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장부는 이미 새 장부에 다시 베껴 써놨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말이야.”장소민은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가리키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장부가 너무 많아서 찾기 어려울까 봐 컴퓨터에도 장부를 해놨으니까 컴퓨터로 찾으면 훨씬 편리할 거야.”하예정은 책장들을 둘러보면서 놀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시어머니에게 물었다.“어머니, 이것들 모두 우리 집 비즈니스에 관한 장부예요?”“그래.”“...할머니께선 그저 상가 임대 상황과 체인 스토어 같은 작은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거라고 하셨어요.”장부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하예정은 순간 자신이 요 며칠 휴가일 동안 전씨 일가의 모든 산업 상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졌다.정말 장부가 엄청나게 많았다.그녀는 회계 관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초보자나 다름없다.“할머니 말이 맞으셔. 다 작은 비즈니스들이야. 넌 그냥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 비즈니스를 관리하고 있는지만 알면 돼. 매달 이윤인지 적자인지는 보고서를 보내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 너도 어느 정도 몰래 알아둬. 속지 않게 말이야.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약간 탐하는 것에 관해서는 눈감아 주고. 어차피 처벌 받으면 그들도 좋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거니까 보통은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해. ”전씨 일가의 명성이 보통 높은 게 아닌지라 관리팀은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 게다가 전씨 일가도 관리팀을 대할 때는 항상 일정한 정도의 이익을 남겨주었다. 일을 잘 하기만 하면 푸대접을 받지 않았다.장소민은 하예정이 너무 꼭 잡을까 봐 몇 마디 주의를 주었다.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모를 부분은 어머니께 여쭤볼게요. 이 장부들 다 읽어야 해요?”“잠시 먼저 각 장부의 첫 세 페이지를 보도록 해. 첫 페이지는 각 업종이 처한 위치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야. 두 번째와 세 번째 페이지는 일반적으로 인사 안배에 관한 자료야. 그들의 상세한 자료와 사진이 있어. 얼추라도 기억해 두면 후에 관
“앞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물어봐. 태윤이에게 물어봐도 되고. 비록 주로 외부 비즈니스를 관리하고 있지만 내부에 관한 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의 뒤엔 남편 전태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녀는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내려갈 거야 아니면 여기 남아서 장부를 볼 생각이야?”장소민이 물었다.하예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언니와 동명 씨가 오셨으니까 먼저 같이 내려가요. 장부는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안에 다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들어와 보도록 할게요.”장소민은 그에 가볍게 응했다.둘은 나란히 작은 서재를 나섰다. 장소민은 내려가기 전에 서재 문을 다시 잠그면서 말했다.“서재는 중요한 곳이라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어. 서재 안을 거두는 일은 우리가 책임져야 해. 네가 집에 없을 땐 내가 청소를 맡을게. 후에 네가 태윤이와 리조트로 돌아와 살게 되면 모든 걸 너에게 맡길 거야.”“알겠어요.”어쩐지 전태윤은 그녀를 리조트로 데려오는 것을 꺼린다 싶었다.거리가 멀어서 출퇴근이 불편한 것은 물론, 중요한 건 아내가 너무 일찍 사모님의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오래 즐겁게 놀면서 지내기를 바랐다.하예정은 남편의 배려에 깊이 감동받았다.남편은 자신을 정말 사랑했다.장소민과 하예정이 작은 서재에 들어갔을 때 전이진의 친어머니이자 전태윤의 둘째 숙모인 명해은이 침대에서 일어났다.여미란과 여미정이 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지만 그들에 대에 별로 인상이 없었다. 이에 양씨 아저씨가 설명해 주었다.“여씨 일가 큰아가씨의 두 고모님이십니다.”“운초 씨의 고모님이었어요? 그럼 안으로 모셔 와요.”명해은은 소파에 우아하게 앉아 양씨 아저씨에게 분부하여 리조트 입구의 경비실에 알려 오래 기다린 둘을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했다.명해은은 여씨 일가의 세 사모님에 대한 인상이 없다. 예전의 여씨 일가는 그저 실력이 조금 있
여운초는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택해준 아냇감이라 명해은은 여씨 일가에 대해 높은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여씨 일가의 두 고모가 갑자기 방문한 이유가 궁금했다.여운초의 두 고모가 들어왔을 때 명해은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로비 소파에 앉아 패션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양씨 아저씨가 직접 그녀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사모님, 여운초 아가씨의 고모님들이 왔습니다.”명해은은 가볍게 응하고는 잡지를 덮어 테이블 위에 놓고 일어나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사모님.”비록 두 자매도 재벌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상류층 사모님들 사이에는 낄 수 없었다. 전씨 일가 사모님들의 사교 울타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오늘 두 자매는 함께 오기로 약속했다. 둘은 명해은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에 아무 말 못 하고 밖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이건 그녀들이 너무 일찍 온 탓도 있었다. 두 고모는 명해은도 그녀들처럼 일찍 일어나 온 집안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야 침대에서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결국 몇 시간을 헛되이 기다렸다.“두 분 어서 앉으세요.”