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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작가: 십일
도겸은 기사에게 분부했다.

“차 돌려, 하명 백화점으로.”

“네, 대표님.”

...

이번 식사는 경혜가 노력한 덕분에 그런대로 즐겁게 먹었다.

다만 그 사이에 도겸은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술을 다 마시자, 도겸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어슴푸레해졌다.

경혜는 그를 부축해서 차에 태울 수밖에 없었다.

기사는 깜짝 놀랐다.

“대표님이 어쩌다...”

“술에 취했으니 집에 데려다 주세요.”

기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가씨, 같이 가시지 그래요?”

경혜는 멍해졌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 시간에 이모님은 이미 퇴근했으니 별장에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대표님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괜찮으시다면...”

“나야 당연히 괜찮죠. 그럼 가요.”

말이 끝나자 그녀도 따라 차에 올랐다.

곧 기사는 두 사람을 데려다 준 다음 떠났다.

경혜는 도겸을 부축하여 문으로 들어섰는데, 기사가 말한바와 같이 집안이 어두워 아무도 없었다.

경혜는 그를 거실 소파에 안치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남자는 편하게 자지 못한 듯 눈을 꼭 감고 미간을 찌푸렸다.

경혜는 도겸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의 외투를 벗겼고, 또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었다.

이렇게 되니 도겸은 정말 많이 편안해진 것 같다.

적어도 눈살을 더 찌푸리지 않았다.

경혜는 시간을 보았는데, 곧 10시가 되어갔다. 그녀는 또 주방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나와오더니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어 베개 하나를 가져와 남자의 머리를 받쳤다.

마지막으로 도겸의 이마를 살펴보았는데, 열이 나지 않았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경혜는 살금살금 떠났다.

문을 닫는 소리는 이 고요한 밤에 유난히 뚜렷했다.

경혜가 떠나자, 소파에 누워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렇다, 도겸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단지 경혜를 떠보고 싶을 뿐이었다.

경혜가 ‘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도겸은 순식간에 경계심을 가졌다.

한 여자가 돈조차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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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예의상 가볍게 조해민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곧 손을 뗐다.조해민은 생각하다가 다시 민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민지는 방금 에그타르트를 먹었기에 손에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이 상황을 보고 그녀는 난처하게 거절했다.“저는 그냥 사양할게요. 미안해요.”“괜찮아요.” 조해민은 손을 흔들며 이해를 표시했다.그때 조해민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소정은 씨는 좀 낯이 익은데?”정은은 고개를 들었다.서준이 이 사람들을 소개할 때 그녀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보았다.어쩔 수 없었다, 가끔 기억력이 너무 좋은 것도 고민이었다.남자는 서준, 조해민의 동갑내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고, 훨씬 성숙했으며 사람을 보는 눈빛도 많이 침착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정은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니.‘어른들과 같이 앉을 자격이 없지만, 또 이번 연회에 참가하고 싶어서 이도 저도 아닌 이 테이블에 앉은 게 분명해. 방금 서준도 자신의 친구를 소개할 때, 이 남자를 소개하지 않았어.’조해민은 고개를 돌렸다.“형, 정은 씨를 알아?”조해봉은 입술을 구부렸다.“보면 볼수록 낯이 익네. 만약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강도겸의...”“해봉 형.” 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투는 약간 강경했다.“오늘은 제 생일이잖아요. 제 동창들도 손님이고요.”그 뜻인 즉, 이런 장소에서 주인이 초대한 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실례란 것이었다.조해봉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곧 감정을 가다듬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니 그래도 차이가 있군. 내 입이 문제야. 무슨 말이든 밖으로 내뱉으니까. 미안해, 정은 씨.”서준은 그제야 안색이 누그러졌다.민지는 조용히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은은 무척 침착했다.조해봉은 도겸과 친분이 있었는데, 예전에 술자리에서 정은은 상대방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매번 조해봉의 시선은 그녀에게 떨어졌고, 사람을 불편하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5화

