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가 이어 말했다.“사모님,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찬물찜질로 체온이 완전히 떨어지거든 약은 먹이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만약 체온이 반복하여 38. 5도를 넘으면 그때 다시 약을 먹이도록 해요. 저는 내일 다시 와서 볼게요.”“지금 약을 먹이지 않아도 괜찮은가요?”하예정이 이렇게 묻자 전태윤이 대신하여 대답했다.“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는 법이야. 약을 먹지 않을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먹지 말아야지.”작은 병에도 약을 먹고 수액을 맞으면 저항력이 내려가기 쉽다.하예정도 가능한 한 약을 먹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우빈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나 언니나 모두 매우 긴장하고 초조해하며 아이가 곧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기만 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약을 먹일 생각부터 한다.그녀는 몇 분 후 체온계를 꺼내 들여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은 37. 8도까지 떨어졌어요.”“이모, 만두 먹고 싶어요.”온도가 조금 내려가자 꼬마는 다시 입맛이 돌았고, 이모의 품에서 벗어나며 만두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그럼 만두 먹자.”하예정은 또 가정의에게 물었다.“이렇게 물리적으로 열이 내리기만 하면 당분간 약을 먹지 않아도 되죠?”“네, 당분간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우빈이의 몸은 큰 문제가 없었다. 아마 밤에 이불을 걷어차서 감기에 걸려 열이 난 것으로 추측됐다.하예정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가정의는 꼬마가 하루 먹을 약을 처방해 준 후 몇 마디 당부하고서야 떠났다.우빈이에게 만두를 먹일 때에야 하예정은 비로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하예진은 이미 병원에 있었다.노동명은 여전히 경호원에게 하예진을 문밖에 막아두라고 분부했다.하예진은 여전히 윤미라의 도움을 받아 당당하게 노동명의 병실에 들어갔다.그녀가 사 온 꽃다발을 머리맡에 놓자, 노동명은 꽃다발을 집어 들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하예진은 아무 말 없이 노동명을 위해 끓여온
노동명은 맨 끝에 있는 보온 도시락을 보며 생각했다. 다리가 불편한 자기는 눈앞에 보이는 물건도 마음대로 가져올 수 없다고.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다들 그에게 상처를 잘 치료하라고 격려하고 있지만, 의사도 회복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만 할 뿐 100% 회복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진짜 회복될 수 있을지 누가 알까?만약 계속 회복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이 코 앞에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있는 보온 도시락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싶어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는 보온 도시락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며... 그는 하예진이 전화를 받으며 “예정아.”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하예정으로부터 온 전화임을 알았다.하예진이 전화를 받는 동안 그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자, 그는 위장된 차가운 가면을 벗어버리고는 탐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누군가를 좋아하면 하루 24시간 함께 있고 싶어진다.그는 십여 일 동안 하예진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그가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모른다.어제 하예진이 와서 반나절 동안 돌봐줬지만, 노동명은 여전히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만 같았다. 비록 그녀가 오늘도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는 어젯밤에도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우빈이가 열이 난다고? 의사는 뭐래?”‘우빈이가 아프다고?’노동명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아마도 하예진이 자기를 돌보느라 우빈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 우빈이가 병이 났을 거로 생각했다.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하예진이 통화를 마치자 노동명은 감정을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우빈이는 왜 열이 난 건데? 나한테 올 필요 없으니 가서 돌봐줘.”“밤에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데... 지금은 예정이와 제부가 잘 돌봐줘서 열이 거의 내렸대요,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요