명해은은 두 사람을 보고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여미란은 여동생을 끌고 오더니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사모님, 저는 운초의 큰고모인 여미란이에요. 이쪽은 저의 여동생인 여미정이예요.”명해은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이 자기소개를 다 하기를 기다린 후 앉으라고 청했다.그리고 도우미에게 차와 디저트를 올리라고 분부했다.몇 마디 수다를 떤 후 여미정은 조용히 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여동생의 뜻을 이해한 여미란은 웃으며 명해은을 향해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희 자매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한 것은 사모님께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명해은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자매의 눈에 그녀의 미소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말씀해 보세요.”여미란은 여운초가 전이진의 호감을 샀다는 사실에 질투
여미정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우리 운초는 둘째 도련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전씨 일가 사람들도 운초가 장님이란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 할 거 아니에요. 게다가 자기 친어머니를 고소하기까지 하다니, 이런 불효한 일을 저질렀는데 더더욱 어울릴 자격이 없죠.”‘이 일 때문에 온 거였어?’명해은은 두 사람의 의도를 알아챘다.전이진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어 직접 찾아와 여운초의 명성을 망쳐 두 사람을 갈라 놓으려는 속셈이었다.‘두 사람, 정말 운초의 친고모 맞아?’이 정도로 자기 조카가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다니.“운초 씨와 이진의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신 거예요?”명해은은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정말 운초 씨가 이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운초 씨의 행동이 불효하다고 생각해요? 친엄마를 고소한 일은 들은 적 있어요. 만약 운초 씨의 친아버지가 정말 친엄마의 손에서 살해당한 거라면 이건 본인이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고모로서 조카 편이 돼주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운초 씨의 친아버지도 당신들과 같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친남매 아닌가요?”“...”“설마 제수가 당신들 동생을 죽인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죽어 마땅할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게다가 딸로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에 죽었다는 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헛되이 죽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겠냐고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지지했을 거예요.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거든요.”두 자매는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여미란은 입을 열었다.“운초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정말 안 됐어요. 하지만 이 점을 떠나서 운초는 둘째 도련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사모님을 찾아온 것은 사실 우리의 조카를 위해서예요.”여미정도 말을 거들었다.“운초는 감정에 대해 진지한 사람이라 한번 마음이 움직였다 하면 평생 그 사람만을 바
명해은은 말을 마친 후 여씨 자매를 쳐다보았다.두 자매는 이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명해은이 여운초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들도 전씨 일가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음이 넓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훌륭한 전이진이 장님인 여운초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명해은도 꺼리지 않아 한다니... ‘재벌 집 시어머니는 모두 성격이 까다로운 거 아니었나?’“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명해은이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별일 없으시면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거로 해요. 저도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해서요.”이만 떠나가라는 뜻이었다.여미란은 급히 답했다.“우리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요. 사모님께서 운초가 장님인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하시니 우리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그녀는 일어서면서 동생에게 일어나라고 눈치를 주었다.그들 자매는 명해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사 양씨 아저씨의 안내로 화려한 홀을 나섰다.그녀들이 떠난 후 명해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얼마 후 양씨 아저씨가 들어왔다.“경비실 사람들에게 앞으로 여미란과 여미정이 다시 오게 되면 알리지 말라고 하세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네요.”양씨 아저씨는 공손히 응했다.“이진이는 아직 안 돌아왔어요?”“아직입니다. 다른 도련님들은 속속들이 돌아오는 중이에요.”명해은은 그에 가볍게 응하고는 잡지를 집어 들어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가 다시 테이블 위에 던지고는 휴대폰을 꺼내 전이진에게 전화했다.양씨 아저씨는 그녀가 전화하는 것을 보고 말없이 물러갔다.전이진은 곧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엄마.”전이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평소 부모님은 큰일이 없으면 거의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아들이 어떻게 지내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네 형들은 모두 리조트로 돌아왔는데 넌 돌아올 생각 없어?”“잠시 돌아가지 않으려고요. 무슨 일 있어요?”
