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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작가: 십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15 13:19:52
정은은 집에 돌아간 다음, 먼저 냉장고를 검사했다.

‘어제 산 채소가 많이 남았네. 그럼 소갈비찜, 탕수육, 계란찜, 음... 간단하게 야채볶음 하나 더 하자.’

그녀의 현란하고 능숙한 요리 솜씨에, 전혀 밥을 할 줄 모르는 성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배달을 시키거나 나가서 먹는데. 너처럼 스스로 밥을 하는 여자아이가 거의 없을걸.”

정은은 담담하게 웃었다.

“사람마다 생활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나도 그저 밥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이에요.”

성준은 바쁘게 돌아치는 정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또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정연했고, 인테리어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다.

거실에 작은 책꽂이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성준은 그 책들이 모두 전문적인 서적인 것을 발견했고, 그중 물리에 관한 책이 무척 눈에 띄었다.

여자아이의 방을 이렇게 쳐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성준도 시선을 거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음식이 식탁에 나타났고, 따끈따끈한 밥과 함께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성준은 탕수육을 한 입 맛보더니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맛있네! 너 솜씨가 정말 좋구나.”

그는 기름진 배달 음식에 익숙해져서 지금 정은이 만든 요리를 먹으니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정은은 성준이 놀란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맛에 맞으면 많이 먹어요.”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저녁까지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는 심지어 쑥스러워서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넌 요리 솜씨가 이렇게 좋고, 또 성적까지 우수하니, 네 남자친구는 정말 행복하겠다.”

정은이 말하기도 전에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먼저 먹어요. 누가 왔는지 확인 좀 할게요.”

문을 열자, 서정은 두말 없이 정은을 끌고 나가려 했고,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

“같이 병원에 가요. 우리 오빠 지금 아파서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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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성준은 오히려 무척 불편했다. 간신히 다 먹은 다음, 그는 서둘러 작별을 하며 떠났다.방안은 즉시 조용해졌고, 정은은 식탁을 치우며 머릿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서정의 말을 떠올렸다.‘위천공이라고...’이렇게 한눈을 팔다 정은은 실수로 그릇을 깨뜨렸다. 그녀는 얼른 손으로 줍다 오히려 그릇 조각에 베였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손등에 떨어졌다.도겸과 함께 한 시간은 6년, 그것은 6일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니었다. 어떤 습관은 이미 정은의 뼛속에 깊이 새겨졌던 것이다. 그가 입원했다는 것을 들은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걱정을 하며 병원에 달려가고 싶었다.다행히 이성은 이런 본능을 가로막았다.‘이제 강도겸을 걱정하지 말고, 또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자.’처음에 정은과 도겸은 무척 달콤한 사랑에 빠졌지만, 서로의 곁을 함께 하는 동안 지겨움이란 감정이 나타나더니 심지어 이렇게 헤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은 틈이 나타났다.‘강도겸이 처음으로 약속을 어겼을 때부터? 아니면 그 남자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을 때부터?’지금 돌이켜보니 뜻밖에도 기억은 무척 모호해졌다.6년이란 시간은 행복할 수도, 슬플 수도 있지만, 또한 언급할 가치가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하이힐을 신은 서정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돌진했다. 너무 급하게 걸어서 그녀는 심지어 복도 안의 쓰레기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 화가 난 서정은 욕설을 퍼부었다.“이게 뭐야? 이 낡고 냄새나는 곳을 집이라고! 정말 짜증 나!”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오빠,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야? 의사가 푹 쉬라고 했잖아?”그녀는 한창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도겸이 환자라는 생각에 말투가 좀 누그러졌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 딱딱했다.병원에서, 도겸은 잠에서 깨자마자 서정이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정은 누나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나갔어요.”선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우리가 도저히 말릴 수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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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화

