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따라 윤세영이 SUV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이제 막 고씨 가문의 영역을 벗어난 참이었다. 윤세영은 백미러로 뒤를 흘끔 쳐다보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핸들을 꺾었다. 이윽고 그녀는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잠시 후, 갑자기 우람진 인물이 나타나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윤세영은 차에서 내려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윤도훈 씨,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윤도훈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딱 두 글자를 내뱉었다. “강탈!”윤세영은 그의 말에 당황하더니 이내 하하 웃으며 말했다.“강탈이요? 도훈 오빠, 참 재밌는 분이네요. 그러면 재산을 빼앗을 건가요, 아니면 다른 걸 빼앗을 건가요?”윤세영은 타고난 메력을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이 순간에도 묘하게 조롱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꽃같이 활짝 웃었다. 심지어 윤도훈조차도 그녀의 유혹적인 웃음소리에 마음이 간지러워 났다.‘미인술?’그것은 윤도훈이 기억 속, 어떤 이단적인 수련 방향을 떠올리게 했다.“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겠죠! 윤세영 씨는 저의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예요!”윤도훈은 차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윤세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도훈 오빠, 이제 보니 참 재미없는 사람이네요. 영옥이 정말 저한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도훈 씨가 전에 저를 괴롭혔기 때문에. 저도 도훈 씨를 좀 괴롭혀 본 거예요! 도훈 씨가 원한다면 줄게요, 굳이 사납게 굴 필요가 있을까요…….”이윽고 윤세영은 몸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 윤도훈에게 던졌다.윤도훈은 서둘러 받아 열어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옥이 안에 있었다.정말, 천영옥이었다.윤도훈은 놀란 표정으로 윤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죠?”‘정말 순순히 천영옥을 주다니?’“사실……, 저번에 같이 밥 먹을 때, 저는 이미 도훈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다른 남자들과 비교하면, 도훈 씨는 강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어떤 여자가 강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겠어요? 이런 옥은 저에겐 부족하지
소지환이 이전에 윤세영에게 홀딱 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기 부모의 말조차 듣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이때 윤도훈은 윤세영을 바라보며 소지환이 빠진 모습 그대로 빠져들었다.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바보처럼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윤세영은 화사하게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비웃었다.‘이 바보, 내 계획을 몇 번이나 망쳐놓고, 결국엔 내 손에 놀아나고 있네. 이번에 내가 준비한 술법은 소지환 때 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해. 네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저를 좋아해요?” 윤세영이 윤도훈의 목을 감싸고,그의 몸에 매달리듯이 물었다.“물론이죠, 정말 좋아해요.” 윤도훈은 마치 영혼이 빠진 듯 대답했다.“그렇다면, 내가 물어볼 게 몇 가지가 있는데 솔직히 대답해 줘요. 아니면 난 도훈 씨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예요.”윤세영이 위협적으로 말했다.“그러지 마요! 세영 씨가 무슨 질문을 하든 다 대답할게요.” 윤도훈은 두려워하는 듯, 서둘러 대답했다.윤세영은 윤도훈의 ‘한심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그럼 물어볼게요. 도훈 씨가 가진 모든 능력은 어디서 온 거예요? 그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도훈 씨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조금 알아봤는데 원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강해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도훈 씨도 윤 씨잖아요? 혹시 제 잃어버린 가족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용 모양의 옥패, 정말 본 적 없어요?” 윤세영이 윤도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사실……, 그 옥패, 본 적 있어요! 제 능력은 제 아버지가 가르쳐준 거예요. 사실 아버지께서 남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당부했었어요. 그런데 딸이 너무 아파하는 모습에,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 용 모양의 옥패는 우리 아버지 것이에요.” 윤도훈은 황홀하게 말했다.“그러면 도훈 씨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어요? 빨리 말해봐요!” 윤세영은 흥분한 상태로 급히 물었다.“제 아버지는 내가 18살 때,
