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에게 전화한 후, 하예정은 저녁에 먼저 발렌시아 아파트로 가서 전태윤과 잘 이야기하고 나중에 셋방으로 돌아갈 거라고 언니한테 전화했다.하예진이 대답했다.“그래, 네가 올 때까지 언니가 기다릴게.”전화를 한 후 하예정은 바로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앞 강변을 따라 혼자 걸었다.찬 바람이 불자 그녀의 머리는 점차 냉정해졌다.그녀와 전태윤의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화를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와 전태윤의 현실 차이이다.자신이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선 하예정은 멀리서 자신을 따라오는 심효진을 발견하고 절친에게 다가갔다.“나쁜 생각 안 하니까 걱정 말어.”심효진이 웃었다.“네가 나쁜 생각 안 하는 걸 알아. 단지 네가 필요한 게 있어 부르면 인차 들을 수 있어서 그래.”잠깐 심효진을 바라보던 하예정은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감동되어 말했다.“효진아, 네가 내 친구인 건 내 인생의 행운이야.”“내 행운이기도 해.”심효진은 하예정의 등을 다독이고는 그녀를 놓아주고 나란히 걸었다.“밥 먹고 들어갈래?”“태윤 씨에게 데리러 오라고 했어.”동문서답.“용서하기로 한 거니?”“그저 화가 났을 뿐 미운 건 아니야, 내가 직시해야 할 것은 그와의 차이인데, 그와 잘 이야기하고 싶어서.”“그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니까.”하예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좀 지나 전태윤이 소정남과 같이 왔다.소정남은 심효진과 저녁 식사를 같이하려고 온 거였다.하예정이 전태윤의 차에 앉아 떠나는 것을 보고 소정남은 심효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 화해했어요? 태윤이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날듯이 기뻐하며 회사에서 나오던데.”“복권에 당첨돼도 자기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뭐 그리 흥분할 거 있겠어요? 예정이가 그와 이야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화해가 어디 그리 쉽다고요, 제가 말했듯이, 예정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소정남이 맞장구를 쳤다.“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 주전자를 든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다친 손은 왼손이다.“한 손으로는 일하기 힘들어. 이 꽃들은 내가 숙희 아주머니한테 잘 돌보라고 했으니 신경 쓰지 마.”전태윤은 꽃에 물을 주지 못하게 그녀의 손에서 물 주전자를 뺏고는 그녀를 그네 의자에 눌러 앉혔다.“당신은 여기 앉아있는 걸 가장 좋아하니, 여기 앉아서 그네를 타. 내가 외투를 가져다줄테니.”“춥지 않아요.”전태윤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듯 외투를 가져다 그녀의 다리에 덮어 주었다.“밥하러 갈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손에 절대 물 묻히지 말고.”전태윤은 그녀에게 거듭 당부한 후에야 저녁을 준비하러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은 그네 의자에 좀 앉아 있다가 일어나 주방 입구에 서서 전태윤이 저녁 준비하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를 보고 있노라니 과거의 사소한 일들이 생각났다. 그가 그녀에게 신분을 숨긴 일을 제외하면 평소 생활에서 그는 점점 더 잘 그녀를 보살펴 주고 있다.그들 사이에도 달콤함이 있었다.잠시 그를 바라보던 하예정은 소파에 앉아 TV를 켰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전태윤은 가끔 고개를 내밀어 그녀의 동정을 살폈다.마음이 긴장해 졌다.그녀가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전태윤은 마음속으로 자기의 냉철함과 자제력이 하예정을 만난 후 통제력을 잃었다고 비웃었다.한 시간 남짓 후.전태윤이 준비한 간단한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다.반찬 세 개와 국 한 개.모두 하예정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그는 하예정에게 국과 밥을 떠주고 반찬을 집어주고 나서야 젓가락을 건네주었다.하예정이 전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태윤 씨, 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바보, 당신은 내 와이프인데 당신에게 잘 해주지 않고 누구한테 잘해주겠어?”“당신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요.”“괜찮아, 희망이든 실망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 당신이 나에게 이혼을 제기하지 않고 나를 떠나지 않는 한,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어.