    7월 초, 기온이 점차 높아지면서 기상청은 폭염주의보를 발표했다.35도란 고온이 이미 일주일간 지속되었고, 조재석의 실험은 반복적인 계산과 검증을 거친 후, 마침내 새로운 진전을 가져왔다.모처럼 휴식시간이 생긴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7층까지 올라가며 한잠 푹 자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맞은편에서 한바탕 소리가 들려왔다.재석은 동작을 멈추었고, 굳게 닫힌 정은의 문을 바라보며 다가가서 노크했다.“정은아, 집에 있어?”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재석이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 망설일 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정은이 머리를 내밀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치 재석이 갑자기 문을 두드려서 나온 것일 뿐,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재석은 지금의 정은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 같았다. 마치 수분을 잃고 바짝 말라가는 장미처럼.재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정은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영문을 몰랐다.이때,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진도는?”“두 주일 전에 다 썼는데, 이미 발표했어요. 이 두 달 동안 줄곧 복습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요.”재석은 안경을 밀었다.“지금 내 손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논문 한 편이 있는데. 좀 검사해볼래?”20분 후, 재석의 집에서, 정은은 소파에 앉아 논문을 훑어보면서 눈빛이 밝아졌다.재석이 그녀에게 준 논문의 제목은 생물 서열에 관한 것이었고, 생물의 초기 변화치를 토론하는 내용이었다.과제는 참신한 편은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기발한 데다 검증 방식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결론과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혁신을 하려면 대량의 데이터로 증명을 해야 했다.“이게 선배님의 논문이에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대학교 2학년 때 쓴 거야.”정은은 심정이 많이 복잡해졌다. ‘지금까지도 생물정보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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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에게 있어 이것은 얻기 힘든 기회였다.“만약 관심이 있다면 이 논문 가져가서 자세히 읽어봐.”말하면서 재석은 USB를 하나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이 안에 상세한 실험 자료가 있어.”정은은 눈을 들더니 은근히 흥분해하고 있었다.“고마워요, 잘 생각해 볼게요.”10시, 정은은 집에 돌아가야 했다. 재석은 그녀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난 바로 이 맞은편에서 살고 있으니, 특별히 배웅할 필요가 없어요.”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재석은 오히려 그녀가 무심코 드러낸 손가락을 힐끗 바라보며 주의를 주었다.“반창고를 너무 오래 붙이면 안 돼. 요오드 볼트로 소독한 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좋을 거야.”정은은 얼른 검지를 숨겼다.“고마워요, 그렇게 할게요.”재석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돌려 분홍색 다육식물 하나를 가져왔다.“이거 줄게.”정은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손바닥만 한 다육식물은 잎사귀가 통통했고, 초록색에서 점차 핑크로 변하니 또 무척 예뻤다.“이거 너무 귀여운데, 정말 나에게 주는 거예요?”“응, 며칠 전에 꽃집을 지나다가 이것만 하나 남았길래. 지난번에 매운탕을 대접한 답례라고 생각해.”정은은 입술을 구부렸다.“이번에는 그냥 받을게요. 하지만 친구 사이에 같이 밥을 먹었다고 굳이 선물을 살 필요가 있나요? 다음에 답례하지 마요.”그녀는 눈을 깜박였고, 맑은 눈동자는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빛이 났다.“응.” 재석은 마음이 약간 흔들리기 시작했다....병실에서. 이른 아침, 고동건과 전선우는 병문안을 오기로 약속했다.동건은 그럴듯하게 보온병까지 들고 왔다.“도겸아, 내가 널 얼마나 관심하는지 좀 봐. 이렇게 죽까지 챙겨왔잖아! 헤헤! 넌 위가 안 좋아서 담백한 것만 먹어야 하니가, 내가 특별히 우리 집 셰프에게 아침 일찍 죽을 끓이라고 했어. 이게 비록 많진 않지만, 재료가 다 비싼 거라서, 다 먹으면 바로 힘이 펄펄 날 거야!”선우는 향기가 그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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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0화

