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 저도 아무것도 못 들었고, 더구나 본 것도 없어요. 전 쉬러 가볼게요.” 강일구는 결국 고객 딸이 대표님에게 반해 유혹 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신속히 물러났다. “저놈이...”집사는 강일구를 향해 낮게 욕설을 퍼부은 후, 기사를 보았다.“집사님, 저도 진짜로 아무것도 못 봤어요. 대표님께서 하신 말도 못 들었고 그냥 운전만 했어요.”“시간이 늦었으니까 저도 이만 가볼게요.”기사는 말을 마치고 빠르게 떠났다. 다른 경호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표님과 같은 차를 탄 사람은 강일구뿐이었고, 그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몰랐다. 집사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전태윤은 1층에 머물지 않고 올라갔다. 그는 서재에 도착한 다음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일에 집중하느라 하예정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전태윤이 돌아왔다는 사실도 몰랐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집사가 그녀에게 휴식하라고 타이르러 왔다고 생각했다. “집사님, 이제 쉴 거예요.”이때 서재 문이 열리면서 전태윤이 들어왔다. 익숙한 발소리에 하예정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온 사람이 전태윤인 것을 발견하자,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컴퓨터를 끈 후 몸을 일으켜 남편에게 다가갔다.“왔어요?”전태윤은 하예정 앞에 걸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남편과 눈을 마주치자, 하예정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남편이 그녀를 이런 시선으로 본지 꽤 되었다. 금방 결혼했을 때, 서로 서먹하다 보니 그는 이렇게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었다.“여보, 왜 이렇게 날 봐요?”하예정이 호기심에 가득 차 물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전태윤의 넓은 품에 들어갔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익숙한 냄새를 고 그의 심장 소리도 들으니 남편이 그녀에 대한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최근에 그를 이렇게 두렵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전태윤이 러브레터를 원하자, 그녀는 인터넷에서 많은 시를 검색해서 편지에 적어넣었다. 어쩔 수 없었다.
사업상의 일이 아니네.하예정은 눈을 반짝이며 계속 물었다.“그럼 무슨 일인데요? 말 좀 해봐요. 부부 사이에 감출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당신도 그랬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한테 감추지 않겠다고.”“여보.”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누가 날 유혹했어.”“...”하예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야,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누가 감히 이 전태윤 씨를 유혹한단 말이야...’그는 밖에서 온종일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가까이 오기만 해봐’ 하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며 경호원들과 동행하면서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데 어떻게 유혹을 당한단 말인가.남자라면 모를까.이렇게 생각한 하예정이 물었다.“설마 남자가 그랬어요? 당신이 좋대요?”동성이라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했을 것이고, 그러니 상대방이 남편을 유혹했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여자야. 오늘 밤 바이어랑 미팅을 하는데 김 대표가, 그러니까 김 대표 여비서가 그분 딸이었어. 나랑 악수할 때 내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는 거 있지.”말을 하면서 그는 그녀의 손을 놓은 후, 김이현이 스치고 지나간 오른손의 손바닥을 들며 아내에게 고자질했다.“여보, 이 손이야. 그 여자가 스치고 지나간 손.”억울하면서도 싫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하예정은 웃음이 나왔다.부부가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어도 이미 대외에 공식적으로 알린 상태였다. 누가 그들이 합법적인 부부라는 것을 모를까. 그런데도 그에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전태윤의 비인간적인 외모에다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는 고귀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니, 자석처럼 어디 가서든 초점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누군가 그녀처럼 전태윤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좋아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인간은 본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그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눈길을 듬뿍 받았다.하예정은 그의 오른손을 잡은 후, 손바닥을 보며 웃었다.“내가 씻겨줄까요?”전태윤
하예정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주형인과 서현주를 봐요. 물론 서현주 탓만 할 수는 없지만 주형임이 가장 많이 잘못했어요.”그래서 지금 서현주는 벌을 받고 있었다.주형인은 아직이지만.전태윤은 가엾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여보, 난 당신 거니까 앞으로 날 감싸줘. 다른 여자가 나한테 어쩔 수 없게, 응?”“좋아요. 내가 당신을 감싸줄게요. 앞으로 미팅 있을 때, 나도 모든 사람에게 ‘전태윤은 오직 하예정 것이다’라고 소유권 알릴게요. 누가 감히 우리 하예정 남자를 빼앗는다면 그들을 때려눕힐 거예요.”“여보,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그럼 나 어떻게 말해요?”전태윤은 또 말을 하지 않았다.하예정은 그의 얼굴에 뽀뽀한 후, 그를 껴안고 상반신을 그의 가슴에 기댄 채, 부드럽게 말했다.“여보, 화내지 마요. 나 꼭 약속 지킬게요. 미팅도 같이하고 응?”“사실 나도 스트레스 엄청 많이 받은 거 알아요? 당신은 이렇게 훌륭하고, 난 또 당신과의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커리어 여성 눈에는 난 당신과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날 무시하고 항상 내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죠.”“우리가 결혼한 후, 비록 연적은 만나지 못했지만, 진짜 생겼다면 난 분명 혼신의 힘을 다해야 당신을 지킬 수 있을 거예요.”만약 지키지 못한다면 포기할 생각이었다.“혹시 못 지키면 날 내줄 생각이야?”역시 부부답게 전태윤은 아내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하예정은 속으로 한마디 했다.‘독심술 같은 게 있나?’“그럴 리가요. 내 남자를 어찌 순순히 내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만약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면 달라요. 편히 헤어져야 이혼해도 친구로 지낼 수 있거든요.”한때 행복했던 사이었는데 이혼 후 원수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 주형인처럼 밖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헤어질 생각이었다.그녀는 남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를 떠나서도 여전히 행복
