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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Author: 십일
‘마음속에 아직 정은 누나가 있으면서, 왜 굳이 딴 여자를 찾은 거냐고? 이것 봐, 쯧쯧!’

...

어제 도겸이 다녀간 후, 정은의 집은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그녀는 대청소를 했다.

시간도 늦은 것 같아, 정은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 문제를 풀며 오늘의 복습을 했다.

저녁에 그녀는 김밥 두 개를 말았는데, 다 먹지 못했고 많이 남았다. 주방을 정리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정은은 문제를 좀 더 푼 다음, 자려고 했다. 알람을 맞추자마자 갑자기 핸드폰에 알람이 들어왔다. 누군가 그녀의 톡 친구를 추가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심현빈이었다.

정은은 눈을 깜박였다.

‘이 사람은 왜 날 추가하려는 거지?’

‘비록 강도겸의 절친이지만, 우린 딱히 친한 사이가 아닌데...’

두 사람은 여러 번 같은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지만, 거의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정은은 현빈에게 무슨 중요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추가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상대방에게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마치 실수로 친구 신청을 잘못 누른 것 같았다.

정은은 영문을 몰랐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핸드폰을 한쪽에 놓은 다음, 그녀는 계속 문제를 풀었다.

...

술집에서, 현빈은 핸드폰을 거두며 방금 도겸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선우를 바라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집까지 데려다줬어?”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빨리 도망가서 다행이에요. 도겸 형 어머니랑 부딪치면 정말 큰 일인데.”

요 며칠 서영숙은 별장에 자주 찾아갔기에, 운이 좋지 않아 그녀에게 붙잡힌다면, 이것저것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참, 전에 몇 번이나 불렀는데 줄곧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난 거예요?”

현빈은 술잔에 든 브랜디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일 다 끝냈거든.”

“참!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어요!”

선우는 얼른 술잔을 내려놓았다.

“뭔데?”

“정은 누나 말이에요, 석사 입학시험 다 마쳤겠죠?”

“그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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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생각 끝에 동의했다.도겸이 사인할 거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도겸은 웃으며 핸드폰을 왕순자에게 돌려준 후, 유쾌한 발걸음으로 올라갔다.왕순자는 핸드폰을 받으며 감탄했다.“도련님께서 이렇게 웃으신 게 얼마만이야.”...새벽, 정은은 벨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평소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베갯머리에 놓인 핸드폰은 끝없이 윙윙거렸다.그녀는 눈을 억지로 뜨며 확인했는데, 전부 도겸이 보낸 문자라는 것을 발견했다.연달아 수십 통의 문자를 보낸 것도 모자라 온통 쓸데없는 말뿐이었다.[정은아, 자?][어젯밤에 네 꿈을 꿨어][아직도 자는 거야?][오늘 아침에 수업 있어?][서정이 수업시간표 확인했는데, 너희들 오전에 전공 수업이 하나 있더라.]이와 같은 쓸데없는 문자였다.정은은 차갑게 읽으며 이 모든 것을 확인하기가 귀찮았다.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 또 하나의 문자가 들어왔다.[정은아, 나 네가 좋아하는 떡 샀는데, 지금 네 집 아래층에 있어.][조급해하지 마, 계속 널 기다릴게]정은은 눈살을 찌푸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베란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겸은 먹을 것을 들고 아래층에 서 있었다.그녀는 어이가 없었다.남자는 뭔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눈이 마주치자 도겸은 입을 열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정은이 탁 하고 창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정은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잠을 잤다.물론 편하게 자지 못했다.하지만 아침 이맘때 침대에 누워 있는 것 자체가 편했다.아침 7시, 그녀는 제시간에 일어나 세수한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은 다음에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도겸은 정은을 보자마자 눈빛이 밝아지더니 바로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정은아, 이 떡과 만둣국은 네가 예전에 자주 갔던 그 가게에서 산 거야. 하지만 지금 좀 식었으니까 전자레인지로 데워야 할 것 같아.”“난 이미 집에서 먹었으니까 이건 너 혼자 먹어.”도겸은 이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그래, 그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7화

