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도차연은 평소에 아버지 곁을 따라다니는데 부녀는 늘 밤 늦게까지 바쁘게 돌아쳤고 주말도 쉴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행복하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남편이 좀 모범적인 남편이긴 하죠. 제가 그와 함께 밖에 있지 않는 한 그는 매일 밤 9시 30분쯤 집에 와요. 그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저보단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일찍 퇴근해서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했죠.”하예정의 웃음이 눈부셨다. 안 그래도 듣기 힘든 하예정의 자랑을 듣고 있자니 도차연은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지금 당장 하예정을 잿가루로 만들고 싶었다.다행히 그녀는 아버지의 프로젝트를 따라 이곳저곳 돌아니며 배운것이 많았고, 좀 더 침착해졌고, 마음속의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며 털끝만큼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두 분 사이가 좋네요.”"그럼요. 그 사람이 저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저는 항상 그를 사랑할 수 있어요. 저는 이미 그의 사랑에 익숙해져 있어요. 만약 이후에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그랬더니 그가 오히려 나를 평생 사랑하고, 다음 생에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고 했죠.”"이 남자가 달콤한 말을 하면 전 정말 어쩔바를 모르겠어요. 사람들 모두가 달콤한 말을 듣는 걸 좋아하지만, 우리 태윤 씨는 항상 진지한 사람이라 전 그가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킨다고 믿어요.”도차연은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하예정을 욕했다. 그녀라고 지금 하예정이 일부러 도차연을 자극해서 전태윤에 대한 마음을 꺾으려는 의도를 모르는게 아니었다.남자, 특히 돈 많고 힘 있는 남자은 누구나 바람을 핀다. 그녀는 전태윤이 하예정을 지키며 한평생 바람 피지 않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마음속의 질투를 억누르고 도차연이 말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듣기 좋아하지만, 그건 종종 거짓말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죠. 하예정 씨가 지금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다시 얘기 좀 하는
도차연은 하예정의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했다. 그녀는 하예정이 그녀에게 가짜 번호를 줄까 봐 걱정해서 하예정의 면전에서 휴대전화 번호에 전화를 한 번 걸었고,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도차연은 전화를 끊고 말했다."하예정 씨, 그럼 전 먼저 갈게요. 다음에 다시 봐요.”“네, 안녕히 가세요.”하예정은 도차연이 차에 오르는 것을 본 후, 도차연이 그녀에게 손을 흔들 때 다시 입을 열었다."도차연 씨, 다음에 올 때 번거로우시겠지만 차를 입구의 주차 공간에 세워주세요. 이렇게 함부로 주차하지 마시고요.”"오늘 밤 제 차를 가로막으셨죠? 하지만 전 성격이 좋고 포용력이 강하니 도차연 씨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거예요. 하지만 만약 우리 집 그 이의 길을 막는다면 도차연 씨의 스포츠카는 아마 폐기될 수도 있어요.”“알겠어요, 제가 무례했네요... 죄송합니다.”하예정이 웃었다. "괜찮아요. 말했다시피 저는 성격이 좋고 포용력이 강해서 도차연 씨의 한 번의 주차 실수때문에 화내지 않습니다. 그럼 도차연 씨, 안녕히 가세요. 배웅은 하지 않을게요.”도차연은 손을 내저으며 차를 몰고 갔다.연적의 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던 하예정이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더니 방금 별장에서 나온 박씨 아저씨를 바라보았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박씨 아저씨는 방금 소문을 듣고 무슨 일인가 해서 나와봤다.도차연은 이 곳에 온 후에도 집 안의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차에서 하예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별일 아니예요. 태윤 씨를 좋아하는 여자가 집까지 쫓아왔는데, 주차 공간에 주차하지 않고 문 앞에 가로로 주차해 제 길을 막았어요. 박씨 아저씨, 경비실에 가서 CCTV 좀 찾아볼수 있을까요?”"도차연 씨는 이 빌라단지의 출입카드가 없고, 저희 집 도우미들이 데리고 들어왔을 리도 없는데, 그녀가 어떻게 들어온거죠?”하예정은 연적 앞에서 매우 대범하게 행동했고 게다가 도차연에게 한방 시원하게 먹이기까지 했지만, 사실 그녀는 사랑
