그것만 생각하면 박유진은 가슴이 아파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절대 그 고통을 심미연에게 안겨줄 수 없었다.하여 박유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신 뒤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원하는 게 뭐예요?”강지한은 괴로워하는 박유진의 모습이 이상하게 짜증 났다.그 원인이 바로 자기 아내인 심미연 때문이란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애틋한 사이인 것 같았다.“듣자 하니 지금 바렐 그룹에서도 정부 프로젝트에 참석한다고 하던데 그쪽에서 먼저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어떨지요?”현재 바렐 그룹은 가장 강력한 이노하이브의 경쟁그룹인데 만약 그들이 물러서면 이노하이브에서 이 프로젝트를 단번에 먹어버릴 수 있다.여기서 중요한 건 박유진이 회사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마침 주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근데 이 프로젝트를 잃게 되면 박유진이 이사회에 빨리 발을 붙이는 게 어쩌면 어려워질 수 있다. 강지한은 과연 박유진이 그만큼 심미연을 사랑하는지 떠보고 싶었다.“네! 그럴게요.”하지만 박유진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회사와 심미연중에서 당연히 심미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또한 그는 지금 이 프로젝트를 잃는다고 해도 빠르게 바렐 그룹을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자기 능력에 대해 자신 있었다.순간 강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지금 바렐 그룹에 제대로 발도 못 붙이는 상황인데 이렇게 흔쾌히 받아들이다니!그만큼 심미연이 그에게는 매우
심미연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답했다.“점심이라고 같이할까요?”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름 아닌 박유진의 어머니인 이미자였다.예전에 심미연을 엄청 사랑해줬고 또 심미연도 그녀에게 항상 고마웠다.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전화 왔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다.“뭐 먹고 싶어? 내가 예약할게.”이미자는 혹시나 심미연이 놀랄까 봐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이모가 중국 음식을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혹시 신촌에 그 중국집은 어떠세요?”예전에 심미연은 박유진네 집에 자주 가서 밥을 먹었기에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걸 기억하네. 그래, 그럼 그 식당으로 예약할게.”이미자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한 듯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진심으로 심미연을 좋아했고 자기 며느리로 데려오고 싶었으나 아쉽게 그러지 못했다.너무 아쉽고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그럼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고 있을게. 이따 봐.”“네. 이따 뵙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심미연은 임현에게 말했다.“이건 나중에 정리하고 먼저 가서 밥 먹어요.”임현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변호사님, 혹시 계속 리우에 있으면 안 될까요?”“당연히 안 되죠.”심미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떠나는 즉시 임현 씨는 온지유에게 붙어요. 그 여자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줘야 나중에라도 임현 씨를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변호사님이 가면 저도 갈래요.”임현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임현 씨는 절대 가면 안 돼요. 리우에 있는 게 임현 씨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혹시 알아요? 제가 다시 돌아올지.”심미연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다독여줬다.강지한은 분명 그녀더러 휴가를 내라고만 했지 아직 해고한다는 말은 없었다.하여 최대한 돌아오리라 다짐했다.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도 있고...하지만
심미연의 목소리에 주아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아까 나간 게 아니었어요? 왜 또 와요!”심미연은 책상 쪽으로 다가가 위에 놓인 화분에서 소형 카메라를 떼어내며 말했다.“당신 얼굴이 보여서 냉큼 달려왔죠.”“자기 사무실에 웬 카메라까지 달아놓고 난리예요!”그러다가 주아연은 옆에 있는 임현에게 말했다.“봤죠? 이런 식으로 감시하고 있는 거? 임현 씨를 전혀 믿지 못하는 뜻이라고요.”그 말에 임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심 변호사님께서 책상에 뭘 달아놓든 그건 변호사님 자유지, 왜 이간질해요?”최근 사무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기와 질투로 꽉 차 있었다.하여 믿을 사람이라고는 심미연 밖에 없었고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무한 지지해 주기로 다짐했다.“주아연 씨, 당신은 오늘부로 해고입니다. 그러니까 제 사무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제 다시 쓸 일이 없을 거예요.”심미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모습에 주아연은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 물었다.“지금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거예요? 사장님? 아니면 온 팀장님?”심미연이 그녀의 물음에 미간을 찌푸렸다.온 팀장이라...강지한은 온지유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는구나.이때,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지금 내 사무실에 와서 난동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사람 시켜서 처리해 줘.”심미연은 주아연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사실 저번에 주아연이 차에서 남자랑 불미스런 짓을 하던 동영상을 손에 넣은 뒤로부터 그녀를 쫓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그녀와 같이 풍기 문란한 사람이 어떻게 변호사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주아연은 애써 괜찮은 척, 팔짱을 끼고 심미연이 통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그러다가 문득 본인은 온지유가 직접 뽑은 사람인데 심미연의 한 통화 전화로 해고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여 그녀가 창
