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8화

Author: 십일
정은은 담담하게 입술을 구부렸다.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침묵에 잠겼다.

이때 수민 쪽이 무척 시끄러워졌다.

[정은아, 먼저 끊을게. 집안 연회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우리 엄마가 지금 여기저기서 날 찾고 있어.]

“그래.”

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는데, 또 연이어 몇 개의 문자가 들어왔다.

심현빈이었다.

다국적 기소장, 접수 영수증이 있었는데, 그는 또 현재의 진도에 관한 설명을 했고, 나머지는 정은 본인의 서명이 필요한 서류들이었다.

다국적 기소는 일반기소 수속보다 더 복잡하고 시간도 더 많이 걸렸기에, 이렇게 빨리 추진될 수 있다니, 솔직히 정은도 많이 놀랐다.

그녀는 파일을 받아 온라인으로 사인을 한 뒤, 다시 현빈에게 보냈다.

그쪽은 바로 문자를 읽더니 곧이어 또 농담을 하며 답장했다.

[날 그렇게 믿는 거야? 널 배신할 수도 있는데?]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현빈은 마음이 움직이더니 갑자기 웃었다.

정은의 말에 설렜기에 그는 나른하게 웃으며 재빨리 타자를 했다.

[단지 사인해야 할 서류일 뿐이야. 기소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까 안심해.]

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현변의 설명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서명해야 할 서류들도 모두 자세히 보고 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사인한 것이다.

게다가 현빈이 정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싶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저질한 수단을 쓰지 않을 것이다.

2초 후,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내년에 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

정은은 핸드폰을 침대에 엎었다. 그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었으니, 현빈의 소원은 그녀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정은아, 네 아빠가 만두를 만들었으니 빨리 와서 먹어.”

아래층에서 이미숙의 함성이 들려오자, 정은 즉시 일어나 경쾌하게 대답했다.

“가요.”

저녁, 정은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만두를 먹으면서 부모님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재밌는 예능을 보니, 그야말로 천국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29화

    맞은편에서도 역시 축복을 보냈고, 소녀의 부드럽고 고요한 목소리에는 미소가 섞인 것 같았다.재석은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기원하는 정은의 모습이 떠올랐다.‘불꽃놀이가 피어난 순간, 정은의 모습을 비추는 그 장면은 정말 예쁠 텐데.’...이튿날 아침, 정은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11시까지 일어나면 된다.태양이 중천에 뜨자, 햇빛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왔다. 그녀는 졸린 두 눈을 떴고. 창밖의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며 커튼에 그림자를 남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해가 벌써 떴어?!’정은은 얼른 하품을 하고 일어서며 커튼을 쫙 열었다.햇빛이 먼 산에 쌓인 하얀 눈을 비추더니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소진헌과 이미숙은 정원에서 책을 읽으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소진헌은 귀가 밝았는데, 창문을 여는 소리를 듣자 바로 정은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선생님이라 줄곧 시간관념이 있어서 정은이 늦잠을 자는 습관에 대해서 그리 찬성하지 않았다.그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네 엄마가 나쁜 습관만 길들였어. 이 시간까지 자고, 아침을 먹지 않는다면, 위에 병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도 중시하지 않아. 늙으면 다...”이미숙은 귤 한 조각을 소진헌의 입에 쑤셔 넣었다.“늦잠 자는 거 가지고 언제까지 잔소리할 거예요? 정은이는 이미 졸업했으니 더 이상 당신의 학생이 아니라고요. 새해에 늦잠 자면 뭐가 어때서요?”말하면서 그녀는 창가에 서 있는 정은을 바라보았다.“네 아빠는 융통성이 없으니까 그런 잔소리 듣지 마. 식탁 위에 아침밥 있으니 좀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어.”정은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아침을 다 먹은 정은도 정원에 가서 차를 마시며 햇볕을 쬐었다.“아빠, 이게 무슨 차예요? 냄새가 구수하네요.”정은은 찻잔 냄새를 맡았다. 담백하고 그윽한 차는 싱겁지도 느끼하지도 않았다. 입을 다시니 또 은근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0화

