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아는 정은을 향한 시기를 숨기기조차 귀찮았다.사람들은 수아가 이렇게 나올 줄 몰라,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이때, 태민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며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그 실험 데이터는 내가 이미 널 도와서 계산한 적이 있는데, 빨라도 내일 오전에야 결과가 나올 거야. 다들 모처럼 시간이 있으니, 함께 밥을 먹고 긴장을 풀면 얼마나 좋아... 게다가 조 교수님도 평소에 바빠서 입을 열 틈이 없는데. 오늘 교수님이 한턱 낸다고 하시니 우리도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어?”수아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수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재석의 아름다운 얼굴은 조금 차가웠고, 하얀 셔츠는 그를 천사처럼 보이게 했다. 마치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신처럼, 수아는 그런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그래요, 나도 모두의 흥을 깨고 싶지 않네요.”태민은 한숨을 돌렸지만 또 은근히 좀 서운했다.‘이 큰 아가씨는 정말 까칠하다니깐. 역시 조 교수님만이 수아의 생각을 좌우할 수밖에 없어.’...사람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레스토랑으로 갔다.재석은 미리 예약했는데, 한식집이었다. 음식 맛이 매운 편이었지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미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오늘 회식 장소에 너무 만족했다.태민은 가장 활발했다. 실험실에 젊은 여자가 적었기에, 그는 정은을 여동생처럼 대하며 열정적으로 불렀다.“정은아, 뭘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시켜. 절대로 사양하지 말고. 우리 조 교수님은 줄곧 대범하고 통이 크시거든. 뭘 먹고 싶어?”미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근히 농담을 했다.“평소에 태민의 말을 믿으면 안 되지만, 오늘 이 말은 사실이야.”“에이 조 교수님,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 다음에는 그런 말하지 마세요.”그가 고의로 농담을 하자, 분위기는 단번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정은은 태민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기에, 지금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오직 수아만
곧 요리가 올라왔다.진욱은 향기를 맡자, 배가 꼬르륵 소리 짖기 시작했다. 그는 닭볶음탕을 먹었는데, 고기가 연하고 간이 잘 배었다.“맛있네! 이렇게 제대로 된 닭볶음탕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정말 잘 왔네.”태민은 듣자마자 얼른 맛보았다.“확실히 괜찮네요! 수아야, 너도 조금 먹지 않을래?”“아니요, 다이어트 중이라서요.”태민은 재빨리 닭고기를 자신의 접시에 놓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다이어트 끝나면, 우리 둘이 따로 이곳에 와서 먹자...”수아는 어이없어서 눈을 부라렸다.“누가 당신과 함께 오고 싶다는 거예요?”저쪽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고, 미진도 기분이 꽤 좋았다. 그녀는 정은을 보더니 약간 궁금해하며 물었다.“정은아, 아직 네 나이에 대해 안 물어봤는데. 너 올해 몇 살이야? 9월에 대학원 1학년이면 22? 23?”미진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물었을 뿐, 다른 뜻은 없었다.정은도 아무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올해 26살이에요.”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 표정이 이상해졌다.‘26살에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이건 좀...’태민은 말을 하지 않은 재석을 훔쳐보았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수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26에야 대학원에 합격한 거야? 그럼 얼마나 애를 썼을까? 몇 번 시험을 봤는데?”수아가 입을 열자 태민은 재빨리 식탁 밑에서 팔로 그녀를 밀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정은 씨는 조 교수님이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잖아.’애석하게도 수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리 가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정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한 번요. 전체적으로 볼 때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그래?” 수아는 단지 정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정말 그렇게 간단하다면, 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바로 시험을 보지