“미연 씨, 빨리 올라가요. 사모님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왕지현이 낮은 소리로 그녀를 독촉했다.그녀는 이미자를 올해로 20년째 모시고 있는데 오늘처럼 컨디션이 나쁜 모습은 처음 본다. “네, 올라가요.”왕지현은 그녀를 데리고 이미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이미자는 아주 다정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는데 아마 박유진이 어머니 성격을 똑 닮은 것 같다.심미연은 어릴 적부터 거의 박씨 가문에서 살다시피 했고 이미자도 그런 그녀를 엄청 예뻐해 줬다.그러다 나중에 강지한과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쪽으로 발길을 끊게 되었는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강지한과 결혼한 3년 동안 심미연은 박유진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박씨 가문에 가지 않았고 천천히 그 집안과 선을 그었다.심씨 가문에서 그쪽을 주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지한이 박씨 가문에 대해 아는 게 싫었다.사실 강지한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혹시나 심미연과 사이가 틀어지면 박씨 가문으로 그녀에게 협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여 박씨 가문이 심미연의 약점이란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들아가 봐요.”왕지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룸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자는 한창 차를 마시고 있었고 심미연은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입니다.”그제야 이미자는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순간 눈시울이 빨개졌다.“미연아, 왜 이리도 말랐어?”예전에도 말랐지만 얼굴만은 살이 포동포동했었는데 지금은 한눈에 보아도 잘 지내지 못한다고 느낄 정도로 안쓰럽게 변해있었다.심미연은 지금 임신 상태지만 아무리 입덧이 줄었다고 해도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했다.게다가 강지한까지 괴롭히는 관계로 더욱 입맛이 사라져 제대로 안 먹었더니 지금처럼 야윈 것이다. 심미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그녀는 자기 일에 대해 말하기 싫었다.우
심미연의 태도를 보면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지?“이따 병원에 한번 가볼게요.”말을 마친 뒤 이미자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다정하게 물었다.“혹시 주문하셨어요? 안 했으면 제가 가서 골라볼게요.”“그래, 네가 해.”그녀의 말에 심미연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이미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는데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자기 아들을 잘 알고 있었다. 보기에는 성격이 온화해 보이지만 고집스레 몇 년 동안 심미연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하여 혹시나 여자 하나 때문에 사고 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3년 전 심미연과 강지한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을 때 만약 박유진이 갑자기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의 성격에 당장이라도 심미연을 데리고 도망쳐서 아마 다시는 경성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해외에서 치료받던 3년 동안, 이미자는 수없이 많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면서 매번 그가 영영 떠날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는 모든 걸 다 이겨내고 다시 깨어났다.의사도 그가 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고 마음속으로부터 그를 격려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깨어났다면서 의학적 기적이라고 놀라워했다.그 격려해 준 사람이 심미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미자는 그저 그 사람이 고마웠다.그가 아니었으면 자기 아들을 진작에 떠나보내야 했을 것이다.심미연은 밖에서 주문을 한 뒤 재빨리 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에서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변호사님, 방금 주아연이 쫓겨나던 꼴을 변호사님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심미연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오후에 제가 좀 늦게 도착할 겁니다. 그러니까 저번에 예약했던 장 사모님은 임현 씨한테 맡길게요.”“네. 알겠습니다. 주아연이 가니까 백현지도 고소해하더라고요. 참나, 어이가 없어서!”예전에 두 사람 사이가 참 좋아 보였는데 그녀가 쫓겨나자마자 선을 긋고 바로 돌아선 모습이 참 역겨웠다.심미연은
