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덕순은 마음속으로 몰래 웃으며 눈빛은 소진헌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에 떨어졌다.“동서도 체리를 산 거야? 형님이 산 것보다 훨씬 작은 것 같은데?”이미숙은 활짝 웃으며 말투가 온화했다.“저희 집이 어떻게 형님댁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주덕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네! 누가 형님댁보다 잘 살 수 있겠어.”정은은 입술을 구부리며 무심한 척 말했다. “둘째 큰어머니는 무슨 과일을 사셨어요?”주덕순은 웃음이 굳어졌다.정은은 눈치채지 못한 듯, 마침 자신의 옆에 있는 그 과일 바구니를 뒤졌다.“어디 보자, 사과, 배, 귤...”비싼 과일은 하나도 없었다.“역시 둘째 큰어머니시네요. 모두들 자주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사셨다니.”주덕순은 귀에 거슬리다고 생각했지만, 또 정은의 말에서 트집을 잡지 못했다.“그래, 난 식구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좀 샀어...”말하자면 주덕순은 가정 형편이 나름 괜찮았다. 부모님은 모두 전기 시설 관리직이었고, 아버지는 또 나름 중요한 직위를 맡았다. 주덕순은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엄청 편안한 삶을 누렸다.그러나 그녀는 속이 좁고 따지기 좋아해서 결코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가족들을 대할 때 더욱 그랬다.“가족을 챙기는 데는 둘째 큰어머니밖에 없네요.”“에헴.”박나영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말만 하지 말고 얼른 과일 먹어.”“네, 감사합니다, 큰어머니.” 정은은 대범하게 체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정말 엄청 달아요.”그러나 주덕순은 오히려 풀이 죽었다. 그녀는 어색해하며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고, 소진호가 자신을 위로하길 바랐다.그러나 소진호는 주덕순에게 눈빛 하나 주지 않았다.“엄마, 조금 더 먹어. 바삭바삭하고 엄청 달아!” 시율은 옆에서 재촉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남들이 다 먹을지도 몰라.’“넌 먹을 줄만 알지? 너와 네 아버지는 날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소진호와 시율은 어이가 없었다....점심 12시가 되자,
“그럼요.”“아가씨, 정말 고마워!” 박나영은 받아서 한쪽에 놓은 다음, 이따가 뜯어보려고 했다.소수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금팔찌인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게에 가져가서 바꿀 수 있어요.”주덕순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가씨도 정말 통이 크네. 금팔찌를 선물하다니...”소수정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무척 득의양양했지만, 일부러 겸손한 척했다.“에이, 큰 오빠 댁이 얼마나 잘 사는데, 제가 산 금팔찌가 뭐라고요.”“그런데 왜 형님에게만 주는 거야? 나와 네 셋째 올케언니는?” 주덕순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아가씨는 이제 은행 책임자가 됐으니 평소에 큰 고객들을 상대할 텐데. 이런 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소수정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둘째 올케언니도 갖고 싶으신 거예요?”주덕순은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금팔찌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안 그래 동서?”말하면서 그녀는 이미숙을 끌어들였고, 주덕순과 소수정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이미숙은 말을 하지 않았다.“동서, 말 좀 해봐?”이 결정적인 순간에 소진헌이 입을 열었다.“우리 집사람은 주얼리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평소에 제가 사줘도 끼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주덕순은 입을 삐죽거렸다.‘누가 촌놈이라고 하지 않을까 봐. 뭐? 금팔찌가 싫어? 개뿔!’“동서는 싫지만 난 좋은데!” 주덕순은 뻔뻔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우리를 차별하는 건 아니겠지?”“그래요, 그럼 둘째 올케언니도 다음에 한턱 내요. 식구들 모두 초대한다면, 선물도 자연히 손에 들어오겠죠.”주덕순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우리는 별장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집에 초대할 수가 있겠어.’“집이 작다고 생각되시면, 레스토랑에 가서 먹어도 돼요.” 소수정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주덕순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바로 말했다.‘지금 장난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레스토랑에 간다고? 심지어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에 가야 하잖아.
