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는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택해준 아냇감이라 명해은은 여씨 일가에 대해 높은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여씨 일가의 두 고모가 갑자기 방문한 이유가 궁금했다.여운초의 두 고모가 들어왔을 때 명해은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로비 소파에 앉아 패션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양씨 아저씨가 직접 그녀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사모님, 여운초 아가씨의 고모님들이 왔습니다.”명해은은 가볍게 응하고는 잡지를 덮어 테이블 위에 놓고 일어나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사모님.”비록 두 자매도 재벌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상류층 사모님들 사이에는 낄 수 없었다. 전씨 일가 사모님들의 사교 울타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오늘 두 자매는 함께 오기로 약속했다. 둘은 명해은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에 아무 말 못 하고 밖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이건 그녀들이 너무 일찍 온 탓도 있었다. 두 고모는 명해은도 그녀들처럼 일찍 일어나 온 집안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야 침대에서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결국 몇 시간을 헛되이 기다렸다.“두 분 어서 앉으세요.”명해은은 두 사람을 보고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여미란은 여동생을 끌고 오더니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사모님, 저는 운초의 큰고모인 여미란이에요. 이쪽은 저의 여동생인 여미정이예요.”명해은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이 자기소개를 다 하기를 기다린 후 앉으라고 청했다.그리고 도우미에게 차와 디저트를 올리라고 분부했다.몇 마디 수다를 떤 후 여미정은 조용히 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여동생의 뜻을 이해한 여미란은 웃으며 명해은을 향해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희 자매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한 것은 사모님께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명해은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자매의 눈에 그녀의 미소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말씀해 보세요.”여미란은 여운초가 전이진의 호감을 샀다는 사실에 질투
여미정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우리 운초는 둘째 도련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전씨 일가 사람들도 운초가 장님이란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 할 거 아니에요. 게다가 자기 친어머니를 고소하기까지 하다니, 이런 불효한 일을 저질렀는데 더더욱 어울릴 자격이 없죠.”‘이 일 때문에 온 거였어?’명해은은 두 사람의 의도를 알아챘다.전이진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어 직접 찾아와 여운초의 명성을 망쳐 두 사람을 갈라 놓으려는 속셈이었다.‘두 사람, 정말 운초의 친고모 맞아?’이 정도로 자기 조카가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다니.“운초 씨와 이진의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신 거예요?”명해은은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정말 운초 씨가 이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운초 씨의 행동이 불효하다고 생각해요? 친엄마를 고소한 일은 들은 적 있어요. 만약 운초 씨의 친아버지가 정말 친엄마의 손에서 살해당한 거라면 이건 본인이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고모로서 조카 편이 돼주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운초 씨의 친아버지도 당신들과 같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친남매 아닌가요?”“...”“설마 제수가 당신들 동생을 죽인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죽어 마땅할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게다가 딸로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에 죽었다는 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헛되이 죽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겠냐고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지지했을 거예요.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거든요.”두 자매는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여미란은 입을 열었다.“운초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정말 안 됐어요. 하지만 이 점을 떠나서 운초는 둘째 도련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사모님을 찾아온 것은 사실 우리의 조카를 위해서예요.”여미정도 말을 거들었다.“운초는 감정에 대해 진지한 사람이라 한번 마음이 움직였다 하면 평생 그 사람만을 바
명해은은 말을 마친 후 여씨 자매를 쳐다보았다.두 자매는 이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명해은이 여운초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들도 전씨 일가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음이 넓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훌륭한 전이진이 장님인 여운초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명해은도 꺼리지 않아 한다니... ‘재벌 집 시어머니는 모두 성격이 까다로운 거 아니었나?’“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명해은이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별일 없으시면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거로 해요. 저도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해서요.”이만 떠나가라는 뜻이었다.여미란은 급히 답했다.“우리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요. 사모님께서 운초가 장님인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하시니 우리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그녀는 일어서면서 동생에게 일어나라고 눈치를 주었다.그들 자매는 명해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사 양씨 아저씨의 안내로 화려한 홀을 나섰다.그녀들이 떠난 후 명해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얼마 후 양씨 아저씨가 들어왔다.“경비실 사람들에게 앞으로 여미란과 여미정이 다시 오게 되면 알리지 말라고 하세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네요.”양씨 아저씨는 공손히 응했다.“이진이는 아직 안 돌아왔어요?”“아직입니다. 다른 도련님들은 속속들이 돌아오는 중이에요.”명해은은 그에 가볍게 응하고는 잡지를 집어 들어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가 다시 테이블 위에 던지고는 휴대폰을 꺼내 전이진에게 전화했다.양씨 아저씨는 그녀가 전화하는 것을 보고 말없이 물러갔다.전이진은 곧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엄마.”전이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평소 부모님은 큰일이 없으면 거의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아들이 어떻게 지내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네 형들은 모두 리조트로 돌아왔는데 넌 돌아올 생각 없어?”“잠시 돌아가지 않으려고요. 무슨 일 있어요?”