심동현은 그때 고작 다섯 살이던 아이가 저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너무 미안해하지는 마. 당신의 마지막이 심미연보다는 더 처참할 테니까.”심서연의 말 몇 마디에 심동현은 그대로 기절해버렸고 심서연은 그런 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나, 나는 네 아빠가 불러서 온 것뿐이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덜덜 떨며 말하자 심서연은 여자의 발을 즈려밟으며 말했다.“넌 너무 더럽잖아.”물론 심서연도 남자와 노는 걸 즐기긴 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탐하는 여자들을 경멸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리자 다급히 발을 뗀 심서연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인터폰을 눌러보았다.역시나 성무진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는 칼을 들어 자신의 다리를 긋고는 절뚝이며 문을 열어주었다.“성 비서님... 저 좀 살려주세요...”눈을 감으며 죽는 척을 하는 심서연을 본 성무진은 바로 뒤따라온 사람을 향해 말했다.“이분은 차에 태워.”심서연이 그 사람에게 들려 나가자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동현과 여자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성무진은 강지한에 연락을 했다.*그때 심미연은 임현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함께 앉아있던 심태하는 자신의 앞에 가득 놓인 디저트들을 보며 숟가락을 든 채 놀라고 있었다.“엄마, 이거 다 내 거에요?”평소에는 달달한 걸 많이 못 먹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이러니 심태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응, 다 네 거야. 얼른 먹어. 대신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아프니까 적당히 먹어야 해.”“네! 조금만 먹을게요 그럼!”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심태하는 한입 한입 디저트들을 베어 물기 시작했다.심미연은 미소를 짓다가도 이렇게 일찍 철이 든 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왔다.엄마가 힘든 게 싫어서 세 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성숙한 행동들을 하는 걸 심미연이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임현은 그저 부럽다는 듯 말했다.“태하는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세
심서연이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심동현은 늘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 했다.그리고는 아들을 낳으라고 조은하를 달달 볶았는데 조은하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까지 내곤 했다.그때부터 심씨 집안의 딸은 하나여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 심서연은 일부러 유괴범을 찾아 심미연을 팔아버리려고 했었다.이미 말까지 다 맞추고 심미연을 데려간 건데 심서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심미연 때문에 심서연이 유괴범들에게 대신 끌려가게 된 것이다.그때부터 심서연의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고 심미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심서연은 심미연도 유괴범에게 자신을 넘기려고 계획을 짠 게 분명하다는 착각까지 해가며 그녀를 증오해왔었다.시골에 끌려간 뒤로 매일 맞고 욕을 먹으며 자라던 심서연은 양어머니가 아들을 낳게 된 뒤, 모든 신경이 그 아들에게 가 있는 틈을 타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그길로 기억에 남아있던 심씨 집안을 찾아갔다.그렇게 집에 돌아온 심서연은 예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심미연을 보며 질투심에 불타 그녀가 가진 걸 모조리 빼앗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심서연에게 회사를 맡긴다는 건 회사를 말아먹겠다는 거랑 다름이 없었기에 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심미연은 여전히 화려한 집에서 세계적인 부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그렇게 심서연이 점점 질투심에 눈이 멀어가고 있을 때 하늘이 고맙게도 심미연을 죽여준 것이다.굶어 죽어가던 심서연이 그 틈을 타 강지한에게 연락을 했고 그 덕에 아무 상관도 없는 강지한의 보살핌으로 강씨 집안 둘째 사모님 대우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녀가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된 건 다 문소영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사람 덕분이었다.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겪어봤기에 더욱더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심서연은 어떻게 해서든 강씨 집안에 들어가야만 했다.그리고 그동안 마음껏 누려온 심동현은 이제 그만 고생할 때도 된 것 같았다.“심서연! 걔
