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아름의 말에 두 남자 사이에 흐르던 묘한 분위기가 잠시 수그러들었다.두 남자는 화를 억누르고 가게에 들어가려 했는데, 나란히 들어가다 하마터면 서로 부딪힐 뻔했다.한동호는 전이진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전이진 씨, 우리집 운초가 아직 당신의 구애를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직 여자친구도 아닌데 걸핏하면 손을 잡거나 하지 말아요. 운초를 좀 존중해달라는 얘깁니다.”이에 질세라 전이진이 말했다.“계속 우리집 운초라고 하는데... 당신은 성이 한 씨고 운초는 성이 여 씨인데 어떻게 한집이 되는 거죠? 운초의 작은고모가 이 말을 했다면 몰라도요. 그리고 나도 걸핏 잡은 게 아니에요. 운초가 차에서 내릴 때 넘어지지 말라고 배려해서 잡은 거예요.”“운초는 날 오빠라고 부르거든요? 그리고 내 목숨도 우리집 운초가 구해준 거예요. 우리 두 남매는 여러 해 동안 의지하며 지내왔고, 운초는 내 마음속에 바로 나 한동호의 친동생이랑 다름없어요!”“잘 알고 있죠. 그래서 나도 운초를 따라 동호 형님이라고 부른 거예요.”한동호는 말문이 막혔다.전이진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건 체면을 세워준 거나 다름없다.“형님이라니, 내가 어찌 감히 형님 소리를 듣겠어요? 날 그저 한동호 씨라고 불러요.”“당연히 운초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죠, 난 운초의 말을 듣거든요. 형님도 우리 전씨 일가의 남자들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거예요.”“아내라뇨? 운초는 아직 당신에게 시집가지 않았어요.”“조만간에 일이에요.”“...”“전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이 이렇게 뻔뻔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낯가죽이 두껍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내를 얻을 수 있겠어요? 한번 거절당했다고 바로 포기하면 영원히 아내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한동호는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옆에 있던 여운초와 박아름은 두 남자의 대화를 모조리 들었다.박아름은 미소를 띠고 여운초에게 말했다.“전이진 씨 말이야, 운초 널 좋아하는 거 맞지? 참 괜찮고
여운초와 박아름이 가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딱히 할말이 없는 두 남자는 누구의 눈이 더 큰지 내기하려는 듯 서로를 노려보았다.두 남자가 한창 내기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리조트로 갔다. 막 들어가려던 참에 입구에서 두 대의 차가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두 대의 차는 마침 입구를 막을 수 있게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리조트 입구의 경비실에 있던 경비원은 롤스로이스를 보자마자 큰 도련님이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았다.당직 경비원 두 명은 급히 걸어 나와 앞길을 막고 있는 차들의 도어를 두드렸다. 운전기사가 도어를 내리자 경비원들은 급히 말했다.“저의 큰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먼저 차를 옆으로 옮겨 세워요. 이제 집사님이 답장하시면 그때 다시 운전해서 들어가도록 해요.”입구를 막고 있는 두 대의 차는 바로 여운초의 두 고모의 차였다.두 고모는 전씨 일가의 둘째 며느리인 명해은을 찾아가기로 했었다.다만 너무 일찍 도착하였는지 명해은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명해은의 동의 없이는 집사도 감히 그녀들을 들여보낼 수 없었기에 두 고모는 차에서 기다렸다.하지만 차가 마침 리조트의 입구를 막아버릴 줄이야... 경비원의 말을 들은 여운초의 두 고모는 급히 운전기사에게 차를 한쪽으로 세우라고 분부했다.몇 분 후, 전태윤의 전용 차량 행렬이 서원 리조트로 들어갔다.경호차량은 노천 주차장에서 멈췄고 전태윤이 타고 있던 롤스로이스는 주택 입구까지 곧장 가서 멈췄다.하예진 모자를 태운 경호차도 그들을 따라 주택 입구까지 갔다.리조트의 단골인 노동명은 차를 노천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세운 후 되레 경비실 쪽으로 돌아가 물었다.“밖에 있는 저 차는 누구 차죠?”“여씨 가문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명해은 사모님을 만나러 오셨는데 해은 사모님은 아직 일어나지 않으셔서 양 집사님께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양 집사는 명해은 쪽의 집사이다.노동명은 여운초의 두 고모에 대해 별 인상이 없었다. 노씨 일가와는 차원이
“네, 예진이랑 우빈이도 함께 오긴 했는데, 저는 정말 어르신을 뵈러 온 거에요.”노동명은 정자로 들어가 옆에 앉아 어르신이 태극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옛날에 우리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어르신을 따라 태극권을 하라고 제가 그렇게나 타일렀는데 할머니께서는 끝까지 듣지 않으셨어요.”노동명의 할머니와 어르신은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노동명의 할머니의 건강은 어르신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져 있었었다.어르신은 아직도 정정한지라 혼자서도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일주할 수 있을 정도이다.특히 손자들을 놀리는 데는 정력이 넘쳐난다.그에 비해 노동명의 할머니는 저세상으로 떠난 지도 한참 됐다.“허허, 네 할머니는 진정한 명문가 규슈거든. 나 같은 시골뜨기랑은 다르지.”