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아는 정은을 향한 시기를 숨기기조차 귀찮았다.사람들은 수아가 이렇게 나올 줄 몰라,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이때, 태민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며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그 실험 데이터는 내가 이미 널 도와서 계산한 적이 있는데, 빨라도 내일 오전에야 결과가 나올 거야. 다들 모처럼 시간이 있으니, 함께 밥을 먹고 긴장을 풀면 얼마나 좋아... 게다가 조 교수님도 평소에 바빠서 입을 열 틈이 없는데. 오늘 교수님이 한턱 낸다고 하시니 우리도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어?”수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수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재석의 아름다운 얼굴은 조금 차가웠고, 하얀 셔츠는 그를 천사처럼 보이게 했다. 마치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신처럼, 수아는 그런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그래요, 나도 모두의 흥을 깨고 싶지 않네요.”태민은 한숨을 돌렸지만 또 은근히 좀 서운했다.‘이 큰 아가씨는 정말 까칠하다니깐. 역시 조 교수님만이 수아의 생각을 좌우할 수밖에 없어.’...사람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레스토랑으로 갔다.재석은 미리 예약했는데, 한식집이었다. 음식 맛이 매운 편이었지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미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오늘 회식 장소에 너무 만족했다.태민은 가장 활발했다. 실험실에 젊은 여자가 적었기에, 그는 정은을 여동생처럼 대하며 열정적으로 불렀다.“정은아, 뭘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시켜. 절대로 사양하지 말고. 우리 조 교수님은 줄곧 대범하고 통이 크시거든. 뭘 먹고 싶어?”미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근히 농담을 했다.“평소에 태민의 말을 믿으면 안 되지만, 오늘 이 말은 사실이야.”“에이 조 교수님,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 다음에는 그런 말하지 마세요.”그가 고의로 농담을 하자, 분위기는 단번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정은은 태민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기에, 지금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오직 수아만
곧 요리가 올라왔다.진욱은 향기를 맡자, 배가 꼬르륵 소리 짖기 시작했다. 그는 닭볶음탕을 먹었는데, 고기가 연하고 간이 잘 배었다.“맛있네! 이렇게 제대로 된 닭볶음탕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정말 잘 왔네.”태민은 듣자마자 얼른 맛보았다.“확실히 괜찮네요! 수아야, 너도 조금 먹지 않을래?”“아니요, 다이어트 중이라서요.”태민은 재빨리 닭고기를 자신의 접시에 놓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다이어트 끝나면, 우리 둘이 따로 이곳에 와서 먹자...”수아는 어이없어서 눈을 부라렸다.“누가 당신과 함께 오고 싶다는 거예요?”저쪽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고, 미진도 기분이 꽤 좋았다. 그녀는 정은을 보더니 약간 궁금해하며 물었다.“정은아, 아직 네 나이에 대해 안 물어봤는데. 너 올해 몇 살이야? 9월에 대학원 1학년이면 22? 23?”미진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물었을 뿐, 다른 뜻은 없었다.정은도 아무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올해 26살이에요.”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 표정이 이상해졌다.‘26살에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이건 좀...’태민은 말을 하지 않은 재석을 훔쳐보았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수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26에야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그럼 얼마나 애를 썼을까? 몇 번 시험을 봤는데?”수아가 입을 열자 태민은 재빨리 식탁 밑에서 팔로 그녀를 밀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정은 씨는 조 교수님이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잖아.’애석하게도 수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리 가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정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한 번요. 전체적으로 볼 때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그래?” 수아는 단지 정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정말 그렇게 간단하다면, 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바로 시험을 보지
이때 미진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만약 예비 과정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싶다면, 서비대에는 확실히 일부 전공의 학생들이 그 기회를 신청할 수 있어, 하지만 문턱이 무척 높거든. 정은아, 넌 대학 떄 뭘 전공했어?”“생물정보학이요.”“생명과학원?” 미진은 태민을 바라보았다.“이건 태민이 네가 더 잘 알 텐데. 생물정보학이라는 전공에 그 기회가 있는 거야?”순간, 수아를 포함한 모든 시선이 태민에게 집중되었다.“어...”태민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생각했다.“이치대로라면 이 전공은 예비 과정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수아는 벌떡 일어서서 차갑게 정은을 바라보았다.“사실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 지금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그러나 미진은 태민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태민아, 이치대로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또 다른 예외가 있다는 거야?”