    지금은 겨울방학 기간이라 대부분 학생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고, 학교는 무척 한산했다.경비원은 정은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며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아가씨, 지금 방학이라 선생님을 보러 돌아온 거야?”고3은 과외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는 여전히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경호원은 뒤로 한 손을 흔들며 가볍게 기침을 했다.“얼른 들어가라. 소란 피우지 말고. 그리고 3학년 학생들의 수업을 절대로 방해하면 안 돼.”정은은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침묵하길 다행이야.’그녀는 선생님을 방문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의동으로 가지 않고 운동장을 두 바퀴 돌아다녔다. 막 떠나려고 할 때, 학교의 전시대를 지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보았다.아래에는 작은 글자로 된 소개가 있었다.[소정은: 20XX년, L시 이과수석으로 서비대학교 생물학부에 입학.]바람이 불자, 정은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땅 위의 낙엽은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었고, 원래 밝고 화창한 날씨였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워졌다.정은이 팔을 들어 바람을 막고 떠나려던 참에 갑자기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소 선생님!”눈을 들어 보니 정말 소진헌이었다.어제 텔레비전을 볼 때, 소진헌은 오늘 학교에 와서 고3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이렇게 두 사람은 학교에서 마주쳤다.“소 선생님,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집에 볼일이 많이 않나요?”인사하는 사람은 소진헌과 나이가 비슷한 여자 선생님이었다.정은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도 그들과 같은 주택 단지에서 살지만, 다른 건물에 있었다.그리고 그 여자 선생님도 물리를 가르쳤는데, 소진헌과 같은 학년을 맡았다. 당시 소진헌은 우수학생을 책임졌고, 그녀는 일반 학생을 가르쳤다.그래서 정은은 그녀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녀의 딸 장소연과 같은 반 친구였다.“주 선생님.” 소진헌은 웃으며 인사했다.“다행히 별로 바쁘지 않네요.”“왜요? 정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1화

    소진헌의 안색은 무척 어두워졌다.“주 선생님, 우리 정은은 엄청 휼륭한 아이예요. 오늘 한 그런 말들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신 그런 소문을 퍼뜨리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것들 모두 허튼소리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모함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선생님으로서 가져야 할 품격이 아니에요.”말이 끝나자 소진헌은 성큼성큼 떠났고, 뒷모습만 봐도 그의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주윤설은 눈을 부라렸다.“허, 딸이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데도 말하지 못하게 하다니? 뭐? 훌륭한 아이? 개뿔! 학교 망신이나 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더러운 여자 주제에...”그 당시의 소진헌은 무척 득의양양했다. 과목마다 1등을 하는 동시에 경기에 나가서 상을 무수히 많이 받은 딸은 전 학년, 심지어 전교에서도 모두 유명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소진헌은 그런 정은을 칭찬했고, 자랑스럽게 웃었다.‘그래서? 서비대에 붙으면 또 뭐가 어때서? 결국 부자들 장난감으로 됐잖아! 퉤!’정은은 주윤설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전시대 뒤로 숨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런 비방과 욕설에 직면할 때 어떤 표정을 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아끼면서도 정직한 선생님이었다!만약 소진헌이 자신도 이곳에 있고 또한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슬퍼할까?그래서 정은은 숨을 수밖에 없었다....소진헌은 시험지와 참고답안을 고3을 책임지는 선생님에게 넘겨준 다음 바로 떠났다. 학교 문 앞까지 걸어가자,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정은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 근처까지 왔어요.”“그래, 이제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네 엄마 말 듣지 말고 우리 얼른 집에 돌아가자.”“네.” 정은은 소진헌의 자전거 뒷좌석에 앉았다.“하나 둘 셋.”소진헌이 힘을 주며 페달을 세게 밟자, 자전거가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아빠, 미안해요...”“응? 갑자기 무슨 사과야?”“그동안 아빠와 엄마를 보러 오지 않아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2화