“처음 당신이 나를 속인 걸 알았을 때, 나는 너무 화가 났어요... 됐어요, 당신 머리카락이 다 곤두선 것 같으니, 그 얘기는 그만할게요. 화가 채 풀리지도 않고, 아직 마음 정리도 안 되었는데 당신 대신 사정하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그녀와 한편이던 절친도 그를 대신해서 사정했다“당신이 화낼 권리가 있어, 내가 잘못했어. 당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속이지 말았어야 했어. 신분을 밝힐 때도 직접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어서 다른 방법을 선택해서 당신에게 알렷어... 다 예준성이 그러라고 시킨 거야!”하예정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이 일은 결국 당신이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예전에 당신을 믿지 않은 것을 인정해. 당신을 경계하고, 당신이 돈을 노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당신의 인품을 절대적으로 믿어.”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망설이다가 다시 결심한 듯 물었다.“태윤 씨, 우리 다시 합의서를 쓸까요? 당신의 정체를 알고 화내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고, 난 지금 우리의 현실적 차이를 더 고려해야 해요. 당신은 억만장자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지만, 난 부모도 없는 고향에 볼품없는 친척만 득실득실한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여자예요. 모든 면에서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예정아!”전태윤은 엄숙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당신이 어떤 신분이든, 난 이미 마음먹었어. 당신만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자신을 비하하는 그런 말은 하지 마.”“난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하예정은 결코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는다.“난 당신의 능력이 필요 없어, 내가 능력이 있으면 돼, 난 당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앞으로 우리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있어, 내가 번 돈이면 우리가 축구팀을 낳더라도, 부양할 수 있어. 자신을 압박하지 마, 당신이 가족을 부양할 필요가 없어, 당신은 지금처럼만 있으면 돼, 난 의견 없어.”전태윤은 하예정이 이혼을
“태윤 씨, 내 말은, 나에게 시간을 좀 달라는 말이예요. 나가 당신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요. 만약 안 된다면, 나도 강요하지 않을 거고, 당신도 나를 강요하지 말아요. 불평등한 결혼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지금 당신은 나를 사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감정이 깊을 때라 분명히 내가 어떤 신분이든 상관하지 않고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우리는 공통의 화제도 없어요. 친구들 모임에서 다른 사람의 부인들이 재정, 주식, 투자에 대해 당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오늘 뭐 먹었는지? 무슨 국을 먹었는가고 물을가요?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의 체면을 깎는다고 생각할 거고, 내가 친구 와이프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문벌이 비슷한 같은 계층이니, 같은 식견과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태윤 씨는 당신이 있으면 아무도 감히 나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열등감을 느낄 거예요. 난 당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이 아닌 당신과 함께 나아가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의 출발점이 너무 높아서 나는 바로 따라잡을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시도할 기회를 줘요.”전태윤의 얼굴색이 새까맣게 변했다.“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신경 써? 내가 당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니까, 당신은 지금처럼만 있으면 돼. 남들이 뭐라고 하는 건 당신이 우리 전씨 가문 사모님이 된 걸 질투하기 때문인 거야. 그리고 내 친구들은 당신을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들에게 당신 앞에서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경고할 거야, 그냥 일상 얘기나 하라고 말이야. 내가 모두 당신 하자는 대로 하면 안 돼?”“...”“언니의 실패한 결혼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당신은 내가 주형인과 같은 쓰