당시 정은의 일로 소진헌과 이미숙은 직접 J시에 찾아갔지만, 돌아온 후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주덕순은 자신이 들은 소문도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정은이 연애를 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한 게 뻔하지. 듣자 하니 그 남자의 조건이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재벌이라고 했나? 그래서 공부를 포기하고 그 남자에게 매달린 거구나.’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살을 찌푸렸다.정은은 오히려 무척 평온했다.“아니요. 이미 헤어졌거든요.”“그 재벌들의 안목이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도 그저 널 가지고 논 거겠지. 너도 참, 그렇게 똑똑한 아이가 뜻밖에도 그런 말을 믿다니. 재벌 집안에 시집갈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주덕순은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내가 보기엔 말이야, 이 아가씨 명성이 가장 중요하지. 두 사람 그렇게 오랫동안 사귀었는데, 그 남자는 너한테 보상이라도 좀 주지 않았어?”‘드라마에서 보면, 돈 많은 늙은이들은 정말 통이 크던데. 이별 통보를 한 다음, 바로 여자에게 수억 원을 입금해 줬잖아. 이렇게 보면 정은이도 손해를 본 건 아니네...’하지만 주덕순은 질투하기 시작했다.‘남자와 몇 년 같이 잤다고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니, 그럼 정은이도 이제 부자라는 거잖아? 이건 너무 불공평한데? 정은이는 무슨 절세미인도 아니고, 무슨 근거로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가 있는 거지? 이러다 셋째가 먼저 벼락부자로 되는 거 아니야?’정은은 눈을 들어 예리한 눈빛으로 주덕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제가 무슨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그냥 뭐 돈이라든가, 비싼 주얼리라든가...”“그만하세요!”소진헌은 식탁을 두드리며 벌떡 일어섰다.“둘째 형수님, 비록 우리는 한 가족이지만, 그래도 말 좀 가려서 하세요!”주덕순도 따라서 일어섰다.“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나도 단지 조카딸에게 관심을 가졌을 뿐인데, 그것도 안 되는 거야?”“이게 관심이라고요?”“어머, 지금 그게 무슨 뜻이니?”이
진말숙은 소진헌의 뒷모습을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불효자식이! 넌 그 불여우에게 홀려서 이제 감히 부모님을 거역하다니! 내가 한마디 하면, 넌 열 마디를 받아치는구나! 그래, 멀리 꺼져라, 불여우와 불여우가 낳은 어린 여우를 데리고 가! 영원히 우리를 찾아오지 말고!”이미숙이 공공연하게 자신을 반항하자, 진말숙은 체면을 잃은 것만 같았다.이 순간, 그녀는 이 며느리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도 함께 원망했다.‘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저런 여자를 찾다니! 이제 장가를 갔다고 어머니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모양이야! 불효자식 같으니라고!’...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진헌은 침묵을 지켰다. 이미숙은 가볍게 그의 손을 잡았다.소진헌은 이미숙을 향해 웃으며 자신이 괜찮다고 말했다.그동안 소진헌은 이미 진말숙이 다른 사람 편드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이렇게 불쾌하게 헤어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예전에는 참을 수 있으면 될수록 참았지만, 정은과 관련된 일이었으니, 평소에 성격이 좋기로 소문난 소진헌도 그들의 그러한 비방을 용납할 수 없었다.집에 도착하자, 이미숙은 밥을 하려고 했고, 정은은 그녀를 막았다.“엄마, 제가 할게요.”“네가?”예전에 집에 있을 때, 정은은 열 손가락에 물 한 방울조차 묻히지 않았는데, 밥도 소진헌이 앞에 갖다 놓지 않으면 절대로 먹지 않았다.“네, 오늘은 제 솜씨 좀 맛보세요.”“주방이나 태우지 마.” 기분이 그리 좋지 않던 소진헌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정은은 은근히 화가 났다.“제가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부부 두 사람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한 시간 후, 식탁에 가득 차린 요리를 보고, 소진헌과 이미숙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당황해졌다.제육볶음, 소꼬리탕, 잡채, 갈비찜, 닭볶음탕, 생선구이, 야채 볶음 두 개, 그리고 두부찌개가 있었다.이미숙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이, 이거 다 네가 한 거야?”정은은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들