그 순간, 윤도훈의 표정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윤세영은 윤도훈이 자신에게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윤도훈의 몸속에 있는 구충은 용의 기운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다. 윤도훈도 잠시 주저했지만, 그 구충을 바로 없애지는 않았다. “세영 씨, 당신이 정말 내 부모님을 찾아줄 수 있다면 정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용 형상의 옥패를 찾는 거야? 혹시 이 옥패의 비밀과 나의 출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내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그날 밤! 윤도훈은 별장을 떠나 황량한 산꼭대기에 앉았다. 그의 가슴 앞에 있는 천영옥은 옅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정화된 영기가 그 속에서 뿜어 나와 윤도훈의 호흡과 함께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펑-천영옥이 빛을 잃자, 윤도훈의 단전 속에서 한 방울의 액체 진기가 나타났다. 웅-강렬한 기운이 윤도훈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 공간이 덩달아 진동했다. 이윽고 윤도훈은 눈을 떴고, 그의 눈에서 번쩍이는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드디어, 돌파한 것이다. 연정기 후기에서, 초급 경지로 진입한 것이다. 그때, 윤도훈의 안색이 급변했고, 머릿속에는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높고 우렁찬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윤도훈 혈관 속 숨겨진 무언가가 마치 각성한 것처럼 느껴졌다. [신통: 대지 맥동?] 윤도훈은 눈이 밝아지며 의념을 움직여 단호하게 한 발짝 내디뎠다. 이 한 발짝은 마치 대지와 공명하는 것 같았다. 쾅쾅쾅-땅이 갑자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강력한 위력이네! 초급 경지가 되니 자동으로 강력한 신통을 터득했군?” 윤도훈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속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힘이 흐르는 것 같이 느꼈다. 다음 날 아침!율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윤도훈은 이진희와 함께 회사로 갔다. 이진희의 지시와 함께 윤도훈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윤도훈 씨! 물 한 잔 좀 가져다줘요!”
윤도훈도 이 계약서를 알고 있었다. 이건 이진희와 자신이 맺었던 가짜 결혼 계약서 아닌가?‘왜……, 찢지?’“아니, 무슨 의미야? 내가 지금 투정 부렸다고, 여기서 끝내려는 거야?”윤도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는 이진희가 갑자기 계약서를 찢어 버린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바보!”이진희는 냉랭하게 대꾸하며 말했다. “오후에 시간 좀 내요. 함께 웨딩드레스랑 액세서리를 보러 가게.”“네……?”윤도훈은 이진희의 말에 놀랐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드디어 나를 정식으로 받아주는 거야?”이진희의 얼굴은 붉어졌다. “자만하지 마세요! 이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이에요. 그저 대응하는 거예요!”윤도훈은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 잘 대응해야지.”“됐어요! 음흉한 미소 짓지 마세요!”이진희는 윤도훈이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에 부끄러워하며, 화가 난 듯 발로 그를 걷어찼다.점심을 먹고 난 후.이진희와 윤도훈은 신세계 쇼핑몰에 도착했다. 이 쇼핑몰은 도운시에서 유명한 곳으로, 많은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다. 이진희는 쇼핑몰에 도착하자마자 아르마니 매장으로 직행해 윤도훈의 옷을 골라주기 시작했다.결혼식 정장을 사는 것뿐만 아니라, 윤도훈이 평소에 입을 옷들도 함께 구매하려고 했다. 윤도훈이 평소에 본인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진희는 그의 아내로서 윤도훈을 잘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진희는 허영심이 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도훈이 저렴한 옷 때문에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이걸 입어보세요!”이진희는 캐주얼 복장을 골라 윤도훈에게 건네며 재촉했다.윤도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옷을 받았다. 그가 탈의실에서 나왔을 때, 이진희의 눈이 반짝였다. 점원들도 눈이 반짝였다.옷이 날개라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평소에 윤도훈은 허구한 날 헐렁한 옷만 입어서 그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없었지만, 오늘 이진희가 골라