운전사가 하예정을 따르는 경호원에게 물었고, 그 경호원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난 몇 달 동안 사모님 곁에서 그녀를 보호해왔어. 내가 아는 사모님은, 도련님에게 화를 낼 것 같지 않아. 도차연이 알아서 들러붙은 거고 아직 도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도련님을 원망해서 뭐해?”"그럼 다행이고. 난 사모님이 화나서 도련님이랑 크게 싸울까봐 걱정이야. 그럼 중간에 낀 우리는 무슨 죄냐고.”전태윤이 화가 나면 그 누구도 발 뻗고 편히 잘 수 없다.그러니 가장 불쌍한 건 전태윤을 자주 보는 사람들이었다.운전기사는 하예정을 자주 모시는 편이라 전태윤도 자주 볼 기회가 많았기에 걱정이 앞섰다.하예정은 방에 들어간 후 소파에 앉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전태윤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전태윤의 차는 별장 입구에 도착해서 멈추었다.하예정은 소파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차 소리가 나는 순간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전태윤은 몇 개의 쇼핑백을 들고 차에서 내렸는데, 쇼핑백 안에는 명품 브랜드의 신상 옷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하예정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하예정은 현재 신분과 관심도가 매우 높았는데, 명품 브랜드의 새로운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하는 등 사람들의 앞에 나서면 걸어다니는 광고가 따로 없었다.그래서 과거에는 남성 브랜드만 전태윤에게 협찬이 들어왔는데, 전태윤이 결혼하면서 여성 브랜드도 우르르 협찬을 해왔다.전태윤은 차에서 내린 후 하예정이 마중 나오지 않고 박씨 아저씨도 마중 나오지 않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경호원을 불러 물었다."내가 돌아오기 전에 집에 무슨 일이 있었어? 예정이 기분이 안 좋아?”경호원이 조용히 대답했다. "도련님, 그냥 방에 들어가서 사모님께 직접 물으세요. 이건 도련님과 사모님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니 저희 모두 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도련님, 그럼 저희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그리고 경호원은 얼른 도망갔다.또 다른
하예정이 지금 기분이 좋아보였기에 전태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보, 내가 돌아오기 전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하예정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평소에는 내가 돌아오고 차가 막 별장에 들어서면서 인기척이 들리면 당신이 방에서 나와서 내 차 앞에 서서 빙그레 웃으며 내가 내리기를 기다렸잖아. 당신이 나보다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박씨 아저씨가 나오고. 근데 오늘 밤에는 박씨 아저씨도, 당신도 나오지 않았으니까.”"이상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뭔가 이유가 있는거겠지. 내가 돌아오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맞지? 그리고 그 일은 우리 부부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칠 일 인거야. 그래서 당신 지금 나한테 화 난 거지?”전태윤이 부드럽게 물었다."예정아, 내가 뭘 잘못했어?”그는 하예정이 자신을 마중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했고, 그래서 그녀에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그녀를 화나게 했을까 봐 걱정했다. 하예정은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평소에 그를 잘 대해주지 못해서 그에게 주는 안전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전태윤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화가 나서 그를 떠날까 봐 항상 걱정했다.그녀는 옷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을 잡아당겨 입술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리고 난 화나지 않았어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난 단지 너무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당신 데리러 나가지 않았을 뿐이에요.”그녀는 그의 품에 기대며 두 손을 뒤로 감아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전태윤 씨, 당신은 내 남자잖아요. 나만의 남자. 누가 나랑 당신의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해도 난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내 남자 내가 지켜요. 내가 길들인 남자 내가 누릴거예요.”"당신 쫓아다니는 여자, 도차연 씨가 또 왔어요. 저랑 나가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 했는데 시간이 늦었기도 했고, 당신이 곧 돌아올 것을 알고 거절했어요. 그러면서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
