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은 텃세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경호원들은 그녀가 진심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이며, 소정남이 알게 된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을 걸 잘 알았다.진표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심효진이 말한 편의점으로 갔다.심효진은 진표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후 가게로 돌아가 기다렸고, 곧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이윽고 진표가 돌아왔지만 그는 빈손으로 가게에 들어와서 심효진에게 돈을 돌려주었다.“아이스크림은요?”심효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설마 아저씨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는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겨울에도 그곳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사서 다들 나눠 먹고 있어요. 거스름돈 돌려드리는 겁니다. 아이스크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진표는 심효진에게 돈을 건네며 아이스크림을 사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더운 날 먹는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심효진은 돈을 건네받으며 물었다.“한 사람씩 다 있어요?”“네, 다 있습니다.”사모님이 사주는 것인 만큼 그는 동료들 몫도 다 챙겼고, 설령 자신의 돈으로 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것까지 전부 샀을 것이었다.심효진은 누구나 다 있는데 왜 자기 것은 없냐며 묻고 싶었다.“감사합니다, 사모님.”진표는 다시 한번 심효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심효진은 마음속으로는 서운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더운데 더위 먹지 말고 서늘한 곳에 있어요. 저 어차피 어디 안 가니까 지키고 있을 필요 없어요.”대답을 마친 진표는 나가서 여전히 서점 근처를 지키고 있었다.심효진은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왜 내걸 하나 살 생각은 안 했어. 누구나 하나씩 먹는다고 했잖아. 나도 사람이라고.”그러면서 밋밋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산부라는 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네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오고 아이스크림을 못 먹고 있어. 너 낳으면 많이 먹어서 지금 못 먹었던 걸 보충해야지.
우빈은 곧바로 다시 운초 이모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그제야 여운초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다소 당황한 듯 손을 뻗어 우빈이를 쓰다듬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빈이 왔구나. 엄마랑 같이 왔어?”하예진은 가끔 꽃필 무렵에 와서 꽃 화분 몇 개를 사서 돌아가곤 했다.돌볼 시간이 없어서인지 하예진이 키우는 꽃은 늘 죽기 일쑤였고, 죽으면 다시 화분을 몇 개 더 사러 오는데, 그 과정에서 여운초에게 꽃 키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이모랑 같이 왔어요. 운초 이모는 나랑 이모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내가 아까 한번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해줬어요.”여운초가 사과했다.“우빈아, 미안해. 이모가 생각할 게 있었는데 너무 깊게 몰입했나 봐. 너와 이모의 발걸음 소리를 못 들었어.”여운초는 하예정을 바라보았다. “예정 씨, 왔어요? 오늘은 웬일로 여길 다 왔어요?”“저녁에 태윤 씨랑 함께 자선 파티에 참석해야 해서 오후에 가게 문 닫고 집 가서 준비 좀 하려고요. 마침 오늘 오전에 우빈이가 저랑 있다가 데려다주는 길에 들렸어요.”하예정은 의자 두 개를 직접 옮겨 하나는 조카에게 건넸다.자리에 앉은 후 여운초에게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집안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요?”여운초는 사촌 남매들을 해고했다. 그들이 찾아와 난동을 부릴 때 마침 전이진이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그들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고, 오히려 여운초에게 2백만 원 배상까지 했었다. 그 뒤로 가게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진 않았지만 여기서 멈출 그들이 아니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계속해서 갖은 방법으로 여운초를 괴롭혔고 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형제들을 여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온갖 술책을 다 쓰고 있었다.“그 사람들은 날 협박하지 못해요.”이렇게 말하는 여운초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녀가 물러나기 전까지 그들은 절대 회사로 돌아와 출근할 수 없었다.“천우가 시험을 잘 못 볼까 봐서 걱정이에요.”내일 여천우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하예정은