    “어머! 정말 정은이네. 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어!”류춘미는 옆집 이웃인데, 입이 싼 데다가 목소리까지 무척 컸다! 그녀의 남편도 인성 고등학교의 교사였고, 정은이네와 같은 해에 이 주택단지로 이사 왔다.정은이 나오자, 류춘미는 얼른 달려가서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쯧쯧, 정말 대단하네! 큰 도시의 물이 참 좋긴 좋나 봐, 정은이 너도 많이 예뻐졌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이 옷차림 좀 봐, 이 몸매, 그리고 입은 옷이며 신발이며 너무 유행인데!”류춘미는 한바탕 칭찬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고 정은을 향해 눈짓했다.“정은아, 네가 J시에서 엄청 잘 지낸다고 들었는데, 만약 좋은 사람 있으면 우리 둘째 여동생에게 좀 소개해 줄 수 없어?”정은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좋은 사람이요?”“에헴! 그 돈 많은 사장이라든가, 재벌 집 도련님이라든가 말이야. 우리 둘째 여동생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데, 관건은 아주 젊거든. 올해 겨우 22살이야!”정은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뒤로 물러서며 류춘미와 거리를 두었다.“아주머니,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남자를 꼬시기 위해 J시에 간 게 아니에요. 그런 일 잘 모르니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류춘미는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정은아, 이웃들끼리 뭘 숨기고 그러니? 너도 이제 돈을 번 이상,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어?”정은은 화가 나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제가 뭔데요? 제가 뭔데 당신들을 가르쳐 줘야 하는 거죠? 아주머니, 저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세요.”정은이 계속 거절하자, 류춘미는 미소를 거두었다.“어머, 돈을 벌자마자 그 기세가 아주 하늘을 찌를 것 같구나! 방금 농담을 좀 한 것 가지고, 어느 집 아가씨가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남자나 꼬시고 다니겠어...”“류 씨! 말 좀 조심해!”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진헌은 자전거를 버리고 앞으로 달려와 딸을 뒤에 감쌌다.그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고, 눈에서 분노가 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3화

    정은은 대걸레를 흔들며 계속 휘둘렀다.류춘미는 머리를 안고 피해 다녔고, 문 밖으로 뛰쳐가더니 뒤돌아서서 독설을 퍼붓었다.“절,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 빌어먹을 등꽃이 우리 집 정원까지 자랐으니, 내일 불로 다 태울 거야! 보기만 해도 짜증나네!”말이 끝나자 류춘미는 재빨리 도망을 쳤는데, 정은이 다시 대걸레를 들고 쫓아갔기 때문이다.“꺼져요! 이렇게 한 번 찾아올 때마다 전 대걸레를 들고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정은은 대걸레를 내려놓고 긴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소진헌의 표정이 엄숙해진 것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정은은 오물거리며 입을 열었다.“아빠, 죄송해요. 저는...”“언제 그런 거 배웠어?”“네?”“그, 그거 말이야...”소진헌은 정은이 방금 대걸레를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정은은 할 말을 잃었다.“에헴! 여자아이는 그래도 좀 정숙하고 얌전해야지,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을 배워서는 안 돼.”“아빠.” 정은은 다가가서 소진헌의 팔을 안았다.“방금 속이 다 시원하시죠?”“그래, 속이 다 후련하네.”“그 집 정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등꽃들도 다 그 여자가 뽑은 거죠?”사실 두 집 사이에는 작은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류춘미는 허락도 없이 그곳에 채소를 심었고, 심지어 매일 똥을 비료 삼아 뿌렸다. 이미숙이 심은 등꽃은 덩굴이 겨우 정원 벽을 타고 올라갔을 뿐인데, 공터에 닿기도 전에 류춘미는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소진헌은 쪼잔한 사람이 아니었고, 이미숙도 남과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동안 공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류춘미는 오히려 그 공터가 자신의 땅인 양 당연하게 여겼다.“꽃가지가 밭의 햇빛을 막았다고 모두 뽑아버렸어.”소진헌은 한숨을 쉬었다.“네 엄마가 이 일로 무척 괴로워했지.”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집에 없는 그동안 부모님이 이렇게 당하고 지낼 줄은 정말 몰랐다.“아빠, 그 사람들이 말한 일들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4화