“나도 돈 있어, 그런데 내 아내가 내 옷을 사주겠다는데 그게 뭐?”윤도훈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은정은 비웃으며 말했다. “돈이 있다고요? 그 돈도 이진희가 준 거잖아요. 매일 밥 먹듯이 구박받으면서도 참 뻔뻔하게 구시네요. 같은 남자인데 차이가 왜 이렇게 큰 걸까요?”이은정은 이진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진희,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도 약혼합니다. 지민 도련님이 청혼했거든요. 아마 기억나지 않겠지만, 지민 씨는 백천 옥석 그룹의 후계자예요. 우리 시아버지는 강진시에서 가장 큰 옥석 도매상이시고. 가족 재산이 수조 억이나 된다고 하네요. 아무리 그린 제약 회사가 잘 나가도 구씨 집안을 따라잡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이진희가 차갑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몇 년이 걸려도 우리 스스로 힘으로 이룬 겁니다. 네 남자친구 집안의 돈이 네 돈이 아닌데, 뭐가 그리 자랑스러워요?”“포도가 시기 때문에 포도를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가요? 이진희 당신은 절대로 그런 시댁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이씨 가문을 등에 업고 내 아버지가 가문의 가주가 된다면, 내 성격이 어떻든 많은 남자들이 줄 서서 기다리겠죠.”이은정은 자만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이진희가 이은정을 쓴소리로 비난하자, 이은정이 화가 나서 말했다. “오? 그럼 구지민 씨와 약혼할 거예요?”그때, 윤도훈은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약혼식에 올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당신과 내 남편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이은정이 냉소적으로 말했다.“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만, 네 남자친구가 곧 너와 헤어질 거라는 건 알겠네.”윤도훈이 말했다.“헤어지다뇨? 미쳤어요? 왜요? 제가 찾은 남자가 그쪽보다 나으니까 지금 시샘하는 거예요? 그래서 질투하는 거예요?” 이은정이 무시하며 말했다.그때, 화장실에서 구지민이 급히 다가왔다.“은정아, 드레스는 다 골랐어?”이진희와 윤도훈이 그를 등지고 있어서, 구지민은
구지민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이건 무슨 말이지? 은정과 도훈 씨가 화해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은정과 결혼하면 윤도훈과도 껄끄럽게 지내야 하는 거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구지민과 이은정의 약혼은 이은정이 제안한 것이다. 그녀는 구백천의 재산이 수조 억이고 구지민이 그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했다. 따라서 구지민과 결혼하면 그 집안의 재산을 반씩 나눠 가질 수 있다고 혼자서 망상했다. 만에하나라도 이씨 가문이 몰락한다면 살 구멍은 만들어 놓아야 했다.이은정이 제안한 후, 구지민은 구백천과 상의했고, 둘은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하지만 그들이 관심 있는 건 이은정이 이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오로지 윤도훈 때문이었다. 비록 은대광이 운영하는 주얼리 도박장 내부에서, 구지민은 이은정과 윤도훈이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지민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친척간의 단순한 갈등이라고 생각했었다.어찌 됐든 이은정과 이진희는 사촌 관계니까!그렇기에 구지민이 이은정과 결혼한다면 윤도훈과 구지민은 끊어낼 수 없는 친척 관계이다. 그래서 구지민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은정에게 청혼한 것이고 약혼 날짜까지 정한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은정이 말하길, 그녀와 윤도훈은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고? 게다가 윤도훈은 나와 이은정이 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고?’이건 분명한 암시였다. 만약 이은정과 헤어지지 않으면 윤도훈과 척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구지민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강진시 최고의 무술가로 알려진 진경천이 영도 고수에게 져서 윤도훈에게 살해당한 모습을. 또한 진경천이 윤도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종사라 부르며 애원하던 모습을.“이은정, 우리 헤어지자.”구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은정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라고? 뭐라고 했어?”“우리 끝이야, 오늘부터 연락하지 마! 알아들었어?”구지민은 기분 나쁘게 말했다.“구지민, 너 미쳤어? 약혼 날짜까지 정해놓고 이제 와서 헤어지자고? 제대로 말해! 뭐가 마
