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겨울방학 기간이라 대부분 학생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고, 학교는 무척 한산했다.경비원은 정은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며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아가씨, 지금 방학이라 선생님을 보러 돌아온 거야?”고3은 과외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는 여전히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경호원은 뒤로 한 손을 흔들며 가볍게 기침을 했다.“얼른 들어가라. 소란 피우지 말고. 그리고 3학년 학생들의 수업을 절대로 방해하면 안 돼.”정은은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침묵하길 다행이야.’그녀는 선생님을 방문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의동으로 가지 않고 운동장을 두 바퀴 돌아다녔다. 막 떠나려고 할 때, 학교의 전시대를 지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보았다.아래에는 작은 글자로 된 소개가 있었다.[소정은: 20XX년, L시 이과수석으로 서비대학교 생물학부에 입학.]바람이 불자, 정은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땅 위의 낙엽은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었고, 원래 밝고 화창한 날씨였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워졌다.정은이 팔을 들어 바람을 막고 떠나려던 참에 갑자기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소 선생님!”눈을 들어 보니 정말 소진헌이었다.어제 텔레비전을 볼 때, 소진헌은 오늘 학교에 와서 고3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이렇게 두 사람은 학교에서 마주쳤다.“소 선생님,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집에 볼일이 많이 않나요?”인사하는 사람은 소진헌과 나이가 비슷한 여자 선생님이었다.정은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도 그들과 같은 주택 단지에서 살지만, 다른 건물에 있었다.그리고 그 여자 선생님도 물리를 가르쳤는데, 소진헌과 같은 학년을 맡았다. 당시 소진헌은 우수학생을 책임졌고, 그녀는 일반 학생을 가르쳤다.그래서 정은은 그녀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녀의 딸 장소연과 같은 반 친구였다.“주 선생님.” 소진헌은 웃으며 인사했다.“다행히 별로 바쁘지 않네요.”“왜요? 정
소진헌의 안색은 무척 어두워졌다.“주 선생님, 우리 정은은 엄청 휼륭한 아이예요. 오늘 한 그런 말들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신 그런 소문을 퍼뜨리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것들 모두 허튼소리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모함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선생님으로서 가져야 할 품격이 아니에요.”말이 끝나자 소진헌은 성큼성큼 떠났고, 뒷모습만 봐도 그의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주윤설은 눈을 부라렸다.“허, 딸이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데도 말하지 못하게 하다니? 뭐? 훌륭한 아이? 개뿔! 학교 망신이나 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더러운 여자 주제에...”그 당시의 소진헌은 무척 득의양양했다. 과목마다 1등을 하는 동시에 경기에 나가서 상을 무수히 많이 받은 딸은 전 학년, 심지어 전교에서도 모두 유명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소진헌은 그런 정은을 칭찬했고, 자랑스럽게 웃었다.‘그래서? 서비대에 붙으면 또 뭐가 어때서? 결국 부자들 장난감으로 됐잖아! 퉤!’정은은 주윤설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전시대 뒤로 숨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런 비방과 욕설에 직면할 때 어떤 표정을 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아끼면서도 정직한 선생님이었다!만약 소진헌이 자신도 이곳에 있고 또한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슬퍼할까?그래서 정은은 숨을 수밖에 없었다....소진헌은 시험지와 참고답안을 고3을 책임지는 선생님에게 넘겨준 다음 바로 떠났다. 학교 문 앞까지 걸어가자,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정은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 근처까지 왔어요.”“그래, 이제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네 엄마 말 듣지 말고 우리 얼른 집에 돌아가자.”“네.” 정은은 소진헌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았다.“하나 둘 셋.”소진헌이 힘을 주며 페달을 세게 밟자, 자전거가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아빠, 미안해요...”“응? 갑자기 무슨 사과야?”“그동안 아빠와 엄마를 보러 오지 않아서..