적어도 그녀의 가장 진지한 감정이었다.그녀가 베껴온 아름다운 시보다 훨씬 나았다,편지지 뒤에는 또 글자가 있었다.“밖에서 조깅하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아침 같이 먹어요.”전태윤은 기분 좋게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은 후 서랍에 넣었다.그는 창가로 가서 두꺼운 커튼을 열었는데, 햇빛이 순식간에 비쳐왔다.여름에는 아침 해가 유독 눈부시게 느껴졌다.무더운 여름이 지난 후, 시원한 가을엔 그와 하예정의 결혼식이 있었다.전태윤은 그들 부부 사이 사랑의 결실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대사님은 그들의 아이가 가을에 올 거라고 아주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때가 아니면 부부 사이 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아이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예진 그룹의 예준성이 아들딸을 낳게 된 후, 전태윤은 제법 부러웠다.아이의 백일잔치에 그는 하예정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물론 돌잔치에도 갈 것이다.전태윤은 예준성에게 그가 두 아이를 양아버지로 삼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운을 따라서 하예정도 쌍둥이를 낳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쌍둥이가 힘들다면 딸이라도 좋았다. 이건 전씨 가문 전체의 소원이었다. 하예정이 딸을 낳는 것.물론 전태윤은 하예정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매번 아이를 언급할 때마다, 심지어 다른 집의 아이를 언급할 때도, 하예정은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어쩌면 아이는 한 명도 없나 하고 생각했다.특히 심효진이 신혼여행 중에 임신했다는 점에서 더욱 스트레스받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감히 아이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 자칫하다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에 전태윤은 아내가 사업하는 것을 지지해 주었다. 바빠지면 아이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전태윤은 밖에서 운동하는 아내를 발견했다.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마당을 뛰어다녔는데 묶은 그녀의 긴 달릴 때마다 좌우로 흩날렸다.전태윤의 시선은 하예정의 그림자를 따라갔다.잠시 후, 그는 몸을 돌려 창가를 떠났다.얼마 후 그도 운동복으로 갈아입
하예정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좋아요. 언니가 지금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가서 노 대표를 돌보고 있어요. 노 여사님께서 부탁하셨거든요.”전태윤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노 여사는 노동명이 지금 이렇게 된 게 너무 후회되었다. 아들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설령 하예진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해도 기꺼이 할 것이다. “동명이 처형을 만나줄까?”전태윤이 물었다.“물어보진 않았지만, 언니가 노 대표를 돌보기로 했니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떼써서라도 들어갔을 거예요...’역시 친자매답다니까. 하예정은 자기 언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전태윤은 말했다.“동명이 더 이상 안 좋은 생각은 그만하고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어.”예전의 노동명과 지금의 그를 생각해 보면 전태윤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였어도 자신감을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다 잘될 거예요.”하예정은 그에게 말했다. “우리 두 바퀴 더 뛰어요. 이따가 우빈이가 깬 다음에 함께 아침을 먹고 학교에 데려줘요. 곧 여름 방학이 되면 서점도 두 달 동안 문을 닫을 거예요.”“여보, 여름방학 때 뭐 할래요?”그녀는 왕년 여름 방학 때 여행을 가서 조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맛보곤 했다.“여름방학은 학생들을 위한 거야. 직장인인 난 방학이 없어.”조깅하며 전태윤은 웃었다.“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해봐. 지금부터 야근하면서 여름방학 때 시간 비워둘게.”“나도 요즘 바빠요. 예전 같지가 않아요. 휴, 학생들이 방학하면 쉴 수도 없네요.” 하예정은 몇 바퀴를 뛰었더니 조금 힘들어져 걷는 것으로 바꾸었다.“그때 가서 다시 얘기 해요. 우빈이는 지금 세 살이니까 난 우빈이를 데리고 나가서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요. 여름 방학이 지나면 유치원 중반의 어린이잖아요.”“응, 잘 생각한 다음 시간을 정하자. 그리고 예 대표 두 아이가 백일잔치를 열 때 한 번 가야 해. 함께 축하해 줘야지.”전태윤은 자신이 예준성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준성이 쌍둥이