“어르신도 참, 어르신도 분명히 명문가 규수시면서 이런 말을 해요?”“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실 때는 우리 친정도 명문가라고 할 수 있었지. 하지만 내가 태어날 적엔 우리 집도 쇠퇴하여 살고 있던 저택까지 국가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너희 할머니는 평생 우아하게 살았는데, 나 같은 막돼먹은 사람과는 비교가 안된다.”태극권 연습을 마친 어르신이 동작을 멈추자 노동명은 얼른 일어나 어르신을 부축하려 했다.노부인은 시끄럽다는 듯 그의 부축을 거절하고는 흥미진진하게 말했다.“동명아, 이 할미랑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 나도 몸을 푼 지 오래돼서 말이야.”노동명은 바로 투항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어르신, 제발요. 제가 어찌 감히 어르신이랑 겨루겠어요?”“네가 이겨도 상관없어, 네 탓을 하진 않을 테니까.”“그러다 제가 어르신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럼 앞으로 저는 전씨 일가의 원수가 될 거예요. 이곳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될걸요? 이런 손해보는 일은 사양할게요. 정 겨뤄보고 싶으시다면 태윤이를 찾는 건 어때요?”이때 전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명아, 날 함정에 빠뜨릴 생각 마.”전태윤은 우빈이를 안고 정자로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할머니.”그에 할
어르신은 우빈이의 손을 잡고 정자를 나서며 전태윤에게 물었다.“여운초 씨의 두 고모가 찾아온 것은 아마도 뭔가 사정할 일이 있어서겠죠. 전 그 두 고모가 평소에 운초 씨를 배은망덕하다며 욕하며 이 기회를 틈타 여씨 일가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 외에는 몰라요. 자세한 건 신경 쓰지 않아서요, 그건 이진이가 신경 써야 할 일이에요.”여운초는 그저 미래의 제수씨일 뿐이다. 직접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한 전태윤도 그녀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이진이도 별로 도와주지 못했을 거야. 운초 혼자서도 잘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이진이는 운초 뒤에 서서 뒷바라지만 하면 돼.”할머니는 자신이 선택한 손자며느리를 매우 신뢰하고 있으며, 여운초가 여씨 그룹에 관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전태윤은 할머니의 말을 받지 않았다.할머니도 곧 화제를 바꾸었다.둘째와 셋째는 할머니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좋은 아내감을 골라 줬으니, 스스로 알아서 구애하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다만 넷째와 다섯째의 아내감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그리고 여섯째 뒤의 손자들은 아직 어려 몇 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남자아이는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보다 성숙이 느린 편이다.너무 일찍 결혼하면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스스로 사업을 잘할 수 있을 때에 다시 아내를 얻어도 늦지 않다. 그때엔 가족의 도움이 없어도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읕 테니까.“지금 날씨가 딱 좋구나. 태윤아, 얘네들을 데리고 우리집 섬에 가서 며칠 묵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했다.“일단 할머니부터 보고요. 할머니는 어때요? 섬에 가고 싶어요?”“이 늙어 빠진 할미는 빠지겠다. 너희 젊은이들끼리 가서 며칠 놀다 오거라. 동생들도 잊지 말고 부르고.”할머니는 넷째와 다섯째 손자의 아내로 택한 여자들의 인품을 조사하러 가야 했다. 인품이 훌륭하거든 확정할 생각이었다.전태윤은 응하며 고개를 끄
전태윤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이건 하예정이 전씨 일가에 시집온 후 반드시 직면해야 할 책임이니까.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그럼 요 며칠 태윤 씨가 집에 있는 동안 잘 배워야겠어요. 모르는 부분은 하나하나 물어볼게요.”그녀는 자신이 전씨 일가의 사모님으로서 이런 일들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다만 이 정도로 많은 산업을 직접 관리해야 할 줄은 몰랐다.또한 앞으로 규모가 거대한 서원 리조트도 관리해야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하예정은 모연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예진 리조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이젠 하예정의 차례가 되었다. 모연정처럼 시댁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맡아야 할 듯했다. 모연정은 이미 관리 일을 시작한듯 했지만 하예정은 아직 손을 대지도 않았다.모연정은 패기가 있다. 비록 재벌가라고는 할 수 없는 모씨 가문에서 자랐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집안이었고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자신감이 있었고 성격도 밝았다.나중에 모연정은 친부모를 찾게 되었는데 친아버지는 만성 남씨 가문의 주인이었다. 때문에 남씨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고사하고 친아버지의 개인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으로도 몇십조의 재산을 가지게 된다.