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매년 생명과학원에는 '조건식 모집 정원'이 1~2개씩 있는데, 국제올림픽학과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학생에게 주어질 거예요.”“조건식 모집 정원이 뭐야?”“간단히 말해서, 금메달 조건을 갖추고 동시에 기타 관련 자격에 부합하는 학생은 학원과 조건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전액 장학금, 대학원 진입 자격 등등. 어차피 조건을 제가하기만 하면, 학원은 종합적으로 고려할 거예요. 물론 마지막에 동의할지 말지는 학원에게 달렸죠.”“즉, 이 조건이 있다면,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거야?”“그렇죠, 하지만 이건 매우 어려워요. 박사 과정에 진입할 기회는 누구나 원하지만, 이런 제의를 받아들이는 학원이 매우 적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최근 10년, 심지어 20년 동안 생명과학원이 준 박사 과정 진입 자격은 단 두 개뿐이었어요. 하나는 송지혜 교수님의 제자 진일민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미선 교수님의 제자인 것 같은데.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여학생은 그해 올림픽 물리, 화학, 생물, 정보학 등 4개 학과 경기대회에서
미진은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 자기 자랑을 하는 거야! 너무 말이 안 되잖아!’진욱은 밥을 먹다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 줄은 몰랐다.“네가 바로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아쉬운 천재’였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럼 올해 대학원 교수님은 누구로 정했어?”“오미선 교수님이요.”진욱은 손뼉을 쳤다.“이야, 우리 교수님 정말 야단나셨네!”오직 수아만이 계속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전의 도발과 득의양양은 순식간에 어색함과 궁핍함으로 변했다. 지금 제자리에 서 있어도 아니고, 앉아 있어도 어색했다.다행히 태민은 제때에 입을 열어 이 어색함을 풀어주었다.“수아야, 먼저 앉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집어줄게. 채소는 다 내 쪽에 놓을게. 넌 고기 많이 먹어...”“고마워요.” 수아는 그제야 앉았다.태민은 또 정은을 바라보며 미안함을 드러냈다.“미안해, 정은아. 수아는 성격이 원래 이래서, 좀 까칠하긴 해. 그러나 나쁜 마음은 없어. 앞으로 너도 알게 될 거야.”‘나쁜 마음은 없다고?’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내가 수아를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테니까, 마음에 두지 마.”“누가 나 대신 사과하라고 했어요?! 어이가 없어!”수아는 화가 나서 태민의 발을 세게 밟았다.태민은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지만 결국 참았다. 다만 얼굴이 빨갛게 질렸다.미진은 동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정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음에 두지 않을 거예요.”손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 그나저나 궁금한 거 있는데, 너 그 당시 왜 입학 자격을 포기하고 대학 입시에 참가한 거야? 결국 서비대에 갔잖아? 그럼 왜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은 거야?”“아마도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녔으니, 자신의 능력이 어떤지 시험해 보고 싶어요?”“그게 다야?”“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그냥 재미로 삼아서 수능을 본 거구나.’이제 오해가 풀리자, 분위기도 점점 화목해졌다.모두들 먹으면서 이야기를
‘이게 뭐야? 익숙한 말투는 마치 두 사람이 이미 여러 번 동행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잖아. 심지어 동거했을 수도...’미진은 사라진 차를 보며 천천히 시선을 거둬들인 뒤, 태민의 손을 꼬집었다.“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태민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조 교수님, 다음에 자신을 꼬집으세요!”‘어떻게 매번 나만 다치는 건데!’조미진은 아주 당당하했다.“넌 젊고 회복력이 강해서 괜찮아.”진욱은 웃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더니 산책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수아의 안색은 그야말로 보기 흉해졌다. 그녀는 태민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차에 올라탄 다음 먼저 갔다.태민은 눈을 드리우며 눈 속에 떠오르는 실망을 감추었다.‘괜찮아, 어차피 익숙해졌으니까.’그는 자신을 위로했다.‘정성이 지극하면 바위에도 꽃이 필 거야. 언젠가는 수아도 날 바라보겠지.’...재석과 정은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전혀 몰랐다.아파트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앞뒤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등불은 발소리에 따라 층층이 켜졌다가 꺼졌다. 정은은 남자의 우뚝 솟은 뒷모습을 보았는데, 불빛에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쭉해졌고, 서로 겹쳐져 정은은 마치 오랫동안 재석과 알고 지낸 착각이 들었다.“오늘 고마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조용한 복도에서 메아리를 쳤다.재석은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재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느긋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내가 집에 데려다 줘서? 아니면 밥을 사줘서?”“둘 다요. 나에게 밥을 사준 것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나를 집에 데려다 준 것에 감사해요. 그리고 또 실험실을 나에게 빌려준 것에 더욱 감사하고요.” 그리고 방금 내가 바로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라고 밝혀줘서 고마워요.”7층에서 재석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뒤돌아보니, 정은은 약간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계단을 오른 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앞으로 걸어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미진은 전문적인 질문인 것을 보고, 숨기지 않았다. 