    정은은 조깅을 마치고 돌아와서 샤워를 한 다음, 베란다에 줄지어 늘어선 모양이 각기 다른 녹색 다육식물에 분홍색이 더 많아진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검지로 살짝 눌렀는데, 말랑말랑한 식물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책상 위의 핸드폰이 윙윙거렸다. 선우의 번호인 것을 보고, 정은은 호기심에 전화를 받았다.[선우야? 이 시간에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지? 무슨 일 있어?]“정은 누나, 요즘 잘 지내고 있었어요?”[그럭저럭이야. 너는?]기회다 싶은 선우는 바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난, 난 별로 좋지 않아요.”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왜?]“밤새 술을 마셔서인지 속이 안 좋네요. 정은 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딱 누나가 끓인 죽이 너무 먹고 싶은 거 있죠? 정말 너무 먹고 싶은데... 지금 시간 있어요?”도겸이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선우는 이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비록 정은은 도겸을 통해 선우를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선우와의 관계도 나름 좋았다.상대방이 위가 아프다고 하니 정은도 거절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시간 있어. 나 지금 장 보러 나갈 테니까 점심에 와서 가져가.]“네! 고마워요, 정은 누나! 누나밖에 없네요! 사랑해요, 누나! 그럼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점심시간이 되자, 선우는 내비게이션에 정은이 보낸 주소를 입력한 다음, 먼저 서비대학교에 도착했다. 그 후 또 여러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서야 마침내 목적지 근처에 도달했다.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로숫길을 건너자, 선우는 정은이 지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7층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니.’선우는 눈을 들어 아파트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5분 후, 그는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고, 마치 사우나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땀투성이로 되었다.정은은 문을 열어 선우를 들여보낸 다음, 얼른 물 한 잔을 따라 주었다.“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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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현빈은 소파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선우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것도 다 선우가 정은 씨에게 자기가 먹고 싶다고 거짓말을 해서 정은 씨가 끓여준 거야. 그러니 어떻게 병문안 하러 오겠어?”도겸은 안색이 즉시 어두워졌고, 선우를 차갑게 쳐다보았다.“내가 언제 가라고 했어? 누가 시킨 거냐고?”선우는 목을 움츠리더니 가볍게 기침을 했다.“형 요 며칠 줄곧 밥을 먹지 않아서 나도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요. 정은 누나가 죽을 만들지 않았다면, 형은 아직도 굶고 있을 거예요.”도겸은 싸늘한 표정을 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참, 방금 정은 누나 집에 갔는데, 지금 지내는 곳이 얼마나 작고 낡은지, 심지어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거 있죠? 그렇게 매일 7층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니, 딱 봐도 고생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게 분명해요.”선우는 말하면서 도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그는 비록 입으로는 싸다고 말했지만, 눈빛에 여전히 걱정이 담겨 있었다.‘음, 마음에 아직도 정은 누나가 있는 모양이야.’선우가 계속 말을 하려 할 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오빠!”선우와 현빈은 징그러워서 몸서리를 쳤다.‘소름이 쫙 끼치네...’연희는 며칠간 도겸의 문자를 받지 못했고, 전화해도 그가 받지 않아 결국 동건에게 물어봤는데, 그제야 도겸이 위병으로 입원한 것을 알았다.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수업까지 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이때 도겸이 환자복을 입고, 안색까지 창백한 것을 보니, 연희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오빠, 미안해요. 저도 방금에야 오빠가 입원한 사실을 알았어요. 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 안색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예요? 제가 의사 불러올까요?”그녀의 질문에 도겸은 짜증이 났다. 그리고 더욱 짜증 나는 것은 바로 오자마자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겸뿐만 아니라 선우와 현빈도 시끄럽다고 생각했다.도겸은 미간을 비볐다.“지금은 이미 괜찮으니까 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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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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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3화