하예정도 시댁 식구들이 교양 있고 참 좋은 분들이란 걸 인정한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늘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지금은 고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어서 갈등이 없다지만 앞으로 오래 지내다 보면 이모가 젊었을 때처럼 되는 건 아닐까?그녀는 시댁 식구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태윤 씨, 여기까지만 얘기해요. 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가서 쉬어요. 나도 이만 갈게요.”하예정은 화를 억누르며 전태윤과 다투지도 않고 그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걸 전태윤은 이해하지 못한다.하예정은 대화가 안 통하는 무기력함을 느꼈다.계속 더 말하면 부부싸움이 일어날 테고 그것도 엄청 크게 다퉈 서로의 감정이 더 악화될 것이다.그녀는 일을 해결하고 싶을 뿐 그와 다툴 생각이 없다.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아, 난 너랑 계약서 같은 거 다시 안 써. 우리가 혼인 신고한 순간부터 평생 부부야.”“그래요, 그럼 사인하지 말아요. 일찍 쉬어요.”하예정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전태윤이 힘이 워낙 세다 보니 꼼짝없이 잡혔다.그녀의 건성한 태도를 보니 아예 전태윤의 말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기어코 제 뜻대로 할 모양이다. 전태윤은 살짝 화났지만 그녀의 다친 왼손을 본 순간 화가 싹 가라앉았다.그의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에 하예정은 마음이 다쳐 손을 찔러버렸다.그녀의 상처를 보고 있자니 전태윤은 가슴을 후벼 파듯 고통스러웠다.부부가 어떤 일에 서로 다른 관점을 보이며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면 그는 화내는 방식으로 하예정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예정아, 오늘 밤엔 처형네 집에 안 가면 안 돼? 시간도 너무 늦었고 처형도 종일 바삐 보내느라 피곤할 텐데 우빈이 데리고 일찍 쉬게 해줘.”전태윤은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여기 남아서 한 침대에 누워 잘 순 없어도 최소한 한 집 안에 있으니 마음이 놓이니까.하예정은 그에게 안정감을 못 주고 그 또한 그녀에게 믿음을 못
비록 늦게 운전했지만 곧바로 하예진의 월세방에 도착했다.하예진은 애초에 동생과 너무 멀리 떨어지기 싫어서 발렌시아 아파트 인근에 집을 구했다.전태윤이 차를 세웠다.“도착했네요.”하예정은 차 문을 열고 그에게 말한 뒤 곧장 내렸다.“집까지 함께 올라가 줄게.”“괜찮으니까 그냥 돌아가요. 운전 조심하고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전태윤은 짙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예정아, 너 아직 나 관심하는 거지?”그는 손을 잡고 싶었지만 하예정이 몸을 홱 돌리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전태윤은 입구에 서서 그녀가 올라가는 걸 지켜볼 뿐 끝내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그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쭉 거절했다...한참 후 전태윤은 차에 돌아가 소정남과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어 지누 바에서 술 마시기로 약속했다.통화를 마친 후 그는 곧게 지누 바로 출발했다.소정남과 노동명은 그보다 먼저 도착해 룸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 후 그를 기다렸다.전태윤이 들어올 때 둘은 마침 맥주 한 상자를 시켰다.“바에 좋은 술이 없는 거야 아니면 너희가 좋은 술을 살 돈이 없어? 맥주가 웬 말이냐고. 마시려면 독한 거로 마셔야지. 가장 독한 술로 오늘 밤 끝까지 달려!”내일은 일요일이니 실컷 자면 그만이다.소정남이 말했다.“난 그냥 안 마시고 옆에 있을게. 적어도 한 사람은 맨정신이어야지. 아니면 나중에 누가 집까지 데려가겠어? 그리고 나 내일 효진 씨랑 함께 효진 씨 고모네 댁에 가서 밥 먹어야 하니 술 마셔도 안 되고 취해선 더 안 돼.”노동명이 그의 팔을 툭툭 치며 오지랖 넓게 물었다.“너랑 효진 씨 벌써 가족들 만날 단계까지 간 거야? 진도 빠르네.”“나야 빠르고 싶지만 효진 씨가 느린 템포를 좋아해. 효진 씨 고모가 맞선남을 또 소개해 줬는데 김씨 그룹의 임원이라면서 함께 저녁 먹자고 하데. 이건 뭐 그냥 효진 씨랑 그 임원을 간접적으로 주선해주는 거잖아. 어딜 감히 내가 찜한 여자를
