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쇠고랑을 찬 채 옆에 서 있던 임운지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임운지의 눈앞에서, 문파의 봉주라는 존재가 윤도훈에게 그렇게 간단히 죽임을 당하다니. 마치 닭을 잡는 것처럼 쉽게 말이다.충격이 가신 뒤, 임운지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곧 기쁨이 피어올랐다.‘도훈 오빠가 이렇게 강하다니!’게다가 윤도훈의 손발은 전혀 잘리지 않았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 임운지는 희망의 한 줄기를 보는 듯했다.반면, 한이수의 심정은 완전히 반대였다. 윤도훈이 갑작스럽게 행동할 때 튕겨 나가 감옥 벽에 부딪힌 그는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이수의 내장은 거의 다 뒤틀리고 심각한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윤도훈의 무시무시한 힘을 목격한 한이수는 온몸이 두려움으로 떨리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통증을 참으며 눈을 질끈 감고 죽은 척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혹시 목숨만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한이수의 속임수가 윤도훈의 눈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임운지의 쇠고랑을 산산조각 내며 부수고 나서, 차갑게 한이수를 바라보았다.“한이수, 죽은 척하지 마. 네가 왜 이런 일에 끼어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군. 허세 좀 부리려고 왔다가 목숨까지 잃게 생겼는데,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윤도훈은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한이수는 온몸이 벌벌 떨렸다. 결국 그는 두려움에 떨며 억지로 눈을 뜨고, 비틀거리며 윤도훈의 발아래로 기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연달아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도훈 형님!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는 무도 봉주에게 강제로 끌려온 거예요.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제 잘못이 아니예요!”그러면서 한이수는 옆에 있는 임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운지야, 네가 좀 도와줘! 네가 도훈 형님께 사정을 좀 해줘. 우리 아버지
“도훈 오빠, 무슨 일이예요?”임운지의 긴장한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낮아졌다.그러자 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지금 그들은 여전히 장용봉 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순간, 윤도훈은 갑작스럽게 어떤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이전에 봤던 거대한 눈동자가 주었던 느낌과 비슷했지만, 훨씬 더 심장을 옥죄는 공포감을 주는 것이었다.‘이 장용봉 아래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파헤칠 시간이 없어.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확인할 거야.’윤도훈은 속으로 다짐하며 마음속의 호기심과 불안을 억누른 채, 임운지를 데리고 계속 나아갔다.두 개의 향이 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지하를 걸어가던 윤도훈은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저항감을 느꼈다. 그는 즉시 깨달았다. 결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윤도훈은 진기를 응집해 주먹에 담아 결계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결계는 즉시 커다란 틈이 생기며 부서졌고, 윤도훈은 임운지의 손을 단단히 잡고 재빨리 틈새를 통해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지상을 향해 달리며 길을 막는 수많은 암석들을 산산이 부쉈다.잠시 후, 그들은 한 산의 중턱에 도달했다.그 순간, 윤도훈과 임운지는 한 인물이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도훈 오빠, 누군가 있어요!”임운지가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리 편이야야.”윤도훈은 임운지의 작은 손을 살짝 쥐며 안심시키려 했다. 다가오는 이는 바로 주석태였다. 일월문의 진파 대인인 주석태는 주변의 모든 기운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윤도훈이 결계 영역을 부수었을 때, 그는 이를 감지하고 곧바로 그쪽으로 달려왔다.이윽고 주석태가 모습을 드러내자, 윤도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찬가지로, 주석태 역시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주석태는 이미 윤시율을 단맥종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윤도훈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들
서동시 외곽의 한 묘지.홍지명의 도움 덕분에 윤도훈은 이곳에 묘지를 하나 구매할 수 있었다. 묘지는 비어 있었고, 현재로서는 서만추를 위한 의관총만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단맥종의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단만산과 무화현 같은 존재들도 세속적인 영역에서는 윤도훈을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만추야, 도훈 오빠가 정말 미안하다. 네게 진 빚은 갚을 방법이 없어. 언젠가 반드시 단맥종을 멸망시키고, 단맥종주 무화현의 목을 내 손으로 들고 와 네게 제사를 올릴 것이다.”윤도훈은 흙무덤 앞에 서서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율이야, 만추 언니께 절 올려라!”윤도훈의 말이 끝나자, 율이는 어린아이 특유의 귀여운 몸짓으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무덤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추 언니, 율이랑 아빠가 꼭 언니 복수해줄게요!”말을 마친 뒤, 율이의 입술은 떨리더니, 커다란 눈에서 콩알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곧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묘지의 분위기를 더욱 애통하게 만들었다.임운지도 옆에서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며 깊은 비통에 잠겼다. 서만추의 죽음은 모두의 마음에 깊은 어둠을 드리웠고, 동시에 단맥종에 대한 풀 수 없는 증오를 심어놓았다.윤도훈은 여러 번 고민 끝에, 서만추의 죽음을 그녀의 가족에게 당장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만추의 아버지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무엇보다도, 서만추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 윤도훈에게는 그녀의 가족을 대면하기에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그는 언젠가 서씨 가문을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상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 소식을 전하려 했다.