“어머! 정말 정은이네. 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어!”류춘미는 옆집 이웃인데, 입이 싼 데다가 목소리까지 무척 컸다! 그녀의 남편도 인성 고등학교의 교사였고, 정은이네와 같은 해에 이 주택단지로 이사 왔다.정은이 나오자, 류춘미는 얼른 달려가서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쯧쯧, 정말 대단하네! 큰 도시의 물이 참 좋긴 좋나 봐, 정은이 너도 많이 예뻐졌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이 옷차림 좀 봐, 이 몸매, 그리고 입은 옷이며 신발이며 너무 유행인데!”류춘미는 한바탕 칭찬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고 정은을 향해 눈짓했다.“정은아, 네가 J시에서 엄청 잘 지낸다고 들었는데, 만약 좋은 사람 있으면 우리 둘째 여동생에게 좀 소개해 줄 수 없어?”정은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좋은 사람이요?”“에헴! 그 돈 많은 사장이라든가, 재벌 집 도련님이라든가 말이야. 우리 둘째 여동생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데, 관건은 아주 젊거든. 올해 겨우 22살이야!”정은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뒤로 물러서며 류춘미와 거리를 두었다.“아주머니,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남자를 꼬시기 위해 J시에 간 게 아니에요. 그런 일 잘 모르니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류춘미는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정은아, 이웃들끼리 뭘 숨기고 그러니? 너도 이제 돈을 번 이상,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어?”정은은 화가 나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제가 뭔데요? 제가 뭔데 당신들을 가르쳐 줘야 하는 거죠? 아주머니, 저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세요.”정은이 계속 거절하자, 류춘미는 미소를 거두었다.“어머, 돈을 벌자마자 그 기세가 아주 하늘을 찌를 것 같구나! 방금 농담을 좀 한 것 가지고, 어느 집 아가씨가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남자나 꼬시고 다니겠어...”“류 씨! 말 좀 조심해!”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진헌은 자전거를 버리고 앞으로 달려와 딸을 뒤에 감쌌다.그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고, 눈에서 분노가 타
정은은 대걸레를 흔들며 계속 휘둘렀다.류춘미는 머리를 안고 피해 다녔고, 문 밖으로 뛰쳐가더니 뒤돌아서서 독설을 퍼붓었다.“절,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 빌어먹을 등꽃이 우리 집 정원까지 자랐으니, 내일 불로 다 태울 거야! 보기만 해도 짜증나네!”말이 끝나자 류춘미는 재빨리 도망을 쳤는데, 정은이 다시 대걸레를 들고 쫓아갔기 때문이다.“꺼져요! 이렇게 한 번 찾아올 때마다 전 대걸레를 들고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정은은 대걸레를 내려놓고 긴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소진헌의 표정이 엄숙해진 것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정은은 오물거리며 입을 열었다.“아빠, 죄송해요. 저는...”“언제 그런 거 배웠어?”“네?”“그, 그거 말이야...”소진헌은 정은이 방금 대걸레를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정은은 할 말을 잃었다.“에헴! 여자아이는 그래도 좀 정숙하고 얌전해야지,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을 배워서는 안 돼.”“아빠.” 정은은 다가가서 소진헌의 팔을 안았다.“방금 속이 다 시원하시죠?”“그래, 속이 다 후련하네.”“그 집 정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등꽃들도 다 그 여자가 뽑은 거죠?”사실 두 집 사이에는 작은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류춘미는 허락도 없이 그곳에 채소를 심었고, 심지어 매일 똥을 비료 삼아 뿌렸다. 이미숙이 심은 등꽃은 덩굴이 겨우 정원 벽을 타고 올라갔을 뿐인데, 공터에 닿기도 전에 류춘미는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소진헌은 쪼잔한 사람이 아니었고, 이미숙도 남과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동안 공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류춘미는 오히려 그 공터가 자신의 땅인 양 당연하게 여겼다.“꽃가지가 밭의 햇빛을 막았다고 모두 뽑아버렸어.”소진헌은 한숨을 쉬었다.“네 엄마가 이 일로 무척 괴로워했지.”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집에 없는 그동안 부모님이 이렇게 당하고 지낼 줄은 정말 몰랐다.“아빠, 그 사람들이 말한 일들은...”
