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은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돌아갔다.하예정은 그런 그를 보고 어리둥절해 났다.‘무슨 뜻이지?’포기한 걸까?아니면 그녀가 있는 것을 보고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걸까?노동명이 왜 다시 돌아서서 갔는지 짐작하고 있을 때 그는 곧 다시 들어왔다.그리고 손에는 꽃다발이 들고 있었다.꽃다발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하예정은 순간 깨달았다.그녀는 언니를 향해 보았다. 언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가게에는 하예정 외의 손님은 없었고 두 점원도 모두 한쪽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점원들은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려 했다.들어온 사람이 다시 돌아온 노동명인 것을 보고 두 점원은 다시 앉아 아침을 계속 먹었다.노동명이 하예진에 대한 마음은 뚜렷했다. 점원이 모르는 척하려고 해도 무리였다.“예진아.”노동명이 꽃다발을 안고 걸어왔다.“예정 씨, 일찍 오셨네요.”그는 또 하예정을 향해 인사를 했다.하에정은 인사에 응하고는 말했다.“언니 가게의 토스트를 먹은 지도 오래됐고 먹고 싶기도 하고 해서 일찍 온 거예요. 동명 씨도 일찍 오셨네요.”지금은 겨우 7시였다.전태윤은 그녀가 외출할 때까지도 자고 있었다.그녀는 외출하기 전에 특별히 침대 머리맡에 메모를 한 장 남겨주었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고 남편을 소홀히 했다고 원망하는 것을 피하고자 말이다.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들여 남편에게 관심을 줘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간 그녀의 허리가 남아나질 않게 된다.“평소에도 거의 이 시간에 와요.”이렇게 답하고는 노동명은 계속하여 물었다.“우빈이는요?”“우빈이는 우리 집에 있어요. 이따가 일구 씨가 수업하러 데려다 줄 거예요.”하예진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우빈이를 데리고 있기도 불편해서 꼬마는 지금 저녁이면 이모네 집에 묵고 있다.그리고 아침에 다시 강일구가 수업하러 데려다준다.노동명은 알겠다는 듯이 응하고는 그제야 꽃다발을 하예진 앞
노동명은 웃으며 알겠다는 듯이 응했다.하예정은 언니의 뒷모습을 한눈 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노동명에게 물었다.“이렇게 이른 시간에 문을 연 꽃집도 없을 텐데, 이 꽃다발은 동명 씨가 집에서 가져온 거죠?”노동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마당에서 쓸만한 꽃은 다 잘라서 직접 싸서 꽃다발을 만든 거예요.”“어쩐지.”하예정은 그 꽃다발을 바라보았다.그 꽃다발은 장미꽃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꽃을 한 묶음으로 묶은 것이었다.평소 노동명은 이런 것엔 무관심한 사람이라 그의 별장에는 비록 꽃과 나무들이 많았지만 결코 감상할 마음이 없었다. 모두 집사가 사람을 시켜 사와 분위기를 더하도록 배치한 것이다.그래서 장미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별장에 있는 꽃이란 꽃은 모두 잘라내서야 비로소 이렇게 한 다발의 꽃을 모았다.집사는 노동명이 별장에 있는 모든 꽃을 자른 것을 알고 매우 마음이아팠지만, 도련님이 미래의 사모님에게 구애하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 서원 리조트의 꽃밭에 가서 한차의 장미를 사 오기로 결정했다. 사온 장미들은 별장 안의 공터에 심어 도련님이 언제든지 꽃을 잘라 미래의 사모님에게 드리기 쉽도록 했다.노동명은 잠자코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하예정에게 물었다.“제 꽃다발이 너무 엉망이라 싫어하는 걸까요?”“아뇨, 동명 씨가 보낸 꽃이라 싫어할 뿐이에요.”“...전에 예진이가 주형인과 함께 있었을 때 주형인에게서 꽃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있죠. 언니랑 결혼하기 전에 크고 작은 선물을 얼마나 줬는지 몰라요. 하지만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썼어요. 그땐 학교에 있었을 때니까요. 그다음에는 언니를 초대해서 영화도 보고 간식도 먹고 그랬어요.”그들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주형인이 언니에게 어떻게 구애했는지는 하예정이 제일 잘 알았다.주형인과 하예진이 금방 만나서부터 연인으로 되고, 연인으로부터 부부가 되고, 또 부부로부터 남남이 되기까지, 하예정은 늘 곁에서 지켜보았다.하예정의 말을 들은 노동명은 갑자기 자신의 구애 방식이 너무