    말하는 사람은 둘째 큰어머니인 주덕순이었고, 전기 시설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공무원이라 평소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몸도 많이 뚱뚱했다.그녀는 오늘 초록색 스웨터를 입었고, 단발머리를 파마하여 마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부풀어 올랐다.“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은 말을 할 줄 모르는 거야?” 둘째 큰아버지 소진호는 아내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비만인 주덕순에 비해, 소진호는 몸매가 길쭉했다. 그는 베이지색 스웨터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뒤로 빗어 윤기가 흐르도록 무스를 발랐다.50대 되가는 사람이었지만,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고, 심지어 은근히 청년처럼 활기가 차 넘쳤다.소씨 가문의 유전자는 꽤 괜찮았다. 소진헌 세 형제는 모두 준수하게 생겼다.주덕순은 남편에게 얻어맞아 입을 삐죽거렸다.“왜 그래요, 내가 함부로 말한 것도 아닌데. 정은은 확실히 몇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설을 쇠지 못했잖아요. 난 상관없지만, 도련님과 동서가 정은을 많이 그리워했을 텐데.”말이 끝나자, 주덕순은 또 열정적으로 다가와서 정은의 팔을 안았다.“정은아, 넌 어쩜 이렇게 예뻐진 거야? 큰 도시에 가서 그런지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우리와 기질이 엄청 다르잖아.”정은은 오늘 하얀 롱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벗었다. 안에는 살구색 스웨터였고, 옅은 갈색의 니트 롱스커트에 카키색 장화를 신었다. 그리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며 오직 앞머리만 리본으로 고정했다.이렇게 보니, 정은은 영리하고 얌전해 보여서 마치 달콤한 크림과 같았다.주덕순이 그녀의 기질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소시율은 이 말을 듣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엄마,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좀 조용히 하면 안 돼?”주덕순은 그녀를 노려보았다.“맨날 핸드폰을 가지고 놀 줄만 아는 사람이 내가 말이 많다고 싫어해? 넌 정은이 좀 따라 배워.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꾸미는 거 잘 좀 보고 배워!”소시율은 오늘 짧고 타이트한 상의에 짧은 스커트, 그리고 스노우부츠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5화

    세 며느리 중, 박나영은 현명하고 내조도 잘했으며, 주덕순은 입담이 좋아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오직 이미숙만은 어르신들의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시간이 흐르면서 소진헌 역시 점차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장가를 가더니 부모를 잊은 아들이 무슨 소용인가? 돈도 잘 벌고 곁에서 부모를 모시는 사장인 큰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정은은 이미숙 옆에 앉았다. 어차피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나서서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밥을 먹고 나서 떠나면 될 일이었다.“정은이, 이 가방 꽤 예쁘네. 브랜드지?” 큰어머니 박나영은 과일 쟁반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정은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모든 시선들이 정은에게 떨어졌다.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덕순은 먼저 말했다.“어머, 이게 뭐라고 했더라? 루이 비통?”시율이 말했다.“모르면 입 좀 열지 마, 이건 에르메스야.”“뭐?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 수천만 원짜리 가방이라고?!” 주덕순은 숨을 한 모금 들이켰다.그녀는 사치품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가해서 매일 출근할 때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얼마 전에 인기 드라마인 에서, 주덕순은 여주인공이 메고 있는 그 가방이 무척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정은의 에르메스는 전부 도겸의 별장에 남겨뒀는데, 이 가방은 그녀가 혼자 돈을 벌어서 산 것이었다.오늘 정은은 이 옷을 맞추려고 들고 나왔는데, 위에 로고가 없었지만 박나영이 단번에 알아볼 줄은 정말 몰랐다.박나영은 은근히 놀랐다.“그렇게 비싸?”비록 남편이 사장이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를 차렸지만, 박나영은 소진우를 따라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명품 가방은 더더욱 메고 다니지 않았다.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정은을 힐끗 보았다. 할아버지도 시선을 돌렸다.정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길가에서 이 가방이 예쁜 것 같아서 샀는데, 겨우 몇 만 원밖에 안 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6화

    주덕순은 마음속으로 몰래 웃으며 눈빛은 소진헌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에 떨어졌다.“동서도 체리를 산 거야? 형님이 산 것보다 훨씬 작은 것 같은데?”이미숙은 활짝 웃으며 말투가 온화했다.“저희 집이 어떻게 형님댁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주덕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네! 누가 형님댁보다 잘 살 수 있겠어.”정은은 입술을 구부리며 무심한 척 말했다. “둘째 큰어머니는 무슨 과일을 사셨어요?”주덕순은 웃음이 굳어졌다.정은은 눈치채지 못한 듯, 마침 자신의 옆에 있는 그 과일 바구니를 뒤졌다.“어디 보자, 사과, 배, 귤...”비싼 과일은 하나도 없었다.“역시 둘째 큰어머니시네요. 모두들 자주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사셨다니.”주덕순은 귀에 거슬리다고 생각했지만, 또 정은의 말에서 트집을 잡지 못했다.“그래, 난 식구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좀 샀어...”말하자면 주덕순은 가정 형편이 나름 괜찮았다. 부모님은 모두 전기 시설 관리직이었고, 아버지는 또 나름 중요한 직위를 맡았다. 주덕순은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엄청 편안한 삶을 누렸다.그러나 그녀는 속이 좁고 따지기 좋아해서 결코 대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가족들을 대할 때 더욱 그랬다.“가족을 챙기는 데는 둘째 큰어머니밖에 없네요.”“에헴.”박나영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말만 하지 말고 얼른 과일 먹어.”“네, 감사합니다, 큰어머니.” 정은은 대범하게 체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정말 엄청 달아요.”그러나 주덕순은 오히려 풀이 죽었다. 그녀는 어색해하며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고, 소진호가 자신을 위로하길 바랐다.그러나 소진호는 주덕순에게 눈빛 하나 주지 않았다.“엄마, 조금 더 먹어. 바삭바삭하고 엄청 달아!” 시율은 옆에서 재촉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남들이 다 먹을지도 몰라.’“넌 먹을 줄만 알지? 너와 네 아버지는 날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소진호와 시율은 어이가 없었다....점심 12시가 되자,