이때 미진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만약 예비 과정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싶다면, 서비대에는 확실히 일부 전공의 학생들이 그 기회를 신청할 수 있어, 하지만 문턱이 무척 높거든. 정은아, 넌 대학 떄 뭘 전공했어?”“생물정보학이요.”“생명과학원?” 미진은 태민을 바라보았다.“이건 태민이 네가 더 잘 알 텐데. 생물정보학이라는 전공에 그 기회가 있는 거야?”순간, 수아를 포함한 모든 시선이 태민에게 집중되었다.“어...”태민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생각했다.“이치대로라면 이 전공은 예비 과정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수아는 벌떡 일어서서 차갑게 정은을 바라보았다.“사실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 지금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그러나 미진은 태민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태민아, 이치대로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또 다른 예외가 있다는 거야?”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매년 생명과학원에는 '조건식 모집 정원'이 1~2개씩 있는데, 국제올림픽학과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학생에게 주어질 거예요.”“조건식 모집 정원이 뭐야?”“간단히 말해서, 금메달 조건을 갖추고 동시에 기타 관련 자격에 부합하는 학생은 학원과 조건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전액 장학금, 대학원 진입 자격 등등. 어차피 조건을 제가하기만 하면, 학원은 종합적으로 고려할 거예요. 물론 마지막에 동의할지 말지는 학원에게 달렸죠.”“즉, 이 조건이 있다면,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거야?”“그렇죠, 하지만 이건 매우 어려워요. 박사 과정에 진입할 기회는 누구나 원하지만, 이런 제의를 받아들이는 학원이 매우 적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최근 10년, 심지어 20년 동안 생명과학원이 준 박사 과정 진입 자격은 단 두 개뿐이었어요. 하나는 송지혜 교수님의 제자 진일민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미선 교수님의 제자인 것 같은데.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여학생은 그해 올림픽 물리, 화학, 생물, 정보학 등 4개 학과 경기대회에서
미진은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 자기 자랑을 하는 거야! 너무 말이 안 되잖아!’진욱은 밥을 먹다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알 줄은 몰랐다.“네가 바로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아쉬운 천재’였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럼 올해 대학원 교수님은 누구로 정했어?”“오미선 교수님이요.”진욱은 손뼉을 쳤다.“이야, 우리 교수님 정말 야단나셨네!”오직 수아만이 계속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전의 도발과 득의양양은 순식간에 어색함과 궁핍함으로 변했다. 지금 제자리에 서 있어도 아니고, 앉아 있어도 어색했다.다행히 태민은 제때에 입을 열어 이 어색함을 풀어주었다.“수아야, 먼저 앉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집어줄게. 채소는 다 내 쪽에 놓을게. 넌 고기 많이 먹어...”“고마워요.” 수아는 그제야 앉았다.태민은 또 정은을 바라보며 미안함을 드러냈다.“미안해, 정은아. 수아는 성격이 원래 이래서, 좀 까칠하긴 해. 그러나 나쁜 마음은 없어. 앞으로 너도 알게 될 거야.”‘나쁜 마음은 없다고?’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내가 수아를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테니까, 마음에 두지 마.”“누가 나 대신 사과하라고 했어요?! 어이가 없어!”수아는 화가 나서 태민의 발을 세게 밟았다.태민은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지만 결국 참았다. 다만 얼굴이 빨갛게 질렸다.미진은 동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정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음에 두지 않을 거예요.”손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 그나저나 궁금한 거 있는데, 너 그 당시 왜 입학 자격을 포기하고 대학 입시에 참가한 거야? 결국 서비대에 갔잖아? 그럼 왜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은 거야?”“아마도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녔으니, 자신의 능력이 어떤지 시험해 보고 싶어요?”“그게 다야?”“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요?”‘그냥 재미로 삼아서 수능을 본 거구나.’이제 오해가 풀리자, 분위기도 점점 화목해졌다.모두들 먹으면서 이야기를