    도겸은 꾹 참고 듣다가 결국 폭발했고, 전화를 끊은 다음 비행 모드를 켰다.이번에 차 안은 완전히 조용해졌다.집에 들어서자, 도겸은 그제야 마음이 평온해졌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는 갑자기 방향을 돌리더니 저도 모르게 주방으로 향했다.주방에는 깨끗하게 정리된 주방기구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눈앞에 정은이 바삐 움직이는 장면이 아른거렸다.그녀는 전날 저녁에 식재료를 깨끗이 씻고 물에 담가야 했기에, 죽을 끓이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다시 식재료와 쌀을 함께 솥에 넣은 다음 삶았다.도겸은 힘드니까 정은에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음날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따끈따끈한 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후에...’그는 더 이상 정은을 설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그녀가 잘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생각에 잠긴 사이, 밖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도련님?”왕순자는 서영숙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도겸이 병원을 떠나자, 그와 말이 통하지 않은 서영숙은 도겸이 혼자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왕순자에게 전화를 했다.도겸은 담담하게 분부한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이모님, 죽 좀 끓여줘요.”‘왜 또 죽을 끓이라는 거지? 정인 아가씨는 도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거야? 정말 너무 힘들다 힘들어...’마음속으로 불평을 했지만, 왕순자는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가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죽을 다 끓이고 위층으로 올라가니, 도겸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그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잠들었어도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왕순자는 죽을 내려놓은 다음, 주방에 가서 깨끗이 정리한 후, 조용히 떠났다.한밤중에 도겸은 위가 불에 타는 것만 같았고, 몸은 마치 땡볕을 쬐는 것처럼 무척 더웠다. 차가운 바늘이 혈관을 찌르며 액체를 수송하자, 그는 그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매우 더웠다.서영숙은 침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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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문을 열고 나가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큰 오빠?”남자는 고개를 돌리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정은아?”‘정말 인훈 오빠였어!’소진우와 박나영의 외아들 소인훈.인훈은 우산을 챙기지 않아 티셔츠는 이미 반쯤 젖었고, 머리에서도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정은은 재빨리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좀 닦아, 여름이지만 머리카락이 젖으면 감기에 걸리기 쉬워.”“고마워.” 인훈은 닦으면서 감탄했다.“넌 여전히 어렸을 때와 똑같구나. 세심하고 다정하고.”서점과 옆의 백화점은 연결되어 있었다. 기왕 만난 이상,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 남매는 같이 밥을 먹으려 했다.정은은 이미숙에게 전화로 오늘 점심에 돌아가서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이미숙은 몇 마디 물었지만 뭐라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레스토랑 안.경쾌한 음악은 흐리고 궂은 날씨를 밝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커다란 유리는 빗소리를 차단하며 오직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만 남겼다.정은은 종업원의 추천으로 몇 가지 간판 요리를 골랐다.음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행인이 매우 적었지만 차가 엄청 많았다.눈빛을 돌리자, 뜻밖에도 인훈과 눈을 마주쳤다. 정은은 멈칫하더니 수줍게 웃었다.사실 어렸을 때 그녀는 인훈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두 사람은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자주 함께 놀았다.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남매는 자주 연락했다.인훈은 매번 정은을 찾아올 때마다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었다.정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때로는 과일빵, 때로는 과자, 때로는 아이스크림.그것은 무미건조한 시간들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대학 다닐 때부터, 정은은 학업과 연애 때문에 바쁘기 시작했고, 인훈은 일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대학을 졸업하자, 정은은 도겸 만을 바라보면서 그와 함께 고생하고 회사를 차리며, 그의 일상을 돌보았다. 그리고 인훈은 회사에서 나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6화