말하는 사람은 둘째 큰어머니인 주덕순이었고, 전기 시설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공무원이라 평소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몸도 많이 뚱뚱했다.그녀는 오늘 초록색 스웨터를 입었고, 단발머리를 파마하여 마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부풀어 올랐다.“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은 말을 할 줄 모르는 거야?” 둘째 큰아버지 소진호는 아내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비만인 주덕순에 비해, 소진호는 몸매가 길쭉했다. 그는 베이지색 스웨터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뒤로 빗어 윤기가 흐르도록 무스를 발랐다.50대 되가는 사람이었지만,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고, 심지어 은근히 청년처럼 활기가 차 넘쳤다.소씨 가문의 유전자는 꽤 괜찮았다. 소진헌 세 형제는 모두 준수하게 생겼다.주덕순은 남편에게 얻어맞아 입을 삐죽거렸다.“왜 그래요, 내가 함부로 말한 것도 아닌데. 정은은 확실히 몇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설을 쇠지 못했잖아요. 난 상관없지만, 도련님과 동서가 정은을 많이 그리워했을 텐데.”말이 끝나자, 주덕순은 또 열정적으로 다가와서 정은의 팔을 안았다.“정은아, 넌 어쩜 이렇게 예뻐진 거야? 큰 도시에 가서 그런지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우리와 기질이 엄청 다르잖아.”정은은 오늘 하얀 롱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벗었다. 안에는 살구색 스웨터였고, 옅은 갈색의 니트 롱스커트에 카키색 장화를 신었다. 그리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며 오직 앞머리만 리본으로 고정했다.이렇게 보니, 정은은 영리하고 얌전해 보여서 마치 달콤한 크림과 같았다.주덕순이 그녀의 기질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소시율은 이 말을 듣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엄마,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좀 조용히 하면 안 돼?”주덕순은 그녀를 노려보았다.“맨날 핸드폰을 가지고 놀 줄만 아는 사람이 내가 말이 많다고 싫어해? 넌 정은이 좀 따라 배워.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꾸미는 거 잘 좀 보고 배워!”소시율은 오늘 짧고 타이트한 상의에 짧은 스커트, 그리고 스노우부츠를
세 며느리 중, 박나영은 현명하고 내조도 잘했으며, 주덕순은 입담이 좋아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오직 이미숙만은 어르신들의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시간이 흐르면서 소진헌 역시 점차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장가를 가더니 부모를 잊은 아들이 무슨 소용인가? 돈도 잘 벌고 곁에서 부모를 모시는 사장인 큰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정은은 이미숙 옆에 앉았다. 어차피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나서서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밥을 먹고 나서 떠나면 될 일이었다.“정은이, 이 가방 꽤 예쁘네. 브랜드지?” 큰어머니 박나영은 과일 쟁반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정은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모든 시선들이 정은에게 떨어졌다.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덕순은 먼저 말했다.“어머, 이게 뭐라고 했더라? 루이 비통?”시율이 말했다.“모르면 입 좀 열지 마, 이건 에르메스야.”“뭐?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 수천만 원짜리 가방이라고?!” 주덕순은 숨을 한 모금 들이켰다.그녀는 사치품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가해서 매일 출근할 때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얼마 전에 인기 드라마인 에서, 주덕순은 여주인공이 메고 있는 그 가방이 무척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정은의 에르메스는 전부 도겸의 별장에 남겨뒀는데, 이 가방은 그녀가 혼자 돈을 벌어서 산 것이었다.오늘 정은은 이 옷을 맞추려고 들고 나왔는데, 위에 로고가 없었지만 박나영이 단번에 알아볼 줄은 정말 몰랐다.박나영은 은근히 놀랐다.“그렇게 비싸?”비록 남편이 사장이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를 차렸지만, 박나영은 소진우를 따라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명품 가방은 더더욱 메고 다니지 않았다.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정은을 힐끗 보았다. 할아버지도 시선을 돌렸다.정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길가에서 이 가방이 예쁜 것 같아서 샀는데, 겨우 몇 만 원밖에 안 들