심서연은 자신의 말이 끝났음에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강지한이 혹시나 자신을 외면할까 봐 불안에 떨며 물었다.“지한 씨...”심서연은 사실 이번 기회에 강지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기회를 봐서 잠자리를 가지고 거기에서 애까지 생긴다면 그야말로 천운이겠지만 일단은 강지한을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었다.“성 비서 보낼게요.”“지한 씨가 직접 와주면 안 돼요?”자신이 대답을 했음에도 그칠 줄 모르는 심서연의 요구에 강지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상미 열나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귀국한 다음에 열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전에 왜 애 아프다는 말 안 했어요?”순식간에 차가워진 목소리에 심서연은 당황하며 물었다.“뭐라고요? 상미가 열이 나요? 전 진짜 몰랐어요!”해외에서는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빠서 상미는 시터에게 맡겨뒀었기에 심서연이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지한의 말투가 심상치 않아 그녀는 다급히 한마디 더 보탰다.“이틀 전에 열이 나서 병원 데려가긴 했는데 그때는 큰 문제 아니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좀 덜 썼는데, 많이 아픈 거예요?”심서연의 말이 변명임을 아는 강지한은 더 말하기도 입 아파 그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심서연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붙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혹시라도 강지한이 자신이 해외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걸 알고 자신을 내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지만 그렇다 한들 심서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강지한이 결정한 일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애초에 없었으니까.한편 조은하는 어두워져 가는 딸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 서연아?”조은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서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누워 계세요. 먹을 것 좀 챙겨올게요.”“얼른 구급차 불러서 아빠부터 병원에 데리고 가.”심동현이 아픈 것도 보기 싫었고 또 심동현이 죽으면 하나뿐인 딸도 죽을 것 같아 조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안 죽는다
조은하는 침대에 누워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심미연 생각을 하고 있었다.어린아이가 자신들이 가하는 모진 매를 견뎌냈을 걸 생각하면 조은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 왔다.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늘이 내린 벌 같았다.“엄마, 말할 수 있겠어요?”“응.”심서연이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묻자 조은하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아빠한테 또 맞은 거예요?”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서연은 한 번 더 물었다.“그냥 때리라지 뭐. 어차피 나 잘못한 거 많잖아.”조은하는 심동현에게 맞을 때마다 심미연에게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심미연은 이미 죽어서 자신이 이토록 참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나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심서연이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려 하는데 조은하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됐어! 나 괜찮아.”“엄마가 이 꼴로 누워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러고도 내가 사람이에요?”심서연은 마음 아파서 흐르는 눈물도 빠르게 닦아내며 방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에 다급해진 조은하가 심서연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건 공기뿐이었다.“서연아! 엄마한테 이제 딸이라곤 너 하나뿐인데 너까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얼른 돌아와.”자식을 앞세우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만약 심서연까지 잘못된다면 조은하는 정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기에 목이 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심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간 뒤였다.조은하는 조급한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는데 몸도 편치 않아서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조은하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릴 때 심서연은 이미 소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행동을 하고있는 심동현과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집에 있는 딸과 아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심동현에 이성이 끊겨버린 심서연은 주방에서 칼을 들고나와 심동현의 다리 위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여자를 향해 휘둘렀
적잖이 당황하는 심동현에 심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설마 또 집에 다른 여자 들인 거예요?”그 나이 먹고도 여자 생각만 하는 아빠가 심서연은 이제 정말 지겨웠다.“심서연, 넌 무슨 말버릇이 그래!”딸에게 들켜서 창피한 건지 심동현은 이내 역정을 냈는데 그게 또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심서연을 더 건드리는 격이 되어버려 심서연은 들고 있던 가방을 심동현에게 던지며 소리쳤다.“하반신 간수 똑바로 안 하면 병원 가서 수술시켜 버릴 거에요. 그냥 고자가 되어버리면 좀 조용하겠죠.”심동현이 여자랑 혼외자들한테 돈만 퍼주지 않았어도 심씨 집안이 망할 일은 없었기에 심서연은 이 모든 게 심동현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한편 가방에 맞은 머리에서 피까지 흐르자 심서연의 말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심동현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며 뺨까지 내리쳤다.