다시 말해 돈도 있고 지위도 있고 패기까지 있는 틀림없는 여자 갑부였다.그녀와 비하자니 하예정은 뭔가 기가 죽을 듯했다.하지만 전태윤과 시댁 식구들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생각하면 자신감이 솟아났다. 앞으로 관리일을 시작한 후 잘못하여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도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교훈 삼아 진보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것 같았다.“태윤이는 외부 사업을, 넌 내부 관리를 책임지면 된다. 즉 상가 건물 임대와 일부 체인점의 운영을 책임지는 거야. 얼마 안 되니까 이 할미는 네가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거로 믿는다.”할머니는 하예정이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웃으며 위로했다.진짜 사업상의 일은 전태윤이 맡고 있다.하지만 하예정도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전씨 일가는 하예정이 가족 사업에 손을 댈 수 있도록 안배했다. 이는 인정하고 신뢰하는 표현이다.이에 하예진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동생은 그녀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처음에 하예진을 안심하게 하기 위해 초고속 결혼을 했던 전태윤과 하예정 부부는 낯선 사이로부터 알콩달콩한 사이로 되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씨 일가는 재벌가로서 하예정의 출신에 대해 한 번도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만약 다른 재벌 가문이었다면 이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하예진은 마음속으로 동생 대신 기뻐했다.하예정은 시어머니의 한쪽 팔짱을 낀 채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어머니, 우리 방금 돌아왔는데 나 좀 쉬게 해주면 안 돼요?”장소민은 하예정의 이마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그렇게 놀고도 아직도 놀고 싶어? 요즘은 가게를 지키는 것 외에 투자한 채소밭을 드문드문 둘러보는 것뿐이니 바쁘지는 않을 테고.”그녀는 아들을 한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태윤이랑 사랑질하느라 바쁜 거지?”하예정은 시어머니의 놀림에 얼굴이 빨개졌다.“가자, 위층으로.”장소민은 며느리가 어리광을 부리든 말든 상관없이 2층으로 데리고 갔다.2층에는 두 개의 서재가 있다.큰 서재는 전태윤 부자가 자주 사용했고 작은 서재는 장소민이 독점하여 쓰고 있다. 작은 서재의 키는 장소민과 할머니만이 가지고 있다.다만 할머니는 며느리인 장소민이 시집온 후로부터 온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맏며느리인 그녀에게 맡겼고, 작은 서재에도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작은 서재에 들어가려면 장소민이나 할머니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둘째 며느리와 셋째 며느리는 시댁의 비즈니스에 관해 잘 알고는 있지만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자기 집의 개인 사업만 챙겼다. 어쩌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시댁의 비즈니스에 개입하곤 했다.혹시라도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장소민이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절대 함부로 개입하지 않았다.또한 자기 집안의 사업만으로도 할 일이 아주 많았고, 능
“옛 장부는 이미 새 장부에 다시 베껴 써놨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말이야.”장소민은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가리키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장부가 너무 많아서 찾기 어려울까 봐 컴퓨터에도 장부를 해놨으니까 컴퓨터로 찾으면 훨씬 편리할 거야.”하예정은 책장들을 둘러보면서 놀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시어머니에게 물었다.“어머니, 이것들 모두 우리 집 비즈니스에 관한 장부예요?”“그래.”“...할머니께선 그저 상가 임대 상황과 체인 스토어 같은 작은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거라고 하셨어요.”장부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하예정은 순간 자신이 요 며칠 휴가일 동안 전씨 일가의 모든 산업 상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졌다.정말 장부가 엄청나게 많았다.그녀는 회계 관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초보자나 다름없다.“할머니 말이 맞으셔. 다 작은 비즈니스들이야. 넌 그냥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 비즈니스를 관리하고 있는지만 알면 돼. 매달 이윤인지 적자인지는 보고서를 보내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 너도 어느 정도 몰래 알아둬. 속지 않게 말이야.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약간 탐하는 것에 관해서는 눈감아 주고. 어차피 처벌 받으면 그들도 좋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거니까 보통은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해. ”전씨 일가의 명성이 보통 높은 게 아닌지라 관리팀은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 게다가 전씨 일가도 관리팀을 대할 때는 항상 일정한 정도의 이익을 남겨주었다. 일을 잘 하기만 하면 푸대접을 받지 않았다.장소민은 하예정이 너무 꼭 잡을까 봐 몇 마디 주의를 주었다.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모를 부분은 어머니께 여쭤볼게요. 이 장부들 다 읽어야 해요?”“잠시 먼저 각 장부의 첫 세 페이지를 보도록 해. 첫 페이지는 각 업종이 처한 위치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야. 두 번째와 세 번째 페이지는 일반적으로 인사 안배에 관한 자료야. 그들의 상세한 자료와 사진이 있어. 얼추라도 기억해 두면 후에 관