정은의 실험절차를 대충 물어본 후 즉시 건의를 주었다.수아는 정은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 ‘대학만 나온 사람이 머릿속에 뭐가 있겠어? 허세일 뿐이지!’정은은 오전 내내 바빴고, 고개를 돌려서야 모두가 이미 각자의 실험대를 떠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그녀는 시간을 보았는데, 아직 한 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대충 먹은 다음 다시 돌아와서 실험을 계속하려 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재석이 포장된 음식을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방금 밥 사러 갔는데, 겸사겸사 정은 씨의 것도 샀어.”정은은 그의 손에 한 몫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가 이미 먹었다고 생각했다.“고마워요.”쉬는 시간에 정은은 배를 채우고 또 커피 한 잔을 타서 정신을 가다듬었다.오전에 미진의 건의 대로 정은은 반응재료의 비율을 조절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결과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만약 논문에 적고 싶다고, 사실 이 수치는 이미 결론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은은 더욱 정확하게 수치를 얻을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실험을 다시 해야 했다.그는 지금 재석이 실험실을 빌려준데 비할바없이 감격했다. 자원이 가득했으니, 실험을 몇 번이나 다시 해도 상관없었다.이렇게 생각하자, 정은은 남은 커피를 다 마신 다음, 실험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정은은 네 사람이 모여서 무엇을 토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정은은 인사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다가오자 몇 사람이 신속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을 발견했다.정은은 멈칫했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다시 자신의 실험에 몰두했다.‘저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 억지로 어울릴 필요도 없지.’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사냥꾼과 나무꾼처럼, 하나는 동물을 사냥했고, 하나는 장작을 때웠다.목표가 다른 이상, 친구로 될 수 없었다.그러나 만약 마침
[소정은!! 내가 너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데, 어쩜 하나도 받지 않은 거야!][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만약 내가 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넌 평생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 작정이니?]수민은 정말 화가 나서 폭탄처럼 쉴새 없이 말을 했다.정은은 통화기록을 뒤져보니 일련의 부재중 전화가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 수민의 전화였다.수민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바빠서 잊어버렸다.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얼른 사과했다.“수민아, 미안해. 요 며칠 정말 너무 바빴거든. 그리고 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어. 하지만 앞으로 가능한 한 이런 상황을 줄일 거야... 아니, 가능한 한 근절해야지!”사실 정은이 실험실에 가입한 이튿날에 수민은 바로 이 일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재석과 감정이 보통이었지만, 어릴 때 관계가 나름 괜찮았다. 후에 재석이 유학하러 가면서 몇 년간 집에 돌아가지 않았는데, 돌아오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는 ‘천재물리학자’로 되었다.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성인이 된 후, 두 남매가 만나는 횟수는 정말 적었다.수민은 재석이 평소에 실험실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도대체 어떻게 바쁜지 전혀 몰랐다.이제 정은의 상태를 보니 그녀도 깨달은 셈이었다.그것은 정말 직장인보다 더 직장인인 직업이었다. 바빠서 일주일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며, 한 달 동안 답장을 하지 않아도 정상이다.[됐어, 다음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수민은 말투가 누그러졌다.[그러나 다음 달 절대로 우리의 약속을 잊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수민이 오늘 전화를 한 것은 특별히 정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정은은 웃었다.“알아, 우리 수민이의 생일이잖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너에게 준 선물도 다 골랐으니까 기대해도 좋아.”[흥, 그래야지.]수민은 만족해하며 기대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끊고 정은은 물건을 들고 실험실로 돌아갔다.실험실에 도착하자마자 한바탕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아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한 번 보세요, 제가 계산한 거 맞나요?”미진은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는 것 같아.”진욱은 경험이 많아 한눈에 이상한 점을 보아냈다.“이 두 곳은 여전히 틀리잖아.”“7번째 줄의 두 데이터가 모두 계산이 잘못되었어요. 50과 71이 아니라 50.2와... 70.88일 거예요.”정은은 지나갈 때, 그 장편의 수치를 보았고, 한눈에 7번째 노드에서 두 수치가 모두 틀렸다는 것을 보아냈다.평소에 네 사람은 실험실에서 줄곧 정은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왔다.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비록 미진처럼 우호적이고 진욱처럼 마음이 너그럽다 하더라도, 그들은 정은과 그런 천연적인 거리감을 두었다, 이것은 밥 몇 끼 같이 먹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그것은 학력, 지위, 나이, 그리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가져오는 장벽이었다.그들은 태민과 수아를 대할 때, 분명히 정은을 대할 때와 많이 다를 것이다.이때 정은의 말을 듣고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심을 드러냈다.