‘이게 뭐야? 익숙한 말투는 마치 두 사람이 이미 여러 번 동행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잖아. 심지어 동거했을 수도...’미진은 사라진 차를 보며 천천히 시선을 거둬들인 뒤, 태민의 손을 꼬집었다.“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태민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조 교수님, 다음에 자신을 꼬집으세요!”‘어떻게 매번 나만 다치는 건데!’조미진은 아주 당당하했다.“넌 젊고 회복력이 강해서 괜찮아.”진욱은 웃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뒷짐을 지더니 산책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수아의 안색은 그야말로 보기 흉해졌다. 그녀는 태민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차에 올라탄 다음 먼저 갔다.태민은 눈을 드리우며 눈 속에 떠오르는 실망을 감추었다.‘괜찮아, 어차피 익숙해졌으니까.’그는 자신을 위로했다.‘정성이 지극하면 바위에도 꽃이 필 거야. 언젠가는 수아도 날 바라보겠지.’...재석과 정은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전혀 몰랐다.아파트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앞뒤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등불은 발소리에 따라 층층이 켜졌다가 꺼졌다. 정은은 남자의 우뚝 솟은 뒷모습을 보았는데, 불빛에 두 사람의 그림자는 길쭉해졌고, 서로 겹쳐져 정은은 마치 오랫동안 재석과 알고 지낸 착각이 들었다.“오늘 고마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조용한 복도에서 메아리를 쳤다.재석은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재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느긋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내가 집에 데려다 줘서? 아니면 밥을 사줘서?”“둘 다요. 나에게 밥을 사준 것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나를 집에 데려다 준 것에 감사해요. 그리고 또 실험실을 나에게 빌려준 것에 더욱 감사하고요.” 그리고 방금 내가 바로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라고 밝혀줘서 고마워요.”7층에서 재석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뒤돌아보니, 정은은 약간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계단을 오른 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앞으로 걸어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미진은 전문적인 질문인 것을 보고, 숨기지 않았다. 정은의 실험절차를 대충 물어본 후 즉시 건의를 주었다.수아는 정은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 ‘대학만 나온 사람이 머릿속에 뭐가 있겠어? 허세일 뿐이지!’정은은 오전 내내 바빴고, 고개를 돌려서야 모두가 이미 각자의 실험대를 떠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그녀는 시간을 보았는데, 아직 한 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대충 먹은 다음 다시 돌아와서 실험을 계속하려 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재석이 포장된 음식을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방금 밥 사러 갔는데, 겸사겸사 정은 씨의 것도 샀어.”정은은 그의 손에 한 몫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가 이미 먹었다고 생각했다.“고마워요.”쉬는 시간에 정은은 배를 채우고 또 커피 한 잔을 타서 정신을 가다듬었다.오전에 미진의 건의 대로 정은은 반응재료의 비율을 조절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결과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만약 논문에 적고 싶다고, 사실 이 수치는 이미 결론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은은 더욱 정확하게 수치를 얻을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실험을 다시 해야 했다.그는 지금 재석이 실험실을 빌려준데 비할바없이 감격했다. 자원이 가득했으니, 실험을 몇 번이나 다시 해도 상관없었다.이렇게 생각하자, 정은은 남은 커피를 다 마신 다음, 실험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정은은 네 사람이 모여서 무엇을 토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정은은 인사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다가오자 몇 사람이 신속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을 발견했다.정은은 멈칫했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다시 자신의 실험에 몰두했다.‘저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 억지로 어울릴 필요도 없지.’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사냥꾼과 나무꾼처럼, 하나는 동물을 사냥했고, 하나는 장작을 때웠다.목표가 다른 이상, 친구로 될 수 없었다.그러나 만약 마침
[소정은!! 내가 너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데, 어쩜 하나도 받지 않은 거야!][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만약 내가 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넌 평생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 작정이니?]수민은 정말 화가 나서 폭탄처럼 쉴새 없이 말을 했다.정은은 통화기록을 뒤져보니 일련의 부재중 전화가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 수민의 전화였다.수민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바빠서 잊어버렸다.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얼른 사과했다.