    임씨 가문의 저택은 최신 유행하는 서양식 저택이 아니라,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고택이었다.앞마당과 뒷마당이 서로 연결된 구조였고, 담장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일부 벽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벗겨져 있었다. 앞마당에는 청석이 깔려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설수록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고, 짙은 암홍색의 기둥들은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하늘을 향해 뻗은 처마는 마치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청석길 양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J시 도심, 그것도 옛 궁궐 바로 옆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니. 이 집의 주인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서준이 두 사람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직접 마당으로 나와 맞이했다.“빨리 들어와요, 안이 따뜻하니까. 소개할게요, 이 두 분은 제 부모님인데...”서준 아버지 임정식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어 기질이 온화하고 우아하며, 미간 사이로 세월이 묻어난 진중함과 대범함을 드러냈다.서준 어머니 장려화는 베이지색 니트로 된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옅은 카키색 숄을 매치했다. 희고 윤기가 흐르고 있는 얼굴은 구체적인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었다. 긴 머리는 비녀 하나로 말아올리니, 그야말로 친화력이 넘쳐났다.정은의 머릿속에는 대범하고 정숙하며 우아하다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만약 이 두 사람이 가져다준 충격이 그리 크지 않다면, 서준 할아버지를 본 순간, 정은과 민지는 철저히 충격에 휩싸였다.민지는 멍하니 서준의 말대로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앉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정은의 소매를 잡아당겼는데, 이미 어불성설이었다.“정은 언니, 저... 아, 아니... 방금 봤어요? 할아버지의 그 얼굴 말이에요. 저는 제가 뉴스 방송 현장에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할 뻔했잖아요!”정은은 민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그녀를 위로했다.“침착해. 오기 전에 이미 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4화

    “너...”오미선은 또박또박 말했다.[제 제자들이니 제가 지켜야 합니다. 그런 허울뿐인 명예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그 덕을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더 이상 할 말 없네요. 이번에도 제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올릴 생각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미리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처럼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송영한은 이미 앞으로 정은 그들이 아무리 많은 성과를 거두어도 학교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한중기는 순식간에 새파래진 송영한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때요? 되돌릴 여지가 있나요?”“있긴 개뿔! 백두강의 처분을 12개월로 연장해!”말을 마치고 송영한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펑 하고 문을 닫았다.한중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총장님이 이렇게 큰 화를 내신 것을 본 적이 없는데...’...탁!실험실 레저 구역에서, 서준은 다시 한번 과녁 중심을 명중했다.그는 아예 남은 다트를 모두 던졌는데, 빠르면서도 정확해서 모두 중심을 맞추었다.“와...” 민지는 어안이 벙벙했다.“쮼, 너 연습했니? 이 정확도 정말 대단해!”“몇 달 정도 연습한 적이 있어.”“몇 달 정도? 지금 장난해?”민지는 화제를 돌렸다.“지금 학교도 이미 소식을 받았겠지?”서준은 생수 한 병을 열었다.“아마도.”“그럼 왜 이렇게 조용해?”정은은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덕분이야. 이미 총장님과 교섭을 마치셨거든.”“총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당연히 할 말이 없으시지.”“하긴요. 그때 저희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희의 덕을 보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결정했어요. 제대로 한 끼 먹어야겠어요.”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다이어트 안 한다며?”“그건 그렇지만,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나한테 지방간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체중 좀 통제하려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3화