전이진은 그에 답했다.“짐작한 거예요. 어젯밤 두 고모가 운초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났거든요. 저 어제 운초랑 같이 있었는데 심지어 내 앞에서 운초는 장님이라며 함께 있지 말라고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짐작이 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뭐라고 했어요?”“운초는 장님이라 너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친어머니를 고소하고 큰아버지를 해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내가 나서서 너희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어.”전이진은 여운초의 두 고모가 리조트에 찾아간 이유를 짐작했지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여전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마저도 여운초에게 차마 심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고모라는 사람이 말끝마다 장님이라고 욕하다니... 전이진은 다음에 또다시 그녀들을 만나게 되면 예절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경호원에게 쫓아내라고 할 생각이었다.그는 어머니에게 물었다.“그래서 뭐라 하셨어요?”그는 어머니가 그녀들의 말을 곧이들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명해은이 말했다.“우리 집안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어. 네가 운초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누구도 너희들의 감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 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되받아쳤거든. 우리 전씨 일가에 며느리로 시집오기만 하면 돈을 쓰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다고 그랬어.”전이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엄마답네요.”명해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비록 넌 아직 구애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지만 열심히 구애하는 중이잖아. 운초는 조만간 내 며느리로 될 아이야. 나도 운초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는데 고모가 되는 사람들이 어쩜 저래? 조카기 행복해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가족은 필요 없어.”“세 고모 중 제일 작은 고모만 운초의 친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서 운초를 아껴줬댔어요. 나머지 두 고모는 큰아버지와 한편이라 지금 친정인 여씨 일가에서 재산을 다투는 일로 운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어요.”“친
“그래 힘내. 올해 안에 운초 씨랑 결혼할지 지켜볼 거야.”전이진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올해는 무조건 엄마를 시어머니로 만들어줄 거예요.”“그래, 일 봐. 엄마는 너희 큰아버지 댁으로 가봐야겠어.”전이진은 대답을 마치고 엄마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둘째 사모님은 아들과의 통화를 마친 후 곧장 자리를 떠났다.동서지간인 세 사람은 자매처럼 사이가 좋다. 전태윤 부부가 돌아온 걸 알고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 모두 큰집으로 향했다.가운데 있는 안방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루었다.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작고 귀여운 우빈이었다. 아이가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입에 꿀 발린 듯 말까지 잘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지율이가 우빈이를 데리고 연 날리러 가겠다고 했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잔디밭에서 연날리기 딱 좋다고 했다.이에 전태윤이 물었다.“방학 숙제는 다 했어?”전지율은 득의양양하게 대답했다.“어제 금방 다 했어요. 숙제 못 하면 감히 큰 형 보러 못 왔죠.”“숙제가 적었나 봐. 하룻밤 사이에 다 완성한 걸 보면.”전지율은 9월에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다. 아직은 1학년이라 고등학생 시절에 가장 홀가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숙제 많아요. 과목마다 엄청 많이 남겨주었다고요. 나 어제 새벽까지 밤새워가며 각 과목 숙제를 다 완성한 거예요. 큰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학 기간 이 세 날 동안 형들이랑 신나게 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요.”방학 때마다 전지율은 숙제를 미리 완성해야 형들이 함께 놀아준다.나중에 이 아이도 머리를 굴려서 방학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늦어지던 방학 당일에 바로 숙제를 완성해 버렸다. 그래야 당당하게 형들이랑 놀 수 있으니까.“형이 문제집 몇 개 가져오라고 시켰으니 그 문제집들 좀 더 풀면서 공부해. 웬만하면 명문대에 가야지. 우리 체면 깎일라.”전지율은 순간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우빈이를 부둥켜안고는 고개 돌려 하예정에게 말했다.“형수님, 우리 형 좀 어떻게 해봐요. 나 어쩌다가 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그럼 하루만 쉴게요.”전지율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감히 더 많은 휴일을 바랄 수가 없었다.작은아들이 사촌 형들에게 둘러싸여 문제집을 풀게 생겼는데 셋째 사모님은 아예 못 들은 것처럼 이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다.전지율은 사촌 형제들 사이에서 나이가 제일 어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여덟 명의 훌륭한 사촌 형들이 케어하고 있으니 친엄마인 셋째 사모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들을 내버려둔다.“우빈아, 우리 함께 연 날리러 가.”휴일 하루를 획득한 전지율은 우빈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실컷 놀 예정이다.노동명은 지율이가 마음이 안 놓여 함께 따라갔다.그는 계속 우빈의 마음을 정복해 이 아이가 동명 아저씨를 아주 많이 따르게끔 할 작정이다. 주형인이라는 친아빠를 대체하여 이제 곧 우빈의 아빠로 거듭날 것이다.“해은아, 운초네 고모 두 분이 널 찾아왔다며? 무슨 일이래?”어르신은 그제야 둘째 며느리에게 물었다.명해은이 대답했다.“어디 근본도 모르는 두 사람이 다짜고짜 저를 찾아와서 운초는 장님이니 이진이한테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제 도움을 빌려서 운초랑 이진이를 갈라놓을 작정이더군요. 진짜 운초 고모가 맞긴 한 건지 모르겠네요.”어르신이 물었다.“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운초가 앞이 안 보여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우리 전씨 일가에 시집와도 굳이 할 일이 없으니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했더니 두 고모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거 있죠.”어르신은 며느리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운초는 보이는 것처럼 연약한 아이가 아니야. 그 아이의 치명적인 상처가 바로 시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데 치료할 희망은 있어. 이진이가 지금 신의의 제자가 A시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돌아오는 대로 정겨울 의사 찾아가서 운초 눈을 치료할 생각이야.”명해은이 관심 조로 물었다.“정겨울 의사가 운초 눈을 치료할 수 있대요? 그 아이 고모가 말하길 눈먼 지 10년이 됐고 그동안 수많은 안과의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