“앞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물어봐. 태윤이에게 물어봐도 되고. 비록 주로 외부 비즈니스를 관리하고 있지만 내부에 관한 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의 뒤엔 남편 전태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녀는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내려갈 거야 아니면 여기 남아서 장부를 볼 생각이야?”장소민이 물었다.하예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언니와 동명 씨가 오셨으니까 먼저 같이 내려가요. 장부는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안에 다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들어와 보도록 할게요.”장소민은 그에 가볍게 응했다.둘은 나란히 작은 서재를 나섰다. 장소민은 내려가기 전에 서재 문을 다시 잠그면서 말했다.“서재는 중요한 곳이라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어. 서재 안을 거두는 일은 우리가 책임져야 해. 네가 집에 없을 땐 내가 청소를 맡을게. 후에 네가 태윤이와 리조트로 돌아와 살게 되면 모든 걸 너에게 맡길 거야.”“알겠어요.”어쩐지 전태윤은 그녀를 리조트로 데려오는 것을 꺼린다 싶었다.거리가 멀어서 출퇴근이 불편한 것은 물론, 중요한 건 아내가 너무 일찍 사모님의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오래 즐겁게 놀면서 지내기를 바랐다.하예정은 남편의 배려에 깊이 감동받았다.남편은 자신을 정말 사랑했다.장소민과 하예정이 작은 서재에 들어갔을 때 전이진의 친어머니이자 전태윤의 둘째 숙모인 명해은이 침대에서 일어났다.여미란과 여미정이 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지만 그들에 대에 별로 인상이 없었다. 이에 양씨 아저씨가 설명해 주었다.“여씨 일가 큰아가씨의 두 고모님이십니다.”“운초 씨의 고모님이었어요? 그럼 안으로 모셔 와요.”명해은은 소파에 우아하게 앉아 양씨 아저씨에게 분부하여 리조트 입구의 경비실에 알려 오래 기다린 둘을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했다.명해은은 여씨 일가의 세 사모님에 대한 인상이 없다. 예전의 여씨 일가는 그저 실력이 조금 있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
전호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도 일부러 그에게 명백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내일 저녁에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강성 전체 사람들도 분명 충격받을 것이다.고현은 이미 전호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2년 안에 전호영에게 시집갈 것이다.그녀는 전호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동성애라자라는 누명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호영은 게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였다.고현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여자로 되고 싶어 했다.그 또한 기뻐할 것이다.고현의 형상이 너무 남자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여성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점을 고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전호영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여자로 분장한 적 있다.당시 고씨 그룹 직원들은 여자 분장을 한 전호영이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의 자매인 줄 알았지만 전씨 가문에는 딸이 없고 전호영에게도 자매가 없었다는 것을 반응한 사람들은 그제야 전호영이 분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날 그 사실은 고씨 그룹에서 아주 큰 가십거리로 소문이 자자했다.전호영과 통화를 마친 고현은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미리가 전화를 받았지만 고현은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현아, 왜 그래?”고현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진미리는 놀라워하며 고현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고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엄마, 시간 있어요? ”“있지. 난 언제나 시간 있지. 왜?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고현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것이다.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낸 진미리는 관심 있게 물었다.“생리 왔어? 배 아파?”고현은 때때로 생리통을 앓곤 한다.진미리는 한동안 몰래 고현에게 한약을 지어주면서 그녀를 돌보았다.“아니요. 엄마. 저 내일 저녁 연회