“어디서 그런 배워먹지 못한 말을 해!”얼마나 힘을 준 건지 심서연의 얼굴은 심동현의 손자국대로 빨갛게 부어올랐다.“지금 나 때렸어요?!”“그래! 때렸다 왜! 내가 너 때려죽일 수도 있어.”심동현은 발악하는 심서연을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네가 이딴 년인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죽게 내버려 뒀을 거야. 괜히 데려왔어 진짜!”몇 년 동안 심동현은 줄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만약 그때 심서연을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심미연이 유일한 딸 일 테고 그러면 3년 전 심미연이 죽었을 때 모든 재산을 다 가지게 되는 것인데, 심동현은 그러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한으로 남았다.강지한이 위자료로 200억과 함께 이노하이브의 주식과 집, 차까지 줬다던데 다른 걸 다 떠나서 200억도 여생을 평안하게 보내기엔 충분한 금액이었다.심미연이 아닌 심서연을 선택한 대가로 심동현은 다리 밑에서 굶어 죽을 뻔했었다.물론 3년 동안 심씨 집안 사람들이 먹고 쓰고 입는 건 따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손에 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평생을 함께하겠다던 여자는 진작에 도망가버렸고 그렇게 심동현은
아들을 낳으면 그 엄마도 귀해지는 법이다.“아이를 가지려고 계속 남자를 만났어? 그러다가 혼혈아를 낳으면 낳자마자 강지한의 아이가 아닌 게 뻔하잖아! 역시 시골에서 자란 촌뜨기는 머리가 둔해. 너 계속 이런 짓거리만 한다면 난 널 버리는 카드로 만들어 폐기할 거야. 그때 가서 울며불며 애원하지 마.”문소영은 쌀쌀하게 웃었다.“하지만 강상미에게 저를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제가 보이지 않으면 상미가 절 찾을 거예요.”심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했다.문소영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봤다.“강상미는 강지한의 아이야. 세 살배기인 아이지만 속셈이 깊어 넌 걔를 이길 수 없어.”“어쨌든 전 강상미 엄마 노릇을 3년이나 했어요. 내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이상해할 거예요. 그리고 어르신도 물을 거예요.”문소영의 버림을 받을까 봐 심서연은 다급히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엄청난 부귀를 누려온 심서연은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까 봐 핑계를 둘러댔다.“강상미가 어떻게 온 아이인지 너와 나는 잘 알고 있어. 강상미를 너의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하지 마!”문소영은 심미연과 닮은 이 얼굴을 보고 생각에 빠졌다.‘지난 3년 동안 내가 그렇게 많은 기회를 마련해 줬어. 네가 만약 심미연 절반만큼이라도 똑똑하다면 이 기회를 잡았을 텐데 넌 아직도 강지한과 잠자리조차 가지지 못했어. 그러고는 감히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강지한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다니.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네.’“하지만 전에 저에게 임신하기만 하면 지한 씨와 결혼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심서연은 문소영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할 수도 없는 일을 감히 약속하다니.“심서연, 잘 들어. 지금 너에겐 강상미를 잘 키우는 길밖에 없어. 강상미가 하루를 산다면 너도 상미 곁에서 엄마라는 말을 들으며 함께 살 수 있어. 하지만 상미가 죽으면 너도 강씨 가문에서 쫓겨날 거야.”문소영이 또박또박 말했다.심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속의 모든 감
“그 여자는 내 얼굴을 꼬집고 내 손을 잡아당겼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소리도 질렀어요. 아무튼, 엄청 무서웠어요.”그러면서 심태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킨 후 또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전에 엄마에게 말했잖아요.”심미연은 그제야 공항에서 있었던 이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이 사건에 대해 박유진이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없었다.‘혹시 아직 찾지 못한 건 아닐까?’“하지만 저는 방금 그 여자에게 복수했어요. 엄마, 미리 말하지만 저는 그저 앞으로 여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했을 뿐 모함하지 않았어요.”심태하가 득의만면해서 말하자 심미연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너 무슨 짓을 했어!”“그 여자의 휴대폰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문을 넣었어요.”심태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의 말을 듣고 심미연은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심태하는 비록 어리지만 사리가 밝아 함부로 괴롭히지 않는다. 그 여자가 먼저 심태하를 괴롭혔으니 반격하는 것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심서연이 문소영의 거처에 도착하자 기사가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심서연 씨, 차에서 내리시죠.”심서연은 치맛자락을 들고 내리며 기사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곧 나올 거예요.”기사는 차 옆에 단정히 서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차분하게 말했다.“저는 강 대표님의 지시를 따릅니다.”즉 강 대표님이 기다리라고 지시하지 않았으면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화가 나서 표정이 찌그러진 심서연은 기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강지한에게 고자질하려고 했다.휴대폰을 열자마자 화면에 커다란 피투성이가 된 입이 보였는데 그 입에서는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문자가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 얼굴을 뜻밖에도 그녀의 것이었다.심미연은 깜짝놀라더니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이게 누가 한 짓이야!”‘나에게 잡히기만 한다면 가죽을 벗겨버릴 거야. 괘씸한 놈.’기사는 그녀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는 즉시 운전석에 올라탄