“당신 말고 또 누가 이런 막돼먹은 짓을 할 수가 있겠어요?” 이미숙은 화가 많이 났다.그녀는 남에게 욕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막돼먹다’라는 단어도 이미숙이 생각하는 가장 심한 욕이었다.그러나 류춘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짚으며 냉소를 지었다.“내가 막돼먹어? 이 정도 가지고? 넌 더 막돼먹은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래!”“그럼 인정한 거네요? 당신이 그런 거 맞죠?” 이미숙은 눈을 부릅떴다.류춘미는 이미숙의 시선을 피했다.“너 말 조심해, 내가 뭘 인정했다는 거야? 증거는? 증거 있냐고? 그리고 설령 이게 내가 한 짓이라고 해도 뭐가 어때서? 능력 있으면 경찰 불러서 날 감옥에 집어넣든가. 고작 꽃 하나 망쳤다고 경찰들이 출동할 것 같아? 내가 바보인 줄 아냐고?”이미숙은 류춘미 때문에 화가 나서 숨조차 쉬지 못했다.소진헌은 재빨리 다가가서 이미숙을 뒤로 감쌌다.“류 씨, 지금 너무한 거 아니야! 그 등꽃이 당신을 방해하지도 않았는데. 다 같은 이웃들끼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정은은 한바퀴 둘러보았다. 정원에는 등꽃 꽃잎이 가득 널려 있었고, 벽과 가까운 화분대는 아예 파괴되었는데, 지금 아직도 공중에 걸려 있었다.정원은 그야말로 범죄 현장에 비견될 정도로 너저분했다.“당신이 방해하지 않았다고 하면 방해하지 않은 거야?” 류춘미는 소진헌이 나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매를 걷어붙이며 싸울 준비를 했다.“당신의 꽃이 내 밭의 햇빛을 가렸으니, 내가 심은 채소들이 다 죽었잖아. 게다가 벌레까지 생기게 만들었는데도 계속 발뺌할 거야?”“또 이 화분대들도 그래.”류춘미는 땅을 가리켰다.“모서리가 있는 데다가 또 우리 집 창문을 마주하고 있어서 우리의 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아직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고?”소진헌은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일단 우리 두 집 사이의 공터는 공용이라서 채소를 심는 자체가 규정을 위반한 짓이야. 당신은 채소에 벌레가 생겼다고 하는데,
류춘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소진헌은 계속해서 말했다.“참, 내가 방금 이 대걸레로 변기 청소를 했는데, 미처 씻지 못했네. 하지만 괜찮을 거야. 우리 집 화장실은 더럽지 않으니까. 류 씨도 신경 쓸 필요 없어.”‘괜찮긴 개뿔!’“아! 아빠...”정은이 말을 이어받았다.“어제 먹다 남은 음식들을 변기에 부었는데, 비록 물을 내렸지만. 여전히 기름이 가득한 것 같아요. 아주머니, 설마 몸에서 쉰내 나는 거 아니에요?”소진헌과 정은은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 주고 받으면서, 화제는 갈수록 메스껍고 징그러워졌다. 류춘미는 원래 득의양양했지만, 이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너, 너...” 그녀는 코로 냄새를 맡았는데, 마치 자신에게서 정말 정은이 말한 그 쉰내가 나는 것 같았다.“당신들 딱 기다려!”이 한마디를 남긴 다음, 류춘미는 아주 빨리 도망갔다.‘샤워! 지금 당장 샤워해야 돼!’그 순간, 정은은 자신이 ‘대걸레의 여신’이라고 느꼈다!정은의 행동에 대해, 이미숙은 비록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리 찬성하지 않았다.“여자애가 걸핏하면 대걸레를 들고 다니면 안 돼. 보기 싫어.”“그 아주머니가 너무 얄미워서 그래요...”정은은 바닥에 널린 등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소진헌은 이미 묵묵히 현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날씨가 좋아지면, 화분대를 다시 박고 정원 안쪽으로 옮겨야겠다.”그는 이런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큰일이 아니었으니까.오늘 같은 억울함은 자신에게 있어 별거 아니었지만, 이미숙이 다시 한번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아빠,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류춘미가 오늘 정원을 망친 이상, 앞으로 더욱 심한 짓을 할 수 있었다.그녀 자신이 말했듯이, 단지 꽃을 망친 데다가 증거조차 없었으니, 경찰서에 잡혀갈 리가 없었다.소진헌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으면 뭘 또 어쩌겠어? 수십 년간 알고 지낸 이웃이니, 난 류 씨가 어떤 사람인지 그 누구보다