“호영 씨.”고현이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 있던 전호영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었다.“현이 씨,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웃음기가 묻어나네요. 현이 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고현이 전호영에게 감정이 있다고는 하나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다 보니 전호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제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어요?”“그럴 리가요. 당연히 현이 씨가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면 좋죠. 그렇지만 현이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하루 종일 웃지도 않잖아요. 시시덕거리는 고빈을 볼 때마다 테이프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고씨 그룹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빈은 틈만 나면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빴다.그렇다고 해서 고빈이 결혼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현이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그 입 틀어막지 않고 뭐 해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부럽기는 해요.”자신이 맏이기 때문에 동생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혀있었다.줄곧 남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나타난 후부터 고현은 점차 동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물론 동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고씨 그룹이 언젠가는 동생의 손에 넘어갈 것을 생각하고 가끔 동생에게 일을 맡기곤 했었지만.평생을 이렇게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전호영이 딱 그런 존재였다.“나중 가면 현이 씨 동생이 현이 씨를 부러워할 것이니 동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현이 씨가 회사 일을 조금씩 그에게 맡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처럼 호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이윤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먼저 회사에 가 있어요. 요즘 가주가 시간 없다고 하니 제가 집안일 처리하러 집에 가야겠어요.”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이씨 가문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의 비서 외에 회사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었다.이윤미만 회사에 나오고 가주와 그녀의 오빠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이 대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한 이 부대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기 친딸이니 무슨 일을 저지른다 해도 이 대표가 뒷수습을 다 할 것으로 회사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이윤미가 이 대표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온갖 망발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헐뜯기에 바빴다.그렇지만 이윤미는 가만있지 않았다.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녀는 직접 해고하여 이씨 그룹에서 쫓아냈다.그리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강등시키거나 급여를 깎았다.게다가 해고된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탓에 그들은 복지와 소득 면에서 이씨 그룹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작은 회사만 전전해야 했다.조금의 손해를 볼지언정 이윤미는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씨 그룹에서 쫓겨난 직원들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모두가 부를 추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다.누가 대표직에 오르든지 간에 모두 이씨 가문의 출신일 것이니 승급을 못 할 바에는 이씨 가문의 암투에 직원들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우는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그렇게 한다면 해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사에게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알았어요.”택시비를 보상해 주겠다며 말한 뒤 이윤미는 비서를 택시에 앉혀 보내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