“수민아, 미안해. 요 며칠 정말 너무 바빴거든. 그리고 너무 바빠서 잊어버렸어. 하지만 앞으로 가능한 한 이런 상황을 줄일 거야... 아니, 가능한 한 근절해야지!”사실 정은이 실험실에 가입한 이튿날에 수민은 바로 이 일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재석과 감정이 보통이었지만, 어릴 때 관계가 나름 괜찮았다. 후에 재석이 유학하러 가면서 몇 년간 집에 돌아가지 않았는데, 돌아오자마자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는 ‘천재물리학자’로 되었다.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성인이 된 후, 두 남매가 만나는 횟수는 정말 적었다.수민은 재석이 평소에 실험실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도대체 어떻게 바쁜지 전혀 몰랐다.이제 정은의 상태를 보니 그녀도 깨달은 셈이었다.그것은 정말 직장인보다 더 직장인인 직업이었다. 바빠서 일주일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며, 한 달 동안 답장을 하지 않아도 정상이다.[됐어, 다음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수민은 말투가 누그러졌다.[그러나 다음 달 절대로 우리의 약속을 잊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수민이 오늘 전화를 한 것은 특별히 정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정은은 웃었다.“알아, 우리 수민이의 생일이잖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너에게 준 선물도 다 골랐으니까 기대해도 좋아.”[흥, 그래야지.]수민은 만족해하며 기대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끊고 정은은 물건을 들고 실험실로 돌아갔다.실험실에 도착하자마자 한바탕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아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한 번 보세요, 제가 계산한 거 맞나요?”미진은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는 것 같아.”진욱은 경험이 많아 한눈에 이상한 점을 보아냈다.“이 두 곳은 여전히 틀리잖아.”“7번째 줄의 두 데이터가 모두 계산이 잘못되었어요. 50과 71이 아니라 50.2와... 70.88일 거예요.”정은은 지나갈 때, 그 장편의 수치를 보았고, 한눈에 7번째 노드에서 두 수치가 모두 틀렸다는 것을 보아냈다.평소에 네 사람은 실험실에서 줄곧 정은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왔다.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비록 미진처럼 우호적이고 진욱처럼 마음이 너그럽다 하더라도, 그들은 정은과 그런 천연적인 거리감을 두었다, 이것은 밥 몇 끼 같이 먹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그것은 학력, 지위, 나이, 그리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가져오는 장벽이었다.그들은 태민과 수아를 대할 때, 분명히 정은을 대할 때와 많이 다를 것이다.이때 정은의 말을 듣고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심을 드러냈다.수아는 아예 입을 삐죽거렸다.진욱은 그들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속산 능력이 가장 강했다. 그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문제인데, 정은이 한눈에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니?‘장난해?’미진은 정은이 관심을 얻기 위해 고의로 이렇게 말한 것일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정은아, 이 몇 조의 데이터는 줄곧 태민이 계산하고 있었는데, 1판도 이미 나왔고, 우리도 모두 대조한 적이 있어. 넌 지금 노드의 원시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하다니, 그... 그럴 리가 없을 거야.”진욱도 고개를 끄덕였다.“나와 재석도 모두 검산한 적이 있어서 문제가 없어.”“허-” 수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좀 조용히 있으면 안 돼? 모르면 말하지 말고, 왜 자꾸 남의 일에 끼어들려 하는 건데? 정말 웃겨!”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믿지 못하겠으면 한 번 검사해 보세요.”“검사는 무슨?” 수아는 직접 그녀의 말을 끊었다.“우리
첫 번째로 초청장을 처음 받은 사람은 하정남이었다.택배로 부쳤기 때문에 민지는 이틀 전에 초청장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냈다.택배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 하정남은 어리둥절해졌다.‘집사람리 또 인터넷 쇼핑을 한 거야? 그런데 왜 내 전화를 남겼지? 설마... 에르메스를 샀는데 착불로 부친 건 아니겠지?!’“이 사람이 정말!”옆에서 쑥뜸을 하고 있던 민지 어머니는 영문을 몰랐다.하정남은 쿵쿵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택배를 받고, 또 쿵쿵거리며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보낸 사람을 보니, 뜻밖에도 그의 딸이었다.하정남은 희색이 만면했다.“누구 택배예요?” 민지 어머니는 쑥을 들고 물었다.온 거실에 쑥 냄새가 가득했다.하정남은 맨손으로 택배를 뜯었다.“우리 민지.”“응?” 임수인은 얼른 다가왔다.“민지가 뭘 보냈어요? 왜 서류봉투죠? 계산서 아니에요?”하정남은 멈칫했다.“설마, 그럴 리가? 얼마 전에 금방 3천만 원 줬는데!”이 얘길 꺼내자, 임수인은 화를 냈다.“3천만 원을 달라했다고 바로 줘요? 앞으로 국고를 달라고 한다면, 그것까지 훔쳐서 줄 거예요?! 