소진헌은 놀라움을 느꼈다.“왜 이곳에 온 거야?”정은이 말을 하려던 참에, 주택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이 웃는 얼굴을 하며 걸어왔다.“집을 보고 싶으신 건가요? 저희는 주택 구조가 아주 다양해서, 고객님의 여러 가지 수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요.”정은이 말했다.“일단 환경 좀 보고 싶은데요.”“이쪽이 바로 저희 주택단지의 모형입니다. 이곳에서 저희 아파트 주위의 환경 배치가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죠. 마트, 학교, 병원이 있으니, 아주 편리합니다.”정은은 그 모형을 힐끗 바라보았다.“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요.”“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층수가 높기 때문에 건물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좁을 거예요.”“별장 구역이 있다고 들었는데?”레이크 다이아는 총 두 가지 유형의 주택이 있었다. 하나는 일반 분양 주택이었는데, 바로 정은이 지금 보고 있는 모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채로 된 작은 별장이었다.작다고 하는 이유는 그 별장이 2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 층의 면적이 그리 크지 않지만, 앞뒤에 각각 정원이 하나씩 갖추어져 있었다.대문은 아주 넓었고, 한식 건축 스타일이라 식구가 적은 가족들이 지내기에 아주 적합했다.‘큰 별장’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전문적으로 식구가 적은 가정을 위해 디자인했으니, 거주 공간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이 썰렁해 보이지 않게 했다. 독창적인 한식 디자인까지 더해져 레이크 다이아는 L시의 가장 핫한 주택단지로 되었다.정은은 오기 전에 미리 조사를 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레이크 별장을 보고 싶어요.”소진헌은 꽃을 심기를 좋아해서, 집에 꼭 큰 정원이 있어야 했다.이미숙은 야외에서 책을 보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뒷마당이 있어야 하고, 제일 좋기는 정자가 있어야 했다. 그럼 그녀도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며 쉴 수 있었다.직원은 정은이 별장을 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놀랐다. 게다가 정은은 별장 지역의 이름
정은은 많은 고급 주택이 고객의 자산을 확인한 후에야 주택을 볼 수 있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럼 VIP고객이 되려면 어떤 요구가 있는 거죠?”“우선 L시에 주택을 구매 자격이 있어야 하죠.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에요. 둘째, 계좌 유동 자금은 반드시 20억 이상에 달하거나, 블랙카드를 소지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자산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부동산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현금이든 예금이든 블랙 카드든 정은은 없는 게 없었다.어느 것을 선택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소진헌은 이미 정은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녀를 밖으로 끌고 갔다.“왜 갈수록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는 거야? 20억의 유동자금이 있어야 한다니, 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니고...”이미숙은 옆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소설도 감히 그렇게 쓰지 못하는데, 넌 그걸 대놓고 묻다니. 그동안 큰 도시에서 공부를 했다고 담력이 꽤 커졌구나.”그리고 미안해하며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말했다.“미안해요, 우리 딸이 장난이 좀 심해서,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했네요.”이번에 그 직원은 더 이상 연기조차 하지 않았고 바로 눈을 부라렸다.“어디서 온 촌놈들이에요? 별장을 살 돈도 없는데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정신이 나간 거예요?”이미숙은 멈칫했고, 소진헌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따질 수가 없어 그저 사과만 했다.두 사람이 이렇게 나오자, 그 직원은 더욱 신이 나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그 꼴로 별장을 사려고요? 아마 아파트의 화장실 하나조차 살 수 없을걸요! 살다 살다 이런 사람이 다 있다니, 정말 재수 없어!”‘평소에 출근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오늘 난 또 드디어 큰 고기 하나 낚은 줄 알았네. 그런데 그저 돈이 없는 거지라니! 어이없어.’이미숙은 눈살을 찌푸렸다.“우리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어쨌든 우리도 손님인데...” “듣기 싫으면 들어오지 말았어야죠. 뭐, 손님인데?