주덕순은 마음속으로 몰래 웃으며 눈빛은 소진헌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에 떨어졌다.“동서도 체리를 산 거야? 형님이 산 것보다 훨씬 작은 것 같은데?”이미숙은 활짝 웃으며 말투가 온화했다.“저희 집이 어떻게 형님댁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주덕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네! 누가 형님댁보다 잘 살 수 있겠어.”정은은 입술을 구부리며 무심한 척 말했다. “둘째 큰어머니는 무슨 과일을 사셨어요?”주덕순은 웃음이 굳어졌다.정은은 눈치채지 못한 듯, 마침 자신의 옆에 있는 그 과일 바구니를 뒤졌다.“어디 보자, 사과, 배, 귤...”비싼 과일은 하나도 없었다.“역시 둘째 큰어머니시네요. 모두들 자주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사셨다니.”주덕순은 귀에 거슬리다고 생각했지만, 또 정은의 말에서 트집을 잡지 못했다.“그래, 난 식구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좀 샀어...”말하자면 주덕순은 가정 형편이 나름 괜찮았다. 부모님은 모두 전기 시설 관리직이었고, 아버지는 또 나름 중요한 직위를 맡았다. 주덕순은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엄청 편안한 삶을 누렸다.그러나 그녀는 속이 좁고 따지기 좋아해서 결코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가족들을 대할 때 더욱 그랬다.“가족을 챙기는 데는 둘째 큰어머니밖에 없네요.”“에헴.”박나영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말만 하지 말고 얼른 과일 먹어.”“네, 감사합니다, 큰어머니.” 정은은 대범하게 체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정말 엄청 달아요.”그러나 주덕순은 오히려 풀이 죽었다. 그녀는 어색해하며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고, 소진호가 자신을 위로하길 바랐다.그러나 소진호는 주덕순에게 눈빛 하나 주지 않았다.“엄마, 조금 더 먹어. 바삭바삭하고 엄청 달아!” 시율은 옆에서 재촉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남들이 다 먹을지도 몰라.’“넌 먹을 줄만 알지? 너와 네 아버지는 날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소진호와 시율은 어이가 없었다....점심 12시가 되자,
“그럼요.”“아가씨, 정말 고마워!” 박나영은 받아서 한쪽에 놓은 다음, 이따가 뜯어보려고 했다.소수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금팔찌인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게에 가져가서 바꿀 수 있어요.”주덕순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가씨도 정말 통이 크네. 금팔찌를 선물하다니...”소수정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무척 득의양양했지만, 일부러 겸손한 척했다.“에이, 큰 오빠 댁이 얼마나 잘 사는데, 제가 산 금팔찌가 뭐라고요.”“그런데 왜 형님에게만 주는 거야? 나와 네 셋째 올케언니는?” 주덕순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아가씨는 이제 은행 책임자가 됐으니 평소에 큰 고객들을 상대할 텐데. 이런 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소수정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둘째 올케언니도 갖고 싶으신 거예요?”주덕순은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금팔찌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안 그래 동서?”말하면서 그녀는 이미숙을 끌어들였고, 주덕순과 소수정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이미숙은 말을 하지 않았다.“동서, 말 좀 해봐?”이 결정적인 순간에 소진헌이 입을 열었다.“우리 집사람은 주얼리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평소에 제가 사줘도 끼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주덕순은 입을 삐죽거렸다.‘누가 촌놈이라고 하지 않을까 봐. 뭐? 금팔찌가 싫어? 개뿔!’“동서는 싫지만 난 좋은데!” 주덕순은 뻔뻔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우리를 차별하는 건 아니겠지?”“그래요, 그럼 둘째 올케언니도 다음에 한턱 내요. 식구들 모두 초대한다면, 선물도 자연히 손에 들어오겠죠.”주덕순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우리는 별장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집에 초대할 수가 있겠어.’“집이 작다고 생각되시면, 레스토랑에 가서 먹어도 돼요.” 소수정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주덕순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바로 말했다.‘지금 장난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레스토랑에 간다고? 심지어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에 가야 하잖아.