    “하하하, 그건 아니지만 나름 경험이 있는 편이에요.”“한번 듣고 싶네요.”이세운은 도겸의 옆에 앉아 유유히 입을 열었다.“옛말에 ‘집에 여자가 있어야 집안이 잘 된다’라는 말이 있어요. 집에 있는 여자는 내조를 잘 해야 돼요. 우리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고,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며 아이를 키우면 얼마나 좋아요.”“접대할 때는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나가면 돼요. 술도 대신 막아줄 수 있고, 또 손님을 잘 모실 수 있으니까요. 끝나면 작은 돈을 써서 보내면 되고요.”“사모님은 의견이 없으신 거예요?”“집사람이 무슨 의견이 있겠어요? 매일 큰 별장에서 지내며, 명품 가방에 고급 화장품을 쓰잖아요. 그리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심지어 나가서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불만을 느낄 리가 있을까요?”도겸이 물었다.“만약 어느 날 사모님이 먼저 이혼을 제기하신다면...”“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여자는 돈 많은 남자에게 의지하면 점차 혼자 생존할 능력을 잃을 거예요.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날겠어요?” 이세운은 자신의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만약 날개가 있다면요? 정말 날아갔다면요?”이세운은 멍해졌다.‘이건...’그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떠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도겸은 일어서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대표님, 너무 자신 있게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왜냐하면...”이세운은 영문을 몰랐다.“앞으로 뼈 저리게 후회할 수 있으니까.”말을 마치고 도겸은 골프카트에 올라탔다.“계속 즐기세요, 전 먼저 돌아갈게요.”“네?”...골프장을 떠난 도겸은 원래 별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귀신에 홀린 듯 서비대학교로 찾아갔다.이번에 그는 대문 앞에 차를 세우지 않았다.길 건너편에 멈춘 다음, 차창을 내리고 묵묵히 담배를 피웠다.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통해 도겸은 교문을 바라보았다. 대문은 여전히 6년 전 그대로였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정은을 처음 본 곳이 바로 여기였다.그녀를 본 순간, 도겸의 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6화

    재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현빈은 계속해서 말했다.“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셨다면서요? 오늘은 꽤 일찍 돌아오셨네요.”“들었다고요?” 재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누구한테서 들었죠?”그는 오늘 수업이 있었는데, 마침 생명과학대학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그러나 강의실에 민지와 서준밖에 없었다.물어보니 정은이 휴가를 냈다는 것이었다.실험실은 확실히 매우 바빴다. 평소에 재석은 수업이 끝난 후,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바로 돌아갔기에, 이 시간에 집에 가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정은에게서 들은 거겠죠.”재석은 쌀쌀하게 말했다.“그럼 정은이는 골목 어귀에서 주차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 적이 없는 건가요?”“바로 가야죠.” 현빈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페달을 밟고 떠났다.잠시 후, 현빈은 갑자기 뭔가를 알아차렸다.방금 재석이 정은을 다정하게 ‘정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며, 재석은 시선을 돌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다만 이를 악물고 있는 동시에 눈빛도 싸늘해졌다.7층에 도착하자, 그는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옆집의 문을 두드렸다.“정은아?”몇 초 후, 문이 열렸다.“네, 선배님.”재석은 위아래로 정은을 한번 훑어보았다.“괜찮아?”“네?” 정은은 멍해졌다.“오늘 교실에서 널 보지 못했는데, 네가 휴가를 냈다고 해서.”“네. 처리할 일이 좀 있었어요.”“실험실과 관련이 있는 일이야?”“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됐어?”정은은 담담하게 웃었다.“마지막 한 단계만 남았어요.”“내 도움이 필요해?”“아니요.”현빈의 말이 아주 옳았다. 도겸이 스스로 사인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를 강요할 수 없었다.재석은 눈빛이 반짝였다.“방금 요 앞에서 심현빈을 만났어.”“아, 심 대표님이 날 데려다줬어요.”“같이 간 거야?”“아니요.”정은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공교롭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5화