Latest chapter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4화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고, 지구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자전하고 있는데!’선우는 또 다른 한쪽을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도겸은 한 잔 한 잔 이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고 공도 치지 않았으며 여자가 다가오면 더욱 멀리 피했다.다른 사람들은 혀를 찼다.“우리 도겸이 형 지금 정말 침울해진 것 같아.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프네!”“꺼져, 오글거려 죽겠네! 말 좀 똑바로 할 수 없어? 우리 도겸이는 사랑을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니, 이건 일편단심이라고!”“그래도 여자는 다 똑같지 않아?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를 살 수 없겠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선우는 그들이 갈수록 말을 심하게 하는 것을 듣고 즉시 호통을 쳤다.“이제 그만 좀 해. 그딴 말 좀 적게 하고. 너희들은 뭐 이런 상황이 없을 줄 알아!”그들 중에는 심지어 ‘소정은'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선우는 가슴이 떨렸다.그것은 절대로 도겸 앞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이름이었고, 도겸은 듣자마자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가서 소란을 피우면 정말 수습하기 어려웠다.동건은 연속 몇 판 지자, 카드를 던졌다.“재미없네. 너 무슨 속임수 썼지? 어떻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거야?”“형은 운이 나쁜 데다가 머리도 좋지 않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야! 전선우, 너 많이 컸다?”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칭찬으로 들을게요.”동건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놀아.”그가 가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사람들도 자연히 흩어졌다.선우는 카드놀이를 놀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자 술을 마실 흥미도 없었다. 무대 아래는 분위기가 막 뜨거워졌기에, 춤을 춰도 재미가 없어 아예 소파 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보았다.그렇게 선우는 현빈이 올린 사진을 보았다.“모임? 누구랑 가족 모임에 참가한 거야?” 선우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는 사진을 클릭하며 맛있는 것이 참 많다고 감탄하려 하다가, 갑자기 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3화

    현빈은 미소가 굳어졌다.계속 사진을 뒤지니, 다음 사진이 바로 그가 방금 찍은 음식 사진이었다.그는 마음이 움직여 SNS를 클릭해 이 사진을 올렸다.[가족 모임.]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일부 사람들은 댓글을 달며 소란을 피웠다.[집잔치야?][현빈이 형 또 새 애인 생겼어!][모처럼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드디어 금융 뉴스가 아니네.][우리 형님 몰래 큰일을 해냈네요][이야, 전에 같이 솔로로 지내기로 했는데, 어떻게 여자 친구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간 거야?][쯧쯧,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이제 결혼하려는 거야?]현빈은 사진을 클릭하며 쳐다보다가 갑자기 멈칫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사진을 확대한 뒤,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서 정은의 반쪽 얼굴을 발견했다.비록 턱과 입술밖에 안 보이지만, 현빈의 친구들은 저마다 홈즈로 변신하여 이 실마리를 발견했다.현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하려 했고, 생각하다 또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아무튼 모두들 농담이었으니, 만약 특별히 해석한다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았다.이때, 현빈은 갑자기 문자 한 통을 받았다.대학 동창인데 지난번에 그 샤브샤브 가게 사장님이었다.[축하한다, 친구야.][다음에 샤브샤브 먹으러 오면 무료야!]‘됐어, 답장하기 귀찮아.’...밤의 장막이 내리자, 등불이 켜졌다.전선우는 모이자며 동건과 도겸을 불렀다.동건은 처음에 퇴근한 수민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그러나 5분 후에 동건은 다시 전화를 했다.[지금 시간 생겼어. 곧 도착할 거야.]선우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아, 수민이가 임시로 야근을 해야 한다고 했거든.]그리고 잠시 후 다시 덧붙였다.[오늘 밤을 새워야 한데.]선우는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수민, 수민, 그놈의 수민... 여자친구 생겼다고 자랑은? 진짜 여친도 아닌데.’“형 진짜 조수민에게 반한 거 아니지?”맞은편은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곧 버럭 했다.[꺼져! 내가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2화