    “뭐야? 어떻게 그럴 수가?!”정은과 친구들이 서비대학교 학생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교수님이자 교신저자인 오미선은 여전히 학교의 교수님이었다.“우리 학교 명의로 되지 않으면? 누구의 명의로 된 건데?”“무한 실험실이요.”한중기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얼른 마우스를 들고 논문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찾았지만 오미선의 이름을 보지 못했다.그는 중얼거렸다.“교신저자가 없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규정에 따라 교신저자가 없으면 제1저자를 교신저자로 묵인하기 때문에 소정은 학생이 이렇게 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문제는 없지만 오미선은 왜 이를 동의했을까?‘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면 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데, 왜...’이때 송영한이 빠른 걸음으로 총장 사무실에서 나왔다.한중기는 그의 표정이 이렇게 무거운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총장님, 왜 그러세요?”“잘 됐네, 나랑 같이 K시에 한 번 다녀오자!”“네? 갑자기 왜 K시에 가시려는 거죠?”“오미선을 찾으러!”커팅식 끝난 후, 오미선은 박애영을 데리고 K시로 돌아가 계속 요양했다.한중기는 갑자기 멈춰 섰다.“총장님도 소식을 들으신 거예요?”송영한은 안색이 보기 흉했다.“전화로 소통할까요? 직접 다녀가실 필요는 없잖아요?”“너는 아직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군. 오미선은 일부러 이렇게 한 거야.”송영한의 감정이 점차 흥분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오미선이었다.그는 즉시 받더니 목소리가 차가웠다.“오 교수, 지금 설명을 잘 해야 하는 거 아니야?!”[설명이요?]오미선이 웃었다.[무슨 설명이요?]“오 교수가 임의로 저자명을 포기하고, 학생들까지 자기 실험실 이름으로 성과를 발표하도록 유도한 건, 명백히 학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잖아!”[허...]오미선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녀는 학교 측이 자신을 찾아 책임을 따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송영한이 이렇게 흥분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저 그런 일반 학술지가 아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2화

    한중기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그럼 오미선 쪽도 좀 달래야 하지 않을까요?”“아니. 난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어. 오미선은 권력과 내부 싸움에 마음이 없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그럼 그 세 학생, 그리고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실험실은요...”송영한은 책상을 두드렸는데, 그 위에 ‘J시 일보’가 놓여 있었다. 마침 정은 그들이 스스로 실험실을 건설했다고 보도한 기사였다.이번에 그는 좀 오래 침묵했다.한중기도 말을 하지 않았다.한참 뒤, 송영한이 입을 열었다.“그냥 내버려둬. 이 세 학생은 돈도 있고, 땅도 있고, 심사비준을 통과할 수 있는 배경까지 있으니 확실히 능력이 있지. “그러나 실험실을 지었다고 해서 꼭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마지막에 성과를 냈다고 해도 학교 명의로 된 것이니,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영향이 전혀 없어.”한중기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1학년 학생들이 무슨 학술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소정은은 오히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그것도 논평일 뿐, 연구 논문이 아니잖아요. 아직 멀었어요.”하지만 곧 한중기는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실험실이 완공된 지 이주 만에 정은, 민지와 서준 세 사람이 공동으로 완성한 논문 란 논문이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됐다.소식이 알려지자 전교가 들썩였다.『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BT)는 세계 3대 최상위 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로, 생명공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게재하는 권위 있는 저널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최고 수준의 저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임팩트 팩터가 무려 33.1에 달한다.한마디로, 엄청난 저널이다. 지예가 이전에 발표한 논문이 실린 저널과는 비교도 안 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1화

    송지혜는 처분을 받자마자 자신의 명의로 된 두 실험실이 시정서를 받고 정돈되는 것을 지켜봤다.하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교수님, 이제 어떡하죠?” 지예는 당황한 표정으로 송지혜를 붙잡았다.진호도 초조해서 원숭이처럼 머리를 긁적였다.곧 기말이 다가왔기에, 이때 실험실에 일이 생기면 과제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일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기말에 그는 또 무슨 성적을 받겠는가?이것은 성적, 심지어 졸업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강서정 역시 충격에 빠졌다.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녀는 이것이 정은 그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애초에 그들도 이렇게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았는가?정은도 단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되갚았을 뿐이었다...일단 신고를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었다.몇 사람들 중, 가장 침착한 사람은 경혜였다.그녀는 연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학술적으로도 천부적인 재능과 욕심이 없었다. 당초에 대학원 시험에 응시한 것도 자신의 이력서를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앞으로 일자리를 찾고 좋은 집안에 시집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므로 실험실을 사용할 수 있든 없든, 과제가 영향을 받든 말든 그녀는 상관이 없었다.‘더군다나 지금 내 곁에 도겸 씨가 있잖아... 이 남자의 마음만 잡으면, 평생 걱정 안 해도 돼.’진호가 말했다.“정돈이라고 하지만, 그 기간이 얼마인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저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소정은 그 사람들 생각해 봐요.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았잖아요. 저희도 스스로 실험실을 짓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스스로 실험실을 만들자고...’송지혜는 이 말을 듣고 눈빛이 밝아지더니 고개를 돌려 서정을 보았다.서정은 두피가 저렸고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실험실을 짓는 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돈은 그렇다 쳐도, 땅과 심사비준이 가장 어려운데, 너희들 중 누가 땅을 구할 수 있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0화