평소에 내가 가방을 몇 개 사면 반년 동안 잔소리를 하다니. 지난달에 내가 차를 바꾸겠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민지가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줘요? 민지도 내가 낳은 딸이잖아요!”“이 돈 가지고 뭘 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남들과 나쁜 짓을 배우는 것도 두렵지 않나 봐요!”“민지가 말했잖아, 실험실을 짓겠다고!”임수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실험실이요? 당신은 그걸 믿는 거예요! 전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실험실 한 칸을 못 내주는 거예요 뭐예요? 왜 민지가 자신의 돈을 써서 새것을 지어야 하냐고요? 맨날 돈을 많이 줘서 무슨 사고라도 쳤겠죠!”“어제 뉴스를 봤는데, 재벌 2세의 대학생들이 매년 클럽에 가서 수십억을 쓴다잖아요. 이상한 남자와 엮이면 어떡하려고. 당신은 민지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줬으니, 나중에 남자에게 속으면 어쩌려고요?”“하긴, 내가 당신에게 아들을
1개월 23일에 걸쳐 2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 첨단 지능형 시스템과 두 단계의 생물안전등급 체계를 갖춘 실험실이 마침내 이번 겨울 세 번째 눈이 멈춘 후 완공되었다. 인훈은 자신의 팀을 데리고 실험실 지능시스템의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했다.이와 함께 현빈의 명의로 된 과학기술회사가 해외를 통해 구매한 각종 실험기기도 속속 도착했다.민지와 서준은 요 며칠 바빠서 죽을 지경이었다.인훈과 스마트 시스템 조작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 외에, 기기를 점검하고 공간을 배치해야 했다.실험대며 정수기며 모두 두 사람이 직접 안착시켰다.수업, 식사,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여기에서 보냈다.서준네.“서준아, 또 나가려고?”“네, 할머니!”“오늘은 토요일이잖아? 수업도 없는데 왜 자꾸 밖으로 뛰쳐나가는 거야? 너 여자친구 사귀었어?!” 할머니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아니에요!”“그럼 뭐 하러 가는 건데?”“중요한 일이 하나 있어요! 할머니, 저 먼저 갈게요.”말을 마친 후, 서준은 가방을 들고 목도리를 두르며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어린아이한테 무슨 큰일이 있겠어?”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차를 마시던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서준이 실험실로 달려갈 때, 민지도 택시를 탔다.“기사님, 교외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그곳은 공사장인데, 아가씨 혼자 뭐 하러 가려고?”민지는 표정이 숙연해지더니 또박또박 말이었다.“엄청 중요한 일이에요.”도중에 그녀는 하정남의 전화를 받았다.“네, 아빠.”[넌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난 보고 싶어 죽겠는데?]“나도 아빠 보고 싶어요. 쪽쪽!”민지가 뽀뽀를 하자, 하정남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러나 입으로는 여전히 원망했다.[보고 싶으면서도 나한테 연락도 없고! 흥! 누구를 속이는 거야?]“아빠, 나 요즘 바빠서 그래요. 정신없이 바빴단 말이에요!”[뭐가 바빠? 아빠한테 말 할 수 있어?]“곧 알게 될 거예요! 정말이에요!”[나한테도
현장에서 안색이 가장 안 좋은 사람은 그래도 송지혜였다.‘스스로 실험실을 세우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송지혜는 멍해졌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며 마지막에는 냉소를 지었다.‘혼자 실험실을 짓겠다고? 말이 쉽지, 그게 정말 마음대로 될 것 같아?’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땅과 심사비준만 해도 까다로워서 소정은은 절대로 따낼 수 없어.’예전에 학교가 오미선의 편을 들어줬을 때, 송지혜도 나름 고생을 했다.학생도 없지, 자원도 없지, 학교도 송지혜를 철저히 외면하며 무시했다.가장 힘들 때 송지혜는 억울함을 참으며 심지어 학교를 떠나 스스로 실험실을 지으려 했다.그때 가서 성적을 내면, 학교도 다시 찾아와서 그녀에게 부탁할 것이다.그러나 송지혜는 가장 억울할 때만 이런 생각을 했을 뿐, 전혀 실천을 하지 않았다.너무 어려우니까.밖에서 아무 공터 하나 찾아 벽돌로 쌓으면 바로 실험실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실험실은 부지선정에 엄격한 요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에도 명확한 규정이 있으며, 또 관련 부문의 심사비준을 거쳐야 한다.“풉...”“이모... 앗! 교수님, 왜 웃으세요?” 지예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주제넘은 생각을 해서 말이야. 평소에 이런 장난을 쳐도 그만이지만, 뜻밖에도 대학원에 신고를 했다니. 큰소리 치다가 자빠질지도 몰라.”“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예는 조심스럽게 떠보았다.“허, 넌 스스로 실험실을 짓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신고 고지서일 뿐, 다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놀랄 필요가 있겠어?”신고는 신고였고, 짓는데 시간이 얼마 필요한지, 어떻게 지을지, 마지막에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두 미지수였다.‘놀랄 게 뭐가 있다고?’“이런 방식으로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것 좀 봐. 정말 웃기고 불쌍해.”“그들이 실험실을 짓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송지혜는 턱을 살짝 들고 냉소를 지었다.“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지예는 바로 웃음을