‘뺏으라고?’현빈은 웃음이 나왔다.“그래도 뺏을 수가 있어야죠.”“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빼앗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거야?”“왜요? 이모를 뺏으려고요? 쳇. 우선 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나서서 막으실 거예요.”심정훈은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예리한 눈빛으로 현빈을 바라보았다.“도대체 어떤 여자가 널 차버렸는데? 말해 봐?”현빈은 말을 하지 않았다.“아까 말 잘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침묵하는 거야?”“말해도 모르시잖아요.”심정훈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잔을 들었다.“자, 우리 부자끼리 모처럼 모였으니 한 잔 하자.”짠.잔이 맞부딪치자, 두 사람은 각자의 걱정거리를 삼켰다.달은 중천에 떠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졌다.현빈은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오히려 심정훈은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기가 전혀 없었고 술을 따를 때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외모가 우월하고 기질이 출중한 두 남자가 함께 모여 울적하게 비싼 술을 마시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이쪽을 훑어보았다.현빈은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았다.“아버지, 어떤 방법으로 한 여자가 주동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요?”심정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은 또 손을 흔들었다.“됐어요, 아버지한테 물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 자신도 해결하지 못했으니까.”‘역시 내 아들답네, 정곡만 골라서 찌르다니.’새벽 1시가 되어서야 부자는 술집을 떠났다.현빈은 이미 취했고, 심정훈은 나름 괜찮은 편이기 때문에 그를 호텔로 데려다줘야 했다.“딸꾹! 아버지, 왜 여기에 계세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현빈은 잠에서 깨어나더니 갑자기 똑바로 섰다.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심정훈은 어이가 없었다.‘이 자식이 1분이라도 일찍 깨어났다면 혼자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일부러 날 부려먹은 거야?’현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아, 저를 데리고 호텔로 오신 거예요?”“하지만 저는 이제 여자 데리고 놀지 않으니
”아니, 이 남자가 그렇게 대단해? 술집에 와서 술 마시는데 경호원까지 데려오다니?”“누가 알겠어.”...현빈은 일부러 경호원에게 가까이 서서 지키라고 했고, 주위는 마침내 조용해졌다.그는 또 술 한 잔 가득 채웠다.그러나 어젯밤처럼 들이키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담담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이때, 현빈은 멈칫하더니 눈빛은 멀지 않은 부스 위에 떨어졌다.‘쯧쯧!’심정훈은 누군가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그곳을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아들과 눈을 마주칠 줄이야.분위기는 어색해졌다.부자는 동시에 눈을 뗐다.현빈은 생각을 하더니 술병을 들고 심정훈의 옆에 가서 털썩 앉았다.“아, 술 마시러 오셨어요?”심정훈은 담담하게 현빈을 보았다.“무슨 쓸데없는 말을 묻는 거야. 술집에 와서 술 안 마시면? 영화라도 보라고?”“그런데 넌 또 무슨 상황이야?”심정훈은 현빈을 살펴보더니, 내색하지 않고 그의 손에 있는 절반 비어 있는 술병을 보았다.“담배와 술을 끊었다고 하지 않았니?”반년 전, 현빈은 갑자기 술과 담배를 끊겠다고 했는데, 심정훈은 당시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뒤에 그가 정말 그렇게 한 것을 보고, 심정훈은 깜짝 놀랐다.‘그런데 얼마 만에 본색이 드러났지?’현빈은 씁쓸하게 웃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끊을 필요가 있을까요?”심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의 말을 알아차렸다.“여자에게 차였어?”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현빈은 말이 없었다.“허, 진짜 차였어? 재밌네.”“저만 그래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시잖아요.” 현빈은 피식 웃었다. ‘누가 빈정거리래?’심정훈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하룻밤 사이에 S시에서 달려오셨다니, 액셀에서 연기라도 나지 않았어요? 신호등은 몇 번이나 위반하셨죠? 운전면허증은 아직도 갖고 계신 거예요?”심정훈은 말문이 막혔다.“아버지도 참...”현빈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렇게 필사적으로 무슨 일을 하실 줄