전이진은 그에 답했다.“짐작한 거예요. 어젯밤 두 고모가 운초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났거든요. 저 어제 운초랑 같이 있었는데 심지어 내 앞에서 운초는 장님이라며 함께 있지 말라고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짐작이 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뭐라고 했어요?”“운초는 장님이라 너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친어머니를 고소하고 큰아버지를 해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내가 나서서 너희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어.”전이진은 여운초의 두 고모가 리조트에 찾아간 이유를 짐작했지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여전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마저도 여운초에게 차마 심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고모라는 사람이 말끝마다 장님이라고 욕하다니... 전이진은 다음에 또다시 그녀들을 만나게 되면 예절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경호원에게 쫓아내라고 할 생각이었다.그는 어머니에게 물었다.“그래서 뭐라 하셨어요?”그는 어머니가 그녀들의 말을 곧이들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명해은이 말했다.“우리 집안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어. 네가 운초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누구도 너희들의 감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 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되받아쳤거든. 우리 전씨 일가에 며느리로 시집오기만 하면 돈을 쓰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다고 그랬어.”전이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엄마답네요.”명해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비록 넌 아직 구애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열심히 구애하는 중이잖아. 운초는 조만간 내 며느리로 될 아이야. 나도 운초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는데 고모가 되는 사람들이 어쩜 저래? 조카기 행복해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가족은 필요 없어.”“세 고모 중 제일 작은 고모만 운초의 친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서 운초를 아껴줬댔어요. 나머지 두 고모는 큰아버지와 한편이라 지금 친정인 여씨 일가에서 재산을 다투는 일로 운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어요.”“친
“그래 힘내. 올해 안에 운초 씨랑 결혼할지 지켜볼 거야.”전이진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올해는 무조건 엄마를 시어머니로 만들어줄 거예요.”“그래, 일 봐. 엄마는 너희 큰아버지 댁으로 가봐야겠어.”전이진은 대답을 마치고 엄마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둘째 사모님은 아들과의 통화를 마친 후 곧장 자리를 떠났다.동서지간인 세 사람은 자매처럼 사이가 좋다. 전태윤 부부가 돌아온 걸 알고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 모두 큰집으로 향했다.가운데 있는 안방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루었다.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작고 귀여운 우빈이었다. 아이가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입에 꿀 발린 듯 말까지 잘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지율이가 우빈이를 데리고 연 날리러 가겠다고 했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잔디밭에서 연날리기 딱 좋다고 했다.이에 전태윤이 물었다.“방학 숙제는 다 했어?”전지율은 득의양양하게 대답했다.“어제 금방 다 했어요. 숙제 못 하면 감히 큰 형 보러 못 왔죠.”“숙제가 적었나 봐. 하룻밤 사이에 다 완성한 걸 보면.”전지율은 9월에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다. 아직은 1학년이라 고등학생 시절에 가장 홀가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숙제 많아요. 과목마다 엄청 많이 남겨주었다고요. 나 어제 새벽까지 밤새워가며 각 과목 숙제를 다 완성한 거예요. 큰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학 기간 이 세 날 동안 형들이랑 신나게 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요.”방학 때마다 전지율은 숙제를 미리 완성해야 형들이 함께 놀아준다.나중에 이 아이도 머리를 굴려서 방학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늦어지던 방학 당일에 바로 숙제를 완성해 버렸다. 그래야 당당하게 형들이랑 놀 수 있으니까.“형이 문제집 몇 개 가져오라고 시켰으니 그 문제집들 좀 더 풀면서 공부해. 웬만하면 명문대에 가야지. 우리 체면 깎일라.”전지율은 순간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우빈이를 부둥켜안고는 고개 돌려 하예정에게 말했다.“형수님, 우리 형 좀 어떻게 해봐요. 나 어쩌다가 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그럼 하루만 쉴게요.”전지율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감히 더 많은 휴일을 바랄 수가 없었다.작은아들이 사촌 형들에게 둘러싸여 문제집을 풀게 생겼는데 셋째 사모님은 아예 못 들은 것처럼 이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다.전지율은 사촌 형제들 사이에서 나이가 제일 어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여덟 명의 훌륭한 사촌 형들이 케어하고 있으니 친엄마인 셋째 사모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들을 내버려둔다.“우빈아, 우리 함께 연 날리러 가.”휴일 하루를 획득한 전지율은 우빈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실컷 놀 예정이다.