백두강이 입을 열었다.“각 팀 다 보고했겠지? 다른 신고할 사항은 없는 건가?”관례에 따라 각 팀은 보고가 끝난 후, 대학원 회의에서 신고 사항을 발표해야 했다.물론 작은 일은 보고할 필요가 없었는데, 인사 변동, 제명과 같은 큰일만 보고하면 됐다.공평과 공정을 표시하기 위해 감찰팀 대표가 대중 앞에서 신고서를 낭독해야 했다.평소에 이 코너는 생략하면 됐다.신고할 내용이 없으니까.백두강은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무대에 앉아 있던 감찰팀 대표가 일어설 줄이야.“한 가지가 있습니다.”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백두강조차도 놀라서 눈썹을 찌푸렸다.“구체적인 사항은 소정은의 연구팀이 교외에 자체로 실험실을 건설할 것을 신청한 것에 관한 고지서입니다. 저희측은 이미 접수했으며 관련 수속을 심사하고 있고, 진도를 제때에 대학원측 및 학교측에 보고할 것입니다.”이 말은 마치 돌이 호수에 떨어진 것처럼 파문을 일으켰다.“자체로 실험실을 건설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나 잘못 들은 거 아니죠?”“누가 실험실을 짓는 거지? 학교 측이 연합하여 설립한 연구 작업실인가? 그래도 실험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중점 못 들었어? 이건 고지서지 신청서가 아니야. 다시 말해서, 소정은의 팀은 이미 실행을 하기 시작했단 거야. 이번 신고도 절차에 따라 학교에 고지하는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라고.”“헐... 그동안 들은 소식들 어쩜 이렇게 신기한 거지? 전에 어떤 사람이 혼자 돈을 내서 CPRT 한 대를 샀다고 하던데, 지금 뜻밖에도 혼자 실험실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다니?! 실험실이 무슨 농사야? 짓고 싶으면 짓게?”“음... CPRT를 구매한 사람과 자체 실험실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뭐?!”...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송지혜 팀은 이미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진호는 망연자실하게 말했다.“방, 방금 뭐라고 했어?”지예는 중얼거렸다.“그럴 리가...”서정조차도 두 눈을
정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험실 시정은 사실이고 진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따질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다시 앉자, 마침 강서정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서정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소정은, 너도 이렇게 당하는 날이 있다니.”“인생에는 항상 기복이 있는 법이지. 사람이라면 다 운이 나쁠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너희들도 조심해,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뻔뻔하긴!”정은은 앞을 쳐다보며 얼굴에 노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서정은 정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엄청 화가 났다.“넌 송 교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젊었을 때의 오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 교수님은 이미 늙으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넌 그런 교수님의 학생이 되었으니, 세력도 없고 그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당초에 내가 너와 그렇게 싸우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네가 이겼고, 내가 졌잖아. 그러나 지금 일이 또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평생 이긴 것은 아니야. 졌다고 해서 앞으로 줄곧 지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서정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대학원 시험에서 일등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 면접 시험을 잘 봤다고 또 뭐가 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내서 CPTR을 샀지만, 결국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잖아?’“소정은, 넌 우리 오빠와 헤어진 후에 어째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니? 대학원에 붙으면 아주 잘난 거라 생각했던 거야? 우리 오빠가 널 안중에 둘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너라는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고? 꿈이나 깨!”정은은 웃으며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고, 엄청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네 말의 뜻인 즉... 내가 대학원 시험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거잖아. 네 오빠는 확실히 내 성적에 놀랐고, 네 어머니도 나란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 맞지?”“너..