"그녀와 주형인 모두 원했던 일이었기에 바람이 성사된거겠죠.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후 모두가 그녀를 여우 같은 년, 천한 년, 남의 남편을 꼬드기고 남의 결혼 파탄낸 내연녀라고 비난했어요.”"주형인에 대한 비난은 훨씬 적었고요. 하지만 사실 그 둘 중 주형인을 더 비난해야죠, 그는 이미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잖아요. 젊고 예쁜 여자를 보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물론 서현주도 잘못이 있어요. 그녀는 주형인을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고 심지어 사직하고 그를 아예 멀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주형인이 주는 즐거움을 즐기며 우리 언니를 대신해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죠.”"지금 그녀가 그렇게 된 것에는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주홍림도 동정할 가치가 없고요. 그가 만약 우빈이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언니가 두 번 다시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예요.”"서현주로서는 왜 모두가 그녀만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겠죠. 그녀는 모든 불행이 그녀에게만 떨어졌다고 느꼈고, 불공평하다고 느꼈겠죠. 아마도 그녀가 가족에게 시달리며 자신감을 잃고 낙담했을 때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줄 알았던 주형인이 그녀를 배신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겠죠. 그녀가 경찰에게 말한 것처럼, 주형인을 끌고 함께 지옥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을거예요.”한바탕 말을 마친 후, 하예정은 전태윤를 껴안고 몇 번 더 뽀뽀를 했다."태윤 씨, 고마워요. 나랑 언니가 주형인과 서현주의 배신을 알고 지금같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던 건 다 당신 도움 때문이에요.”하예정이 만약 전태윤 없이 혼자 주형인을 상대했다면, 주형인은 일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권력과 세력이 있던 그는 날이 지날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고 그와 서현주의 생활은 나날이 좋아질 것이다.그리고 주형인의 가족도 하예진한테 지금처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주형인이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언니를 못살게 굴었을 것이다.그러면
하예정이 웃으며 그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이자, 전태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즉시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으로 들어온 하예정이 땅에 발을 딛더니 다시 돌아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여보, 오늘 밤은 내가 리드할 거예요.”"얼마든지.”전태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올수록 그는 그녀에게 점점 더 중독되었다.이런 중독은 평생의 중독이었고, 그는 평생 그녀만을 사랑할것이다.바깥의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그가 직접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시간을 지낸 여자보다 예쁠까.이쪽에서는 부부가 한창 열정이 끌어오를 때, 한편 도차연은 관성에 있는 그녀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뜻밖에도 그녀의 큰 사촌 오빠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도차연은 큰 오빠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렇게 늦었는데, 큰 오빠가 관성엔 웬일이야?”"차연아, 둘째 삼촌이 출장 가기 전에 나에게 너를 부탁한다고 당부했어. 관성에 오게 하지 말라고. 근데 너는 나를 속이고 몰래 관성에 왔지, 만약 둘째 삼촌은 알면......”"이건 내 자유야, 오빠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우리 아빠로 그만 협박해, 내가 오빠 진짜 생각을 모를 줄 알아? 아빠가 나한테 화나서 날 회사에서 쫓아내면 오빠들 몇 명이 도씨 그룹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잖아.”"도기범, 잘 들어. 도씨 그룹은 우리 아버지의 개인 재산이야. 오빠네 아버지와 셋째 삼촌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모두 우리 아버지가 형제들을 생각해서 주식을 조금 나눠준거지. 매년 주식 배당금이라도 타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거야.”"우리 아빠한테는 친딸인 내가 있어. 그러니까 모든 재산은 내가 상속받았을거야. 그러니까 오빠들은 내 걸 차지하려고 하지 마. 아빠가 가족을 소중히 여겨서 대학 졸업 후 오빠들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줬으니 마땅히 우리 아빠한테 감사해야 해. 다른 생각을 품는 건 배은망덕한 짓이야.”도차연에게서 면전에서 욕을 먹은 도기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도