수아는 아예 입을 삐죽거렸다.진욱은 그들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속산 능력이 가장 강했다. 그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문제인데, 정은이 한눈에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니?‘장난해?’미진은 정은이 관심을 얻기 위해 고의로 이렇게 말한 것일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정은아, 이 몇 조의 데이터는 줄곧 태민이 계산하고 있었는데, 1판도 이미 나왔고, 우리도 모두 대조한 적이 있어. 넌 지금 노드의 원시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하다니, 그... 그럴 리가 없을 거야.”진욱도 고개를 끄덕였다.“나와 재석도 모두 검산한 적이 있어서 문제가 없어.”“허-” 수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좀 조용히 있으면 안 돼? 모르면 말하지 말고, 왜 자꾸 남의 일에 끼어들려 하는 건데? 정말 웃겨!”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믿지 못하겠으면 한 번 검사해 보세요.”“검사는 무슨?” 수아는 직접 그녀의 말을 끊었다.“우리
그리고 전에 몇 번 만났을 때도 정은은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차피 우연하게 몇 번 만난 것 외에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강서원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이는 생긴 것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예의도 없군.’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강서원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정은아, 너 어디 갔었어? 빨리 와봐, 난 이미 다 골랐어.”이미숙이 정은을 불렀다.“벌써요? 전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엄마가 입어보는 것도 못 봤네요...”“돌아가서 다시 입어볼게.”“네.”“방금 한 여사님을 만났는데, 내가 원피스를 하나 골라줬거든. 그런데 글쎄 자신의 아들이 ‘7일담'을 보고 있다는 거야...”이 시각, 먼 실험실에 있는 재석은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진욱은 옆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 교수, 재채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대체 밖에 여자가 얼마나 있길래...”“지금 많이 한가한가 봐??”진욱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내일 그냥 혼자 크리스털 호텔의 세미나에 참석해.”‘안 돼!’진욱은 속으로 생각했다.조수진은 몰래 웃었다.“쌤통이다! 그러게 누가 조 교수님을 건드리래!”...정은 일행이 쇼핑을 마칠 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아예 백화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모녀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의논할 때, 나석천의 전화가 걸려왔다.[이미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니 직접 지하 1층으로 내려오세요.]이미숙이 말했다.“편집장님이 밥을 사시다니? 이건 말이 안 되죠.”[제가 작가님을 J시로 초청했잖아요. 그럼 따지고 보면 제가 작가님의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야 하죠. 지금은 그냥 밥을 한끼 사는 것일 뿐, 이건 제가 영광이죠.]나석천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하고 우렁찼다.이미숙이 L시 사람이라서 입맛이 좀 담백한 것을 고려하여 나석천은 J시와 외지
그러나 일은 점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다.강서원은 이미숙에게 다가가더니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이 원피스가 잘 어울리네요.”강서원도 입어보았는데, 나름 괜찮았지만 이미숙이 입는 게 더 잘 어울렸다.사이즈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더 잘 어울렸다.강서원의 기질은 너무 강직해서 부드럽지 못했지만, 이미숙은 딱이었다.부드럽게 생긴 데다가 미소까지 부드러워 이목구비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얄밉지 않은 얼굴이야.’말하자면, 강서원은 줄곧 동서인 백지영, 그리고 지난번 다례 수업에서 한복을 입은 정은처럼 기질이 부드러운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앞에 있는 이미숙은 의외로 강서원의 마음에 들었다.점원은 한쪽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이미숙처럼 세심한 사람은 재빨리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릴 것이다.그녀는 강서원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고마워요.”이미숙은 곁에 있는 한 원피스를 가리켰다.“여사님은 몸매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원피스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한번 입어봐요...”강서원은 상체가 풍만하고 허리가 가녀려 허리라인이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는 게 더 적합했다.사실 지금 이미숙이 입고 있는 이 원피스는 커팅부터 원단까지 모두 괜찮지만, 허리라인이 뚜렷하지 않아 강서원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뚱뚱해 보이게 만들었다.이미숙이 가리키고 있는 원피스도 검은색이었는데, 입으면 아주 날씬해 보일 수 있었다. 커팅은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물고기 꼬리와 같은 하이웨스트 디자인은 나른함을 더했다. 이는 원피스 자체의 엄숙함을 덜어주었다.강서원도 기대를 품지 않고 옷을 입어보았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정말 잘 어울렸다.전신거울 앞에 선 강서원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안목이 정말 좋네요. 코디라도 배운 적이 있는 건가요?”이미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코디 잡지를 즐겨 보곤 했죠.”“보기만 하면 되나요?”“스스로 코디도 할 수 있죠...”두