    “썰렁해서 웃긴 거야.”‘참 긍정적인 사람이야.’현빈은 웃음을 거두며 갑자기 정색했다.“말해봐, 무슨 일이야? 굳이 강도겸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건가?”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왜 그렇게 말하는 건데요?”“네가 강도겸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같이 앉아서 그 사람과 밥을 먹겠어? 부탁할 일이 있으면 몰라도. 무슨 일인지 나에게 말해줄래?”정은은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서 지금 강도겸이 사인한 동의서를 받아야 수속을 마칠 수 있는 거야?”“네.”“아무나 찾아서 사인해 주면 안 돼?”정은은 고개를 돌려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에헴!” 현빈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농담이야.”“난 돈과 비준을 받는 일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나에게 있을 줄은 몰랐어요.”“얘 사인 안 했어?”“네.”남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무슨 조건을 말했는데?”정은은 대답하지 않았다.“너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했겠지? 두 사람 다시 시작하자고.’‘이 사람이 테이블 밑에 숨어서 엿들은 거야?’“쳇! 뻔뻔스럽긴! 화해는 무슨, 자신의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몰라!”‘같은 부류의 사람이라서 이런 정곡을 찌를 수 있는 건가?’“난 마음속으로 뭘 중얼거리고 있어?”정은은 깜짝 놀랐다.“아, 내가요?”“분명히 있을 텐데!” 현빈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난 다 알고 있으니까 발뺌할 필요 없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맞네! 어차피 좋은 말은 아닐 거야! 몰래 날 욕한 거 아니겠지?”“에헴, 그건 아니에요...”“방금 그 땅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동쪽의 교외에요.”“위치는 좋네. 시내에서 멀지 않고 교통도 편리하고. 헤어질 때 강도겸이 준 거야?”정은은 입가를 실룩거렸다.“왜 질문이 그렇게 많아요?”“이건 정말 까다롭네. 강도겸을 억지로 강요해서 사인하게 할 수도 없고. 그러나 방법이 이거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야.”정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른 방법이 있어요?”“그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4화

    시선이 마주치자, 도겸의 그윽한 눈빛이 정은의 눈에 들어왔다.“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넌 잘 알고 있을 텐데.”정은은 눈썹을 찡그렸다.“아주 간단해, 내게 돌아와. 동의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난 네가 원하는 것 모두 줄 수 있어.”“그건 불가능해!”정은은 깔끔하게 거절했다.“정은아...”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지금 마음속으로 분명히 내가 비열하고 파렴치하다고 욕하고 있겠지. 그러나 난 정말 네가 없으면 안 돼...”“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건 어때? 약속할게, 지금부터 나에게 여자라곤 너 하나뿐이야. 네가 싫어하는 것들 내가 모두 고칠게. 그러니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 응?”말이 끝나자 도겸은 다급하게 정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정하게 피했다.“난 네가 한 말을 한 글자도 믿지 않아. 네 요구에 더욱 승낙하지 않을 거고.”그녀는 서류와 펜을 거두었다.“오늘은 내가 잘못 찾아왔어. 네가 사인하고 싶지 않은 이상, 나도 더 강요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치고 정은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발걸음은 급하면서도 빨랐다.마음속으로 이미 도겸에게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후에 정은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이 지경으로 파렴치하다는 것에 엄청 놀랐다.레스토랑을 나온 정은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다만 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쫓아온 남자는 강경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뒤로 당겼다.기사는 이 상황을 보고, 두 사람에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바로 떠났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 강도겸!”“말을 마치자마자 날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다니. 난 매번 네가 떠나는 뒷모습밖에 볼 수밖에 없었어. 정은아, 넌 왜 날 이토록 괴롭히는 건데!”“그래서?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강도겸 도련님은 영원히 무고하고 영원히 당당한 거야? 집에 돌아가, 강도겸. 네 어머니를 찾아가라고. 그분은 네 성질을 받아주시겠지만, 난 그럴 의무가 없어!”남자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정은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숨을 깊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3화

    “넌 스테이크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썰기가 귀찮아서 줄곧 안 먹었잖아. 그 이후로 양식을 먹을 때마다 내가 썰어줬고.”정은은 잘게 썬 스테이크를 보면서 표정이 담담했다. 그녀는 오늘 음식을 먹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었기에,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이미 그녀의 한계에 이르렀다.이번에 정은은 더 이상 남자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지금 수속은 거의 다 준비됐는데, 네 동의서가 필요해. 오늘 그 동의서 가지고 왔으니 위에 사인해 줄 순 없어?”도겸의 미소는 점차 사라졌다.정은을 바라보는 눈빛도 기쁨으로부터 냉정함, 그리고 실의에 빠졌다.“나랑 밥 한 끼 먹는 게 그렇게 어려워?”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굳이 이럴 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거야?”정은은 영문을 몰랐다.“네가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잖아? 지금 밥을 먹으면서 또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다니. 넌 자신이 한 말을 이미 잊어버린 거야?”남자는 말문이 막히더니 칼과 포크를 내려놓았다.“얘기하자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정은은 저도 모르게 똑바로 앉았다.도겸은 정은이 꺼낸 서류와 펜을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만약 이 동의서 때문이 아니라면, 넌 오늘 날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그녀는 사실대로 말했다. “응.”“허... 너에게 있어 나도 단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거야? 사인을 해주면 각자의 인생을 살자 이건가?”정은의 말투는 평온했다.“우린 이미 각자의 길을 걸었고, 이제야 갈라선 게 아니잖아.”“만약 내가 오늘 사인하지 않겠다면?” 도겸은 또박또박 말하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은은 화를 내지 않았고 심지어 아무런 불만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오직 의혹뿐이었고, 도겸이 그저 낯설다고 느낄 뿐이었다.“그 땅은 이미 나에게 증여했고, 계약서에도 이미 사인했어. 그런데 왜 굳이 동의서를 붙잡고 늘어놓는 거야?”“후회했으니까.”헤어지자고 말한 것을 후회했고, 정은을 놓아준 것을 후회했으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2화