그러자 하예정은 따뜻한 물을 석 잔 부어 하나는 조카에게 건네고, 두 잔은 들고 와서 여운초의 손에 한 잔 쥐여주었다.두 사람은 따뜻한 물을 들이켰다.“운초 씨, 물어봐요. 나한테 궁금한 게 뭐에요?”“전이진 씨가 요 며칠 꼭 실종된 사람처럼 안 보이는데 혹시 출장 갔어요?”하예정은 전이진의 행방을 묻는 여운초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전이진은 정겨울에게 여운초의 눈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러 A 시에 갔고, 여운초가 실망할까 봐 정겨울에게 여운초의 눈을 낫게 해준다고 약속할 때까지 여운초에게 말하지 않았다.여씨 가문의 작은 고모도 여운초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신의 사제를 찾아다녔지만, 전이진처럼 인맥이 넓지 않았던 그녀는 정겨울이 A 시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빠르게 접하지 못했다.신의 사제는 여운초의 마지막 희망이었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이진은 여운초가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겨울의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한다면 여운초는 얼마나 실망할까.말도 안 하고 사람이 사라지니 여운초는 당연히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조금 전에도 전이진이 어디로 갔을지 짐작하다가 넋을 잃은 탓에 하예정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던 것이다.하예정에게 질문을 던진 후 여운초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평소엔 하도 들러붙어 짜증 나고 무시하고 싶었는데, 이틀 동안 안 보인다고 어디 갔는지 묻고 있네요.”전이진이 싫은 게 아니라, 앞이 안 보이는 자신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괜한 걸림돌이 되기 싫어 다가오는 전이진을 거부하는 것이었다.“이진 씨가 얘기 안 했어요?”하예정이 묻자 여운초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이틀 동안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도 안 하고, 출장이라도 간 건가요?”“네, 일이 있어서 관성을 떠났어요. 며칠 후면 올 거예요.”전이진이 여운초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예정도 숨기는 쪽을 택하고 여운초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전이진에게 돌아와 여운초에게 감동을 선사할 기회를 남겨주는
하예정은 한동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여운초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전태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집안 배경 때문이었고, 여운초는 본인의 신체적 건강 문제였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하예정은 그녀를 위로했다.“운초 씨. 눈 나을 수 있어요. 이진 씨가 눈 치료할 수 있도록 최고의 의사를 데려올 거예요.”전이진은 지금 A 시에 갔고, 그쪽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여운초는 곧바로 우울한 기색을 떨쳐내고 평소대로 미소를 지으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 씨 이런 얘기는 그만 해요, 우리. 이진 씨가 조금 더 오래 출장 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한동안 떨어져 있는 셈이고, 서로 냉정하게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도 포기할지도 몰라요.”전이진이 싫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여운초는 내키지 않았다.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이 훌륭한 전씨 가문 도련님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더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하예정이 말했다.“이진 씨가 진심이 아니고서는 운초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이모, 우리 언제 가요?”갑자기 우빈이 끼어들었다.어린아이는 장난감도 없고 놀 거리가 없는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우빈도 마찬가지였다.운초 이모 가게에 있는 꽃들은 전부 다 감상을 마쳤다.잠시 가만히 앉아있던 우빈은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여운초가 웃으며 말했다.“우빈아, 운초 이모 가게 재미없어?”“재미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하예정도 웃으며 말했다.“장난감 안 가지고 나와서 오래 못 있네요. 운초 씨, 그럼 일 봐요. 전 이만 가볼게요.”“그래요.”여운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모와 조카를 배웅하려고 했다.“운초 씨, 배웅할 필요 없어요. 가게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 가요.”“운초 이모 안녕.”우빈이는 여운초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알아서 차 뒷좌석에 올라앉아 안전벨트를 묶었다.여운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하예정은 우빈이를 언니 집에 돌려보내고 언니가 세 들어 사는