    경쾌하면서도 깔끔한 소리였다.“집에 있을 때,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말을 잘 듣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넌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거야?! 빨리 돌려주지 못해?! 넌 감옥에 가서 콩밥을 먹고 싶은 거야! 말 안 듣는 녀석...”소순자는 동작이 아주 빨라서 때리고 난 다음 바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아이는 어리둥절해졌고, 여자와 남자도 어안이 벙벙했다.정은조차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엉엉, 할머니가 나 때려요! 흑흑흑!”웅이는 반응한 다음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이번에는 진심으로 우는 것이었다.“나 안 훔쳤어요! 나도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요!”“다시 한번 말해봐? 확 때려죽여버린다?!” 소순자는 화가 나면서도 두려움을 느꼈다.“말하기 싫어요! 메롱!”“계속 말 안 들을 거야! 물건 가져오라고! 빨리 내놔!” 소순자는 정말 심하게 때렸는데, 아이의 엉덩이가 빨개졌다.이때 남자와 여자는 가서 소순자를 말리고 잡아당겼지만 아무 소용없었다.“할망구! 왜 날 때리는 거예요? 할망구나 가서 죽어요?!”소순자는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화가 나서 쓰러질 뻔했다.결국 경찰이 나서서야 겨우 손을 멈추었다.그러나 웅이도 실컷 얻어맞아 울먹이며 소파 밑에서 자료 한 뭉치를 꺼냈다.“학생, 한번 검사해 보지 그래?”정은은 그것이 자료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제 보고서가 맞아요.”“그럼 됐어.”정은은 서류를 받고 생각하다 웅이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제 방은 문이 잠겨 있었어요. 웅이는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요. 2층이라고 해도 엄청 높지 않은 가요? 이렇게 어린 아이가 추락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 분은 잘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되면 자료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남자와 여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웅이는 가슴이 찔려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날 밤, 소순자네 가족은 짐을 정리하고 시골로 돌아갔다.한밤중이라서 소진헌은 여기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5화

    “정말 가져갔어도 뭐가 어때서? 쓸데없는 종이 같은 거 아냐? 때릴 거야 아니면 죽일 거야?! 돈도 많은 사람들이 몇 살짜리 애랑 뭘 따지는 거냐고?”“이것 좀 봐, 웅이를 이렇게 놀라게 하다니! 내 아들은 몸이 좋지 않단 말이야. 앞으로 대학에 갈 건데, 울어서 눈이 망가지면, 네가 배상할 거야?!”정은은 여자의 생쇼를 지켜보며 냉소를 지었다.“제가 언제 웅이가 종이를 가져갔다고 말했죠?”여자는 경직해졌다.그러나 소진헌과 이미숙은 다급해졌다.“정은이 방에 있는 그 물건들은 결코 쓸데없는 종이가 아니에요. 모두 매우 중요한 자료란 말이에요! 게다가 우리 정은은 여태껏 남을 모함한 적이 없어요. 지금 웅이가 가져갔다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증거가 있을 거예요. 얼른 웅이더러 돌려주라고 해요. 그럼 이 일은 그냥 넘어갈게요.”여자는 전혀 듣지 않았다.“정은이가 무슨 왕이야? 하는 말 전부 다 믿게? 오늘 정말 속이 터져서 가만히 있고 싶지 않네! 우리 웅이가 그 물건을 가져갔든 안 가져갔든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야. 날 어쩌겠어?”정은도 말을 하기 귀찮아 직접 그들의 면전에서 경찰에 신고했다.여자는 이 상황을 보고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내가 법을 모를 것 같아? 종이 몇 장일 뿐, 무슨 값어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경찰들이 신경 쓸 것 같아?’그러나 30분 후, 경찰들이 정말 찾아왔다.그것도 네 명이 왔다.“신고를 받았는데,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요? 그것도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렸다고. 소정은 씨가 누구시죠?”여자는 이 상황을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그냥 아이가 소란을 피우다가 종이 몇 장을 잃어버렸을 뿐인데, 굳이 이렇게 찾아오실 필요가 어딨겠어요?”“제가 나중에 이 사람들 잘 교육시킬게요. 호들갑은 정말! 너희들 경찰의 귀중한 시간을 지체한 거 몰라...”“제가 신고했어요.”정은이 나서서 직접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건 제가 방금 방에 돌아가서 찾아낸 감시 카메라 화면이에요. 그 안에는 이 사람의 아이가 제 자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4화