하예진은 9시까지 바삐 돌아쳤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그녀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손은경은 하예진이 한가로운 시간을 택해 가게에 들어섰다.그녀를 본 하예진이 흠칫 놀랐지만 곧바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오셨어요 은경 씨.”“이젠 안 바쁘시죠 예진 씨?”“네, 지금은 거의 마감 시간이라 정리 마치고 퇴근하려던 참이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은경 씨?”하예진과 손은경은 교류가 그다지 많지 않다.보아하니 손은경은 노동명 때문에 온 듯싶다.“별일은 아니고 오빠랑 계약을 체결하려고 노씨 그룹에 갔다가 오는 길에 한 번 들러봤어요. 요즘 가게 장사는 잘돼요?”하예진이 웃으며 답했다.“그런대로 괜찮아요. 가게 임대료랑 인건비는 벌 수 있어요.”“예진 씨가 만든 음식 꽤 맛있어요.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자주 이리로 와서 아침 먹는다고. 천천히 해보세요. 장사 꼭 더 잘될 거예요. 돈도 더 많이 벌고요.”아침 식사 위주라 이른 새벽에 깨나야 하는 게 매우 수고스러울 뿐이다.하예진은 손은경을 자리로 안내하고 온수 한 잔 따랐다.하예진은 소소한 옷차림에 가정주부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손은경은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세련미를 돋보였다. 한눈에 봐도 커리어우먼임을 알 수 있었고 하예진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하예진은 하마터면 열등감을 느낄 뻔했다.“고마워요.”하예진은 온수를 손은경의 앞에 내려놓았고 손은경은 가볍게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하예진이 자리에 앉은 후 손은경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하예진은 민낯이지만 관리를 꽤 잘 받은 피부였다. 하긴, 재벌가에 시집간 여동생도 있고 부잣집 사모님인 이모도 있으니 비싼 기초제품이 빠질 리가 있을까.게다가 그녀는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다. 손은경은 미혼이지만 하예진과 고작 한두 살 차이밖에 안 난다.하예진은 소탈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얼굴에 띈 미소가 사람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준다.동명 오빠는 단지 아내를 원하고 단란한 가정을 원할 뿐 비즈니스 파트너는 필요 없
하예진은 손은경의 말을 들으며 그녀가 방금 노동명과 계약을 체결할 때 무언가 혜택을 받고 이리로 달려와 좋은 말만 해주는 게 아닌지 심히 의심이 들었다.손은경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훤히 꿰뚫은 듯 웃으며 답했다.“오빠가 좋은 말 해달라고 저를 이리로 부른 게 아니에요. 그저 오빠가 예진 씨한테 대시하면서 갖은 트러블에 부딪히니 저라도 몇 마디 도와주고 싶은 거예요.”“은경 씨, 저는 동명 씨를 친구로만 생각해요.”“아줌마가 못 받아들이는 것 때문이에요?”“사모님과는 전혀 상관없어요. 저는 정말 동명 씨를 친구로만 생각해요. 다른 마음은 일절 없어요.”윤미라도 원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중요한 원인은 아니다.하예진은 진짜 노동명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오직 친구로만 생각할 뿐 다른 건 일절 없다.주형인과 이혼한 후 그녀는 단기간 내에 재혼 생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손은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하긴, 호감이 없는데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죠. 결혼은 대충 생각할 게 아니잖아요.”특히 하예진 같은 경우는 감정에 크게 데인지라 요구가 더 까다롭다.“은경 씨랑 동명 씨가 꽤 잘 어울리던데요.”조건도 대등하고 윤미라도 손은경을 무척 좋아한다.하예진은 손은경이야말로 노동명에게 어울리는 상대라고 생각했다.이에 손은경이 웃으며 말했다.“저랑 오빠가 잘 어울려도 오빠가 저를 안 좋아하고 저 또한 자존심이 강하다 보니 오빠가 거절했을 때 저도 바로 포기했어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여자는 되기 싫거든요.”천천히 찾다 보면 언젠가 그녀만 바라봐주는 남자를 만날 테니까.하예진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여전히 손은경이 마음에 든다.손은경은 성소현처럼 한때 누군가를 좋아도 했고 열심히 대시도 했지만 상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곧바로 단념했다.성소현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보니 굳이 다른 여자들과 함께 한 남자를 다투