12월 말, J시는 겨울에 들어선 후 두 번째 눈을 맞이했다.이번 눈은 첫눈보다 더 많이 내렸고, 이틀 연속 내렸기에 J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이른 아침, 정은은 미안함을 안고 재석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정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재석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조여졌다.“무슨 일이야?!”“그런 거 아니에요!” 시간이 확실히 이르고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정은은 더욱 미안해지더니 또 좀 부끄러워했다.“나 때문에 깬 거죠?”“아니야, 원래 일어날 시간이거든.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지난번에 그 눈놀이 도구 말인데요... 아직 있어요?”재석은 멍해졌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은 확실히 그쳤다.“이렇게 일찍 내려가서 눈놀이를 할 거야?” 재석은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정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네! 일찍 내려가야 밟힌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깨끗하잖아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꼭 어린아이 같아.”“눈놀이에 어른과 아이가 있나요? 놀고 싶으면 노는 거죠.”“잠깐만 기다려.”말이 끝나자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안에는 전에 둔 오리, 공룡, 곰돌이 그리고 삽 등이 있었다.“고마워요 선배님! 나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정은은 통을 받고 몸을 돌려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10분 뒤, 단정하게 차려입은 재석이 아래층에 나타났다.정은은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하얀 패딩, 크고 빨간 모자, 주위의 눈과 하얗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오직 그 빨간색만 선명하고 눈부셨다.“선배님! 이리 와요.”정은이 재석을 향해 웃었다.재석은 손을 흔들었다.“너희들끼리 놀아.”정은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몸을 돌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파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무언가를 세게 던졌다.손바닥만 한 눈덩이가 재석을 향해 날
인훈은 말을 하지 못했다.정은이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이제 손 놓아도 돼요.”현빈은 웃으며 마치 그제야 알아차린 듯,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섬세하고 얇은 어깨는 패딩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뼈를 만질 수 있었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도 현빈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현빈은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은 몸을 돌려 현빈에게서 유연하게 벗어났다.현빈은 반응이 빨랐는데, 정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긴 팔을 뻗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한 사람은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갔다.하나는 도망가고 다른 하나는 쫓아갔다.정은은 화가 났다.“심현빈 씨! 작작 좀 하면 안 돼요?!”남자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좋아, 드디어 날 심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네.”...두 사람이 밀당을 하는 사이, 재석은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고, 손에 종이주머니를 들고 있었다.불빛 때문인지, 그의 반쪽 얼굴이 그늘 속에 숨어 있어서 지금 표정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선배님?” 정은은 바로 재석을 발견했다.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걸음을 들어 다가오더니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에 시선이 떨어졌다.인훈은 자신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것이 아니었다.현빈은 코트에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조 교수님!” 인훈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여기서 만났다니, 정말 공교롭네요!”“공교롭긴요.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네?”재석은 주머니에 든 목도리를 꺼내 앞으로 다가갔고,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를 벗긴 다음 현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정은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방금 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네 두 친구를 만났는데, 너에게 목도리를 돌려주려고 했던 거야. 나도 마침 오는 길이라 대신 너한테 주겠다고 했어. 두 사람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고마워요, 선배님! 또 귀찮게 했네요.”정은은 목도리 안으로 움츠러