우빈이는 눈만 깜빡일 뿐 어느 곳이 어떻게 불편한지는 말하기 어려웠다.“평소에는 큰 소리로 외치던데 오늘은 나른한 걸 봐서 어딘가 불편한 거야, 여보 체온계 좀 가져와 체온을 재봐.”전태윤이 말하는 사이에 하예정은 이미 체온계를 가지고 와서 우빈이의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몇 분 후.전태윤은 꼬마의 겨드랑이에서 체온계를 꺼내 하예정에게 건넸다.하예정은 체온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38점 3도, 정말 열이 나네요. 이마를 만질 때는 체온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는데... 체온계로 재보니 이렇게 높네요. 위층으로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어요. 그리고... 무관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휴가도 내야하고...”하예정은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무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우빈이를 도와 휴가를 신청했다.이때 전태윤이 위로했다.“너무 당황하지 말고 우선 찬물로 열부터 좀 내리고 봐. 그다음 가정의에게 와서 봐달라고 하자.”“그 방법도 좋은 것 같네요.”하예정은 몸을 돌려 조카에게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우빈아, 자, 물 좀 마실래? 열이 나면 미지근한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해.”전태윤의 품에 안겨있는 우빈이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하예정은 물컵을 들고 앉아서 우빈이에게 물을 먹여줬고, 반쯤 마시자 우빈이는 더는 마시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우빈아, 그럼 우리 죽 좀 먹을까?”우빈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일어나서 타월을 찬물에 적셔 가져와 우빈이의 이마에 놓아주었고 죽 한 그릇을 떠 와서 먹여주기 시작했다.꼬마는 몸이 불편한지 반 그릇도 채 먹지 않고 더는 먹기 싫다고 했다.하예정은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달래보았지만 실패했다.우빈이를 자기 아이처럼 보살펴온 하예정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둘 사이의 감정은 진짜 모자에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초조해하며 아이에게 미지근한 물을 먹여주기도 하고, 또 위층으로 올라가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그리고 30분 간격으로
가정의가 이어 말했다.“사모님,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찬물찜질로 체온이 완전히 떨어지거든 약은 먹이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만약 체온이 반복하여 38. 5도를 넘으면 그때 다시 약을 먹이도록 해요. 저는 내일 다시 와서 볼게요.”“지금 약을 먹이지 않아도 괜찮은가요?”하예정이 이렇게 묻자 전태윤이 대신하여 대답했다.“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는 법이야. 약을 먹지 않을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먹지 말아야지.”작은 병에도 약을 먹고 수액을 맞으면 저항력이 내려가기 쉽다.하예정도 가능한 한 약을 먹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우빈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나 언니나 모두 매우 긴장하고 초조해하며 아이가 곧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기만 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약을 먹일 생각부터 한다.그녀는 몇 분 후 체온계를 꺼내 들여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은 37. 8도까지 떨어졌어요.”“이모, 만두 먹고 싶어요.”온도가 조금 내려가자 꼬마는 다시 입맛이 돌았고, 이모의 품에서 벗어나며 만두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그럼 만두 먹자.”하예정은 또 가정의에게 물었다.“이렇게 물리적으로 열이 내리기만 하면 당분간 약을 먹지 않아도 되죠?”“네, 당분간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우빈이의 몸은 큰 문제가 없었다. 아마 밤에 이불을 걷어차서 감기에 걸려 열이 난 것으로 추측됐다.하예정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가정의는 꼬마가 하루 먹을 약을 처방해 준 후 몇 마디 당부하고서야 떠났다.우빈이에게 만두를 먹일 때에야 하예정은 비로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하예진은 이미 병원에 있었다.노동명은 여전히 경호원에게 하예진을 문밖에 막아두라고 분부했다.하예진은 여전히 윤미라의 도움을 받아 당당하게 노동명의 병실에 들어갔다.그녀가 사 온 꽃다발을 머리맡에 놓자, 노동명은 꽃다발을 집어 들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하예진은 아무 말 없이 노동명을 위해 끓여온
노동명은 맨 끝에 있는 보온 도시락을 보며 생각했다. 다리가 불편한 자기는 눈앞에 보이는 물건도 마음대로 가져올 수 없다고.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다들 그에게 상처를 잘 치료하라고 격려하고 있지만, 의사도 회복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만 할 뿐 100% 회복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진짜 회복될 수 있을지 누가 알까?만약 계속 회복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이 코 앞에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있는 보온 도시락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싶어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는 보온 도시락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며... 그는 하예진이 전화를 받으며 “예정아.”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하예정으로부터 온 전화임을 알았다.하예진이 전화를 받는 동안 그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자, 그는 위장된 차가운 가면을 벗어버리고는 탐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누군가를 좋아하면 하루 24시간 함께 있고 싶어진다.그는 십여 일 동안 하예진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그가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모른다.어제 하예진이 와서 반나절 동안 돌봐줬지만, 노동명은 여전히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만 같았다. 비록 그녀가 오늘도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는 어젯밤에도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우빈이가 열이 난다고? 의사는 뭐래?”‘우빈이가 아프다고?’노동명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아마도 하예진이 자기를 돌보느라 우빈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 우빈이가 병이 났을 거로 생각했다.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하예진이 통화를 마치자 노동명은 감정을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우빈이는 왜 열이 난 건데? 나한테 올 필요 없으니 가서 돌봐줘.”“밤에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데... 지금은 예정이와 제부가 잘 돌봐줘서 열이 거의 내렸대요,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요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