    “그렇게 생각하면 더 좋고!”바로 이때 지예의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저쪽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지예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갑자기 검사라나?! 그럴 리가 없잖아! 검사한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응, 알았어! 바로 갈게!”통화가 끝나자, 지예는 송지혜를 보며 온몸을 떨었다.“이모, 큰일 났어요...”송지혜와 지예가 실험실에 도착했을 때, 소방대원들이 질서 있게 자리를 떠났다.진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교수님, 저희 두 실험실에 모두 딱지가 붙었는데, 일정 기간 내에 시정을 마칠 것을 요구했어요...”이 익숙한 장면은 두 달 전에 금장 정은 그들에게 일어났는데, 오늘 또 재연되었다.하지만 이번에 시정서를 받은 사람은 송지혜 그들이 되었다.송지혜는 전혀 믿지 않았지만, 진호의 손에 있는 시정서를 똑똑히 보고서야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아니, 이제 검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왜 또 검사하러 왔어? 그리고 왜 우리 실험실만 검사하는 거지?!”송지혜는 앞장선 소방관들을 불렀다.“첫째, 저희 소방대는 실험실을 돌격 검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언제 검사하고 싶든 모두 된단 말입니다. 그 목적은 실험실이 일상적으로 소방규범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독촉하는 데 있습니다.”“둘째, 이 실험실만 조사하는 것은 저희 시 소방대에서 오늘 오전 9시에 이 실험실이 소방규범을 준수하지 못했다는 신고를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돌격 검사를 조직한 것입니다.”“사실이 보여주듯이, 이 실험실에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저도 궁금하지만, 왜 지난번 검사할 때, 소방시설이 구전되었는데, 겨우 두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이것저것 부족한 거죠?”상대방의 말에 송지혜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녀도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신고? 누가 신고한 거죠?!”“죄송하지만 저희도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자.”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떠났다.송지혜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었다.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오미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29화

    백두강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뭐라고 했겠어? 넌 이 일을 잘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혼자 봐!”말이 끝나자 백두강은 책상 위의 서류 하나를 들더니 바로 송지혜의 얼굴에 던졌다.송지혜는 그것을 보면 볼수록 얼굴이 창백해졌다.처분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제 경비도 물건너갔고, 내년 국가급 연구사업에 참가할 자격까지 취소를 당했다...처벌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무거운 산이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그렇게 송지혜는 거의 허리를 구부린 채로 사무실을 나섰다.백두강의 처지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비록 어제 총장실에서 모든 잘못을 송지혜에게로 돌렸지만. 학교측은 여전히 부당 관리에 직무를 태만했단 이유로 그에게 6개월 간의 경고 처분을 주었다.대학원 쪽에서 이 소식을 듣자, 학장은 백두강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비록 말은 완곡하게 했지만,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듣기 좋게 말하면 휴가였고, 듣기 싫게 말하면 그의 권리를 빼앗아 내쫓아내는 것이었다.6개월 뒤,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면, 더 이상 부학장의 자리를 앉을 수 없게 될 것이다.백두강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송지혜가 이렇게 멍청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난 절대로 그 사람과 엮이지 않았을 텐데. 이제 됐어, 다 끝났어!’...“이모! 부학장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소정은 일에 우리가 말려드는 건 아니겠죠?”지예는 이미 송지혜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맞이했다.찰싹-송지혜는 지예의 따귀를 한 대 때렸다.“이, 이모?” 지예는 멍해졌다.“어제 그 많은 기자들을 부른 사람이 너야?!”지예는 마음이 찔려 침을 삼키더니 시선을 회피했다.“이모, 제가 잘못했어요.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부학장님이 일을 크게 만들수록 좋다고 하셔서 저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두 방송국에 초청을 보냈 것일 뿐이에요. 하지만...”“두 집에 보냈다고?” 송지혜는 표정이 굳어졌다.“확실해?”“그럼요! 저 맹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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