소씨 가문의 남자는 저마다 잘생겼는데, 소진헌은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중년이 되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몇 벌의 양복을 입어보자 모두 아주 어울렸다.소진헌은 이미숙에게 물었다.“여보, 어느 게 괜찮을 것 같아?”정은도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이미숙은 잠시 생각했다.“다 괜찮은데.”“그럼 어느 걸 골라야 하지?”이미숙이 말했다.“고를 필요 없어요. 다 사면 되죠.”“그건 안 돼, 이게 얼마나 비싼데? 난 이 한 벌이면 충분해. 집에 옷이 아직 많잖아.”이미숙은 이미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세 벌 다 포장해줘요. 고마워요.”“네, 알겠습니다!”점원은 웃으며 카드를 가져갔다.소진헌은 수줍은 소녀처럼 이미숙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여보, 이건 너무 비싸잖아. 한 벌에 몇 백만 원이라니...”“괜찮아요, 내가 당신에게 사주는 거예요.” 이미숙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어제 배당금을 받았는데, 수억이 넘어요.”소진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 그렇게 많아?”“그럼요.”“여보, 정말 너무 대단해!”이미숙은 얼굴이 붉어졌다.“콜록!” 정은은 큰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곁에 있는데, 두 분은 좀 자제하시면 안 되는 건가?’소진헌의 옷을 사는데 시간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숙은 아니었다. 2층 여성복 구역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어떤 옷들은 심지어 딱 봐도 아니었기에 입어 볼 의욕이 전혀 없었다.정은은 갑자기 한 프랑스의 브랜드를 떠올렸다. 이름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아, 매장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모퉁이에 있었다.그래도 옷은 예뻤는데, 이미숙은 발을 디디자마자 눈이 밝아졌다.정은이 골라줄 필요 없이 이미숙은 이미 자신의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먼저 치마 두 벌을 입어 보았는데, 오렌지색과 파란색이었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모두 피부톤과 잘 어울렸다.치맛자락의 무늬는 레이스에 자수를 더한 것으로, 고전적이고 우아한 운치를 띠고
경혜는 도겸의 뒷모습을 주시했다.그녀는 오늘에야 남자의 차가 포르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옷은 아르마니, 시계는 파텍필립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케이크를 보니 경계는 눈빛이 절로 깊어졌다.다른 한편, 정은이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숙을 데리고 쇼핑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그녀는 전공 수업의 교수님에게 미리 설명을 했다. 다행히 오늘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지 않고 주로 지난주 팀 과제를 보고하고 총결하는 것이었는데, 민지와 서준이 보고하면 됐기에 정은도 부담 없이 휴가를 낼 수 있었다.내일이 바로 사인회였고, 요 몇 년 동안 이미숙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었다.이미숙은 이리저리 골랐지만, 옷장에 있는 옷이 사인회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못 입는 건 아니지만 뭐가 좀 부족했다.소진헌은 진심으로 칭찬을 했다.“우리 여보는 무엇을 입어도 다 예뻐, 정말이야!”그러나 이미숙은 평소처럼 소진헌의 농담에 웃지 않았다.정은은 재빨리 알아차렸다.“엄마, 우리 새 옷 사러 가요! J시에 큰 백화점이 얼마나 많은데, 틀림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이미숙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그래!”소진헌은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왜 내 칭찬이 쓸모가 없는 거지?’...SSG 백화점에서.세 식구는 관광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 고급 브랜드가 가득 모인 사치품 매장이 점차 작아지는 것을 보며, 이미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백화점 정말 크네!”의상은 2층과 3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층수를 미처 누르지 못해서 그들은 4층으로 올라갔다.이미숙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책장 포스터에 이끌려 세 사람은 아예 이 층에서 내리기로 했다.위에는 ‘SSG RENDEZ-VOUS’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서점처럼 보이지만 일반 서점과 달랐는데, 서점과 카페 및 레스토랑이 하나로 된 곳이었다.문에 들어서면 카페라서 공기 중에 진한 원두 향기가 풍겼다.뒤에는 음식이 있었다.가운데는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선배님, 다 됐어요?”정은이 입을 열고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다.“응, 다 됐어.”“고마워요.”재석은 또 정은의 허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게 분명해!’...도겸은 해가 지고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도 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머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두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자신이 찌질하게 굴던 장면도 있었다.날이 밝자, 도겸은 그제야 추억의 늪에서 벗어났다.아침 8시, 직장인들은 저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전을 하며 달북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평소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오늘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다.“안녕하세요, 망고 케이크 하나 주세요.”점원은 멈칫했다.“통째로 된 케이크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한 조각을 원하시는 거예요?”“통째로 된 거요.”“손님, 정말 운이 좋네요. 지금 금방 하나 만들었는데 곧 자르려고 했거든요. 몇 분만 늦으셨다면 아마도 1시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점원은 포장을 하면서 물었다.“이렇게 일찍 케이크를 사러 오셨다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내 여자... 전 여자친구가 좋아해서요.”이 말 한마디에 젊은 점원은 바로 예전에 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모르겠네.’도겸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를 받은 다음 바로 차에 올라탔다.점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이야, 스포츠카라니... 더 소설 주인공 같잖아.’...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하민지와 임서준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다.강의동을 나오자마자 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목이 좀 마른데.”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미 그의 침묵에 익숙해진