    정은은 즉시 컴퓨터를 켰다.그녀의 방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바로 오늘의 영상 화면을 찾을 수 있었다.화면을 확대하자, 정은은 단번에 소순자의 귀염둥이 손자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정은은 즉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순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웅이의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웅이는 소진헌이 이미 맞춘 다른 한 퍼즐을 가져가려 했다.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웅이가 퍼즐을 잡은 순간, 정은은 덥석 가져왔다.“너 내 방에 들어왔었지? 탁자 위의 자료는 어디로 가져간 거야? 지금 늦지 않았으니까 얼른 내 물건 돌려줘.”정은의 표정은 엄숙했고 목소리는 차가웠다.웅이는 여섯 살짜리 아이였기에 눈치를 살필 줄 알았다.정은이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일이 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눈알을 빙빙 굴리더니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어머! 멀쩡한 우리 웅이가 왜 우는 거야? 울지 마, 울지 마,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아빠도 있으니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남녀는 울음소리를 듣고 얼른 다가왔다.하나는 애틋하게 아이를 품에 안았고, 다른 하나는 모자의 곁을 지키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수시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사실 두 사람은 정은이 입을 열었을 때부터 이쪽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제때에 나서서 사건의 경과를 묻거나 자신의 아이를 훈계하지 않고 계속 핸드폰을 놀았다. 그리고 아이가 울고 나서야 이렇게 뛰쳐나왔다.“정은아, 촌수를 따지면 우리 웅이는 네 삼촌이야! 넌 웅이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떻게 아이를 괴롭힐 수 있어?” 여자는 가슴 아파하며 정은을 보는 눈빛은 원망을 품고 있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은이 웅이를 어떻게 한 줄로 오해할 것이다.“그냥 내 물건을 돌려주라고 했을 뿐이에요.”정은은 평온하게 말했다.“만약 이게 괴롭힘이라면, 두 분 평소에도 남들을 적지 않게 괴롭혔겠죠?”“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3화

    주덕순은 먼저 별장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웃으며 친척들의 안부를 물었다.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이미숙의 앞으로 다가갔다.“동서, 집이 너무 어지러운 것 같은데, 왜 치우지도 않는 거니?”이미숙은 전에 치웠지만, 매번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집이 전보다 더 더러워졌던 것이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서가 게으름뱅이인 줄 알겠어. 이 바닥 좀 봐, 심지어 흙이 있네. 탁자 위의 그 쓰레기 더미에서 악취가 진동하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머, 이 수건은 이렇게 까맣게 되었는데도 버리지 않는 거야? 왜, 변기라도 닦으려고?”이때 소순자가 다가와서 수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 얼굴 닦는 수건을 왜 가져간 거야?”주덕순은 소름이 돋았다.“어, 어차피 내일은 어머님 팔순잔치니까, 우리야 뭐 집안이 좀 어지럽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이 보게 된다면 창피를 당하는 사람은 동서야, 그러니까 신경 좀 써!”말하면서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이미숙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소진호는 주덕순의 옷을 잡아당기며 그만 좀 하라고 표시했다.주덕순은 불만스럽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왜 날 말리는 건데? 나 아직 말 다 안 했어!’이미숙은 갑자기 웃었다.“사람이 많으면 집안도 당연히 어지러워지겠죠? 그나저나, 형님은 저희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가 나서지 않았다면, 형님의 집이 이렇게 더럽고 어지러워졌을 테니까.”주덕순은 말문이 막혔다.이미숙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이득을 본 이상 조용히 있어요. 괜히 호들갑 떨지 말라고요.”“너...”“형님 만약 그렇게 할 일이 없으시면, 집안을 좀 치워주시는 건 어때요? 우리 소씨 가문을 망신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말을 마치자, 이미숙은 빗자루를 가지러 갔다.주덕순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나, 나 갑자기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그러고는 소진호를 끌고 얼른 줄행랑을 쳤다....다행히 다음 날이 바로 팔순잔치였다.친척들은 호텔에서 식사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2화