다행히도, 서만추는 단맥종에 들어간 이후로 몇 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맥종은 상고 문파로서, 서만추의 가족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윤진안은 윤창생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며 바닥에 엎드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외심 가득한 태도로 윤도훈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직접 인정했다.만약 예전이라면 윤진안에게 개인적인 속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상고 윤씨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된 윤창생의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그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전 가주였던 윤창해는 비교적 온화한 성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윤창생은 정반대였다. 그는 냉혹하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윤진안은 윤창생 앞에서 감히 둘러대거나 속임수를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오? 어떻게 알게 되었지? 진안아?”윤창생은 진지하게 물으며, 자신만의 동허 후기에 걸맞은 기세를 뿜어내며 윤진안을 짓눌렀다. 그의 기세는 단 한 마디라도 틀린 답변이 나오면 윤진안을 바로 처단할 기세였다.심지어 은둔 윤씨 가문 자체를 대대적으로 정리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잠시 후, 윤진안은 안절부절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윤도훈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윤진안은 사골을 찾아갔던 윤금강이 윤도훈이 용형옥패의 전승자임을 알게 된 이야기부터, 은둔 윤씨 가문이 영맥을 가진 섬을 발견했을 때 윤도훈이 일월문과 결탁하여 그 섬을 빼앗아 은둔 윤씨 가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까지 상세히 설명했다.마지막으로, 윤진안은 땅에 엎드린 채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창생 가주님, 저도 이 윤도훈을 잡아 상고 윤씨 가문에 바치고,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상고 윤씨 가문은 상고의 층위에 속하시니, 윤도훈이나 윤도훈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손을 대기는 어려우실 테니 말입니다. 부디 저의 충정을 헤아려 주십시오!”윤창생은 윤진안의 말을 듣고, 얼굴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오? 정말로 상고 윤씨 가문을 기쁘게 하려던 것이냐, 아니면 네 개인적인 속셈 때문이냐? 진안아, 너 스스로 잘 알겠지. 이번은 내가 넘어가 주겠다. 하지만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너도 알겠지?”윤진안은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서지현과 이진희는 그 보디가드를 바라보며 얼굴에 분노의 기색을 드러냈다. 마치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모욕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바로 그때, 방의 문이 열리며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성시아가 걸어나왔다.“진희야? 왔구나! 어서 들어와!”성시아는 이진희를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짓했다.“엄마랑 같이 왔는데, 엄마를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이진희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시아야, 이 사람들이 네 보디가드니?”“뭐라고? 어머님을 못 들어가게 했다니?”성시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서지현에게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보인 뒤, 방 안쪽을 돌아보았다.그 순간, 한 금발의 여성이 방 안에서 앞으로 나왔다. 그 여성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이었다. 그녀는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붉은 입술에 섬세한 이목구비, 그리고 철저히 관리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물론, 이진희가 보기에 가장 잘 관리한 것은 바로 표정이었다. 그 푸른 눈으로 서지현과 이진희를 천천히 훑어보며,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여기는 듯한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저들은 내 보디가드야. 내 안전을 책임지는 게 저들의 역할이지. 그러니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금발 여성의 이름은 팜페이 앨리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앨리스는 굉장히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러나 말투에는 강한 우월감과 공격적인 기운이 묻어 있었다.“시아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가 환영받지 못하는 거면, 그냥 돌아갈게!”이진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그러자 성시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앨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앨리스 선배님, 이분이 제가 말씀드린 이진희 씨입니다. 그린 제약회사의 대표이고, 이분은 진희 씨의 어머니, 지현 사모님이세요.” 그리고는 이어 이진희에게 설명했다.“진희야, 이분은 내 외국 유학 시절의 선배님이야. 우리는 모두 스타인 박사님 제자였어. 앨리