    현빈이 말했다.“이렇게 푸짐한 밥상에, 정은이는 또 이원이 처음이니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이 제안에 두 노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아직 손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이춘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확실히 기념할 만한 일이지.”“현빈아, 너 좀 잘 찍어. 나중에 프린트해서 앨범에 넣을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저 말고 이모님에게 찍어달라고 해야죠.”“허허, 나 좀 봐, 너도 들어와야 한단 걸 깜빡했네...”현빈은 가정부를 불었다.정은은 얌전하게 봉수진의 곁에 서서 웃으며 그녀의 팔을 껴안았고, 옆에는 현빈이 서 있었으며, 가장 왼쪽에는 이춘재였다.“준비되셨나요?” 가정부가 물었다.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찰칵.셔터를 누르면서 이 순간이 고정되었다.두 노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정은은 방긋 웃고 있었으며, 현빈도 담담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가정부는 잘 못 찍었을까 봐 몇 장 더 찍었다.두 노인은 사진을 보고 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가정부는 핸드폰을 현빈한테 돌려줬다.봉수진은 사진을 꼭 프린트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안심하세요. 저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봉수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현빈은 사진을 보며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모님의 월급을 좀 올려도 될 것 같은데.’그리고 핸드폰으로 탁자 위의 음식을 몇 장 찍어서야 앉아서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정은은 봉수진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이춘재는 수십 년 된 이웃과 산책을 하러 나갔다.멀리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래, 찾았어! L시에서, 이미 결혼을 했더군...”“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아, 소설을 쓰는 작가야. 미스터리 소설... 참, 꼭 을 읽어봐. 내 딸이 쓴 거야... 들어봤다고? 그럼 잘 됐네! 꼭 봐야 돼!”“오늘 온 그 아이는 내 손녀인데 서비대학교의 대학원생이야. 학술 때문에 바빠서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하하... 그래, 하늘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1화

    현빈은 정은에게 문을 열라고 표시했다.정은은 손을 들어 손잡이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그는 줄곧 현빈의 품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여전히 정은의 상상을 초월했다.청아한 디퓨저 냄새가 전해져 왔는데, 정은이 좋아하는 박하향으로 신선하고 쾌적했다.방 배치는 전체적으로 연한 색깔이었다.벽은 베이지색이었고, 나무로 된 바닥에는 부드러운 긴 털 카펫이 깔려 있었다.밟으면 편하고 가뿐했다.아마도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벽쪽에 특별히 책장을 몇 개 더 추가했다. 책장 앞의 창문 옆에 의자 하나까지 있었다.부드러운 햇빛이 큰 창문을 비추며 책장에 떨어졌고, 생각만 해도 편안했다.뿐만 아니라 방에는 작은 탁자, 정교하고 나른한 작은 소파, 심지어 작은 다탁까지 있었다.커튼을 열면 바깥은 독립된 베란다였다. 멀리 바라보면 하늘, 산, 숲, 풀밭이 있어 마음이 탁 트이고 기분이 상쾌했다.“마음에 들어?”정은은 현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엄청 마음에 들어요.”말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지금의 모든 것이 너무 환상적이네요.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이야기처럼, 신데렐라는 공주가 되어 그녀만의 성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정은은 말투가 가벼웠고, 표정이 평온했다.그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지만, 결코 빠져들지 않았다.현빈은 고개를 돌려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는 신데렐라가 아니야.”정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가 계속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신데렐라는 영원히 연약하잖아. 왕자가 자신을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넌 아니야. 넌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고, 주동적으로 어려움을 파헤치며 자신을 구할 거야.”현빈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겨울 왕국의 여왕 엘사야. 용감하고 지혜롭지.”정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오빠가 날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는데요? 눈에 콩깍지라도 씐 거예요?”남자는 웃음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50화