관성 중학교성소현은 차를 세우더니 차 키를 들고 하예정의 서점으로 들어갔다. 하예정은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고 심심할 때 가끔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성소현이 들어왔을 때, 그녀는 자전거를 만들고 있었다.“왜 또 이걸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했잖아. 왜 다 혼자 하려고 해?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태윤 씨가 너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집에서 사모님 노릇을 이나 하라고 할걸. 그때 가서 불평하지 마.”성소현은 차 키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의자를 가지고 와 앉으며 말했다.그리고 하예정이 만든 자전거를 가져오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예정아, 근데 너는 진짜 손재주가 좋아. 너무 잘 만들었네.”“전문적으로 배웠어요. 언니는 어떤 걸 좋아해요? 내가 시간 있을 때 만들어 줄게요.”“아니야. 괜찮아. 태윤 씨가 알면 또 싸늘하게 나를 째려볼 것 같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게에서 살게. 매출도 올릴 겸.”성소현은 말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자전거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예정은 도구를 거두면서 성소현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주고 과일을 씻어서 내놓았다.“예정아, 상의할 게 있는데.”성소현은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뭔데요?”“우리가 투자한 채소 농장 말이야. 이젠 수입도 많이 올랐어. 그래서 회사를 설립하고 사무실로 마련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재배업 쪽에 경험이 많은 직원들을 모집하고 농장 관리를 맡겨야겠어. 매니저도 몇 명 구해서 마케팅 업무를 보게 하고 큰 사업 얘기는 우리끼리 하자.”하예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좋은 생각인데요. 본가 쪽에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야 돼요. 농장이 모두 그쪽에 있어 사무실과 거리가 멀면 관리하기 힘들어져요.”“그래. 직원 모집은 너에게 맡길게. 나는 이쪽 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 매니저 채용은 이미 헤드헌터 회사에 맡겼어.”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지금 농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성실히 일하고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그중
그러자 하예정이 대답했다.“하지만 땅을 사서 집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먼저 사무실을 임대할까요? 그러고 나서 땅을 사고 집을 지으면 되죠.”“그래. 이 일을 효진 씨에게도 알려야 해. 네가 문자를 보낼래? 아니면 내가 보낼까?”성소현은 하예정에게 물었다. 그리고 하예정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보내. 너랑 효진 씨의 친분이 10년이 넘는데 네가 효진 씨 신혼여행에 ‘민폐’를 끼쳐도 너를 뭐라고 할 것 같지 않아.”그러자 하예정도 웃으면서 대답했다.“네. 저녁에 전화해서 얘기할게요.”“효진 씨가 매일 올리는 인스타를 보면 정말 부럽고 질투나.”“저도 너무 부러워요. 결혼식을 올리고 저랑 태윤 씨도 신혼여행 갈 거예요.”“이젠 부럽다는 소리도 지겹네. 너랑 효진 씨 때문에 내가 못 살아.”성소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언니도 깨가 쏟아지던데 뭘. 준하 도련님이 매일 꽃도 사다 주고 연애편지도 주던데, 우리 집 그분은 나한테 쪽지도 안 줬어요. 연애편지는 상상도 못 하죠.”예준하를 언급 하자 성소현은 방긋 웃더니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우리 집에서 준하는 안 된대. 예정아, 내가 네 앞에서는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준하가 너무 좋아. 우리 둘도 잘 지내고 있고. 준하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제일 행복해. 그런데 우리 엄마는 준하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더라고. 준하가 착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났을 거야.”그녀는 한숨을 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가족들의 그런 태도를 보면 나도 많이 혼란스러워.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야.”하예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모가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개인 것 같아요. 준하 도련님의 집이 너무 멀어요. 사실 이모는 준하 도련님 그리고 예씨 가문에 대한 인상이 좋거든요.”“나도 알아. 사실 많이 멀지. 하지만 준하는 앞으로 관성에서 오랫동안 일할 거고 나도 준하와 함께 관성에 있