노동명은 그런 하예진이 가슴 아팠고 더 이상 그녀에게 짐을 가해주기 싫었다.“내가 엄마가 주는 두 배를 준다고 했잖아? 그러니 지금 당장 떠나!”“동명 씨, 난 동명 씨가 주는 돈은 받지 않을 거예요. 사모님께서 마련해준 일자리가 얼마나 좋다고요, 동명 씨가 주는 돈은 한 번밖에 가질 수 없지만 이 일자리는 오랫동안 돈벌이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동명 씨가 주는 돈을 한 번만 받고 떠나가면 내가 손해 볼 거고, 그렇다고 매달 그 돈을 공짜로 받으라면 미안하기고 하고. 아예 이렇게 출근해서 돈을 버는 편이 마음 편하게 쓸 수 있어요.”노동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평생 날 돌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동명 씨의 지금 마음가짐으로는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꿈 깨! 나는 반드시 좋아질 테니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거야 동명 씨가 치료에 협조해 주냐에 달려 있죠. 계속 이런 태도로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네요. 계속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싶으세요? 무슨 일을 해도 불편하고 계단을 혼자 오르내릴 수도 없고,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 않나요? 멋지게 살던 예전의 동명 씨는 다 어디로 가고, 정말 이렇게 억울하게 살아갈 생각인가요?”노동명은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다.회복할 수만 있다면야 왜 싫을까?문제는 의사마저 그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의사는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 한 번도 낫지 않을 거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노동명은 재활 치료하는데 들 오랜 시간만 떠올리면 자신감이 떨어졌다.“동명 씨, 배고프지 않아요? 국 좀 드실래요?”노동명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엄마가 일당 200만 원씩 주며 돌봐주라는데 맨날 가져온다는 게 국이 다야? 밥도 없고 반찬도 없고 이렇게 챙겨주면 언제 나아?”“동명 씨 드디어 음식 드시게요? 잠시만 기다려요.”하예진은 얼른 병실을 나왔다.윤미라 부부는 밖에서 앉아
“하예진!”노동명이 병실에서 소리쳤다.“사모님,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하예진은 윤미라의 손에서 가볍게 자기 손을 빼낸 후, 몸을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윤미라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하예진이 아들 옆에 있는 한, 그녀가 직접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한, 윤미라 부부는 들어가지 않고 단둘이 지내게 할 생각이었다.비록 아들이 여전히 태도가 고약하고 성깔도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부부는 그가 하예진이 옆에 남아서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윤미라는 남편 곁으로 돌아와 앉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예전엔 내가 너무 고집이 셌어요. 앞으로는 장소민을 따라 배워야겠어요.”노진규는 말했다.“몇 번이나 충고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동명이는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 때쯤이면 벌써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동명이는 여자친구도 없어. 모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상대가 몇 번을 이혼했든 동명이만 좋아하면 되는 거지 뭐. 당신 내 말은 죽어도 안 듣더니... 이제는 동명이가 하예진 씨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되찾고 치료에 협조하여 빨리 퇴원해서 재활치료를 거쳐 빨리 회복하길 바랄 뿐이야.”윤미라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대부분 사람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거예요. 장소민처럼 싫어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으며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어요?”노씨 일가와 같은 재벌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문벌이 맞는지를 매우 중시한다.조건이 좋은 집안은 틀림없이 비슷한 조건을 찾으려고 하지, 누가 빈털터리를 찾고 싶어 할까?젊은이들은 사랑지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정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집안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항한다. 정말 결혼하고 난 뒤 열정이 식어져야 상대방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고, 서로 다른 집안 조건의 사람들끼리 섞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윤미라는 자신의 반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사용한 수단이 너무 격렬해서 아들이 교통사