도겸의 심장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소진헌이 재석을 대할 때의 열정과 자신을 대할 때의 냉담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도겸은 계속 서 있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닫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재석이 정은의 집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도겸은 거절당한 선물 더미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왕순자는 이미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은 다시 정은이 금방 떠났을 때의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화장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고, 그 위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주인은 이미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정은이 날 버린 것처럼.’도겸은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전에 이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토지 증여 계약서, 그리고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사수자리의 모양을 이루었다.이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팔찌였다. 정은의 22번째 생일이 되던 해에 도겸은 특별히 유명한 디자이너인 존 스미스를 청하여 그녀를 위해 디자인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비춘 별이라는 뜻이었다.정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도겸은 고의로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톡까지 차단했다.정은의 생일날인 새벽 12시, 도겸은 이 팔찌를 들고 서비대학교 문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비록 정은이 팔찌를 받았고, 두 사람도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했지만 도겸은 그녀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그 후 그도 정은이 이 팔찌를 몇 번 찬 것을 보았다.그러나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은이 이 팔찌를 낄 때마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곤 했다.후에 정은은 아예 팔찌를 서랍에 잠그며 다시는 끼지 않았다.“도겸아, 난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매번 다툴 때마다 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나와 너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이 물건들 그냥 가져가. 우리는 친척도 친구도 아니니, 이 물건들이 비싸든 안 비싸든 우리는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너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네 선물을 받을 이유가 더욱 없지 않겠어?”도겸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이미숙은 소진헌과 레스토랑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도겸은 빈손으로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때 이미숙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는 우리 정은이와 어울리지 않아.’그러나 정은은 그때 도겸에게 푹 빠졌다. 도겸이 핑계를 대고 떠난 뒤, 그녀는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이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아팠다.굽실거리는 딸이 안타까웠고, 남자의 존중을 받지 못해서 더욱 안쓰러웠다.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도겸은 그들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다.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님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 여자를 존중하겠는가?이미숙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안고 찾아왔지만, 다시 근심과 걱정을 안고 돌아갔다.물론, 그녀도 또한 이러한 도리를 정은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심지어 좀 더 강경하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으니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끝을 보지 않는다면, 정은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고, 줄곧 이 일이 마음에 걸려 평생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다.아이가 성인이 된 이상, 부모로서 그들도 이제 손을 놓아줘야 했다. 정은이 스스로 인생을 겪도록.그러나 이미숙은 정은이 이대로 공부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그 대가는 너무 컸다.“다행히 모든 일이 지나갔고, 정은이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 만약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정은이에게 미안하다면,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이미숙은 다른 사람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투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