도씨 그룹은 도씨 사내들에게 물려주고 도차연은 그저 그녀가 시집갈때 혼수를 화려하게 준비해주면 된다.아버지 세대의 생각이 이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기범과 다른 사촌 동생들의 생각도 똑같다. 그들은 둘째 삼촌이 도차연을 후계자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그러니 회사는 앞으로 그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 둘째 삼촌이 그에게 도씨 그룹을 인계한다면 나중에 도차연이 시댁에서 시집가서 괴롭힘을 당할때 친정 사촌 오빠인 도기범도 그녀를 대신해서 복수를 해줄 마음도 있었다."난 내가 좋아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 오빠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난 그냥 친구 만나러 왔어, 난 뭐 여행 오면 안 돼? 오빠, 날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라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애.”도차연은 가방을 소파에 내던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존재감을 최대한 낮추고 있던 도우미에게 분부했다.“목 말라, 물 좀.”도우미는 급히 가서 그녀에게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 주었다.도기범은 이 곳에서 한참을 기다렸기에 도우미는 일찍이 그에게 차와 간식을 가져다 주었다.그가 소파에 돌아와 앉더니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도차연에게 말했다. "차연아, 네가 아무리 이 큰 오빠를 오해해도 좋아. 하지만 둘째 삼촌이 그런 지시를 한 건 적어도 너를 위한 것이겠지. 그러니 큰 오빠가 이러는 것도 너를 위해서야.”둘째 삼촌이 왜 그녀를 관성에 못 오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둘째 삼촌이 그렇게 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 일것이다.둘째 삼촌은 오직 도차연 한 명의 아이만 있을 뿐이었기에 항상 도차연을 보물처럼 아끼고 달래주었다. 도 대표가 도차연에게 무엇을 강제하는 건 한번도 보지 못했다.그렇기에 도기범은 사촌 여동생이 관성에서 사고를 쳤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래서 둘째 삼촌이 다시는 도차연을 관성에 오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다."차연아, 너 방금 어디 있었어? 친구는 누군데?”"오빤 몰라.”도차연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신 후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도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후 도차연은 도기범에게 말했다. "오빠, 내일 저녁에 갈게, 내일 저녁 약속을 잡았거든.”"누구랑 밥 먹어? 오라버니가 같이 갈게, 그리고 내일 저녁에 같이 돌아가자.”"오빠는 모르는 사람이잖아. 따라가면 걔가 어색해 할 거야.”"그건 모르지, 네가 만나서 소개를 해주면 그때부터 알게 되는거지. 어쨌든 오늘 밤 나랑 같이 돌아가지 않으면 관성에 있는 너의 일거수일투족은 이 오빠가 지켜봐야 해. 네가 누구를 만나든 내가 그 자리에 같이 할거야.”“...”"시간이 늦어서 비행기 표 끊기도 힘들어.”도기범이 말했다."그럴줄 알고 친구한테서 전용기를 빌렸어. 전용기가 곧 관성에 도착할거야. 우리는 그걸 타고 오늘 돌아갈거야.”"이미 다 계획해 놓은거네? 우리 아빠한테도 이미 얘기했어?”도차연은 도기범의 이런 행동에 매우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아버지는 도기범을 믿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다.도기범이 말했다."난 그저 둘째 삼촌이 내게 맡긴 임무를 완수했을 뿐이야.”도차연은 도기범이 너무 얄미웠지만 어쩔수 없이 그를 따라 관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하예정은 도차연이 다음날 그녀에게 전태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만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도차연은 예상외로 지난 밤에 관성을 떠났다. 덕분에 그녀의 생활은 계속 조용하고 행복하게 흘러갔다.......강성.경호원들에게 에워싸인 고현은 호텔을 나서자마자 호텔 입구의 붉은 꽃바다를 보았다.그 많은 꽃잎 앞에 흰 치마를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녀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하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커다란 꽃다발을 손에 들고 그 꽃잎 앞에 서 있었다.빨간 장미꽃잎들이 커다란 하트 모양을 이루었는데 그 모양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도 아름다웠다.주위에 구경꾼이 많았다.연예계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녀와 그 여자아이를 향해 사진을 마구 찍고 있었다.구경꾼들이 모두 그를 보고 있었다."도련님.”그 여자아이는 고현을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