피크 별장.하예정은 언니에게 전화를 건 후 계속하여 우빈이에게 만두를 먹였다. 우빈이가 만두를 다 먹자 다시 체온을 재보니 37.7도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우리 따뜻한 물로 샤워 한 번 더 시켜줄까요?”전태윤은 우빈에게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우빈이 이제 막 배가 불렀으니 좀 쉬게 하고 다시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시켜. 해열은 과정이 필요하니 조급해하거나 걱정할 필요 없어, 가정의가 이미 약도 처방해 줬잖아.”따르릉!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남편의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하예정은 말했다.“우빈이가 열이 내리고 있어요. 당신 회사에서 부르거든 먼저 출근하도록 해요. 난 집에서 우빈이를 보고 있을게요.”전태윤은 아내의 말을 받지 않고 전화부터 받았다.“도 대표.”전태윤은 비록 도차연을 싫어하지만 도 대표한테는 여전히 예의 바르게 대하고 있다. 두 그룹은 현재 협력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도차연이 너무 과분하게 나온다면,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을 전태윤이다.도 대표는 전화 저편에서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 점심에 시간 되나요? 함께 식사 어때요? 제가 삽니다.”그는 전태윤이 뭐라 하기도 전에 이어 말했다.“관성 호텔에 별실을 예약해 놓았으니 우리 둘만 함께 얘기 좀 나누는 건 어떨까요? 어젯밤에 얘기했던 프로젝트에 관해 이제 식사하면서 마저 얘기 나누고 싶은데... 아무 문제 없으면 바로 계약하는 겁니다.”도차연은 어젯밤 전태윤의 손바닥을 유혹하듯 건드렸다. 그로 인해 도 대표로부터 밤새도록 질책과 교육을 받게 되었다. 도 대표는 딸을 데리고 전태윤과의 비즈니스를 논하는 자리에 갔다가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그리고 전태윤이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 준 것에 대해 결혼 후 전 대표는 결혼 전보다 훨씬 너그럽게 변했고, 이는 사랑이 가져다준 변화라고 생각했다.도 대표는 자기 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그도 자기 딸을 매우
“우빈이가 이렇게 아픈데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그래요. 당신도 마음이 놓이지 않죠? 내가 당신과 함께 간다면, 안심할 수 있겠어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도 마음이 놓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다음에 같이 가요. 다음에는 꼭 같이 갈 테니까 이렇게 정색하지 말고 올라가서 옷 갈아입어요. 도 대표 기다리게 하지 말고요.”“나와 함께 올라가서 옷 한 벌 골라줘.”전태윤이 요구했다.하예정은 우빈이를 안고 일어서며 말했다.“당신 옷들 모두 내가 사준 게 아닌가요? 모두 당신이 좋아하는 검은 컬러로 샀는데, 별반 다르지 않을 거예요, 내 남편은 아무렇게나 입어도 다 잘 어울릴 거니까. 우리 남편은 몸매가 옷걸이 같아서 어떤 옷을 입어도 다 멋져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매일 하고 다니는 넥타이도 모두 내가 사준 거니, 아무거나 하나 골라도 모델처럼 멋있을 거예요.”전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졸랐다.“난 당신이 입혀줬으면 좋겠단 말이야.”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뭐 하고 있어요? 빨리 가지 않고.”전태윤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며 아내의 품에서 우빈이를 안아왔다.“내가 우빈이를 안고 올라갈게, 당신 너무 무리하지 마. 우빈이는 이제 내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무거워.”“그때는 겨우 두 살이었는데 지금은 세 살이니까요. 1년 동안 몸무게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면 나랑 언니가 걱정할 차례일 거예요.”전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시간은 참 빨리도 흐른다.우빈이는 벌써 세 살이다.몇 분 후 부부는 우빈이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고, 하예정은 남편의 양복과 넥타이를 골라 가져왔다.그리고 남편에게 양복 재킷을 다정하게 입혀 주었다.옆에 있던 우빈이는 이를 보고 전태윤을 향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모부, 아직도 이모한테 옷을 입혀달라니... 부끄러워요.”“...”발가벗고 아내에게 옷을 입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외투를 입혀달라고 했을 뿐인데, 꼬마 녀석이 비웃다니!하예정도 따라