성소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준하가 오늘 엄청 바쁘대. 꽃과 편지는 평소대로 받았는데 문자는 겨우 몇 통밖에 못 했어. 준하 큰형수가 곧 출산이라 준하가 가능한 한 빨리 업무를 보고 A시에 다녀오겠다고 했어.”“모연정 씨가 쌍둥이를 임신했잖아요. 보통 쌍둥이들이 예정 출산일보다 빨리 태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6월에 낳는다고 했는데 지금 5월 중순인 걸 보면 곧 낳을 것 같아요.”아이 이야기를 꺼내자 성소현은 하예정에게 2세 계획이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가에 맴돌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하예정는 일이 너무 바쁜 탓에 모든 정력을 일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2세 계획을 잠시 고민하지 않았다.만약 성소현이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하예정은 갑자기 슬퍼질 것이다.“저는 이따가 태윤 씨를 데리러 가야 해서 오늘은 같이 못 먹을 것 같네요.”성소현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아니면 나도 준하를 데리러 갈까? 예정아, 준하가 퇴근하고 내가 와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일까?”“너무 좋아하겠죠.”두 사람은 아직 정식으로 연인 관계를 확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주동적으로 예준하를 찾아간다면 이 또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예준하가 무조건 기뻐할 것이다.얼마 후, 성소현은 하예정의 서점을 떠났다.점심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하예정은 전태윤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고 꽃필무렵으로 갔다.전이진와 여운초는 아직도 밀당 중이다. 비록 전이진이 호감을 드러내면서 부지런히 대시를 했지만 여운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답답한 전이진은 사석에서 전태윤과 요즘 너무 힘들다고 투덜댔다.그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혼인신고 덕에 쉽게 관계를 확정 지었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그 말을 듣자 피식 웃었다. 사실 두 사람도 많은 일을 겪고 서로 맞춰가면서 결혼까지 골인했다.전태윤이 예전에 하예정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를 칠 때 전이진도 그 모습을 보았다.비록 전이진이 아직 여운초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녀가 잘되는 모습을 배 아파 지켜볼 수가 없었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여운초가 이미 여씨 그룹을 장악했다고 알려줬다.여운초도 전씨 일가 앞에서 이 일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예정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누구도 우리 남매의 것을 빼앗을 수 없어요.”그녀가 여씨 그룹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건 아니었다. 동생의 몫은 동생이 성인이 된 후에 넘겨주려고 했다.하지만 여운별의 몫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고마워요.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동호 오빠도 도와주고 있고.”그리고 전이진도 있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골칫거리가 더 많아졌을 거다. 그녀는 결국에 그의 신세를 지고야 만 셈이다. 전이진은 점점 더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고 여운초를 가지고 노는듯싶었다. 주도권을 잃은 그녀는 이 관계에서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이진 도련님도 운초 씨를 도와줄 수 있잖아요.”여운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때, 전이진이 꽃다발을 안고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 꽃이 아니라 5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씩 접어서 만든 꽃다발이었다.하예정은 전이진을 보고 여운초에게 말했다.“운초 씨, 저는 꽃을 가져다주러 가야 해요. 그럼, 이만.”“그래요.”여운초도 전이진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이를 모른척하고 담담하게 하예정을 배웅하려고 애써 노력했다.“형수님.”전이진이 하예정을 불렀다.“그래. 왔어? 태윤 씨는 아직도 회사에 있어?”“네. 아직도 회사에 있어요. 제가 먼저 퇴근한 거예요.”하예정은 웃으면서 여운초에게 더 이상 배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차를 몰고 떠났다.하예정이 떠난 후에야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들고 있던 꽃을 주었다.“운초야, 네 생각이 나서 이 꽃을 샀어.”“우리 가게에 있는 게 꽃인데. 필요 없어.”그녀는 꽃을 돌려주려고 했다.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