“그래,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말하면서 민지는 서준의 팔짱을 끼고 기뻐하며 학교 밖으로 돌진했다.서준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손을 빼려고 했다.민지는 바로 그를 잡아당겼다.“야, 쑥스러워하지 마. 우린 절친이잖아!”민지는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팔을 못 빼겠네! 이 여잔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두 사람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케이크를 들고 스포츠카에서 내려오는 도겸을 보았다. “어머!”민지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은 왜 매번 차를 교문 앞에 세우는 건지 모르겠네. 심각한 교통 체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서준은 잠시 침묵했다.“아마도 이런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어디가 멋있다는 거야? 포르쉐에서 내려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그럴 수도?”민지는 서준을 바라보았다.“너도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은 국산 자동차를 선호해서.”민지가 말했다.“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삼촌 할아버지는 모두 렉서스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거든.”“그럼 왜 자꾸 포르쉐를 운전하는 거지?”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도겸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고 있는 케이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서준은 그녀가 침을 삼키는 동작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도겸은 몇 번이나 찾아오면서 정은이 늘 민지와 서준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 횟수가 많아지자, 그도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도겸은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정은이는? 오늘 왜 너희들과 같이 있는 않는 거야?”민지는 사실대로 말했다.“정은 언니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왜?”“휴가를 냈거든요.”“왜 갑자기 휴가를 낸 거야?”“그건 저희도 잘 몰라요.”도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묻고 싶었다.그러나 민지는 이미 서준의 팔을 잡으며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저희는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도겸은 허탕을 쳤다.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미니언즈 포장의 케이
“선배님, 다 됐어요?”정은이 입을 열고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다.“응, 다 됐어.”“고마워요.”재석은 또 정은의 허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게 분명해!’...도겸은 해가 지고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그도 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머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두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자신이 찌질하게 굴던 장면도 있었다.날이 밝자, 도겸은 그제야 추억의 늪에서 벗어났다.아침 8시, 직장인들은 저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전을 하며 달북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평소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오늘 꼬박 한 시간이나 걸렸다.“안녕하세요, 망고 케이크 하나 주세요.”점원은 멈칫했다.“통째로 된 케이크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한 조각을 원하시는 거예요?”“통째로 된 거요.”“손님, 정말 운이 좋네요. 지금 금방 하나 만들었는데 곧 자르려고 했거든요. 몇 분만 늦으셨다면 아마도 1시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점원은 포장을 하면서 물었다.“이렇게 일찍 케이크를 사러 오셨다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내 여자... 전 여자친구가 좋아해서요.”이 말 한마디에 젊은 점원은 바로 예전에 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모르겠네.’도겸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케이크를 받은 다음 바로 차에 올라탔다.점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유리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이야, 스포츠카라니... 더 소설 주인공 같잖아.’...오전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자, 하민지와 임서준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다.강의동을 나오자마자 민지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목이 좀 마른데.”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이미 그의 침묵에 익숙해진
도겸의 심장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소진헌이 재석을 대할 때의 열정과 자신을 대할 때의 냉담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도겸은 계속 서 있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닫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재석이 정은의 집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도겸은 거절당한 선물 더미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왕순자는 이미 청소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이곳은 다시 정은이 금방 떠났을 때의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화장대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고, 그 위에는 아직 다 쓰지 않은 스킨케어 제품이 놓여 있었지만, 그들의 주인은 이미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정은이 날 버린 것처럼.’도겸은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전에 이 안에는 수표 한 장과 토지 증여 계약서, 그리고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사수자리의 모양을 이루었다.