우빈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온 노동명은 문을 닫은 다음 웃으며 아이의 질문에 답했다.“동명 삼촌은 사장이라 출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무도 삼촌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월급 깎일 일도 없어.”짧게 대꾸하던 우빈이 이윽고 다시 물었다.“우리 이모부도 사장인데 왜 우리 이모부는 매일 출근해요?”“... 이모부 회사가 동명 삼촌 회사보다 규모가 좀 더 커서 할 일이 더 많아. 그래서 매일 출근하는 거지.”우빈이는 곧이곧대로 믿었고, 노동명은 아이를 내려놓았다.궁금한 게 많은 꼬맹이들의 질문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말문이 막히기 십상이었다.“예진아.”꽃다발을 들고 하예진에게 다가온 노동명은 깊은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하예진을 바라보며 꽃다발을 건넸다.“노 대표님, 저는 꽃 안 좋아하니까 다음부터는 안 주시면 안 될까요?”하예진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번 거절했는데 노동명은 그래도 꽃을 선물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꽃다발을 받지 않자 꽃병을 찾아 꽃다발을 꽂으며 말했다.“빈손으로 오기 그러니까 꽃다발을 들고 오는 거지. 비싼 것도 아니고 싼 거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동명 삼촌, 왜 우리 엄마한테는 꽃 주고 저한테는 안 줘요? 나도 꽃 좋아하는데.”꼬맹이가 옆에서 끼어들었다.“우빈아.”하예진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자 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동명 삼촌이 깜박했네. 다음부턴 우리 우빈이 꽃도 사 올게.”우빈이는 알 듯 말 듯 한 시선으로 노동명과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아빠는 동명 삼촌이 자신에게서 엄마를 빼앗으려 한다며, 동명 삼촌에게 엄마를 빼앗기면 이제부터 우빈이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될 거라고 했지만 우빈이는 아빠의 말을 믿지 않았다.동명 삼촌이 이렇게 잘해주는데 어떻게 엄마를 빼앗아 간단 말인가.동명 삼촌은 자신과 엄마의 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뿐, 엄마를 빼앗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심지어 아빠는 동명 삼촌이 엄마를 찾으러 오면 아빠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그
한예진은 윤미라와 나눈 대화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노동명에게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명은 결국 윤미라 입에서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윤미라가 하예진에게 보증금을 빼 이사를 하라고 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하예진에게 주우빈을 데리고 관성을 떠나라고 한 사실을 안 노동명은 화가 치밀어 윤미라와 크게 싸웠다. 윤미라와 노동명 모두 분노에 휩싸였다. 어쨌든 두 모자는 그 누구도 물러서지도, 단념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힐끔 쳐다보더니 할 일을 마저 하며 말했다. “제 탓 아니에요. 전 그렇게 많은 걸 희생하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이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바로 그런 하예진이 좋았다.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주우빈은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우빈은 하예진의 휴대폰 연락처 속 제일 위에 하예정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예정이 곧 전화를 받았다. “언니, 무슨 일이야?”하예정은 하예진이 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모, 저예요. 우빈이.”앳된 조카의 목소리에 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구나. 우빈이가 혼자 이모에게 전화한 거야?”“네. 제가 엄마 휴대폰을 가지고 몰래 방에 들어와서 이모에게 전화했어요.”“우빈이 이모에게 할 얘기가 뭐예요?”어린아이가 방에 몰래 숨어서 전화하다니. 하예정은 조카가 점점 더 기특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장에서 사부를 따라 무술을 배우더니 주우빈의 담력이 점점 커졌다. 어린 나이에 똑부러지게 말을 잘해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모, 아저씨가 또 왔어요.”“동명 씨 매일 가던 거 아니었어?”하예정이 알기론 노동명은 매일 하예진을 만나러 갔다. 주우빈 대답했다. “매일 오긴 하지만 아빠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으려고 오는 거래요. 아빠가 아저씨가 오시기만 하면 전화하랬어요.”주우빈의 말을 들으며 하예정은 속으로 주형인을 욕했다. 주형인은 하예진과 이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현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지금 그들 부