지금의 심정훈과 이미숙은 이미 과거의 죽마고우가 아니었다.그들은 각자 결혼을 하여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어렸을 때 우리 커서 뭘 해야 할지 소원을 빌었던 거 기억나?” 심정훈이 먼저 침묵을 깼다.이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하죠. 형부는 천문을 좋아했으니, 졸업 후에 나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잖아요.”남자는 웃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띠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신이 정말 어리석고 멍청한 것 같아. 꿈은 꿈이 아니라 손에 닿을 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난 결국 심씨 가문을 물려받았고, 부모님이 원하는 후계자가 되었어.”이미숙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난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심씨 가문은 지금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이미 20년 전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잖아요. 형부는 아주 큰 성공을 거뒀어요.”‘하지만 난 널 잃었어...’심정훈은 입을 벌렸으나 결국 그 말을 삼켰다.곧이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한 일을 돌이켜 말했다.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약간 넋이 나갔고, 자신이 결국 이미윤과 결혼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말할 때 은근히 망설였다.고개를 돌려 이미숙의 잔잔한 눈빛을 보자, 심정훈은 갑자기 물었다.“넌?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지? 그때 나와 아버님, 어머님은 모두 네가 외국에 버려졌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가장 외진 N국까지 찾아갔어. 그러나 전혀 네 소식이 없었고. 그런데 네가 뜻밖에도 L시에 있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이미숙은 심정훈을 오빠처럼 여겼기에, 그의 질문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그녀가 하룻밤 내내 강에서 떠다니다가 구조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미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심정훈은 여전히 마음이 조여들었다.이미숙은 그런 심정훈을 보며 웃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고요.”심정훈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겉으로 보기엔 심정훈은 가정이 원만하고, 우수하고 뛰어난 아들이 있고
심정훈은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내가 하면 돼요...”“뭘 사양하시고 그래요? 다 가족이잖아요.”심정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진헌은 이미 그의 그릇에 밥 두 숟가락 떠주었다.“여보, 제부 얼마나 세심한지 좀 봐요? 어쩐지 우리 미숙이 마음에 들었더라니.” 이미윤은 미소를 지었지만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심정훈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면서 전혀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이미윤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지만, 또 내색할 순 없어 끊임없이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며 억지로 참았다....점심을 먹고 소진헌은 그릇과 젓가락을 치웠고 정은이 도왔다.이미숙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부녀가 설거지를 하자 자신은 식탁을 닦으며 과일을 깎았다.두 노인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현빈은 다 먹고 나서 볼일이 있다며 떠났기 때문에 지금은 심정훈과 이미윤 부부밖에 없었다.봉수진은 그제야 입을 열어 물었다.“정훈아, 네가 미숙이 집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당연히 제가 알려줬죠.” 이미윤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봉수진은 의아하게 그녀를 보았다.“어머니, 그게 무슨 눈빛이세요? 미숙이를 찾았으니, 정훈 씨는 형부로서 당연히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물며 그동안 미숙이를 찾기 위해 정훈 씨도 엄청 힘을 썼잖아요!”“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그렇지 않으면 제가 또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두 사람 예전의 관계? 지금 다시 만난 이상, 다시 옛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해야 하나요?”이춘재와 봉수진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심정훈의 눈빛은 순식간에 극도로 차가워졌다.“이미윤, 말 똑바로 해! 주의 좀 하라고!”“난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았는데, 말을 똑바로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정훈 오빠~ 이렇게 불려야 마음에 드는 거예요?”“정말 억지를 부리는군!”이미윤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미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두 노인을