신하린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분명히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하나를 잃었으니 지난 몇 년 동안 심미연이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른다.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심미연은 위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심태하의 방문을 열었다.방안의 카펫 위에 작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는 온통 코드로 가득 차 있다.심미연은 발을 들여놓지 않고 오히려 손을 들어 노크했다.노크 소리에 작은 아이는 신속히 노트북을 닫은 후 고개를 돌려 심미연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무슨 일 있어요?”심미연은 그의 비밀을 들켜버린 것처럼 켕겨 하는 모습을 보고 묻지 않았다.“임현 이모가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고 했으니 나갈 준비를 해야 해.”그녀는 무심코 바닥에 놓인 컴퓨터를 힐끗 보았다.‘이 녀석이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지?’심태하는 즉시 그녀를 향해 달려와 품에 안기며 고개를 들어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엄마, 너무 사랑해요!”심미연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만지며 부드럽게 웃었다.“엄마가 말했지? 해킹 기술로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않으면 난 화내지 않아.”이 녀석은 항상 입에 발린 말을 하며 그녀를 즐겁게 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심태하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난 가끔 나쁜 사람을 벌할 뿐이에요.”“엄마는 널 믿어. 됐어,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언제든지 심미연은 아들을 무조건 믿었다.“엄마 최고예요!”심태하는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는데 이 친근한 동작에 심미연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손을 뻗어 그를 안아 올렸다.심태하는 그녀의 목을 껴안고 작은 얼굴을 내밀어 얼굴에 뽀뽀했다.“엄마, 저를 아들로 낳아주셔서 고마워요.”그의 주변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엄마는 걸핏하면 때리거나 욕했는데 그의 엄마는 이렇게 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런 엄마가 있어 행복했고 심지어 하늘이 준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변호사님, 방금 소송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드렸어요. 집에 도착했어요?”임현의 목소리는 경쾌했다.“이미 도착했어요. 점심 식사 함께할래요?”심미연이 물었다. 당시 그녀가 바다에 떠밀려 죽었다는 현상을 만든 후 제일 먼저 연결한 사람이 바로 임현이다.온지유의 사건은 그녀가 직접 법정에 나설 수 없어 임현에게 부탁했다.그녀와 3년 동안 함께 했고 또 임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절대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임현은 이 소송으로 경성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 후 심미연은 신하린과 로펌을 오픈했고 임현도 도우려고 함께 참여했다.지난 3년 동안 로펌이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는 데는 임현의 헌신적인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현재 임현은 이미 동업자가 되어 연봉이 수억 원에 달했다.“경성에 새로운 인기 레스토랑이 열렸는데 많은 사람이 방문하러 가더라고요. 듣기론 디저트가 아주 맛있다고 하던데 태하도 좋아하잖아요? 태하데리고 이 레스토랑에 가보는게 어떨까요?”신분, 지위, 돈 등 모든 것을 얻은 임현은 심미연이 발탁해준 은혜에 항상 감사했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심미연이 돌아오자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좋아요!”심미연은 먹는 것에 대해 가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심태하는 편식했고 많은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유독 단 음식을 좋아했다.심미연은 예전에 강지한도 단 음식을 좋아했던 것을 떠올렸다.그녀가 웃을까 봐 몰래 훔쳐먹곤 했는데 심미연은 알면서도 까밝히지 않았다.심태하는 생긴 것은 물론 먹는 것까지 강지한과 똑같았다...“그럼 제가 룸을 하나 예약할게요.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시면 되니 서두르지 마세요.”“알았어요.”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신하린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임현 씨야?”심미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하린은 그녀를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때 나 몰래 떠나면서 오히려 개인적으로 임현 씨와 연락하더라고. 이건 내가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라는 거잖아.”사실 이 일에 대해 심미연은 설명한 적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