“나는 히아오스그룹의 수석 기술자인 것뿐만 아니라, F국의 고귀한 귀족인 팜페이 가문의 일원이야. 내 혈관에는 고귀한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이진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이진희 씨라고 했나, 당신은 염하에서 어떤 명문 가문의 자제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고귀한 혈통은 어디에서 왔나요?”이 말을 들은 이진희는 가볍게 비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미안하지만, 나는 혈통 같은 거 없어요. 우리 염하 사람들은 모두 용의 자손이죠. 우리 몸에는 고귀한 신룡의 피가 흐르죠.”“하지만 개에게는 혈통을 논할 수도 있겠네요. 사람은 그런 걸 따지지 않아요!”이진희는 절대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약해 보이는 모습은 오직 윤도훈 앞에서만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다른 사람 앞에서 이진희는 언제나 냉정하고 강인했다. 앨리스가 성시아의 친구이자 선배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가 자신과 어머니를 반복적으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참아줄 이유는 없었다.그래서 이진희는 단호하고 예리한 말투로 반격에 나섰다.“혈통?”이진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정말 웃기네요. 우리 염하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걸 따지지 않아요. 아마도 개를 키우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애완동물 혈통이 순수한지 따질 필요가 있겠죠?”이진희는 앨리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앨리스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사실, 이진희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앨리스는 사실 레즈였다. 스타인 박사 밑에서 성시아와 함께 공부하던 시절부터 그녀는 성시아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이번에 염하로 온 이유 역시 성시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앨리스 앞에서 이진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구했는지, 심지어 이진희와 히아오스그룹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이진희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몸에서 한기가 서린 듯한 차가운 기세가 퍼져 나왔다.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이진희는 이미 원영 초기 강자에 필적하는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연정기 실력조차도 지금은 축기 후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앨리스를 손쉽게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고등 생명체? 저급 생명체?’ 앨리스의 말을 들은 이진희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진희야, 안 돼! 제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앨리스는 너를 일부러 자극하려는 게 아니야.”성시아는 그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며 서둘러 이진희를 말렸다. 그녀는 이진희의 강력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진희가 자동차 사고 당시 보여준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아우디 A8 안에서 이진희는 자신의 몸으로 성시아를 보호하며, 네 마리의 시체 꼭두각시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 사건은 성시아에게 이진희가 단순히 아름답고 우아한 여신 CEO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켰다.사실, 성시아 자신이 앨리스처럼 레즈비언이었다면, 그녀 역시 이진희에게 반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우정은 짧은 시간 안에 깊어질 수 있었다.그렇기에 성시아는 이진희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정말로 앨리스에게 손을 대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앨리스는 이진희의 기세를 느끼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겁에 질린 고양이처럼 그녀는 문 밖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로위! 들어와! 누가 나를 공격하려 해!”앨리스의 외침과 동시에,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몇몇 건장한 검은 정장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빠르게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즉시 앨리스 주위로 모여 그녀를 보호하려 했다.“이 여자와 이 여자의어머니를 당장 내쫓아! 저들이 내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앨리스는 손가락
이 시각, 이 서양식 레스토랑은 이미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2층의 한 구석은 두 사람의 격돌 여파로 인해 커다랗게 부서져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원래 있던 방 안에서는, 서지현이 상대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들어 그녀는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지난번, 호씨 가문의 고수들이 이씨 가문의 옛 저택을 습격했을 때, 서지현은 처참한 전투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서지현은 윤도훈과 이진희가 모두 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과 이천수 역시 그들의 권유로 인해 기초적인 수련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이런 광경이 그녀에게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반면 정시아는 약간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진희가 상대를 몰아내며 자신과 거리를 벌려주자 한결 안심한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가볍게 토닥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앨리스 쪽 상황은 달랐다. 그녀는 방 한쪽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몇 구의 시체를 본 앨리스의 얼굴은 완전히 핏기가 가셨다.앨리스의 경호원들은 모두 팜페이 가문이 특별히 육성한 정예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1대 10, 심지어는 1대 100의 전투도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고수들이었다. 한 번은 앨리스가 용병단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 경호원들이 가볍게 처리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앨리스의 마음속에서, 이 경호원들은 사실상 무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경호원들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졌다니? 심지어 아까 그 염하 청년은 그들에게 제대로 손을 대지도 않았다. 단순히 이들을 밀쳐냈을 뿐인데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나타난 이 염하 청년은 대체 어떤 끔찍한 존재인가.‘사람인가? 아니면 전설 속의 초인인가?’그러나 앨리스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경멸하고 모욕했던 이진희가 이런 두려운 존재를 몰아붙여 계속 후퇴하게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