    정은은 정신을 차리며 몸을 돌렸다.도겸은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반듯하지만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는데, 얼굴은 조금 움푹 들어갔다.그녀가 남자를 훑어보는 동시에 도겸도 탐욕스럽게 정은을 주시하고 있었다.베이지색의 니트, 검은색 바지, 카키색 트렌치코트.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닿았고, 염색을 하지도 파마를 하지도 않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늘어졌다.그리고 하얀 색 운동화는 심플하면서도 수수했다.“안녕.” 정은은 도겸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먼저 입을 열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정했던 연인이 ‘안녕’이라는 말로 오프닝을 하다니.그 순간, 도겸은 마치 토르의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정은아, 우리 사이에 굳이 인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정은은 웃으며 말을 받지 않았다.도겸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그녀를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 있어서 찾아온 거야?”“응.” 정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서 얘기할까?”“좋아.”정은은 사무실로 들어갔다.도겸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는데, 들어갈 때 문을 닫으며 바깥의 비서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차단했다.“임 비서님! 이 미녀는 누구예요? 왜 여태껏 본 적이 없죠? 대표님과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거예요?”말하는 사람은 새로 온 지 두 달도 안 된 여 비서였다.전에 비행기표를 잘못 예약했던 비서는 진작에 잘렸다.임태명은 눈살을 찌푸렸다.“할 일 다 했어?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운 거야? 질문이 그렇게 많으면 비서로 일하지 말고 기자가 되지 그래?”여 비서는 미소가 굳어졌다.“죄송합니다. 그냥 좀 궁금해서...”태명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너희들도 마찬가지야!”모두들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태명은 안색이 더욱 보기 흉해졌다.“너희들 중 들어온지 몇 년이나 된 사람도 있고, 갓 온지 얼마 안 되는 신인도 있어. 온 기간이 길든 짧든, 경력이 있든 없든, 여기에서 일할 거면 단단히 기억해...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말고, 보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521화

    “네! 지금 바로...”“아니야, 나 혼자 갈게.”...정은은 비서의 테이블 옆에 서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큰 창문이 있었다.그녀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서 아래의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앞은 번화한 상가, 좌우 양쪽은 고급 오피스 빌딩,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 강이 보였다.정말 금싸라기 땅이었다.회사 창립 초기에 그들은 자금도 인맥도 없었고, 사무실은 두 사람이 세들어 사는 지하실 위층의 작은 아파트로 정했다.비록 방은 두 개밖에 없었고, 좀 누추했지만, 그래도 창문과 그리 크지 않은 주방이 있었다.스타트업은 규모가 아주 작아서, 도겸을 제외하고 직원이 5명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모두 기술을 책임졌다.프론트, 회계, 출납, 재무팀, 인사팀, 이런 직위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을 모집할 돈이 전혀 없었으니까.그럼 어떡하겠는가? 정은이 혼자서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매일 위층 아래층을 뛰어다니며, 나가서 일을 볼 때도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배달비를 절약하기 위해, 바쁘지 않을 때면 그녀는 스스로 채소를 사서 밥을 지었다.그때는 엄청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정이 넘쳤다.사람들은 정은이 공부를 포기한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학문이란 높은 산을 오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정은은 믿을 만한 애인과 나날이 발전하는 사업을 가지게 되었다.미래에도 행복한 가정, 귀여운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도겸도 매우 노력했다.그 2년 동안 그는 전심전력으로 일에 몰두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밤늦게 잤다. 어렵게 하루의 휴가를 내면 또 정은을 데리고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그때의 도겸은 정은의 그 어떤 정서상의 변화도, 기쁨이든 슬픔이든 막론하고 가장 먼저 감지하며 제때에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언제부터 바뀌었을까?회사를 차린지 3년 되던 해에 회사는 고속발전단계에 들어섰고, 업무는 미친듯이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버는 돈도 갈수록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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