전태윤은 테이블 위의 술병과 술잔을 모조리 바닥에 쓰러뜨린 후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예정아, 하예정... 나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소정남과 노동명은 처음에 그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계속 곱씹으니 소정남이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하예정, 나 너 없어도 잘 산다고.”“쟤 뭐래?”노동명은 소정남의 괴이한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소정남은 허리를 곧게 펴고 만취한 전태윤을 보면서 그에게 되물었다.“얘 초고속 결혼하고 지금까지 예정 씨 때문에 취한 게 이번이 몇 번째지?”맨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하예정의 건성건성한 태도가 마음에 걸려 이들 둘을 불러서 함께 술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강일구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때부터 강일구도 대리기사라는 신분이 생겨 정정당당하게 하예정을 마주했다.“그래놓고 뭐? 예정 씨 없어도 잘 살아? 참나.”소정남은 술에 취한 절친을 비웃었다.“예정 씨 앞에 가서 말해야지 술에 취해 우리한테 말해서 뭐하냐고? 네가 예정 씨 앞에서도 나 당신 없이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으면 내가 네 성을 따른다.”전태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소정남의 어깨를 꽉 잡고 그를 마구 흔들어대며 외쳤다.“하예정, 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잘못했다고 사과도 했고 네가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도 줬어. 대체 뭘 더 어쩌란 말이야? 똑똑히 들어. 나만 원한다면 밖에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가 줄을 섰어! 하예정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산다고!”소정남은 그에게 휘둘려 머리가 어지럽고 그의 술주정에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그래, 예정 씨 아니어도 넌 얼마든지 잘 살아. 그러니까 예정 씨랑 이혼하고 너 좋다는 여자랑 결혼하면 될 거 아니야.”“이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 절대 이혼 안 해! 넌 내 거야! 평생 내 여자라고. 난 너만 가질래! 꼭 너여야만 해... 그래야 한다고. 이 손 절대 안 놔. 계약서에 사인 안 할 테니까 이번 생에 나랑 계약서 따위
“예정 씨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면 예정 씨가 알아서 챙겨줄 거야.”소정남은 절친을 한 번 돕기로 했다.노동명은 미리 그를 일깨워주었다.“태윤이가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해대는데 아까 했던 말을 예정 씨가 들으면 엎친 데 덮친 격 아니야?”소정남이 대답했다.“그럼... 서원 리조트에 데려가야겠다.”노동명도 찬성했다.바에서 나온 후 노동명은 전태윤을 부축해서 소정남의 차에 앉히고 몇 마디 당부한 후 그들이 떠나가고 나서야 기사에게 전화해 데리러 오라고 했다.전씨 일가의 리조트로 가는 길에서 전태윤은 때로는 ‘예정아, 사랑해. 날 떠나지 마.’ 라고 주절거리다가 또 가끔은 ‘나보고 어쩌라고? 잘 들어, 난 너 없이도 잘 살아.’ 라며 구시렁댔다.아무튼 이 몇 마디 말만 곱씹을 뿐이었다.이는 영락없는 사랑과 자존심의 싸움이었다. 때론 사랑이 지배하고 때론 자존심이 지배하는 혼돈의 상태였다.한 시간 후, 소정남의 차가 서원 리조트로 들어갔다.그가 미리 할머님께 전화 드린 덕에 할머니는 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할머니.”소정남이 차를 세우고 할머니께 인사하며 내려왔다.“늦은 시간에 폐 끼쳐서 죄송해요.”“이 할미가 미안하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태윤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말이야.”할머니는 경호원을 시켜 전태윤을 차에서 내리게 했는데 그가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자 소정남에게 물었다.“이 녀석이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몇 병 마셨어요. 취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으니 감히 예정 씨네 집으로 못 데려가겠더라고요. 예정 씨가 괜히 허튼소리 하는 걸 들었다가 화만 더 낼까 봐요.”“무슨 허튼소리를 했는데?”소정남은 전태윤이 밤새 해댔던 막말을 할머니께 모조리 알려드렸다.할머니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얘 예정이 앞에서 절대 그런 말 못 해. 내가 잘 알아.”“할머니, 태윤이도 마음이 너무 갑갑해서 스트레스 좀 푼 거예요. 내일 술 깨면 또다시 껌딱지처럼 예정 씨 옆에 달라붙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할머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