    “너도 핑계 같은 거 대지 마. 난 도시 사람이 아니니, 바깥에서 파는 것들을 먹고 싶지 않구나. 그대도 난 어쨌든 어른인데, 아침밥을 좀 해 달라고 하면 뭐가 어때서? 싫으면 내가 네 시어머니 찾아가서 잘 좀 이야기해야겠구나!”말하면서 소순자는 소리를 지르며 화가 나서 머리가 아프다니, 또 배가 고프다니 하며 난리를 피웠다.다른 사람들은 이를 듣고 이미숙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이미숙은 이 징그러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마 평소에 적지 않게 뭉쳐서 남을 많이 괴롭혔을 것이다.“고모 할머니, 집에서 만든 아침을 드시고 싶은 거예요? 그래요, 제가 정은이 아버지한테 만들라고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아니! 내 말을 못 알아들겠어? 너보고 하라는 거지. 진헌이를 시키라는 게 아니잖아!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내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다 알겠는데요...”이미숙은 살짝 웃었다.“저희 집에선 제가 정은이 아버지보다 더 많이 벌거든요. 이 별장조차도 다 제 돈으로 샀어요. 할머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그이가 요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네요.”“뻥치고 있네, 네가 이렇게 큰 별장을 샀다고?!”소순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미숙은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옆에 있던 나정혜는 소순자의 어깨를 힘껏 부딪치더니 목소리를 억누르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어제 진헌에게 물어봤는데, 이 별장은 확실히 정은이 엄마가 산 거예요...”소순자는 멍해졌다.이미숙은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서재로 돌아섰다.‘아니...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지? 이렇게 큰 별장까지 샀다고?!’소순자는 이미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나정혜는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저도 밥을 하지 않고 남자가 다 해 주기를 기다릴 거예요. 돈이 있는 이상, 누가 주방에 가서 일하고 싶겠어요? 어르신이라면 그렇고 싶으시겠어요?”소순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 돈이 있다면 누가 집구석에 박혀 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1화

    텔레비전 액정이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깨졌다.어른들은 천천히 나타나서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은 후 또 소진헌에게 사과했다.꽤 그럴 듯 해 보였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좀 이상했다.“진헌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도 이제 부자이니 텔레비전 하나 정도 사는 건 부담이 없잖아?”“그래, 아이들은 철이 없어서 자주 물건을 던지고 부수겠지. 진헌이가 어떻게 어린 아이들과 다투겠어?”“그럼! 네 말이 맞아!”정말 남에게 배상하라고 할 수 없었기에 이 일은 결국 이대로 넘어갔다.하지만 소진헌은 깨진 텔레비전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백만 원 주고 새로 산 건데...’“자, 이제 우리도 자러 가야지.”...이튿날 아침, 정은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깨어났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6시조차 안 됐다.다음 순간,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확실히 아래층에서 들려온 소리였다.‘그런데 텔레비전은 이미 망가졌잖아?’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중년 여자들이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그 소리도 무척 컸다.정은은 입을 열어 그들을 제지하려 했다. 이미숙은 아침에 글을 썼고, 서재는 바로 1층에 있었다.이렇게 시끄러운 환경에서 이미숙은 글을 쓸 방법이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숙이 방에서 뛰쳐나왔다.모녀는 이렇게 딱 마주쳤다.이미숙은 정은을 본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가 화가 점차 가라앉았다.“시끄러워서 깼어?” 이미숙은 정은의 얼굴을 만지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정은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저 아침 사러 갈게요.”집안이 너무 시끄러우니 차라리 밖에 나가는 게 더 나았다.“그래.”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이미숙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또 쓰레기장처럼 더러운 거실을 보자, 그녀는 아예 서재로 돌아갔다.‘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지 뭐.’그러나 소순자가 웃으면서 자신을 향해 걸어올 줄이야.“정은 엄마, 이미 7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50화