“네. 정말 잘해줘요.”아이들의 마음은 너무 순수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누가 진심으로 잘 해주는지, 누가 가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가끔, 어린 나이 탓에 말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노동명이 제일 먼저 마음을 쓴 것은 바로 주우빈, 이 아이였다. 그는 진심으로 주우빈을 좋아했다. 예전엔 주우빈을 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때의 주우빈은 조금 더 작았던 터라 노동명 얼굴의 흉터를 무서워하며 안기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천천히 주우빈과 가까워져서야 노동명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주우빈을 안을 수가 있게 되었다. 주우빈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주우빈과 하예진 모자를 지켜봤고 그렇게 천천히, 주우빈의 엄마인 하예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저씨가 우빈이에게 그렇게 잘해주고, 우빈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어가겠어. 그러니까 아저씨 믿어.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함께 우빈이를 아껴줄 거야. 우빈이에게서 엄마를 뺏어가지 않아.”주우빈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이모, 그러면 아빠에게 전화 안 할 거예요. 아빠는 자꾸 아저씨가 나쁘대요. 아저씨는 나쁜 놈이래요.”‘아저씨는 분명 좋은 사람인데 아빠는 왜 자꾸 아저씨가 나쁜 놈이라는 거야.’노동명이 자기와 함께 해준 시간은 아빠보다도 더 길었다. 아빠는 늘 현주 이모와 함께 있었고 현주 이모는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주형인이 주우빈과 놀아주려 할 때면 서현주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 주형인은 곧 주우빈을 그대로 두고 황급히 서현주를 찾으러 갔었다. 하지만 노동명은 달랐다. 노동명은 놀아준다고 한 약속은 꼭 지켰다. 뭔가를 사주겠다는 약속은 어긴 적이 없었다. 주형인과 달리 말이다. “우빈아, 이젠 점점 크니까 천천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해. 아빠는 비록 우빈이 아빠지만, 아빠가 한 말씀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아빠의 평가가 늘 정확한 건 아니야. 아빠는 사심에 가득 차 아저씨를 평가하실 거야.”
주우빈이 노동명을 방패로 삼았다. 신뢰 가득한 그 행동에 노동명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입이 찢어지도록 웃어 하예진을 어이없게 했다. “아저씨, 엄마가 저 노려봐요.”주우빈은 심지어 고자질을 하기도 했다. 노동명은 웃으며 주우빈을 안아 들고 물었다. “원인을 찾아봐. 엄마가 왜 노려보는 걸까? 아저씨가 이렇게 떡 하니 여기 서 있는데, 엄마가 아저씨는 안 노려보고 우빈이처럼 작은 아이를 노려보는 원인이 뭘까?”하예진이 다가왔다. 주우빈은 하예진을 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이모에게 전화하고 휴대폰을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우빈이 휴대폰을 뺏어갔어요.”“그건 네 휴대폰이 아니야. 엄마 휴대폰인데.”주우빈이 큰 눈을 반짝이며 감히 하예진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 휴대폰은 확실히 하예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엄마는 왜 휴대폰 놀아도 되고 우빈이는 안 돼요라고 물으니까 엄마가 째려봤어요.”말을 하면 할수록 주우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이 꼬마도 휴대폰을 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동명이 다정하게 얘기했다. “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자꾸 휴대폰을 놀면 시력이 낮아져 근시가 되거든. 엄마도 우빈이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야.”“그리고 엄마도 평소엔 휴대폰 잘 안 하시잖아. 엄마는 다른 사람과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하는 거야.”주우빈이 말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주우빈이 말했다. “아저씨, 그럼 전 대체 언제부터 휴대폰 놀 수 있어요?”“가끔 10분 씩 노는 건 괜찮아. 물론 안 놀면 제일 좋고. 책을 읽어도 되고 레고를 해도 되잖아. 아저씨가 사준 레고는 이미 다 만들었지? 다음에 아저씨가 올 때 몇 세트 더 사줄게.”주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이는 버둥거리며 노동명의 품에서 벗어났다. 주우빈은 테이블을 피해 하예진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잘생긴 얼굴을 들고 하예진에게 말했다. “엄마, 우빈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몰래 휴대폰 안 놀게요.”하예진이 몸을 숙여 아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