“내가 당신 말고 누구에게 신경 쓰겠어요. 우빈이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무조건 당신과 함께 갔을 거예요.”하예정은 우스운 듯 말했다.전태윤은 차에 오르기 전에 우빈이를 안으며 말했다.“우빈아, 이모부는 우빈이가 이모 곁에 매일 붙어 다닐 수 있어서 정말 부러워. 난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붙어 다닐 수도 없거든.”“이모부, 제가 이제 커서 능력이 생겨 이모부를 도와드리면 이모부도 휴식하실 수 있을 거예요.”우빈이의 애티 가득한 말에 전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는 정말 착한 아이야. 이모부가 널 이렇게 아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전태윤은 기쁜 나머지 우빈의 작은 얼굴에 뽀뽀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모부의 일들은 처리하기 아주 어려워. 이제 개학하거든 열심히 공부해, 그래야 나중에 커서 이모부를 도와줄 수 있지.”우빈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이모부, 저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엄마가 말하셨는데 지식은... 지식은... 어쨌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셨어요.”엄마가 한 말이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말할 수 있었다.“그래, 엄마와 이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해.”전태윤은 우빈이를 내려놓고 와이프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진하게 키스하고 싶었지만 꼬마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뒀다.“여보, 도 대표 만나러 갈게.”“다녀오세요.”하예정은 말을 마친 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보고 싶을 거예요. 우빈이 완전히 열이 내리면 오후에 데리고 나가서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하다가 회사에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전태윤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집을 나섰다.하예정은 우빈이를 데리고 별장 입구에 서서 전태윤이 탄 롤스로이스가 경호차 몇 대에 둘러싸여 가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야 집안으로 돌아갔다.“이모, 밖에 놀러 가고 싶어요.”우빈이는 안으로 들어가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잖아. 이제 다 나으면 놀러 가자, 괜찮지?”우빈이는 입술을 삐죽거
“집사님, 이거 누가 보낸 꽃이에요? 태윤 씨가 사람에게 부탁해 보내온 건가요?”그 꽃다발을 보고 하예정은 전태윤이 보낸 것으로 생각했다.“또 뭘 보내온 거예요? 옷이네요. 지금 있는 것도 너무 많아서 다 못 입는걸요.”옷이 든 쇼핑백도 남편이 보내온 것일 거로 생각했다.전태윤의 옷은 모두 하예정이 사거나 맞춤 제작한 것이었고 반면 하예정의 옷도 전태윤이 책임졌다. 그는 그녀가 자신이 골라준 옷들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박씨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먼저 꽃다발을 하예정에게 건네주었다. 꽃다발을 받아 든 하예정은 그 안에 작은 카드가 끼어있는 것을 보고 펼쳐 보았다.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태윤 씨,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려요. 매일 즐겁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사랑해요!]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전태윤에게 주는 꽃다발이라고?하예정은 카드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꽃다발은 장미 꽃다발이었다. 누군가가 전태윤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한 것에 카드에는 사랑한다는 말까지 적혀있으니 묻지 않아도 여자가 선물한 것이 분명했다.누가 남의 남편에게 꽃을 선물한 걸까?박씨 아저씨는 다시 쇼핑백들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사모님, 그리고 이 옷들과 넥타이가 담긴 쇼핑백 안에도 모두 같은 말들이 적혀있는 카드가 들어있습니다.”하예정이 시집오기 전에도 전태윤은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모두 성소현이 선물한 것들이었다.성소현이 준 선물들은 모두 떳떳하게 이름을 밝혔었다. 이 사람처럼 감히 이름을 밝히지도 못하면서 배달원을 불러서 보내온 적은 없었다.배달원에게 물어보니 그저 어떤 남자가 거금을 주고 보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물을 보낸 그 남자도 어느 한 손님을 도와 보내는 것이라고 했을 뿐 그 손님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누가 보낸 건지는 박씨 아저씨도 추측할 수 없었다.하예정은 꽃다발을 안고 소파 앞으로 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박씨 아저씨에게 쇼핑백들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안에 들어있는 옷과 넥타이를 꺼내보니 모두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