노동명은 지율이가 마음이 안 놓여 함께 따라갔다.그는 계속 우빈의 마음을 정복해 이 아이가 동명 아저씨를 아주 많이 따르게끔 할 작정이다. 주형인이라는 친아빠를 대체하여 이제 곧 우빈의 아빠로 거듭날 것이다.“해은아, 운초네 고모 두 분이 널 찾아왔다며? 무슨 일이래?”어르신은 그제야 둘째 며느리에게 물었다.명해은이 대답했다.“어디 근본도 모르는 두 사람이 다짜고짜 저를 찾아와서 운초는 장님이니 이진이한테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제 도움을 빌려서 운초랑 이진이를 갈라놓을 작정이더군요. 진짜 운초 고모가 맞긴 한 건지 모르겠네요.”어르신이 물었다.“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운초가 앞이 안 보여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우리 전씨 일가에 시집와도 굳이 할 일이 없으니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했더니 두 고모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거 있죠.”어르신은 며느리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운초는 보이는 것처럼 연약한 아이가 아니야. 그 아이의 치명적인 상처가 바로 시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데 치료할 희망은 있어. 이진이가 지금 신의의 제자가 A시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돌아오는 대로 정겨울 의사 찾아가서 운초 눈을 치료할 생각이야.”명해은이 관심 조로 물었다.“정겨울 의사가 운초 눈을 치료할 수 있대요? 그 아이 고모가 말하길 눈먼 지 10년이 됐고 그동안 수많은 안과의
장소민이 말했다.“그 아이도 참 가여운 아이예요.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면 푸대접하진 않을 거예요.”장소민의 큰며느리는 비록 혁혁한 출신이 아니어도 건강한 신체를 지녔다.하예정도 줄곧 분발하고 있다. 장소민은 전에 그녀에게 조금 불만족스러웠지만 여운초와 비교하니 더는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오랜 시간 함께해오며 고부간에 정이 쌓였다.어르신이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제 실력을 감추고 일부러 상대방에게 가볍게 보이고 있어. 젊은 사람들은 이만 나가 놀거라. 여기서 이 노인네를 지켜줄 필요 없다.”어르신은 손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전태윤은 하예정과 함께 우빈이를 찾으러 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방에 남아서 어른들이 얘기 나누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사모님들의 수다에 한 마디도 받아칠 수 없었다.이에 열등감을 느낄 하예진이 아니지. 그녀는 자신이 아직 이 상류층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중에 보란 듯한 성과를 이루거든 자연스럽게 사모님들과 어우러질 것이다.“예진아, 이 할미랑 함께 산책하러 나가자꾸나.”어르신은 하예진과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네.”하예진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다가가서 어르신을 부축했다.자리에서 일어난 어르신은 더는 그녀의 부축이 필요 없었다.장소민 일행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장소민이 먼저 두 동서에게 말했다.“예정의 언니가 살이 엄청 많이 빠졌네요.”그녀는 하예진의 조금 통통한 모습이 복스러워 보였다.지금은 너무 홀쭉해졌다.“그러게요. 저는 몇 번 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뚱뚱했던 그때의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는걸요. 그렇게 큰일을 겪었는데 살이 빠질 만도 하죠.”이는 하예진이 다쳐서 입원했던 시기를 뜻한다.그녀는 현재 결혼 전의 몸무게로 거의 돌아왔다.어르신과 함께 안방에서 나온 후 어르신의 리드 하에 연못으로 걸어갔다.서원 리조트의 연못은 면적이 엄청 크다. 매년 6월 연꽃이 만개할 때 정자에서 연꽃을 감상하는 것도 별미이다.아직은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진작 알아챘지. 동명이는 처음에 널 좋아하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 우빈이가 귀여워서 애 엄마인 너를 다정하게 대하는 거라고 여겼지. 어쩌면 처음엔 정말 우빈이를 예뻐하다가 나중에 천천히 널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몰라.”하예진의 얼굴이 빨개졌다.“할머니, 저는 동명 씨에게 아무 호감이 없어요. 저한테 고백도 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어요.”“동명의 엄마 때문이니? 그 사람은 나쁜 심보 같은 건 없어. 다만 서로 조건이 대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너무 깊이 박혀 있을 뿐이야. 솔직히 말해서 결혼은 조건이 대등한 사람들끼리 하는 게 맞아. 이걸로 동명의 어미를 탓할 건 없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랑 동명 씨는 조건이 아예 안 맞고 또 저는 진짜 동명 씨랑 어떻게 되기를 바란 적이 없어요. 단지 동명 씨네 가게를 임대한 흔한 세입자일 뿐이에요.”하예진은 감히 넘보지 못할 곳을 넘보는 자가 아니다.동생이 신분 상승한 건 동생의 팔자가 좋아서이지 언니인 그녀까지 추구하는 건 아니다.또한 동생이 아무리 팔자가 좋고 시댁에서 전혀 눈치를 안 준다고 해도 하예정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압력을 감당하고 있다. 부부 사이가 애틋한 게 아니라면 하예진이 장담컨대 동생 예정이는 이 큰 압력을 뿌리치고 일찌감치 전태윤과 끝냈을 것이다.그녀들은 평범한 사람이라 모두 평범한 삶을 추구한다.“이 할미가 진짜 솔직하게 말할게. 다른 사람은 너랑 안 어울릴지 몰라도 동명이는 너랑 아주 잘 어울려. 그 아이가 비록 재벌가 출신이지만 유년 시절에 반항도 심했고 몇 년간 가출하여 밖에서 모진 고생을 겪었을 거야. 동명이는 네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줄 수 있어.”“물질적인 면에서 고급 외제 차를 사는 걸 좋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면에선 아주 겸손해. 딱히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추구가 없어서 네 삶에 스며들기 쉬울 거야.”하예진은 한참 침묵한 후 말했다.“할머니, 저는 실패한 결혼생활을 겪어본 사람이에요. 주형인과 십여 년을 알고 지냈고 연애 몇 년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