가로등 아래에서, 정은 그들은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찬바람이 쌩쌩 불자, 내쉬는 숨결은 순식간에 안개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정은아, 밀크티 마실래? 오빠가 쏠게.”인훈은 흰 이빨을 드러냈다.정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추었다.세 사람의 의혹을 맞이하며 그 사람은 마술사처럼 뒤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꺼내 정은에 건네주었다.“안, 안녕! 난 이 학교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야. 그, 그동안 널 주목해 왔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 그리고, 우리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 널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첫눈에 반했거든. 매우 갑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나 자신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어.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이런 일에 부딪쳤다니.정은은 가게에서 나올 때, 오늘 마침내 ‘우연히’ 도겸과 경혜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뜻밖에도 남의 고백을 받았다니.인훈은 반응하여 가장 먼저 현빈의 표정을 살폈다.‘이야, 완전 열받은 표정이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정은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잖아? 밥을 먹으러 나오다가 고백까지 받다니. 헤헤...’정은은 앞에 있는 꽃을 보며 한순간 침묵했다.“꽃은 정말 예뻐요...”남자는 바로 웃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그럼 받...”“하지만 난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왜, 왜?”“우선, 나는 그쪽을 모르고, 우리도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꽃을 주다니, 난 그 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자격 같은 거 필요 없어.”남자는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이거 그냥 너에게 주는 거야.”“그럼 더 받으면 안 되죠. 장미는 사랑을 대표하고, 오늘 내가 이 꽃을 받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잖아요. 미안해요.”“이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꽃을 선물한 것
“다 심 대표님의 그 두 공사팀 덕분이야...”원래 그들은 기초 토목 건설을 책임졌지만, 인훈은 곧 자신이 상대방의 실력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발견했다.기초 토목 건설을 제외하고, 이 사람들은 인테리어, 자재 감식까지 훌륭했다.그래서 토지 건설이 완료된 후, 인훈은 당분간 공사팀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이어서 공사팀으로 하여금 내부 인테리어와 스마트 배치 제어까지 완성하게 했다.“심 대표님, 무슨 문제 없죠?”정은은 이 말을 듣고 인훈과 함께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정은의 눈빛을 마주하며 살짝 웃었다.“당연히 없죠.”정은이 입을 열기만 하면, 현빈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현빈 오빠라 불러.”‘또 시작이네.’인훈이 말했다.“헤헤... 현빈 형 고마워요.”현빈은 깜짝 놀랐다.다 먹자, 인훈은 계산하려고 했다.현빈은 이미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사장님, 계산이요.”“심 대표님, 식사 끝나셨어요? 오늘 꽃등심 맛은 어때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보았다.“맛 어때?”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맛있어요.”“그럼 됐어요! 최근 이 요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저희 예전의 간판 메뉴보다 더 잘 팔리고 있어요. 장사도 많이 좋아졌고요. 말하자면 심 대표님의 소중한 제안 덕분이기도 하죠.”현빈은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거뒀다.“정은이 덕분이죠.”사장님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애매한 눈빛으로 정은과 현빈을 바라보았다.“그럼요! 다 고맙죠!”문을 나서자, 찬바람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정은은 재빨리 패딩 지퍼를 당겼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그녀의 목에 둘렀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얼른 벗으려 했다.“아니에요, 지퍼를 높게 당기면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그러나 현빈은 듣지 않았다.“그냥 두르고 있어.”...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민지와 서준은 실험실에서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