    “좋아요. 방금 들어왔을 때 힐끗 보았을 뿐, 아직 자세히 보지 못했거든요.”봉수진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불편했기에, 정은은 원래 그녀를 모시고 정원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잘됐다 생각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늘은 흐렸고, 햇빛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가끔 가느다란 빛을 비추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겨울의 J시에서 푸른 식물을 보기 어렵고, 대개 앙상한 가지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원의 화원은 예외였다.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만발했고, 겨울에 가장 선명한 색채를 이루고 있었다. 봉수진은 특별한 취미가 없어 그저 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원래 이런 일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이춘재가 봉수진이 점차 침울해진 모습을 보고는 주의를 좀 돌리라고 권한 것이었다. 처음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봉수진은 장갑을 끼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작은 화원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정은도 꽃가지를 다듬고 새 흙으로 덮어주는 것을 도왔다. 봉수진은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식물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주고, 어떤 식물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어떤 식물은 아예 물을 주면 안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화초를 다듬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우리 정은이는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화초 가꾸는 솜씨도 대단하구나.” 봉수진은 웃으며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화초를 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할머니께서 너무 잘 가꾸셔서 저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에요.”정은은 발밑에 자란 말리꽃을 바라보았다. 작은 떨기로 자라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었다.봉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듣기 좋은 말로 나를 달래는구나.”“아니에요, 진짜예요. 이 장미도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모양이 조금 이상한데, 마치 배추 같아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9화

    “골치 아픈 아이라고요? 왜요?” 이미숙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을 처음 들은 정은은 호기심이 자자했다.“네 엄마는 지금 얌전하고 책 보기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 나무에 올라가 새를 잡거나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어.”정은은 깜짝 놀랐다.“정말이에요?”“이곳의 복도에 총 68 세트의 가드레일이 있어. 원래는 없었는데, 나중에야 추가한 거야.”“저희 엄마 때문에요?”이춘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네 엄마가 연못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정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어때? 상상 안 가지?”정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상상할 수가 없네요.”“하하... 이따가 네 엄마 어렸을 때 사진 보여줄게. 다 증거로 남아 있어.”“지금 갈까요?”정은은 두 눈에 빛이 났다.이춘재는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심지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전화를 받고 돌아온 현빈은 거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1층을 낱낱이 뒤졌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고, 주방으로 걸어갔다.“할머니, 할아버지와 정은이는요?”“방금까지 거실에 있었는데?”“지금은 거기에 아무도 없어요.”봉수진이 말했다.“그럼 분명히 다른 데에 놀러 갔을 거야. 그냥 내버려둬. 참, 너도 오늘 야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회사로 돌아가.”“저 안 가요. 하나도 안 바쁘단 말이에요.”‘아니, 방금 집사가 그러던데. 회사 전화가 집에까지 걸려왔다고.’현빈이 다시 찾기도 전에 이춘재는 이미 사진첩을 든 채로 정은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마침 봉수진도 요리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왔다.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 사진첩을 뒤적였다.“이건 네 엄마가 금방 태어났을 때야. 3kg넘는 하얗고 뚱뚱한 아기였지... 이것은 세 살 때 네 고모 할머니가 네 엄마에게 사준 생애 첫 하이힐이고... 이건...”두 노인은 딸을 아주 귀여워했는데, 이미숙이 태어날 때부터 실종될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 뒤, 사진첩으로 만들어 기록했다.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8화