전호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도 일부러 그에게 명백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내일 저녁에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강성 전체 사람들도 분명 충격받을 것이다.고현은 이미 전호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2년 안에 전호영에게 시집갈 것이다.그녀는 전호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동성애라자라는 누명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호영은 게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였다.고현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여자로 되고 싶어 했다.그 또한 기뻐할 것이다.고현의 형상이 너무 남자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여성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점을 고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전호영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여자로 분장한 적 있다.당시 고씨 그룹 직원들은 여자 분장을 한 전호영이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의 자매인 줄 알았지만 전씨 가문에는 딸이 없고 전호영에게도 자매가 없었다는 것을 반응한 사람들은 그제야 전호영이 분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날 그 사실은 고씨 그룹에서 아주 큰 가십거리로 소문이 자자했다.전호영과 통화를 마친 고현은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미리가 전화를 받았지만 고현은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현아, 왜 그래?”고현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진미리는 놀라워하며 고현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고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엄마, 시간 있어요? ”“있지. 난 언제나 시간 있지. 왜?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고현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것이다.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낸 진미리는 관심 있게 물었다.“생리 왔어? 배 아파?”고현은 때때로 생리통을 앓곤 한다.진미리는 한동안 몰래 고현에게 한약을 지어주면서 그녀를 돌보았다.“아니요. 엄마. 저 내일 저녁 연회
“호영 씨.”고현이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 있던 전호영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었다.“현이 씨,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웃음기가 묻어나네요. 현이 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고현이 전호영에게 감정이 있다고는 하나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다 보니 전호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제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어요?”“그럴 리가요. 당연히 현이 씨가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면 좋죠. 그렇지만 현이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하루 종일 웃지도 않잖아요. 시시덕거리는 고빈을 볼 때마다 테이프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고씨 그룹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빈은 틈만 나면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빴다.그렇다고 해서 고빈이 결혼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현이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그 입 틀어막지 않고 뭐 해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부럽기는 해요.”자신이 맏이기 때문에 동생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혀있었다.줄곧 남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나타난 후부터 고현은 점차 동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물론 동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고씨 그룹이 언젠가는 동생의 손에 넘어갈 것을 생각하고 가끔 동생에게 일을 맡기곤 했었지만.평생을 이렇게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전호영이 딱 그런 존재였다.“나중 가면 현이 씨 동생이 현이 씨를 부러워할 것이니 동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현이 씨가 회사 일을 조금씩 그에게 맡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처럼 호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이윤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먼저 회사에 가 있어요. 요즘 가주가 시간 없다고 하니 제가 집안일 처리하러 집에 가야겠어요.”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이씨 가문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의 비서 외에 회사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었다.이윤미만 회사에 나오고 가주와 그녀의 오빠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이 대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한 이 부대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기 친딸이니 무슨 일을 저지른다 해도 이 대표가 뒷수습을 다 할 것으로 회사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이윤미가 이 대표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온갖 망발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헐뜯기에 바빴다.그렇지만 이윤미는 가만있지 않았다.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녀는 직접 해고하여 이씨 그룹에서 쫓아냈다.그리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강등시키거나 급여를 깎았다.게다가 해고된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탓에 그들은 복지와 소득 면에서 이씨 그룹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작은 회사만 전전해야 했다.조금의 손해를 볼지언정 이윤미는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씨 그룹에서 쫓겨난 직원들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모두가 부를 추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다.누가 대표직에 오르든지 간에 모두 이씨 가문의 출신일 것이니 승급을 못 할 바에는 이씨 가문의 암투에 직원들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우는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그렇게 한다면 해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사에게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알았어요.”택시비를 보상해 주겠다며 말한 뒤 이윤미는 비서를 택시에 앉혀 보내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