“가자, 여보, 들어가서 웨딩드레스 고르자.”윤도훈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진희에게 말했다.이진희는 바닥에 앉아 있는 이은정을 한 번 보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윤도훈 따라 웨딩드레스 숍으로 들어갔다.둘째 삼촌 일가에 대해 이진희는 더 이상 아무런 좋은 감정도 없었다.남자한테 차인 이은정을 보고도 동정 따위의 감정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다만 구지민이 왜 윤도훈을 어려워하고 경외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했을 뿐이다.“윤도훈, 딱 기다려! 내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이때 이은정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자기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을 느꼈다.가능하다면 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을 심정이다.윤도훈에 대한 감정은 원망으로 가득했고 증오해 마지못해 이까지 악물고 소리쳤다.“좋아요! 근데, 나한테 ‘아빠’ 한 마디 빚진 거 잊지 말아요!”윤도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이에 이은정은 화가 치밀어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웃음거리가 될 면목도 없었다.하여 땅에서 기어 일어나 가방을 들고 이를 악물고 달아났다.한 시간 뒤, 웨딩드레스와 예복을 맞추고 윤도훈과 이진희는 숍에서 걸어 나왔다.“구지민은 왜 도훈 씨를 무서워하는 거예요?”차에 오르고 나서 이진희는 그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구지민이 윤도훈 앞에서 설설 기는 장면을 떠올리자, 궁금증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아마 내가 카리스마가 넘쳐서, 자기를 죽일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윤도훈은 웃으며 말했다.“쳇!”그러자 이진희는 입을 삐죽거리며 윤도훈을 흘겨보았다.윤도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속으로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믿으니 참…….’이때 윤도훈을 바라보는 이진희의 아리따운 두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언제부터 인지 윤도훈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를 “이 대표님”이나 “진희 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모님” 혹은 “형수님”으로 부르게 되었다.소장하 일가도 인광준도 동영민도 구백천 부자도…….이는 그들이 두 사람과 접촉할 때, 윤도훈을 주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윤도훈은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보러 가야지.”오늘 이은정이 뱉은 몇 마디 말에 이진희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윤도현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이제 겨우 오후 3시인데, 이진희는 회사로 돌아가 업무를 봐야 한다고 했다.하여 윤도훈은 이진희를 회사로 데려다주고 나서 곧장 샛별 유치원으로 갔다.미리 문 앞에서 율이를 기다릴 생각이었다.하교 시간이 되자, 윤도훈은 어린 유치원생들이 깡충깡충 뛰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윤도훈은 수많은 어린이들 속에서 한눈에 율이를 포착했다.“아빠!”율이는 재빠르게 달려 나와 윤도훈의 손을 잡고 기뻐해 마지 못하며 외쳤다.보아하니, 꽤 흥분한 것 같기도 하다.이때 눈살을 찌푸리며 윤도훈은 율이에게 물었다.“율이야, 얼굴 왜 그래? 누가 때렸어?”율이의 작은 얼굴에 갑자기 상처가 생겼고 한 쪽 눈도 푸르게 멍든 것만 같았다…….여기저기 상처가 난 율이의 얼굴을 보고 윤도훈은 가슴이 미어졌다.“아니에요. 율이가 맞은 게 아니라 율이가 때렸어요. 히히히…….”율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매우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율이가 때렸다고? 어떻게 된 일이야?”율이를 안고 차에 돌아오고 나서 윤도훈은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그러고 나서 율이는 일의 자초지종을 윤도훈에게 알려 주었다.사실 사건의 전말은 아주 간단하다.한 반인 남자아이가 율이의 치마를 잡아당겼고 비록 5살밖에 되지 않는 율이지만,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며 남자아이와 싸운 것이다.그 남자아이는 평소에도 반에서 무법자이며 꽤나 튼실하게 생겼음에 불구하고 율이를 이길 수 없었다.그뿐만 아니라 남자아이 뒤에 졸졸 따라다니는 “친구”들도 함께 율이를 괴롭혔는데, 모두 율이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바닥에 엎드려 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아빠, 율이 어때요? 대단하지 않아요?”율이는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매우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윤도훈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대단해!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