이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팔찌였다. 정은의 22번째 생일이 되던 해에 도겸은 특별히 유명한 디자이너인 존 스미스를 청하여 그녀를 위해 디자인했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비춘 별이라는 뜻이었다.정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해 도겸은 고의로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톡까지 차단했다.정은의 생일날인 새벽 12시, 도겸은 이 팔찌를 들고 서비대학교 문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비록 정은이 팔찌를 받았고, 두 사람도 오해를 풀고 다시 화해했지만 도겸은 그녀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그 후 그도 정은이 이 팔찌를 몇 번 찬 것을 보았다.그러나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은이 이 팔찌를 낄 때마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곤 했다.후에 정은은 아예 팔찌를 서랍에 잠그며 다시는 끼지 않았다.“도겸아, 난 너와 다투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매번 다툴 때마다 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나와 너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이 물건들 그냥 가져가. 우리는 친척도 친구도 아니니, 이 물건들이 비싸든 안 비싸든 우리는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너와 정은이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네 선물을 받을 이유가 더욱 없지 않겠어?”도겸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이미숙은 소진헌과 레스토랑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도겸은 빈손으로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때 이미숙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 남자는 우리 정은이와 어울리지 않아.’그러나 정은은 그때 도겸에게 푹 빠졌다. 도겸이 핑계를 대고 떠난 뒤, 그녀는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이미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아팠다.굽실거리는 딸이 안타까웠고, 남자의 존중을 받지 못해서 더욱 안쓰러웠다.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도겸은 그들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았다.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님조차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 여자를 존중하겠는가?이미숙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안고 찾아왔지만, 다시 근심과 걱정을 안고 돌아갔다.물론, 그녀도 또한 이러한 도리를 정은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심지어 좀 더 강경하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으니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녀는 정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끝을 보지 않는다면, 정은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고, 줄곧 이 일이 마음에 걸려 평생 행복해하지 않을 것이다.아이가 성인이 된 이상, 부모로서 그들도 이제 손을 놓아줘야 했다. 정은이 스스로 인생을 겪도록.그러나 이미숙은 정은이 이대로 공부를 포기할 줄은 몰랐다.그 대가는 너무 컸다.“다행히 모든 일이 지나갔고, 정은이도 이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 만약 마음속으로 여전히 우리 정은이에게 미안하다면,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이미숙은 다른 사람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다투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정은이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도겸은 몸을 돌렸다.현빈이 또박또박 말했다.“정은이에게 한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있고, 동시에 그 사람을 포기할 용기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아마도 이것 때문에 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 아마도 너와 다른 사람들은 정은이가 너한테 미쳐서 6년 동안 참아왔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난 알아. 정은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정은이는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전에 내린 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배신을 당했더라도 정은이는 너와 좋게 끝내고 싶었어.”현빈의 말은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도겸은 몸이 비틀거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돼.” 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가정에서 나온 아이는 감정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정은이는 온전하고 포용적이며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거든.”재삼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 아니라.현빈은 도겸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도 불합격이었다.그는 생각이 많은 여우라서, 예전 같으면 절대로 한 여자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왜냐하면 확실히 도겸이 말한 대로, 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현빈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그는 정은을 위해 제멋대로 굴고 싶었다.앞으로 두 번, 심지어 세 번, 수천수만 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결국 도겸은 문을 박차며 가버렸고, 그 소리는 하늘을 뒤흔들었다.선우와 동건은 문 뒤에 서 있었는데, 하마터면 놀라 죽을 뻔했다.“도겸이 형 그 눈빛 봤어요?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아요.”동건이 대답했다.“야, 그 자식 정말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너 설마, 나와 깨끗이 선을 그으면, 정은이는 절친이었던 우리의 사이를 개의치 않고, 네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멍청하긴!” 