기억은 마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소년과 소녀는 20대였고, 눈에는 서로밖에 없어, 누군가 먼저 고백을 하면 인연이 정해질 수 있었다.심정훈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미숙이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내 정신 좀 봐... 이제 형부라고 불러야겠죠? 소개할게요. 내 남편 소진헌이에요.”‘형부’, ‘남편’이란 말에 심정훈은 숨이 멎었다.그러자 이미숙 옆에 있던 남자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소진헌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심정훈을 자리에 앉혔는데, 또 그를 위해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왔다.심정훈은 입가를 실룩거렸지만 결국 고맙다는 인사밖에 하지 못했다.소진헌의 요리 솜씨는 원래 괜찮았는데, 오늘 더욱 신경을 썼다.그러니 맛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두 노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식사하는 도중, 소진헌은 이미숙과 정은을 돌보았는데, 세심하게 아내를 도와 새우를 까주었고, 정은에게 집어준 음식도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요리였다.정은은 작은 산처럼 쌓인 그릇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빠, 저 아직 다 못 먹었어요.”“나한테도 집어주지 마요. 남으면 당신이 다 먹을 거예요?”“그럼.”소진헌은 웃으며 대답했다.평소에 이미숙이 음식을 남기면 전부 소진헌이 해치웠다.소진헌은 오히려 습관이 되어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았다.심정훈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이미윤은 비아냥거리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지금 사랑을 과시하고 있는 거야?’현빈은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진지해서 주위의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오히려 이춘재와 봉수진은 참지 못하고 눈을 마주쳤다.전에는 소진헌이 이미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바보 사위가 ‘괴롭힘’을 당하면서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소진헌이 이미숙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소진헌은 여전히 허허 웃으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정말 단순한 사람
이미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래? 제부는 정말 좋은 남자야...”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현빈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제가 갈게요.”말하면서 현관으로 걸어갔다.몇 초 뒤, 갑자기 그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이미숙은 흠칫 놀랐다.소진헌은 다소 어리둥절해졌고, 머릿속으로 심정훈이 누군지 생각하고 있었다. ‘현빈의 아버지라면 처형의 남편, 즉 정은이 엄마의 형부...’이춘재와 봉수진은 눈을 마주쳤는데 모두 서로의 걱정과 의혹을 알아차렸다.‘정훈이 왜 갑자기 온 거지? 미숙이 찾았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설마 현빈이 말한 거야? 그럴 수도 있어.’이미윤만이 심정훈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이어서 씁쓸하게 웃었다.‘참 빨리도 왔네...’현빈은 심정훈을 데리고 거실을 지나 식탁 앞으로 걸어왔다.남자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외투는 옅은 회색으로 몸매가 꼿꼿해 보였다.밖에는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심정훈은 서둘러 찾아오느라 어깨가 좀 젖었다.안으로 들어서자. 심정훈의 눈빛은 이미숙에게 고정되었고, 더 이상 옮길 수가 없었다.마치 전 세계에 이미숙 혼자만 남은 것처럼, 심정훈은 그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몇십 년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결국 함께 할 수 없는 그 여자를.“여보, 왔어요.” 이미윤은 웃으며 일어나 심정훈의 팔짱을 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네요. 이게 누군지 알아요? 맞아요, 미숙이에요. 우리 드디어 미숙이를 찾았어요. 기쁘죠?”심정훈은 말을 하지 않았고 시선도 떼지 않았지만 손을 이미윤에게서 떼어냈다.이미윤은 멈칫하더니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미숙아, 너 기억나니? 정훈 씨잖아! 어렸을 때 넌 늘 정훈 씨의 뒤를 쫓아다니며 오빠라고 불렀는데.”“그동안 부모님 말고, 정훈 씨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너를 찾으려고 애썼어. 이제 마침내 찾았으니 꽤 책임있는 형부라 할 수 있겠지?”그렇다, 심정훈은
이미숙이 정은더러 현빈에게 연락하게 한 것은, 두 남매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그때 열차역에서 소진헌이 지갑을 도둑맞았을 때, 그들은 현빈을 만났었다. 정은은 ‘심 대표님’이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한 적이 있으며, 그후 현빈도 친절하게 그들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이미숙은 현빈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어제 현빈의 신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모두 인연이라고 은근히 감탄했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현빈은 아침 9시까지 잠을 잤다. 숙취는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그는 이미 담배와 술을 끊은 지 반년이 넘었는데, 어제처럼 만취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또 프론트에 아침을 주문한 다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나갔다.일어나서 활동하려 할 때, 뜻밖에도 핸드폰이 울렸다.스크린에 ‘정은이’이라는 세 글자가 나타나자, 현빈은 기쁨을 느끼며 재빨리 받았다.“정...”[오빠, 점심에 집에 와서 밥 먹어요.]‘오빠’라는 소리에 현빈은 말문이 막혔다.한참 뒤, 현빈이 대답했다.“알았어.”[할머니랑 할아버지는 12시에 식사하실 거예요.]“응.”...