    정은은 특별히 나가서 대문을 확인했는데, 확실히 자신의 집이었다.옅은 회색의 바닥에는 신발 자국과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사람들은 한담을 하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껍질이며 과일 씨며 포장이며 전부 땅에 던졌다.원래 깨끗했던 벽도 어느 아이가 밟았는지 시커먼 발자국 두 개를 남겼다.윙윙거리는 말소리까지 섞이니 현장은 마치 꿀벌의 모임과 같았다.정은은 고개를 돌려 이미숙을 보았다.이미숙은 씁쓸하게 웃으며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래, 네가 본 그대로야.’정은은 이런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물론 그럴 순 없었다. 친척들은 정은을 발견하고 즉시 웃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이야! 이 아이가 바로 진헌이 딸이니? 너무 예쁘게 컸네! 지금은 서비대학교의 대학원생이라며? 출세했네!”“정말 우리 정은이잖아! 키도 참 많이 컸네. 결혼했어? 왜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넌 그동안 줄곧 학교 다닌 것 같은데? 그러다 늙은 처녀가 될지도 몰라!”“오느라 수고했어, 자, 얼른 과일 좀 먹어!”한 무리의 사람들은 마치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정은을 중간에 에워싸고 끊임없이 재잘거렸다.정은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또 대충 대답한 다음 화장실에 간다며 마침내 빠져나왔다.그녀는 서둘러 위층의 방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방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정은은 눈썹을 찌푸리며 한 바퀴 검사했지만,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을 없었다.그녀는 숨을 가볍게 쉬고 서둘러 문을 닫으며 소란스러운 소리를 전부 차단했다.저녁은 이미숙이 책임졌다.이미숙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을 하루 종일 모시느라 고생한 소진헌이 요리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직접 레스토랑의 배달을 시켰다.십여 명의 사람들은 무척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설거지와 치우는 일은 여전히 소진헌이 해야 했다.소순자는 그가 앞치마를 매는 것을 보고 직접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진헌아, 너 뭐하는 거야?”“주방 좀 치우려고요.“사내가 주방에 가면 못 써! 네 마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49화

    오직 셋째 소진헌만이 그들에 비하면 많이 못살았다.‘명문대를 졸업한 다음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나? 좋긴 좋지만 돈을 못 벌잖아!’소순자는 집에 있을 때 줄곧 비아냥거렸다.‘진말숙의 자식들도 다 돈이 있는 건 아니구나!’그러나 지금은 소진헌까지 부자로 됐다니.‘진말숙은 팔자도 참 좋구나...’소순자는 생각할수록 속상해서 손자에게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온 김에 제대로 먹어야지!’소순자와 여덟 식구 말고도 '숙모'라고 불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도 온 집안식구를 데리고 왔다.숙모 나정혜는 집에 들어온 후, 소순자와 약속이나 한 듯 감탄을 금치 못했다.“진헌아, 너 로또라도 당첨된 거야?”“지금 선생님은 돈을 이렇게 많이 벌 수 있는 건가?”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이 안에 뭐 있지? 돈 건질 수 있는 방법 말이야.”소진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흔들었다.“절대 없어요! 저는 국공립학교의 선생님이라 매달 고정된 월급만 받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돈을 건질 수 있겠어요?”“너도 참, 이 숙모를 남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런 적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크고 예쁜 별장을 살 수 있겠어? 장난해?”소진헌은 머리를 긁적였다.“저는 확실히 아무런 돈도 벌지 못했어요. 그러나 제 아내와 딸은 돈을 많이 벌거든요. 이 별장도 다 집사람과 정은이 산 거지,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저는 아무런 능력도 없어서 그저 운이 좀 좋았을 뿐이에요. 이렇게 좋은 아내를 얻고 또 효자 딸을 낳았으니까요.”나정혜는 어이가 없었다.‘지금 돈을 어떻게 벌었냐고 묻고 있는데, 왜 엉뚱한 대답만 하는 거야? 네가 행복하든 말든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사람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선생님은 무슨!’나정혜는 난간을 만지다가 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시선은 방금 소순자가 탐냈던 그 꽃병에 떨어졌다.“진헌아, 이거 정말 예쁘네. 엄청 비싸지?”소진헌은 나정혜의 성격을 그런대로 잘 알고 있었다. ‘이 꽃병이 마음에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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