도겸은 현빈이 든 찻잔을 빼앗아오며 땅에 찧었다.낭랑한 소리와 함께 그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심현빈, 전에는 왜 몰랐지, 너 사랑꾼이었어? 여자 없인 못 사는 거냐고?”선우와 동건은 얼른 뒤로 물러서며, 깨진 조각에 다치지 않도록 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도겸의 말 때문에 은근히 놀랐다.현빈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방식으로 도겸과 강제로 선을 긋고 있었다.전에 두 사람은 비록 사이가 틀어졌지만, 사적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그러나 투자할 프로젝트는 여전히 함께 투자하며 같이 돈을 벌었다.이익 앞에서 개인적인 일은 전부 보잘것없었으니까.선우와 동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여자 때문에 싸우더라도 장사는 계속해야 했다.하물며 현빈은 여우였다.‘그런데 이번엔 왜...’도겸이 현빈을 사랑꾼이라 욕하는 것을 듣고, 선우와 동건도 현빈이 이해되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현빈은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정말 아깝네. 멀쩡한 찻잔이 이렇게 깨졌다니. 넌 성질이 참 더러워. 그나저나, 넌 그때 정은이를 이 찻잔과 똑같이 대하지 않았니?”도겸은 매섭게 눈살을 찌푸렸다.“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쩨쩨하면 뭐가 어때? 유치하면 또 어때? 난 쩨쩨하고 유치해서 너와 깨끗하게 선을 그을 거야. 뭐 굳이 완벽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러길 원해서 그래. 왜, 안 돼?”“너...”이 말에 도겸은 화가 나서 숨이 거칠어졌고, 이를 꽉 물었다.현빈은 웃으며 도발했다.“왜? 그 프로젝트들이 아까운 거야? 그 돈이 그렇게 아까워?”“그래, 너만 잘났다. 넌 돈이 싫은 거야?!”“그건 아니지만 돈보다 정은이가 더 중요해.”선우와 동건은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현빈은 계속해서 말했다.“네 말대로, 내가 너와 깨끗하게 선을
“심현빈, 이게 무슨 뜻이야?” 강도겸은 다탁 앞으로 걸어왔다.“뭐가?”“왜 개발구역의 프로젝트를 중단한 거지?”현빈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협력하고 싶지 않아서 중단했어.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네가 중단하고 싶으면 다야?! 하루 지체하면 얼마나 큰 손실을 봐야 하는지 아냐고?”“아마도.”“그런데도 중단을 해?!”현빈은 차를 다 마신 다음, 아주 능숙하게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도겸은 찻주전자를 꾹 눌렀다.“넌 3일 동안 피해 다녔고, 지금은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있어. 계속 질질 끌면서 태도를 표명하지 않을 작정이냐?”현빈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내가 피했다고? 언제?”“네 비서가 너 출장 갔다고 했어. 그게 일부러 나 피한 거 아니야?”“허, 널 피한다고? 착각 좀 하지 마. 내가 L시 시찰을 하러 가는 일정은 이주 전에 이미 정해졌어. 내가 굳이 너를 피할 필요가 있을까?”“L시?” 도겸은 예민하게 무언가를 알아차렸다.현빈은 담담하게 웃었다.선우가 갑자기 다가와서 말했다.“현빈이 형, L시에 갔었어요? L시는 정말 좋은 곳이죠. 먹는 것도 모두 내 입맛에 맞고요... 그런데 정은 누나의 고향이 L시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날 때리고 그래요!”동건은 미친 듯이 눈짓을 했지만, 선우는 좀처럼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선우를 때렸다.선우는 그제야 반응을 하더니 즉시 입을 다물었다.도겸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현빈을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너 L시에 가서 정은이를 만난 거야?”현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시찰하러 갔다고 말했잖아.”“그런데...”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확실히 정은이를 만났지.”“지금 뭐라고 했어?”“정은이를 만났다고.”“너 한 번만 더 말해봐?!”“정은이 만났는데.”도겸는 그의 옷깃을 덥석 잡아당겼다.“심현빈, 내가 지난번에 경고했었지?”현빈은 도겸의 손을 뿌리치며 유유히 옷깃을 정리했다.“경고?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경고를 해? 전 남자친구
이미숙은 현빈이 자신의 책까지 보았을 줄은 몰랐다.“『7일담』이 내가 쓴 책이란 것을 알고 있었어?”현빈은 정은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알아요.”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이미숙도 물어보지 않았다.다만 정은은 두 똑똑한 사람의 눈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아이고...’“그래서 범인은 정말 그 성실한 물리 선생님인 거예요?”이미숙은 깜짝 놀랐다.“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지?”책 속의 모든 증거는 전부 물리 선생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완벽한 범죄를 실시했다.명확한 증거가 있는 이상, 그가 범인인게 확실했지만, 현빈은 오히려 그 사람이 정말 범인이냐고 물었다.그를 바라보는 이미숙은 은근히 감탄했다.“책에 몇 군데 숨겨진 묘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첫 번째, 계단 사이의 어긋난 그림자.두 번째, 알 수 없이 사라진 흉기. 결국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세 번째, 혼자 사는 딸 집에 슬리퍼 두 켤레가 나타났다. 책에서는 손님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왜 하필 남자 슬리퍼였을까?혼자 사는 여자가 자주 남자를 집에 초대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특별히 슬리퍼를 준비했단 말인가?이것은 불합리했다.준비해도 남자가 아닌 여자 슬리퍼를 준비해야 마땅했다.“모든 숨겨진 단서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물론.”현빈은 말머리를 돌렸다.“이것은 단지 제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에요.”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이 질문을 했을 때, 답은 이미 네 마음속에 있을 거야.”현빈도 따라서 웃었다.“그래서 2부가 더 있는 거네요, 맞죠?”이미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웃으면서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다.현빈이 차를 골목 어귀에 세우자, 정은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부모님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고마워, 현빈아.”“아저씨, 별말씀을요.”위층으로 올라갈 때, 소진헌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