통화를 마치고 정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방에 가서 소진헌을 도왔다.소진헌이 셰프라면, 정은은 바로 그의 조수였다.이미숙은 거실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고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뛰어들었다.소진헌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를 산 것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향기롭네... 간장 안 넣었죠?“그럼. 다 당신 입맛대로 만든 거야. 먼저 좀 앉아 있어. 곧 다 되어가니까.”이미숙은 도울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다음, 그제야 거실로 돌아와 이춘재, 봉수진과 이야기를 나눴다.이미윤은 옆에 앉아서 때때로 한마디 끼어들었다.그러나 두 노인은 그녀의 화제에 관심이 없는 듯 오직 이미숙을 관심했다.이미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12시에 현
다행히 현재 봉수진은 소진헌이라는 사위가 꽤 마음에 들었다.부드럽고 자상하며 세심하고 키와 생김새도 나쁘지 않았다.심지어 연성대학교를 나와 지금은 중점 고등학교에서 물리 선생님을 하고 있었으니, 비록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변변한 직장이었다.“이 계란과 표고버섯이 정말 맛있네.”봉수진은 한 입 맛보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이춘재는 이미 한 접시 다 먹었고, 이제 두 접시를 먹고 있었다.“이 쇠고기로 만든 거 좀 먹어봐, 정말 간이 잘 됐어...”소진헌은 칭찬을 받자 좀 쑥스러워 어수룩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입맛에 맞으니 다행이네요. 제가 많이 만들었으니 이따가 모자라면 더 삶으면 돼요.”“소 서방도 서 있지 말고 빨리 앉아서 같이 먹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만드느라 수고했어...”소진헌은 대답을 하며 그릇에 만두를 담은 뒤 이미숙의 옆에 앉았다.“수고는 무슨, 다 당연한 일을 한 거죠.”온 가족이 화기애애했지만, 옆에 앉아 있는 이미윤은 오히려 남처럼 보였다.이 화목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그녀는 입가를 구부리고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제가 레스토랑에 자리를 예약했는데. 이따 점심에 나가서 드실까요? 미숙이 다시 찾은 기념으로 말이에요.”이춘재는 이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바깥 레스토랑은 기름과 소금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봉수진의 현재 상태로는 전혀 먹을 수 없었다.이미숙은 잠시 멈칫했다.“밖에서 먹으려면 외출을 해야 하잖아. 너무 번거로우니 그냥 집에서 먹는 게 낫겠어. 마침 정은이 아버지도 요리 솜씨를 좀 선보일 수 있고. 그이는 밥을 꽤 잘하거든.”소진헌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오늘 장을 봐야 하니까, 이따가 시장에 갈게요. 점심은 그냥 집에서 드세요.”봉수진은 기뻐서 미소를 지었지만 입으로는 계속 말했다.“너무 수고하는 거 아니야?”“수고는 무슨, 제 영광이죠!”이춘재도 덩달아 웃으며 입에 소고기 만두를 입에 넣었다.“그래, 그럼 우리 점심에 소 서방의
”한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야.”이춘재가 감찬했다.소진헌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숙은 그제야 이미윤에게 소진헌을 소개한 적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이 사람은 내 남편이야.”“안녕하세요.” 이미윤은 살짝 웃었다. “제부는 정말 잘생기셨고, 재능이 넘쳐나는 것 같네요.”지금 이미윤은 더 이상 까다로운 눈빛으로 그를 보지 않았다.소진헌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예의를 차렸지만, 은근히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숙은 그동안 소진헌과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이 말을 듣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그녀는 소진헌을 바라보았다.소진헌은 오히려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이미숙애개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고 표시했다.‘왠지 모르겠지만, 처형이 좀 이상한데... 그리고 불편해’.그래서 소진헌과 너무 다정하게 굴지 않았다.“아빠, 만두를 빚으실 거예요 말 거예요? 어?”정은은 주방에서 나오자 거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그리고 눈빛은 이미윤에게 떨어졌다.이미숙은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은아, 이리 와.”정은은 고분고분 걸어갔다.“언니, 내 딸 정은이야. 정은아, 이분은 네 이모야, 얼른 인사해.”눈이 마주치자, 정은은 이미윤을 잠시 훑어보더니 영리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모.”이미윤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으로 이미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었다.‘그날 벤츠 매장에서 재석과 함께 있었던 그 여자아이가 아니야?’이미윤은 당시 사진을 찍어 강서원에게 보내기도 했다.강서원에게 재석이 연애를 했냐고 물었지만, 강서원은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얼버무렸다.‘지금 그 태도를 생각해보면, 아들의 여자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정은을 바라보는 이미윤의 눈빛은 갑자기 의미심장해졌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애정이 넘쳐나는 말투로 말했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