    재석은 계속 입을 열었다. “이거... 옥수수 같은데요?”현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몇 번 먹어 봐서 딱 보면 알죠.”‘내가 언제 물어봤다고? 그냥 설명해 버리네. 정말 자기 자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재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은이는 정말 세심하고 자상하죠. 모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니까요.”현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다들 조 교수님이 과묵하다고 하던데, 말이 꽤 많으시네요?”“말 많고 적음은 상대에 따라 다르죠. 심 대표님도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 아닌가요? 그런데 오늘은 꽤 말을 많이 하네요. 오고 가는 말이 있어야 예의 아니겠어요?”현빈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자, 이제 가요.” 정은은 남은 샌드위치를 냉장고에 넣고 찻잔까지 깨끗이 씻은 후 나왔다.고개를 들자 마침 재석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님, 오늘도 집에 있었어요?”“응.” 정은을 바라보는 재석의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심 대표님과 함께 외출하려고?”“네, 우리...”“얼른 가자.” 현빈은 자연스럽게 정은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골목에 차를 오랫동안 세우면 또 누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아, 네! 선배님,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중에 봐요.”재석은 ‘우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귀에 거슬렸다.그는 속으로 피어오르는 의심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그래.”가는 길에 정은이 물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오셨어요?”현빈은 앞을 똑바로 보며 짧게 대답했다. “저번 주 금요일.”“잠깐 마트에 들러서 과일 좀 살게요.”“누구에게 줄 건데?”“당연히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 드리는 거죠.”“그럴 필요 없어. 남도 아닌 가족인데, 뭘 사? 빈손으로 가도 괜찮아.”“그래도 처음 찾아뵙는 건데 그냥 가면 좀 실례인 것 같아서요.”“그게 두 분께 더 거리감을 줄 수도 있어. 내 말 들어.”“알겠어요.”이씨 가문 본가는 유서 깊은 곳으로 호수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7화

    정은은 멍해졌다.남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몸에 꼭 맞는 핏이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하지만...얼굴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살짝 움푹 패여 두 눈은 더욱 깊고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현빈은 살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뜨거운 온기가 잔을 타고 손바닥에 전해졌다.“난 차 가리지 않아. 고마워.”“먼저 좀 앉아 있어요. 안에 가서 물건 좀 챙겨야 해서야. 그리고 바로 출발해요.”“알았어.”현빈은 정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맑은 차를 응시했다.예전에 현빈은 농담으로 정은에게 몇 번이나 위층에서 차 한 잔을 대접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외 없이 거절당했다.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집 안에 들어와 정은이 직접 끓인 차를 받아들고 있다니. 손 닿을 거리에서 건네받은 이 상황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현빈이 수없이 바라왔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남매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참 아이러니하네.’혀끝에 감도는 씁쓸함을 삼키며 현빈은 시선을 돌렸다.오늘은 영하 3도. 정은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핑크색 패딩에 카키색 캐시미어 니트와 울 스커트를 매치했다. 스커트 길이와 패딩 길이가 비슷해 전체적인 실루엣이 단정하면서도 발랄했다.거기에 롱부츠까지 신으니 젊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어제 충분히 쉰 덕분인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다 됐어요, 오빠. 가요.”정은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현빈의 심장을 파고들어갔다.간지럽고 짜릿했다.“오빠?”현빈은 정신이 번쩍 들더니 다소 급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응, 가자.”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먼저 현관으로 향했다.몸을 돌리는 순간,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옆에 늘어진 손은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졌다.현빈은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정은은 그 뒤를 따르다가 식탁 위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46화

    정은은 전화를 받으며 약간 멍해졌다.저쪽에서는 조용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왜 그래? 나를 ‘오빠’라고 불렀으면서, 이제 와서 만나기 망설여지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걸 받아들이기 싫은 거야? 그때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어?]“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지금 내려갈게요.” 정은은 단번에 대답했다.현빈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저쪽에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현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랑 할머니가 L시에서 돌아오셨어. 네가 최근에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시간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너 데리고 본가에 가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어.]이춘재와 봉수진은 L시에 머물면서 점점 그곳에 정이 들었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일 딸을 볼 수 있는 데다 소진헌과 같은 자상하고 든든한 사위가 곁에서 돌봐주니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만족스러웠다.그러다 이미숙은 출판사의 초청을 받아 G시에서 사인회를 열게 되었고, 이어서 S시로 날아가 독자와의 사인회에 참가해야 했다.물론 소진헌도 함께 가기로 했다. 출판사에서는 이미 이미숙 가족의 숙박, 식사, 항공권까지 전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경험을 보장해 이미숙이 앞으로 더 많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출판사는 이미숙을 행사에 초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두 어르신은 가고 싶어 하면서도 긴 여행에 노쇠한 몸이 무리일까 걱정했다. 결국 이민이 가장 먼저 반대했다.원래 이미숙은 혼자 G시로 가고 소진헌은 집에 남아 이춘재와 봉수진을 모시기로 했었다.소진헌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두 어르신은 그가 함께 가서 이미숙을 돌봐주길 원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였다.소진헌은 꽤 흐뭇했다. 평생 강단에 서는 것 외에는 자신이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결국 이미숙도 두 어르신의 뜻을 꺾지 못했고, 소진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